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 M. 에이브럼슨 지음, 박우정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해 최고의 노래를 꼽자면 단연코 이애란의 ‘백세인생’이다. 이른바 ‘못 간다고 전해라~’ 신드롬을 탄생시키며 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노랫말은 백세까지 사는 인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병치레 없이 오래 살고 싶다는 바람은 단지 개인의 욕망 차원에 머무르진 않는다. 헌법에도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노년 복지는 국민의 기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건강 불평등’이란 말이 갈수록 회자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노인소득불평등지수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칠레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경제적 불평등이 장기화하면서 현재 40ㆍ50대가 노인이 되면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그나마 여유 있는 노후 준비를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약자들이 문제다. 환경적 요인과 함께 사회경제적 여건이 개인의 건강·사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이 최근 학계에서 잇따라 제시됐다. 삶의 여건이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

 

장 자크 루소는 적어도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했지만, 코리 에이브럼슨의 책을 본다면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는 순간 평생 불평등한 인생을 살다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현실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의 원제는 ‘The End Game’이다. 사회에서 태어난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느냐’이다. 돈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돈 없고,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린다. 여기서부터 한 사람 인생 전체를 의미하는 게임의 결과가 달라진다. 교육, 부 그리고 삶의 기회 격차가 벌어지면 후자의 인생 게임은 불공정하게 진행된다. 가난한 사람이 늙고 병들수록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백세인생에 대한 희망이 없다. 이미 예상된 인생의 슬픈 종지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에이브럼슨은 인종과 민족이 다양한 미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 거주지 2곳씩을 2년 6개월 동안 심층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고령화 사회의 불평등이 각종 복지서비스 제공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신체 노화와 질병은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저소득층 노인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한다. 특히 체력이 부족한 노인은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다.

 

 

“노인들에게 교통수단은 중요한 문제예요. 그들은 점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죠. 그래서 걷기 힘든 대다수 노인은 그냥 집에 붙어 지냅니다. 먹고, 잠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약을 먹지만 어디에도 가질 못해요. 집에 갇힌 신세가 되는 거죠.” (74쪽)

 

 

활동량이 적은 노인들은 스스로 가족, 친구에게 버림받았다고 밝혔다. 교우 관계가 단절되면 우울증이 심각해지며 건강 악화의 원인이 된다. 중산층 노인 거주 지역과 저소득층 노인 거주 지역 간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불평등한 사회의 각종 병폐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받는 차별적 경험만큼 건강도 차별적 영향을 받게 되어 건강 불평등이 양산된다. 중산층 노인 거주 지역은 노인 복지를 위한 정부 보조금 지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만, 저소득층 노인 거주 지역은 비영리단체의 지원에 더 많이 의존한다. 당연히 중산층 노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다. 반면 저소득층 노인은 의료 복지와 의료 기관에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더 이상 삶에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 일부 노인은 공허한 분위기를 달래려고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과거에는 건강을 개인의 책임 또는 타고난 유전적 문제로 인식했다.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건강한 생활을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병원 신세를 진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고, 개인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조금만 더 시각을 넓혀서 관찰해보면, 이러한 차이가 사회 계층별로 매우 구조화되어 있다. 불평등에서 비롯된 빈곤은 사회적 현상 그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삶과 신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불평등은 건강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사회 계층 간의 차별적인 환경과 장벽이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고려하지 않고,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리면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삶의 질이 보장된 동일한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절대빈곤 가구의 절반 이상이 고령가구다. 근로능력이 없는 노년층 가운데 적지 않은 인구가 최저생계비에 의존하고 있어서 소득불평등도가 더 높게 나온다. 우리나라의 빈곤문제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고령층 생계문제와 유사하다. 노년기의 불평등은 인생의 다른 시기에 겪는 불평등과는 다르다. 빨라진 은퇴연령, 늘어나는 평균수명, 고령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부실 등 다양한 원인으로 노년계층의 경제난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우리 인생의 게임이 불행하게 끝날 수도 있다. 불평등 사회 속에 백세까지 있는 최종 단계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미래가 어두운 ‘백세 불평등 인생’을 생각하면 ‘백세인생’ 노래를 즐겁게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너무 살기 힘드니 따라 간다고 전해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4-18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9 16: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서글프지만, 아프지 않고 생의 소풍을 조용히 마치는 게 더 편하죠.

세실 2016-04-18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현실입니다.
퇴직후 사십년을 뭐하며 지낼까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이십년이상은 병원 다니며 연명할수도...

cyrus 2016-04-19 16:49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현 노년층 경제 상황이 암울하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지금 20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됩니다. 이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노년 불평등이 다음 세대로 계속 대물림됩니다.
 

 

 

 

 

 

 

 

4월 21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인터넷 교보문고,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에 판매

 

4월 22일 금요일에 전국 교보문고 매장 판매

 

 

 

* 71, 72번째 책 : 《지봉유설》 이수광 저 / 남만성 역

 

《지봉유설》은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이 1614년에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류다. 조선의 일은 물론 중국과 일본, 베트남과 타이, 자바를 비롯해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제국의 문물까지 담아내 문화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 지봉(芝峰)은 이수광의 호. 그는 성리학만 고집하지 않았다. 성리학에서 실용적 요소를 찾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또 성리학 이외의 학문이라도 국력 증진과 민생 안정에 유용한 것이라면 모든 학문을 폭넓게 수용하는 개방성을 보였다. 그는 중국 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 문물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가 실학의 선구자로 인식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현재까지 나온 《지봉유설》 완전 국역본과 정선본(《지봉유설 정선》 현대실학사)은 절판되었다. 올재 판 《지봉유설》은 을유문화사 판을 재 간행한 것이다.

 

 

 

 

* 73번째 책 :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저 / 이민재 역

* 74번째 책 : 《비글호 항해기》 찰스 다윈 저 / 권혜련, 김정석, 박완신, 이혜진 역

 

곧 다가오는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내일은 찰스 다윈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1934년 발명학회가 찰스 다윈의 기일을 맞아 ‘과학 데이’로 정한 것이 지금의 ‘과학의 날’의 시초로 본다. 올재 출판사가 이 중요한 날에 맞춰 다윈의 대표작 두 권을 선보인다. 올재 출판사는 오래 전에 나오다가 절판된 고전 번역본을 재출간한다. 이민재 역의 《종의 기원》은 을유문화사 ‘세계의 사상’ 시리즈로 나온 것이다. 올재가 선택한 《종의 기원》 번역본이 너무 오래된 감은 있다. 사실 올재의 《지봉유설》도 그렇다. 알라딘에는 을유문화사 《종의 기원》의 출간 연도를 1995년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은 개정판이다. 구판은 1983년에 나왔다. 번역 오류와 오래된 문체를 다듬어서 펴낼 것이라 믿는다.

 

 

 

 

 

 

 

 

 

 

 

 

 

 

 

 

 

 

 

네 명의 역자가 공역한 《비글호 항해기》는 2006년 샘터사에 나온 판본이다. 그래도 내용 구성면에서는 극지 전문가 장순근 박사가 번역한 《비글호 항해기》 결정판이 좋다. 장순근 역 《비글호 항해기》에는 관련 그림이 많이 수록되었고, 해설과 주석이 상세하게 잘 나와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6-04-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봉유설은 모르겠고, <종의 기원>하고 <비글호 항해기>는 사야겠네요. 단 소장용으로.

cyrus 2016-04-18 17:54   좋아요 0 | URL
<비글호 항해기>를 제외하면 소장용이죠. ^^;;

붉은돼지 2016-04-1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8차분이 나왔군요^^
cyrus 님 덕분에 올재를 알게되어서 열심히 사 모으고 있습니다.
사 모은지는 벌써 4번째가 되는군요..읽은 건 하나도 없어요 ㅜㅜ

cyrus 2016-04-18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얇은 분량의 책만 골라서 읽습니다. 이번에 나올 책 전부 책장 장식품 각입니다. ㅎㅎㅎ

dimeola 2016-04-19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네요 ^^
`지봉유설`은 1974년 을유문화사에서 남만성 선생의 최초 국역본이 나왔고 1994년에 다시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 국역본이, 그리고 2001년도에 가로본이 한번 더 나왔는데 아마 2001년도 판본으로 올재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종의 기원`은 교수신문에서 최고의 고전 번역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워낙 어려운(한글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와 문장)터라 최초 완역본임에도 상당히 읽기가 ㅎㅎ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아직까지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과 동서문학사 송용철 역본을 가지고 있어서 고민 입니다.
`비글로 여행기`는 리젬에서 개정판 나오기 전 전파과학사에 1991년에 나온 판본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올재는 지봉유설만 사고 싶으나 뭐 여튼 다 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가격이 깡패이니 말입니다 ~~

cyrus 2016-04-19 21:08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찾은 정보가 적어서 쓸 게 없어서 난감했어요. ㅎㅎㅎ

동서문화사 판본은 한길사 판 나오기 전에 조금 읽어봤습니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었어요. 이 책은 꼭 사서 읽어야 되겠더라고요.

올재 판은 판형이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편하죠. 번역을 다시 손봤다고 했으니 이왕에 다 구입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톨스또이는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그 이유가 갖가지라는 세계의 문호다운 예리한 관찰을 했다, 사실, 그 점은 국가도 마찬가지다. 잘 사는 국가는 비슷하게 잘 사는데, 못 사는 국가는 그 이유가 제각각이니까. 신문의 국제면은 연일 기아, 전쟁, 빈곤, 환경파괴, 무역 분쟁, 삶의 질의 저하 등으로 메워지고 있다. 세계가 이렇게 자기 소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다가는 지금의 문명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누가 세계를 이렇게 만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누가 수혜를 보는 것일까.

 

 

 

 

 

 

한쪽에서는 이것이 세계의 번영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것이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세계화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화가 시대의 화두가 된 지도 오래다. 세계화의 문제는 한마디로 불평등의 문제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가속하는 격차를 두고 위기의식이 거론되고 있다.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은 공저 세계화의 덫(영림카디널, 2003)에서 전 세계가 20%의 부유층과 80% 빈곤층으로 양분된다는 암울한 전망을 하였다. 오늘날 현실은 그들이 경고한 ‘20 80 사회 향해 날로 고착화하는 형편이다. 세계화는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갈가리 찢어놓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국경이 사라진 거대한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쌓는 부()는 그 이전 시대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이미 경제학에서는 세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관해 치열한 이론적, 실증적 논쟁이 벌어져 왔다. 주류경제학자들은 경제를 개방하고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한다면 개도국에서 투자가 촉진되고 경제의 효율성이 상승할 것이라 주장한다. 세계은행은 1996년 로마 식량정상회의에서 2015년까지 세계 기아 인구를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의 가속화에 따라 국가 간, 계층 간 소득 격차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이 기아의 고통에 허덕인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에 사는 59000만 명 중 3분의 1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 식량 원조는 거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지역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식량은 원조량의 5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사회학자 장 지글러는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을 아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설명한다. 개발도상국의 빈곤문제는 그 자체가 매우 복잡한 사회적 현상으로서 구조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왜 많은 사람이 굶주려야 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해석을 내놓았다. 농사짓기 좋고 종족 갈등도 없는 소말리아가 기근으로 시체의 산을 이루는 건 군벌들의 다툼 때문이다. 구호단체 화물선이 정박할 항구는 전쟁통에 폐쇄됐거나 통행세를 요구하는 무장 세력으로 득실댄다. 선진국들은 개도국과 후진국에는 자유 시장논리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국 시장은 봉쇄하고, 자국 농민은 보조금 정책을 통해 보호하고 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화는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세계 농업 무역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결국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식량을 살 돈이 없어서 굶주리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로 가봉 국적 공격수 피에르 오바메양이 선정되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녹색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오바메양의 모습에 시종일관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머나먼 대륙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이 세계화된우리의 현실이다. 세계화는 이미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세계화로 인해 무한 경쟁 논리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되고 있다. 대부분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서는 세계화를 국경의 개념이 허물어져 세계가 하나의 열린 시장이 됨으로써 자본, 물자, 인력, 정보 등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라는 단일한 경제 체제로 통합됨으로써 자본이 전 지구를 대상으로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의 본질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전 지구화.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세계화의 본질을 보여주기에는 2% 부족하다. 그 이유는 세계화라는 자본주의의 빛에 가려진 어두운 그늘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세계화의 그늘인 기아 문제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바람을 잔뜩 들이마신 우리 사회는 기아를 초래하는 원인을 알고도 침묵한다. 만일 경제 교과서에 세계화의 원인이 다국적 기업의 탐욕이라는 문장 한 줄만 보여도 뉴라이트 세력이 트집을 부릴 것이다. 기아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일수록 집단 전체에 지적 마비증세가 온다. 장 지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 경제의 그늘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은 현실에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한다. 그들의 호주머니에 결식아동의 하루 식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돈이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더 유익이라는 판단이 오늘도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 이유가 된다.

 

세계화의 치부를 드러내는 자료는 넘쳐나는데, 주류경제학자들은 세계화가 얼마나 신나는 것인지 설명한다. 반세계화 운동을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말로 경제성장이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이 있었는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화 시대의 파국을 피부로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당장 요구되는 것은 세계화의 모순적인 이면에 대한 관심이다.

 

 

 

 

※ 서평대회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추럴-본 사이보그 포스트휴먼 총서 4
앤디 클락 지음, 신상규 옮김 / 아카넷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는 기계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메텔과 함께 기계 제국으로 향한다. 기계 몸을 공짜로 얻기 위한 여행이다. 돈 많은 인간은 기계의 몸을 지니고 영생을 누리지만 기계 몸을 얻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의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힘겹고 긴 여정은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훌쩍 지나가고 마침내 기계 제국에 도착한다. 하지만 철이는 감정 없는 기계 인간으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계 몸을 선택하지 않고 인간으로 남는다. 그는 다시 999호를 탑승하여 지구로 떠난다.

 

기계 인간의 꿈을 포기한 철이의 선택은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세상에도 철이가 많다. 그들은 네오러다이트(Neo Luddite)’ 족이다. 첨단 문명 파괴주의자 유나바머로 상징되는 적극적 네오러다이트 족이 있는가 하면, 첨단 문명을 단순 거부하거나 은둔하는 소극적 네오러다이트 족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초창기 단순히 사람의 몸에 IT기기를 걸치는 데 머물렀던 웨어러블 컴퓨팅(Wearable Computing)은 최근에는 섬유와 일체화하여 옷이 곧 IT기기가 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웨어러블 컴퓨팅은 사람의 옷이 아니라 사람의 몸속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웨어러블 컴퓨팅이 장밋빛 전망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인간을 이롭게 하려고 개발된 웨어러블 컴퓨팅이 종국에는 인간의 능력을 퇴행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술이 점점 발전할수록 인간의 기능 중 더 많은 영역을 웨어러블 컴퓨터가 차지한다. 언뜻 보면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것 같지만 결국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신체의 역할은 줄어든다.

 

만일 내추럴-본 사이보그의 저자 앤디 클락이 메텔이었으면, <은하철도 999> 결말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앤디 클락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이보그에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사이보그는 생물과 기계장치의 결합을 의미한다. 영국의 로봇공학자 케빈 워릭은 자신의 몸에 컴퓨터 칩을 내장한 최초의 사이보그 인간이다. 그가 정의하는 사이보그는 일반적인 로봇과 다르다. 완전히 기계로 이루어진 로봇뿐만 아니라 특정 컴퓨터 전자 장비 등으로 몸 일부를 개조한 인간이나 인공복합 생명체를 뜻한다. 클락은 사이보그의 정의에 관한 기존 관점을 뒤집는다. 인간의 두뇌는 비-생물학적 자원(기계장치)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전자기기의 비중이 커지는 세계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클락의 주장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산소와 같이 컴퓨팅이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투명해진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내추럴-본 사이보그2003년에 나온 책이다. 책 속에 소개된 전자기술들은 거의 상용화되고 있다. 손에 늘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네트워크에 연결한다. 생각만으로 컴퓨터와 로봇 팔을 제어하는 장치는 기대해볼 만하다.

 

인류의 미래가 생물학적 완결성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오랫동안 인류의 진화를 가로막았던 자연재앙과 환경파괴, 질병과 노화 등 신체적 한계 등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기계와 공생을 이뤄나갔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밝힌 대로 인간의 두뇌는 외적인 조절자. -생물학적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변화시킬 줄 안다. 그러므로 인간과 기계의 융합이 더욱 강해질수록 두뇌는 능동적으로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사이보그상태로 전환한다. 이미 우리는 아주 낮은 단계의 사이보그인 셈이다.

 

클락은 사이보그가 활성화된 미래 사회에 초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논하면서도 장밋빛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상한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과 활동성을 지닌 사이보그 등장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현실화되는 데는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컴퓨터의 처리 성능이 획기적으로 빨라지면 인간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속도가 뒤처질 수 있다. 우린 최근에 인간의 사고능력을 가뿐히 넘어선 알파고의 우월한 존재감을 지켜봤다. 그래도 아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위험하거나 일상적 반복적인 일을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더욱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인간 중심적인 기술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정보기술의 휘황찬란한 베일 뒤를 들여다볼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먼 미래의 일처럼 여긴다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린 처음부터 사이보그니까 괜찮다. 우리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휴대용 인공지능스마트폰을 포기 못 하면서 알파고의 등장에 벌써 두려워하면 되겠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맥(漂麥) 2016-04-1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이와 사이보그... 접근이 아주 신선합니다.^^
생체 재료를 활용한 생명 연장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할 것이고, 그걸 어떻게 보편화 시킬 것인가가 관건이지 않난 싶습니다. 아무래도 빈익빈 부익부의 재판일 듯해서요...^^

cyrus 2016-04-16 16:12   좋아요 0 | URL
책의 저자가 사이보그가 보편화된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두루뭉술하게 낙관적인 전망을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사이보그가 상용화되더라도 빈익빈 부익부 문제는 생길 겁니다. 지금부터가 제일 중요합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에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래에 대해서 심도 있게 전망해야 할 시점입니다.
 

 

 

 

 

 

 

르네 마그리트 가짜 거울』 (1928년)

 

 

 

눈꺼풀 형체 안에 둥그런 안구가 있다. 그런데 다시 보면 그것은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다. 이 눈은 하늘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이 눈에 보이는 것일까. 눈이 하늘로 인식하는 순간 실제로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하늘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가짜 거울(Le faux miroir)이다.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보려 했던 의식을 벗어날 때 겪게 될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면을 부각하려고 마그리트가 가짜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일 수도 있겠다. 마그리트는 그림으로 일상적으로 훈련된 인식의 틀을 바꾸려고 했다. 그는 자연 질서를 무시한 채 사물들을 엉뚱하게 배치한다. 낯설게 정지된 그의 그림은 관람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과연 시각이 느끼는 실재의 정체가 무엇이며, 회화를 통해 사람들이 과연 실재를 보고 있는지 질문하게 한다.

 

 

 

 

 

 

 

 

 

 

 

 

 

 

 

 

 

 

흔히 사람들은 보는 것이 전부이고 봤기에 옳다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고, 아는 만큼 본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착각을 안겨줄 위험을 내포한다. 수용자의 의식에 의해 보이는 것이 실체가 다르게 망막에 맺힐 수도 있다. 여기서 수용자의 의식은 외부에서 주어진 문화적 산물을 의미한다. 발터 벤야민은 인간의 감각지각이 사회적 영향에 받아 변화하기 쉽다고 말했다. 우리가 보고 믿는 실재는 이데올로기나 관습, 문화 등 요소가 어우러진 프리즘에 굴절되면서 가공된다. 자유로울 것 같은 우리의 의식조차도 이미 외부조건들에 길들어 있다. 우리가 당연한 실재라고 봤던 것이 사실은 아주 유동적이며 가변적이다. 결국 눈은 외부조건들을 수동적으로 반사하는 거울과 같다.

 

오늘날 세계는 이미지 폭주 시대이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세계는 급속도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지는 즉각적·직관적으로 감정과 현상을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현대의 소통 문화는 문자 텍스트에서 이미지 텍스트로의 권력 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 텍스트로 구축된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 진중권은 이 현상을 미디어 아프리오리(a priori, 선험적 형상)’라고 규정한다. 우리 일상에 침투하는 미디어의 힘을 톺아보면 미디어에 갇힌 눈의 실체가 드러난다.

 

보드리야르는 허구의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한다고 했다. 광고는 하나의 상품에 현실과 상상이라는 이중적 존재를 부여한다. 광고를 받아들인 소비자의 눈은 만족과 쾌락을 얻는 환상을 바라본다.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가 역전되면 실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위성방송을 통해 전쟁 뉴스를 바라보는 시청자는 전쟁을 스포츠 경기처럼 관람한다. 뉴스 화면의 이미지는 전쟁을 컴퓨터 게임처럼 만든다. 사라지는 것은 전쟁터에 흥건한 피와 병사들의 아비규환이다. 전쟁을 관람하는 시청자는 병사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보고 바로 느끼는 이미지가, 읽고 깨닫는 문자 텍스트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지의 범람은 현대인에게 참을 수 없는 사유의 경박함을 안겨줬다. 미디어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이미지가 난무할수록 현실의 본질은 흐려진다. 사유가 없는 이미지는 조작, 거짓, 착각의 위험이 있다

 

 

 

 

 

※ 진중권의 《미디어 이론》 책 앞날개의 저자소개에 있는 책 제목 오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4-15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5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