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양쪽 다 언론에서는 아쿠타가와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했고, 주위 사람들도 수상을 기대한 모양이지만, 앞서 말한 그런 이유로 나로서는 수상을 놓친 덕분에 오히려 안도했을 정도입니다. 나를 떨어뜨린 심사위원들의 기분에 대해서도 ‘뭐, 그렇기도 하겠지’라고 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원망스럽게 생각한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후보작과 비교해가며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 생각도 없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66쪽)

 

 

아쿠타가와상을 두 차례나 놓친 심정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하루키의 태도를 보시라. 하긴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았으니 두 번의 고배를 가볍게 잊을 수 있었나 보다. 하루키는 작년 11월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문학상’을 받았다. 하루키가 받은 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한다. 세계 아동문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최전성기 작가에게 수여한다. 칠순을 코앞에 둔 하루키는 지금도 젊은 작가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강한 놈이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오래 사는 놈이 강하다’는 말이 있다. 하루키는 ‘오래 사는 놈’에 가깝다. 하루키는 오랫동안 꾸준히 글 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하루키를 제쳐두고 뽑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만일 수상작이 번역되었으면 하루키의 소설과 한 번 비교해보고 싶었다. 아쿠타가와상(芥川償)은 1년에 두 번 시상한다. 즉 상반기(12월~5월)와 하반기(6월~11월)로 나뉜다. 일본판 위키피디아 ‘아쿠타가와상’ 항목에 들어가면 역대 수상작과 작가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1979년 7월에 발표되었다. 그러면 이 작품은 제82회 1979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 된다.

 

 

 

 

제8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은 모리 레이코(森禮子)의 《모킹버드가 있는 거리》(モッキングバードのいる町)다. 참고로 알라딘에 ‘모리 레이코’를 검색하면, 자수 전문가 ‘모리 레이코’의 책이 나온다. 《1973년의 핀볼》은 1980년 6월에 나온 소설이다. 제84회 1980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다. 수상의 영광은 오츠지 카츠히코(尾辻克彦)에게 돌아갔다. 수상작은 《아버지가 사라졌다》(父が消えた). 두 편의 수상작은 함께 묶어 1982년 태창문화사라는 출판사가 펴낸 적이 있다. 오래된 책이라서 헌책방에서조차 구하기 힘들다. 

 

 

 

 

 

 

 

 

 

 

 

 

 

 

 

 

 

 

 

 

 

 

 

 

 

 

 

오츠지 카즈히코는 작가뿐만 아니라 전방예술가로도 활동했다. 그가 미술에 눈길을 돌리면 카즈히코는 아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가 된다. 오츠지 카즈히코는 겐페이의 필명이다. 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볼 수 없지만, 본명으로 발표한 예술 분야 책은 네 권이나 번역되었다. 뜻밖의 발견이다. 무엇보다도 기분 좋은 사실은 다른 후보작과 비교해가며 이러니저러니 토를 다는 일을 하지 않게 돼서 다행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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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5-19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부분을 읽으면서 강자의 여유를 느꼈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노벨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낄까도 궁금합니다. 상에 얽매이지 않는건 물론 필요하지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는 상당히 스트레스 받으실듯해요.

cyrus 2016-05-20 16:15   좋아요 0 | URL
뭐 하루키 본인이 상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믿어야죠. ^^

2016-05-19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20 16:17   좋아요 1 | URL
다른 알라딘 이웃님들이 한강 소설의 번역에 대해서 이미 언급했지만, 번역이 문학상 수상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5-20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는 앞으로도 아쿠타가와상은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거기나 한국이나 파벌싸움도 있고, 심사위원의 고집이랄까, 곤죠랄까, 아마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cyrus 2016-05-20 16:23   좋아요 0 | URL
만약 제가 소설가였다면, 파벌이 주름잡는 문단에 발 딛기 싫어서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문학상을 당당하게 거부해서 더 유명해지는 작가도 있으니까요. ㅎㅎㅎ

보물선 2016-05-2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세계적인 독자를 확보한 하루끼가 그깟 상에 뭐 그리 연연하겠어요~ ㅋ (노벨문학상 한번 받아서 끄읕! 찍어주면 좋겠습니다만~)

cyrus 2016-05-20 16:24   좋아요 1 | URL
작가가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이 소설 한 편 쓰는 데 걸리는 긴 시간이 아니라 문학상 수상 발표일이 다가오는 시점일 것 같습니다. ㅎㅎㅎ

양사나이 2016-05-2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뭐랄까요. 하루키의 이런 태도 때문에 일본 문단에서도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마이웨이거든요. 하루키가 굳이 이 챕터를 쓴 건 상에 대해 오해가 너무 커져버려 정리를 하고 싶었나봅니다. 오랜 하루키 팬으로 이런 글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진 않네요. 그냥 쿨하게 무시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말이죠. 역으로 보자면 변명 아닌 변명처럼 보여지기 때문이죠. 이 부분 하루키 역시 알고 있을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쓴 하루키가 대단해보입니다. (역의 역으로 보자면)


제가 생각하는 하루키는 상에 대한 스트레스는 맥주 거품만큼 신경쓰지 않을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인간이거든요.

cyrus 2016-05-20 16: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문학상에 연연하지 않는 하루키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문학상에 대한 스트레스 없고, 심지어 글 쓰는 일마저 즐겁다고 했으니 하루키는 천상 소설가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6-05-20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110쪽)

˝하루에 원고지 20매씩 규칙적으로 쓴다˝는 하루키.

인터넷에서 본 글입니다. 존경스러운 점입니다.

cyrus 2016-05-21 17:05   좋아요 0 | URL
표현이 참 좋은데, 정말 실제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이 써질까요? 하루키의 능력이 부럽기만 합니다. ㅎㅎㅎ
 

 

 

동생이 일하는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독서지원금을 준다. 예전에 한 번 이와 관련된 내용의 글을 써서 밝힌 적이 있다. 독서지원금은 2만 원. 무조건 2만 원 이내 가격의 책을 사야 한다. 2만 원으로 책 두 권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책을 사고 나면 독후감을 써서 회사 인트라넷에 제출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독후감을 대신 써줬다. 독후감을 잘 쓴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동생이 카톡으로 회사의 독서지원금 제도가 변경된 사실을 알려줬다. 독서지원금 액수는 변경되지 않았지만, 고를 수 있는 책의 분야가 확 줄어들었다. 이번 달부터 요리 관련 책만 사야 한다. 웃긴 건 회사가 직원의 독후감 제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생이 요리책 독후감을 어떻게 쓸 것이냐고 말했다. 나는 ‘줌마체’로 쓰겠다고 대답했다.

 

 

줌마체는 전업주부들이 블로그, 육아 카페 등에서 사용하는 말투를 의미한다. 줌마체의 가장 큰 특징은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쓴 내용을 줌마체로 변경하면 이렇게 된다.

 

 

 

이번 달에도 울남푠이 회사에서 주는 독서지원금을 받았다고 하네요. 무조건 2만 원 이내 가격의 책을 살 수 있답니당~ 그래서 2만 원으로 책 두 권을 살 수 없어요ㅠ 흑흑 ㅠㅠ 아유~ 저는 왜 이리 책 욕심이 많은걸까용??? *^^* 책을 다 읽었으면 리뷰를 써야 해요. 제가 리뷰를 대신 써준답니다. 리뷰 잘 쓴 직원에게 뽀나스 주지도 않을거면서 왜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

 

 

에공~ 깜빡할뻔 했네요. 또 하나 중요한 사실!!! 이제부터 요리책만 살 수 있대요. 리뷰를 써야겠지만 마음에 드는 요리책을 살 수 있어서 넘 좋아요. 호호호 *^^* 요리책에 나온 음식 만들어서 울남푠이랑 딸램에게 제 실력 함보여줘야겠네요. 잇님들~ 제가 사는 요리책이 뭔지 기대해주세용~ *^^* 열씨미 읽고 리뷰랑 음식 인증샷 올릴께용~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용~~~!! 구럼 20000 총총~~ ^^

 

 

※ 울남푠 : 우리 남편

뽀나스 : 보너스

딸램 : 딸내미

함보여줘야겠네요 : 한 번 보여줘야겠어요

잇님들 : 이웃님들

 

 

어떤 이들은 줌마체가 오글거려서 싫다고는 하지만, 나는 줌마체를 좋아한다. 나도 모르게 줌마체를 따라서 읽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가끔 너무 과할 정도로 오글거리는 표현이 있지만, 딱딱한 문체보다 읽기가 편하다. 그런데 시험 삼아 줌마체로 글을 써보니까 은근히 어렵다. 줄임말을 쓰는 게 어색하다. 역시 나는 ‘아저씨’였다. 그나저나 요리책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난감하다. 사진까지 첨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알라디너 잇님들은 요리책 리뷰를 어떻게 쓰는지 참고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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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9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2만원가지고 요리책은 좀 약한데요.ㅎㅎㅎ요리책은 두껍고 사진이 많이들어가서 30000원되야.ㅋ 그런데 서평제출이라 아고.ㅎㅎㅎㅎ

cyrus 2016-05-19 18:19   좋아요 0 | URL
사진집을 읽으라고 하면 정성을 담아서 쓸 것입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16-05-19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줌마체가 글씨체를 먼저 떠올렸는데 그런 의미였군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모르는 단어도 있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하루되세요.

cyrus 2016-05-19 18:21   좋아요 1 | URL
주부들만 사용하면서 공유하는 줄임말이 엄청 많아요. ‘~체’로 시작하는 양식이 꽤 많습니다. 서니데이님, 편안한 밤 보내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잇님들 가내 평화가... ㅋㅋㅋㅋㅋ

cyrus 2016-05-19 18:22   좋아요 0 | URL
줌마체에서만 사용하는 재미있는 줄임말이 많습니다. 진짜 ‘잇님’은 대박입니다. 어떻게 ‘이웃’을 줄일 생각을 했을까요? ㅎㅎㅎ

stella.K 2016-05-19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책 사면 되는데...
근데 왜 요리책만 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짱나겠다.
근데 줌마체 웃기긴 하다.ㅋㅋ

cyrus 2016-05-19 18:24   좋아요 0 | URL
살 수 있는 조건이 엄청 까다로워요. 신간인데도 못 사는 책이 있어요. 그리고 중고책으로 살 수가 없어요. 독서지원금이 회사 내 서점에 주문해야 써야 되거든요. 진짜 짜증납니다. 차라리 이런 제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ㅎㅎㅎ

수이 2016-05-1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마체 난 싫던데;;;; 나도 모르게 줌마체 썼던 적 있나 뒤돌아보게 되네;;;

cyrus 2016-05-19 21:13   좋아요 0 | URL
카페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면 줌마체를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ㅎㅎㅎ

boooo 2016-05-1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재밌는걸요-

cyrus 2016-05-19 21:1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singri 2016-05-1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줌만데 줌마체 못쓰고

cyrus 2016-05-19 21:13   좋아요 0 | URL
아유~ 안 써도 됩니다. ㅎㅎㅎ

보물선 2016-05-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귀여우셔라~

cyrus 2016-05-19 21:14   좋아요 1 | URL
예상하지 못한 반응인데요. ㅎㅎㅎ

찔레꽃 2016-05-1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마체, 마음에 온기가 있어야 나올 것 같아요. 왠지 쉬울 듯 하면서도 쉽지 않을 듯...

cyrus 2016-05-20 16:27   좋아요 0 | URL
줌마체를 잘 쓰려면 친근감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

감은빛 2016-05-2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마체가 뭔가 했더니 인터넷에서 자주 접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투로군요.

어제도 누군가랑 얘기하다가 인터넷 상에서 읽는 글의 상당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더니, 오히려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구요.

잇님들은 이 글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단어군요.

cyrus 2016-05-21 17:06   좋아요 0 | URL
젊은 사람들이 주부들의 줄임말을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이러다가 특정 세대만 사용하는 줄임말이 계속 생길 것 같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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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은 쇼다’. 우리나라 1세대 프로레슬러 故 장영철의 발언으로 우리나라의 프로 레슬링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WWE는 쇼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WWE는 아주 잘 짜인 쇼다. 트릭(trick)과는 다르다. 프로레슬링은 영화나 연속극처럼 자신의 배역에 따른 역할(entertainment)을 수행하는 것이다. WWE의 모든 경기의 승패는 경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있다. 하지만 이것을 문제 삼는 팬들은 거의 없다. WWE에서는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영웅을 등장시킨다. 악역을 하는 선수가 선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동료 프로 레슬러 선수와의 급작스러운 갈등으로 인한 배신, 혹은 현 WWE 회장인 빈스 맥마흔과 그의 가족을 직접 각본상에 포함하며 권력에 놀아나는 레슬러들 등 실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 펼쳐진다. 물론 그러한 모든 과정이 잘 짜인 시나리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팬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몸을 사리지 않은 선수들의 고난도 묘기에 열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프로레슬링 무대와 같다고 말했다. 소설가는 프로레슬러에 해당한다. 누구나 링 위에 오를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링 한가운데에 선 소설가는 다음 상대를 기다린다. “누구라도 다 올라오십쇼.” 그렇지만 링 위의 현장, 즉 문단(文壇)은 냉혹하다. 링이 널찍해도 거기에 올라오려는 소설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링은 포화 상태다. 소설가가 소설로 먹고살려면 끝까지 버티어 살아남아야 한다. 레슬링에 관심 없는 독자는 하루키의 표현이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짜고 치는’ 프로레슬링이 소설과 같다고 말하다니.

 

나는 하루키가 소설가의 세계를 아주 적절하게 비유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은 없다. 독자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렸다면 원고지에 옮겨 써 내려 가면 된다. 소설이 다 완성되었으면 문단의 링 위에 오를 준비한다. 자신의 소설을 독자들에게 알릴 절호의 기회다. 사각 링 주변에는 곧 무대에 등장할 선수를 기다리는 수많은 관객이 있다. 선수가 링 위에 올라서면 관객들은 열렬히 환호한다. 마찬가지로 독자들은 문단의 링 위에 들어서게 될 신진 작가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가 쓴 소설이 마음에 들면 찬사를 보낸다. 반면, 소설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야유를 한다. 아무리 유명한 선수라도 레슬링 경기가 지루하게 진행되면 실망한 관중들이 ‘우~~’하는 야유 소리를 낸다.

 

 

 

 

 

소설가의 세계는 ‘배틀 로열(battle royal)’이다. 배틀 로열은 레슬링 경기 방식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10명 혹은 20명이 동시에 링 위에 경기한다. 링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순간, 탈락한다. 탈락한 선수는 패자 대열에 합류한다. 배틀 로열의 승자가 되려면 동료 선수들을 링 밖으로 몰아내면서 끝까지 링 위에 살아남으면 된다. “자, 올 테면 얼마든지 오시죠.” 용기가 대범한 신진 작가는 자신이 배틀 로열에 당당히 우승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얼마 안 돼서 링 밖으로 떨어진다. 링 위에 끝까지 살아남은 승자의 선수에게는 ‘챔피언’이라는 화려한 영광이 주어진다. 문단의 링 위에 오래 살아남으면서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하고, 독자와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은 작가에게는 명예로운 ‘문학상’이 주어진다.

 

레슬러의 선수 생활은 길어봤자 평균적으로 10년이다. 그만큼 전성기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상대 선수들의 공격에 끄떡없던 튼튼한 육체가 점점 노쇠화되면 경기에 뛸 수가 없다. 운동 신경이 상당히 좋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하는 레슬링 선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설가의 전성기는 얼마나 될까. 하루키는 ‘소설가로서의 유통기한’을 10년으로 잡았다. 작가 생활 10년째로 접어들면 창조력이 감퇴한다. 이 슬럼프를 극복하려면 이전보다 더 나은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하루키가 말하는 ‘영속적인 자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항상 앞을 향해 나아가는 물고기처럼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소설가의 숙명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역설적인 말이지만, 소설 한 편 잘 쓰려면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야 한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작업이 몹시 둔해 빠진 일이라고 말한다. 소설가는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원고지 속으로 들어간다. 사각의 원고지는 작가 혼자만 올라서는 링이다. 문단의 링에 오르기 전 작가는 원고지 한가운데 앉아서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심한다. 여기에 대해서 하루키는 글을 지속해서 쓰려면 끈질기고 다부진 기본 체력을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전하는 하루키의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가의 링에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오래 버티는 건 아니란다.’ 그런데 정작 하루키 본인은 지금까지 소설을 쓰면서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문장을 만들 때가 항상 즐겁단다. 이 사람 뭐야, 무서워!

 

 

 

 

 

하루키를 프로레슬러로 비유하면 ‘WWE의 아이콘’ 존 시나(John cena)에 가깝다. 그는 경기에 쉽게 지지 않는다. 경기 우승 횟수가 많다. 그는 의료진조차 최소 6개월의 회복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을 내린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과 3개월도 안 돼 링으로 복귀한 적이 있다. 꾸준함의 대명사로 인정받은 존 시나는 헐크 호건을 이은 ‘WWE의 선역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프로레슬러 팬들이 만든 존 시나의 별명이 ‘존 나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존 나쎄’다.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소설을 쓰고 있다. 문단의 링 위에 서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하루키의 팬은 아니지만, 고독한 글쓰기를 놓치지 않는 그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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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05-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재밌게 읽고 갑니다. ㅎㅎ

cyrus 2016-05-19 15:59   좋아요 0 | URL
알라딘 북플에 진짜 재미있게 글 쓰시는 몇 몇 분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님, 마태우스(서민)님 블로그 즐찾 해두세요. ^^

보물선 2016-05-18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존나쎄^^

cyrus 2016-05-19 16:00   좋아요 0 | URL
띄어쓰기를 잘 해야 됩니다. ㅎㅎㅎ

수이 2016-05-1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팬은 아니지만 팬이었던 적이 있었는데_ 현역 작가라는 점에서 역시 존경심.

cyrus 2016-05-19 16:01   좋아요 0 | URL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열심히 쓰잖아요.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호빵 2016-05-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나쎄였군요 ㅋㅋㅋ

cyrus 2016-05-19 16:02   좋아요 0 | URL
하루키가 마라톤을 즐겨 하는 이유도 기초 체력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

yamoo 2016-05-18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의 문학상은 돌려먹기 같다는..^^;;
근데, 워째 하루키의 비유가 좀 거시기 하네요. 소설가는 1:100의 싸움이 아닌 거 같습니다. 누구나 복수로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루키가 비유로 든 그로레슬링은 녹다운 방식인 거 같은데..


어쨌거나 타이틀은 정말 재밌네요~ㅎ 존 나쎄..ㅋㅋ

cyrus 2016-05-19 16:08   좋아요 0 | URL
사실 이 글은 10% 부족한 서평입니다. 제가 약 빨면서 글을 쓰는 바람에 하루키의 표현을 제 마음대로 해석했습니다. 저는 하루키의 ‘프로레슬링’ 발언 의미를 경쟁 관계로 해석했어요. 그렇다 보니 뜬금없이 WWE, 존 시나 얘기까지 나오게 됐어요. 그러니까 하루키는 링 위에 혼자 서 있는 레슬러(소설가)가 스스로 지쳐가는 과정을 알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

yureka01 2016-05-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문학은 타고난 글의 근육이 있어야 되더군요..ㅎㅎㅎㅎ

cyrus 2016-05-19 16: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양한 소재의 생각을 영양분으로 삼아 글의 근육을 만들어야합니다. ^^

비로그인 2016-05-18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로 초고를 쓰고 다시 일본어로 자신의 작품을 번역한다는 하루키의 집필방식이 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ㅜㅜ 진정 `존 나쎄`다니!! ㅎㅎㅎ

cyrus 2016-05-19 16:12   좋아요 0 | URL
그 내용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영어로 초고를 써서 다시 번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 지 궁금했어요. 정말 하루키는 대단한 능력자입니다. ^^

보슬비 2016-05-1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질투나요. 존 나쎄서...

cyrus 2016-05-19 16:14   좋아요 0 | URL
소설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쓰기가 어렵다고 말해 놓고선, 자기는 글쓰기가 힘들지 않다고 했으니 질투가 날 만합니다. ^^

transient-guest 2016-05-19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을 읽고 문단은 배틀로얄 같구나 했는데, 바로 쓰셨네요.ㅎㅎㅎ 하루키와 존 씨나...재미있는 비교 같습니다.

cyrus 2016-05-19 16:15   좋아요 0 | URL
간만에 약 빨고 썼습니다. ㅎㅎㅎ
 

 

 

어제 최측의농간 출판사로부터 새 책을 소개한 내용을 담은 자료를 메일로 통해 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출판사로부터 새 책 소식을 전해 듣는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새 책이 5월 25일에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여림이라는 이름의 시인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저는 알지 못하는 책에 침묵하겠습니다. 신간 소식을 먼저 알려준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에 나오는 책은 꼭 사겠습니다. 

 

글의 분량상 글 일부 내용을 부득이하게 뺐음을 알립니다.  

 

 

 

 

 

밤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꿈꿀 수 없듯이 침묵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말[詩]을 얻을 수 없다.

……

내가 지금, 왜, 침묵을 말하고 있느냐 하면, 침묵처럼 무섭고 슬프게 살다 간, 한 시인을 생각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인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를 몇 편 보내어 당선의 영예를 안았을 뿐, 그 이후 어떤 곳에도 작품 한편 발표하지 않았으며, 시인이라는 관사를 쓰고 어느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홀로 남양주의 작은 아파트에서 고독하게 살면서 밤마다 술을 마시고 골목을 배회하고 시를 쓰다가 죽었다. 뒤늦게 친구들이 찾아가 시신을 불태우고 재를 산과 강에 뿌렸다. 그가 여림이었다.

 

최하림, 「그는 왜 침묵을 살아야 했을까」 중에서

 

 

 

 

 

전화는 언제나 불통이었다. 사람들은

 

늘 나를 배경으로 지나가고 어두워진

하늘에는 대형 네온이 달처럼

황망했었다. 비상구마다 환하게 잠궈진

고립이 눈이 부셨고 나의 탈출은 그때마다 목발을 짚고 서 있었다.

살아있는 날들이 징그러웠다. 어디서나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고 목발을 쥔 나의 손은 수전증을 앓았다.

 

 

여림,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 전문.

 

 

 

계단 끝에 선 시인, 우리에게 여림은 무엇보다도 ‘응답 없음’의 시인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절실히 알 것이다. 시인 ‘여림’(본명 여영진)의 유고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2003, 작가)를 손에 넣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시집들이 그렇듯 초판조차 겨우 소진된 채 잊혀진 이 시집은 오히려 절판 후에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도서관에서도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라는 이 기이한 시집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그의 시를 알게 된 많은 독자들은 그러므로 유고시집에 실려 있는 작품들조차 제대로 접하기 어려웠다. 단지 누군가가 부분적으로 필사한 노트나 인터넷 공간의 한 귀퉁이에서, 혹은 어떤 시인들의 아주 짧은 글 토막에서 그의 시를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시들은 시인을 따라 닿을 수 없는 저편으로 발화해버린 것만 같았다.

 

 

여림은 등단 후에도 자신의 시들이 묶여 한 권의 시집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보지 못했던 시인이었다. 시인이 되고자 서울에 왔으나, 역설적으로 시를 떠나고자 서울을 탈출하였을 때, 세상은 그가 시인임을 알아주었다. 신춘문예를 다룬 한 칼럼에서 비평가 황현산은 시인이 스스로 자신을 시인으로서 자각, 선언하는 순간이야말로 한 인간이 시인으로 태어나는 가장 중요한 실존의 전환점이라고 쓴 적이 있다. 고독하게 살면서 밤마다 술을 마시고 골목을 배회하고 시를 쓰다가 죽었던 여림은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시인이었다. 스스로를 고독 속에 가둔 채 끈질기고 간절하게 시인으로 살다 떠났던 사람. 세상에, 시에 사로잡힐 때마다 여림은 늘 그보다 몇 발짝씩은 더 절망하였다.

 

 

여림 전집의 기획은 유고시집의 복간 계획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15년 가을이었다. 기획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유고시집에 묶이지 못했던 미발표 원고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 그 외에도 많은 자료와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복간 계획은 자연스럽게 전집이라는 신간 계획으로 수정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잠들어 있던 다른 작품들을 한 편이라도 더 읽어 보고 싶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 경험을 전하고 싶었다. 유고시집에 포함되지 않았던 원고 외에도 적지 않은 분량의 잠들어 있던 원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오랜 협의와 원문 대조, 편집, 교열 과정을 거쳐 여림 유고 전집의 출간 작업은 구체화 되었다. 그의 시를 더 읽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은 기다리고 찾다 지쳐, 서서히 그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책에는 무엇보다 그를 기억하고 그의 시를 한편이라도 더 만나고 싶어 했던 어떤 사람들에게 기쁜 놀라움을 전하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다. ‘안개 속으로 걸어간’ 시인 여림을 우리는 이제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간’ 시인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최측의농간에서는 미완성 상태의 짧은 단락으로 남아 있는 유작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을 시인 자신의 운명과 그를 추적하는 우리들 삶의 한 컷에 대한 중층 은유로서 전집의 제목으로 수습하였다. 여림은 응답 없음의 시인이 아니었음을, 그의 전집이 말해 줄 것이다. ‘살아가는 일로서만/모든 것들이 이루어지질 않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고민했던 여림이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이라고 썼을 때, 그는 이미 우리에게 응답하였다. 잡스러운 전파들의 공해 속에서 시인 여림을 수신하기 위하여 최측의농간은 안테나 하나를 간신히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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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8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18 20:24   좋아요 1 | URL
시인의 약력은 직접 시집을 사서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시가 뭐고?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시는 자기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글쓰기는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감추었던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시인은 몸을 감싼 외투를 벗어본다. 옷을 벗는 행위는 부끄럽다. 사실 글쓰기는 부끄러운 일이다. 감추었던 내면을 한 편의 글로 표현해서 수줍게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은 기교나 기술이 아니라 진심을 담는 것이다. 정신의 치유는 자기 안에 감춰진 자신을 찾아내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마다 치유과정은 조금씩 다를 듯하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치유하는 글쓰기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경북 칠곡군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이 지은 시집 시가 뭐고?를 들여다보면 글쓰기가 얼마나 훌륭한 치유의 도구인지 쉽게 드러난다. 자식에 대한 걱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회한도 털어놓는다. 그저 담담하게 지나온 일생을 돌아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꾸밈없이 써내려갔다. 화려한 기교와 인공조미료를 가득 뿌린 듯한 문장으로 멋 부리기 하는 시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맞춤법이 틀리지만,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은 할머니들의 입말이 시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헛둥지둥 왔는데

시를 쓰라 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시가 뭐고소화자, 55)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따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절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

 

(‘사랑박월선, 106)

 

 

할머니들에게 시는 자기 고백적 글쓰기다. 다른 곳에서 말하지 못한 경험들을 마음껏 풀어낸다. 가부장제 사회규범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사회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뉜다. 후자의 경험에 대해 여성들은 경험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결국 상처로 남게 한다. 이 때문에 시의 주된 소재가 가부장제 사회규범의 굴레에 벗어나는 내면의 성장이다.

 

 

어릴 적

산골짝에 남자아이들

학교 보내주고 여자들은

공부하면 남의 집에 간다고

보내주지 않았다 남동생

둘은 학교 가고

늦게 언니들은 서당에

갔다 나는 소꼴 베러 다니고

조금 베면 아버지 쫓아냈다

마을회관 한글 공부

내 눈을 뜨게 하고

흐리게 보였던 간판이

환하게 보인다

 

(‘한글 공부박후불, 51)

 

 

어린 시저레 초등학교 3학년예

아버님 살든 집을 다시 짓타가

다처서 병원에 수술을 밧게 댓다

병원생활 일년을 하다보니 엄마가

하신 말씀이 우리 분란이 학교 고마도라

우리집 살림을 사라야 댄다 여자은

공부를 안해도 댄다 하셨다

학교로 안 가니 너무 맘이 아파 밥도 안 먹고

누버서 우럿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대로 안됐다 울고 있으니 엄마가

아버지 병원 대원하면 학교 보내주겠다

그 말에 속았다 이레 속고 저레 속고

한평생 다 갔다

 

(‘이레 속고 저레 속고이분란, 59)

 

 

 

가부장제 사회의 남편들은 사회에서 꽤 근사하고 고상하게 알려졌지만, 그 아내들이 겪는 아픔이나 희생은 묻혀 있었다. 밝은 빛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와 같다. 남편이 집안 활동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가정일수록 아내가 겪는 아픔은 크다. 이런 아내로 살아왔던 할머니들의 내면은 치유할 게 많다. 적적한 산골에서 친구도 없이 살자니 누가 치유해주는 것도 아니다. 마음속에 드리운 그림자는 누가 대신 걷어주지 못한다. 스스로 걷어내는 수밖에. 할머니들은 시를 쓰면서 가슴속에 들어 있는 납덩이하나씩을 녹아 없앤다. 녹아내린 감정의 응어리를 로 주조한다. 시 쓰기는 상처받은 경험을 의미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경험과 자신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경험을 공유한 다른 할머니들의 공감이다. 할머니들이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할머니들을 향한 믿음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자신을 당당히 펼치기 위해서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쓴다. 그러나 치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글쓰기는 남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이 된다.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를 토해내지 않으면 그야말로 병이 된다. 말할 상대조차 마땅치 않을 때 글은 몹시 소중한 상대가 된다. 시 쓰는 할머니들은 과거 상처를 끄집어내어 핥고 어루만지고 보듬어간다. 지금까지 안고 있는 문제도 곰곰이 마음속으로 되씹으면서 안으로 소화한다. 이럴 때 시는 오랫동안 막혀 있던 마음을 뻥 뚫려주는 소화제가 된다. 할머니의 시 속에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여생을 건강하게 보내려는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시는 아픔의 상처를 다른 느낌으로 재생한다는 뜻에서,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와도 같다.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면 오랫동안 외롭게 내면의 치유에 집중한 그 힘이 조금씩 가슴 속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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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6-05-1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힐링이 되는 듯 합니다 ^^

cyrus 2016-05-18 16:21   좋아요 0 | URL
여태까지 읽은 시집 중에서 가장 마음 편하게 읽었습니다.

singri 2016-05-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레속고 저레속고 ㅡㅜ

cyrus 2016-05-18 16:21   좋아요 0 | URL
이 시가 가장 슬펐습니다. ㅠㅠ

쪼님 2016-05-17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6-05-18 16:22   좋아요 0 | URL
긴 내용의 글을 북플로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yureka01 2016-05-17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억눌린 마음이 많았을까요.ㅠ.ㅠ

cyrus 2016-05-18 16:23   좋아요 1 | URL
할머니들은 속마음을 얘기 안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가 가족들이 눈치 볼까 봐 그냥 꾹 참고 있는 것이죠. ㅠㅠ

비로그인 2016-05-18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ㅜㅜ

cyrus 2016-05-18 16:24   좋아요 1 | URL
재미있는 시뿐만 아니라 좀 슬픈 내용의 시도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8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은근 진국이죠..ㅎㅎ

cyrus 2016-05-18 16:2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생각했던 시의 정의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