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을 읽으면서 오히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내가 이 책에서 잃은 것은 시간이다. 논어 국역본 두 권과 같이 읽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의 역자는 논어의 문장을 아주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다. 사이토 다카시의 일본 원서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으로 추측한다. 역자가 논어 인용문을 번역할 때 논어 국역본을 참고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논어와 같이 해석이 분분한 책의 한자 원문을 우리말로 옮기려면 당연히 국역본을 참고해야 한다. 논어를 번역한 김원중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도 중국학자가 번역한 논어 텍스트까지 참고했음을 밝혔다. 김원중 씨는 지금까지 나온 다양한 해석의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논어 문장을 설명했다. 그래서 논어 비전공자가 논어나 일본학자, 중국학자가 쓴 논어 입문서 번역에 손을 대면 의심을 하면서 읽어봐야 한다. 논어 문장을 옮기고 해석하는 과정에 역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도 이러한 오류의 함정에 피하지 못했다. 그는 공자가 시(詩)의 효용의 장점을 강조한 대목을 근거로 공자가 실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사이토 다카시의 책에 나오는 논어의 문장이 바르게 번역되었는지 검토하기 위해서 김원중의 《논어》와 이을호의 《한글 논어》(올재 셀렉션스)를 참고했다.

 

 

 

[원문]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제5편 공야장 8장)

 

 

* 자로가 대국에서 군사를 훈련시킨다면 훌륭하게 해낼 테지만 ‘인’을 갖추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이토 다카시, 169쪽)

 

* 유(자로)는 천 대의 수레를 낼 수 있는 나라에서 세금을 관리하는 일을 시킬 수 있을 정도이나,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원중 99쪽)

 

* 제후국의 국방장관쯤 됨직하지만, 사람답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을호 75쪽)

 


노나라의 재상 맹무백이 공자에게 자로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이에 공자는 자로를 솔직하게 평가했다. 원문의 ‘賦’(부세 부)를 직역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재정 담당 업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賦’에는 군정(軍政)의 의미도 있다. 

 

 

 

[원문]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제8편 태백 12장)

 

 

* 오랫동안 학문을 했으면서도 벼슬길을 탐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이토 다카시, 85쪽)

 

* 3년 동안 배우고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김원중, 157쪽)

 

* 삼 년 공부에 벼슬 뜻이 없는 사람은 손쉽게 찾아내기 어렵다.
(이을호, 131쪽)

 

 

공자는 3년 동안 공부해서 벼슬에 오른다고 해도 학문을 제대로 익혔는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벼슬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학업에 정진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원문]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제9편 자한 13장)

 

 

* 자공이 공자에게 관직에 나가 일할 뜻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이렇게 빗대어 질문했다.
“여기에 아름다운 보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후한 값을 쳐주는 사람을 찾아가 파는 것이 좋을까요?” (사이토 다카시, 53쪽)

 

* 자공이 물었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으면 궤에 넣어 보관하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김원중, 170쪽)

 

* “아름다운 구슬이 여기 있다면 궤 속에 감추어 둘까요? 좋은 장사치를 찾아서 팔까요?” (이을호, 146쪽)

 

 


자한은 스승이 벼슬을 하지 않는 태도와 관련해서 비유적인 표현을 쓰면서 질문했다. 김원중과 이을호는 원문의 ‘賈’(값 가, 장사 고)를 ‘상인’으로 번역했다. 다만, 두 사람이 번역한 ‘장사’의 의미에 차이점이 있는데, 이을호는 상인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을 썼다. 사이토 다사키(혹은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역자)는 원문의 ‘賈’를 ‘價’(값 가)와 동일한 단어로 보고 ‘좋은 가격을 쳐주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김원중은 이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원중은 공자가 장사치와 비슷하게 보는 해석을 부정적으로 봤다. 본인의 해석과 모순된 입장이다. 다른 해석을 부정적으로 보는 김원중의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문]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제17편 양화 7장)

 

 

* “나는 쓰디쓴 참외가 아니다. 그저 매달려 있기만 할 뿐 아무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 열매가 아니니 나를 써줄 사람이 있다면 내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사이토 다카시, 58쪽)

 

* “내가 무슨 썩은 조롱박이더냐? 어찌 매달아놓기만 하고 [물 한잔 떠서] 먹을 수도 없단 말이냐?” (김원중, 317쪽)

 

* “나는 어찌 조롱박이던가? 대룽대룽 매달려서 먹지도 못하고 물건인가?” (이을호, 293쪽)

 

 

공자는 속된 충동에 타협하지 않으려고 벼슬을 피하는 자신의 신세를 ‘쓸데없이 매달린 조롱박’으로 비유했다. 원문의 ‘匏瓜’(포과)는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덩굴식물 열매 ‘박’을 뜻한다. 그런데 사이토 다카시의 책에는 ‘참외’로 잘못 번역되었다. 참외의 한자어는 ‘甘瓜’(감과), ‘甛瓜’(첨과), ‘眞瓜’(진과)다.

 

 

 

 

 

 

‘쓰디쓴’이라는 표현도 원문과 맞지 않다. ‘豈’(어찌 기)와 ‘苦’(쓸 고)의 형태가 닮아서 해석하는 과정에 혼동하기 쉽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lummii 2016-07-1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읽기는 해석이 천지차이이니 초보라도 꼭 원서로 봐야할 것 같아요 . 그래서 아직 시작도 못한 1인입니다저는..ㅋㅋ

cyrus 2016-07-13 16:55   좋아요 0 | URL
김원중의 논어에는 다른 학자들의 해석을 주석으로 소개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글쓰기 방식입니다. 저도 논어를 여러 번 봐도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만큼 오독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

yureka01 2016-07-1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설이 차이가 있었네요..ㄷㄷㄷㄷ

cyrus 2016-07-13 16:58   좋아요 1 | URL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논어 전공하는 학자들도 논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논어 한 권 독파했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 있으면 100% 믿어선 안 됩니다. ^^

아무 2016-07-1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주로 접한 논어는 어릴 적 최인호의 유림을 읽으면서였는데, 차이가 많이 나네요 ㅎㅎ 집에 가서 비교해봐야겠습니다...

cyrus 2016-07-13 16:59   좋아요 0 | URL
번거로운 일입니다.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고전 원전은 정말...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더군요..

cyrus 2016-07-13 17:02   좋아요 0 | URL
고전 좀 읽었다고 잘난 척하면 안 되겠어요. 꼴랑 한 권 다 읽은 자신감 믿고 전공자에게 덤비다가는 들통 납니다. ^^
 

 

 

논어는 정말 어려운 책이다. 번역이 잘 된 논어 한 권을 독파했어도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동양학자가 국내에 나온 논어 대부분이 왜곡 번역되거나 해석되고 있다고 주장할 정도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논어가 차지하는 위상이 중요한 만큼, 번역을 둘러싼 논란이 없을 수 없다. 특히 논어를 읽으면서 주희의 해석에만 의존했던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지금도 논어의 일부 구절은 제대로 풀이하기가 쉽지 않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논어 한 구절을 이해하려면 중국 학자와 일본 학자들의 주석까지 참고해야 한다.

 

논어 읽기가 어려우면 논어를 쉽게 소개한 입문서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논어 입문서를 고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입문서를 쓴 저자 약력을 살핀다. 논어와 같은 동양고전을 연구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고 읽을 만하다. 간혹 새로운 접근으로 논어를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럴 때 다른 학자들의 입장과 비교하면서 본다. 원전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입문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이 나면 원전을 꼭 읽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요약본이나 입문서는 잊어버리기 쉬우니 꼭 원전을 찾아 읽으라고 했다. 논어를 전공한 적 없는 저자가 펴낸 입문서는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읽어야 한다. 이런 저자는 논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논어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맥락을 잡은 입문서는 고전을 억지로 끼운 경박한 처세론과 다를 게 없다.

 

 

 

 

 

 

 

 

 

 

 

 

 

 

 

  

 

일본의 독서전문가, 다작 활동하는 작가로 알려진 사이토 다카시도 논어를 다룬 책 한 권을 펴냈다. 놀랍게도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원제는 논어력’)은 올해에 아홉 번째로 나온 사이토의 책이다. 이번 달에 나온 타 출판사의 번역본 두 권까지 포함하면 올해에만 출간된 사이토의 책이 무려 열한 권이나 된다. 책 앞날개의 저자 소개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이 책에서는 최고의 고전 논어를 독자들이 좀 더 쉽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사이토 다카시-글쓴이 주)이 직접 논어를 읽으면 깨달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자칫 단편적이고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듯 보이는 논어에서 연결의 힘을 발견하게 되고, 마침내 생동감 넘치는 논어의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딱 이 내용만 보면, 사이토의 책이 믿고 읽을 수 있는 논어 입문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이토는 저자 서문에서 원문을 몇 번 반복해서 읽을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논어를 해석한 사이토의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결국 원전과 다른 입문서도 참고해야 한다. 원전을 읽어보지 않은 채 저자의 명성만 믿고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독서는 논어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심어질 수 있다.

 

 

 

 

 

 

 

 

 

 

 

 

 

 

 

 

 

사이토는 논어, 즉 공자가 생각하는 학문이 실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생각하는 실학이 조선 시대 실학과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선 시대의 실학은 유교 기반 사회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는 학문이었다. 일본의 실학자들도 조선 실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서구의 과학기술 수용을 강조했다. 다만 조선의 실학과 차이점이 있다면, 조선의 실학이 민생안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일본의 실학은 민중 계몽에 가깝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정부의 역할에 의지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국민 개개인의 독립된 정신을 함양하는 실학 교육을 표방했다.

 

사이토는 공자가 시 읽기의 효용성을 논하는 대목이 논어의 실학 지향적인 면이라고 주장한다.

  

 

시를 읽으면 감성을 갈고닦을 수 있으며 인격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말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여기서 매우 실학적이라고 여겨지는 말은 바로 멀리 군주를 섬길 때도 도움이 된다는 부분이다. 이는 곧 시를 읽는 것이 실무와 직결된다는 말이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83)

  

 

나는 사이토가 유키치의 학문을 권장함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 든다. 유키치는 학문을 권장함이라는 책에서 유학과 봉건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만약 유키치가 살아 있었으면, 시 읽기가 실무로 연결된다고 주장하는 사이토의 실학에 기가 찼을 것이다. 유키치는 시를 잘 짓는 선비는 생활력이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유키치가 시를 잘 읽는 선비들이 실무에 능할 거라고 좋게 봤을까?

  

 

예로부터 선비들 중 생활을 능숙하게 꾸려나가면서 시를 잘 짓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시를 잘 지으면서 장사까지 잘한다는 상인의 이야기도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 학문을 권장함15)

 

 

유키치의 냉정한 생각 속에는 시 읽기와 작문에 몰두한 선비들의 현실성 결여를 문제 삼고 있다. 유키치의 실학은 실용성을 강조하는 학문을 넘어서서 과학의 의미까지 포함된 양학(洋學)으로 봐야 한다. 사이토는 단순히 실용성이라는 이유만 가지고 논어가 실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애초에 논어의 실학적인 면을 강조하려면, ‘유키치의 실학을 언급하지 않아야 했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에 인용된 논어 구절을 논어 원전과 비교하면서 읽어봤는데 번역이 잘못된 문장도 있었다. 논어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쓴 논어 입문서의 한계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내일 이어서 소개하겠다. 아무튼,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은 논어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6-07-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양반 또..... 아....

cyrus 2016-07-12 17:42   좋아요 1 | URL
‘양반’이라면 사이토 다카시를 말하는 거죠? 한국에 김병완이 있다면, 일본에는 사이토 다카시가 있습니다. 연말에 올해 펴낸 김병완의 책의 수와 올해 번역된 사이토 다카시의 책의 수를 결산해봐야겠습니다. ㅎㅎㅎ

루쉰P 2016-07-1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막판에 이 책은 제공을 받고 리뷰를 썼다는데서 빵 터졌네요 ㅋㅋ 이렇게 쓰셔도 되는거에요? ㅋ 출판사에서 책 괜히 줬다고 할 것 같아요 ㅋㅋ 그래도 이렇게 소신껏 쓰는 모습 좋네요 ㅋ 후쿠자와 유키치는 인간적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ㅎ 그의 인생을 보면 감동적이라 할까요 그런 걸 느껴요 ㅎ 논어를 읽는 방식은 마치 불교 경문을 연구하는 과정과 흡사하네요 경논석이란 말이 있듯이 석존의 경문에 훌륭한 대사가 논을 하고 또 그 논을 해석한 석이 있듯이 지금의 논어도 그런 식으로 읽어봐야 하나봐요 정말 공자가 말하고자 싶던 것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ㅎ

cyrus 2016-07-13 15:26   좋아요 0 | URL
독자에게 서평도서를 제공하는 출판사의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출판사가 서평도서를 무료로 받는 독자들이 칭찬 일색의 서평만 쓸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서평도서를 읽게 될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 솔직하게 책의 장단점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쓰기는 전문 서평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독자도 충분히 다른 독자에게 책을 권하거나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이게 능동적인 독서인거죠. 출판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더라도 책의 문제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독자들이 책을 고를 때 판단하기 쉬워집니다.

옛날 선비들처럼 논어의 문장을 하나하나 해독하듯이 읽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사실 고리타분하게 느껴져요. 현실에 맞게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을 저도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유의 의미가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오독이 많아요. 특히 동양고전 같은 경우가 그래요. 저도 오독의 위험에 빠질까봐 노자, 장자 같은 책에 대해서 언급을 못하겠어요. ㅎㅎㅎ


초딩 2016-07-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어 책으로 장바구니에 담기 직전 내려놨습니다 ㅎㅎㅎㅎ

cyrus 2016-07-13 15:26   좋아요 0 | URL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도서관에 빌려서 읽어보시고 판단하셔도 좋습니다.

2016-07-13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7-13 15:34   좋아요 1 | URL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논어 관련 책이 너무 많은데다가 제가 전공자도 아니라서 어떤 책이 가장 좋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 양자오의 <논어를 읽다>를 권해드립니다.


alummii 2016-07-13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추천하고싶지않다 쵝오! 잘못읽은줄알고 다시 읽었어요

cyrus 2016-07-13 15:35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단점을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유를 짧게 설명해주고, 읽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더 낫습니다. ^^

 
 전출처 : 책읽는정오 > 언니, 도서정가제 마음에 안 들죠? 책 싸게 읽으세요!

북플 가입 처음으로 `공유`라는 걸 해봅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거서 2016-07-1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공유는 유용한 기능이에요. 서재 먼댓글과 비슷한 것이라 여겼는데 써보니 달라요. 아직 북플에서만 지원되는 것 같아요. 북플이 서재에 미치지 못함에도 이런 기능은 돋보이네요.

cyrus 2016-07-13 15:38   좋아요 1 | URL
‘복사하기+붙여넣기’ 기능으로 스크랩하는 것보다 공유 기능이 간편해서 좋습니다. 북플 공유 기능은 좋게 봅니다. 그런데 제가 공유한 내용이 비공개로 전환했네요. 당황스럽습니다. ^^;;


오거서 2016-07-13 15: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봅니다. 공유의 부작용이네요.

yureka01 2016-07-1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값도 그렇지만 현대인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처지도 일간 이해 되더군요. 블로그에선 보이지 않았는데 북풀에 보이네요.

cyrus 2016-07-13 15:41   좋아요 0 | URL
공유한 출처의 글이 비공개로 전환되는 바람에 글 전체 내용을 다 못보고 말았습니다.
 
探書의 즐거움 - 오래되고 낡았으나 마음을 데우는 책 이야기
윤성근 지음 / 모요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제3회 세종도서 독서감상문 대회 출전작

 

 

정말 어렵다. 책을 가까이한 적 없는 사람에게 책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솔직히 나는 종이책의 앞날이 걱정된다. 그러나 아주 그런 것만도 아니다. 두툼한 부피감과 종이 냄새 없는 전자책이 과연 종이책만큼 매력적인 대상인지 살짝 의문이 든다. 종이책을 많이 접한 세대는 종이의 질과 결을 느껴가며 엄지와 검지를 써 책장을 넘길 때의 기쁨과 향기를 안다. 게으름을 맘껏 부리며 느릿느릿 읽어본 경험도 있다. 지금은 오히려 읽을 게 귀한 게 아니라 잘 안 읽어서 문제다.

 

새 책은 망각을 위해서, 헌책은 기억을 위해서 존재한다. 책들이 대형 서점에서 빠르게 사라질 즈음, 헌책방에서는 어둠 속에 쌓여서 특별한 만남을 기다린다. 헌책방은 유통기한이 끝난 책들의 공동무덤이 아니다. 헌책방은 책들을 숨 쉬게 한다. 헌책방에는 이런저런 사연들이 갈마들었다. 그 책 속에 담긴 오래된 사연들이 시간 속에서 증발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옛날에 좋아했지만 한동안 펼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펼치지 않을 책, 좋아하지만 잘 기억하고 있어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책, 괜찮은 책이지만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이 두루 손짓한다. 그런 책들이 돌고 돌면, 먼지에 파묻힌 책의 가치가 사람들의 손을 타며 두 배, 세 배가 된다.

 

《탐서의 즐거움》에는 책과 관련된 삶의 무늬가 시간의 축을 따라 새겨졌다. 추억 혹은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가 넘쳐났다. 손바닥 크기의 문고판 책을 들고 다니며 읽거나, 먼지 쌓인 헌책방에서 원하는 책을 찾아 헤매던 경험은 이제 공유하기 쉽지 않은 추억이 됐다. 옛날 책에 녹아든 삶의 이야기를 살려내는 작업에 그런 시간의 결이 보인다. 《탐서의 즐거움》에 소개되는 책들은 사람으로 치면 연세가 높은 고령자다. 나이 든 노인의 옷에 홀아비 냄새가 풀풀 풍기듯이 오래된 책에 퀴퀴한 곰팡내가 난다. 닳고 찢어져도 책 속에 있는 이야기의 힘은 팔팔하다. 《탐서의 즐거움》의 저자이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인 윤성근 씨는 헌책의 무한한 생명력을 감지했다. 표지를 조심스럽게 펼치면, 그 안에서 저자와 독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야기꽃이 활짝 피게 된다.

 

책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절판된 고은 시인의 소설 《일식》 초판을 찾아다닌 딸의 사연은 뭉클하다. 수소문 끝에 절판본을 손에 넣는 장면은 애서가의 심장을 뜨겁게 한다. 특히 헌책방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기쁨으로 벅찬 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직도 그 옛날 사소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헌책방이 존재하는 이유다. 헌책방은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장소다. 책을 찾으려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저마다의 추억은 발길을 헌책방으로 향하게 하는 끈끈한 강자성(强磁性)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뻔했던 책의 사연도 있다. 이런 책들은 좋게 말하면 ‘희귀한 책’, 조금 과장하면 ‘전설의 책’이다. 반면 작가 본인에게는 들춰내고 싶지 않은 ‘망작’, ‘괴작’이다. 박완서 작가는 생전에 이 한 권의 작품만 소설전집 최종 결정판에 포함하지 않았다. 1979년에 나온 《욕망의 응달》이다. 《욕망의 응달》 줄거리가 지금으로 보면 정상적이지(?) 않다. 김영하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소재로 무협소설 비슷한 작품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소설 제목은 《무협학생운동》. 작가 프로필에도 기재된 적이 없는 전설의 책이다. 작가 본인들은 불태워버리고 싶은 망작을 부끄럽기 짝이 없는 ‘흑역사’로 여기지만, 독자들은 헌책방 아니면 들을 수 없는 헌책 비사(祕史)를 좋아한다.

 

책이라는 것은 단지 지식을 알아가는 하나의 매개체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윤성근 씨는 책을 통해서 자신이 여태 모르고 살아온 삶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인생을 알고, 그 인생에 필요한 것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동반자다. 알고 싶은 것을 더 알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다. 이곳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옛날 지식을 잔뜩 쌓아 모은 낡은 저장소가 아니다.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지식이 아니라 종이책의 느긋함이 아닐까 싶다. 늘 새로운 정보에 목마르지만 그런 이미지를 장시간 들여다보고 있으면 멀미가 난다. 너덜너덜해진 책을 천천히 들춰보면서 그 속에 잊고 있던 정겨운 추억을 발견한다.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이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탐서의 즐거움》 158, 160, 161쪽에 ‘막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막장은 탄광의 맨 끝부분 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탄광 막장에서 일하는 상황을 ‘막장 인생’이라고 한다. 이 뜻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막다른 궁지에 몰린 상황에 ‘막장’ 표현을 많이 쓴다. 나도 한때 ‘막장’ 표현을 자주 썼다. 본래 의미가 왜곡된 채 부정적인 표현이 된 막장을 쓰는 것은 가장 뜨거운 곳에서 탄광가루를 마시면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실례다. 윤성근 씨가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라는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막장 표현이 왜 잘못되었는지 저자 스스로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07-11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갓 출간된 새책의 잉크와 종이 내음.
그리고 오래 묵어서 쿰쿰한 종이의 곰삭은 내음...
종이 질감의 촉...
그리고 멋진 생각이 깃든 아름다운 문장이
날개짓하는 느낌....
그리고 빈 여백에 느낌을 연필로 쓰는 소리들...

읽고 난 후의 오래 오래 여운이 퍼지는 심금....

이런거요...ㅎㅎㅎㅎㅎ

cyrus 2016-07-12 16:30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 행위를 시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정말 좋습니다. ^^

북깨비 2016-07-1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정보 감사합니다. 아 진짜 재밌을꺼 같아요. 😍😆😁

엇, 이분 `책이 좀 많습니다`를 쓰신 분이군요. 그 책 진짜 재밌게 읽었는데. 그전에도 그후에도 꾸준히 책을 내오셨다는거 오늘 검색해보고 처음 알았어요.

cyrus 2016-07-12 16:32   좋아요 1 | URL
헌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윤성근 씨의 책은 필독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책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끔 제가 헌책방에서 찾은 책을 소재로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데, 윤성근 씨의 글쓰기 방식을 많이 참고합니다. ^^
 

 

 

 

 

 

 

 

 

 

 

 

 

 

 

 

 

 

 

달만큼 인간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동반자도 그리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달은 오랫동안 시상과 임을 향한 그리움을 샘솟게 하는 것이었고 특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희망과 기원의 대상이었다. 고대인들은 달이 생명의 생멸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달이 차고 이지러짐은 사람의 정신과 연결된다고 여겼다. 보름달이 뜰 무렵, 인체는 정신적 장애가 생긴다는 속설도 있다. 루나틱(lunatic)은 원래 달에 중독되어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을 의미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알려진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주인공 가구야 히메는 달나라에서 지상으로 보내진 비운의 여인이다. 그녀는 8월 15일 달 밝은 밤에 승천했다. 승천하기 한 달 전부터 히메는 시름에 잠긴 채 달을 쳐다봤다. 주변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불길한 일이 생길 수 있다면서 히메의 달구경을 말렸다. 일본에서는 아주 밝은 달을 직접 바라보면 빨리 늙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달을 감상하는 행위를 기피했다고 한다. 달은 그저 달이라도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이태백에겐 달빛은 술맛 돌게 하는 낭만이지만, 일본인들은 마음 산란하게 하는 시름이었으니.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등장하는 유명한 요부다. 구약성서에는 헤롯왕의 의붓딸로 등장하는 데 헤롯이 반해 그녀를 탐하자 그녀는 조건을 달았다.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헤로디아가 세례요한(민음사 판본에는 요카난)의 목을 요구했다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와일드는 살로메를 첫눈에 요한을 사랑하는 관능적인 여인으로 그렸다.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손에 넣고 희열을 느끼는 장면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희곡의 후반부에 살로메와 헤롯왕을 중심으로 욕망과 감정의 충돌, 광기와 에로티시즘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희곡이 시작되는 관능적인 첫 장면이 많이 거론되지 않는다. 와일드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달의 불길한 징조와 죽은 여자(헤롯왕의 명령으로 살해되는 살로메의 미래를 암시하는 표현)와 연관 지어서 묘사했다. 희곡의 삽화를 담당한 오브리 비어즐리도 하늘에 비친 달을 죽음이나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불길한 대상으로 표현했다.

 

 

 

 

 

젊은 시리아인 : 오늘 밤에는 살로메 공주님이 유난히 아름다워!

 

헤로디아의 시동 : 달 좀 봐. 정말 이상해 보여! 꼭 무덤에서 일어나는 여자 같아. 죽은 여자 말이야. 꼭 죽은 것들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걸.

 

젊은 시리아인 : 과연 이상해 보이는군. 노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어린 공주 같아. 발이 은으로 빚어진 공주. 발이 아니라 자그마한 흰 비둘기가 달린 것 같아. 꼭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걸.

 

헤로디아의 시동 : 꼭 죽은 여자 같아. 아주 천천히 움직여.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147, 149쪽, 민음사)  

 

 

시리아인은 살로메를 보호하는 젊은 근위대장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에서 무기력한 존재다. 살로메의 관능미에 사로잡힌 포로다. 그는 살로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녀 주변을 맴돌면서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탐닉한다. 그러자 헤로디아의 시동은 살로메를 너무 많이 보면 시리아인에게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살로메가 우물 속에 갇힌 요한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자 시리아인을 그녀를 막아선다. 요한을 데려오라는 살로메의 명령까지 거부해보지만, 불길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살로메가 요한의 입맞춤을 시도하자 시리아인은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 헤로디아의 시동이 예감했던 대로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했다. 달, 즉 살로메의 첫 번째 희생자는 시리아인이었다. 근위대장은 살로메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로메를 향한 그의 사랑은 진실하지 않고, 건강하지가 않다. 시라아인은 살로메의 관능미에 중독된 루나틱이다. 살로메의 치명적인 육체와 욕망을 마음껏 탐닉하기 위해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다.

 

달의 주기와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는 이미 몇 차례 발표된 바 있다. 학자들은 보름달과 인간의 자살, 우울증 등이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름달이 뜨면 조수간만의 차가 커지고 기온이 약간 올라가 대기압은 떨어지지만, 이 같은 현상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소설과 영화에서 만든 불길한 보름달의 거짓 효과가 계속 증폭된 것일 뿐이다. 터무니없는 속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으면 진실처럼 느껴져 깨기가 힘들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봄. 2016-07-11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름달이 뜰 때 같이 조작업하는 남녀는 CC가 된다는 속설을 깨주고 졸업했지요. --;;

cyrus 2016-07-11 20:01   좋아요 0 | URL
야심한 밤에 남녀가 같이... ㅎㅎㅎ 그런 속설도 있었군요. 그런데 저도 왜 슬퍼지는 걸까요? ㅠㅠ

yureka01 2016-07-1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태백의 달이 제일 맘에 듭니다..술잔에 달빛을 마시는 거 ^^..

cyrus 2016-07-12 16:33   좋아요 1 | URL
달이 환하게 뜬 열대야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일이 현대의 풍류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