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yrus > 북플 하이퍼링크 기능 설정 오류

 

 

저는 작성한 글을 무조건 알라딘 서재로 접속해서 올립니다.

 

글을 쓰다 보면 출처를 밝히려고, 링크 주소를 남깁니다.

 

링크 주소가 정확하고, 하이퍼링크 기능에 맞춰서 설정했는데도

 

북플에서 하이퍼링크 기능이 구현되지 않는 현상이 생깁니다.

 

 

 

    

 

어제 작성한 글을 컴퓨터 또는 알라딘 어플로 들어가서 보면 하이퍼링크 기능이 됩니다.

제가 캡처한 사진에 보면 링크 주소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옮겼습니다.

 

주소를 잘못 적거나 하이퍼링크 기능 설정이 잘못되면,

정상적인 웹페이지 창이 뜨지 않습니다.

 

 

    

 

 

그런데 북플에는 하이퍼링크 기능 설정이 잘못 입력되어 나왔습니다.

하이퍼링크 드래그 범위가 에서까지 설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북플의 잘못된 링크 주소를 클릭하면,

표시할 수 없는 웹 페이지를 알리는 창이 뜹니다.

 

의 사진과 비교하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분명히 컴퓨터로 글을 올렸을 때

하이퍼링크 기능 설정을 올바르게 했습니다.

 

북플의 링크 주소가 잘못 입력된 걸 확인하면, 바로 수정할 수 없습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글은 북플 기능으로 수정할 수 없으니까요.

하는 수없이 다시 컴퓨터를 켜서 북플에서도 링크 기능이 잘 되는지 확인하면서 맞춥니다.

 

북플에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개선 부탁드립니다.

북플 기능이 알라딘 서재 기능과 동일하게 구현되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남아 있습니다.

 

사소한 오류들이 발생하는데도

북플이 알라딘이 자랑하는 최고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나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yureka01 2016-11-0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에서도 하이퍼링크 설정기능은 없더군요..또한 댓글 주소 링크 걸면, 주소가 짤리는 부분도 븍플에서 발견되더군요..몇번이나 재차 입력시켰지만,,,,링크주소가 안되더군요..웹에 링크가 안되는 인터넷 싸이트는 앙코없는 진빵같아서 ㄷㄷㄷ

cyrus 2016-11-04 14:08   좋아요 1 | URL
댓글 링크 기능은 북플이 나오기 전부터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북플이 페이스북만큼 서비스 제공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버그 안 생기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2016-11-04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4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슬람교를 따르는 중동에서는 발바닥과 신발 밑바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행위다. 과거 서양에도 발과 관련된 금기가 있었다. 여인의 맨발은 동침의 의미로 간주하여 금기시했다. 그래서 발을 그리고 싶은 화가들은 초월적 존재인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맨발을 그려 예술적 욕구를 대신 채웠다. 전설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이 무대 위에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춤을 추자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그때까지도 맨발은 금기였고 맨발을 보여주는 것은 스스로 창녀라고 선언하는 격이라 덩컨은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렸다.

 

 

 

 

 

 

 

 

 

 

 

 

 

 

 

 

 

 

 

 

 

 

 

 

 

 

 

 

 

 

맨발 한 번 그려서 곤혹을 치른 예술가들도 있었다. 카라바조는 길거리에서 만난 집시나 부랑자, 창녀의 초라한 모습을 성자나 예수의 모델로 삼았다.

 

 

 

 

교회 제단의 장식화인 『성 마태오와 천사』를 마감 기한 내에 완성했지만, 교회 측 인사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교회 측 인사들은 카라바조가 묘사한 성인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대머리 농부처럼 생긴 성인이 한쪽 발을 드러내놓은 자세가 불경스럽게 느꼈다. 하는 수없이 카라바조는 그림을 다시 그려야 했다. 카라바조는 항상 품 안에 칼을 지니면서 다녔고, 싸움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의 괴팍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거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교회는 수정된 그림을 받아들였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거절당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카라바조 이전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예수나 성인들의 맨발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예수』는 과감한 원근법을 이용하여 예수의 죽음을 묘사했다. 만테냐는 예수의 죽음을 종교적으로 미화하는 대신에 예수의 시체의 추함과 비통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예수의 양손과 양발에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이 보인다. 상흔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비극적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 만테냐의 원근법은 렘브란트의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에서 재현된다. 해부된 시체의 모습이 만테냐의 죽은 예수를 닮았다. 다만 렘브란트는 해부용 시체의 양발을 크게 그렸다. 이때 당시 해부용 시체는 교수당한 죄인들의 몸만 가능했다. 데이만 박사가 해부한 시체 역시 살아있을 때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의 하찮은 몸은 예수의 죽은 몸과 흡사하게 표현되는 영광을 누렸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는 탕아 앞에 잔뜩 허리 굽힌 아버지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 표정에는 온화함이 묻어난다. 낮은 자에게 허리를 굽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세상을 향해 은혜를 베푸는 예수의 사랑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자세가 인상 깊어서 그런지,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탕아의 맨발을 유심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재산을 탕진한 채 돌아온 아들은 너덜너덜한 누더기에다 밑창이 다 터진 신발하며, 행색이 남루하기 이를 데 없다. 이 그림에 영감을 얻어 책을 쓴 헨리 나우웬은 탕아의 망가진 신발이 가난에 찌들어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보게 되면, 만테냐의 『죽은 예수』의 묘사가 덜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제단화 가운데 그림은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왼쪽에는 마리아가 실신하여 요한의 품에 안겨 있고,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오른편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긴 손가락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세례 요한의 손가락에 주목한 관람객들은 충격적인 묘사를 확인한다.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시체처럼 예수의 몸은 처참하다. 특히 커다란 못이 관통한 예수의 양발을 볼 것.

 

 

 

 

 

 

 

 

 

 

 

 

 

 

 

 

 

컴퓨터 모니터에 그림을 확대해서 보는 것보다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 1》의 도판을 보는 것이 좋다. 그 책에 예수의 양발을 확대한 도판이 있다. 그뤼네발트는 피를 흘리는 양발의 상처를 극대화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에로틱한 발》의 저자 윌리엄 로시는 발이 남근을 상징하는 이유가 생명의 원천인 대지, 즉 어머니와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쿠르베의 『목욕하는 여인』은 마네의 『올랭피아』만큼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비평가들에게 비난을 받은 그림이다. 그들은 목욕하는 여인이 여신이나 요정이 아니라 평범한 여자라는 점, 그리고 옷을 입은 여자가 음란하게 묘사되었다고 지적했다. 옷을 입은 여자는 한쪽 발만 버선을 신었다. 버선을 신지 않은 맨발에는 흙이 묻어 있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맨발을 사실적으로 그린 쿠르베가 의도적으로 에로티시즘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들 눈에는 흙이 묻은 여인의 발이 상당히 에로틱하게 느꼈던가 보다. 흙이 묻은 맨발을 그린 쿠르베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쿠르베는 자연을 ‘어머니의 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의도가 담겨 있다면, 『목욕하는 여인』은 음란한 그림이라고 볼 수 없다. 쿠르베는 자신의 신념대로 목욕하는 천사가 아닌 목욕하는 여인을 사실적으로 그렸을 뿐이다.

 

 

 

 

 

 

 

 

 

 

 

 

 

 

 

 

 

 

요즘은 남녀노소 샌들을 신고 다닌다. 이제 샌들은 여름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샌들의 계절이 다가오기 전부터 피부 각질이나 무좀 흔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바닥 각질이 전체적으로 두꺼워져 허연 가루처럼 떨어진다. 발바닥이나 발가락 사이에 물집 형태의 무좀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발에서 나타나는 이런 신호들이 단지 청결하지 않아서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어머니들의 갈라진 발바닥은 한평생을 가족들의 바닥으로 살아온 거룩한 삶의 흔적이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다. 그들은 물집이 생기고, 발바닥이 갈라져도 아픔을 꾹 참은 채 생존의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 발은 에로틱하지 않다. 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숭고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곰곰 생각해서 발을 보시라.

 

 

 

※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s://www.wikiart.org/)에서 가져왔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11-0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발바닥에 실 꼬맨 발보니..움찔했습니다.ㄷㄷㄷ

cyrus 2016-11-04 11:57   좋아요 1 | URL
그럴 수밖에요. ㅎㅎㅎ

표맥(漂麥) 2016-11-0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을 보여주는 것이 스스로를 창녀라... 이 비슷한게 길거리에서 머리를 풀고 있는 여인을 매춘부로 보는 문화도 있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cyrus 2016-11-04 11:58   좋아요 0 | URL
부정적인 금기와 관련된 대상을 살펴보면, 제일 많은 게 ‘여자’입니다. 여자에는 이렇게 하지 마라는 식의 금기는 남자들이 만든 거죠. ^^;;

stella.K 2016-11-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유레카님 책에 저 사진이 있던가...? 잊고 있었다.ㅋ
알고보면 발이 참 많은 것들을 말해주긴 하지.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대벌이란 책에서
전족을 한 부인 발을 주인공이 좋아해서 밤이면
에로틱하게 만지곤 했다는 말이 생각났어.
그런데 실제로 전족한 발 보니 작아서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에로틱하다는 느낌은 못 받겠던데. 기형이잖아.


어렸을 땐 발이 나름 괜찮았는데 나이드니까 못 생겨지더라.
각질도 많고. 무좀도 좀 생기고.
에고, 불쌍한 내 발. 아껴줘야 하는데...ㅠ

cyrus 2016-11-04 15:50   좋아요 0 | URL
저는 발바닥에 땀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도 피부가 벗겨지고, 가려움이 심한 무좀에 걸리진 않아요. 하지만 겨울만 되면 각질이 잘 생겨요.

전족은 제 취향(?)은 아니에요. ㅎㅎㅎ 전족 때문에 작아진 발 사진을 보면
그저 아플 것 같다는 느낌만 들어요. ^^;;
 
여성들의 도시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10
크리스틴 드 피장 지음, 최애리 옮김 / 아카넷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여성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거나 이해되지 못해왔다. 과거 천 년 대부분 시간에서 남성들의 세계라는 점은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가?”라는 문제는 유럽 중세시대 때부터 논쟁거리였다. 중세는 기독교와 떨어져 설명되기 어렵다. 중세의 역사는 곧 기독교와 사회, 즉 양자 관계설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의 신학자 중 일부는 여성이 조물주의 형상대로 창조되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기사는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특권이 허용된 젊은 남자다. 중세의 기사들은 명예롭지 못한 기습공격이나 약자나 패자에 대한 학대와 살해를 금했다. 기사도란 영웅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품성으로 성실, 명예, 예의, 약자 보호라는 덕목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이 기사도 정신에 의해 존중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철저하게 보호 대상에 머물렀을 뿐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 오히려 중세 말 유럽의 여성들은 흑사병의 유행과 종교개혁이라는 대변혁의 시기에 희생양이 필요했던 권력자들의 마녀사냥에 휩쓸려 많은 수가 화형과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가 생가하는 중세의 이미지는 칙칙한 잿빛이다. 그러나 그 암울한 시대 속에 신념과 이상을 꿈꾸었던 여성이 있었다.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 이름이 생소한 인물이다. 그녀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중세를 암흑시대로 치부해버리고 있었다. 크리스틴은 남편과 사별한 뒤 재혼하지 않고 글로써 생계를 꾸려간 최초의 전업 작가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성장기와 결혼생활, 문필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 자기 삶의 기록을 자세히 남겨 중세 말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 인물이다. 그녀는 여성을 비하하는 풍조를 맞서기 위해 여성들만의 이상향을 책 속에 그려냈다. 그 책이 바로 《여인들의 도시》이다.

 

크리스틴은 여성의 본성과 행실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문헌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의 각성을 돕기 위해 이성 부인, 공정 부인, 정의 부인이 등장하여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누릴 만한 존재임을 천명한다. 세 명의 신들은 성경과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하고, 남성들에 의해 재생산되던 여성 비하 입장들을 반박한다. 신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크리스틴은 훌륭한 여성들만 모여 사는 요새 도시를 세운다.

 

《여인들의 도시》는 남성이 만들어 낸 중세의 권위에 도발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텍스트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다면 남성 중심적 시각을 완전히 해체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인들의 도시》는 페미니즘 고전 도서 명단에 자주 거론되지 못했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여인들의 도시》를 만들면서, 찾고 싶었던 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그녀가 찾으려 했던 길은 남성중심시대의 문제의식을 인식하면서도 새로운 여권의 공간을 향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한 해체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구성’을 형성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하나로 형성된 사유의 집합체가 바로 《여인들의 도시》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남성들의 텍스트를 선별하여 반박하는 작업은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도이다.

 

“시기심에서 여성을 헐뜯는 자들은 졸렬한 남자들로, 자기보다 더 뛰어난 지성과 훌륭한 품행을 갖춘 여성들을 만나보고 앙심을 품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란다. 그런 자들은 모든 여자들을 공격함으로써 자기보다 더 훌륭한 여성들의 명예와 평판마저 망가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이성 부인의 말, 제1부 8장 48쪽)

 

크리스틴은 글쓰기가 본질적 인간본성에 대한 보편적 발언이라는 믿음을 스스로 깨뜨렸다. 오히려 남성들의 글쓰기는 여성 자유의 파괴자로,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 고안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여겨졌다. 그녀의 글쓰기는 기존의 낡은 남성의 권위를 지적하고, 성경과 신화 속에 은폐된 이데올로기적 전략들을 폭로했다. 그래도 크리스틴은 중세 남성들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를 철저히 부정하면서도 여성을 생각하는 남성에 대한 믿음을 고수한다.

 

“모든 남자들이 위에서 말한 견해(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의 견해-리뷰 작성자 주)에 동조해 여자가 교육받는 것이 악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단다. 좀 더 현명한 남자들일수록 그러지 않아. 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남자들은 여자들이 교육받는 것이 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야. 왜냐하면 여자들이 자기들보다 더 많이 배우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공정 부인의 말, 제2부 36장 278쪽)

 

크리스틴은 글을 쓰고, 사고하는 확실한 방법으로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상을 전파했다. 설사 그녀의 이상이 끝내 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해도 그 행위는 메아리가 되어 계속 울려 퍼졌다. 《여인들의 도시》야말로 지금의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만들게 해준 생명력 있는 텍스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6-11-03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제 2의 중세 도래라고 볼 수도 있죠. 중세의 고딕 예술 풍조는 요즘 미니멀리즘과 비슷하기도 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 문제로 여성을 통제하려는 속셈은 동일. 중세에 마녀로 몰린 여성들이 돈있는 과부가 많아 교회에서 그걸 뺏으려 기획한 경우가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페미니즘 전투상황은 중세 마녀사냥과 비슷한 구석도 있죠. 당신이 마녀도, 페미나치도 아닌 걸 증명해 보아라! 같은...
남녀라는 이분법이 아닌 인간의 본성 측면에서 종합해보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yrus 2016-11-03 18:54   좋아요 0 | URL
크리스틴 드 피장이 살았던 시대에도 남녀 갈등이 첨예했고, 학자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피장이 지적했던 것들이 지금의 여혐 입장의 논리와 닮았습니다.

yureka01 2016-11-0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야말로 여성의 선구자였군요....^^.. 여성문제나 남성문제는 인간성, 즉 휴머니즘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봐야 하는데 성별의 대결로는 해결안되는데 말이죠..

cyrus 2016-11-03 18:56   좋아요 0 | URL
네.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 때 피장의 책도 같이 봐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과 신화가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11-03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생각합니다. 그나마 존중하는 척이라도 하는 사회가 나은건지 아니면 노골적으로 차별을 하는 사회가 더 나은건지.. 전투력향상을 위해서라도요~~
여자로 사는것이 좀 많이 고단한 사회입니다.. 그냥 인간이면 족 하지 않을까요? 남자나 여자나 돈과 권력앞엔 약자일수 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cyrus 2016-11-03 18:59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을 내세워서 여자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남자들이 있어요. 이건 페미니즘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고, 페미니즘을 악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남자들은 자신들이 여자들에게 잘해준다고 착각해요.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의 묘비명은 딱 세 마디다. “살고, 쓰고, 사랑했다.” 스탕달은 숨을 거두기 20년 전에 이미 자신의 묘비명을 만들었다. 원래 스탕달이 처음 생각해 낸 묘비명은 쓰고, 살았고, 사랑했다였다. 그런데 스탕달이 세상을 떠난 뒤에 사람들은 단어의 순서를 바꿨다. 단어의 순서가 달라져도 간결한 묘비명에는 작가 한 사람의 삶이 농축되어 있다.

 

 

 

 

 

 

박범신 작가는 성희롱 논란이 불거지자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사과문을 올렸다. 박 작가는 스탕달의 묘비명을 인용했다. 트위터리안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사과문을 삭제했다. 어느 정신건강 전문의가 박 작가의 사과문을 해석했는데, 두 가지로 나왔다. 첫 번째 해석, 작가 자신이 젊었을 때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번째 해석, 나이가 들면 성적 매력이 떨어지므로 여자들을 만나면 (성희롱으로 간주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결국, 자신이 오래 사는 바람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세기의 작가, 예술가들의 곁에는 늘 뮤즈(Muse)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면 남성 예술가와 여성 뮤즈를 많이 언급한다. 뮤즈가 예술가에게 창작의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특별한 존재로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남성 예술가들이 엉큼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찾는 남자들의 부속물’로 전락하기도 했. 박 작가를 포함한 문제 있는 남성 작가 및 예술가들은 자신의 성적 매력 발산을 뮤즈를 찾으러 다니는 순수한 예술가의 낭만으로 포장하고 다녔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르누아르는 생전 화가로서의 부와 명예, 자유, 그리고 남성적 욕망을 마음껏 누렸을 거로 생각한다. ‘행복을 화폭에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화가를 꼽으라면 르누아르라고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화려한 빛과 색채로 늘 행복을 담고 있다. 그 속에 세상의 시름이나 어둠을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르누아르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인물화와 누드화를 많이 남겼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 여성은 어린 소녀의 얼굴에 풍만한 여체로 묘사되었다. 지금으로선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지만, 르누아르는 만일 신이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화가가 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는 여성의 신체를 찬미했으면서도, 여성의 정신이 남성보다 낮은 수준으로 이해했다.

 

 

 

 

말년의 르누아르는 폐병과 류머티즘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손이 심하게 비틀려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우고 붕대로 고정시킨 채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절망과 분노가 아닌 행복으로 충만하다. 괴로운 일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서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유달리 장미꽃, 아이들, 그리고 여인들을 주로 그렸다.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이자 영화감독인 장 르누아르는 어린 시절에 바라본 르누아르의 아틀리에 정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집은 여자들로 가득했다. 어머니와 가브리엘 르나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하녀나 모델 같은 온갖 여성들로 해서 참으로 비남성적인 경향을 띠었다.” (장 르누아르, 예경 Art Classic 시리즈의 르누아르192)

    

 

르누아르는 전문 모델보다 가족과 친구 등 주위 사람들을 그리기 좋아한 화가였다. 특히 르누아르에게 가브리엘 르나르는 가장 중요한 뮤즈였다. 르누아르의 아내 알린의 사촌인 르나르는 둘째 아들 장이 태어날 무렵 르누아르의 집에 유모 겸 하녀로 들어왔다. 그리고 르누아르의 말년까지 모델을 했다. 심지어 그녀는 누드모델이 되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집에 사는 아내의 친척이 누드모델로 나섰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내는 남편의 작업 방식을 이해해줬을까? 르누아르에 대한 아내의 증언이나 일기 같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녀의 속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다. 물론 르나르가 르누아르의 예술적 열정을 이해하고, 누드모델이 되어주기를 흔쾌히 수락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뮤즈들을 단순한 남성 예술가의 연인으로 바라보는 건 편견에 치우진 착각이다. 하지만, 남성 예술가들이 뮤즈를 찾은 이유가 절대 예술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뮤즈라는 이름은 여성을 속박하는 언어의 감옥이 되기도 한다. 그때의 남성 예술가들이 강조했던 예술’은 남성의 어두운 욕망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변질된다.

 

 

 

 

[] <박범신 삭제 사과문 해석> (조선일보, 2016102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2125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16-11-02 2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느와르 생존 당시 그리고 그 이전부터 세습되어 온 시대 분위기에 기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남성과 여성은 성역할 뿐만 아니라 차별에 의해 존재감이 달랐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세 마녀사냥으로 여자들이 다수 희생되었어도 남자는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신분제도도 그렇고 초야권이 있었음은 상상하기 힘들지요 남자가 여자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는 시대였고, 그런 성차별 마인드가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시대였죠. 계몽시대라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따라 사람이 빨리 바뀌지는 않았을 겁니다. 안타깝지만요.

cyrus 2016-11-03 11:01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성차별이 암묵적으로 공인되는 시대 분위기 때문에 여기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천관우 주필의 말을 인용하자면, ‘연탄가스에 중독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남성들이 만들어 낸 연탄가스에 남성, 여성 모두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던 거죠. 그 상황 속에 용기 있게 저항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지만,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의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낡고, 잘못된 생각의 인습에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왜 이제야 뒷북 치냐고 따지는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됩니다.

2016-11-0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1-03 11:04   좋아요 0 | URL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누리기 위해서 약자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강자는 자신의 막강한 힘뿐만 아니라 편견과 차별을 동원합니다.

북프리쿠키 2016-11-02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우리는 왜 르누아르의 그림이 그렇게도 당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분노를 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의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스케치 풍으로 보이는 것이 경솔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예술적인 지혜의 소산이라고 어려움 없이 인식한다. 만약 르누아르가 각 세부까지 세세히 다 그렸다면 그의 그림은 진부하고 생동감없게 보였을 것이다. <서양미술사-521쪽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그림설명중>

밝은 색채의 즐거운 혼합물을 보여주고 쏟아지는 햇빛의 효과를 연구하고자 했던 인상주의자 르누아르네요.

특히나, 인상주의 그림을 감상할 때 몇 걸음쯤 뒤로 물러나서 보면 이러한 혼란스러운 색점들이 갑자기 우리의 눈 앞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생기를 띠게 되는 기적과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을 대중들이 알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네요.

싸이러스님의 르누아르 그림에 대한 리뷰를 보니 서양미술사에서 배웠던 부분을 다시 언급하여 기억에 남겨봅니다.^^;

cyrus 2016-11-03 11:08   좋아요 1 | URL
르누아르는 말년에 인정받아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르누아르는 자신의 그림이 살롱에 인정받고 싶어서 친했던 인상주의 화가들과 거리를 두었죠.

북프리쿠키님은 저보다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하시는군요. 솔직히 저는 <서양미술사> 521쪽을 읽어보지 않았어요. ㅎㅎㅎ

:Dora 2016-11-0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 트위터 계폭했어요.. 박진성 일 터지고 좀있다 줄줄이 나오니까 감당 안 되었겠죠...사실 저 트위터 내용도 꼴 보기도 싫음 역겨움

cyrus 2016-11-03 11:09   좋아요 0 | URL
박근혜, 박진성, 박범신. 요즘 박 씨가 문젭니다. ^^;;

처음에 올린 트위터 사과문이 수정된 사실을 확인했을 때, 진짜 어이가 없었습니다.

:Dora 2016-11-03 11:49   좋아요 1 | URL
저도 박인딩...;;;;

cyrus 2016-11-03 11:51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큰일 날 소리를 했군요. 문제 많은 세 명의 박씨 때문에 가만히 있는 박씨들이 피해를 받습니다...

:Dora 2016-11-03 11:53   좋아요 0 | URL
아녀요 잘못된 건 지적하고 고쳐야죠!! 나쁜 소수때문에 안그런 다수가 피해입는 오류도 없어야하구용

cyrus 2016-11-03 11:56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최 씨입니다. 그래서 최 모 아줌마가 싫어요..

책한엄마 2016-11-0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르누아르가 그런 사람이었군요.
박범신에 대한 정신과의사 분석이 참 인상 깊네요.
이번에 새로 출간될 예정이었던 유리라는 책 볼 일 없게 될까요?
박범신 작가님이 타계하시면 재조명될라나요?
고산자 대동여지도 영화도 그닥이었지만 박범신 작가 원작도 별로였어서 그닥 후기를 쓸 의지가 없었네요.백자평이나 간단히 남겨야겠어요.

cyrus 2016-11-03 11:14   좋아요 0 | URL
르누아르의 그림을 알아도, 그가 어떻게 살았고, 생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화가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들을 알 수 있습니다. ^^

저는 박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독자들 중에는 박 작가의 안 좋은 소식을 접했을 거고,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준다면 괜찮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모르거나 작가의 문제점을 강하게 부정하는 독자들이 문제죠. ^^;;

transient-guest 2016-11-03 0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욕망을 자리나 명예, 위치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폭력적으로 투사한 결과가 오늘의 박범신, 아니 한국 사회의 수많은 박범신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과는 직설적으로 미안합니다 하는 것이지 ~했다면 미안하다는 물러날 지점을 잡아놓은 사과행위지요. 추하게 늙지 않도록, 늙어서 하는 짓거리가 추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노력할겁니다...저렇게 되는 거 너무 싫어요..

cyrus 2016-11-03 11:17   좋아요 0 | URL
요즘은 사과문을 글로 공개만 하면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글로 표현한 사과문은 사과를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반성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저는 올해 사과문 비슷한 글을 한 두 차례 쓰면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무리 내용을 길게 써도, 제 진심이 온전하게 전해졌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부끄러워도 차라리 피해를 준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심성 2016-11-03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추행 파문을 일으키고 사과문이랍시고 스탕달이 말한 묘비의 내용을 인용하여 포장하듯 끄적인 자체가 역겹군요. 진정한 문호라면 자신 밥벌이로 써먹던 달콤한 포장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사과합니다. 등 직설적이고 진심 어린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과가 불특정다수를 위한 sns 보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 먼저 해야하는게 우선이 아닌가 싶군요. 박범신 작가의 은교를 볼때처럼 그 알 수 없는 스멀스멀한 불쾌감이 왜 드는지 알 것 같군요. 역시 창작물은 창조주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인가 봅니다.

cyrus 2016-11-03 19:02   좋아요 0 | URL
사과하는 자세가 잘못됐죠. 묘비명을 인용하는 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유식한 작가이니까 불미스러운 일과 전혀 관련 없다는 식의 뉘앙스를 드러내서 논란의 중심에 빠지려는 것이죠.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피터 멘델선드 지음, 김진원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지나친 독서로 실명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됐을 무렵이었다. 보르헤스는 노트도 없이 기억에만 의존해 문학에 대한 사랑을 내보였다. 그의 소설 쓰기는 독특한 상상의 산물이나 현상을 마치 실재했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든다. 상상과 사실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한데 모아놓고 독자들이 혼돈과 착각 속에서 삶의 현상과 본질을 탐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칼과 쟁기가 팔의 확장이라면,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말했다. 눈이 멀었으면서도 계속해 책을 사 모았던 그는, 독서를 향한 치명적 열정을 보여줬다. 책은 보르헤스의 존재양식 그 자체였다.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은 멀어진다.” 보르헤스가 인용한 괴테의 시구처럼 독서 행위는 실명의 진행 과정과 다르지 않다. 책은 상상의 여러 가능성을 보여준다. 독자는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경험의 총합이 무조건 진실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책은 상상의 공간, 즉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의 얼굴에 그리운 사람의 모습을 불러낼 수 있다. 소설의 이국적 장소를 친숙한 동네 모습으로 탈바꿈해서 볼 수도 있다. 때로는 문장 일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그냥 건너뛰어 넘어가기도 한다. 책 표지 전문 디자이너로 활동한 피터 멘델선드는 독서 행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누구나 당연하게 믿었던 책을 읽는 행위가 실제로는 책을 보는 행위에 더 가깝다고 확신한다. ‘책을 보는 행위에는 독자의 개인적인 기억과 상상력 등이 동원된다.

 

독자는 책 앞에 서면 장님이 된다. 두 눈으로 글을 보고 있어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눈으로 봤던 내용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

 

책읽기는 두 눈을 감은 세계와 비슷하다. 눈꺼풀 같은 막 뒤에서 일어난다. 일단 펼쳐놓은 책은 눈 먼 사람인 척한다. 두꺼운 표지를 넘기고 책장을 한 장씩 넘겨야 비로소 현상세계에서 나는 떠들썩한 자극을 봉쇄하고 상상은 날갯짓을 한다. (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76)

 

현실적인 세계를 드러내길 좋아했던 플로베르는 소설을 통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완성했다. 플로베르의 소설 속 문장과 단락은 스크린이 되고, 독자는 관객처럼 스크린 속 구체적인 현실을 경험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구절구절 문장을 씹어 먹었어도 독자는 소설 속 주인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마담 보바리의 결말은 책 안 읽는 사람들도 안다. 그러나 마담 보바리를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모두 보바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는 이레네오 푸네스(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주인공)가 아닌 이상 모르는 게 정상이다. 푸네스처럼 말에서 떨어지면서까지 기억력의 천재가 되고 싶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비록 기억력의 천재가 되지 못해도, 상상력의 천재는 될 수 있다. 독자는 눈뜬장님이 되어 상상의 날갯짓을 활짝 펼치기만 하면 된다. 보바리 부인은 전형적인 프랑스 여성이지만, 독자는 자기가 알고 지낸 모든 여성의 얼굴들을 동원하여 부인의 모습을 자유롭게 상상한다. 보바리 부인이 과거의 첫사랑 모습으로 될 수 있다.

 

나처럼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상대방을 비판할 근거를 취하기 위해 책 읽는 독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독서는 자기 생각에 혼자서 맞장구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책을 꼼꼼하게, 분석하듯이 읽는 독자는 자신이 한 번 읽었던 책의 내용을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피터 멘델선드의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은 대부분의 독자가 공공연히 알고는 있지만, 확인하면서 해부하고 싶지 않은 은밀한 독서 행위를 정면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래선지 이 책을 보게 되면 자신의 상상 밀실을 들킨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만나고 다니는 동안, ‘눈뜬장님이 되어 딴생각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프루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독자들은 "눈이 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었다. 독서란 단순히 책에 기록된 문자를 추적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가 아니라 문자와 문자로 조형된 세상, 그리고 그사이 행간에 은닉된 세상과의 접촉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이 곧 이성인 시대는 지났다. 역시 보르헤스는 옳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11-0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명하면서까지 독서라니....상상이 안되지만....
그런데 상상불가한 일을 상상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대단하네요..
책은 이성의 시대를 넘어 상상의 이상의 시대로 ^^...

cyrus 2016-11-02 19:18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책에 유명 작가들이 언급되었는데요, 이상하게도 저자가 보르헤스를 한 마디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보르헤스가 생각났습니다. ^^

stella.K 2016-11-02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고 싶기는 한데
네 글 읽으니까 생각 보다 좀 어려울 것도 같다.

cyrus 2016-11-02 19:20   좋아요 0 | URL
제가 책의 세부 사항을 언급하지 못했군요. 그런데 알라딘으로 검색하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요. 거짓말 아니고, 책 내용이 어렵지 않습니다. 저자가 디자이너라서 글보다는 그림을 많이 채워 넣었어요. 정말 글보다 그림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