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점차 다원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차별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대통령 개인의 탁월한 리더십이나 포용력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저급한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문제이다. 이러한 저급한 편견이 사회에 팽배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든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차별화에 따른 차등적 보상원리가 모든 사람을 더 열심히 살게 하고 나아가 사회 · 경제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분배정책이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 마음껏 재능과 창의를 발휘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결과의 불평등을 받아들인다. 분배 위주 정책이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면 남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역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시장이 올바르게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도 개혁의 기본 방향이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 쪽으로 설정돼야 한다. 문제는 그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 모두를 위한 시장 개혁이 이루어지면 누구나 살맛 나는 사회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결국 재벌만 살맛 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착각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심어줬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자신의 결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불필요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마음가짐이다. 이 문제점은 상대방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일부 자유한국당 소속 정치인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국가의 내분을 조장하려는 좌파의 선동으로 우기는 박사모, 동성애자를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혐오하는 기독교인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믿는 ‘도덕’을 내세운다. 이 ‘도덕’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신념과 정반대인 사람들을 적대시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도덕을 몰이해하는 성향이 타인에 대한 무지한 편견을 만들어낸다.

 

 

 

 

 

 

 

 

 

 

 

 

 

 

 

 

* 앨런 G. 존슨 《사회학 공부의 기초》 (유유, 2016)

 

 

차별과 편견을 용인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사회학’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런 존슨(Allen G. Johnson)은 어떤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되는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을 공부한다고 말한다. 사회학은 사회의 고통이 특정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원인을 알아내고, 그 잘못된 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학문이다. 그래서 사회학은 ‘우리 자신에 관한 학문’이면서도 ‘세상과 우리의 관계에 관한 학문’이다.[1] 이러한 사회학의 기본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 공동의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한다. 이러면 이성의 힘이 작동할 수 없게 되고, 사회 문제를 오로지 그 문제와 관련된 개인의 원인 탓으로 돌린다.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김영사, 2012)

 

 

우리는 사회 전체가 믿는다고 생각하는 진리 또는 문화를 의심과 검증의 여지 없이 ‘진실’로 받아들인다. ‘직관’을 의미하는 ‘빠른 사고(시스템 1)’와 ‘이성’을 뜻하는 ‘느린 사고(시스템 2)’가 충돌하면, 직관이 인간의 판단과 생활을 지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우리의 뇌는 느리고, 복잡한 과정의 절차를 싫어한다. 그래서 가장 빠르고 손쉽게 결정하려는 직관에 의존한다. 문제는 이 직관을 ‘합리적 이성’으로 착각하게 된다. 즉 자신은 정확한 판단을 내렸으니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신뢰한다. 사회 집단에서의 소속감과 안정을 지향할수록 이성의 힘이 약해진다.

 

태극기 집회에 나서는 박사모나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순히 그들이 용돈 벌기 위해 태극기를 들면서 ‘종북 척결’, ‘박근혜 대통령은 죄가 없다’라고 외치는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최소 저항의 길’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 ‘최소 저항의 길’은 복잡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워서 간편한 절차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경향을 의미한다.[2] 박사모 회원,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장에 모이는 노인들은 ‘탄핵 반대 집회’를 통해 소속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들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 보수’로서의 의무감을 내세워 태극기를 휘날린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은 단순하다. ‘탄핵 촉구 집회’에 대항하는 ‘태극기와 성조기 콜라보 집회’를 열면서 혼란스러운 국정이 정상화되길 바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을 어긴 것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좌파 세력이 음모를 꾸민다’ 식의 허위 선동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노인들은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 레드 콤플렉스를 교묘히 이용한 허위 선동을 ‘진실’로 그대로 받아들인다.

 

 

 

 

 

 

 

 

 

 

 

 

 

 

 

 

* 데버러 헬먼 《차별이란 무엇인가》 (서해문집, 2016)

 

 

박사모의 탄핵 반대 집회를 응원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간사하기 짝이 없다. 그녀의 행동은 사회 안정화를 저해하는, 불필요한 일이다. 현 정부는 색안경을 낀 채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도 넘은 행동과 비하 발언을 용인하고 있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비하 행위가 권력의 힘에 기댈수록 위험해진다. 권력과 결합한 비하 행위는 상대방의 도덕적 가치를 낮게 보는 ‘부당한 차별’이 된다. 즉 비하 행위를 하는 자는 자신의 ‘도덕’에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반면에 상대방이 주장하는 ‘도덕’이 잘못되었다고 무시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회 구성원은 HSD(history of mistreatment or current social disadvantage) 속성을 가지게 된다.[3] 기성 집단은 이 HSD 속성을 가진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비하한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간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세월호 사고 소식에 지친 사람들이 ‘최소한 저항의 길’을 택한 지 오래됐다. 그들은 세월호 사고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여전히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형성된다. 비록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암묵적인 차별이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주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면 차별과 비하 행위에서 비롯된 불의의 사태를 방관하는 것이다.

 

 

 

 

[1] 앨런 G. 존슨 《사회학 공부의 기초》 14쪽

[2] 같은 책, 44쪽

[3] 데버러 헬먼 《차별이란 무엇인가》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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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05 14:1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도해 근대마술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16
하니 레이 지음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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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魔術)을 뜻하는 영어의 ‘Magic’은 라틴어 ‘Magus’에서 유래했다. ‘Magus’가 처음에는 ‘동방박사’, ‘점성술사’라는 의미의 단어였으나 나중에 ‘마법’으로 발전했다. 마술의 역사를 논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사람이 시몬 마구스(Simon Magus)이다. 흔히 ‘마술사 시몬’으로 알려졌다. 그는 마술로 사마리아인들의 병을 고치기로 소문이 난 유명인사였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마술이 몇 가지로 구별됐다. 첫 번째 마귀를 쫓는 마술이 있었고, 두 번째 병을 고치는 마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는 남을 속이면서 돈을 받는 마술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 마술을 선보였던 시몬은 베드로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매수하려고 했다. 그래서 마술은 기성 종교와 서로 대립한다. 마술의 행함이 비도덕적인 면이 많고 악령을 통해 일으키기 때문이다.

 

《도해 근대마술》은 속임수를 이용한 마술(Magic trick) 이전에 성행했던 각종 금단의 마법과 주술 그리고 관련 비밀 단체 및 종교 등을 소개한 책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던 ‘의심스러운 책’이다. 서구의 수많은 학자가 마술을 학술적으로 규정하느라고 애를 썼으나 아직 합의된 정의가 없을 정도로 마술의 범주는 애매하고,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다. 공통된 것은 마술은 통상의 감각기관에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힘들의 상호연관성을 전제하며, 과학과는 다른 작동 원리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마술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과학과는 다른 법칙을 주장하기에 허황하고 불합리하다고 비난받는다. 또 기독교가 유일신의 의지에 순종함을 주장하는 데 반해, 민간신앙에 두드러진 마술은 인간의 뜻대로 신비로운 힘을 부리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적 오만함의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래서 기독교와 근대과학의 배경을 가진 서구문화에서 마술은 항상 박해를 받아왔다. 르네상스 말기와 근대 초기 유럽에서 행해진 마녀사냥의 참혹한 역사는 마술에 대한 서구문화의 적대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과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마법, 신비주의, 심령술 등에 심취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도 예외가 아니다. 말년의 에디슨(T.A. Edison) 코난 도일(Conan Doyle)은 심령술의 지지자였다. 독자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개념을 발견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가 만든 신지학 협회의 회원이었다. 신지학 협회는 근세 최대의 신비주의 단체이다. 여기에 유명 인사들이 협회에 가입되었는데, 월리스뿐만 아니라 에디슨, 화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등이 있다. 신지학(神智學)은 우주와 자연의 불가사의한 비밀, 인생 근원의 본질을 직관으로 인식하려는 학문이다. 합리성을 내세우는 서양 사상의 전통에서 신지학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신지학에는 불교, 힌두교, 심령술, 카발라(Kabbalah, 유대교의 신비주의) 심지어 진화론까지 섞여 있어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논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신지학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진화론은 왜곡된 진화론이다. 열등 인종의 제거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이론으로 작용했다.

 

마술이 주술이나 마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도해 근대마술》은 ‘비과학적’이고 ‘악마적’인 마술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비현실적인 마술을 옹호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서문에서 마술의 세계관을 믿는 건 독자의 몫이라고 밝혔다. 당신이 건전한 회의주의자라면 마술의 세계를 흥밋거리 정도로 받아들여도 된다. 다만 마술이 사이비 과학으로 둔갑하면 검증해야 한다. 딱 봐도 의심이 드는 이상한 현상이나 논리를 막연하게 믿어선 안 된다.

 

이 책에 ‘심령술’ 항목의 사례로 ‘하이즈빌 사건’이 소개됐다. 하이즈빌(Hydesville)은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도시인데, 이곳에 살았던 마거릿 폭스(Magaret Fox)와 케이트 폭스(Kate Fox) 자매가 유령과의 교신에 성공하여 심령술사들 사이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지금도 폭스 자매가 살았던 집은 그대로 보존되어 오컬트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매는 유령과의 교신이 속임수라는 것을 자백했다. 폭스 자매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심령 현상으로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단골 떡밥으로 거론된다.

 

마술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심리적 현상은 사회가 정서적으로 병들었을 때 현실도피와 불안감 해소 등의 기능을 하며 형성된다. 일종의 왜곡된 신앙처럼 구성원들은 무조건적인 결속력과 배타적인 집단 심리를 갖게 된다. 그리하여 사회를 교란하는 사이비 종교가 생겨난다. 그러나 이 단점만 가지고 오컬트 문화가 ‘악마 숭배’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마녀사냥식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오컬트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입장도 ‘검증’ 대상이다. 사람들을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마술의 매력이다. 마술에 흥미를 느끼는 일은 인간의 ‘상상할 자유’이다. 상상력마저 통제하면 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으려나.

 

 

 

※ 《도해 근대마술》은 일본에서 발간된 책이다. 일본의 오컬트 문화는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됐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정말 의심스러운 책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심지어 오컬트 전문 잡지도 있다. 일본어 책을 우리말로 그대로 옮겨서 그런지 집시들이 점을 볼 때 사용하는 타로 카드(Tarot card)가 이 책에선 ‘타로트(タロット)’로 되어 있다. 그밖에 국내 외래어 표기법이 지켜지지 않은 외국 인명 몇 개 지적해본다.

 

 

* 98쪽 : 블가코프 → 미하일 불가코프(러시아의 소설가, 대표작이 <거장과 마르가리타>인데, 《도해 근대마술》에서는 ‘거근과 마르가리타’로 되어 있다)

 

* 117쪽 : 유이스만스 →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프랑스의 상징주의 작가)

 

* 128쪽 : 예츠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의 시인, 책의 목차에 ‘예이츠’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편집상 실수로 생긴 오자로 추정된다)

 

* 137쪽 : 영국인 코린 윌슨

프랑스의 마녀 모니크 니키 윌슨의 남편. 이름만 봐서는 《아웃사이더》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의 동일인으로 볼 수 있다. 콜린 윌슨가 오컬트에 심취하고 연구한 작가였으니까 마녀와 결혼해서 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인 코린 윌슨’은 ‘콜린 윌슨’과 전혀 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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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3-04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쪽 인물들 표기가 대거 틀린 거로 봐선 교정자가 그쪽을 잘 몰랐던 거 같다는 심증이....ㅎ; ˝거근˝은 너무하네요ㅜㅜ

cyrus 2017-03-04 16:37   좋아요 0 | URL
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편집이 책 제작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인데, 교정을 맡는 편집자가 오자를 제대로 살필지 못한 건 심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7-03-0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독서를 본받고 싶네요. 저도 지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그래야 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분야 쪽으로 편식을 하게 됩니다.
저는 심령술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믿는 편은 아니지만, 믿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모르는 어떤 게 있을 거라고 보는 거죠.
제가 확실하게 믿는 건 마음의 기적이에요. 실제로 경험한 일이 있어요.
아주 절실하고 다급할 때 초능력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ㅋ

cyrus 2017-03-04 16:40   좋아요 0 | URL
pek님의 긍정적인 마음이 pek님이 위급할 때마다 큰 도움이 돼 주는 특별한 힘인 것 같습니다. ^^

2017-03-04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05 14:18   좋아요 0 | URL
온라인 게임에서의 마법사 캐릭터가 능력치가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
 
혜성 사이언스 클래식 30
칼 세이건.앤 드루얀 지음, 김혜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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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핼리 혜성이 나타났던 1835년에 태어났다. 혜성은 1910년에 다시 온다. 나는 혜성과 함께 갈 것이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자신의 임종 날짜를 핼리 혜성이 나타나는 날로 예견했다. 정말로 그는 1910년 4월 2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전날에 핼리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살짝 스쳐 지나갔다. 마크 트웨인은 죽음에 초연한 품격을 보이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혜성의 등장이 두렵지 않았는가 보다. 혜성이 나타나기 전부터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무시무시한 소문이 퍼졌다. 핼리 혜성이 늘어뜨린 꼬리 부분을 지구가 통과하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혜성 꼬리를 감싼 독가스에 질식사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자살했다. 온 세계가 핼리 혜성에 공포를 떨었으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핼리 혜성은 76년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혜성이다.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헬리(Edmund Halley)는 1531년과 1607년, 1682년에 나타난 혜성이 모든 같은 것이란 사실을 밝혀내고, 1758년 12월 25일 다시 찾아올 것이란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 혜성에 천문학자의 이름이 붙게 됐으며, 가장 최근에 혜성이 지구에 근접한 날은 1986년 2월 9일이다. 그러나 76년마다 찾아오는 우주의 손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가 없었다. 핼리 혜성이 나타나기 일주일 전에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해 그곳에 탑승한 7명의 대원이 전원 사망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희비가 교차하는 역사적 순간을 모두 지켜봤다. 칼 세이건의 책 《혜성》은 1985년에 발간되었다. 아마도 그는 이듬해에 나타나게 될 핼리 혜성과 챌린저호 발사 소식에 한껏 기대감을 부풀었을 것이다. 핼리 혜성이 나타난 지 10년 후에 그의 영혼은 아주 먼 우주로 날아갔다.

 

고대인들은 혜성을 재앙의 전조로 여겼다. 혜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지구 종말론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떡밥 중의 하나가 '딥 입팩트(Deep Impact)'나 '아마겟돈(Armageddon)' 같은 혜성 및 소행성 충돌이다.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마야 종말론’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지만, 종말론의 '종말'은 없을 것 같다. 혜성을 종말의 날을 앞당기는 신의 등장이라고 떠벌리는 자들에게 나는 수학자 라플라스(Laplace)의 말을 빌려 "저는 그런 허무맹랑한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1]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과학 공부가 먹고 사는 게 별 도움이 없다고 해도 혜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혜성과 소행성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중 ·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기본적인 과학 지식만 알고 있으면 지구에 근접하는 혜성이 무섭지 않아 보인다. 혜성은 지구에 잠깐 근접하다가 사라지는 우주의 손님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시작과 끝, 그와 운명을 같이한 특별한 존재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휘플(F. Whipple)은 혜성이 얼음과 가스, 먼지가 뭉쳐진 ‘더러운 얼음 덩어리’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1986년 핼리혜성을 관측하기 위해 보낸 탐사선 조토(Giotto)의 근접 촬영을 통해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단단한 얼음 덩어리였던 혜성은 태양 주위를 지나가면서 태양열과 태양빛을 받아 녹아 증발하게 된다. 여기서 가스와 먼지가 튀어나와 핵 주위를 둘러싸는 대기층인 코마(Coma, 혜성의 머리 부분)와 꼬리를 만들어낸다. 과학자들은 혜성이 생성되는 곳을 태양계 바깥쪽에 존재하는 오르트 구름(Oort cloud)과 카이퍼 벨트(Kuiper belt)로 추정한다. 오르트 구름은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안에 약 1조 개의 혜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카이퍼 벨트(Kuiper belt)는 해왕성에서 16억 km 떨어져 있는 얼음과 운석의 띠로 태양계 생성 때 행성이 되지 못한 소행성의 잔해로 추정된다.

 

혜성은 지구 생명의 근원에 대한 비밀을 풀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혜성 표면에 얇은 물 성분의 얼음층이 있다. 지구상에 있는 물이 혜성으로부터 유래됐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은 생명체의 탄생에도 혜성이 큰 연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혜성은 오래전 지구가 형성될 무렵 이 행성에 물과 생명의 물질을 가져다준 생명의 모태인 동시에, 백악기 말 충돌로 공룡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물 대부분을 몰살시켰듯 거대한 재앙이기도 하다. 칼 세이건은 혜성이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달린 '창조적 파괴'의 힘을 지닌다고 했다.

 

그래도 혜성과 소행성이 지구에 근접한다고 해서 쫄 필요가 없다. 사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 그게 바로 핵무기이다.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생긴 먼지가 수년 동안 햇빛을 가려 가뭄과 한발을 가져와 지구 생태계에 치명타를 가했다. 칼 세이건은 이 재앙의 결과를 대량의 핵무기로 인류가 절멸하는 '핵겨울' 시나리오와 유사하다고 봤다. 진짜 우리가 무서워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 우주에서 오는 혜성이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인 핵무기다.

 

2061년 7월 28일에 핼리 혜성이 지구에 방문할 것이다. 필자가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74세가 된다. 먼 50여 년 동안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칼 세이건은 스스로 자멸하는 방법을 터득한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다.

 

"최근에 우리는 자멸하는 방법들을 마련했다. 핼리 혜성이 다음번에 지구 가까이 오는 2061년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이 남아 있을지 정말로 의문이다."[2]

 

그의 말이 '슬픈 예지'가 되지 않길 바란다. 혜성은 2061년에 다시 온다. 나는 그것과 함께하고 싶다. 그러려면 인류가 미래를 생각해서 정신 차려야 할 텐데…….

 

 

 

[1] 칼 세이건 《혜성》275쪽 ("나는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2] 같은 책, 4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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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3-0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 드디어 읽으셨네요.
별 다섯개 주시다니ㅎ
가격이 ㅎㄷㄷ해서 눈팅만ㅠ.ㅠ

cyrus 2017-03-03 16:00   좋아요 2 | URL
진짜 이 책은 소장해야 합니다. 이 책을 엄청 보고 싶어서 집에서 거리가 먼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새벽까지 다 읽었어요. 책 속에 사진과 도판이 많아서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니까 가슴이 뭉클했어요.. 세이건.. 당신은 대체..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7-03-03 16:22   좋아요 0 | URL
소장용 구입으로 낙찰ㅠ
아직 코스모스,창백한푸른점도 못 읽었는데ㅎ

2017-03-03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03 16:14   좋아요 1 | URL
76년이면 사람의 평균 수명입니다. 아무리 100세 인생 시대라고 해도 자연 재해나 전쟁이 일어나면 오래 살기 힘들어요. ^^;;

에로틱번뇌보이 2017-03-0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의 속삭임‘도 읽다 말았는데 ‘혜성‘은 언제 읽죠? 지금 ‘풀하우스‘를 읽고 있는데 스티븐 제이 굴드 이름을 보니 반갑네요~

cyrus 2017-03-04 11:23   좋아요 0 | URL
저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을 아직 안 읽어봤어요. ^^

겨울호랑이 2017-03-03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4부작에 필적하는 세이건의 3부작이군요..^^: ㅋ 전 다음 핼리 혜성은 보기 힘들 것 같아요.. cyrus님께서 제 몫까지 봐주시길 ㅋㅋ

cyrus 2017-03-04 11:2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연의가 과학에 관심이 있으면 핼리 혜성 이야기 꼭 해주세요. 연의는 핼리 혜성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3-03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2061년이라...ㅠㅠ

cyrus 2017-03-04 11:2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AgalmA 2017-03-0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고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ㅋㅋ...낯설고 재밌네요. 고대부터 생태 진화를 설명하는 거 생각하면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왠지 따지기 좋아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살아 있다면 그 명칭에 한 소리 첨가할 것도 같고ㅎㅎ

cyrus 2017-03-04 11:26   좋아요 1 | URL
고고학이 유물을 발굴하고,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식해서 그런지 ‘고고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

보슬비 2017-03-03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소장욕 불태우가 하는 책이군요. 찜해두었다가, 특별한날 선물 사달라고 졸라야겠어요. ㅎㅎ 소장하고 싶은 책은 제가 구입하는것보다 선물 받을때가 더 기분이 좋아요. ㅋㅋㅋㅋ

cyrus 2017-03-04 11: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가격이 비싼 책을 선물로 받을 때가 제일 기분 좋습니다. ^^

2017-03-04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4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3-0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제이 굴드 양반의 책은 사서 소장만
하고 있네요.

몇 페이지 읽다 말고 마저 읽을 생각도 안하고 ㅋㅋ

cyrus 2017-03-08 15:08   좋아요 0 | URL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만 읽었어요. 그런데 2012년에 나왔던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들이 절판되었어요. 중고 책 판매자들이 좋아하겠어요. ^^;;

 

 

 

 

 

 

 

 

 

 

 

 

 

 

 

 

 

 

 

 

 

 

 

 

 

* 오모리 후지노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소미미디어, 일본에서는 11권까지 발행, 국내는 10권까지 발행)

 

 

 

 

아이소라 만타의 라이트노벨 《기어와라! 냐루코 양》(약칭 ‘냐루코 양’)은 제1회 GA문고 대상 전기 장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GA문고는 라이트 노벨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브랜드이다. 이 회사는 매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장려상 입상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장려상 수상작 중에 우수상과 대상 작품을 선정한다. 수상 선정 절차가 좀 까다로워서 그런지 대상 작품이 잘 나오지 않는다. 최초로 GA문고 ‘대상’을 받은 라이트노벨 작품이 오모리 후지노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약칭 ‘던만추’)이다. 이 작품은 제4회 GA문고 대상 후기 장려상을 수상했고, 그 해 GA문고 대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던만추》가 정식 발매된 해는 2013년이다. 라이트노벨이 발매된 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던만추》가 발매되고 있을 때, TV 애니메이션 《기어와라! 냐루코 양 W》이 방영되고 있었다. 두 작품이 ‘GA문고 수상작’이라서 애니메이션 중간에 《던만추》가 깨알같이 나오기도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던만추》의 TV 애니메이션도 유명한데, 인기몰이의 주역이 바로 《던만추》의 히로인 ‘헤스티아(Hestia)’다. 그녀의 복장은 남성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녀의 가슴 아래에 파란 리본 끈 장식이 있다. ‘가슴 끈 디자인’은 헤스티아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해주는 효과가 있다. 인터넷 검색 창에 ‘헤스티아’를 검색하면 대부분 《던만추》의 헤스티아 사진이 나온다. 헤스티아의 복장이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보시길.

 

헤스티아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화로(火爐)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베스타(Vesta)’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가장 유명한 여성들이 즐비하다. 올림포스(Olympos) 12신 중에는 헤라(Hera), 아프로디테(Aphrodite), 아테나(Athena), 아르테미스(Artemis), 데메테르(Demeter)가 있다. 신들과 연관된 여성들이 더 많다. 프시케(Psychē), 이오(Io), 메데이아(Medea), 아라크네(Arachne), 헬레네(Helene) 등이 있다.

 

그런데 헤스티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헤스티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여신이다. 신들을 위한 무기를 잘 만드는 재능 빼곤 특별히 존재감 없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us)보다 비중이 없다.

 

 

 

 

 

 

 

 

 

 

 

 

 

 

 

 

 

*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도서출판 숲, 2004)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한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Bibliotheke)》에 보면 헤스티아는 딱 한 번 언급될 뿐이다. 그녀는 크노로스(Cronus)와 레아(Rhea)가 낳은 3남 3녀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장녀이다. 그 다음으로 태어난 자식들이 데메테르, 헤라, 플루톤(Pluton), 포세이돈(Poseidon) 순이다.

 

크로노스는 데려온 형제들을 묶어 다시 타르타로스[1]에 가두고 누이인 레아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모두 삼켜버렸다. 자식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될 것이라고 게[2]와 우라노스[3]가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맏이인 헤스티아를, 그 다음에는 데메테르와 헤라를, 이어서 플루톤과 포세이돈을 삼켰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20쪽)

 

[1] 지하에 있는 세계

[2]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

[3] 하늘의 신, 게의 남편이자 크로노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까 봐 두려워하여 자식들을 집어 삼킨다. 막내아들 제우스(Zeus)만 살아남게 되는데, 성인이 된 그가 크로노스의 뱃속에 있는 신들을 구해낸다.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토해냈을 때 마지막에 나온 신이 헤스티아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태어났음에도,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마지막으로 부활하는 바람에 막내가 되었다.

 

 

 

 

 

 

 

 

 

 

 

 

 

 

 

 

 

* 낸시 헤더웨이 《세계 신화 사전》 (세종서적, 2004)

 

 

《세계 신화 사전》의 저자 낸시 헤서웨이가 헤스티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헤스티아의 특징을 아주 잘 표현했다.

 

온화하고 수줍은 헤스티아는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올림포스 신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헤스티아에 관한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신화 사전》 253~254쪽)

 

헤서웨이의 말이 사실이다! 그리스 신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면, 헤스티아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름은 남아 있을 뿐, 등장 장면이 단 한 개도 없는 '아웃 오브 안중', ‘투명 여신’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안습한 건, 헤스티아가 원래 올림포스 12신에 속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헤스티아도 크로노스의 장녀이기 때문에 올림포스 12신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제우스는 자기 아들인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올림포스 12신 자격을 부여해주고 싶었다. 마음씨 착하고, 다툼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스스로 12신 자격을 포기, 디오니소스에게 양보한다. 이렇게 되면서 헤스티아의 존재감은 확 줄어들게 된다.

 

헤스티아는 신들의 구애를 거부할 정도로 순결을 영원히 지킨다. 그녀를 숭상하는 무녀들도 평생 순결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스 신화의 헤스티아와 《던만추》의 헤스티아의 성격을 비교해보면, 약간 비슷하면서도 뚜렷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신화의 헤스티아는 조용한 성격이라서 올림포스에서 일어나는 신들의 분쟁에 나서지 않는다. ‘중립’이 아닌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이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도 여신임에도 신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없고, 늘 혼자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벨 크라넬(Bell Cranell)이라는 인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헤스티아는 초보 모험가인 벨을 자신의 파밀리아(familiar) 첫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헤스티아는 자신의 체면을 버리면서까지 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평생 순결을 지켜야 하는 신화의 헤스티아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 (민음사, 1998)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 관심 없었지만, 로마인들은 그녀를 ‘베스타’라고 부르면서 국가와 가정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로마에 그녀를 위한 축제도 열렸다. 그녀를 모시는 신전의 제단에는 화로가 놓여있고, 그 위에 불이 타올랐다. 화로 위의 불이 꺼지면 로마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 온다는 신호로 여겼다. 그래서 베스타의 무녀(巫女)들은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살펴야 했다.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를 베스타로부터 보호받는 위대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 정도로 로마에서의 헤스티아, 아니 베스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리스 신화는 남성 위주의,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진 이야기다. 남성은 ‘사랑과 전쟁’이 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오만방자한 신들 때문에 인간이나 영웅이 엄청 고생하는 이야기가 신화 중에 제일 기억이 남고,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싸움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비중이 없는 여신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아르테미스에 비하면 훌륭한 덕성을 가진 여신이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착한 여신보다는 ‘남자를 고생시키는 나쁜 여신’들을 좋아했다. 특히 아프로디테는 남자들이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아프로디테의 바람기를 싫어해도 그녀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녀의 벌거벗은 몸은 남성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인기 주제였다. 이렇게 아프로디테에 관련된 신화는 오랫동안 널리 구전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헤스티아보다 제일 불쌍한 존재가 베스타의 무녀들이다. 그녀들은 연애는 물론,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처녀성을 잃으면 채찍질 또는 생매장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뭐든지 잘못 하면 무녀들의 책임으로 전가했다. 순결을 잃어버리면 ‘정결하지 못한 여성’으로 비난받았고, 가해자의 책임보다는 피해자의 책임을 더 따지는 불합리한 상황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아프로디테가 ‘사랑스럽지만, 음란한 비너스(Venus)’로, 헤스티아가 ‘순결을 지키는 위대한 베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여자에게는 순결을 요구하면서 다른 여자에 흑심을 품는 남자의 이중성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쾌락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순결을 고귀하게 여기는 남자의 이중성은 교활하다. 겉으론 자기가 개방적인 척하면서 속으론 처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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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02 16:5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생존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는 걸 두려워합니다. 세상에는 뜨는 존재가 등장하면, 지는 존재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오래 누리고 싶을수록 상승 하락의 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문학 작품이나 역사에 보면 자식을 위협하거나 자식 간에 갈등을 빚는 아버지들이 나옵니다. ^^;;

2017-03-0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2012년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물질의 질량 생성에 관여하는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Higgs Boson) 발견에 성공했다. 대단한 연구업적으로 현대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뉴스는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단위조차 생소한 미시의 세계에서 원자보다도 더 작은 입자들을 충돌시키고 관측하는 입자물리학 연구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신의 입자(God particle)》가 뒤늦게나마 다시 번역돼 나온 것은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993년에 나온 이 책은 일명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에 한발씩 다가선 책이다.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인 리언 레더먼(Leon Lederman)은 미국 국립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 명예소장을 지냈고, 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힌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의 원자론으로부터 돌턴(J. Dalton), 러더퍼드(E. Rutherford)의 원자모형을 거쳐 현대적 원자모형으로 발전해오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물리학자가 축적해 온 성과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세계를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이 책이 나온 이듬해에,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의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톱 쿼크(Top Quark)’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로써 물질의 형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인 쿼크 6종 모두 발견되었다.

 

90년대에 힉스 입자의 실체를 규명하는 연구는 ‘물리학의 성배(聖杯)’를 찾는 일이었다. 물리학에서는 우주가 보이지 않고 신비스런 장(場, field)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힉스장은 우주 공간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입자가 힉스장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입자의 질량이 결정된다.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질량이 무거워진다. 톱 쿼크가 무거운 것은 힉스장과 반응을 많이 하기 때문이고, 질량이 없는 광자는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 이처럼 힉스 입자는 입자들이 성질은 비슷하지만 질량이 크게 다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힉스장을 풀장에 비교하면 입자는 수영선수들이고, 수영선수들이 헤엄을 치면서 물과 부딪칠 때 비로소 질량이 생성된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스코틀랜드 출신 과학자 피터 힉스(Peter Higgs)의 이름을 따 명명된 힉스 입자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로 고안된 개념이다. 힉스 입자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거대한 가속기를 이용해 양성자를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태초의 환경을 재연하는 것이다. 힉스 입자는 매우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 특별히 눈여겨볼 인물이 있다. 물리학의 기초이론에 변혁을 일으킬만한 연구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정말 많다. 과학자들은 축적된 이론을 바탕으로 계속 진보했다. 고전물리학의 기틀을 완성한 뉴턴(I. Newton), 상대성이론을 정립하여 뉴턴의 시대를 넘어선 아인슈타인(A. Einstein), 불확정성 이론을 주창한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 등이 있다. 아무튼, 더 열거하면 끝이 없다. 그런데 레더먼은 자신의 책에 과학과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의외의 인물을 페르미 연구소에 소환한다. 그 인물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다.

 

 

 

 

 

 

 

고대로부터 여러 철학자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동안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 현상이 신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는 자연 속의 물질이 극히 작은 기본 구성 요소들로 결합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물질을 계속해서 잘라 나가면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작고 단단한 입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가상의 입자에 그리스어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원자(atom)’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과학적으로 접근한 실험적 연구라기보다는 사색과 직관에 의한 것이라서 오늘날의 과학이론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존재성을 놓고 철학적인 고뇌로부터 시작, 만물의 근원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실체를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은 눈으로 볼 수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전자란 전류를 느끼기에 그 실체를 검증할 수 있다. 이렇게 검증이 가능할 때 이를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떠한 방법으로 그 실체가 검증되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 끝에 힉스 입자를 알아낸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레더먼이 《신의 입자》를 출간하기 전에 원제를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로 지으려 했다. 그 당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힉스 입자의 발견이 대단치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입자의 성질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고 팽창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궁금증은 아주 오래전 데모크리토스가 먼저 시작했고, 아인슈타인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에 도달하기 위해 시도했다. 힉스 입자는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다. 궁극의 이론에 아주 가까이 다가선 것은 틀림없지만 모든 것들의 의미는 여전히 희미할 뿐이다. 그래도 과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의 모든 자연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신은 우주를 구성하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했을까”라는 아인슈타인의 질문도 상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느냐를 밝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영역이다. '신의 입자'는 실생활에 쓸모 없고, 무척 어려워보이는 존재이지만, 그 존재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신의 입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좋은 입자(Good particl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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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8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02 13:43   좋아요 0 | URL
국가의 전폭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지원 없이는 과학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돈 되는 연구에만 지원하는 것은 기초과학 성장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oren 2017-02-28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님의 글 덕분에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좀 뒤져봤더니, 동시대 철학자였던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에 대해 굉장한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는 사실도 알게 되는군요. 그의 가르침이 나중에 에피쿠로스(BC342∼270)에게로 이어졌다가, 루크레티우스(BC99∼55)를 거쳐 그로부터 훨씬 뒤인 근세의 기계론적 유몰론에 와서야 크게 주목받는 철학적 주제가 되었다고도 하고요.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이 그토록 기나긴 연결을 거쳐 마침내 힉스 입자에까지 연결된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2,400년 전에 그가 남긴 말도 놀랍고요.
* * *
˝나는 페르시아의 왕국을 얻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원인 설명(main aitiologian)을 찾아내길 원한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중에서

cyrus 2017-03-02 13:45   좋아요 1 | URL
《신의 입자》를 읽으면서 데모크리토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AgalmA 2017-03-01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힉스 입자 발견은 연역의 또다른 쾌거로군요~
지적 탐험이 펼쳐질 이 책 기다려지는데요^^

cyrus 2017-03-02 13:47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Agalma님! 《신의 입자》는 소장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1990년대의 과학 고전이라고 불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