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후 - 인류의 대량 멸종과 그 이후의 세상
마이클 테너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대개 생명의 역사는 곧 멸종의 역사이다. 6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이 있었다. 그 시기는 오르도비스기 말(4억4000만 년 전), 데본기 후기(3억7000만 년 전), 페름기 말(2억5000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기(2억 년 전), 백악기 말(6,500만 년 전)이다. 그중 백악기 멸종이 특히 유명한데, 이때 중생대를 지배했던 공룡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뿐 아니라 그 멸종 원인으로 지름 10km의 운석이 충돌했다는 가설이 제안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생대 지구의 지배자 공룡의 멸종은 극적이긴 하지만 페름기의 대멸종 사태에는 비길 바가 못 된다. 그나마 약 4분의 1의 생물 종이 살아남은 공룡 멸종 때와 달리 전멸이라고 할 수 있는 95%가 멸종했다. 페름기에 내려진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 비극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내리쬐면서 지옥과 같은 무더위가 시작됐다. 시베리아 화산들이 지각 속 깊은 곳에 있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 것이 온실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기온이 올라가자 바다 밑바닥에 있던 엄청난 양의 메탄이 대기로 올라와 온실효과를 더욱 가중했다.

 

생태계는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현재 인간의 활동에 의한 서식 환경 악화로 많은 생물이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멸종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UN의 한 보고서는 하루 150종이 멸종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의 이러한 멸종 속도를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 사태와 견주어 ‘여섯 번째 멸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동식물들이 대규모로 사라지고 있다. 환경변화에 민감한 생물 종(種)의 위기 소식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생물 종 감소는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 과정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절멸에 가깝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학 칼럼니스트 마이클 테너슨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멸종의 징후를 고발하고 있다. 올해로 도시 탄생 112주년인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의 땅’에서 ‘도박의 도시’로 일궈냈다.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라스베이거스는 인류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 그 자체다. 그러나 화려한 네온사인과 우뚝 솟은 카지노 호텔 뒤로 가려진 사막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황폐해지고 있다. 사막화는 인류에게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삼림 파괴는 심각하다. 매년 무분별한 벌목으로 과테말라의 숲 약 5만 4,000헥타르씩 파괴될수록 그 안에 서식했던 생물 다양성 중 3분의 2가 사라진다. 열대림이 파괴되면 토양층이 폭우에 노출되어 토양이 유실되고, 가뭄과 홍수 피해가 늘어난다. 지구 생물 4분의 3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열대림의 소멸은 지구상 생물의 대량 멸종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우리 시대 생물의 멸종이 다른 종으로 쉽게 복구될 수 있는 비교적 미온적인 과정인가, 아니면 지난 5번의 대멸종 사건에 견줄만한 대격변의 전조인가 하는 것이다. 종의 소멸이 자연적인 회복력보다 빠르다면 언젠가 모든 생물은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 마이클 테너슨은 현재의 지구온난화와 인간 활동에 의한 토양 부족, 그리고 이에 따른 생물 다양성의 소멸 등을 지구 역사상 6번째 대멸종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멸종 이후 ‘지구의 빈자리’가 어떻게 될지 예상한다. 우리도 멸종 동물 목록에 오를 수 있다. 동식물이 멸종되는 상황에 그저 안타까워해야 할 입장이 아니다. 여섯 번째 멸종 이후 인간이 생존하려는 방안은 다양하다.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고, 인간 복제와 유전자 조작 기술 등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방법도 있다. 이 중에 ‘정답’을 고르기가 어렵다. 우리는 미래가 아닌 현재의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자연 훼손을 일으켜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문젯거리들을 안고 살아간다. 멸종은 언젠가 우리 인류에게도 닥쳐올 것이다. 멸종위기를 무시하다가는 인간이 멸종의 마지막 당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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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한 것은 언젠가 인간도 멸종할거라는 거...영원한곳도 영원한 것도 없으니까요.

cyrus 2017-04-03 18:0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진화의 개념이 잘못 알려졌어요. 경쟁 속에 살아남은 자가 ‘완벽한 강자’라고 생각해요. 진화를 그저 ‘적자생존’의 의미로 이해합니다. 예전에 저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었어요. ‘완벽한 강자’는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오면, 지금의 강자도 쉽게 대처하지 못하니까요.

yureka01 2017-04-03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시간의 변화 앞에 강자는 없습니다.겸허라는 덕목이 그래서 요구 되죠....

꼬마요정 2017-04-03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는 ‘살아남기‘죠.. 진보가 아니라요. 사실, 인류가 멸종하는 게 지구를 위해서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다같이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cyrus 2017-04-04 10:3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는 것이 진화입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공생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어요.

책한엄마 2017-04-0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저 사진이 사일러스님일까 섣부르게 추측했습니다.^^;;흐흐
다 진실이었군요!!

cyrus 2017-04-05 10:53   좋아요 0 | URL
실제로 마그리트 그림처럼 똑같이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었어요. ㅎㅎㅎ
 

 

 

 

 

 

 

10개의 내용 모두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여러분들 알아서 판단하세요.

 

 

 

 

1.

제가 처음으로 알라딘 서재에 글을 공개한 날이 2010년 5월 8일입니다.

이틀 뒤인 5월 10일에 양철나무꾼님이 알라딘 서재에 첫 번째 글을 남겼습니다. 그다음 날에 저는 육군 만기 전역을 했습니다.

 

 

2.

아주 썰렁했던 제 서재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댓글이 달린 날이 2010년 10월 5일입니다. 그다음 날에 양철나무꾼님이 제 서재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때부터 양철나무꾼님을 알게 됐습니다.

 

 

3.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10년 서재의 새얼굴’에 선정됐습니다.

2010년에 거의 처음으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한 회원들을 ‘서재의 새얼굴’로 선정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재의 달인’이 ‘본상’이라면, ‘서재의 새얼굴’은 ‘신인상’입니다. ‘서재의 새얼굴’은 엠블럼이 없습니다.

 

 

4.

2010년 5월 8일부터 2017년 3월 31일까지 서재에 글을 남기면서 받은 ‘Thanks to 적립금’ 총액은 178,550원입니다.

 

 

5.

 

 

 

각종 리뷰 이벤트에 응모해서 받은 상금 및 적립금 총액 > 제가 받은 ‘Thanks to 적립금’ 총액. 제가 상금이나 적립금이 걸린 리뷰 이벤트 당첨을 위해 정말 혼을 담아서 리뷰를 씁니다. 글의 내용이 좋아도 문장에 혼이 실리지 않으면 이벤트에 당첨될 수 없습니다.

 

 

6.

2010년 5월 8일부터 2017년 3월 31일까지 제가 다른 서재에 남긴 댓글 개수는 총 8,119개입니다.

 

 

7.

지금까지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모든 글은 ‘전체 공개’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선작 중 단 한 편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당선작으로 선정된 글을 3개월 이내에 비공개 또는 삭제하면 당선이 취소되어 적립금을 반납해야 합니다.

 

 

8.

2010년 7월부터 ‘이달의 당선작’으로 변경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이주의 당선작’이었습니다. 저는 ‘이주의 당선작’에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습니다. YES24 ‘이주의 우수 리뷰’에도 아직까지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9.

작년에 YES24가 주최하는 리뷰 이벤트에 당첨됐습니다. 알라딘이 아닌 타 온라인 서점 리뷰 이벤트에 처음으로 응모한 것이었고, 운 좋게 당첨됐습니다.

 

 

10.

2010년에 작성된 ‘2010년 이벤트의 달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어깨에 힘 주면서 ‘자랑 글’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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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4-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쏭달쏭 만우절에 어울리는 재미난 포스팅이네요. ㅎㅎ

cyrus 2017-04-01 21:14   좋아요 0 | URL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는데 쓸만한 내용을 많이 건져내지 못했어요. ^^;;

2017-04-01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01 21:15   좋아요 1 | URL
2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 팬이었어요. 작년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알고 보니 순실 라이온즈였습니다.. ^^;;

stella.K 2017-04-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요즘 혼을 못 담고 있는 것 같아.ㅠ
예스24는 요즘 주간 우수 리뷰 안 하나 봐.
요근래 들어 본 적이 없어.

cyrus 2017-04-01 21:17   좋아요 1 | URL
혼 드립은 웃으라고 한거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ㅎㅎㅎ

예스24 주간 우수 리뷰 선정 계속 하고 있어요. ^^;;

오후즈음 2017-04-0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혼을 담아 글을 써야 하거늘. 그렇지 못해 근 일년 서재를 비워두고 있네요.
어쨌든, 모처럼 웃으며 읽었습니다. ~^^

cyrus 2017-04-01 21:19   좋아요 0 | URL
혼 드립은 개그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

세실 2017-04-0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새얼굴도 있나요? ㅎㅎ

cyrus 2017-04-01 21:23   좋아요 0 | URL
2010년에 딱 한 번 공개됐다가 사라진 혜택이 있었습니다. 그게 왜 사라졌냐면, ‘서재의 새얼굴‘에 선정된 분이 알라딘 서재 활동을 오래 하신 분이었어요. 그분은 ‘서재의 달인‘에 선정될만한 분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재의 새얼굴‘로 선정된 거죠. 그 이유로 말이 많았어요.

yureka01 2017-04-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매달 리뷰글 당선작에 등용되는 유저라는 사실도 진짜가 맞습니다~

cyrus 2017-04-01 21:23   좋아요 0 | URL
유레카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쑥스럽군요. ^^;;

서니데이 2017-04-01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우절 기념으로 전부 맞는 걸로 찍겠습니다.^^

cyrus 2017-04-01 21:25   좋아요 1 | URL
만우절을 위한 재미있는 거짓말 만들기가 정말 어려워요. 쓰다 보니 자랑 글이 되었어요. 주말 잘 보내세요. ^^

보슬비 2017-04-0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만우절은 특별한일 없이 그냥 지나가서 잊고 있었어요. 이번엔 알라딘에서 만우절 이벤트도 안한것 같은데,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반갑네요. 하지만 10개중 어떤것이 거짓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ㅎㅎ

cyrus 2017-04-04 20:29   좋아요 1 | URL
몇 년 전부터 알라딘이 만우절 이벤트를 하지 않더군요. 요즘 알라딘은 굿즈 판매 관련 이벤트를 참 많이 준비해요. 10개의 내용 모두 다 사실입니다. ^^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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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책에 대해 물을 수 있을까

그걸 정말 내가 썼는지? [1]

 

- 파블로 네루다 -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정보는 내 것이 되기 힘들지만, 내가 읽은 책에 있는 정보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2]가 된다. 꽁꽁 얼어버린 생각의 바다 한가운데 서서 책을 읽으며 도끼질을 해야 한다. 그 얼음을 깨고 나온 펄떡이는 글은 우리에게 삶의 자양분을 선사한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 없이 섣부르게 도끼질을 해대면 허송세월할 수 있다.

 

 

 

 

 

 

생각의 바다를 깨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책 속에 나열된 얼어붙은 단어들을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읽는다고 해서 종이에 얼어붙은 단어들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서 흘러나온 냉기는 우리의 생각마저 얼어붙게 한다. 냉기의 근원을 꿰뚫어 보는 독자의 ‘입김’이 더욱 세져야 한다. 우리는 입김을 뿜으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잘 정리된 현자의 생각보다 단순한 질문이 진리에 한층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원론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이다. 이에 대해 김대식은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통해 자신만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입김을 불어대면서 읽었던 책들을 소개한다. 저자의 입김에 사르르 녹아내린 종이 속 단어들은 더욱 유용하고 의미 있는 해박한 통찰력이 되어 살아 숨 쉰다. 그는 책 읽기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질문’을 강조한다.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중요한 말은 그가 읽은 배철현의 책 속에 있다.

 

‘질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며,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해 주는 안내자다. 질문은 지금껏 매달려 온 신념이나 편견을 넘어 낯선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하는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 (배철현,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38쪽)

 

질문으로 진실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 이것이 독서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질문은 한 걸음 멈추어 서서 나를 바라보게 한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종이만 보며 뛰었던 삶의 열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종이로 만든 공간에서 얽히고설킨 생각을 가다듬는다. 계속 행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며, 잘라내야 할 낡은 지식은 어떤 것인지 간추리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쩌면 그만큼 버거운 짐도 없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그리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나 자신이라는 존재와의 전쟁은 계속된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살아가는 것, 존재하는 것, 호흡하는 일상적인 반복적 삶의 모습에서 나를 또다시 발견하는 질문은 우리 머리와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인간이 무엇이냐는 건 뇌과학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수많은 문제와 얽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책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인용한 내용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 해답을 찾기보다는 본질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를 종합해서 인생의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건 불가능한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질문하는 행위는 미래로 향하면서 통과해야 하는 분기점을 발견한 사람에게 중대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미래란 늘 장밋빛이거나 잿빛이다. 턱없는 낙관주의가 유토피아(Utopia)의 환상을 부풀린다면, 근거 없는 비관주의가 디스토피아(dystopia)의 절망을 퍼뜨린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 후손들의 ‘현재’가 될 ‘미래’는 낙관과 비관 사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리란 사실이다. 그 지점이 어디쯤 될 것인지를 질문으로 조망할 수 있다. 그러면 일방적인 낙관도, 편협한 비관을 뛰어넘는 균형 감각이 유지된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인간과 신의 결합을 뜻하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라는 책에서 인류의 미래를 제시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가 바로 생각의 분기점이다! 이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김대식은 갈 길 바쁜 독자들의 손을 잡으면서 질문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나보다 먼저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읽은 당신이 정말 중요한 질문을 지나치고 책을 덮었다면 321쪽을 다시 펼쳐보길 바란다. 당신이 무심코 읽은 321쪽의 단어들은 아직 깨지지 않은 검은 얼음이다. 그 얼음을 깨뜨려야 아직 오지 않은, 낯선 미래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읽고, 거기에 인생의 지침을 찾는다는 건 낭패 보는 일이다. 남들이 다 발견한 것들을 눈으로 보기만 하는 독서는 ‘설거지’ 독서[3]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꽤 많은 책들을 독파한 저자의 능력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읽었던 책들이 생소하다고 해서 불평할 이유도 없다. 그가 읽었던 책들을 따라 읽으려고 한다면, ‘설거지’ 독서를 할 가능성이 있다. 누가 읽든 간에 우리 손에 쥐어진 책은 차가운 냉동 상태다. 평범한 독자들이 ‘설거지’ 독서를 피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얼려진 책이 녹을 수 있도록 ‘입김’으로 불어야 한다. 책이 완전히 녹으면 매끄럽고 날이 선 도끼로 변신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한 사유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읽고, 제대로 질문하는 일이다. 매번 다 읽고 나서 책을 덮기만 하던 나는 이제 정색을 하고 스스로 묻는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걸 정말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새로운 유행의 새로운 책을 찾아 두리번거릴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책 속에서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 세상을 마감하는 날이 있다. 그때 어떤 모습으로 신 앞에 설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책 읽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할 순 없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워하는 신의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가. “세상에 있을 때 넌 뭘 했느냐?”이다.

 

 

 

 

[1] 《질문의 책》 49쪽 (정현종 역, 문학동네, 2013)

[2]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어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

[3] ‘설거지’ 연구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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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4-0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늘 궁금 했거든요 ㅋ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도 알겠고 다양한 지식을 정리하는 방법도 알겠는데 그 질문 하는 방법에 대한 ‘어떻게‘란 무엇인지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1인 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어떻게‘ 란 부름에 명료한 확답이 페이지 321에 있단 말씀이시죠 ㅋㅂㅋ ~당장 달려가서 펴보고 싶네요 ㅋ

cyrus 2017-04-01 10:24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명료한 확답’이 없어요. 제가 321쪽을 다시 보라는 이유는 저자가 간접적으로 제제시한 ‘질문’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결론은 우리 독자가 찾아내야 합니다. ^^

stella.K 2017-04-0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도 읽었구나. 이 책 좀 평점 주기가 애매했어.
별 넷 주기엔 많은 것 같고, 3주기엔 적고.
반 개짜리 있으면 3개 반이 적당할 듯도 한데...
이 책 여백이 너무 많다고 까는 사람도 많던데
나도 좀 그점은 아쉽더군.

cyrus 2017-04-01 21:27   좋아요 1 | URL
사실 내용도 딱히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처음 이 책을 직접 봤었을 때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조금 당황했어요.
 

 

 

※ 이 글은 ‘친구 공개 글’입니다. 몇 시간 지난 후에 ‘전체 공개’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북플이 처음 나왔을 때 제 서재의 ‘팔로워’ 수가 많았습니다. ‘팔로워’ 회원 닉네임 옆에 ‘친구 추가’를 누르면 그 회원은 ‘친구’가 됩니다. 그러면 저와 ‘친구’가 된 회원은 서로가 남긴 ‘공개’ 서재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팔로워’ 회원은 ‘친구 공개 글’을 보지 못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친구 수’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현재 ‘친구 목록’을 ‘비공개’로 설정한 상태입니다. 웬만하면 ‘친구 수’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 ‘즐겨 찾는 서재 수’가 많아지면 소소한 이벤트를 여는 회원 분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즐겨 찾는 서재’ 또는 ‘친구’가 1,000명에 도달하면 친한 회원에게 선물을 주는 겁니다. 저는 이런 이벤트를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즐겨 찾는 서재’ 또는 ‘친구’가 많은 것은 회원 개인에게는 정말로 마음이 뿌듯한 상황이고, 축하받을 일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분들과 다릅니다. 그분들처럼 똑같이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요즘 제 서재를 ‘팔로워’하는 회원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 서재를 ‘즐겨 찾기’해서 보고 싶은 회원이 줄었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저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저와 상대방이 동의 없이 자연스럽게 ‘친구’로 맺어지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글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와 상대방이 서로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다고 해서 그 글을 제대로 읽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지 않아도 ‘좋아요’를 눌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좋아요’를 눌러주는 일은 좋으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친구’라는 이름에 너무 집착해서 반강제적으로 해야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즉, 상대방이 아주 친한 ‘친구’ 회원이고, ‘즐겨 찾는 서재’이니까 무조건 ‘좋아요’를 눌러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생각이 자칫 정당한 비판마저 위축시키지 않는지 고민해야봐야 합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이름만 ‘친구’인 회원이 있습니다. 본인의 글은 열심히 올리고, 정작 상대방의 글은 잘 안 읽습니다. 이런 분들을 최소 3개월 이상 지내보면 활동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됩니다. 열심히 글을 쓰는 건 좋은 일입니다. 친교 활동이 부담스러워서 글 작성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누구나 남들에게 자신을 노출(또는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상대방의 자아 노출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심리 반응이 ‘셀카 패러독스(The Selfie Paradox)’입니다. 자신의 셀카를 많이 찍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정작 상대방의 셀카에 관심 없는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을 열심히 쓰는 분들은 많아도 상대방의 글을 열심히 읽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친구’ 수가 많을수록 ‘친구’의 서재 글을 다 볼 수 없습니다. 북플 뉴스피드에 뜨는 ‘친구’ 회원들의 ‘읽었습니다.’, ‘읽고 싶어 합니다.’ 정보가 점점 많아지니까 서재 글이 묻힙니다. 북플 등장 이후로 서재 글을 읽기가 더욱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는 ‘친구 추가’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친구 신청'도 하지 않습니다. 계속 ‘친구’ 수가 늘어나면 수없이 올라오는 글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하루에 열 편 이상 뉴스피드에 공개된 ‘친구’ 회원의 글을 정독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읽어보려고 합니다. 작성자의 정성이 느껴지는 글은 그냥 안 보고 지나갈 수 없어요. 제 취향에 맞지 않는 주제의 글은 그냥 넘깁니다. 애초에 읽지 않은 글에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 서재를 ‘팔로워’한 회원 중에는 ‘이달의 당선작 독자 선정 위원회’ 소속 회원이 있을 겁니다. 다음 달부터 제15기 독자 선정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오늘 20명의 15기 독자 선정 위원회 명단이 공개됩니다. 아마도 이분들이 제 서재를 즐겨 찾거나 ‘팔로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 목록에 독자 선정 위원회가 포함되어 있다면, 서재 글이 ‘이달의 당선작’에 뽑힐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의도하지 않은 혜택을 받지 않기 위해서 ‘팔로워’ 회원들을 ‘친구’로 추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서재 활동과 관련된 제 성향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건방진 소리 듣더라도 호불호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상대방에게 제 취향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글을 보고 나서 ‘친구’ 관계를 해제한다고 해서 전혀 불쾌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저의 지루하고도 건방진 글을 참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글에 자주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들에게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분들의 글을 조금이라도 더 읽으려고 하고, ‘좋아요’를 눌러줍니다. 또한, 그분들에게 특별한 선물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많이 받은 만큼 주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제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도 환영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과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싶지 않으며 오히려 악감정없이 원만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칭찬과 비판이 주고받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소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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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0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30 11:49   좋아요 0 | URL
제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북프리쿠키 2017-03-30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입니다.^^
현실적으로 실천이 어렵다고 틀린 얘기가 되는 건 아닐테니깐요.
북플말고 sns를 끊었는데요.
싸이러스님의 말씀중에는 sns의 폐해가 많이 담겨있기에 저부터라도
조금씩 바뀌어 나가야겠어요~
책을 읽고 쓰고 같이 공감하는 원래의 취지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cyrus 2017-03-30 11:55   좋아요 2 | URL
페이스북이 싫어서 떠난 뒤로 지금까지 유일하게 활동하는 온라인 공간이 알라딘 서재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 비슷한 북플이 나오면서부터 제가 부담스러워했던 상황을 다시 겪게 되더군요... ㅎㅎㅎ

제가 밝힌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맞는 것도 아니고요. 각자가 편하게 느껴지는 방향으로 서재 활동을 하면 됩니다. 그냥 저처럼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 알면 됩니다. ^^;;


transient-guest 2017-03-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이 편하지만 예전의 시스템이 그립기도 합니다 저도 고민 중이에요

cyrus 2017-03-30 20:53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를 떠나고 싶어도 여기서 쌓인 정을 생각하면 쉽게 떠날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

오후즈음 2017-03-3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요. 전 이곳보다 네이버 블로그를 훨씬 먼저 했는데요. 예전 이웃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걸 보면서 오래전의 정답던 그 작은 방문들이 그리울때가 있더군요

cyrus 2017-03-30 20:56   좋아요 0 | URL
제가 알라딘 서재에 활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난 분들이 그립습니다. 서재 활동이 뜸해지면 예전에 만났던 분들도 서재 활동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서재 활동을 재개했을 때 서재 분위기가 썰렁했습니다.

잠자냥 2017-03-30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늦기 전에 cyrus 님과 친구가 되어서 다행이군요. 하하하. ^^;;

닷슈 2017-03-30 14:2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생각해요

cyrus 2017-03-30 21:00   좋아요 1 | URL
To. 잠자냥님, 닷슈님 / 예전에는 친하게 지낸 분에게 오래오래 잘 지내자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내보니까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소한 다툼 때문에 사이가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고, 예고없이 서재 활동을 멈추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상황을 한번쯤은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레삭매냐 2017-03-3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친구 신청 먼저 해주시고 아무런 팔로우업이
없는 분들은 정리를 해야 할까 싶더라구요.

그리고 저랑 독서취향이 현저하게 다르신 분들도...

SNS 가 소통의 수단이라기 보니 어느 순간 피로도로
느끼게 되면 정말 피곤해 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cyrus 2017-03-30 21: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새로운 취향을 접하는 것도 좋긴 한데, 거기에 너무 열중하면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못할 때가 있어요. 책은 제가 읽고 싶은 걸 읽어야 해요. 다른 분들이 소개하고, 추천하는 책들을 다 읽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책 추천하는 글은 안 써요. 안 읽은 책을 추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yureka01 2017-03-31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준이 북플이든 서재이든 글이 있냐 없냐로 판단합니다.
글 없는 서재 혹은 북플은 제외.
단, 외부의 사진블로그 분들 몇 분 계시는데 알라딘하곤 상관없으니 예외입니다.

서재나 북플에서 친구 200명 넘어가면 올라오는 블로그 글 다 못보거든요....

소통이 될려면 100명이하 일 수밖에 없죠...
100명 넘으면 하루 종일 서재블로그글만 봐도 시간 부족이고 다 못보거든요.ㅋ
솔까 친구 숫자 200넘어가면 블로그는 혼자 독고다이 하겠다는 의미와도 다를바 없을 거 같아서요..

cyrus 2017-03-30 21:07   좋아요 2 | URL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원 수를 ‘던바의 수‘라고 합니다. 가장 적합한 던바의 수가 150입니다. 그런데 이 수는 최대한 많이 잡은 겁니다. 실질적으로는 20명이 적당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제 글을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다는 분들의 수가 열 명 조금 넘습니다. 정확히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충 어림 잡으면 그 정도 나옵니다.

앤의다락방 2017-03-3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통. 공감합니다.

cyrus 2017-03-30 21:08   좋아요 0 | URL
제일 쉬우면서 어려운 일이 ‘소통‘인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3-30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셀카 페러독스... 재미있네요. 친구 신청 기능은 알라딘 최악의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페이스북도 아니고.... 뭔가 십습니다..

cyrus 2017-03-30 21:09   좋아요 0 | URL
아예 ‘친구 서재‘라는 명칭이 생겼어요. 북플의 ‘친구‘와 알라딘 ‘서재‘를 억지로 합친 느낌이 들어요.

stella.K 2017-03-30 14: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옳은 말이야.
그런데 이 좋아요가 생각해 보면 꼭 완전히 다 읽고 동의의 의미만을 구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꼭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좀 벗어날
필요도 있거든.. 책을 완독해야만 옳은 독서는 아닌 것처럼.
좋아요가 딱 하나여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지.
좋아요 말고도 여러 다양한 문항이 만들어 져야하는데...
지금으로선 읽는 사람이 해석하는 수 밖엔 없어.
예를 들면 누구의 죽음의 소식에 좋아요를 누르잖아.
그게 정말 그 사람이 죽어 좋은 게 아니라 조의의 의미라는 걸
우린 암묵적으로 해석하잖아.

너도 그렇겠지만, 내가 쓰는 글에 꼭 와서 좋아요를 누르고 가는
이웃이 있거든. 난 솔직히 그 분들 서재에 관심이 없어.
그런데도 와서 누르고 가면 그게 그렇게 고맙더군.
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그분들이 내 글에 무조건 다 동의해서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인정한다는 뜻도 있겠지.
아무튼 이 춘곤증의 계절에 주저리 주저리 떠들 수는 없고
그냥 좀 유연한 사고를 가져 보자고.

근데 난 네가 제기한 이달의 당선작의 부분은 전적으로 동감한다.
당선작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열심히 쓰는데 되는 사람만 되고.
너무 불공평해. 성실파들은 어쩌라고...ㅠ

cyrus 2017-03-30 21:1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누님이 정말 좋은 말씀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깐 제 생각에 모순이 있었어요.

‘좋아요‘ 누른 분들이 고맙다고 하면서도 글 안 읽고 ‘좋아요‘ 누른 분들을 비판했으니까요. 제가 좀 꽉막힌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친구 추가‘를 하지 않고, 서재 활동을 해볼 생각이예요. 예전에 비해 ‘좋아요‘ 받은 수가 적어질 거예요. 일종의 패널티라고 생각해야죠.

감은빛 2017-03-30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과 서재 친구여서 시루스님의 독창적이고, 명쾌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제가 서재에 자주 들어오지 않아, 자주 읽지는 못 했습니다.

북플은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언제였는지도 생각나지 않네요.
요즘은 가끔 신간 정보 검색하러 피씨로만 알라딘에 들어옵니다.
서재는 진짜 오랜만에 접속해보네요.

가끔 들어와서 읽는 서재 친구들 글이 참 좋다고 느껴요.

cyrus 2017-03-30 21:26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 시절에는 정독까진 아니어도 글을 천천히 읽을 수 있었어요. ‘읽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떤 주제의 글 한 편 가지고 치열하게 논쟁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북플은 짧은 글, 사진 위주의 게시물을 보기 편안한 공간입니다. 게다가 북플로 먼댓글마저 달 수 없어요. 이러면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분위기가 형성될 수 없어요. 알라딘이 북플을 참 잘 만들었어요. 회원 간의 친목을 더욱 돈독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줬으니까요.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싸우는 일이 보기 힘들어졌어요.

곰토낑 2017-03-31 0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 이십니다. 저도 저 싫은건 안하고 안읽으려고 하는데 읽으셨든 안읽으셨든 좋아요 눌러주시는분들 참 고마워서 제가 좋아하는것도 아니지만 일종의 의리(?)로 저도 눌러주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받은게 있으니 돌려주는게 나쁜건 아니잖아요? ^^ 비록 성의는 없을지라도.. 제가 느꼈던 소소한 기쁨을 그분도 맛보게 된다면 좋은거지요 ㅎㅎ

친구관계는 아니지만 종종 들러주셔서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사소한것에 너무 신경쓰지마시고 하고싶은 얘기 맘껏써주세요 ㅎㅎ(그렇게 생각하시는걸 사소하다고 폄하하고 싶은건 아니나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네요 ㅠㅠ)

cyrus 2017-03-31 09:33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을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슈플레님. 저와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솔직하게 터놓고 말씀해주시니까 속 시원합니다. 어제 제가 밝힌 입장은 상당히 민감한 주제입니다. 제가 잘못 전달하면, 상대방의 기분이 언짢게 생각할 수 있어요. 몇몇 분들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가볍게 볼 수 있는 걸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요. ^^;;

AgalmA 2017-03-31 05: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웃 뉴스피드 너무 많아서 안그래도 넘 스트레스ㅎ;;
cyrus님 글에 빌붙어 저도 입장 좀 얘기할께요ㅎ;
정보 습득 차원에서 즐겨찾기용으로 친추하시는 분들 꽤 되죠. 이건 시스템상 말릴 수도 없고 나랑 소통할 수 있겠다 싶음 저도 맞팔합니다. 그런데 제 일방적 소통만 있다 싶음 친구 해제를 고민하게 됩니다. 좋은 글 쓰는 분일 땐 소통 포기하고 그냥 글 보게 되면 좋아요만 눌러드리죠... 강제 정보 습득자가 된 기분ㅎㅎ;
정보 습득 차원이 아니라 소통을 원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 보다가 자신과 안 맞다 싶음 친구해제 하시죠. 그거 땜에 서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고 참 복잡하더군요. 소통 많이 하던 이웃이 뜸하면 섭섭해하고 그럴까봐 굳이 찾아가 좋아요 누르고 하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말로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저는 친구이든 아니든 좋은 글이다 싶음 좋아요 누릅니다. 물론 봐야 가능한 거지만ㅎ;; 요즘은 이웃 글도 다 챙겨 보기 힘든 처지라;;
제게도 의무감으로 좋아요 안 눌러 주셔도 됩니다. 저도 그래야 부담없이 글 쓰고 할 거 같아서ㅎㅎ서로 시원하게 친구해제해도 되고ㅎㅎ

cyrus 2017-03-31 09:42   좋아요 0 | URL
‘강제 정보 습득자’라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부담스럽게 느꼈던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해주셨어요. 제가 몇 달 전부터 조금씩 ‘친구 해제’를 하고 있었어요. 그분들을 싫어해서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니까 별 문제가 없다고 봐요. 어차피 ‘친구 해제’를 해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팔로워’에 계속 있는 것 보면요. ‘친구’ 관계는 아니더라도 댓글로 소통하면서 알고 지내는 관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

2017-03-31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31 09:44   좋아요 1 | URL
한쪽 귀로 듣고, 나머지 귀로 흘러내리는 것이 좋습니다. 직접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님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Agalma님처럼 서재 활동을 하신다면, 서재 활동에 대한 정신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

2017-04-04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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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는 스스로 시장경제의 원리인 체하는 습성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여 여전히 끈덕지고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1]

 

 

 

인간을 분류하는 기본적인 범주는 성별에 따른 구분이다. 인간은 태어날 적부터 해부학적 차이에 의해 남자와 여자로 구분될 뿐 아니라 사회적 관습에 따라 여자가 해야 하는 일과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정해진다. 아내는 주로 자녀양육과 집안일의 책임을 지게 되고, 남편은 전적으로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을 담당한다. 요즈음에 와서 젊은 아빠들이 자녀 양육과 가사 일에도 참여하는 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집안일은 여전히 아내 몫이다.

 

일찍이 서구에서 시작된 생물학적 결정론은 남녀는 본성적으로 다르며 그에 맞는 성 역할이 있다고 차이의 논리를 펼친다. 이는 여성을 사적 영역과 모성(母性)을 상징하는 존재로 국한함으로써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기제로 이용된다. 여성을 종속적으로 보는 생물학 결정론자들은 남존여비를 신체적 차이에 근거한 자연의 질서로 보고, 성별분업도 생리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며, 어느 문화권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라고 본다. 에드워드 오즈번 윌슨(E.O. Wilson)이 정립한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은 생물학적 결정론자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인간의 사회성에도 적용하려는 했다.

 

 

수렵 채취 사회에서 남성은 사냥을 하고 여성은 집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습관에 대한 강력한 집착은 대다수의 농업 사회 및 산업 사회에도 끈덕지게 남아 있으며 그런 사실에만 근거한다고 해도 유전적인 기원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유전적인 편향은 대단히 강력해서 가장 자유롭고 평등주의적인 미래 사회에서도 실질적인 분업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여자는 집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통념은 여성의 열등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작용해 지금까지 여성에게 억압적 요인이 돼왔다. 이러한 잘못된 통념은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이데올로기다.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은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이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에 장애 요인이 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국부론》을 통해 밝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는 개인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해 이익을 창출토록 하는 시스템이다. 경제학자이기 전에 윤리학자였던 스미스는 정의와 이성에 따라 노동, 생산, 교환, 분배가 이루어지는 시장구조를 만들려면 도덕적 엘리트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스미스의 도덕적 엘리트주의는 남성 중심의 엘리트에게만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남편의 경제활동은 유급노동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부여되지만, 대다수 주부의 가사노동은 당연한 몫으로 인식되면서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여성의 사회적 · 경제적 지위는 남편에게 의존하는 종속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가사노동은 가족에 대한 자발적 헌신, 봉사와 사랑의 행위임에도 경제적인 보상이 없다는 이유로 임금 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 조너선 B. 화이트(Jonathan B. Wight)의 《애덤 스미스 구하기》가 재출간되었다. 이 책으로 스미스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이 스미스가 현대에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이다. 경제학의 대부는 자동차정비공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보다 먼저 일찍 나온 책 한 권이 있다. 2월 초순에 나온 카트리네 마르살(Katrine Marcal)의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약칭 ‘잠깐 애덤 스미스 씨’)는 스미스를 곤경에 빠뜨리게 한 책이다. 마르살은 시장경제에서 오랫동안 배제된 ‘보이지 않는 여성’의 경제적 권리와 노동을 조명한다. 그녀는 남자들이 이기심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던 것도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한 그들의 아내 혹은 어머니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각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바닥에 깐 자율경쟁을 존중하는 시장자유주의자라면 ‘여자=전업주부=무보수 노동=비경제 활동’으로 이어지는 낡은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결혼 · 임신 · 출산 · 가사 등으로 사회경력이 단절돼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에게도 일할 충분한 기회를 주고 나서 스스로 행복한 길을 선택하라고 해도 그런 등식이 성립할까. 만약 스미스가 자동차정비공이 아닌 주부로 태어난다면,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가버린 시장경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주류경제학은 양육이나 가사 일을 이타적인 본성을 가진 여성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간주해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주류경제학으로 인정받고 싶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불평등은 불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이 주류경제학으로 자리 잡을수록 여성들은 가부장제 아래서 차별받으면서 남성들에게 무임노동을 제공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녀들은 스미스가 말하는 ‘개인’이 되지 못한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맹신하는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여성’을 만들고 있는지를 환기시킨다.

 

1970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사회생물학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했다. 나는 성차별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경제학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남성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낡은 경제학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주류경제학이 가정하는 이기적 인간의 합리적 선택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경제학이 변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생겼다. 현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고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성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면 경제가 발전한다는 구닥다리 환상에 벗어나야 한다. 지금은 ‘보이는 기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여성’을 위한 경제 정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

 

 

 

 

[1] 원문 : 가부장제는 스스로 자연의 원리인 체하는 습성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여 여전히 끈덕지고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케이트 밀렛,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343~344쪽)

 

[2] 에드워드 오즈번 윌슨의 글 일부 인용,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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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8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29 07:40   좋아요 0 | URL
***님의 생각을 극단적으로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이 찾아와야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그걸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

transient-guest 2017-03-29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같이 일해보면, 여자들이 일을 더 잘하는 것처럼 느낀 적도 많이 있어요. ㅎㅎ

cyrus 2017-03-29 08:05   좋아요 1 | URL
‘여자는 남자보다 일을 못해‘라고 믿는 남자들의 논리는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transient-guest 2017-03-29 08:07   좋아요 1 | URL
분명히 남녀가 각각 장단점을 보이는 일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일상의 업무나 일의 영역은 아니지요.ㅎ 진짜로, 제가 같이 일해본 직원들만 놓고 봐도, 여자들이 훨씬 나았더랬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