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는 그 면목은 호색본(好色本)이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풍자, 풍속소설의 성격을 띤다. 방탕무뢰한 사나이의 생활을 거침없이 표현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를 둘러싼 자녀들의 음욕생활 속에 부각된 타산과 질투, 색과 욕(慾)의 발악을 그려 인간의 현실을 고발한 자연주의 문학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병주, 《이병주의 에로스 문화 탐사 2》 20쪽)

 

 

 

중국의 4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금병매》가 내일부터 정식 출간된다. ‘금병매’는 등장인물인 반금련, 이병아, 춘매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서 지은 제목이다. 《금병매》는 에로틱한 표현 때문에 민간의 풍속을 해치는 ‘음서’로 낙인 찍혀 세 차례나 판금 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중국의 나머지 기서인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와 달리 평범한 삶의 일상에서 소재를 취해 인간의 욕망과 현실에 천착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원래 《금병매》는 작가 미상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1933년에 『금병매사화(金甁梅詞話)』라는 책이 발견되어 이를 근거로 ‘난릉 소소생(蘭陵 笑笑生)’이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로 밝혀졌다. ‘난릉’은 현재의 산동성 봉현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금병매》의 시대적 배경은 12세기 초의 송나라 휘종 시대이다. 작가가 16세기 말 명대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시대상을 앞당겨서 설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 줄거리는 반금련과 서문경의 음탕한 놀음, 거기에 얽힌 음모와 배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는 노골적인 성 묘사를 이유로 유교 사상가들은 《금병매》를 ‘불량 서적’으로 규정했다. 루쉰(魯迅)은 자신의 책 《중국소설사략 : 루쉰 전집 11》(그린비, 2015)에서 《금병매》를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했다.

 

 

 

 

 

 

 

 

 

 

 

 

 

 

2002년 ‘술 출판사’에서 펴낸 《금병매》 완역본은 절판되었다. 10권의 책을 모두 구하려면 거금이 필요하다. 원작의 줄거리 일부를 손질한 요약본들이 출간되었지만, 원작의 묘미를 그대로 살려내지 못한 단점이 있다. 이로써 ‘사단법인 올재’의 《금병매》는 ‘가장 독보적인 번역본’이다. 다만, 이 책이 ‘한정판’이라서 며칠 만에 ‘절판’된다.

 

 

 

 

그동안 ‘사단법인 올재’는 《수호전》(2014년 11차, 도서명은 ‘수호지’), 《서유기》(2015년 15차), 그리고 ‘5대 기서’를 논할 때 언급되는 《홍루몽》(2016년 19차)을 출간했다. ‘사단법인 올재’가 번역하지 않은 4대 기서가 바로 《삼국지연의》다. 올재 관계자 측에 따르면 《삼국지연의》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2015에 《서유기》를 샀을 때만 해도 《금병매》와 《삼국지연의》도 나오길 바랐던 적이 있다.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될 줄이야... 정말 지금도 생각하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 절판된 《이병주의 에로스 문화 탐사》 2권(생각의 나무, 2002)은 《금병매》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이 글을 작성할 때 참고한 책이다. 이 책에 서문경과 반금련이 섹스하는 장면을 묘사한 춘화도 실려 있다. 이병주는 루쉰이 《금병매》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중국소설사략》의 내용 일부를 인용했다. 그런데 그는 《금병매》의 작가 소소생을 ‘소소자(笑笑子)’로 잘못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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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4-2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네요...

그런데 지난 번에 사둔 책상자를 아직도 까보지
않고 있어서 부담이.

일단 가격 부담이 적으니 그래도 일단 질러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쩌면 온라인 판은 금세
품절이 되지 않을까요. 금병매고!

서문경과 반금련, 떡장수 무대 그리고 타호무송
이 등장하는 수호전이 떠오르네요.

cyrus 2017-04-20 22:57   좋아요 0 | URL
올재 시리즈가 3개월 간격으로 나옵니다. 계속 사다보면 올재 시리즈가 나오는 달이 언젠지 짐작할 수 있어요. 그 달에는 일부러 책을 사지 않습니다. 잔뜩 사놓으면 못 읽거든요.. ^^;;

syo 2017-04-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사놓고 안읽어요.... 싸서 좋긴 한데 싸서 안 읽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cyrus 2017-04-20 22:58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까지 산 올재 시리즈 중에 읽은 것보다 안 읽은 것, 읽다가 포기한 것이 더 많아요. ^^;;

dellarosa 2017-04-2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놓친 홍루몽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ㅠㅜ

cyrus 2017-04-20 23:00   좋아요 1 | URL
내일 11시 되기 전에 미리 교보문고 사이트에 접속해서 주문 준비를 해야 됩니다. ^^;;

돌궐 2017-04-2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사놓고 시간 날 때 식구들 몰래 읽어야겠네요.

cyrus 2017-04-20 23:01   좋아요 0 | URL
우리 집에는 책 읽는 사람이 저와 동생뿐인데, 동생은 이 소설을 모를 거예요. 저는 잘 보이는 책장 칸에 꽂으려고 합니다. ^^

니페딘1T 2017-05-2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재고 남은 것을 알아내어 구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네요. 좋은 작품들이 이미 나왔었군요, 아.. 아깝다 ㅠㅠㅠㅠㅠ

지금부터라도 수집해야겠습니다. ㅎㅎㅎㅎ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cyrus 2017-05-27 18:55   좋아요 0 | URL
종이책으로 나온 것들 중에 일부는 몇 개월 간 무료로 전자책으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올재 셀랙션’이라고 해서 책값을 조금 올려서 재출간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단법인 올재’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출간 소식을 문자로 받을 수 있습니다. ^^

니페딘1T 2017-06-09 10:24   좋아요 0 | URL
친절한 추가 답변..감사합니다. ^^
 
타자의 추방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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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나 집단이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관심사, 의견, 표현 방식이 다르다. 대화도 ‘차이’에서 출발한다. 진정한 의사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성숙한 의사소통에 임하는 사람들은 타자와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충돌은 어떤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감정의 원천이다. 선입견과 아집은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새로운 의견과의 충돌을 일으켜야 그 모습을 감춘다.

 

소통에 관계된 자들 사이의 차이는 대화의 전제이자 본질적 계기이다. 이 전제가 없으면 대화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왜냐하면, 서로 같은 것 사이의 대화란 본래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이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여 나의 뜻대로 따르게 하는 것, 즉 타자를 동화 혹은 동일화할수록 그 사회는 안정된다. 그곳에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사회구성원끼리 서로 싸울 일이 없다. 그러나 유일 진리와 절대 합의를 상정함으로써 타자의 존재나 대화의 가능성을 지워버리면 결국은 파국을 초래한다.

 

한병철은 ‘성과사회’의 폐해를 날카롭게 분석한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에서 한국 사회가 자아와 타자 사이의 부정성이 제거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피로사회》가 타자의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상징적 시도라면, 《타자의 추방》(문학과지성사, 2017)은 과잉 긍정성만 내세우는 ‘피로사회’, ‘성과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산적인 문제 해결을 제시한다.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화두를 던진다.

 

첫째,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제기한다. 다툼과 오해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는 일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져 갈등 양상이 지속될수록 누구나 ‘소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진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화 참여에 소극적인 사람은 자기 생각과 다른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그들에게 사회를 교란하는 ‘불순세력’ 딱지를 붙인다.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는 신자유주의는 기존 사회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확인하고, 배제한다. 한병철은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이 현대 사회에서 ‘반옵티콘(banopticon)’으로 변화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심리정치》, 문학과지성사, 2015)이다.

 

누구나 SNS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며 ‘좋아요’를 눌러 개인적 선호를 밝힌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자아를 노출할수록 ‘같은 것의 창궐’(《타자의 추방》 9쪽)이 일어난다.

 

오늘날 우리는 이방인의 부정성이 제거된 안락함의 지대에서 산다. 좋아요가 이곳의 구호다. 디지털 화면은 점점 더 우리를 낯선 것, 섬뜩한 것의 부정성으로부터 차단한다. (61쪽)

 

페이스북, 그리고 북플은 ‘좋아요’의 공동체이다. ‘좋아요’의 긍정성은 아무 구별도 없이 모든 것을 환영한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늘 바라왔던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평화스러운 풍경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표피적 양상으로만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갈등에 대한 이해를 봉쇄하는 전략이 된다. 차이와 갈등을 사회구성원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으로 인식한다. 담론이 불가능한 사회가 훨씬 더 불안하다.

 

둘째,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경청’이라는 자세로 소통할 것을 요청한다.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다. 경청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여기서 한병철이 말하는 ‘경청’은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병철의 ‘경청’은 귀로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 그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한병철은 ‘타인들과 이야기하고, 타인들을 경청하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차원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심리정치》에서 한병철은 ‘반옵티콘’에 탈출하기 위해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바보’가 되라고 주문했다.

 

바보는 ‘소통하지’ 않는다. 바보는 소통 불가능한 것으로 소통한다. 그는 침묵의 장막 속으로 들어간다. 바보짓을 통해 침묵과 고요, 고독이 있는 자유로운 공간, 정말 말해질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심리정치》 114쪽)

 

침묵이 능사는 아니다. 개인이 침묵을 선택해도 그 자체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소통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불의의 상황을 침묵하는 것은 결국 그 불의를 방조하는 공범자가 된다.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을 견지한다. 그래서 우린 끊임없이 논쟁하고 싸운다. 사실 우리가 서로의 입장을 진정 이해하기는 어렵다. 우리 모두는 타자들의 입장을 전부 알 수 없다. 그래서 타자들의 입장에 귀 기울여야 하고 그들 각자 나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너와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태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서로를 진정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바틀비(Bartelby)처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prefer not to)’[1]라고 말하는 바보가 되기보다는 반대로 ‘소통하는 편’을 택하는 경청자로 살고 싶다.

 

 

 

[1]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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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4-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 분의 자칭 페미니스트들과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최소한 침묵은 아닌 것 같고 ...

제 판단에 맞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기보다 바보로 남게 되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군요.

cyrus 2017-04-20 17:09   좋아요 0 | URL
입장이 다른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이 내 의견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상대방의 의견이 틀렸다고 규정하면서 일말의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혹스러워요.

마립간 2017-04-21 03:56   좋아요 0 | URL
저도 사람인지라 나는 경청을 했지만
상대가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고, 내 의견이 틀렸다고 규정했고 일말의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고다고 말하고 싶지만,
제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가 미숙한 것이겠죠.^^

소통의 기술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중 입니다.

캐모마일 2017-04-2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옵티콘은 배제를 뜻하는 ‘ban‘과 판옵티콘의 합성어로, 적대적인 사람은 제외시키고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을 포섭하는 감시장치라는데 사실 정확히는 이해가 잘 안가네요.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는 신자유주의는 기존 사회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확인하고, 배제한다.˝ 이 부분에서 감이 잡히긴 합니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근대처럼 하드파워 중심의 눈에 보이는 감시와 처벌보다 교묘한 소프트 파워로 포장된 감시와 처벌, 배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을 소개받았네요.

cyrus 2017-04-20 17:23   좋아요 1 | URL
‘반옵티콘’의 의미에 대한 제 설명이 미흡했어요. 부연 설명을 하자면, 판옵티콘의 사회에서 권력이 ‘판옵티콘’이 되어 ‘반대’의 의견을 지지하는 대중을 감시합니다. 판옵티콘의 사회에서는 ‘반대’ 세력을 감시하는 권력의 통치 대신에 권력에 순응하는 사회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감시합니다. 그래서 한병철은 <심리정치>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디지털 기술(SNS)이 투명한 감시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SNS 이용자들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공개합니다. 그런데 한병철은 디지털 네트워크 관계 속 사회구성원이 서로 감시하게 만들어 기존 사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확인하여 배제한다고 주장합니다.

한병철의 글은 기존의 책들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와서 반복합니다. <타자의 추방>도 그렇습니다. <심리정치>를 먼저 읽고 난 뒤에 <타자의 추방>을 읽으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qualia 2017-04-20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통에 관계된 자들 사이의 차이는 대화의 전제이자 본질적 계기이다. 이 전제가 없으면 대화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것 사이의 대화란 본래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이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며, 자아와 타자의 정체성을 더 고차적인 통일성이나 목적에 의해서 혹은 그와 같은 것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는, 즉 차이를 유지하는 관계이다.

→ 제가 잘못 읽은 것일까요? 아무리 위 인용문을 거듭거듭 읽어봐도 셋째 문장 《왜냐하면, 서로 다른 것 사이의 대화란 본래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앞뒤 문장들과 호응이 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혹시 《왜냐하면, 서로 같은 것 사이의 대화란 본래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라고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요?

제가 터무니없는 오독을 하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cyrus 님의 위 문장들을 오독한 것이 아닌가 두렵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이 있어서 시간을 내지 못해, cyrus 님의 윗글을 오늘 밤에야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논제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반가운 글이었습니다. 제 생각과 무척 흡사한 부분이 많아요. 한병철 저자한테도 관심이 가는군요. 기회가 되면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cyrus 2017-04-20 23:08   좋아요 1 | URL
제가 잘못 적었군요. qualia님이 잘못 본 게 아닙니다. ‘같은 것’, ‘비슷한 것’으로 고쳐 써야 합니다. 짧지 않은 글을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읽는 것이 불편하실 텐데, 비문을 잘 보셨습니다. ^^

qualia 2017-04-22 12:13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저도 좀 긴가민가했는데요. 제가 제안한 것으로 수정해주신 cyrus 님 문장을 보니까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입니다. 근데 제가 위 cyrus 님 글을 스마트폰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국가란 무엇인가 - 2017 개정신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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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조직적으로 국민을 관리하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10년 불황에 못 견딘 일본 사회도 천황제와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극우파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이른바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며 일정 부분 전체주의로의 회귀심리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자유주의를 우리는 당연하고 생득적인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개념은 개인의 자유가 거의 부각되지 않았던 부족공동체 시절부터 오랜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등장했고 최근에야 획득된 삶의 방식이다.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개정판은 인류 정치사를 전제군주제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보는 전통적 기술방식 대신 전제군주제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다. 플라톤(Plato)은 국가가 정의 · 선(善) · 덕(德)을 토대로 할 때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하는 자가 되어야 하므로 국가 장래에 도움이 되는 ‘목적’, 즉 정의, 선, 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지도자가 이끄는 국가는 위태롭다. 그렇지만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에는 정치공동체의 부활에 대한 깊은 소망이 담겨 있다. 플라톤의 목적주의 국가론은 사회 전체를 위해 개인적 독립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는 전체주의이다. 칼 포퍼(Karl Popper)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론을 ‘유토피아적 공학(utopian engineering)’으로 이름 붙이면서 사실상 전체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유시민은 홉스(Hobbes)의 국가론과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통치술이 서로 잘 어울리는 관계라고 설명한다. 절대왕정의 역할에 힘을 실어 준 두 사람의 정치사상은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이후, 군주들은 국가 존속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모든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국가주의 국가론은 목적주의 국가론에서 파생된 이론이다. 사회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막기 위하여 국가가 모든 종류의 정의와 불의에 대한 해석을 독점해야 한다. 홉스가 생각하는 국가의 목적은 사회 내부의 무질서를 방지하고,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의 존재 의의는 있을 수 없다. 자기 보전을 지향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에 동의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와 홉스 등에 의해 강화된 지도자는 지상의 절대적 궁극목표로서 신(神)을 대체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국가의 존재 및 역할 자체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 이론도 중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마르크스(Marx)는 국가가 소멸하여 특권계층과 지배계층이 없는 자유로운 상황의 연합체가 들어서는 것으로 예상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반 개인주의적 입장을 보인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위계질서 회복이 아니라 개개인의 평등을 위해 공동체를 주장했지만, 나중에 소련 등 사회주의 전체국가들을 탄생시키는 데 공헌한다.

 

전체주의 사회의 기득권자들은 안정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일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확산시켜 지도자의 무한 권력에 순응하도록 만든다. 개인의 자유 보장은 국가 중심의 전체주의를 거부한다. 국가가 국민의 신념을 ‘그르다’고 평가하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옳은’ 이념을 주입하고자 하는 국가주의 국가론이야말로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기반이 된다. 2017년 3월 10일 우리나라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파면’ 결정을 확인했다. 민중의 힘으로 권력을 오 · 남용한 지도자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과정을 지켜본 저자는 국가주의 국가론의 기반이 점차 약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혼란으로 어수선한 나라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는 대안의 국가론으로 자유주의 국가론을 제시한다.

 

국가주의 국가론은 오래 살아남겠지만 사회적 · 기술적 분업이 더욱 넓고 깊게 이루어지고 정보통신기술과 지식혁명이 진전될수록 기반이 점차 약해질 것이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위축되면서 생기는 담론시장의 공백을 채울 다른 유력한 국가론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담론은 자유주의 국가뿐이다. (79쪽)

 

역시 ‘프티부르주아 리버럴(petit bourgeoisie liberal, 자유주의적 소시민계급)’다운 저자의 생각이다. 국가주의 국가론의 기반이 약해질 것으로 보는 저자의 전망에 동의할 수 없으나 그가 정의와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주의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오늘날의 자유주의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용어로 자주 쓰인다. 특히 시장경제를 전파하는 친 기업단체 자유경제원이 거의 자유주의를 독점하다시피 전파하는 바람에 누군가가 ‘나는 자유주의자다’라고 하면 그쪽 단체와 연관된 이데올로그(Ideolog)로 오해한다. 자유주의는 국가에 소속되는 의무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민중에 뿌린 사상이다. 오로지 재벌 중심의 자유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빌려 사상의 자유를 위협한다. 특정 권력에 기대면서 자신과 다른 사상이나 개인의 신념을 억압하는 그들은 우파도 아니며 자유주의도 아니다.

 

유시민은 자유주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 및 역할에 대해서도 재고한다. 가장 정의롭다고 알려진 민주주의도 언제든 중우정치와 조작된 여론에 함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급기야 대중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다른 쪽 극단인 전체주의를 향해 질주하기조차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동 정치가, 아첨하는 정치꾼,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인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정치는 지식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폐해에 대한 일부 비판 때문에 전체주의로의 회귀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는 이를 방지할 수 있는 특별한 요소가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으뜸가는 원칙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 유권자들이 할 일이다. 우리는 전보다 더 강력해진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자유주의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숙고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냉소하는 낡은 힘을 물리칠 시기가 온 것 같다.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러보낸다면 국가주의 국가론의 기반이 약해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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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19 2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말씀처럼 사회갈등과 이로부터 파생된 혼란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 인위적인 안정을 강요하는 문제가 전체주의 국가의 특성입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휴전상태라 국가에 의한 강제가 합법화되고 있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요.. 이제는 이러한 잘못된 상식이 고쳐질 때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4-20 13:25   좋아요 1 | URL
국가주의 국가론의 기반이 점점 약해질 거라 보는 유시민씨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어제 대선 후보들의 (개그, 중구난방) 토론을 보셨으면 아셨을 거예요. 남북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대한 정치적 갈등은 이어질 것입니다.

서니데이 2017-04-1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개정신판으로 소개되는데, 이전의 책과 개정판의 차이가 많은가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7-04-20 13:25   좋아요 1 | URL
구판은 읽어보지 않았어요. ^^;;
 

 

 

 

 

 

 

 

 

 

 

 

 

 

 

 

 

 

 

 

 

 

 

 

 

 

 

 

 

*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민음사, 1994)

* 아폴리네르 《알코올》 (문학과 지성사, 2001)

* 아폴리네르 《알코올》 (열린책들, 2010)

* 아폴리네르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민음사, 2016)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시 선집 《미라보 다리》(민음사, 1994)의 초판 발행 연도는 1975년이다. 이보다 더 오래된 아폴리네르 시집 번역본은 1953년에 장만영 시인이 엮은 책이다. 이규현 씨가 번역한 《알코올》(문학과 지성사, 2001)은 ‘품절’ 되었으므로 지금으로는 황현산 교수가 번역한 《알코올》(열린책들, 2010)과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인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 2016)가 믿고 읽을 만한 아폴리네르 시집 번역본으로 남아 있다.

 

 

 

 

 

 

 

 

 

 

 

 

 

 

 

 

 

 

* 황현산 《아폴리네르》(건국대학교출판부, 1996)

* 유기환 《알베르 카뮈》(살림, 2004)

 

 

황 교수는 아폴리네르 연구에 정통한 불문학자다. 파스칼 피아(Pascal Pia)《아뽈리네르》(열화당, 1983)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알라딘에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책이다. 다행히 네이버에 검색하면 이 책의 생김새와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파스칼 피아는 프랑스의 언론인으로 본명은 피에르 뒤랑(Pierre Durand)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와 함께 레지스탕스 기관지를 운영했다. 장 그르니에(Jean Grenier)가 카뮈의 문학적 성장에 도움을 준 스승이라면, 피아는 카뮈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도와준 후원자이다. 카뮈는 자신의 작품 《시지프 신화》를 피아에게 헌정했다. 살림지식총서 51번째 책《알베르 카뮈》(살림, 2004)에 보면 피아와 카뮈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피아를 ‘커피 애호가’이자 ‘아폴리네르 전문가’로 소개하고 있다. 황 교수가 번역한 《아뽈리네르》와 아폴리네르의 시 작품들을 분석한 《얼굴 없는 희망 : 아폴리네르 시집 알콜 연구》(문학과 지성사, 1990)는 구하기 어렵다. 건국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아폴리네르》(1996)는 분량이 얇고, 아폴리네르의 시 작품들을 중점으로 다룬 책이다.

 

 

 

 

 

 

 

 

 

 

 

 

 

 

 

 

* 아폴리네르 《내 사랑의 그림자》 (아티초크, 2015)

 

 

 

아폴리네르는 ‘상형시집’으로 알려진 『칼리그람(Calligrammes)』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의 시집을 펴냈다. 칼리그람은 ‘아름다움’을 뜻하는 ‘Calli’와 ‘문자’와 ‘그림’을 뜻하는 ‘gramme’를 합친 말이다. 쉽게 말하면, 칼리그람은 ‘글자로 만들어진 그림’이다.

 

 

 

 

 

 

 

 

아폴리네르는 동료 작가보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앙리 루소(Henri Rousseau) 등의 화가들과 더 가까이 지냈다. 그는 훗날 입체주의,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화가들의 재능을 일찍 눈여겨 본 전위적인 예술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은 활자나 시구의 배치를 통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낸 독창적인 작품이다. 《미라보 다리》와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그리고 《내 사랑의 그림자》(아티초크, 2015)에 『칼리그람』에서 선별한 재미있는 상형시를 확인할 수 있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 지성사, 2004)

* 유석호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사실 글자의 배열로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독특한 장식문화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문학사 전체를 볼 때 상형시가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은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이 아니라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팡타그뤼엘 제5서』다.

 

 

 

 

 

 

 

『팡타그뤼엘 제5서』는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 지성사, 2004)의 후속작이며 여기에 실린 상형시는 ‘신성한 술병의 삽화’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라블레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온 『팡타그뤼엘 제5서』는 위작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작이다. 그래서 라블레가 ‘신성한 술병의 삽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미라보 다리》의 목차가 있는 장 바로 앞에 앙리 루소의 그림이 있다. 그림 밑에 『미라보 다리』의 유명한 시구가 인용되어 있다. 이걸 본 독자들은 루소의 그림에 있는 다리가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그림 제목이 '미라보 다리'가 아니다. 황 교수는 《아뽈리네르》에서 이 그림 제목을 ‘미라보 다리’로 잘못 소개했다. 루소가 그린 다리는 파리 16구의 명칭을 붙인 ‘파시 다리’이다. 이 다리는 1948년에 ‘비르 아켐 다리(Pont de Bir-Hakeim)’로 변경되었다. 미라보 다리와 비르 아켐 다리는 같은 행정구 안에 있을 뿐, 이름과 모양새가 다르다. 파리에 여행하러 갈 때 미라보 다리를 보게 되면, 다리가 있는 위치를 잘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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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4-1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에 갔을 때, 유명한 미라보 다리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애개 쪼끄매..이러면서ㅜ
그나저나 cyrus 님 전방위적인 글, 좋아요!

cyrus 2017-04-19 15:35   좋아요 0 | URL
유명한 다리를 직접 보셨군요. 저는 사진으로 봤을 때 다리가 크게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가 보군요.. ㅎㅎㅎ

꼬마요정 2017-04-1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좋아요 ㅎㅎ 사실 ㅎㅎ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처음 아폴리네르를 만난 건 미라보 다리였죠. 아직도 기억나네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딱 여기까지ㅜㅜ

cyrus 2017-04-19 19:50   좋아요 0 | URL
미라보 다리, 정말 유명한 시죠. 시인 이름은 몰라도 제목과 시구를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임모르텔 2017-10-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 처음 듣는 단어예요! <칼리그람-글자로 그리는 그림>
저처럼 지식이 많지않은 사람이 읽는데에 어려움없게 해주시네요.ㅎㅎ
고리타분한 학교교육들~,~근데 뒤늦게 알아가는 기쁨이 이런거군요.

cyrus 2017-10-15 17:39   좋아요 0 | URL
학교에서 알지 못한 것들,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이 없었으면 사람들은 독서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

임모르텔 2017-10-15 20:11   좋아요 0 | URL
학교는 감옥이예요. 제 학창시절때는 5분만 지각해도 여고생 턱을 주먹으로 훅~을 날리는 남자선생이 있어서.. 전 말끼를 못 알아듣고 언어이해력이 짧아서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어요! ㅋㅋ반평균점수 깍으면 여고생들 배를 발로 차고 , 그 트라우마가 지금도 있어요.요즘 같으면 고소감이죠. 등교하면 늘 시범케이스 한명 족치고 가르치던 시절,,,..갑자기 Pink Floyd -The Wall ... 을 듣고싶군요!

cyrus 2017-10-16 10:33   좋아요 0 | URL
네, 옛날에 몹쓸 짓을 하는 선생님들이 한 두명은 있었죠. 장난이라고 해도 제자를 막 대하는 교사는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Edward Bulwer Lytton)의 희곡에 나오는 말이다. 글의 힘이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이 말은 오늘날에도 명언으로 전해지고 있다.

 

 

 

 

 

 

 

 

 

 

 

 

 

 

 

 

 

리턴의 대표작은 《폼페이 최후의 날》(황금가지, 2003)이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진 로마의 대도시 폼페이(Pompeii)의 비극을 생생하게 그린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에 흑마술과 점성술에 능통한 이집트의 대제사장 아르바케스(Arbaces)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 글라우코스(Glaucus)를 방해하는 악인이다. 글라우코스는 폼페이 최고의 미녀로 알려진 이오네(Ion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오네를 짝사랑하는 아르바케스는 글라우코스와 이오네와의 관계를 끊기 위해 율리아(Julia, 그녀는 글라우코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오네에게 질투심을 느낀다)와 함께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

 

 

 

 

 

 

 

 

 

 

 

 

 

 

 

 

 

 

 

 

 

 

 

 

 

 

 

 

 

 

 

* 에드워드 불워 리턴 《마법사 자노니》 (창천사, 2006)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북스피어, 2012)

* 덩컨 히스 《낭만주의》 (김영사, 2002)

 

 

 

리턴은 불가사의한 마술의 힘을 사용하는 존재가 등장하거나 이를 소재로 한 고딕 소설(Gothic fiction) 몇 편 남겼다. 그는 실제로 마법과 밀교, 신비주의 등에 심취한 오컬티스트(Occultist)였다. 리턴의 오컬티즘(Occultism)이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 《마법사 자노니》(창천사, 2006)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는 이 작품의 이야기 전개가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로맨스 소설로서의 훌륭한 능력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러브크래프트의 평을 좀 더 상세하게 풀어보면, 《마법사 자노니》는 고딕 로맨스(Gothic Romance)로 볼 수 있다. 고딕 문학의 특징은 로맨스와 공포 요소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파생된 고딕 로맨스는 19세기 신비주의에 대한 낭만이 싹트면서 피어난 장르다. 이때 작가와 예술가 들은 압도하는 초현실적 힘을 재현하며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우고, 무한한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 (자유문학사, 2004)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현인, 2014)

* 에드워드 불워 리턴 《셋집》 (현인, 2014)

 

 

 

1859년에 리턴이 발표한 단편소설 『The Haunted and the Haunters』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믿음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유령 저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 (자유문학사, 2004)에 처음 소개됐다. 십년 후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현인, 2014)『셋집』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영국 신사는 신비학에 박식한 편이지만, 유령의 존재와 초자연적인 힘의 실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문제의 저택에 하룻밤 지내게 되고, 그곳에서 불가사의한 현상들을 체험한다.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의 『유령 저택』은 역자를 잘못 만난 텍스트이다. 『유령 저택』을 옮긴 역자는 책의 말미에 고딕 문학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각각 수록 작품에 대한 해설을 썼다. 하지만 역자는 책의 번역을 위해 리턴의 오컬티즘을 겉핥는 정도로 이해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중세의 연금술사 겸 의사인 파라켈수스(Paracelsus)의 책 구절을 인용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유령 저택』의 역자는 파라켈수스를 언급하지 않고, 그의 책 구절을 주인공이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사례로 임의로 번역했다. 『유령 저택』의 역자가 기본적인 오컬트 지식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원문에 있어야 할 ‘파라켈수스’가 번역하는 과정 중에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 다키하라 나루미 《소환사》 (들녘, 2000)

* 하니 레이 《도해 근대마술》 (AK커뮤니케이션즈, 2012)

 

 

리턴의 오컬티즘에 영향을 준 사람이 엘리퍼스 레비(Eiphas Elvi)이다. 그는 근대마술의 기초를 확립한 신비주의자다. 레비는 각종 고대 마술을 수집하면서 타로, 카발라, 그리고 파라켈수스에 관심을 가진다. 레비는 형태가 없으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 ‘천체의 빛’, 즉 ‘성기광(星氣光, Astral Light)’을 지니고 있으면 물건을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을 소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The Haunted and the Haunters』에서 묘사된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레비의 ‘천체의 빛’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에 수록된 『셋집』은 『유령 저택』의 번역 수준과 비교하면 가독성이 좋다. 그런데 『셋집』은 결말로 이어지는 중요한 내용을 번역하지 않았다. 즉 결말이 포함된 소설의 1/3이 통째로 누락되었다. 『셋집』의 결말은 진짜 결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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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18 17:49   좋아요 1 | URL
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작가는 책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불쏘시개를 만듭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컬트와 신비주의 관련해서 cyrus님의 리뷰만큼 깊이 있는 리뷰도 드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4-19 12:02   좋아요 1 | URL
제 글이 깊이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책을 읽으면서 확인된 내용들을 연결해서 정리할 뿐입니다. 공포 문학도 장르 문학에 속하는데, 알라딘에는 공포 문학을 상세하게 소개한 글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추리 문학과 SF, 판타지 문학에 비하면 많이 읽는 장르가 아니에요. 그래서 예전부터 공포 문학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돌아가신 물만두님이 추리문학이 좋아서 열심히 소개하신 것처럼 저도 공포 문학의 매력을 알리고 싶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04-19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탐구는 모르지만, 오컬트나 신비주의도, 도판도 그렇고 즐기기 위한 이야기감으로 손색이 없어요.ㅎ

cyrus 2017-04-19 12:03   좋아요 0 | URL
저는 회의주의자인데도 오컬트를 즐기려고 합니다. 오컬트를 알게 되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발견하게 돼요. ^^

zombie 2017-06-16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괴기소설 걸작선1권은 직접 보유중이신가요? 1권을 현재 구입하고싶은데 절판이라 간절히 찾고있습니다만....

cyrus 2017-06-16 18:50   좋아요 0 | URL
아니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저도 괴기소설 걸작선 전 3권을 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