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늘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지각은 계속 운동하고 있다. 지구 내부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생기면 그 충격으로 지진이 일어난다. 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판구조론’이다. 지각과 맨틀의 윗부분으로 이루어진 두께 100㎞ 정도의 판들이 움직임에 따라 그 위에 얹혀 있는 대륙도 이동한다. 또한, 판이 갈라지거나 충돌하는 곳에 새로운 바다가 만들어지거나 습곡 산맥이 생성된다. 여기서 판을 움직이는 힘의 유래를 설명하는 학설이 앨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가 제시한 ‘대륙이동설’이다.

 

 

 

 

 

 

 

 

 

 

 

 

 

 

 

 

* 앨프레드 베게너 《대륙과 해양의 기원》 (나남출판, 2010년)

*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 2003년)

* 리처드 포티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 (까치, 2005년)

 

 

베게너는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남미 대륙의 동쪽 해안선과 아프리카 대륙의 서해안선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지구상의 여러 대륙이 약 3억 년 전까지는 하나의 초대륙(Pangaea, 판게아)으로 이루고 있었다. 초대륙은 고생대 말에 분리되기 시작하여 현재의 5대양 6대륙이 됐다며 ‘대륙이동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가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대륙이동설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질학자들은 대륙이동설을 비웃었다. 1950년대에 들어와서 대륙을 이동시키는 힘의 근원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과 새로운 증거들이 발표되면서 대륙이동설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베게너는 지질학자가 아니라 기상대에 근무하는 기상학자였다. 대륙이동설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지구가 딱딱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강력한 믿음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은 ‘믿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대륙이동설을 무시한 지질학자들은 베게너의 이론을 검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6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말처럼 과학은 한 번 발전한다고 해서 거기서 딱 멈추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과학은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원리들로 이루어진 학문이 아니다. 어떤 자연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지나친 믿음으로 교만에 빠진 과학자들을 비판한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제시한 것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제시한 가설들 중에도 훗날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과학은 자기 검증을 생명으로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인정을 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코스모스》 195쪽)

 

상대방의 가설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비판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검증 없는 비판은 유사과학 또는 사이비 과학의 기세를 절대로 꺾지 못한다.

 

 

 

 

 

 

 

 

 

 

 

 

 

 

 

 

 

 

 

 

 

 

 

 

 

 

* 다나 맥켄지 《대충돌 : 달 탄생의 비밀》 (이지북, 2006년)

* 로버트 토드 캐롤 《회의주의자 사전》 (잎파랑이, 2007년)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년)

* 로널드 프리츠 《사이비역사의 탄생》 (이론과실천, 2010년)

 

 

 

1950년 유대계 러시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충돌하는 세계(Worlds in Collision)>라는 책에서 금성이 불과 3,500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초창기의 금성은 목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혜성이었다. 혜성처럼 우주를 떠돌던 금성은 두 번이나 지구를 스쳤다. 벨리코프스키는 거대한 홍해가 갈라진 모세의 기적이 지구에 가까이 다가온 혜성의 영향에 의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충돌하는 세계>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충돌하는 세계>의 출판사(맥밀런 출판사)에서 펴낸 천문학 교재의 저자인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는 벨리코프스키의 책을 혹평했다. 섀플리는 출판사에게 <충돌하는 세계> 출간을 멈출 것을 촉구했고, 이를 지켜지지 않으면 자기가 쓴 천문학 교재의 판권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섀플리의 불매 운동에 동참하는 학자와 저자 들이 점점 늘어났다. 결국 위기감을 느낀 <충돌하는 세계>의 담당 출판사는 벨리코프스키가 쓴 책의 판권들을 다른 출판사(더블데이 출판사)에 팔아넘긴다. 판권을 손에 넣은 더블데이 출판사는 벨리코프스키의 또 다른 책들을 펴낸다. 벨리코프스키는 ‘격변론’을 지지하는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격변론은 화산, 지진과 홍수 같은 급작스러운 자연 재난에 의해 지구가 현재의 모습으로 단 순간에 형성됐다고 보는 가설이다. 다윈(Darwin)의 진화론을 반박하는 창조론자들이 격변론을 지지한다.

 

현재 벨리코프스키의 금성 탄생설과 격변론은 과학 원리를 무시한 오류투성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벨리코프스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각종 고대 신화들(그리스, 인도, 수메르 등)을 억지로 끼워 맞춰 해석했다. 벨리코프스키는 신화를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설명했다. 당연히 그의 작업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목성은 주로 수소, 헬륨 등의 가스들로 이루어졌다. 반면 금성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행성이다. 목성과 금성의 성분을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벨리코프스키는 금성이 목성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에 언급된 제우스(Zeus)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Athena)의 탄생에 빗대어 설명한다. 신화에 관심 많은 사람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목성(jupiter)은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이고, 금성(Venus)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로마식 이름에서 따왔다. 벨리코프스키는 아프로디테와 아테나를 동일한 존재로 취급했다. 그렇게 되면 헤라(Hera),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매력을 상징하는 ‘삼미신’의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 그밖에도 그는 아테나가 제우스의 눈썹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화 속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벨리코프스키는 신화의 원전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의 입맛대로 소개, 해석했다.

 

 

 

 

 

 

 

 

 

 

 

 

 

 

* 마이클 셔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2007년)

 

 

벨리코프스키와 그를 지지하는 추종자들은 ‘믿음 엔진(belief engine)’의 오류에 빠졌다. 자신들이 보고 싶어 하고, 믿고 싶은 것들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보고 싶은 것과 믿고 싶은 것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자신들의 믿음이 불확실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벨리코프스키가 작동시킨 ‘믿음 엔진’의 원료는 고대 신화였다.

 

과학과 신화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만 알고 있어도 벨리코프스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진리에 대한 검증 시도가 가능하다. 물론, 상대방의 신념이나 의견을 강압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열린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이성적으로 신중하게 검증하는 것이 올바른 회의주의의 원칙이다. 섀플리와 그 외의 학자들이 <충돌하는 세계> 불매 운동을 이끄는 대신에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조목조목 반박했으면 벨리코프스키의 추종자들의 기세를 충분히 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검증 없는 비판’이 오히려 벨리코프스키를 ‘기성 과학에 도전하는 천재’ 또는 ‘과학의 순교자’로 과대 포장하는 데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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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5-02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자들이 제시한 가설들 중에도 훗날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이 많다.˝
ㅡ 그래서 문학은 고전을 읽고 과학은 최신 서적을 읽어야 하나 봅니다.

cyrus 2017-05-02 13:24   좋아요 1 | URL
문학, 특히 번역본은 새로 나올 때마다 읽어야 합니다. 요즘 홈즈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 읽은 (축약본) 셜록과 완역본 셜록의 번역을 비교해서 읽어보니까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생각한 셜록은 ‘진짜 셜록‘이 아니었어요. ^^;;

yureka01 2017-05-02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태양계도 은하를 중심으로 볼텍스 운동을 하거든요...아마 우주 전체가 단 가만 있는적이 없을듯~~에너지는 곧 움직임~^^..

닷슈 2017-05-02 15:43   좋아요 2 | URL
이거 아는사람이 거의없죠 일전읽은책은 지구빙하기는 태양빛을 많이차단하는 지역으로태양계가진입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cyrus 2017-05-03 07:16   좋아요 1 | URL
To. yureka01님 / 별과 행성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의 실체를 몰라서 옛날 사람들은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

cyrus 2017-05-03 07:18   좋아요 0 | URL
To. 닷슈님 / 가설이지만 그럴 듯합니다. ^^

yureka01 2017-05-0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b4LzhlDcB-U 찾아 보니 이거 였네요..ㅎㅎ 재미있어서 찾아 봤습니다. 맞습니다.몰랐던 게 맞죠..^^

transient-guest 2017-05-0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리코프스키 책을 좋아해서, 영문으로 여러 권 구해 읽었지요. 대학교 땐 책을 구할 수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복사를 뜨기도 했구요. 과학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일종의 SF나 유사과학이지만, 그 직관이랄까, 뭔가 의문을 던지는 그런 부분은 무시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직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은 태양계의 행성배열의 missing link나 자전방향이 다른 금성 같이, 당시만 해도 아무도 의문을 던지지 않던 것들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갔는데, 문제는 그가 과학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진지한 과학자들이 논증을 하기 보다는 그냥 부정해버린 점, 그리고 일부분 그가 제기했던 가설들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하니까요.

cyrus 2017-05-08 11:04   좋아요 0 | URL
댓글을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못 보고 그냥 지나칠뻔했어요.

《대충돌 : 달 탄생의 비밀》의 저자는 벨리코프스키의 상상력을 부분적으로 인정합니다. 행성의 충돌로 또 다른 행성이 탄생했다는 벨리코프스키의 가설이 달 탄생 가설과 유사해요.
 

 

 

어린 시절에 끝없는 호기심으로 자연과 우주를 동경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발명왕’ 에디슨(Thomas Alva Edison)처럼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암탉처럼 달걀을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부화할 수 있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을 혼내기는커녕 그가 궁금한 부분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린 에디슨에게 과학은 일상의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러나 지나친 호기심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실험을 시도하게 한다. 에디슨 위인전에서 본 일화인데,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실험 정신이 투철했던 에디슨의 독특한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위인전 작가가 각색한 건지 확실하지 않다.

 

소년 에디슨은 먹으면 공중부양이 가능한 약을 만들었다. 약의 재료가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은 액체 형태였고, 병에 담겨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에디슨은 자신이 혼자서 만든 첫 발명품(?)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약의 효능을 확인하고 싶었다. 에디슨은 실험 대상자로 자신의 친구를 선택했다. 이 친구도 순진했다. 약을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에디슨의 말을 믿어버렸다. 친구는 의심 없이 병에 담긴 에디슨의 약을 마셨다. 약을 삼킨 지 3분이 지났는데도 몸은 공중에 뜨지 않았다. 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에디슨은 초조한 마음이 들었고, 친구에게 다시 한 번 약을 마셔보라고 했다. 에디슨이 시키는 대로 친구는 약을 마셨다. 정체불명의 약을 두 번이나 마신 친구는 갑자기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복통이 점점 심해지자 친구는 바닥에 쓰러져 몸을 이리저리 뒹굴뒹굴하면서 울부짖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에디슨은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어른의 도움으로 친구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고,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소년 에디슨은 임상시험을 처음으로 시도했으나 최악의 결과가 나올 줄은 전혀 생각 못 했다. 만약 에디슨이 직접 그 약을 마시고 천국으로 날아갔더라면, ‘천재 발명가’라는 명예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실험 결과를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지나친 호기심이 ‘진정한 과학자의 자세’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진정한 과학자’의 생존 능력과 호기심은 반비례한다. 전기 콘센트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던 도킨스의 사촌과 정체불명의 약을 꿀꺽 삼켜버린 에디슨의 친구는 십년감수 했다. 이들보다 생존 능력이 더 떨어지는 과학자들은 무모한 실험을 시도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어야 했고, 죽고 나서야 ‘진정한 과학자’의 명예를 얻었다.

 

 

 

 

 

 

 

 

 

 

 

 

 

* 톰 잭슨 《냉장고의 탄생》 (Mid, 2016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가장 확실한 증거가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과학 방법론으로 ‘실험’을 강조했다. 베이컨은 고기를 오랫동안 보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자신이 직접 닭고기를 차가운 눈 속에 묻어두었다. 엄청나게 추운 겨울 날씨 속에 베이컨은 눈에 묻어놓은 닭고기의 상태를 관찰했다. 예순을 넘긴 베이컨의 몸은 영하의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그는 독감(혹은 폐렴)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눈을 감았다. 죽기 전에 베이컨은 자신의 무모한 실험이 ‘매우 뛰어나게 성공적’이라고 확신했다.

 

영국의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프랑스의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 그리고 스웨덴의 셸레(Carl Wilhelm Scheele)는 산소를 처음 발견하고, 산소의 성질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화학자들이다. 그런데 세 명 모두 사인(死因)이 평범하지 않다. 프리스틀리는 라부아지에와 셸레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생전에 과학적 업적을 남긴 공로로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프리스틀리는 일산화탄소와 수은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화학 실험을 하는 동안 인체에 해로운 일산화탄소와 수은 등의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다. 셸레는 화학 물질을 직접 맛보는 습관이 있었다.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까지 맛봤으니 그의 건강이 좋아질 리가 없다. 셸레는 비교적 젊은 4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인 역시 수은 중독이었다.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잘 나갔다. 그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세금 징수원으로 활동했다. 혁명파들은 그의 세금 징수원 활동을 문제 삼았고,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프랑스의 수학자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는 “라부아지에의 목을 자르는 건 순간이었지만, 그와 같은 인물을 만들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존 월러 《왜 하필이면 세균이었을까?》 (몸과마음, 2004년)

* 강신익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페이퍼로드, 2013년)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질병이 세균과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페텐코퍼(Max Joseph von Pettenkofer) 등의 의학자들은 세균의 실체를 믿지 않았다. 코흐와 파스퇴르가 등장하기 이전에 의학자들은 질병이 전파되는 원인이 ‘나쁜 공기’라고 생각했고, 페텐코퍼 역시 ‘나쁜 공기’설을 받아들였다. 페텐코퍼는 ‘세균전염설’을 반박하기 위해 콜레라균이 들어간 배양액을 직접 마셨다. 그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다행히 그는 약간의 설사 통증을 느꼈을 뿐, 멀쩡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의 희생정신에도 불구하고, 세균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위생학의 패러다임을 뒤집을 수 없었다. 위생학의 새로운 권위자로 급부상한 코흐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페텐코퍼는 점점 실의에 빠졌다. 그는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권총으로 자살했다.

 

 

 

 

 

 

 

 

 

 

 

 

 

 

 

* 프란츠 부케티츠 《이타적 과학자》 (서해문집, 2004년)

 

 

지금까지 언급된 사람들 이외에도 과학의 발전을 위해 희생한 과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생전에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이타적 과학자》에 소개된 과학자들의 삶을 보게 되면 도킨스의 농담이 그저 웃고 지나갈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과학자들이 생존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그들의 용기와 이타심이 보통 사람들보다 높다는 점은 인정하고 싶다. 그런데 도킨스의 말이 계속 회자할까 봐 약간 걱정된다. 안 그래도 장래희망으로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과학자가 ‘극한 직업’으로 오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 글의 제목은 폴 호프만의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승산, 1999)를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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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5-0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일견 무모한 호기심으로 만들어낸 발명품도 있으니까요..ㅎㅎㅎ

투명 망또 매고 하늘을 날면 날 수 있는 그런 ~~발명.ㅎㅎㅎ

cyrus 2017-05-01 19:15   좋아요 0 | URL
황당한 상상력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

AgalmA 2017-05-0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의 입자》 읽으며 실험과학자들의 노고를 많이 생각하게 됐죠.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실험체로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니... 초창기 과학은 물질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일이 더 많았을테니.
퀴리 부인도 결국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했잖아요. 노벨상이 다 무언가ㅜㅜ

cyrus 2017-05-18 20:16   좋아요 1 | URL
댓글을 늦게 확인했어요. AgalmA님이 댓글을 남겼던 시점에 제가 서재 접속을 안 하고 있어서 댓글 확인을 못했어요. ^^;;

퀴리 부인의 남편 피에르 퀴리도 오래 못 살았죠. 마차에 치어 사망한 걸로 알고 있어요.

AgalmA 2017-05-18 21:59   좋아요 0 | URL
제가 한참 지나 댓글 달아 그러셨을 수도 있지 뭘 그리 미안해 하십니까. 저도 대댓글 모두 화답하는 게 아니라서^^a
네, 퀴리 부부 인생도 참 안타까웠던...
 
기억하겠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이은 옮김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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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이상한 단체’가 있다. 그들은 소녀상 철거를 주장한다. ‘이상한 단체’의 대표는 지난달 부산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옆에 쓰레기더미를 쌓아 놓고 간 사람이다. ‘이상한 단체’의 정체는 소녀상 설치에 반대하는 ‘진실국민단체’이다. 진실국민단체 회원들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들이 소녀상 설치를 추진한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소녀상 옆에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흉상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70대 노인은 일본과의 우익을 증진하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소녀상을 훼손하려고 시도했다. 이처럼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극우단체의 과격한 행동이 도를 넘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이 20여 년간 이어온 투쟁은 2015년 12월 28일의 ‘졸속’ 한 · 일 위안부 합의로 빛이 바랬다. 박근혜 정부는 억울한 희생자들을 부끄러운 과거 역사의 한 부산물로만 간주, 은폐와 망각의 세월 속에 묶어 두려는 어리석음을 범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도 한국 땅은 물론 북한, 중국, 필리핀 전역에 종군위안부로 일제에 끌려갔던 피해 할머니들이 한 많은 사연을 널리 알리지 못한 채 불치의 병으로 혹은 가난으로 고통과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종군위안부(comfort women)’로 지칭했다. 그러나 피해 할머니들이 겪은 참담한 상황을 고려하면 ‘종군위안부 할머니’는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북한 등 아시아 등지를 답사하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난 사진작가 이토 다카시(伊藤孝司)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된 여성을 ‘일본군 전용 성노예 피해자(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로 부르고 있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는 군 위안소에서 여성들이 받았던 피해 실태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피해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종군’한 것이 아니다. 장기간 감금하고 집단으로 강간한 행위를 ‘위안’이라고 부를 수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일본군 전용 성노예’이다. (14쪽)

 

 

일본 정부 관리들은 자신들이 만든 위안부 제도에 따라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지로부터 20만여 명의 여자들을 강제 또는 감언이설로 끌고 가 아시아 점령지역 주둔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성노예 피해 여성들은 좁고 불결한 방에 하루 스무 명이 넘는 남성을 상대해야 했다. 탈출하다 잡혀 고문을 당했고, 많은 피해 여성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생존자들도 평생 지을 수 없는 정신적 · 육체적 상처를 입었다. ‘성노예’라는 강한 어감 때문에 이토 다카시가 사용하는 명칭이 부정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과거의 부끄러운 행위의 의도를 어떻게든 축소하려고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종군’과 ‘위안’이라는 단어는 피해 여성들이 군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성적 위안’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명확한 단어 사용이 필요하다.

 

 

 

 

 

명칭을 보다 알기 쉽게 전달하려고 간략하게 ‘성노예’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성노예’ 명칭을 사용되는 것에 반대한다. 명칭이 길어도 ‘일본군 전용 성노예 피해자’ 혹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고 정확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극우세력들은 전 세계 인류사를 통틀어 여성이 전쟁에 성노예로 동원된 역사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일본에만 ‘야만적인 범죄 국가’로 덮어씌우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특정 과거를 회피하기 위해 더 오래된 과거까지 들먹이는 그들의 논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일본이 만들어낸 위안부는 인류사상 전례가 드문 전쟁범죄 행위였다. 이토 다카시도 ‘대규모로 여성을 군대 전용의 성노예로 만든 국가는 일본뿐’(14쪽)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극우단체는 일본과의 외교적 친선 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소녀상 철거를 시도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충분히 받았다고 믿는다. 심지어 일본군이 여성을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 문제를 지엽적으로 인식하는 그들의 태도는 ‘인류사에 남은 범죄’를 덮는 일본 정부를 돕는 형태다.

 

 

 

 

이토 다카시는 20년 넘게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취재하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었다. 그의 눈은 ‘역사의 상처가 만든 흉터’를 바라봤고, 귀는 반세기 동안 과거의 틀에 영영 갇힐 뻔했던 할머니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하나하나 흘리지 않고 담아냈다. 그의 사진은 너무나 생생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꽃다운 나이 씻기지 않을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는 독자의 가슴에 멍울지게 한다. 《기억하겠습니다》는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좀 더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1991년 처음으로 종군위안부의 비인도적 행태를 고발한 故 김학순 할머니의 유언처럼 《기억하겠습니다》는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위안부)을 역사에 남겨 두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극우세력의 잘못된 시각이 오늘날 일본 정부가 보여 주고 있는 오만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지로 무장한 극우세력의 태도는 은폐와 발뺌으로 일관해 온 가해자 일본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에 앞서 어쩌면 무관심과 망각으로 이를 방조해 온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에게 그 책임을 되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이 진심으로 과거를 반성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마저 게을리 한 채 ‘과거 청산=합의금’으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기억하겠습니다》는 우리 사회가 처한 슬픈 현실이 어떤지 알려준다. 왜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잊어서는 안 되는가를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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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30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30 15:54   좋아요 4 | URL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박근혜와 최순실이 같이 싼 빅똥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다만 힘센 남자라고 자랑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똥 치우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7-05-01 1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우리가 일본군에 의한 피해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겠지만, 베트남전에서 우리의 잘못에 대한 사과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잘못에 대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국제적으로도 우리의 요구가 보다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cyrus 2017-05-01 13:40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코피노 문제도 장기적인 관심이 필요한데, 너무 쉽게 잊혀집니다.

stella.K 2017-04-30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작년 말인가?
소녀상을 지키는 기륵한 젊은이들이 있더군.
젊은이들 자기 밖에 모르고 스펙 쌓는데만 열 올린다고
하지만 그런 젊은이들도 있어.
심성정인가? 대통령되면 위안부 재협상 할 거라고 하던는 것 같은데
누가 대통령이 됐든 정말 이 문제는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고 봐.

cyrus 2017-05-01 13:42   좋아요 0 | URL
소녀상을 지키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그들은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잖아요. 적극적인 행동은 못하더라도 ‘위안부 할머니‘ 명칭이 부정적인 이유 정도는 알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오쌩 2017-04-30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망언에 분노한적이 있었어요. 누가 위안부라고 이름 붙였는지 모르지만 참 상냥한 이름이라는 소리에, 과연 인간은 반성이 가능한 동물인가 생각했었죠.

다음 정부는 정말 할일이 많겠네요...

cyrus 2017-05-01 13:45   좋아요 0 | URL
저도 ‘위안부 할머니‘ 명칭을 안 쓰려고 해요. 쓰쓰이 야스타카의 망언이 공개되자마자 그의 책을 절판시킨 출판사들이 있는 반면에 여전히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펴내는 한길사의 행보를 보면 아이러니합니다.
 
솔직한 식품 - 식품학자가 말하는 과학적으로 먹고 살기
이한승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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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 특히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속설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그들이 믿는 속설 가운데는 잘못된 것이 적지 않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다이어트’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1,000여 건의 ‘성공 다이어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운동과 금식 등을 꾸준히 실천하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단기간에 체중을 많이 줄이기 위해 체질에 맞지 않은 다이어트 법을 실천하면 당장 체지방을 줄일 수는 있지만, 또 다른 질병이 생길 수 있다. 체지방 관리와 건강한 식생활을 동시에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채식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 채식 다이어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육류를 아예 먹지 않고, 채식과 과일 위주의 식단을 마련한다. 채식 다이어트가 전립선암을 예방 또는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채식 다이어트에 우려를 내비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이 육식에 편중됐던 과거의 식습관을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건강을 위한 식습관의 정석’으로 정착되는 것은 곤란하다. 채식만을 고집하면 골다공증이나 빈혈, 성장 불량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적당한 양의 육류와 유가공 제품을 섭취해야 균형 잡힌 영양소를 섭취한다.

 

우리는 무수히 쏟아지는 건강 의학 정보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건강과 의료,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에 관한 정보가 차고 넘친다. 지상파, 공중파, 심지어 종편 방송까지 건강 의학 정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특히 인터넷에는 광고성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범람하고 있다. 인터넷 광고 또는 홈쇼핑 광고를 믿고 건강기능식품을 사는 경우가 있다. 건강기능식품이 ‘의약품’이 아닌 ‘식품’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건강기능식품 광고를 접한다. 이런 광고들은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건강기능식품이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을 주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소개한다. 건강기능식품이 ‘의약품’이 아니라서 부작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식사 한 끼에도 영양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듯 건강기능식품도 잘못 먹으면 조화를 깨트리게 된다. 건강기능식품은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솔직한 식품》은 우리가 많이 접했을 법한 대중매체의 건강 의학 정보들의 허와 실을 알려준다. 건강 의학 정보들은 건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게 하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건강 의학 정보의 효능만 돋보이고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물론, 방송에 출연하는 ‘쇼 닥터(Show Doctor)’들이 건강 의학 정보에 대한 부작용,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까지 알려주고 있다. 문제는 의학 전문가 혹은 비 의학 전문가들이 자신의 사례를 바탕으로 도출된 의학 정보를 마치 검증된 지식인 것처럼 단정해서 소개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불확실한 정보를 아전인수 격으로 받아들인다.

 

90년대 중반에 우리 농산물에 향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우리 몸엔 우리 음식이 최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한 ‘신토불이(身土不二) 음식’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요즘은 ‘신토불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자란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 건강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김치와 된장은 건강에 유익한 발효식품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김치와 된장은 염분 함량이 높다. 김치와 된장을 과다 섭취하면 고혈압을 유발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와 된장을 거의 매일 섭취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위암 발병률은 세계 1위이다. 과도한 염분 섭취가 위암 발병의 원인이다.

 

‘신토불이 음식’ 사랑과 반대로 외국에서 나오는 건강한 음식을 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에 관심 많은 우리 어머니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 어머니는 처음에 블루베리의 효능을 알고 나서 블루베리를 먹기 시작했다. 몇 달 뒤에는 블루베리보다 항산화 효과가 높은 아사히 베리에 관심을 보였다. 최근에 어머니는 블루베리, 아사히 베리보다 훨씬 좋은 열매가 아로니아라고 말한다. 서구에서 나는 음식의 효능 또는 그곳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의학 정보가 과학적으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저자는 서구의 건강 식문화가 우리나라에 검증 없이 유통되고, 일반인들이 쉽게 맹신하는 상황을 ‘영양학 사대주의’가 낳은 문제점으로 본다.

 

저자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건강 의학 정보의 단점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참고문헌들도 따로 정리했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나누어질 것이다. 어떤 독자는 책에 소개된 정보 대부분이 이미 아는 내용이라고 느낄 수 있을 테고, 또 다른 독자는 저자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를 ‘과학적으로 먹고살기’라고 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책 153쪽에 나오는 저자의 말이 ‘과학적으로 먹고살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느 쪽에도 편향적이지 않은 중립적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있으나 100퍼센트 객관적인 사람은 없다. 나도 이 책의 내용이 모두 객관적이라거나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를 대할 때 반대 입장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보다 정확하고 과학적인 정보가 있는지를 탐색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미덕이다. 특히 식품처럼 정보편향이 심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153쪽)

 

저자는 솔직하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책도 무조건 믿지 믿어선 안 된다는 의미의 당부를 간접적으로 밝힌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덮을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어디선가 우리의 상식을 뒤집어버리는 새로운 건강 의학 정보가 밝혀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믿고 있던 의학 상식은 폐기되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낡은 의학 상식은 해로운 도끼가 되어 우리 몸을 찍어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속아서 건강을 망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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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4-2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 닥터 하니 느닷없이 신해철 의사 생각납니다그려.. 그 인간... 참, 티븨 나와 설레발 많이 치더니...

cyrus 2017-04-27 23:13   좋아요 0 | URL
문제 일으킨 의사들은 자격 박탈해야 합니다.

2017-04-27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27 23:14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다이어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줄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음식을 덜 먹어야 합니다. ^^;;

감은빛 2017-04-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다 체질이 다르니,
어떤 건강 상식이나 과학적인 정보도 다 맞을 수 없겠지요.
누군가에게는 잘 들어맞는 정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 맞을 수 있구요.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담담한 평, 잘 읽었어요!

cyrus 2017-04-27 23:19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감은빛님. 요즘도 운동 꾸준히 하고 계시죠?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적용되는 건강법은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체질에 맞는 건강법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틈에 2017-04-2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는 대표적 분야가 건강 의료인 것 같아요... 완전 상반되는 주장이 각자 전문가란 이름으로 매체를 타고 있으니...

cyrus 2017-04-30 15:05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어떤 의견이든 다 알아보고 비교해봐야 합니다. 무조건 한쪽 입장이 옳은 건 아니니까요.

페크pek0501 2017-05-02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편식하지 않고 음식 골고루 먹기, 를 건강한 식습관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cyrus 2017-05-02 13:27   좋아요 1 | URL
가장 고치기 힘든 식습관이 편식과 덜 먹는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 식습관을 피하려고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구분하고 정신만을 강조했던 이성 중심의 근대적 도그마(dogma)에서 벗어나려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사람의 몸이 행위예술로 불리는 퍼포먼스(performance)의 표현물로 자주 등장하게 된 배경도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에 있다. 오늘날의 대량소비문화는 인간의 이성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몸에서만 확실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자아도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 여성의 신체가 퍼포먼스의 단골 메뉴가 되는 것도 그런 현상과 무관치 않다. 여성이 더 이상 소외되고, 착취되고, 지배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페미니즘 담론까지 퍼포먼스에 내포되어 있다.

 

 

 

 

 

 

 

 

 

 

 

 

 

 

 

 

 

 

 

 

 

 

 

 

 

 

 

 

* 진동선 《현대사진가론》(태학원, 1998)

* 강태희 《현대미술의 또다른 지평》(시공사, 2000)

* 소피아 포카 《포스트페미니즘》(김영사, 2001)

* 정윤희 《젠더 몸 미술》(알렙, 2014)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일찍이 여성의 신체에 주목한 사진작가이다. 특히 여성의 정체성을 욕망과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와 고립 등의 측면에 집중 조명해 왔다. 이 같은 작업으로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 속에서 여성이 처한 억압 상황을 표출하는 것이 그녀의 관심사였다. 셔먼은 원래 순수 미술을 전공했다. 그녀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사진을 이용한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았다.

 

셔먼은 1970년대 중반 이후 30여 년간 사진을 발표했다. 이 작가의 모델은 늘 작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을 옛 명화 속 모델이나 영화배우 또는 주부처럼 정교하게 분장하고 치장해 촬영, 배우 겸 연출자처럼 여성을 재현한 500여 점의 사진을 발표해왔다. 사진의 작품명은 ‘무제(Untitled)’ 혹은 ‘무제 필름 스틸(Untitled Film Still)’이며 각각의 작품에 일련번호가 있다. 『무제 필름 스틸』 연작은 작가 자신이 직접 영화 속의 배우처럼 자세를 취한 것이다. 셔먼은 할리우드나 산업 광고에 의해 묘사된 여성의 정체성을 차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정형화된 성 역할과 성적 이미지의 사회화에 미디어의 영향이 어떤지를 탐구하고 있다.

 

 

 

『무제 필름 스틸 #21』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여배우로 직접 분장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 뒷면에 ‘City Girl’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무제 필름 스틸 #21』을 1분 동안 가만히 주시하면 케이트 잠브레노(Kate Zambrano)의 소설에 등장하는 ‘Green Girl’의 얼굴이 떠오른다.

 

 

 

 

 

 

 

 

 

 

 

 

 

 

 

*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 출구》(동문선, 2004)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의 저자 록산 게이(Roxane Gay)는 여성성을 연기하는 여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케이트 잠브레노의 소설 《Green Girl》(국내 미번역)을 언급한다. ‘Green Girl’은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햄릿》의 대사에 나오는 단어인데, ‘어리고 순수한 여자’를 뜻한다. 잠브레노의 《Green Girl》은 사회 속에 억압받는 여성이 연기하는 수동적 여성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기차 안에서도, 패션쇼에서도 그들은 의식한다. 남자들은 언제나 여자들을 쳐다본다. 언제나 그 끈적한 눈길로 여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쇼핑은 하지만 물건은 사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생활은 어렵다. 가끔 그녀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잠브레노의 《Green Girl》 중에서,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191쪽)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남성중심 문화가 만든 규범 아래서 행동을 반복하면서 젠더 정체성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즉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된 존재가 여성의 정체성을 수행(performance)하고 있다.

 

 

 

 

 

 

여성적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할수록 전통적 여성성이 강화된다. 그러면 자신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기보다는 주위 시선으로 ‘나’를 평가한다. 대대적인 억압의 시선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는 억압당한다. 남성 중심적 사회가 원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따라가려는 노력은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 위한 고통스러운 수행이다. 엘렌 식수(Helene Cixous)는 여성 직접 여성성을 텍스트 안에 집어넣는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eminine)’를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로 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제 필름 스틸』 연작은 셔먼 자신을 사진 안에 집어넣은 작품이다. 그 속에는 셔먼은 ‘여성’이라는 불안정한 정체성을 연기하는 개인을 연기한다. 여성성을 연기하는 개인을 통해 왜곡된 여성상 이면에 가려진 정신의 그늘과 신체의 피곤까지 담아내며 과연 여성의 실제 모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억압되어 왔던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셔먼의 사진 작업은 아름답고 용감한 일이다. 그녀의 『역사 인물화』 연작은 여성 신체를 신비화하며 재현하는 남성 중심의 예술에 반기를 든 작품이다. 『무제 #230』은 어디선가 본 듯 친숙한 여성의 누드이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Raphael)의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를 패러디(parody)했다. 패러디는 원작을 똑같이 모방하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그 원작에 드러나지 않았거나 은폐된 문제점을 폭로해야 한다. 라파엘로의 그림 속 여성의 왼팔에는 ‘우르비노의 라파엘로(Raphael Urbinas)’라는 이름이 새겨진 팔찌가 채워져 있다. 셔먼은 ‘제빵사의 딸’이자 ‘화가 라파엘로의 애인’으로만 알려진 ‘이름 없는’ 여성으로 분장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분장하지 않았다. 자세만 똑같이 흉내 낼 뿐 지극히 현실적인 피부와 신체를 가진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신체는 처진 가슴과 볼록해진 배를 가진 임산부의 신체에 가깝다. 그래서 관객은 그 사진에서 눈요깃거리에서 해방하여 거짓이나 왜곡 없는 ‘그저 벗고 있는 몸’으로 바라본다.

 

 

 

 

 

『무제 #250』은 남성 관객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 준 누드 사진을 전복한 작품이다. 셔먼은 과장된 신체 묘사를 통해 여성에게 향했던 남성 중심의 관음증적 시선에 저항한다. 늙은 모델은 에로틱하기보다는 도발적인 표정이다. 남성 관객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은 예술이라는 이름 뒤로 은폐된 남성의 성적 욕망을 콕 짚어낸다.

 

 

 

 

 

 

 

 

 

 

 

 

 

 

 

 

포르노는 전시의 대상이 된 벌거벗은 삶이다. 포르노는 에로스의 적수다.

포르노는 성애 자체를 파괴한다.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65쪽)

 

포르노(porno)는 여성의 신체를 박제하여 전시의 대상으로 만든 영상이다. 포르노 속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 이름도, 표현도 없는 오로지 노골적인 성애를 드러내도록 수행하는 박제된 대상이다. 셔먼은 오랫동안 여성의 몸에 입혀진 사회적 억압의 관습을 과감히 벗은 채 몸만이 아닌 ‘사람’을 찍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있어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은 단순히 모방에 불과한 박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녀의 사진은 다시 살아 꿈틀거린다. 그녀의 작업이 과감할수록 사진을 보는 관객들은 사진 속 인물이 분장한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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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6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6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7-04-27 02:23   좋아요 1 | URL
그, 글케 생각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님의 깊은 마음에 경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