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 환원주의의 매혹과 두 문화의 만남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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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을 주제로 한 책을 넘기다 보면 손이 갑자기 멈춰지는 곳이 있다. ‘도대체 뭘 그린 거지?’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바로 추상미술이다. 추상(抽象)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이는 칸딘스키(Kandinsky), 몬드리안(Mondrian), 폴록(Pollock), 로스코(Rothko) 등 현대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그림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은 도통 무얼 그렸는지 알 수 없고 어렵게 느껴진다. 추상화는 색이나 선과 같은 순수 조형 요소만으로 이뤄져 있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형태나 색채가 한눈에 드러나는 구상화와 달리, 추상화는 ‘추상’이란 단어에서 드러나듯 ‘모양이나 모습을 없앤 그림’이라 작가와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선뜻 다가서기란 쉽지 않다.

 

추상미술은 표현 방식에서 크게 두 가지 사조로 나뉘었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와 신조형주의가 그것이다. 칸딘스키는 감정을 음악적인 선과 색으로 격렬하게 표현하여 ‘뜨거운 추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몬드리안은 최소한의 형태 질서를 선과 색의 비례로 표현해 ‘차가운 추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방식에서 주관적으로 보는 방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관람자들은 화가의 주관적인 보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어려운 것인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현대미술과 친해질 방법은 없을까? 있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난해한 현대미술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뇌과학이다. 이 책은 뇌과학적인 접근으로 현대미술을 다룬다. 저자인 에릭 캔델(Eric Kandel)은 기억이 저장되는 신경학적인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200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생물학자이다. 그는 미술과 뇌과학의 통섭을 시도한다. 감성 중심의 예술, 그리고 냉철한 이성 중심의 과학. 아무래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분야다. 그렇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의식과 무의식, 기억, 감정, 감각 등 뇌가 활동하면서 나오는 마음의 문제는 과학자와 예술가 모두의 관심 대상이었다.

 

저자는 미술과 뇌과학을 이어주는 연결고리‘환원주의’를 주목한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을 기본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저자는 환원주의가 현대미술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한 새로운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추상미술을 시도한 화가들은 직관적으로 환원주의적 방식을 선택하여 무의식적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그림에 반응하는 뇌가 관람객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이해한다면 추상미술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가령, ‘색채 추상화’로 유명한 로스코(Rothko)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세계로 이끌린다. 그래서 로스코의 그림을 실제로 보게 되면,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요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로스코의 그림은 일체의 형상을 거부하고 ‘색으로만 침묵하는 그림’이다. 관람자들은 형태가 없는 그림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림을 보고 인식한 뇌가 ‘하향 처리(top-down processing)를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향 처리는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감각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하향 처리가 일어나게 되면 뇌는 자꾸 무언가를 생각한다. 관람자는 형태가 있는 구상화를 보면 그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단번에 알아낸다(이때 뇌에 상향 처리가 이뤄진다). 그러나 추상화를 본 관람자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뇌는 하향 처리를 더욱 열심히 한다. 관람자는 그림을 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그림에 투영하여 감상한다. 이때 관람자는 추상화를 보면서 감동한다.

 

현대미술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촉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술의 영역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이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동시대 미술의 작품 대부분은 ‘뇌를 즐겁게’ 해준다.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능동적으로 작품에 개입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개입은 작품이 아름다움을 잘 구현해냈는지 평가하거나 작품의 우수성을 따지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에 우리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투입’하자는 의미다. 그러려면 뇌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추상미술 감상은 나름대로 관람자 본인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해석해보는 개입으로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열려 있고, 관람자는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 Trivia

 

* 캐츠는 두 번째 전통인 ‘팝아트 예견했고, 특히 로이 릭턴스타인, 재스퍼 존스, 앤디 워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4쪽)

 

→ ‘을’을 ‘를’로 고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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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15 11:44   좋아요 0 | URL
폴록의 그림에 영감을 받은 사진이라니,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9-05-18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현대 추상 미술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요구하죠. 전 어렸을 때는 추상 미술이 너무 싫었거든요. 답이 없어서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지금은 좋네요. 나이가 들어가며 상상력과 자유를 배워 갑니다~^^
오랜만이죠?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성실히, 꾸준히, 늘 독서와 리뷰 하시는 cyrus님이 계시니 오랜만의 서재가 낯설지 않네요!
(앗! 제가 아이디를 ‘책을 사랑하는 현맘‘에서 ‘숲속도서관‘으로 바꿨네요)

cyrus 2019-05-20 11:47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죠? ^^ 
시간이 지날수록 알라딘 서재에 처음 알게 된 분들의 닉네임이 하나씩 잊혀요.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현맘’이라는 닉네임은 기억하고 있어요. 이 닉네임이 정감이 가서 이걸로 계속 부르고 싶네요.. ㅎㅎㅎ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성 정치학(이후)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꾸리에)과 함께 미국 급진주의 페미니즘(radicalism feminism)의 고전으로 꼽힌다. 두 권의 책 모두 1970년에 출간되었다.

    

 

 

 

 

 

 

 

 

 

 

 

 

 

 

* [품절,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이후, 2004)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

 

    

 

밀렛은 1970년을 황금 같은 나날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성 정치학성 변증법이 출간된 1970년에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인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기 시작한다(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등장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한다. 전 세계에 전쟁의 폭력성과 식민지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에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 [품절]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한신문화사, 2000)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 자체가 아니라 법적 차원에서 남성과의 동등한 평등을 목표로 활동한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을 비판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 끝에 얻은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됐던 성폭력이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rivate is political)라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구호를 확증한 것이 밀렛의 책이다.

 

밀렛은 성(, sex)의 정치적 측면에 주목한다. 즉 성은 단지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라 명백히 권력과 지배개념이 작동하고 있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이다. 밀렛이 성의 정치적 측면을 들여다보는 이론적 틀은 가부장제이다. 그녀는 사회 각 분야와 제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를 파헤쳤다. 그녀가 비판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지배적인 남성성과 순종적인 여성성을 극단적으로 분리하고, 성별 체계를 견고하게 유지하도록 만든다.

 

 

 

케이트 밀렛이 성 정치학에서 인용(비판)한 책들

  

  

    

 

 

 

 

 

 

 

 

 

 

 

 

 

* 존 러스킨 참깨와 백합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아들과 연인(민음사, 2002)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아들과 연인(열린책들, 2011)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연인(민음사, 2003)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무지개(민음사, 2006)

* [절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날개 돋친 뱀(을유문화사, 1974)

    

 

 

 

원제: Sexus (1949, The Rosy Crucifixion 1)

     

* [절판] 헨리 밀러 섹서스(정음사, 1972)

* [절판] 헨리 밀러 쎅서스(산호, 1991)

* [절판] 헨리 밀러 장밋빛 십자가(카나리아, 1991, 2)

* [절판] 헨리 밀러 속 북회귀선(정민, 1993, 2)

    

 

 

원제: Nexus (1960, The Rosy Crucifixion 3)

 

* [절판] 헨리 밀러 넥서스(범한출판사, 1984)

* [절판] 헨리 밀러 관계(세연, 1992)

* [절판] 헨리 밀러 본능(산호, 1992)

* [절판] 헨리 밀러 신들의 정원(홍원, 1994)

* [절판] 헨리 밀러 욕망(일문, 1997)

   

 

 

 

 

 

 

 

 

 

 

 

 

 

 

 

 

 

 

 

* 노먼 메일러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민음사, 2016)

* [품절] 노먼 메일러 아메리카의 꿈(학원사, 1992)

 

 

 

밀렛은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의 종속이 문화 담론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유명한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비판한다. 그녀는 존 러스킨(John Ruskin),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헨리 밀러(Henry Miller),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수호한 작가로 거론하면서 그들의 작품에 남성의 지배력과 폭력성을 옹호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 앨리스 에콜스 나쁜 여자 전성시대(이매진, 2017)

 

 

그러나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황금 같은 나날은 오래 가지 못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만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기 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성 내에서 다양한 경험이 존재하며, 계급에 의한 여성 간의 격차와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1970년대 중반부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러 개의 단체의 활동으로 유지되어 온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내적 분열을 피하지 못한다. 급진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여성 해방이 이루어지려면 남성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들은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을 여성 운동의 정치적 명령으로 내세웠다. 이로 인해 이성애자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떠났고,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힘을 잃는다. 나쁜 여자 전성시대(이매진)1967년부터 1975년까지 광장으로 나아간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황금기와 여명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 [품절] 토릴 모이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한신문화사, 1994)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정전인 성 정치학도 후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열기가 식어가는 무렵인 1980년대부터 성 정치학을 비판하는 입장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영국의 페미니즘 비평가 토릴 모이(Toril Moi)성과 텍스트의 정치학(한신문화사)은 영미 페미니즘 이론과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한 책이지만, 이 책을 쓴 토릴 모이는 해체주의에 중점을 둔 프랑스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면서 가부장제 비판에 몰두한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특히 케이트 밀렛을 비판하는 토릴 모이의 입장은 성 정치학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페미니스트)들의 뼈를 때릴 정도로 강도가 세다.

    

 

 

 

 

 

 

 

 

 

 

 

 

 

 

 

* 시몬 드 보부아르 2의 성 1(을유문화사, 1993)

* 메리 엘만 Thinking About Women(Palgrave Macmillan, 2014)

* 이규명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동인, 2011)

    

 

 

토릴 모이는 밀렛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업적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밀렛을 남성 작가의 작품 속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남근중심주의를 처음으로 비판한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보는 평가가 있는데, 페미니즘 비평의 계보를 연도순으로 정리한다면 그 평가가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성 정치학이 나오기 전에 보부아르(Beauvoir)2의 성에서 로렌스의 남근중심주의를 비판했으며, 메리 엘만(Mary Ellman)1968년에 발표한 여성을 생각한다(Thinking About Women)라는 책에 남성 작가가 묘사한 여성성의 한계를 지적했다(메리 엘만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많이 언급되지 않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다. 그녀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이론을 조금이나마 언급한 책조차 찾기가 어렵다. 메리 엘만의 이론을 언급한 책은 토릴 모이의 책과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이다). 밀렛은 분명히 보부아르와 엘만의 책을 참고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 두 사람의 이름을 각각 한 번씩만 언급했다(성 정치학번역본: 465, 641).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한 밀렛의 입장도 다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도전받아왔다. 토릴 모이는 밀렛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오독했다고 비판한다.

    

 

 

 

 

 

 

 

 

 

 

 

 

 

 

* 김정매 로렌스와 여인들(태학사, 2006)

 

 

로렌스의 문학에 여성 혐오가 반영되었다고 주장한 보부아르와 밀렛의 입장에 동의하는 독자(페미니스트)라면 로렌스의 소설을 읽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렌스를 여성 혐오 작가, 남성 우월주의자로 규정하는 관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로렌스와 여인들(태학사)은 로렌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로렌스와 친분을 맺은 여성들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로렌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했으며 한국 영미문학 페미니즘학회 회장, 한국 로렌스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민음사 판 《무지개》의 역자다). 저자는 로렌스가 여성성과 여성의 심리를 잘 이해한 작가라고 평가한다. 물론 저자도 로렌스의 여성 비하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의 주체적인 의지에 초점을 맞춘 로렌스의 글쓰기를 언급하면서 로렌스를 여성혐오자로 일방적으로 공박하는 것은 비평적 안목의 공평성을 잃은 자세(김정매, 240)라고 말한다.

 

로렌스에게는 항상 야한 소설을 쓴 작가여성 혐오 작가라는 두 가지의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비평가로부터 외면받은 로렌스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오고 있지만, 로렌스를 기피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일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로렌스를 연구하는 여성 학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로렌스의 소설을 읽는 여성 독자는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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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0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이시네요 :>

예전 모습 그대로.

cyrus 2019-05-10 13:13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도 열심히 글을 쓰는데요... ㅎㅎㅎ
박한이 선수가 ‘꾸준함의 대명사’인 것처럼 저도 꾸준한 블로거가 되고 싶습니다. ^^
 
수학의 배신 - 모두에게 수학이 필요하다는 거대한 착각
앤드류 해커 지음, 박지훈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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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6년에 응시한 수학능력시험의 수리영역(인문계) 점수는 삼십 몇 점이다. 십삼 년이나 흐른 지금은 점수가 몇 점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34점에서 37점 사이로 추정된다. 성적표를 봐야지 점수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성적표를 갈가리 찢어 버리지는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 있다. 아무튼 성적표를 처음으로 확인했던 그 날 당시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2년 동안 모의고사를 여러 차례 보면서 가장 낮은 수리영역 점수는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교과서와 문제집 여러 권을 끄적거리면서 해온 수학 공부는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수학능력시험은 열심히 노력만 해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닫게 해준 날이다.

 

내가 수험생이었던 시절에 수학을 포기한 자를 줄인 말(수포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시절에 수포자라는 말이 유행했더라면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수학 공부를 포기했을 것이다. 모의고사 수리영역 점수가 좋지 않았는데도 수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친구들은 나를 비웃었다. 그렇게 문제집만 보면 점수가 올라가느냐면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와 주지 않아서 마음이 울적한 내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수학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의고사 점수에 너무 실망할 필요 없어. 평소 하는 대로 꾸준히 공부하면 분명 수학능력시험에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수학 선생님은 모의고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다가 수학능력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은 제자들을 많이 봤다면서 나도 그런 학생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순진했던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믿었고, 수학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면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의 말씀은 수학 공부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다.

 

존버 정신(존나게 버티는 정신)으로 수학 공부를 하면 수학 시험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은 착각이고, 때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수학의 배신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인 수학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여러 가지 근거로 비판한다. 머리가 나쁜 학생도 수학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수학에 대한 미신(Math myth, 이 책의 원제이다)이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면 분명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잘 되는 건 아니다. 노력과 결실이 비례하지 않는 상황도 일어난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들은 어려운 수학이더라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일수록 똑똑하며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수포자가 되려는 학생들을 위한 희망의 동아줄이 되며, 이과계 학생의 취업률이 인문계 학생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수학의 배신은 그 말 또한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학 성적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을 주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이 책은 수학자나 이과 계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수학이 우리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의 장()과 장 사이에 현장의 목소리라는 제목이 붙은 익명의 말들을 모아놓은 작은 장이다. 이 장은 수학 미신에 속은 독자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준다. 익명의 목소리들은 이구동성으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 훌륭한 의사와 변호사, 용접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인력들인데, 아무런 연관성 찾기 힘든 수학 성적을 이유로 꿈이 좌절되었죠. (40)

 

* 나에겐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삼각법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비즈니스 스쿨에서 왜 미적분을 배워야 하는지도 의문이고요. 한 번도 쓴 일이 없거든요. (65)

 

* 나는 평생을 엔지니어로 일해 왔어요. 대수학? 미적분? 미분방정식? 쓸 일이 없다 보니 거의 다 잊어버렸어요. (83)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대부분을 풀 수 있으면서도, 배우자를 고르는 눈은 영 아닌 사람들이 많다. (125)

 

 

수학 미신을 비판하는 수학자와 이과계열 전문가들은 수학이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것에 염려한다. 실제로 대부분 미국 학생들은 수학 과목에 고득점을 받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이 이과계열 직업 업무에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인이며 당연히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미국 사회 및 교육제도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국내 현실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책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학 교육과 수학에 대한 무비판적인 찬양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우리에게 크고 작은 혜택을 가져다준 수학의 유용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목욕물을 버리면서(수학 교육을 비판하면서) 목욕하는 어린아이까지 버리는(수학의 유용성까지 무시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 수학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의 원인은 수학이 아니라 수학 교육이다. 저자는 수학 공부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철학, 예술, 신학, 역사 분야 공부에 중점을 두는 교육 제도를 제안한다. 저자의 제안은 좋긴 한데 학생들이 인문학에 올인(all-in)하는 교육 제도도 한계가 있다. 인문학도 현재의 수학 과목처럼 시험 통과나 입사를 위한 목적으로 가르치는 분야가 된다면 학생들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철학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오면 수학의 배신후속편 격인 인문학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저자가 후속편에서는 대안이랍시고 수학과 인문학을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교육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겠지? 제발 그런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어른들의 교육 제도 논쟁에 학생들 머리 터진다.

 

 

      

 

Trivia

 

 

*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게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17)

 

시작하기로 고쳐야 한다.

 

 

* 앉아서 원장에 합계를 기입하는 크라칫과 바틀비[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등장인물이다옮긴이]를 떠올려보라. (58)

 

옮긴이가 쓴 방주(旁註)바틀비가 누군지 알려주는 설명이 없다. 바틀비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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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08 17:41   좋아요 0 | URL
캐나다 학교에 가르치는 과목 명칭을 정확히 말하면 ‘산수’입니다. <수학의 배신>에 보면 산수와 수학의 차이점이 나옵니다. 따님이 캐나다에서 배운 산수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과목입니다. 산수를 제대로 배우면 기본적인 사칙연산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수학은 미적분, 벡터, 삼각법, 대수학 등을 말합니다. 이과 계열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들이죠.

웃긴 게 상아탑에 오랫동안 갇혀 지낸 이과계열 교수들은 미적분을 모르는 신입생을 만나면 기본 교양이 부족하다면서 학생들이 문제 있다는 식으로 지적합니다. <수학의 배신>의 저자가 비판하는 대학 교수들은 수학을 찬양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 제도를 옹호합니다. 이런 교수 밑에 배운 수학 교사는 학교에 배치됩니다. 이렇게 되면 입시용 수학을 포기하는 교육 제도를 고치기 힘들어요.

방랑 2019-05-0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6년도 수능을 응시하셨다면.. cyrus님의 연세가.
저는 수학을 싫어하진 않았어요
물론 대학교 입학 후에는 아예 본 적이 없게 되었죠.

cyrus 2019-05-09 16:09   좋아요 0 | URL
30대 초반입니다. 저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싫어하고, 수학사나 수학자들의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 있는 수학’을 좋아해요.. ^^
 

 

 

 

인간은 보면서 사유한다. 하지만 인간은 부분을 전체인 것으로 단정 지으면서 세상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eye)은 ‘열린 창’이 아니라 ‘구멍’이다. 어떠한 대상에 대한 인식이 근시안적 눈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의 눈, 식민지를 배척하는 제국주의의 시선, ‘다름’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정상성의 기준 등 ‘눈의 우월성(superiority)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 임철규 《눈의 역사 눈의 미학》 (한길사, 2004)

 

 

 

임철규 교수가 쓴 《눈의 역사 눈의 미학》(한길사)는 세계를 우뚝 세우고, 장악하고, 짓밟은 ‘서구인의 눈’을 검토한 책이다. 저자가 ‘서구인의 눈’에 주목한 것은 서양 문화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보는 것’은 ‘아는 것’이다. 눈으로 사물을 ‘지각’하는 것은 그 사물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앎의 과정을 통해 발전된 서구의 이성은 시각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문명이 건설되면서 진보에 대한 믿음이 퍼지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의 시대’이자 ‘눈의 시대’였다.

 

 

 

 

 

 

 

 

 

 

 

 

 

 

 

 

 

 

 

* 제러미 벤담 《파놉티콘》 (책세상, 2007)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생각한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은 눈의 우월성으로 발전된 ‘이성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파놉티콘은 한 곳에서 공간 내부 전체를 확인할 수 있는 죄수 교화 시설이다. 원형감옥 중간에 감시자가 있는 공간이 있고, 그 바깥쪽 둘레에 죄수의 방을 둔다. 죄수의 방은 밝게, 중앙의 감시 공간은 어둡게 유지한다.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 때문에 규율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게 벤담의 생각이었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16)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감시와 처벌》(나남출판)에서 파놉티콘 개념을 이용해 근대체제를 ‘한 권력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만인을 감시하는 체계’라고 설명했다. 벤담의 파놉티콘은 당시 영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실제로 세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파놉티콘이 설계도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푸코에 따르면 파놉티콘은 감금과 교정은 물론 훈련 · 노동 · 교육 · 치료 등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 장치로 폭넓게 활용되었고, 이와 유사한 내부 구조를 갖춘 감옥 · 군대 · 공장 · 학교 등 전문기관들이 근대 이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푸코는 만인을 감시하는 눈의 우월성을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이라 명명했다. 푸코의 파놉티콘 안에 갇힌 개인은 언제나 감시당하고 불안과 공포를 겪게 되며, 결국 자신 스스로 감시하게 하는 권력의 효과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규율 권력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삼는 것은 권력에 복종하는 개인을 생산하는 것이다.

 

다시 임철규 교수의 책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에서 말하는 ‘눈의 역사’와 ‘눈의 미학’은 서구 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책은 당연히 ‘서구인의 눈’이 가진 우월성 분석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 임철규 교수는 ‘이미지의 문화’로 설명되는 서구 문화와 달리 동양 문화,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는 눈의 문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불교는 눈이 일으키는 ‘작란(作亂, 장난)’을 경계했다. 작란은 앞서 언급한 ‘좁은 구멍으로 보는 것’, 즉 대상의 부분만을 보고 그것을 전체라고 규정하는 반응을 뜻한다. 

 

 

 

 

 

 

 

 

 

 

 

 

 

 

 

 

 

 

 

 

 

 

 

 

 

 

 

 

 

 

 

 

 

 

* 스기우라 고헤이 《형태의 탄생》 (안그라픽스, 2019)

* 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 편》 (김영사, 2010)

* 위앤커 《중국신화전설 1》 (민음사, 1998)

*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1994)

 

 

 

그러나 이 사례만 가지고 동양 문화는 눈의 문화가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 동양 도상에서 묘사되는 좌우 두 개의 안구, 빛나는 눈은 ‘생명’이 있는 ‘형태’의 힘을 나타내는 신체 기관이다(스기우라 고헤이, 37쪽). 그리고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 창조 신화에도 태양과 달 이미지를 두 개의 눈과 연결하는 상징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반고(盤古)는 천지를 창조한 거인 신이다. 반고의 모습을 묘사한 중국 고대 그림에 보면 그의 왼쪽 눈에 태양, 오른쪽 눈에 달이 그려져 있다. 이렇듯 태양과 달이 새겨진 창조신의 두 눈을 ‘일월안(日月眼)이라고 한다. 일월안은 일본 신화와 인도 신화에도 나오는데, 외부세계(우주)의 빛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하는 영적인 힘이 넘치는 기관으로 묘사된다. 서양에도 일월안을 묘사한 도상이 전해지는데, 재미있게도 동양과는 반대다. 왼쪽 눈이 달이고, 오른쪽 눈이 태양이다. 그리고 왼쪽 눈은 ‘밤의 눈’, 즉 과거를 상징하며 오른쪽 눈은 ‘낮의 눈’, 미래를 상징한다(진 쿠퍼, 124쪽).

 

임철규 교수는 눈물을 흘리는 예수의 눈의 긍정적 속성(‘선한 눈’)이 눈의 우월성과 폭력성이 일으키는 파국의 위기를 유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나는 ‘나쁜 눈’의 힘이 작동하는 세계를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쁜 눈 못지않게 경계해야 할 것이 가짜 눈물인 ‘나쁜 눈물’이다. 위선적인 사람이 흘리는 ‘악어의 눈물’은 진짜 슬퍼서 우는 게 아니다. 가짜 뉴스가 무수히 나오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는 누구나 악어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탈눈물(post-tears)’의 시대이기도 하다. 가짜 눈물은 진실을 씻겨 내린다. ‘눈물을 흘리는 눈’이 ‘선한 눈’인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암울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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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08 17:01   좋아요 0 | URL
지금 나오는 CCTV에 인공지능을 더하면 정말 인간의 시력보다 더 뛰어난 기계 눈이 만들어질 거예요. 그러면 찍히면 빼도 박도 못할 것입니다. 기계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없어질 수 있겠어요.
 
형태의 탄생 - 그림으로 보는 우주론, 한국어판 복간본
스기우라 고헤이 지음, 송태욱 옮김 / 안그라픽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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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는 우리나라에도 개인전을 연 적이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책 디자이너다. 그는 아시아 문화권의 도상(圖像)을 주제로 한 수많은 전시 기획과 전시 활동을 해왔다. 올해 초에 재출간된 스기우라의 책 《형태의 탄생》은 그가 만든 디자인에 녹아들었던 아시아적 시각 문화와 시각 언어를 ‘형태’라는 주제로 설명한 책이다.

 

책의 부제는 ‘그림으로 보는 우주론’이다. 부제 때문인지 《형태의 탄생》이 우주과학 분야(…‥)의 책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 책의 부제에 있는 우주론은 천문학의 영역에 있는 학문의 하위 분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철학에 기반을 두어 우주 만물의 생성 원인과 구조를 설명하는 사상이다. 고대인들은 하늘과 땅(지구), 태양, 달 등 우주 만물이 인간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신령스러운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를테면 일상의 밤하늘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던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늘과 긴밀히 결속돼 있다 생각했다. 그들에게 하늘은 특별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였다. 달은 모양에 따라 조류를 바꿨고, 태양은 별과 함께 계절을 바꿨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 계절을 따랐다.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비와 바람, 천둥과 같은 기상 현상에 고대인들은 울고 웃었다. 하늘이 인간의 영혼과 사회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던 고대인들은 하늘과의 긴밀한 관계를 자신들의 일상에 담았다. 달력, 별자리표와 책력, 신화, 의례, 춤, 무덤 등에 고대인들이 생각한 하늘이 담겼다.

 

책 제목에 있는 ‘형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형태’를 일본어로 하면 가타치(かたち)로 읽는다. 가타치는 사물의 외형을 결정하는 고정된 규범(틀)을 뜻하는 ‘가타(かた)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생명력)을 뜻하는 ‘치(ち)가 합쳐진 단어다. 스기우라는 사물의 고정된 틀에 생명력이 더해지면 ‘형태’가 탄생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도상에 숨어있는 ‘생명력이 넘치는 형태’를 발굴한다. 그가 도상에서 발견한 ‘형태’에는 고대인들의 우주론과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고대인들은 ‘형태’를 통해 우주론과 세계관을 구축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형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문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반영했다. 고대인들은 문자에 자연의 이치를 새겨 넣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기우라도 고대 아시아인들의 우주관을 반영한 디자인을 만들었다.

 

《형태의 탄생》의 장점은 풍부한 도판이다. 동양 사상, 문화, 종교에 문외한이더라도 서양 도상에 볼 수 없는 동양 도상만의 매력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도판만 골라 보면 된다. 다만 흑백 도판의 수가 천연색 도판의 수보다 적다. 책의 판형은 크지 않은 편인데도 정가가 비싸다(4만 7000원). 완전 천연색 도판으로 채워졌으면 현재 정가보다 더 비싼 금액이 나왔을 것이다. 복간판에는 구판에 없는 내용이 새로 추가되었는데, 일본 최고의 독서가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가 쓴 서평이 수록되어 있다.

 

한 권의 책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형태의 탄생》은 광범위한 고대인들의 우주가 들어 있다. 스기우라는 자신이 만든 책을 살아 숨 쉬는 ‘작은 존재’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살아 있는 책의 표지는 ‘인간의 얼굴’이다. 그는 책이라는 틀(가타)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뿐만 아니라 생명력(치)까지도 불어넣는다. 직업적인 이유가 아니고선 밤하늘을 볼 일이 드문 오늘날 우리에겐 그만큼 우주의 원대함과 광활함을 느껴볼 기회가 적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밤하늘을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책도 보지 않는다. 우주가 들어 있는 책마저 보지 않는 현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생기 있는 호기심은 사라져 간다. 결국 우리 인생에 남아있는 형태는 세상을 딱딱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틀’이다. 국경 너머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관심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또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에)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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