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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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4년제 대학을 나왔다.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를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철이 덜 든 아이들은 우스갯소리로 공부하기 싫어 실업계를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평소에 공부를 안 했던 아이들은 어떻게든 인문계에 진학하려고 용을 썼다.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진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인문계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 합격선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를 선택해야 했다. 내 부모님은 내게 무조건 인문계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과거에는 학업 성적이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다. 이렇다 보니 실업계 고교생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말 못 하는 서러움을 느껴야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졸 출신의 부모들은 자식마저 냉대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중졸 출신, 어머니는 고졸 출신이다. 두 분 모두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업에 계속 전념할 수 없었고 꽤 이른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4년제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8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실업계 고교 진학률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때 신입생 충원조차 어려울 정도로 실업계 기피 현상이 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인문계 고등학교, 실업계 고등학교’ 대신에 ‘일반계 고등학교, 특성화 고등학교’로 부르고 있다. 2010년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 직업인을 국가 차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마이스터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학생들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 부모는 일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를 제외하면 수준 낮은 학생들이 많아서 그 아이들과 어울리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대학에 나오지 못한 자식이 사람 구실을 못 하고 살아갈 것 같아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자식을 둔 부모가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것은 열악한 현장실습 환경이다. 실습 현장에서 불의를 사고를 당한 학생은 과거에도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에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실습생이 도어에 끼어 사망했다. 끼니 챙길 시간 없이 노동에 시달렸던 그의 가방에선 미처 먹지 못한 컵라면이 나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취업률 경쟁에 내몰린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 실습생’이라는 이름 아래 장시간 노동을 하며 일터 내 폭력과 안전사고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보는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은유 작가는 인터뷰 취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어린 노동자들이 어떻게 마음의 병을 앓고, 비극적인 사고로 죽었는지를 밝혀낸다. 김동준 군은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을 견디지 못해 2014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동준 군이 남긴 노트와 그의 SNS 등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속마음을 재구성한다. 작가는 더 나아가 동준 군의 가족, 이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여 동준 군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작가의 취재는 계속 이어진다. 그녀는 제주 생수 제조업체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이민호 군의 아버지, 특성화고 현직 교사와 특성화고 재학생 등을 만났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특성화고 학생을 ‘몰라도 되는’ 부끄러운 존재로 여겼다. 편견은 우리가 특성화고 학생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투명한 눈가리개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10쪽)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 독자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실에 너무 모르고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성화고 학생들에 대한 무지는 현장 실습생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은 사회적 무관심을 낳는다. 이 사회적 무관심이 지속하면 잊힌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가 같이 느끼면서 시작된다. 목숨을 담보로 불안한 일터로 향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고통이 우리 가슴에 느껴지지 않을 때 그들이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문제도 우리 기억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과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저항의 방식이다.

 

오늘도 특성화고 학생과 졸업생들이 사회의 편견에 맞서 하루하루를 힘들지만 주어진 일,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투명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책으로 남길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책이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50쇄, 100쇄 찍은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계속 나온다는 것은 저자에게는 기쁜 일이다. 하지만 현장 실습생의 사망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이 책이 언급되고 읽히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증거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자주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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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8-1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기를.

cyrus 2019-08-13 15:23   좋아요 0 | URL
저의 반어적 표현을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8-1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서 이민호 학생의 사고소식과 사망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일의 즐거움과 보람 대신 공포와 체념을 먼저 배웠을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낍니다.

cyrus 2019-08-13 15:28   좋아요 1 | URL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현장 실습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어른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현장 실습을 담당하는 기업은 애초에 그들을 노동 현장에 투입시켰으면서도 노동 중에 다치거나 사망하면 대충 보상하면서 모른 척합니다. 학생들의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짓입니다.

2019-08-13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3 15:3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따님에게 잘 말씀하셨어요. 임금을 적게 주든 많이 주든 간에 근로 환경이 열악한 곳에 자식을 일하도록 방관해서는 안 돼요. 이 책에 나오는 사망한 학생들의 부모는 후회했어요. 몸과 마음이 힘든 곳에 일한 자식들에게 일 그만 두라고 말하지 못했다면서요. 대부분 어른은 근로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젊은 사람이 힘든 일을 못 참고 그만두면 한심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꼰대질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깊게 남아 있으면 산업재해를 남 일처럼 여겨요. 그리고 산업재해가 일어난 원인을 다치거나 죽은 노동자 탓으로 돌리죠.

2019-08-15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7 08:24   좋아요 0 | URL
오히려 저는 이 책을 만든 작가님이 고맙게 느껴져요.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했고, 보지 못했던 무거운 사회 문제를 취재하셨으니까요.
 

 

 

19세기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는 영국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였다. 64년 동안 영국을 통치한 여왕의 존재감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를 ‘여왕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신사의 시대’였다.

 

 

 

 

 

 

 

 

 

 

 

 

 

 

 

 

 

 

* 설혜심, 박형지 《제국주의와 남성성》 (아카넷, 2016)

 

 

 

 

영국 제국주의를 연구한 설혜심은 대영제국의 식민지 확장 사업이 영국 남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목한다. 이 무렵 영국 신사에 부합하는 남성상은 운동으로 단련된 육체와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강인하고 엄격한 가부장적 남성이다. 그러나 이들은 영국 식민지로 넘어가면 태도가 확 달라진다. 영국 남성들은 본국의 여성을 ‘집 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로 여기면서 보호하면서도 식민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대했다. 그리고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식민지인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 [품절, No Image] 페터 풍케 《오스카 와일드》 (한길사, 1999)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영국 남성이 단지 ‘생물학적인 남성’이라서 남성성을 발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사회적 분위기와 제국주의가 부여한 ‘영국 신사’와 ‘식민지 통치자’라는 일종의 역할을 수행(performance)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영국 남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남성성을 긍정하면서 수행했을까? 모든 영국 남성이 남성성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남성성 역할을 거부한 남성이 있었다. 남성성을 거부한 가장 대표적인 영국 남성이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이다. 그는 머리를 길렀고, 가슴에 커다란 해바라기 장식을 달고 다니는 등 세인의 주목을 이끄는 화려한 패션을 소화했다. 당시 사회의 위선을 공격하는 특유의 독설은 와일드를 더 유명하게 만들어줬고, 그는 영국 사교계의 인사들 사이에서 재치 넘치는 셀럽(celeb)이 되었다. 기성 사회에 반하는 와일드의 행동과 복장은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양성적인 스타일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설명한 ‘캠프(camp)라는 개념에 부합한 인물이다. 캠프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손택은 캠프의 다양한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총 58개의 짧은 글로 구성된 단상 형식으로 글을 썼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캠프는 엄숙한 고급문화를 거부하고, 고급문화에 반하는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캠프는 반 부르주아적이고, 반 전통적인 문화다.

 

 

 

 

 

 

 

 

 

 

 

 

 

 

 

 

 

 

 

*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 《오들리 부인의 비밀》 (부북스, 2019)

* 장정희 《선정소설과 여성》 (L.I.E., 2007)

*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엮음 《공포와 일탈의 상상력: 영국고딕소설》 (신아사, 2015)

 

 

 

 

그렇다면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한 문학 장르인 선정소설(sensation novel)은 캠프 성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성급하게 결론을 내는 것일 수 있으나, 나는 선정소설의 특징이 캠프 성향과 약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손택은 캠프 취향의 기원을 ‘고딕 소설(gothic novel)에서 찾는다. 고딕 소설은 비밀 통로가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을 배경으로 신비감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르이다. 프랑스에 처음 시작된 고딕 소설은 잠시 유행이 사그라졌다가 영국에서 부활했다. 고딕 소설에서 묘사되는 미스터리한 현상들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성 중심주의에 싫증을 느낀 독자들은 고딕 소설을 주목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성에 호소하고 서늘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문학이 인기를 누리게 된다. 고딕 소설이 영국에서 인기의 정점을 찍고 있을 때 여기에 탄력을 받아 등장한 소설이 바로 선정소설이다. 그러나 엄격한 독자와 비평가들은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지 않는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을 ‘천박한 문학’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선정소설인 《오들리 부인의 비밀》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비평가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이 철저히 외면당한 이유는 단지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은 대중의 불안과 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장르이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에서 묘사된 공포는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허구적 요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공포(김일영,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2015).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기성 사회를 위협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지나칠 정도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오들리 부인의 비밀》의 주인공 오들리 부인은 한 집안의 명예에 흠집 낼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 성공하면서 그 후에 나온 선정소설 속 여성들은 가부장제를 위반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장정희, 2007). 기존 소설에서 보지 못한 여성들이 등장하고, 위험한 매력을 가진 선정소설의 여주인공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늘어날수록 보수적인 대중은 ‘여성의 욕망은 위험하다’는 공포를 간접적으로 느낀다.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 출구》 (동문선, 2004)

*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 엮음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 (사월의책, 2016)

 

 

 

 

손택은 캠프를 ‘과장된 것’, ‘벗어난 것’, ‘제 상태가 아닌 물건을 선호한 것’이라고 했다. 선정소설의 여주인공들은 과도하게 감정을 분출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선정소설에서 재현되는 여주인공의 과다한 감정 표현을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봤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표현 방식을 엘렌 식수(Helene Cixous)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와 연관 지어서 주목하고 있다. 식수가 제안한 여성적 글쓰기는 남성 중심적인 논리적 글쓰기를 전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이 유행하면서 여성들은 창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을 즐겨 읽은 여성 독자들이 늘어났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이 유행하기 전에 나온 소설과 문학은 ‘선택된 사람들만의 것(식수)’이었다. ‘선택된 사람들’에 속하지 못한 여성은 글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의 등장은 공식적인 텍스트로 인정받던 이성 및 남근 중심주의 글쓰기에 저항하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그 공간에 여성들이 들어왔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겁에 질린 남성 지식인과 독자들은 책 읽고 글 쓰는 여성을 경계했다. 글 쓰는 여성은 남성 중심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을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상업적인 소설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은 그 소설들이 나온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정확하게 반영한 문학 장르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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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8-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두사의 웃음.. 좋은가요 ? 이 책 살까 말까 했는데 출판사가 동문선이라 안 샀는데... 개인적으로 동문선을 무지 싫어하는 1인.

cyrus 2019-08-10 06:10   좋아요 0 | URL
내용은 좋은데 번역문이 별로 좋지 않아요.

곰발님이 왜 동문선을 싫어하는지 알겠어요. 출판사 대표가 문제가 많죠.. ^^;;

2021-03-24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 부클래식 Boo Classics 78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 지음, 홍덕선.오은주 옮김 / 부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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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에 나온 소설 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소설은 무엇이었을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백여 년 전에 살았던 영국인들이 생각한 ‘인기 소설’의 기준을 잘 모를뿐더러 그 시대에 나온 책들의 판매 부수가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유명한 작가의 소설이 인기가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사람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코난 도일(Conan Doyle)의 소설이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소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두 작가 모두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아온 작품들을 남겼다.

 

지금부터 내가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Mary Elizabeth Braddon)이 쓴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라는 소설도 인기 많았어요’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런 소설도 있었나요?’라고 말하면서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 빅토리아 시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1862년에 잡지에 연재된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선정소설(sensation novel)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선정소설이란 말 그대로 선정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이다. 선정소설은 출생의 비밀, 불륜,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가 나오는 아침 드라마와 같다고 보면 된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에도 아침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요소들을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들리 부인은 과거에 결혼한 이력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살인과 방화를 저지른다(사실 부인이 이름을 바꿔가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했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오들리 부인의 원래 이름은 헬렌 몰던(Helen Maldon)이다. 그녀는 너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벌써 어린 나이에 궁핍한 현실에 무서움을 느낀다. 헬렌은 부잣집 외아들인 조지 톨보이즈(George Talboys)를 만나 결혼하지만,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조지는 돈을 더 벌어오겠다는 생각에 헬렌과 외아들(아버지의 이름과 같아서 ‘어린 조지’라고 부른다)을 남겨둔 채 호주로 떠난다. 혼자서 자식을 돌보면서 가계를 꾸려나가는 처지가 된 헬렌은 가출을 감행한다. 헬렌은 루시 그레이엄(Lucy Graham)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그녀는 전처의 외동딸인 알리샤(Alicia)와 같이 살던 마이클 오들리 경(Sir Micheal Audley)과 결혼하면서 ‘루시 오들리’가 되고, 꿈에 그리던 신분 상승을 이룬다. 그러나 호주에 갔던 조지가 영국으로 돌아오고, 하필이면 조지의 절친한 친구가 마이클의 조카인 로버트 오들리(Robert Audley)였다. 로버트는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지 못한 신참 변호사지만, 정의감이 투철한 인물이다. 로버트와 조지는 부인을 만나러 직접 오들리 저택에 찾아갔으나 부인은 외출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두 사람은 알리샤의 도움으로 오들리 부인의 방에 가게 들어갔는데, 조지는 오들리 부인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조지는 사라져버리고, 행방불명이 된다. 로버트는 친구를 찾기 위해 친구와 관련된 지역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문 수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로버트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조지의 첫 번째 아내 헬렌과 오들리 부인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두 사람의 ‘연결고리’를 알아내기로 한다. 로버트는 헬렌 몰던, 루시 오들리 모두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부인과 대면하면서 자산이 알아낸 부인의 비밀을 모조리 밝힌다. 그러나 부인은 오히려 로버트를 정신병원에 보내거나 죽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초강수를 던진다. ‘아름다운 귀부인’으로 묘사된 부인은 이때부터 ‘악녀’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는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 간의 양자 대립 구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로버트 오들리는 부인의 비밀을 밝히면서 오들리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하고, 사라진 친구를 대신해서 복수하려고 한다. 오들리 부인은 처음에 남편에게 순종하는 ‘집 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로 등장하지만,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악의를 서서히 드러내는 ‘집 안의 타락 천사’가 된다.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던 도덕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오들리 부인은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 사회를 위협하는 해로운 존재이고, 그녀에 맞서는 로버트는 가부장(로버트 오들리와 조지 톨보이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의감에 투철한 ‘수호천사’가 된다.

 

오들리 부인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모습과 다른 독특한 인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은 성적 욕망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 없었으며 순수한 ‘집 안의 천사’, ‘가정의 빛’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브래든은 오들리 부인을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악녀’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내용만 가지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되고, 브래든을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에 굴복한 여성 작가’로 폄하하는 평가도 적절하지 않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은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은 인기 소설이었다. 남성 독자들은 묘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오들리 부인의 매력에 주목했겠지만, 여성 독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면서 살아가는 부인의 과감한 결단력에 주목했을 것이다. 비록 법을 어기긴 했지만, 오들리 부인은 자신의 삶을 죄어오는 갑갑한 현실을 거부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남편 없이 홀로 자식을 키우는 여성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였고, 하류층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은 빅토리아 시대 남성들이 선호하던 ‘집 안의 천사’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국 여성들은 날개 꺾인 천사로 살아갔다.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 사회 전체는 거대하면서도 화려한 수정(水晶)으로 만든 천장[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는 여성들이 마음대로 날고 싶어도 함부로 날 수 없는 곳이었다.

 

 

 

 

[주]

영국이 절정에 이르던 1851년에 런던만국박람회가 열렸고, 영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위엄을 유럽인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수정궁(Crystal Palace)을 세웠다. 그래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 상승을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하는 ‘유리 천장’과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수정궁’을 합쳐서 ‘수정 천장’이라는 단어를 썼다.

 

 

※ Trivia

 

오자가 너무 많다. 그리고 오류가 있는 역주도 있다.

 

 

* 101쪽 역주: 존 에버렛 밀레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 131쪽: 조지의 장인어른은 친구의 행동에 분개하는 로버트 달래주려고 애썼다.

 

 

* 270쪽 [‘니오베’에 대한 역주]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테베의 왕 암피온의 아내 니오베는 자만심에 들떠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자랑했다가 레토 여신의 분노를 얻었다. 여신의 부모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 의해 14명의 아이들이 화살을 맞아 모두 죽자 니오베는 슬픔으로 돌로 변했다.

 

→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레토가 낳은 자식이다.

 

 

* 306쪽: 빈세트 부인 → 빈센트 부인

 

 

* 394쪽: 루크레치아 보르자 루크레치아 → 루크레치아 보르자(Lucrezia Borgia)

 

 

* 583쪽 역주:

플로벨 → 플로베르

보드레르 → 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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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8-0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드라마 느낌이 나는 소설 같아요. ^^ 사이러스님 글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9-08-09 17:54   좋아요 0 | URL
분량이 꽤 많습니다. 책의 중반부가 지루했어요. ^^;;

레삭매냐 2019-08-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 클래식, 출판사가 의심스러워
기피하고 있습니다.

cyrus 2019-08-09 17:58   좋아요 0 | URL
부북스 출판사의 책을 많이 읽어본 적이 없어서 번역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일수록 그 출판사의 책을 안 읽게 되네요.. ^^;;

수이 2019-08-0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희빈 떠올라. 여성사 쪽에서 보자면 장희빈이 긍정적인 면모가 꽤 많더라_고 전해들었는데_ 앞으로 그 위치가 달라질 거라고 하더라구. 페이퍼 읽고 떠올라서 ^^

cyrus 2019-08-10 06:16   좋아요 0 | URL
악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에도 약간의 공로가 있다면 그것 또한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
 
임윤지당 평전 - 규방의 삶을 벗어던진 조선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경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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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을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조선 시대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화권에서 유교 문화를 경험하며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유지하면서 사회 발전을 이뤘다. 16세기 이전까지 조선 사회는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 또한 중시하는 친족 관계, 아들딸 차별 없이 재산을 상속하는 관습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부터 조선 왕조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국가 정책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왕-아버지-장남을 중시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사회 저변까지 침투하게 된다.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가 성립되면서 남성이 경제권을 쥐고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혈통 계승의 역할을 담당한다. 남성들은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이 남편 이외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수 없도록 제한했다. 그 때문에 여성은 결혼 전에는 순결해야 하고 결혼 후에는 정조를 지켜야만 했다. 유교 가부장제에 종속된 여성은 ‘현모양처’, ‘열녀(烈女)’가 되려고 했으며 그렇지 못한 여성은 악녀 또는 음란한 여성으로 알려졌다.

 

가부장제의 한계는 비단 형식만 남은 우리나라 유교 문화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권위적인 가부장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는 권위적인 가부장제를 의식에 내면화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 문화에 일체화된 채 살아가는 여성은 가모장이 된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조선 시대 여성들의 일상사를 접하게 되면 유교와 성리학이 ‘여성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으로 느껴진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유교와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 시대 여성들이 활동에 제약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양반 여성들은 유교 경전을 읽으면서 공부했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고 제한적이지만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공부하면서 글 쓰는 양반 여성들의 능력을 인정했고 오히려 장려하기도 했다. 유교와 성리학은 여성과 무관한 학문이 아니다. 유교와 성리학을 페미니즘과 완전히 상반된 적대적인 학문으로 본다면 우리는 유교 가부장제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간 여성들의 삶과 업적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임윤지당 평전》우리가 알지 못했던 위대한 여성의 일대기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깰 조선 시대 양반 여성들의 생활 모습까지 보여준다. 임윤지당(任允摯堂) 조선 시대 중기에 활동한 성리학자다. 그녀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성인들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선비들처럼 학문과 수행에 몰두했다. 윤지당의 둘째 오빠 임성주는 윤지당에게 큰 영향을 준 지적 스파링 파트너였다. 그는 누이의 성품과 지적 열정을 높이 사 그녀에게 ‘윤지당’이라는 호를 만들어 주었다. 윤지당은 유교 경전을 재해석하거나 경전에 나오는 구절을 따져가면서 읽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까지 임윤지당의 존재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던 것일까?

 

남녀의 위계질서를 중시한 조선 시대에 여성이 남성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성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양반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 경전을 공부하면서 토론하는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임윤지당은 여성에게 학문과 수양을 권장하는 가문에서 자랐으며 특히 그녀의 어머니 파평 윤씨 부인은 딸이 공부하는 것을 지지했다. 조선시대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남존여비’라는 일반적 인식을 확 뒤엎는 역사적인 사례이다. 많지 않지만, 조선 시대에 임윤지당처럼 공부하는 양반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남성 사대부들이 공부하는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여성들의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거나 혹은 은폐된다. 남성 사대부들은 공부하는 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들의 능력에 한계를 그으려고 했다. 지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양반 여성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쓴 글이 문집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아예 사라지게 되면 후대에 알려지지 못한다. 문집 만드는 일은 남자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들이 없는 양반 여성이 쓴 글이 남성 친척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면 잊힐 가능성이 높다. 임윤지당의 글과 생애는 그녀의 문집을 편찬한 동생 임정주 덕분에 알려질 수 있었다.

 

임윤지당은 도전적인 자세로 임하면서 공부했다. 그녀는 성리학의 핵심인 이기심성과 사단칠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사대부들이 높이 평가한 인물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윤지당은 공자(孔子)가 칭찬한 제자로 성인으로 평가받은 안회(顔回)를 롤 모델로 삼으면서 공부했다. 그녀는 사대부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 중 하나인 성인과 범인(凡人)의 차이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했고, 범인과 성인의 본성에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리하여 윤지당은 ‘범인’이자 ‘여성’인 자신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동안 남성 유학자들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하면서 배움의 길을 강조했는데, 윤지당은 여성도 극기복례를 실천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그녀의 파격적인 결론은 유교 이념에 충실한 주체나 학문적 경지에 이른 성인을 ‘남성’으로 한정해서 바라본 기존의 입장을 넘어선 것이다. 윤지당은 유교 윤리에 충실한 주체적 여성상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여성의 주체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을 근대 이후로 잡고 있다. 신문물과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신여성은 한국 여성사에서 어떤 여성들보다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 시대의 양반 여성들은 유교 사회가 그어놓은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뚜렷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글로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는 양반 여성들의 주체성을 자세히 보지 못한 채 그녀들을 ‘집 안의 현모양처’로만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그녀들의 서사를 가리고 있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장옷[주]을 벗겨내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자기실현의 한 주체로 우뚝 서고자 했던 또 다른 임윤지당을 만날 차례가 왔다.

 

 

 

[주] 조선 시대에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쓴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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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0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사대부 타령!

아직도 성리학적 질서로부터 완전
히 탈피했다고 볼 수 없지 않나 싶
습니다만.

그나저나 대척점에 서 있는, 온라인
한겨레에서 읽은 현대판 걸그룹에
해당하는 여성가극단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cyrus 2019-08-09 18:15   좋아요 0 | URL
역사를 공부하면 아쉬운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들이나 결정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곤 해요. 이럴 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잊힌 역사들을 살펴보고 싶어요.. ㅎㅎㅎ
 

 

 

 

공포문학은 독자 성향에 따라 작품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탐구하는 현실 밀착형 공포를 선호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미지의 존재나 귀신 같은 초자연적 공포만을 찾는 독자도 있다.

 

 

 

 

 

 

 

 

 

 

 

 

 

 

 

 

 

 

 

*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황금가지, 2005)

* 김은희 《킹덤: 김은희 대본집》 (김영사, 2019)

 

 

 

 

몇 년 전부터 ‘좀비(zombie)가 공포물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시리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2016년에 영화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형 좀비 영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판 좀비 사극 <킹덤(kingdom)>은 탄탄한 스토리와 액션, 화려한 영상미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는 좀비를 소재로 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원작을 읽을 때 좀비 떼들이 달아나는 인간을 쫓아가서 물어뜯는 잔혹한 영화 장면을 기대해선 안 된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인류 마지막 생존자의 고독과 절망적인 공포의 깊이를 묘사한 소설이다.

 

 

 

 

 

 

 

 

 

 

 

 

 

 

 

 

 

 

 

*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열린책들, 2009)

 

 

 

 

좀비물이 언제까지 유행할지 모르겠으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오컬트 소재가 등장하게 되면 좀비물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다. 좀비물이 유행하기 전에는 뱀파이어물이 많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장편소설 《드라큘라》는 20세기 이후에 출현한 다양한 뱀파이어물의 원본이다. <노스페라투(Nosferatu)>에서 프란시스 코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드라큘라>에 이르는 뱀파이어 영화들은 스토커의 소설에 빚지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16)

* [절판] 로렌스 A. 릭켈스, 정탄(=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강의》 (루비박스, 2009)

* 한혜원 《뱀파이어 연대기》 (살림, 2004)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오기 전에 흡혈귀 전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스토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활동한 몇 몇 작가들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흡혈귀가 처음으로 ‘뱀파이어(Vampir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시인 조지 바이런(George Byron)의 주치의 겸 비서인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의 동명 단편소설에서였다.

 

폴리도리는 바이런과 함께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의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1816년 스위스에서 메리 셸리(Mary Shelley)와 그의 남편이자 시인인 퍼시 B. 셸리(Percy Bysshe Shelley)를 만났다. 바이런과 폴리도리, 그리고 셸리 부부가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었던 기간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며칠 내내 비가 내렸는데, 훗날 기상학자들은 1813년에 폭발한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에 나오는 화산재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1816년 스위스의 날씨가 나빠졌다고 보고 있다. 외출을 할 수 없었던 네 사람은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무서운 이야기를 만드는지 내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폴리도리는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만든다. 폴리도리의 소설에 뱀파이어로 나오는 루스벤 경(Lord Ruthven)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바람둥이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1819년에 발표되었다. 올해는 뱀파이어가 세계문학사에 처음으로 진입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뱀파이어》가 발표되기 일 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이 메리 셸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그 이야기를 만든 폴리도리가 아닌 ‘조지 바이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실은 잡지의 편집자가 당시에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명사였던 바이런의 이름을 쓴 것이다. 《뱀파이어 연대기》(살림)에서 폴리도리는 ‘바이런의 명성에 의해 가려진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뱀파이어 영화와 관련 문학작품들을 비평하는 강의를 개설한 로렌스 A. 릭켈스(Lawrence A. Rickels)폴리도리가 바이런이 이미 구상한 작품[주1]을 표절했다고 주장한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구상한 작가가 폴리도리인지 아니면 바이런인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로서는 《뱀파이어》의 원작자는 폴리도리로 알려지고 있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에 수록되어 있다.

 

 

 

 

 

 

 

 

 

 

 

 

 

 

 

 

 

 

 

 

* [e-Book]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왓북, 2019)

* [e-Book] 브람 스토커 《판사의 집》 (올푸리, 2019)

 

 

 

 

《드라큘라》가 워낙 유명해서 스토커는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로 알려져 있다. 《드라큘라》를 쓰기 전에 이미 여러 편의 장편과 단편소설을 썼지만, 《드라큘라》만큼 성공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토커는 27년 동안 영국의 연극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의 비서 겸 어빙이 소유한 극장 지배인으로 일한다. 스토커가 영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그를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토커는 더블린(Dublin)에서 태어난 아일랜드 인이다. 1912년에 스토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내(스토커와 결혼하기 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그녀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스토커와 와일드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이며 대학 동문이다)가 남편이 쓴 중 · 단편을 모은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을 1914년에 출판한다. 이 소설집에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드라큘라의 손님(《뱀파이어 걸작선》에 수록), 『판사의 집』(《영국의 괴담》에 수록), 『스쿼(squaw,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 『쥐들의 장례』[주2] 등이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 [e-Book] 르 파뉴《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 (올푸리, 2018)

 

 

 

 

『드라큘라의 손님』은 원래 《드라큘라》 초고의 초반부에 해당한 내용이었으나 초판에서 삭제되었다. 『판사의 집』은 17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악명 높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살았던 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공포의 절정을 이룬다. 과거에 죽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무시무시한 유령으로 등장하는 플롯은 1851년에 발표된 조지프 셰리든 레 파누(Joseph Sheridan Le Fanu)《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레 파누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며, 스토커는 레 파누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언론 매체의 연극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레 파누는 초자연적인 존재 및 현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872년에 나온 《카르밀라(Carmilla)다. ‘카르밀라’는 소설에 나오는 ‘레즈비언 흡혈귀’의 이름이다. 《카르밀라》는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책세상, 2004)

*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 (명문당, 2000) [주3]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완역본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완역본에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 중 단 네 편(『드라큘라의 손님』, 『판사의 집』, 『스쿼』, 『쥐들의 장례』)만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책에 있는 공포문학 작품들을 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공포문학도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유행을 탄다.

 

 

 

[주1] 미완성 소설이라 ‘미완의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여지게 됐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되어 있다.

 

[주2] ‘쥐의 매장’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호러 걸작선》에 수록되어 있다. 종이책은 절판되었고, 현재는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주3] ‘판사의 집’이 수록된 단편 공포소설 선집. 영국,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이 쓴 단편 공포소설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번역체에 한문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진다. 참고로 이 번역본을 만든 ‘명문당’은 동양 고전을 많이 펴낸 출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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