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분만실에 곧 출산을 앞둔 산모가 있는데 전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서 들락날락한다면 이게 과연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일까? 작년에 예비 산모들을 위한 ‘분만실 투어’를 실시한 산부인과가 있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주1] 이 문제의 산부인과는 외부 사람 출입이 제한된 수술실까지 공개했다고 한다. 분만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의 손 소독을 포함한 위생 절차는 생략되었다. 해당 병원에 있는 산모와 그 가족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병원 측은 위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어제 복지부는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 안’을 입법 예고했다.[주2] 이 개정안에 따르면 수술실과 분만실에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동안 출입이 허용된 환자나 의료인, 간호조무사 등을 제외한 외부 사람은 출입할 수 없다. 만약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수술실과 분만실에 출입하려면 의료기관장의 승인과 위생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의료기관장은 외부인 제한 구역에 출입한 사람의 이름, 출입 목적, 승인 사항 등을 기록하고 일 년간 보관해야 한다.

 

 

 

 

 

 

 

 

 

 

 

 

 

 

 

 

 

 

 

* 리 골드먼 《진화의 배신》 (부키, 2019)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에이도스, 2019)

 

 

 

 

의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도 안다.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외부 사람이 수술실과 분만실 근처에 지나가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일이다. 의학 기술과 의료 기관이 더 좋아지고 있는 지금도 소독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수술대 위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산모는 각종 위험에 노출되기 쉬웠다. 출산 중에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은 산모가 많았다. 구석기 시대 여성들은 현대 여성들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낳았다. 진화의학자들은 구석기 시대 여성들이 출산 중에 일어나는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할 확률은 현대 여성보다 높았다고 주장한다(리 골드먼, 웬다 트레바탄).

 

전설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처음으로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의학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때 실제 제왕절개를 시행하였더라면 산모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느 정도 문명이 발달한 19세기 유럽에서도 출산 도중에 사망하는 유럽의 산모가 많았다. 산모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산욕열이었다. 산욕열은 분만하는 과정에 생긴 상처에 세균이 감염되어 고열이 일어나는 병이다. 사람들은 산욕열을 ‘하와(Hawwāh)의 저주’라고 불렀다. 산욕열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예방법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사토 겐타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사람과나무사이, 2018)

* 예병일 《의학사 노트》 (한울아카데미, 2017)

* [절판] 헨리 지거리스트 《위대한 의사들》 (현인, 2011)

 

 

 

 

의사들도 벌벌 떨게 한 ‘하와의 저주’를 끝낸 영웅은 헝가리 출신의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였다. 그는 메스에 손이 찔린 동료 의사가 산욕열과 같은 증세를 보이다가 사망한 것을 보고, ‘소독하지 않은 의료 기구와 의사들의 손’이 산욕열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멜바이스는 산모들의 검진과 수술을 하기 전에 표백제로 손을 씻었다. 그러자 산모의 산욕열 발병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그는 산욕열의 원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알리기 위해 각종 학술지에 실릴 글을 썼고, 여러 저명한 의학자와 의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학계와 의료계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제멜바이스가 감염의 원인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 점도 문제였지만, 의사들은 환자들을 살린 자신들의 손이 세균에 노출된 불결한 부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의사들의 권위와 명예를 흔들리게 할 수 있는 도전이며 반항이었다. 제멜바이스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고, 특히 자신을 비방하는 동료 의사들을 가리켜 ‘손을 씻지 않은 살인자’라고 부르면서 맞대응했다. 외로운 투쟁은 헝가리인 의사의 정신을 지치게 했다. 결국 제멜바이스는 의료계로부터 완전히 배척당한 의사가 되었고,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냈다. 의사에서 환자가 된 그는 정신병원 직원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가 덧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다. 서구 의료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소독법은 영국의 외과 의사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의 살균법이다.

 

 

 

 

 

 

 

 

 

 

 

 

 

 

 

 

 

 

 

* 프랑스 카르프, 카트린 조르주와이오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온, 2019)

 

 

 

 

분만실 투어는 산모의 감염 위험률을 높이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출산을 앞둔 산모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출산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산모의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다. 산모는 아이가 자궁 밖으로 나오는 상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통으로만 느껴야 한다. 그런데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진통을 견디면서 아이를 낳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상상해보라. 너무나도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상황이다. 예비 산모도 곧 경험하게 될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오히려 예비 산모에게 아이가 나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분만실 투어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예비 산모에게 출산의 고통을 일찍 알려주는 교육 방식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예비 엄마에게 자신의 몸과 생리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비 엄마가 겪는 모든 사소한 고통에 대한 호소에 응답해주고, 옆에서 도움을 주면서 자신감 있게 ‘출산 전의 몸’에 정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산모들에게 출산에 관한 방송을 보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출산을 링거 주사와 기계, 고통과 연결 지으면서 역설적이게도 산모들에게 자신의 몸과 감정에 귀 기울이라고 하는 그런 방송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산모들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기를 바라는 걸까요? 여성은 대체로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우리는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새 생명을 낳았으니까요. 이 행위는 우리가 따져보거나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3.5킬로그램 무게의 아기가 우리 몸을 통과해서 나간다는 엄청난 생각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지요.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중에서, 89~90쪽, 밑줄은 글쓴이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해둔 것임.)

 

 

 

대부분 사람은 산모들이 건강하게 아기를 낳으려면 출산 경험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선행 학습을 해보라는 셈이다. 분만실 투어는 처음에 그러한 의도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예비 산모에게 출산의 고통을 미리 느껴보라고 권하는 것은 대단히 몰상식한 생각이다. 고통은 구경거리가 될 수 없다. 고통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당하고 감시당하는 것도 고통을 겪는 자의 정신을 짓밟는 폭력이다. 특히 아이를 낳을 일이 없는 남자, 특히 남성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실 투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그들은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런 의사는 의료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주1] <수술 중 제한구역 공개한 병원 “투어 중단” … 정부 규제 강화>, SBS, 2018년 5월 17일.

 

[주2] <비상식적 산부인과 투어 막는다 … 수술실 · 분만실 비 의료인 ‘출입 금지’>, 중앙일보, 2019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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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19-11-0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이네요. 산모와 예비산모 모두에게 불편한 이런 투어가 공짜는 아닐테고 이것 역시 자본주의의 산물인가요? 희생양 역시 여성이구요.

cyrus 2019-08-19 15:2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예비 산모는 산부인과에 찾아오는 예비 고객이니까요.
 
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5
장 마리니 지음 / 시공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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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뱀파이어(Vampire)는 책이나 영화, 만화에 나오는 상상의 존재이다. 뱀파이어는 밤에 활동하면서 살아있는 자의 피를 빨아먹는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뱀파이어가 무덤에서 나와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떠돌았고(이때 ‘뱀파이어’라는 단어는 나오기 전의 시대였고, 무덤에서 나오는 흡혈귀를 ‘피 빨아먹는 시체’라고 불렀다), 그런 미신은 특히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에다 문맹률이 높았던 동유럽 지역에 유행했다.

 

미신은 괴물이 나오는 전설을 만들었다. 그 전설의 주인공은 현재 루마니아의 영토가 된 왈라키아(Wallachia) 왕국의 왕자 블라드 테페스(Vlad Țepeș, ‘체페슈’라고 쓰기도 한다)다. 그는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드라큘라(Dracula)에 나오는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오스만 제국의 침입에 맞서 싸운 루마니아인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공적이 있었음에도 그는 폭군으로 묘사되어 왔다. 테페스는 별명인데, ‘말뚝을 박는 자’라는 뜻이다. 블라드의 또 다른 별명은 가장 유명한 ‘드라큘레아(Drăculea)다. 우리가 잘 아는 ‘드라큘라’의 어원이다. 드라큘레아는 ‘용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서양에서 용은 불길한 짐승이다. 블라드 왕자는 오스만 제국의 포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민들을 잔인한 방식으로 고문을 하거나 학살했다. 블라드 왕자가 가장 좋아한 고문 방식은 ‘말뚝 박기’였다.

 

뱀파이어 전설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유행하게 된 것은 유럽 문명이 발전하면서 여러 번 생긴 그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첫 번째로 유럽에 드리워진 그늘은 전염병의 유행이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무지는 흡혈귀의 존재를 확신하게 했다. 사람들은 병균에 감염되지 않으려고 전염병에 걸려 죽은 자를 매장했고, 때로는 약간의 증상이 나타난 환자를 산 채로 매장하기도 했다. 무덤에서 시체가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시체가 흡혈귀가 되었다고 믿었다. 두 번째 그늘은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독교의 권위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위상이 흔들리던 교회는 이단 교파들을 처벌하기 위해 그들이 한 모든 일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규정한다. 교황은 ‘살아있는 시체’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종교개혁을 이끈 프로테스탄트도 흡혈귀의 존재를 인정했다. 기독교는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적대적인 세력을 배척하기 위해 악마의 존재를 인정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지역에 악마와 관련된 미신과 전설이 나도는 계기가 되었다. 뱀파이어는 수많은 미신과 전설의 확산에 힘입어 유럽 전역을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고, 미신에 집착하는 대중을 비판하는 계몽주의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18세기에도 뱀파이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흡혈귀: 잠들지 않는 전설》은 뱀파이어가 탄생하게 된 기원을 추적하고, 뱀파이어가 시대별로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었지 보여준다. 뱀파이어는 순종이 아니라 ‘잡종’이다. 뱀파이어는 폭군으로 알려진 인물들의 (과장된) 모습과 살아있는 시체, 그리고 늑대 인간까지 각각의 속성을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아교로 붙여 만들어진 존재이다. 지금은 좀비(Zombie)가 대세라서 뱀파이어의 인기가 주춤하고 있지만, 뱀파이어는 언제든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녀석이다. 사실 좀비와 뱀파이어는 조상(?)이 같다. 좀비도 무덤에 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 나오는 ‘살아있는 시체(undead)다. 뱀파이어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주]

 

 

 

 

 

※ Trivia

 

내가 읽은 책은 2011년에 발행된 25쇄이다.

 

 

* 26쪽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조리 카를 위스망이 자신의 소설 《라바》(1891)에서…‥

 

 

‘라바(Lá-bas) ‘저 아래로’, ‘지옥에서’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악마주의를 소재로 한 위스망스(Huysmans)의 소설은 작년에 ‘저 아래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 71쪽

어느 날 저녁,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그와 함께 여행을 하던 동료들(동료 작가 퍼시 바이셰와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셸리, 그리고 바이런의 개인 비서 겸 의사 존 폴리도리 박사)은 유령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신들이 직접 서스펜스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로 결정했다.

 

 

→ 인용한 문장은 메리 셸리(Mary Shelley)《프랑켄슈타인》조지 바이런(George Byron) 또는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뱀파이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 내용의 일부다. ‘퍼시 바이셰’는 영국의 시인 퍼시 바이셰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오식이다.

 

 

[주] 미국의 군인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퇴임식에서 한 말로 알려진,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를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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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7 08: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책의 저자도 흡혈 행위가 금기가 된 기원을 기독교 교리에서 찾고 있습니다. ^^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 '보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관하여 땅콩문고
김겨울 지음 / 유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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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책 안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책을 권하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북튜브(Book + Youtube) 채널은 독서를 즐기는 독자들은 물론이고 예비 독자들까지 보게 만드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 시청자들은 어려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거나 핵심 내용만 간추려 소개해주는 북튜버들의 영상을 선호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북튜브 채널은 ‘겨울서점’이다. ‘겨울서점’ 채널을 운영하는 김겨울 씨는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소개한다. 특히 가장 인기가 많은 영상은 ‘낭독의 즐거움’과 ‘굿즈 리뷰’이다. ‘낭독의 즐거움’은 김겨울 씨가 책에 있는 문장을 읽어주는 코너이다. ‘굿즈 리뷰’는 말 그대로 책을 사면 받을 수 있는 사은품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가끔은 게스트들을 초대해서 책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코너도 진행한다.

 

 

 

 

 

 

김겨울 씨는 본인의 독서 경험을 소재로 책 두 권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에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번에 나온 책에서 김겨울 씨는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유튜버 김겨울’의 경험을 들려준다(‘유튜버 김겨울’이라고 쓴 이유는 글 마지막에 나온다). 북튜브가 되고 싶은 사람들만 이 책을 보란 법은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cyrus야, 북튜브가 하고 싶어?’라고 묻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말을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 예전에 글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발음이 좋지 않고, 가끔 말을 더듬기도 한다. 특히 카메라 앞에 서서 말을 하면 말 더듬이 심해진다. 나는 단지 김겨울 씨가 이 책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서 보는 것뿐이다.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에 있는 내용 절반은 겨울서점 채널을 구독하는 분들은 다 아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유튜버 김겨울’이나 북튜브 채널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요긴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손에 딱 쥐기 편한 사륙판(이 책을 만든 유유출판사만의 출판 방식이다)으로 만들어진 책은 ‘참을 수 없는 무거운 책의 지루함’을 싫어하는 독자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북튜브 채널을 개설할 생각이 있는 독자들이 이 리뷰를 읽고 있다면 김겨울 씨의 목소리를 빌려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북튜브에 대한 강연을 꽤 많이 하고 있지만 북튜브의 미래가 어떨지는 제가 보기에도 불투명합니다. 후발주자에게도 이만큼의 기회가 돌아가려면 북튜브 시장도, 도서 시장도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일단 사실만 고백합니다. 북튜버라는 직업‘만’으로는 돈을 벌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습니다.

 

(91쪽, 밑줄은 서평 작성자가 한 것임)

 

 

내가 이런 식으로 책의 핵심을 말해버리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정말로 있다면 양해를 부탁드린다. 하지만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을 위해서 책의 핵심을 반드시 언급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1인 크리에이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대부분은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는 일을 만만하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도 충분히 준비하면 1인 방송을 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 방송을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유튜버를 집에서 할 수 있는 편한 직업으로 생각할 것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하고 있다. 직접 유튜버를 해보기 전까지는.[주]

 

북튜브는 다른 유튜브의 방송 소재(게임, 먹방, 영화 등)에 비하면 주목을 많이 받기 어렵다. 저작권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영상을 만들어야 하므로 책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에 직면한다. 북튜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북튜버라 하면 ‘본인이 읽는 책에 있는 문장을 읽어주기만 하는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그렇게 하다간 저작권 침해로 신고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기획 · 촬영 · 편집 모두 혼자 맡아 진행하다 보면 그만큼 콘텐츠 소재에 대한 고민도 많아진다. 북튜버를 ‘돈 벌기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전하면 큰코다친다.

 

‘유튜버 김겨울’ 씨는 북튜브 채널의 운영 비결을 소개하면서도 북튜버 활동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는다. 재미를 위해 북튜버 활동을 시작한 그녀도 동영상 조회 수에 연연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유튜버는 ‘매주 숫자로 평가받는 직업’이다. 이렇다 보니 조회 수와 구독자 수를 많이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영상만 올리는 유튜버가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다른 분야의 유튜버들에 비해 비교적 건전하다고 알려진 북튜버라고 하지만, 몇 몇 북튜버들도 때론 도의에 어긋난 방송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들이다. 그들은 책을 광고하는 방송을 하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런 북튜버의 행위는 시청자와 독자를 기만하는 일이고, 다른 북튜버들의 명예까지 흠집 내는 일이다. 그런 사람은 북튜버가 아니라 ‘북 치고 장구 치는 호객꾼’이다. 북튜버는 출판사 홍보 담당자가 아니다. 북튜버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들을 소개하는 사람이다.

 

김겨울 씨는 북튜버가 된 이후로 악플 공격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북튜버 김겨울’로 활동하면서 악플을 볼 때마다 마치 ‘인간 김겨울’이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겨울 씨는 ‘인간 김겨울’과 ‘북튜버 김겨울’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싶다고 선언한다. 또 유튜브에 ‘인간 김겨울’에 관한 사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은 ‘유튜버 김겨울’이 책 권하는 법을 소개한 책이다. ‘인간 김겨울’을 존중하는 그녀의 생각에 공감한다. 한때 나도 김겨울 씨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이참에 ‘블로거 cyrus’와 ‘인간 최○○’를 분리하면서 살아가야겠다. 남들이 보든 말든 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글을 자주 써야겠다.

 

 

 

 

 

[주] 8, 90년대 헤비급을 평정한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Michael Tyson)이 한 말로 알려진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얼굴에 한방 쳐 맞기 전까지는(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을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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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4 18:27   좋아요 0 | URL
1인 방송을 하려면 고화질 카메라에, 고품질의 마이크와 조명등까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네요.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

2019-08-14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4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8-1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모 씨 유튜브에서는 노골적으로 편당 500만원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역시나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병폐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9-08-14 18:31   좋아요 0 | URL
요즘 유튜버를 장래희망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대요. 요즘 아이들은 일하면서 버는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틀린 사실은 아닌데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너무 매달리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2010년 충남 당진의 한 제철소에 설치된 섭씨 1,600도가 넘는 용광로 속에 29살 청년이 추락하여 사망했다. 추락 방지 장치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설치되었어도 청년 노동자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청년 노동자의 비참한 죽음을 보도한 기사에 ‘제페토’라는 이름의 누리꾼이 조시(弔詩) 형식으로 된 댓글을 남겼다. 그 댓글이 바로 『그 쇳물 쓰지 마라』다.

 

 

 

 

 

 

 

 

 

 

 

 

 

 

 

 

 

 

*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2016)

 

 

 

 

 

광염(光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냐.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25쪽)

 

 

 

 

이 시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누리꾼들은 청년 노동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시를 공유했다. 그러나 제페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용광로는 여전히 뜨겁다.

 

 

 

 

 

 

 

 

 

 

 

 

 

 

 

 

 

 

 

*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돌베개, 2019)

 

 

 

하루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많은 노동자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가 늘 보는 일상용품이나 건물 속에도 노동자들이 있다.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흔적,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뼈와 피와 살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노동을 미화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만든 일상용품 속에 그들의 ‘피, 땀, 눈물’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말이 노동자들의 숭고한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말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쉬지도 않고 일하는, ‘살아있는’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 대다수는 힘든 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인텔리에 속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노동은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미화하는 말은 현재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노동을 미화하는 인텔리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침묵한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덜 흘리면서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드는 일에 소극적으로 나선다. 이러면 노동자들이 주로 투입되는 작업장의 개선은 더디고, 그들의 노동은 위험한 상태로 진행하게 된다.

 

 

 

 

 

 

 

 

 

 

 

 

 

 

 

 

 

 

 

 

* [e-Book] 하야마 요시키 《단편을 맛보다, 하야마 요시키 편》 (책보요여, 2018)

* 하라 겐이치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 (어드북스, 2010)

 

 

 

 

노동자의 시선으로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고 묘사한 작가가 있다. 그는 바로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1945)다. 그의 문학을 ‘일본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야마는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으나 화물선 수습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다. 그 후 시멘트 공장에 일하게 되는데, 그 공장에서 노동자가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일을 계기로 하야마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했으나 해고당하는 바람에 노동조합 결성이 무산된다. 그러나 하야마는 노동조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19년 이후 일본에 확산한 노동조합주의 운동의 선봉에 서는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인정받는다.

 

하야마의 소설은 ‘노동자’로서 살았던 작가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하야마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단편소설 『시멘트 통 속의 편지』‘알지 못하는 노동자의 죽음의 흔적’을 처음으로 언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댐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일하다가 우연히 시멘트 통 속에 들어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발견한다. 나무 상자 속에 누군가가 입었던 낡고 헤진 작업복과 편지가 들어 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저는 N 시멘트 회사의 시멘트 자루를 만드는 여공입니다. 재 애인은 분쇄기에 돌을 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0월 7일 아침, 커다란 돌을 넣다가, 그 돌과 함께 분쇄기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동료들이 구해 주려고 했지만, 재 애인은 물속에 잠기듯 돌 더미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돌과 애인의 몸은 함께 부서져 붉은 조각돌이 되어 컨테이너 벨트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벨트를 따라 분쇄 통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속에서 강철 탄환과 같이, 잘게 잘게, 저주와도 같은 격한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런 다음 불구덩이로 들어가 훌륭한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뼈도, 살도, 영혼도, 완전히 가루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이 편지를 써서 이 통 속에 살짝 넣어 두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인가요? 당신이 노동자라면, 저를 불쌍히 여겨 답장해주세요.

 

이 통 속의 시멘트는 어떤 곳에 쓰였나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곳에 쓰였나요? 당신은 미장이인가요, 건축가인가요? 저는 제 애인이 극장 복도나 커다란 저택의 담벼락이 되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곳에 쓰지 마세요.

 

[중략]

 

그이는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막 26살이 된 젊디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이에게 하얀 수의를 입히는 대신, 시멘트 자루를 입히네요! 그이는 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회전 가마 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면, 제게 답장해 주세요. 그 보답으로 제 애인이 입은 작업복 조각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감싸고 있는 천이 그 조각입니다. 이 조각에는 돌가루와 그이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그이가 이 작업복을 입고 저를 얼마나 꼭 껴안아 주었는지 모릅니다. 부탁합니다. 이 시멘트를 쓴 날짜와 상세한 주소, 어떤 곳에 썼는지, 그리고 실례가 아니라면 당신의 성함도, 꼭꼭 알려주세요. 당신도 부디 몸조심하세요. 안녕히.

 

 

(박소정 옮김, 『시멘트 통 속의 편지』 중에서, 11~14쪽, 밑줄은 글쓴이가 한 것임)

 

 

 

하야마는 편지에 있는 여공의 목소리로 죽으면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고발한다. 그러면서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들을 기억해달라고. 여공의 편지는 노동자가 아닌 독자들도 노동 문제에 공감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편지의 여운을 느낀 독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 가족, 친구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죽은)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 [절판, No Image] 정태원 편역 《공포 특급 6: 일본 편》 (한뜻, 1996)

 

 

 

 

90년대에 『시멘트 통 속의 편지』가 일본 공포 문학 선집에 수록된 적이 있다. 아마도 죽은 노동자의 몸이 기계에 분쇄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내용 때문에 공포 문학으로 분류된 것 같은데, 엄연히 말하면 공포 문학으로 볼 수 없다. 『시멘트 통 속의 편지』의 장르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다.

 

하야마 요시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서 하야마에 대판 평가가 엇갈린다. 한때 ‘좌파 작가’라는 이유로 하야마의 작품들이 외면당했고, 한편으로는 만주를 통치하려는 일본 국가 정책에 지지한 작가라고 비판받았다. 하야마는 일본의 만주 통치 정책(일본은 자신들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 일본인들의 이민을 추진하는 ‘만주 개척단’을 만들었다)에 지지하여 자신의 외동딸과 함께 만주로 향했다. 일본이 패전하면서 하야마는 딸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지만, 귀국하던 중 열차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어드북스)여행기 형식으로 된 ‘하야마 요시키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작가는 하야마의 흔적이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는데, 직접 하야마의 외동딸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생소한 하야마의 삶과 노동문학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단편을 맛보다, 하야마 요시키 편》 (책보요여) 는 하야마의 단편소설 다섯 편이 수록된 선집이다. 하야마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시멘트 통 속의 편지』와 함께 추천하고 싶은 단편은 『만복추상(万福追想)이다. 일본에 강제로 연행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한국인인가?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만복추상』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 Trivia

 

*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 155쪽 역주루쉰(魯迅)의 출생연도가 ‘1981’로 잘못 적혀 있다. 그는 1881년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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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4 17:3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산업재해를 가볍게 여기는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안전 불감증은 고용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들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레삭매냐 2019-08-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인터넷 언론을 통해 본 청년들을
위험한 노동의 최전선에 내모는 현실
에 대한 기사를 읽어서 그런지 더 와
닿는 포스팅이었습니다.

소수의 자본가 계급을 제외하고는 거
의 모든 이들이 노동자일 텐데, 자신
의 본질 혹은 본성을 부인하는지 이해
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하야마 요시키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네요.

cyrus 2019-08-14 17:37   좋아요 0 | URL
‘노동’은 힘든 일을 떠올리게 하고, 좌파들이 선호하는 용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사실 저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노동’보다는 ‘근로’라는 말을 선호하죠. 그래서 노동자의 처우 문제를 남 일처럼 생각하기 쉬워요.

blanca 2019-08-1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로 읽은 기억이 나요. 감정을 이입하면 너무 괴로워서... 오늘 엘리베이터 사고로 또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자꾸 미국 이야기 하는 것 안 좋아하지만 상대적으로 육체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가 유교 문화권엔 팽배한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존중받고 대우 받아야 할 직업군인데 말이에요. 시로 죽어간 익명의 청년의 영혼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기를 기원합니다.

cyrus 2019-08-15 10:5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풍조에, 노동자의 건강권과 재해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겹쳐져서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구직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자가 사망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죽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마음보다는 저런 일은 위험하고 힘들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2017년에 읽다 만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를 다시 읽고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셜록 홈스 시리즈 읽기는 여러 명의 번역가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전투적인 독서’였다. 내가 결투에 사용한 무기는 번역기와 영어사전이 전부다. 하지만 번역가들은 내 결투에 응하지 않았다. 하긴 이런 조용한 블로그에 전문적으로 글 쓰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주 접속할 일은 없다. 언젠가 우연히 검색하다 내 글을 보고 딴죽을 걸겠지.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책이 내 심기를 건드린다. 문제의 번역본이 절판되었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책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 코난 도일, 정태원 옮김 《셜록 홈즈 전집 8: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시간과공간사, 2002)

 

* 코난 도일, 정태원 옮김 《셜록 홈즈 전집 7: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시간과공간사, 2013)

 

*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 옮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4》 (현대문학, 2013)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His Last Bow)는 1917년에 발표된 단편집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코난 도일세 편의 단편집(《셜록 홈스의 모험》, 《셜록 홈스의 회상록》, 《셜록 홈스의 귀환》)을 썼다. 그는 홈스 시리즈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서 홈스가 사망하는 이야기(『마지막 사건』, 《셜록 홈스의 회상록》에 수록)를 끝으로 홈스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홈스 시리즈 마지막 단편소설이 발표되자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다. 영국과 미국의 홈스 팬들(홈 동생들)은 ‘우리 홈(스)을 살려내라’면서 항의하는 내용의 편지를 도일에게 보낸 것이다. 홈 동생들의 성화에 못 이긴 도일은 장편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은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홈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홈 동생들은 ‘우리 홈의 생전 모습’이 아닌 ‘(죽지 않고) 살아있는 우리 홈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결국 도일은 홈스 시리즈를 다시 쓰기로 했고, 1905년에 홈스가 부활하는 단편이 실린 《셜록 홈스의 귀환》을 발표했다. 홈 동생들은 살아 돌아온 홈스를 격하게 환영했지만, 정작 도일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홈스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는 전작에 비하면 작품의 질이 좋지 못하다. 전작에서 이미 썼던 서사 전개와 약간 유사한 작품(『붉은 원』, 『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이 있으며 작품 곳곳에 ‘설정 오류’로 보이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전작과 달리 홈스가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는데, 용의자의 정체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거나(『브루스 파팅턴 호 설계도』) 자신이 맡은 사건의 유력한 범인을 놓치기도 한다(『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

 

내가 읽은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 번역본은 故 정태원 씨가 번역한 것이다. 2002년에 나온 이 번역본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데, 이상한 점은 ‘개정판’과 같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정판이 나왔으면 당연히 구판은 절판되어야 한다. 2002년 초판 번역본은 ‘구판’이다. 구판은 양장본이고, 개정판은 반양장본인데 가격은 같다. 그렇다면 이 두 권의 번역본 중 무엇을 골라야 할까? 그런데 굳이 두 권 중에 무조건 골라야 하나? 나 같으면 두 권 모두 고르지 않겠다. ‘완역본’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 코난 도일, 바른번역 옮김 《그의 마지막 인사》 (코너스톤, 2016)

 

 

 

구판에 왓슨(John H. Watson) 박사의 서문이 누락되어 있다. 왓슨 박사는 ‘홈스의 (약간 머리가 둔한) 조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홈스가 해결한 사건들(해결하지 못한 사건들도 포함된다)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기록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당연히 왓슨 박사의 서문을 실제로 쓴 사람은 도일이다. 개정판에도 왓슨 박사의 서문이 없다. ‘서문이 없는 완역본’은 완역본이라 할 수 없다. 다른 번역본을 살펴보니 추리소설 전문가 박광규 씨가 감수한 ‘코너스톤’ 판본에도 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오역으로 보이는 문장이 있다. 다음 문장은 『위스테리아 로지(Wisteria Lodge, ‘등나무 별장’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에서 홈스가 자신의 수사에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하는 말이다.

 

 

 전보를 읽고 수첩에 넣어 두려던 홈즈는 내가 궁금해 하는 모습을 보고는 웃으면서 전보를 건네주었다.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어 가는군.” 홈즈가 말했다.

 

(정태원 옮김, 구판 30쪽)

 

 Holmes read it and was about to place it in his notebook when he caught a glimpse of my expectant face. He tossed it across with a laugh.

“We are moving in exalted circles,” said he.

 

 

‘exalted’는 ‘상류층’ 또는 ‘너무나 기쁜(행복한)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아마도 정태원 씨는 후자의 의미에 맞춰서 문장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홈스는 기이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것을 즐기는 괴팍한 인물이라서 사건을 수사하는 내내 기분이 들떠 있고 즐거워한다. 그렇지만 “We are moving in exalted circles”는 홈스 본인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는 문장이 아니다. 이 문장의 주어 ‘We’는 홈스와 왓슨을 의미한다. ‘exalted circles’는 서로 비슷한 이해관계나 직업, 계층 등을 이유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린 상류사회를 파고들 거야”(승영조 옮김, 주석판 33쪽)라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

 

 

 

 

 

 

 

 

 

 

 

 

 

 

 

 

 

* 박상우 《박상우의 포톨로지》 (문학동네, 2019)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20세기북스, 2018)

* [절판] 콜린 비번 《지문》 (황금가지, 2006)

 

 

 

『붉은 원』의 역주(구판 108쪽)지문 식별 시스템의 기초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인 ‘프랜시스 갤턴’이 언급되어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쓴다면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다. 골턴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외사촌 형이며, 그는 인종 분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시작한 연구는 특정 인종을 촬영한 합성사진으로 지구에서 우수한 인종, 즉 ‘평균인’에 부합하는 인종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골턴은 범죄자의 얼굴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고 범죄자의 특징을 알아내기 위해 합성사진을 이용해 인체를 측정했다.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이 따로 있다는 그의 생각은 ‘우생학(eugenics)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만든 씨앗이 되었다. 골턴이우생학의 아버지’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너무 많이 알려진 탓에 대부분 사람은 그가 지문 식별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범죄학의 역사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 골턴이다.

 

골턴과 그 밖의 여러 인물들이 지문 식별 시스템을 고안하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는 책으로는 절판된 《지문》(황금가지)이 있다. 범죄 수사의 기초 증거로 사용되는 지문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평균의 종말》(20세기북스)《박상우의 포톨로지》(문학동네)는 과학(전자의 책은 통계학, 후자의 책은 사진술)이 인종 차별 담론을 형성하는 데 어떻게 개입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사이비 이론이 학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의 중심에 골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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