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타츠루(內田樹)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이라는 책에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2012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사상가이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그의 둘째 딸은 국내에 많이 알려진 소설가다. 그녀는 바로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 우치다 타츠루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바다출판사, 2019)

 

    

 

타츠루는 고인이 된 다카아키를 추모하기 위해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을 썼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타츠루의 글에서 인용했다. 생전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추앙받은 다카아키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사상가가 우리 세대에 미친 영향은 더할 나위 없이 심오하고 예리하고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언어를 본받아 이야기했고,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술어를 사용해 논의했고, “, 요시모토 다카아키 책을 읽지 않은 놈이군하고 선고를 두려워했다. 어떤 조직이나 당파에도 속하지 않고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한 시대를 온전히 휘어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지적 영향을 발휘했다.  (56)

 

 

다카아키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주목받았고,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앞장서서 싸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국내의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 싸웠고, 말과 행동에 차이가 없었던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언급했다. 그녀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다카아키는 마르크스(Marx)자본론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책이라고 극찬했으며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당파의 행보를 반대했고, 전체주의로 변질한 스탈린주의와 내부 비판에 소극적인 일본 좌파 세력을 비판했다. 1968년에 발표된 공동환상론은 다카아키의 대표작이다. 다카아키는 이 책에서 국가의 정의를 새롭게 정의한다.

 

17~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은 국가를 사회계약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지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억압하는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다카아키는 이 두 가지의 입장을 거부한다. 그는 국가가 여러 사람(공동)이 모이면서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국가의 존재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민족 또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국가를 민족이 모여서 세워진 거대한 실체가 아닌 환상으로 호명한 다카아키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공동환상론은 전후 일본 청년 세대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그 책을 가슴에 품고 다닌 일본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 동아시아출판인회의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한길사, 2010)

 

    

 

공동환상론2009년에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5개 지역 출판사들의 모임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공동으로 기획한 동아시아 100권의에 포함되었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출간된 인문 서적 가운데 학술 가치가 높은 책들이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선정되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아시아 5개 지역의 언어로 동시에 출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지만, 한국어로 된 공동환상론》 출간은 깜깜 무소식이다.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대한 해체를 담은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을 참고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공동환상론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독서 방식이다.

    

 

 

 

 

 

 

 

 

 

 

 

 

 

 

 

 

* [절판] 요시모토 다카아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내 안의 행복(호박넝쿨, 2003)

 

* 요시모토 다카아키 진짜와 가짜(서커스, 2019)

    

 

 

다카아키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에세이를 많이 썼다. 제목이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내 안의 행복과 다카아키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나온 진짜와 가짜(저자명이 요시모토 타카아키로 되어 있다)는 에세이집이다. 내 안의 행복번역본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이 번역본이 나온 해가 2003년이었고, 이때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두 권의 책 모두 읽기에는 수월한 편이다. 한 번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해봐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카아키의 글을 읽어 보면 우치다 타츠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 사람이 쓴 에세이는 읽기 쉽다. 또 그들의 관심사도 거의 비슷하다. 우치다 타츠루도 가끔 자신의 글에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을 긍정하는 입장을 드러냈는데,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다카아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우치다 타츠루는 다카아키의 언어와 생각을 본받아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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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철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로 느낍니다.
이 페이퍼를 읽으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지어다.‘라는 성경? 문구가 생각납니다.
옳은 소수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cyrus 2019-11-18 22:00   좋아요 0 | URL
다수 한가운데서 개인의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죠, 그리고 또 다수 중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적어도 한 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해요. 소수의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입니다.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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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문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죽음의 문을 통과하게 되는 상황을 준비해나간다고 하지만, 그 거대한 문이 다가설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문의 존재는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잊고 살 뿐이다.

 

일상에서 죽음을 떠올리며 산다는 것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벽이 다가오기 전에 원 없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정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갈 필요도 있다. 나의 죽음 이후 내 가족과 자녀 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제적인 문제, 즉 유산 상속에 관한 문제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생기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슬픔과 동시에 유산 상속이라는 해결과제까지 떠안게 된다.

 

많은 이들이 유산 상속이라고 하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을 떠올리고, 그것이 분할되어 내게 얼마나 많이 주어질지 관심을 가진다. 아니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된 생활의 지혜라든가 아버지와 관련된 행복한 추억과 같은 정신적인 유산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립 로스(Philip Roth)의 자서전적 에세이인 아버지의 유산을 읽으려는 독자라면 먼저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유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책을 읽기 전에 그런 생각을 꼭 해보시라. 책의 후반부(200쪽 이후부터)유산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리는 반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어떤 독자는 아버지의 유산서평에 내가 강조한 그 반전을 언급했던데, 서평을 쓴 독자가 의도하지 않은 스포일러가 될 만한 사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 서평을 안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게 이 책이 주는 진실한 교훈을 최대한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산86세의 아버지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2년 뒤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유대인 이민자 출신이다. 그는 일상의 숱한 반유대주의를 헤쳐 나왔고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보험회사 관리 업무에 종사했다. 필립 로스는 아버지의 남은 삶을 함께하면서 아버지와 나눈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해서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직전의 모습까지 기록으로 남긴다. 아버지의 유산》에는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기존의 책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특별함이 바로 내가 앞서 언급한 이 책의 반전이다. 반전이 없었으면 아버지의 유산은 누군가의 아버지에 대한 평범한 기록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의 반전은 작가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독자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유산은 유산의 물질성을 먼저 떠올리는 모든 아버지의 자식들을 각성하게 만든다.

 

내가 두 번이나 강조한 책의 반전을 막상 읽어보면 누군가는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일 것이고(대부분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 책에서 로스가 언급한 유산은 우리가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아주 특별한 유산의 의미를 기대했는데,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의 반전을 보면서 두 가지 유형의 감정(내가 언급한 것 이외의 또 다른 감정을 느낀 독자가 있을 것이다) 중 하나라도 느낀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문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미리 언급했듯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읽는다면 인생의 마지막 문으로 향하는 여정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의 유산은 종이에 남아 있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 한 권과 같은 인생을 촤르르 펼치다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낯설면서도 익숙한 페이지, 바로 내 아버지에 대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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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19-11-0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산하면 물질적인것만 떠오르는데, 반전이라니 그게 뭘까 기대가 되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cyrus 2019-11-02 17:44   좋아요 1 | URL
꼭 읽어보셔요. 저를 놀라게 해준 책입니다. 반전이 정말 궁금하시다면 다른 분의 리뷰를 보셔도 돼요. 그렇지만 반전이 주는 놀라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책을 읽는 게 낫습니다. ^^

붕붕툐툐 2019-11-0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저요~ 저도 정신 번쩍 들고 싶어요~ㅎㅎ

cyrus 2019-11-04 18:26   좋아요 0 | URL
책을 처음부터 읽으면 제가 느꼈던 감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어요. ^^
 

 

 

국내에 번역된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책이 꽤 많다. 대부분 사람은 츠바이크를 소설가 또는 전기(傳記) 작가로 기억한다. 츠바이크는 발자크(Balzac), 에라스뮈스(Erasmus),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등의 전기와 평전을 썼다. 그뿐만 아니라 시와 희곡도 썼다. 츠바이크가 작가로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시집이다.

 

 

 

 

 

 

 

 

 

 

 

 

 

 

 

* 최성일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

 

 

츠바이크의 작품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사실 필자도 그런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번역서 중에 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총 218명의 작가와 사상가의 쓴 책들을 사전식으로 정리한 출판 평론가 최성일 씨의 유작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참고했다. 이 책은 작가와 사상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로 활용될 수 있다. 최성일 씨는 외국 저자의 국내 번역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목록 형식으로 작성했다. 국내 번역서 목록은 번역서 한 권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 책에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이 있다. 만약 최성일 씨가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국내 번역서 목록이 수정된 개정 증보판이 나왔을 것이다. 최성일 씨 필생의 노력이 반영된 국내 번역서 목록은 2011년에 멈춰진 상태다. 그 이후에 최성일 씨가 관심을 보인 저자의 번역서들이 출간되었고, 이제는 누군가가 그 목록을 고쳐야 한다. 필자가 그 일을 하려고 한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절판] 슈테파니 츠바이크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북스캔, 2003)

* [품절] 슈테파니 츠바이크 아프리카, 나의 노래(까치, 2005)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 있는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을 수정하기 전에 먼저 오류부터 언급하고 싶다. 이 목록에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아프리카, 나의 노래라는 두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독일 유대계 여성 작가 슈테파니 츠바이크(Stefanie Zweig). 성은 같지만 이름이 다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작가다. 최 씨가 책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작가 이름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츠바이크의 작품이 중복으로 출판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내용은 같지만, 제목이 다른 번역서가 있다. 가장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낯선 여인의 편지(Brief einer Unbekannten). 이 작품은 1962년에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것까지 포함해서 현재까지 총 14번이나 출간되었다. 특히 박찬기, 원당희의 번역은 여러 출판사를 거쳐 중복으로 출간되었다.

 

 

 

 

1.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육문사, 1962)에 수록

 

 

2.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동민문화사, 1967)

 

 

3.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주영사, 1974)

 

 

 

 

 

 

 

 

 

 

 

 

 

 

 

4.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원당희 옮김 (고려원, 1991)

 

 

5.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에 수록

 

 

6. 외사랑

이초록 옮김, 사랑의 슬픔(산들, 1997)에 수록

 

 

 

 

 

 

 

 

 

 

 

 

 

 

 

7. 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원당희 옮김 (사민서각, 1997)

 

 

8.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1997)

 

 

 

 

 

 

 

 

 

 

 

 

 

 

 

9.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2003)

 

 

 

10.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에 수록

 

 

 

 

 

 

 

 

 

 

 

 

 

 

 

 

 

11. 모르는 여인의 편지

원당희 옮김 (자연사랑, 2003)

 

 

 

 

 

 

 

 

 

 

 

 

 

 

 

 

 

12. 낯선 여인의 편지

김연수 옮김, 체스. 낯선 여인의 편지(문학동네, 2010)에 수록

 

 

 

 

 

 

 

 

 

 

 

 

 

 

 

13. 모르는 여인의 편지

송용구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14. 모르는 여인의 편지

양원석 옮김, 마리 앙투아네트 / 모르는 여인의 편지(동서문화사, 2015)에 수록

 

 

 

낯선 여인의 편지다음으로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이 노벨레(Novelle)1911년에 출간된 첫 경험, 네 편의 이야기(Erstes Erlebnis. Vier Geschichten aus Kinderland)에 수록된 츠바이크의 초기 작품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노벨레는 다음과 같다.

 

 

1.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2. 여자 가정교사(Die Gouvernante)

3. 타 버린 비밀(Brennendes Geheimnis)

4. 여름날의 사건(Sommernovellette)

 

 

2, 4번 노벨레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은 번역되었다. 비록 번역되지 못한 작품이 몇 편 있으나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한다면 이미 번역된 초기작부터 읽으면 된다. 1911년에 발표된 네 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타 버린 비밀이다. 1913년에 이 작품만 따로 출간되었으며 1933년과 1988년에 영화화되었다.

 

 

 

 

 

 

 

 

 

 

 

 

 

 

 

 

 

 

 

* 슈테판 츠바이크 타 버린 비밀(세창미디어, 2019)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일급비밀(자연사랑, 2003)

 

 

 

타 버린 비밀2003년에 일급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일급비밀80년대를 풍미한 3인조 남성 댄스 그룹 가수 소방차의 노래 제목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일급이라는 표현은 원제의 의미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다행히 최근에 타 버린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외교관 부인의 아들인 에드거(Edgar)는 우연히 만난 남작과 친하게 지낸다. 사실 남작은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에드거에게 접근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어른의 감정을 잘 모르는 순수한 열두 살 소년 에드거는 처음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작은 노골적으로 부인에게 추파를 던지고, 남작이 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이서 지켜본 에드거는 남작을 질투한다. 이제 에드거는 은밀한 곳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어른의 세계에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제목에 있는 단어이자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은 에드거가 무척이나 궁금하게 여기는 어른의 세계. 타 버린 비밀은 어른의 세계에 접근하려고 애쓰는 소년의 정신적인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은 같은 역자가 옮긴 작품이다. 제목만 달라졌다. 번역 문장도 약간 달라졌지만, 막상 읽어보면 크게 고친 티가 나지 않는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에 있는 문장을 인용해서 비교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자신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이 낯선 신사에 대하여 너무 자의식이 강한 것 같아 보였다.

 남작은 대화를 나누며 한번도 아이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매번 좀 당황해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행복한 감정과 동시에 부끄러움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대화를 정말 지속시키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급비밀19)

 

 아이는 자기에게 이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는 이 멋있는 낯선 신사에게 대단히 자의식이 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았다. 그는 한 번도 건방진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항상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제 그는 행복한 동시에 부끄러운 감정으로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기꺼이 대화를 지속시키고 싶었으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타 버린 비밀26)

 

 

사랑의 슬픔외사랑첫사랑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두 편의 노벨레가 수록되어 있다. 이 두 편의 노벨레는 각각 낯선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

 

 

 

 

 

그런데 이 번역서는 두 작품의 원제를 잘못 썼다. 황혼 이야기의 원제가 ‘Erstes Erlebnis’라고 되어 있는데, ‘Erstes Erlebnis’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낯선 여인의 편지의 원제로 잘못 적혀 있는 ‘Amok(‘아모크또는 아목이라고 부른다)1922년에 발표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은 낯선 여인의 편지환상의 밤(Phantastische Nacht), 달밤의 뒷골목(Die Mondscheingasse) 이다.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

감정의 혼란’, ‘모르는 여인의 편지’, ‘달밤의 뒷골목’, ‘황혼 이야기수록

 

 

 

 

 

 

 

* [절판] 슈테판 츠바이크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하문사, 1996)

달밤의 뒷골목과 같은 내용임.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사랑의 슬픔(산들, 1997)

외사랑(= 낯선 여인의 편지)’, ‘첫사랑(= 황혼 이야기)’ 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

모르는 여인의 편지’, ‘마음의 파멸(Untergang eines Herzens, 1927)’, ‘황혼의 이야기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세창미디어, 2018)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자연사랑, 1999)

 

 

 

감정의 혼란황혼의 이야기에 공통으로 수록된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의 이야기는 같은 역자가 번역한 것이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라는 번역서 앞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번역서의 원작은 단편 형식에 가까운 노벨레로 분류되는 달밤의 뒷골목이다. 그런데 소설이 시작되는 첫 문장(15~16쪽)은 원작에 없는 내용이다. 즉 역자가 원작에 없는 문장을 추가로 쓴 것이다. 소설을 장편인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쓸데없는 내용을 추가한 것일까. 왜 역자가 원작을 넘어선 번역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아무튼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는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하거나 구매하는 독자들이 피해야 할 번역서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슬픔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 책을 중고도서로 샀는데, 가격은 1,900원이었다.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를 본 건 아니지만,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필자는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번역서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구매자가 직접 작성한 번역서 목록과 리뷰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처럼 책 사는 데 헛돈을 쓴 독자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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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오바네요. 왜 역자가 내용에도 없는 걸 썼는지...

cyrus 2019-11-01 17:38   좋아요 0 | URL
8, 90년대에 나온 외국 작가의 번역본 중에 역자가 윤색한 것도 있었어요. 제가 ‘셔얼록 호움즈(셜록 홈스) 시리즈’ 문고본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책도 원작에 없는 내용이 나와요. ^^;;

boooo 2019-10-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체스로 시작했습니다. :)

cyrus 2019-11-01 17:39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후기 작품인데 아직 안 읽었어요. ^^

stella.K 2019-10-2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츠바이크를 <체스>로 알게 되었는데 그 소설은 정말 대단했지.
그후 몇권 읽긴했지만 지적인 면에선 뭐라할 수 없지만
딱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더군. 좋긴 좋은데 막 좋지는 않아.

그나저나 최성일 씨의 책은 읽었나?
난 몇년 전 사 놓고 안 읽고 있어. 중고로 너무 싸게 사서
어떤 책인가 사 봤지. 정가로만 살 수 있는 책이라면 안 샀을 텐데...
핑계지만 나이 드니까 이런 책은 점점 안 읽게되더군.ㅋ

cyrus 2019-11-01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최성일 씨의 책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뿐이에요.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샀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적립금을 쏠쏠하게 쓸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정말 이 책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 형식의 책이라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봐요.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공감의 두 얼굴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 지음, 두행숙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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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나도 너처럼 그렇게 생각해라고 느끼는 감정이자 타자로 향하는 통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진화의 유산으로, 영장류의 공감 능력은 여타 포유류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나다고 한다. 특히 다수가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인 인간은 그중 가장 크고 깊은 공감 능력을 갖췄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공감이다. 공감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정서이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해주는 상호소통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기꺼이 도로 중앙을 비워주는 운전자의 행위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처한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꺼이 도와주는 것은 공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흔히 이타적 행동이라고 말하는 이 행동들은 공존의 토양이 되는 인간 특유의 도덕성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덕 감정론에서 도덕적 행위는 이해관계를 떠난 관찰자의 위치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타인의 행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그 처지를 공감(sympathy)하는 능력이 선행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책을 보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띄는 제목이나 부제는 책에 대해 강한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의 부제는 공감의 두 얼굴이다. 책의 제목은 부제의 의미와 대비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이다. “생각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데카르트(Descartes)의 말을 비틀어서 공감 능력이 있는 주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공감(하면서 존재)한다.” 만일 라는 존재가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공감 능력과 도덕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종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하는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만, 타인의 고통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타인의 삶을 거리낌 없이 파괴해버리는 게 가능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공감할 줄 아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좋은 것으로 생각해왔던 공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공감의 의미가 무엇이며 공감이 너무 많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공감을 과도하게 활용하면서 생긴 불행한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양한 사례와 저자의 경험에 근거해 설명한다. 우리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 친화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크고, 나아가 모두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은 공감 능력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다시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튼 다음, 여기에 말대꾸까지 하면 공감 능력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공감한다. 그런데 널 도와주고 싶지 않아.”

 

이 책의 저자가 생각하는 공감의 의미는 함께 체험하는 것(co-experience)이다. 우리는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상상력이 가능하다.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태도는 좋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만 그치고, 타인을 위해서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제대로 공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감 능력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타인의 삶에 대입한 뒤에 타인이 처한 상황을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네 말에 공감해라고 말을 하기는 쉬워도 몸이 반응하여 그 사람을 위해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공감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위험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공감은 자아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공감을 너무 쉽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잘 수용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관점을 수용하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과 관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공감은 이분법적 사고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누군가를 지지하면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 지지하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게 된다. 눈에 콩깍지가 씌면 남들이 볼 때 영 아니다 싶은 사람이 좋게 보인다. 특정 인물을 편애하는 공감은 특정 인물과 반대되는 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공감에 너무 과도하게 몰입하면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의 결점까지 흡수해버리고, 그 결점을 비판하는 사람을 으로 인식한다.

 

공감 능력을 지닌 사람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잘 도와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사회적 약자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생각하고, 그와 동일시한다. 이러면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공감 능력을 발휘하려면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단지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사람의 태도를 공감적인 사디즘(sadism)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남의 불행을 기뻐한다. 그래야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위험한 공감을 흡혈귀 행위(vampirism)에 비유한다.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는 마치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위를 빙빙 맴돌며 모든 일에 간섭하는 부모를 말한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식이 잘 커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신의 소망을 자식에게 강제로 주입한다. 자식은 부모의 말에 순순히 따르게 되는데 부모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자식을 뿌듯하게 여긴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소망에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부모의 강압적인 권위에 의해서 강제로 작동하는 공감이다. 헬리콥터 부모 밑에 자란 자식은 앞서 공감의 첫 번째 위험으로 언급했던 자아 상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공감의 위험성을 안고 가는 동시에 공감 능력을 함양하여서 사회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공감의 위험성을 지적한다고 해서 저자가 공감 능력 자체를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공감 능력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감정이며 교육을 통해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공감 능력이 도덕성을 형성해주고 회복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 공감을 타인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 특정 인물 또는 특정 세력을 지지하도록 요구하는 공감은 소리만 요란한 공감(空感: 내실 없는 감정)이다. 그것은 공감(共感)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공감(共感)공감(空感)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종종 살펴보자. 내가 정말 공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Trivia

 

* 185쪽 오자: 루브비히 티크 루드비히 티크(Ludwig Ti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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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28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 사람일 것 같아서 상대방한테 ‘공감 능력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아니라고 부정을 해요... ㅎ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19-10-22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들은 팟캐스트에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사람을 정말 정말 골라서 잘 사귀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언급하신 자아상실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공감만 하고 행동할 줄 모르는 인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 생각났습니다. 언제나처럼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9-10-28 17:45   좋아요 1 | URL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저도 생각을 참 많이 하지 그 생각들을 행동으로 실천한 게 많지 않아요. ^^;;

fledgling 2019-10-2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네요. 평소에 제자신이 다른 능력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행동으로 옮긴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저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네요. 읽고 싶게 만드는 명품 리뷰 잘보고 갑니다.

cyrus 2019-10-28 17:4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이 책을 읽고 제가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한 건 아닌지 반성했어요. ^^;;

하하하 2020-07-30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도 ‘공감순‘ 최상위에 올라와서 읽게 되었습니다. 내가 공감하지만 지리멸렬하고 비논리적인 주장에 조건반사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기보다는, 평소 내 생각과 달라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명료하고 탄탄한 논중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 지음, 서희정 옮김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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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혼밥혼술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혼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왜 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는 있겠지만 우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연인들도 수시로 티격태격하고, 오래 산 부부나 친구 사이에도 다툼이 생긴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계 맺기를 지속하는 이유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대로 생각한다. 온라인 관계 맺기에는 몰두하면서도 오프라인 관계 맺기는 어색하고 불편해한다.

 

그렇다면 혼자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관계 맺기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들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발적 고독은 이러한 현실적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표제이자 주제인 자발적 고독은 스스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비혼의 의미와 다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혼과 관련이 없다. 자발적 고독은 군중의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르면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가족이나 집단생활에 익숙한 인간에게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막상 혼자서 살게 되면 망설이게 되고 걱정이 많아진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외로움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묻어나 있다. 요즘 언론은 1인 가족의 삶에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는 어두운 그늘인 고독한 죽음을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독한 죽음이라는 신조어를 나이 들어서 쓸쓸하게 혼자서 죽음을 맞는 현상이라고 정의를 해왔다. 그러나 고독한 죽음이 노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해가 갈수록 혼자 사는 중장년층의 사망률은 증가하고 있다. 혼자 살고 싶은 사람은 있어도 외롭게 살다가 쓸쓸하게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발적 고독은 혼자 살기에 대한 과도한 낭만이나 오해 섞인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풍요로운 고독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발적 고독을 선택한 사람들의 공통점에 주목하는데, 그들은 단절(혼자 살기)과 연결(관계 맺기)이 적절하게 양립된 삶을 살았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몽테뉴(Montaigne) 등이 있다. 소로는 월든(Walden)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2개월을 살았다. 우리는 그가 호숫가 주변에 있는 자연을 벗 삼아서 혼자만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려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 어떤 이는 소로를 사회와 군중을 냉소적으로 생각한 무책임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발적 고독의 저자는 소로가 사회와 연을 완전히 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로는 고독을 선택했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한 발짝 물러선 채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 문제를 주시하면서 비판 의식을 키워갔다. 소로가 쓴 산문 월든 타인과의 교류와 자기와의 교류를 번갈아 맺는 삶의 방식을 풀어 쓴 글로 읽을 수 있다. 소로보다 훨씬 먼저 자발적 고독을 실천한 몽테뉴는 자신의 저택에 은거하면서 사색하고 글을 썼지만, 사회와의 연을 끊으라고 강조하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가 점차 확대되고 존중받는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나타나는 자발적 고독은 이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처럼 바쁘게 살아온 우리 삶에 잠시 쉼표를 찍은 다음에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자발적 고독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발적 고독은 온전히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속도전에 지친 내 마음에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혼자서 충분히 즐기고 만족할 만한 삶을 살려고 하면 설득이나 하려는 듯 주변 사람들의 질문이 들어온다. “네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즐거운 고독이 아닌 무서운 고독한 죽음이 불현 듯 스쳐 지나갈 것이다. 자발적 고독은 혼자 살기를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 살기의 장점을 알려주면서도 고독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는 완벽한 고독은 환상이라고 강조한다.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린 상태에 혼자서 생활하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다. 고립된 삶은 즐겁기는커녕 외로움만 가중시킨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에 익숙한 개인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성찰 의식을 상실한다. 그런 사람은 독단적인 고집쟁이로 변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을 타인에게 표출한다.

 

고독으로 포장된 고립또는 고립으로 변질된 거짓된 고독은 개인과 타인 모두를 괴로워하게 만드는 고문이다. 자발적 고독은 개인뿐만 아니라 타인,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연대 방식이다. 자발적 고독을 선택한 사람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그들도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며 기꺼이 타인들과 연대한다. 상황에 따라 자기만의 안식처와 안식처 밖의 세상을 번갈아 드나들 필요가 있다. 외로움만 늘어나는 고독은 개인의 몸과 정신을 병들게 한다. 자발적 고독영원한 고독이 아니라 적당한 고독일시적인 고독에 가깝다. 관계 맺기에 능숙한 사람일수록 건강한 고독을 누릴 수 있다. 혼자 살고 싶은데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들은 과외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자발적 고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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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9-10-1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한 고독_ 좋아. 저도 적당하게 고독하게 살아볼래요!

cyrus 2019-10-17 18:39   좋아요 0 | URL
누님은 이미 ‘건강한 고독’을 실천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ㅎㅎㅎ

2019-10-17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21 18:05   좋아요 0 | URL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때 혼자 가는 게 편해요. 저는 읽고(사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르는 데 적어도 30분 이상 걸려요.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책을 천천히 살펴보지 못했을 거예요. ^^;;

AgalmA 2019-10-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통의 장이라는 인터넷에서조차 댓글과 좋아요 포화를 피하고픈 ‘자발적 고독‘은 삶의 포지션 같은데요

cyrus 2019-10-28 17:54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글을 남기는 분들 대부분은 ‘자발적 고독’에 익숙할 거예요. 그런데 상대방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대화 자체를 피하는 행동을 ‘자발적 고독’으로 보기 어려워요. 이 책에 언급하지만, 그런 고독은 위험해요. 이기주의로 변질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