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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심리학 / 데이비드 패트릭 호튼 / 사람의 무늬

 

'정치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낯설다. '정치심리학'으로 검색하면 관련도서가 이번에 출간된 책과 2004년에 김도종이라는 분이 동명 제목으로 편찬한 교재 한 권 뿐이다. 모 포털 사이트 백과사전에서는 정치심리학을 인간의 정치행동을 인지, 정보, 가치, 신념 등의 심리적 요인으로 해설하는 과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사회 심리학과 정치학의 학제 분야로 이론의 구축방법과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사회 심리학과 동일하지만 정치학과 연구대상을 공유하는 분야로 보고 있다. 인간의 의식이나 행동은 그 사회의 문화에 의해 규정되는데 마찬가지로 정치의식이나 행동을 규정하는 개념을 정치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과정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고 정치체계 내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인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2. 싸우는 인문학 / 서동욱 / 반비

 

우리나라 인문학 열풍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인문학의 필요성은 자각하지만, 사회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저조한 취업률을 기록한 인문학과는 대학 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 과반수는 전공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기업이 인문학을 사랑한다고 해도 모든 인문학도를 사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기업은 인문학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기업 환경이 기존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 중심으로 바뀌며 효율성 중심의 경영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이 취업 전선에 죽 쑤고, 기업에게 동냥하듯이 의지한다고 해서 인문학도들이 회생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옷을 입은 인문학은 '실용적 학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진짜 인문학이 필요하다. 국내 인문학자들은 현재 우리나라 인문학의 현주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의 냉철한 분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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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웁니다


빗방울에 내 간절한
바람과 그리움을 담아
당신의 마음에 떨어질 수 있도록 빕니다.
하지만...
그대를 향한 빗방울은
어느새 눈물이 됩니다
그래서 내 가슴은 웁니다

나의 통증을 씸어 삼키며
지워보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당신
그래서 내 가슴은 웁니다.

그대가 보여준 그 마지막 웃음이
그대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에게 힘들게 했던 그 말들이
내 가슴을 울게 합니다

당신 때문에 울보가 된 나
그래서 나는 웁니다.

그래서...
그래서...

 

 

written by c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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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삽화, 귀스타브 도레, 1861년

 

 

 

책이여, 그대가 신중한 태도로
훌륭한 사람들 곁에 다가간다면
세상 물정 모르면서 우쭐대는 사람은
그대의 생각을 알지 못해 감히 말을 건네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넘어가
매우 조급하게 다루어진다면
비록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짐짓 꾸밀지라도

그대는 이내 알게 될 것이오.
그가 정곡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

(p 18)

 

 

 

현실의 정곡을 너무 벗어나면 허상과 광기만 남을 뿐이다. 기사도 소설에 탐독하다가 자신을 기사라고 착각하는 라만차의 늙은 귀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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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영화 '타워'를 극장에서 보면서 훌쩍 거리는 몇몇 사람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궁금한 점. 과연 '타워'를 보면서 눈물 흘렸던 사람들 중에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채 순직한 소방관들의 뉴스에 진정 눈물을 흘리는 이가 과연 몇 명이 있을까? 작년에 일간지 오피니언에 실렸던 내 아는 동생이 쓴 칼럼의 내용이 생각난다.

 

 

 

눈물 흘릴 때만 격려하지 말라  

(윤석현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3학년)

# “소방관은 보험을 제대로 드는 것도 어렵데이.” 의무 소방원으로 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한 소방관이 말했다. 정작 보험에 가입되더라도 혜택의 제한이 많거나 보험료가 비싼 경우가 허다하단다. “하긴 하루에도 몇 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직업인데 누가 보험을 받아주겠노.” 보험도 들기 힘들다는 그의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 모든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올림픽 참가 선수를 응원하고 있던 지난 1일 오후 10시. 50대 소방관이 화재가 난 부산 신발 공장에서 추락사했다. 그는 3남매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80대 노모를 모시던 효자였다. "이번 여름에는 꼭 가족 여행 가자”는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혹시라도 대피하지 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간 영웅은 돌아나오지 못했다.

올해만 벌써 두 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의무소방원으로서 현장에서 소방관을 보조하는 필자에게 이런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또한 이런 일이 짤막한 기사 한 줄로 소개되고, 대중들의 관심이 반짝 일다가 사라지는 것 같아 더욱 슬프다.

현장에서 바라본 소방관의 복지 실태는 밖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심각했다. 많은 소방관이 목숨을 걸고 매일 화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이들을 위한 위험수당은 고작 월 5만원에 불과하다. 이들의 열악한 상황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유일한 기회는 동료 소방관이 순직했을 때 잠시뿐이다.

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복지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을 보호하는 ‘소방’, 그리고 그 책임을 수행하는 ‘소방관’들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소방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낮기에 정치권에서도 따로 정책을 세우지 않는 듯하다.

얼마 전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방공무원 예산 2조4000억원 가운데 1.8%만이 중앙정부의 지원”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 수준에선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소방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예산 지원과 소방관에 대한 복지 확대가 시급하다.

어디선가 생명을 바쳐 불을 끄는 소방관도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아들이다. 그들의 무거운 방화복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는 방법은 잠시의 박수가 아니다. 더 이상 눈물 흘릴 때만 격려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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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합니다...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cyrus 2013-02-03 21:50   좋아요 0 | URL
이진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저도 아는 동생이 쓴 글 읽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oren 2013-01-2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타워' 보면서 알바하던 대학생이 뉴스 전광판으로 '청소부 엄마'를 떠올리던 장면에서 눈물을 왈칵 흘렸더랬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방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이 많이 쓰이더군요. 제 고향 친구들 가운데 특히나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바로 119 구조대 소속이었거든요. 그 친구는 대구농고를 졸업하자말자 공수부대에서 10년 가까이 직업군인 생활을 마친 뒤 다시 소방공무원으로 20 년쯤 근무했답니다. 오랫동안 '일이 너무 힘들고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무사히 안전하게 희망퇴직을 했어요. 그리고 꿈에 그리던 '귀농'을 해서 지금은 '고향'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5903921

그 친구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 참 자주 술잔도 나누고 전화통화도 자주 했는데, 걸핏하면 전화 통화 중에도 느닷없이 사이렌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출동이다'를 외치며 전화를 끊곤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어요. 저도 그 친구 덕분에 소방서에도 몇번 가보고 다른 소방관들과 술잔을 나눈 적도 가끔씩 있었답니다.

저는 그래서 '타워' 속에 등장하는 소방관들이 제가 듣고 알아 왔던 '실제'보다 너무 '영화적'이어서 오히려 몰입이 덜 되더라구요.


cyrus 2013-02-03 21:5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영화 보면서 주연보다는 조연에 눈이 가더군요. 그리고 소방관 관련 칼럼을 쓴 동생이 지금 의무소방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로부터 소방관의 실제 모습을 듣고 영화를 보고나니 오렌님처럼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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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또는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불멸을 확신하고 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

 

 

 

 

 Memento mori,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장 프랑수아 밀레  『죽음과 나무꾼』 1856년

 

 

커다란 막대기 다발을 갖고 노인이 먼 거리를 여행하고 있었다. 자신이 몹시 지쳐 있음을 깨닫고, 그 막대기 다발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노인은 죽음의 신에게, 자기를 불행한 생활로부터 제발 해방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의 부탁에 죽음의 신은 바로 찾아와서, 노인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제발, 제가 짐을 다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솝 우화' 중에서)

 

사람은 종종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남들 다 죽는데 나도 그때 죽으면 되는 것이지, 인연 따라왔다가 인연 따라가는 거지.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죽기 전까지만 통용될 뿐이다. 죽음이 임박하면 그런 생각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누구나 편안히 잠드는 것처럼 죽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 외모가 다르듯 죽어가는 모습 역시 다르다. 천차만별의 죽음을 보며 '잘 살아야 잘 죽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많은 죽음을 보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가 아닌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하루의 삶을 챙기게 된다. '오늘 하루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는가'를 살피며 살게 된다. 진정으로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죽음의 근원이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정의, 생각해 보셨습니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죽음의 존재에 대해서 두려워했지 죽음 단어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면서 살아 왔다. 종교와 철학 그리고 모든 문명의 시발점에 이 문제는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극대화되고 분초를 다투어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날에 와서도 이 문제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예일대에서 '죽음'을 주제로 교양철학 강좌를 진행한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의 정의를 두 가지로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물리주의자 시선으로 바라보는 죽음(물리적 죽음)과 육체의 관점으로 보는 죽음(육체적 죽음). 물리주의자는 육체가 P 기능(Person function, 인지 기능)을 유지하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고, 기능이 멈추면 죽은 것이다. 육체적 죽음은 말 그대로 B 기능(Body function, 신체 기능)이 멈추면 죽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신체와 인격(마음, 정신 등 포함) 두 가지 요소로 죽음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죽음의 시점을 정의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 않다. 예를 들어서 교통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된 환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릴 수 있는가. 식물인간은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 기능이 상실되었으나 호흡과 소화, 흡수 따위의 기능은 유지하고 있다. 식물인간은 P 기능이 상실되었고 B 기능만 남아 있다. P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P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고 다시 기능을 재개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죽은 게 아니다. 죽음의 정의를 생각한다는 건 무척 골치 아픈 일이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죽어 있는 '상태'가 어떤건지 알려고 하는 과정이다.  

 

 

 

 죽음의 '사'가지를 피하는 방법

 

인간이 죽으면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P 기능과 B 기능만 멈추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맛 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생의 시간도 멈춰버린다. 살아있다면 누릴 수 있는 삶의 좋은 것들을 박탈해버린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죽음을 나쁘게 보는 근본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죽음은 박탈의 성격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필연성',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가변성',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편재성'이다. '죽음'의 이미지에 걸맞게 '사'(死, 숫자 四)가지다.

 

그러나 케이건 교수는 죽음의 네 가지 부정적인 특성을 근거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관점을 역설한다. 스피노자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죽음이란 무엇인가』p 377)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덜 부정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썩 기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생의 한정성에 얽매어 여생을 살아간다는 건 무척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몇 살까지 살지 모른다고해서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쓸데없는 '기우'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음의 신의 손길은 우리 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자. 만약에 사람마다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부여받은 죽는 날을 알면서 살아간다면 일상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죽는 날까지 주어진 시간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초점을 맞추며넛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에 완벽하게 집중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선고 받은 이후부터 연구에 매진했다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Memento mori

 

죽음은 시간을 조금 늦출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삶이 아닌 내 인생의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부질없이 허망한 일들로 자신의 삶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은 생방송이다. 사람들은 텅 빈 자신의 삶 앞에 죽음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제야 후회와 아쉬움에 절망한다. 이렇게 가슴 치는 일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의미 있는 삶으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게 될 것이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생의 아름다운 졸업이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한다면 죽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을 덜어내고 죽음을 자연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곧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의 미래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기는 꺼린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미래의 사건으로 여기고 현재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들을 "죽음 앞에서의 부단한 도피"를 하는 자들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죽음을 진정으로 잘 알고 있는가. 오늘 밤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기쁨으로 반길 준비가 돼 있는가. 이제는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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