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 『어릿광대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 (1635년경)

 

“저기에 어릿광대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가 양감을 지닌 채 공간 속에서 서있습니다. 그런데 바닥은 어디에 있고 벽은 어디에 있습니까?” (필립 드 몬테벨로 & 마틴 게이퍼드 《예술이 되는 순간》 중에서, 151쪽)

 

 

 

 

에두아르 마네는 화가가 되기 전에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을 드나들면서 대가들의 걸작을 모사했다. 그러다가 그곳에 걸린 벨라스케스의 어릿광대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마네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 필립 드 몬테벨로처럼 그림에 바닥과 벽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을 것이다. 훗날 마네는 동료 화가인 팡탱 라투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벨라스케스를 ‘최고의 대가’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원본의 아우라를 이렇게 표현했다. “배경은 사라지고 그 사람을 둘러싼 공기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온통 검은색이지만 살아 있는 듯합니다.”

 

 

 

 

 

 

 

『풀밭 위에서의 점심 식사』 (1863년)

 

 

 

 

 

『올랭피아』 (1863년)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1~1882년)

 

 

 

이때부터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오마주의 대상으로 정하여 본격적으로 붓을 들기 시작했다. 벨라스케스의 표현 기법에 영감을 얻어 제작한 그림이 바로 1866년 작 『피리 부는 소년』이다. 그런데 『피리 부는 소년』는 마네의 대표작으로 거론되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풀밭 위에서의 점심 식사』(1863년)와 『올랭피아』(1863년) 그리고 마네의 ‘스완 송’이 된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1881~1882년)에 비하면 예술적 가치가 덜 알려진 것 같다.

 

 

 

 

 

 

 

 

 

 

 

 

 

 

 

 

 

『피리 부는 소년』의 첫인상이 단순하다.  『풀밭 위에서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과 같은 마네의 유명한 그림들을 먼저 본 사람들은  『피리 부는 소년』에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풀밭 위에서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처럼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의 뭇매를 맞았다. 이로 인해 『피리 부는 소년』은 살롱전에 낙선하고 말았다. 당시 비평가들도 배경이 없는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그림에 바닥은 어디 있고 벽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네가 궁지에 몰리게 되자 인상주의 화가들의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주었던 소설가 에밀 졸라가 나서서 살롱의 비평가들과 맞섰다.

 

 

 

 

 

『피리 부는 소년』 (1866년)

 

 

“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올해의 낙선작 『피리 부는 소년』이다, 마네의 그림은 꾸밈이 없다. 부분들에 괘념치 않을 뿐 아니라, 인물에 불필요한 덧칠을 하지 않는다.” (에밀 졸라, 《마네 : 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69쪽)

 

 

그림이 단순하게 보여도 한 번 봐도 잊히지 않는다.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지긋이 바라보면서 피리를 부는 소년의 자세가 안정적이다. 안정적인 자세는 관객을 편안하게 만들고, 몰입도를 높여준다. 관객은 피리 부는 소년의 눈을 마주치면서 이제 곧 피리에서 울러 퍼지게 될 멜로디를 들으려고 할 것이다. 한쪽 발에 무게를 둔 완벽한 콘트라포스토의 자세다. 어떤 대상을 아름답게 보이려 애쓰는 것이 ‘꾸밈’이라면 잘 드러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보임’이다. 마네는 『피리 부는 소년』을 그리기 위해서 후자를 선택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참고했으며 고대 그리스 조각의 특징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도입했다. 마네는 근대 모더니즘 회화의 시작을 알린 개방적인 화가로 알려졌다. 비평가들은 마네의 묘사를 시대의 조류를 거스른다고 봤다. 하지만 마네는 고전적 전통을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았다. 벨라스케스와 콘트라포스토의 장점을 조합하여 균형 잡힌 신체를 선보였다. 『피리 부는 소년』은 ‘보임’의 결정체다. 마네는 과한 덧칠 없어도 자신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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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dgling 2015-05-07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작성한 리뷰들 엮어서 책 한권 내셔도 좋을듯😊 재주가 있으셔요~

cyrus 2015-05-07 17:44   좋아요 0 | URL
그냥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유명 서평가들의 글을 흉내 내려고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배운 것도 많지 않아서 글을 잘 읽어보시면 내용이 두루뭉술한 게 많습니다. ㅎㅎㅎ

AgalmA 2015-05-07 0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기하네요. 마크 로스코도 마티스의 <붉은 작업실>의 바닥과 벽을 거의 없앤 평면적 공간감을 흠모했었거든요. 저는 그걸 인간의 자유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cyrus 2015-05-07 17:47   좋아요 1 | URL
기성 사회가 옳다고 강요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유의식. 아갈마님의 표현이 마네와 로크스의 예술을 함축하고 있군요. 표현이 정말 좋습니다. ^^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1823년)

 

 

 

사투르누스(Saturnus)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신이다. 라틴어 이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씨앗을 뿌리는 자’다. 그는 아들 제우스와의 싸움에 패배하여 이탈리아로 피신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농업기술을 보급했다.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Kronos)에 해당한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다. 자신의 누이이자 대지의 여신 레아는 크로노스와 결혼하여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 하데스, 헤스티아를 낳았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5명의 자식에게 살해될 것이 두려워 그들을 잡아먹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는 자식들을 뜯어 먹는 크로노스의 광기 어린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지배하는 신답게 인간의 소중한 시간도 집어삼킨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현대판 ‘사투르누스/크로노스’다.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서라면 경제적, 심리적으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자식농사’만큼 중요한 농사가 없다.명문대 진학 여부가 '자식농사'의 성패로 인식한다. 부모는 자신들이 직접 뿌린 소중한 씨앗 같은 자식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원하는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입시교육 열기에는 대학 졸업장이 더 높은 임금과 지위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명문대에 입학하기만 하면 사회적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과외를 뱅뱅 돌리는 부모들 때문에 자녀들의 학원순례행렬은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대학입시만을 위해 유치원 때부터 조련 당한다. 부모들은 미래를 담보로 자녀들에게 엄청난 양의 공부를 강요한다. 교육열에 눈이 먼 부모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아 집어삼킨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마저 박탈한다.

 

 

 

 

 

 

 

 

 

 

 

 

 

 

 

 

 

초등학생 이순영 양이 쓴 동시집 《솔로 강아지》(어린이가문비, 2015)가 잔혹성 논란으로 인해 전량 폐기되었다. 시집에 수록된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이 시 옆에 있는 삽화는 자극적이다. 죽은 엄마 보이는 여성 옆에 아이는 심장을 집어 든 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독자를 바라본다. 아이 주변에 피가 낭자하다. 해당 출판사는 이 양의 동시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개인적으로 논란이 되는 삽화가 잔인하다고 생각하기에 보고 싶은 분을 위해서 따로 '링크'를 걸어두겠다. 북플이 아닌 알라딘 서재로 로그인해서 '링크'라고 적힌 단어를 클릭하면 삽화를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거칠게 쏟아내기도 하는데 시적 예술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신이 체험한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탄복과 함께 현실의 비정함에 대한 탄식들을 시로 쓰고 있다. 이것들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직한 반응으로서 어른에게도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문제의 시와 삽화를 본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 허용 수위를 넘어섰다고 해당 출판사를 향해 비난했다. 자녀가 있는 일부 학부모들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절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며 분노했다. 반면 학생들은 삽화가 무서워도 시의 내용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SNS에서는 출판사의 동시집 폐기 처분 결정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동시집의 삽화와 이 양의 문장 표현력이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므로 폐기 처분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출판사의 폐기 처분 결정을 이 양의 창작 욕구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당한 검열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잔혹한 느낌을 주는 동시를 쓴 이 양의 정신 상태를 걱정하기도 했다. 이 양을 ‘사이코패스’라고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서 동시집 폐기 처분이 표현의 자유 범위와 관련하여 옳은 결정인지 나쁜 결정인지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류하겠다. 정답 없는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옳다 그르다고 싸우다 보면 이 문제의 큰 논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진짜 논점은 이 양이 잔혹한 시를 쓰게 만든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양을 ‘사이코패스’라고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이 양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을 숨김없이 시로 표출하게 만든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왜 이 양은 동심을 파괴하면서까지 고어 영화의 한 장면 떠올리는 시를 써야만 했을까?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은 이 양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폭력의 기본속성은 경쟁을 유도하는 강제적 교육문화에 있다. 아이들은 협동적인 사회 구성원의 책무를 배우기 전에 경쟁의 치열함을 먼저 배우고 있다. 경쟁과 입시지옥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패배감과 좌절감을 떨쳐내지 못해 자신의 마음속에 폭력의 씨앗을 품는다. 입시교육제도의 올가미에 걸린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다. 학습 일정을 관리하는 담당 선생님이 되어 24시간 아이의 일상을 간섭하고 공부하라고 지시만 내린다. 부모의 강요에 계속 순응한다면 다행이지만, 이를 장기간 내버려두면 부모에게 반기를 들고 일탈에 빠질 수 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과도한 관심이 아이의 머릿속에 부모나 교육 현실에 더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생각을 키운다. 불행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한스 아스케나시 / 청하 (1995년, 절판)

 

 

옛날 티베트인이나 호주의 부족은 부모의 시체를 먹는 식인 풍습이 있었다. 효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이들의 식인 풍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를 먹는 식인 풍습을 반인륜적이라고 비난해도 그들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먹는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의미에서 식인 풍습을 지키는 부족이 있다면, 반대로 사회적 처벌의 수단으로 식인행위를 하는 부족도 있다. 콩고의 카탕가 족은 죄인의 심장을 먹는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것은 손이 아니라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솔로몬 군도에서는 적의 시체를 먹는 것이 복수에 걸맞은 행위로 여겼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입시교육에 지친 아이들의 적대심과 폭력성이 투영된 가장 잔인하면서도 서글픈 목소리다. 자식을 조종하는 부모는 아이들의 욕구에 맞추기보다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길을 강요하기 십상이다. 자식들에게 절대자로 군림한다. 자식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너 잘 되라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키는 거야”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그것이 ‘좋은 부모’로서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억눌려야만 했던 아이들은 자유를 억압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부모를 무서워한다.

 

 

친구들과 내기를 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말하기

 

티라노사우르스
지네
귀신, 천둥, 주사

 

내가 뭐라고 말했냐면
엄마
그러자 모두들 다같이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엄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순영,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아이는 불만을 표출하는 데 그치는 반항심만으로 무서운 부모를 설득하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의 태도를 사춘기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무심코 넘길 뿐이다. 부모의 무관심과 강요는 주변 환경에 대한 아이들의 적대심을 키운다. 제우스는 자신을 잡아먹을 뻔한 아버지 크로노스를 공격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이 창조한 것마저 파괴하는 아버지의 광기 어린 욕심은 자식이 아버지를 기습하고 쓰러뜨리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부모 욕심은 자식 농사뿐만 아니라 자식 인생마저 망쳐버린다. 이 양의 동시집을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줘선 안 되는 불온서적이라고 발끈하는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당신도 자녀의 소중한 자유를 집어삼켜 자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면서까지 자식 농사를 하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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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5-06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억압이 애들을 자살로 내모는 폭력임은 인지하지못하면서, 아이의 시가 본인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표현좀 썼다고 길길이 날뛰다니...정말 수준낮네요.
이 동시가 비극이 되는 순간은 잔인한 시구에 있는게 아니라 저런 수준낮은 불관용으로 반응하는 어른들이 입을 여는 순간입니다.

cyrus 2015-05-06 22:41   좋아요 0 | URL
이런 시를 어른들이 보면 양심에 찔려야 할 텐데 아이들의 고통을 모를 정도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무뎌진 것 같습니다. 비극의 원인이 우리 어른들한테 있는데 말이죠.

2015-05-06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7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7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달 무슨 달 쟁반 위의 둥근 달... 뭐 이렇게 달달하게 써야 어른에게 칭창을 받겠군요.
위 시는 어른의 기대를 져버렸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가 시를 썼는데 이런 내용이더라고요.

우리는 항상 태극기를 보면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데
태극기는 건방지게 인사를 한 적 없다

뭐. 이런 내용, 다시는 태극기에게 인사 안 할래... 요거거든요.
어른 기대에 맞춰 달달한 동시를쓰려는 아이보다는 차라리 이런 솔직한 시가
저는 더 낫다고 보여집니다. 저 시는 아마 내면의 반영일 겁니다.
제 조카도 보면 알지만 아... 정말 지옥입니다.
기숙사 학교인데 아침 6시에 기상 기숙사 숙소로 가는 시간은 새벽 1시....
여기서 끝이냐. 다시 밀린 숙제 공부... 이게 지옥이죠..

cyrus 2015-05-07 17:54   좋아요 0 | URL
저도 수능 세대를 겪었지만, 요즘 아이들이 저보다 더 고생하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느껴야 할 정신적 압박감도 상당히 크고요. 이걸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어요. 공부 외에는 하지 말라는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책탐 2015-05-07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참 힘들어 보입니다. 어른이 받는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을지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진 모르겠지만 덜하진 않겠죠. 아이의 모든 모습은 잘못됐든 잘컸든 어른의 책임이 아닌가 싶네요.

cyrus 2015-05-07 17:5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번 동시집 논란을 통해서 어른들이 반성해야 되는데.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고 말 겁니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의 폭력성이 또 다시 화두가 되겠죠.

fledgling 2015-05-07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아무리 이런 비판적인 글을 보더라도 아랑곳하지않고 계속 고집하는 부모가 있죠. 어른들은 죽지않을 만큼만 고생시키려는 것 같은데 그러다 진짜 죽어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

cyrus 2015-05-07 17:58   좋아요 0 | URL
이런 유형의 문제가 과거에도 반복했는데 입시제도의 폐해를 고치지 않는 이상 반성하는 부모를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교육제도의 폐해를 알고 있어도 거대한 제도가 작동되는 현실을 거스를 수 없는 점이 문제입니다.

올리브 2015-05-0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것들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직한 반응으로서 어른에게도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제발 교육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모두들 먼저 생각을 해보자. 어린이가 쓴 시를 출판사가 부모의 동의없이 마음대로 출판할 수 있었는지를. 이것부터 앞뒤가 맞지않는 상황아닌가.
저 시를 쓴 것이 정말 저 아이의 자기 부모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라면, 아이를 저지경이 되도록 몰아붙인 부모가, 자기를 잡아먹겠다는 시를 잘썼다고 출판하자는데 동의했다는게 말이 된단 말인가? 아니면, 본인의 경험이 아니라면 절박하지도 않은데 저런 극악한 표현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정황상 절대 이건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순수한 작품일 수가 없다. (순수한 작품이라도 문제지만) 자기 자식 이름 팔아서 선정적 이슈 장사로 돈에 눈이 먼 부모와 출판사의 합작품일 뿐이다.

cyrus 2015-05-07 18:0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출판사의 서평 내용이나 문제의 삽화 그리고 이 동시집 출간을 허락한 부모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저도 처음에 올리브님처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선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예술’로 포장하여 장사하는 출판사와 이를 동의해준 부모가 나빴어요. ‘학원 가기 싫은 날’은 동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저는 이 시가 예술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 글에서 동시집이 예술성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교육제도에 지쳐서 극도의 불만을 가지도록 만든 부추기는 어른의 방관적 태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stella.K 2015-05-07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방송에서 나와 나도 뭔가 좀 놀랐다.
그 아이 엄마가 책 전량 폐기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하더군.
아이의 문제가 된 시 한편 가지고 전량을 폐기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맞는 얘기긴 하지. 하지만 방송에선 시 한 편만 문제가 아니라 7,8편 정도
문제가 된다고 하더군.
부모에 대한 적대감은 누구나 다 있는 것 같긴해.
문제는 그걸 솔직히 표현한 것과 표현하지 못한 것의 차이일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시가 좀 으시시 한 것도 사실이네.
출판 보호 협횐지 뭔지 하는 기관에선 어린이 출판물은 심의 대상이 아니라
이건 출판사가 알아서 걸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참 거시기 하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cyrus 2015-05-07 18:14   좋아요 1 | URL
논란의 문제가 복잡하게 흘러가는군요. 저는 아이 엄마의 반응에 대해서 자세히 확인하지 못해서 엄마의 가처분 신청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네요. 그래도 엄마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학원 가기 싫은 날’에서 드러난 아이의 심리 상태를 보고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가처분 신청이 아이의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거예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다양한 해석과 해설을 할 수 있는 많은 알레고리들을 구석구석에 숨기고 있다. 교회, 악마, 이단, 기적. 하나하나가 이 소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중세 유럽을 해석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소설 속 여러 공간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소는 수도원의 장서각이다. 이곳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에 관해 논한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이 숨겨져 있고, 필사본의 실체를 궁금하게 여긴 수도사들이 연속적으로 살해당한다.

 

어느 체제이든 그 체제가 꺼리는 지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심한 경우, 힘을 가진 자가 그 지식의 유포를 금지하기도 한다. 중세의 대변자인 호르헤 수도사에게 웃음은 악마의 유혹이고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동이다. 결국, 사탄의 마약인 웃음을 인간이 찬미한다는 것은 곧 기독교를 능멸하는 행위다. 그래서 호르헤 수도사는 《시학》 제2권을 금서로 규정한다. 그러나 금기가 영원한 법은 없다. 언젠가는 해제되고, 아니 세상을 지배하는 견고한 체제가 갈라지는 틈 사이에 성경 외의 지식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아델모는 이단으로 규정되는 성경 외의 지식에 일찌감치 눈 뜬 인물이다. 그는 양피지 사본을 제작하는 채식가(彩飾家)였는데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는 아델모의 죽음으로 미완성이 된 아델모의 성경 「시편」 채식사본을 확인한다. 그런데 윌리엄과 아드소는 아델모의 채식사본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사본에는 정체불명의 괴물 그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뱀 모가지의 네 발 짐승, 사지가 없는 인간, 말 대가리 인간,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괴물. 성스러운 기도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물 그림을 아드소는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는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은 상상력과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괴물은 하느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형상이다. 아델모의 채식사본은 호르헤 수사가 싫어할 만한 ‘공허한 그림’이다.

 

 

 

 

 

 

 

 

 

 

 

 

 

 

 

 

 

호르헤 같은 중세 사람들이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를 부정적으로 봤다면, 동양은 상상의 동식물을 해학적이고 비유적으로 기록하는 문화를 오래전부터 선호했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문헌이 바로 《산해경》이다. 《산해경》은 가장 오래된 동양 신화집으로 보는 편이지만, 사실은 분류하기가 어려운 문헌이다. 머리는 동물이고 몸통은 사람이니 하는 괴물들에 관한 내용이 많아서 판타지 문학의 특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지리서와 의학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세계를 방향별로 나누어 그 해당 구역별로 제목처럼 산과 바다, 나아가 신비한 효능이 있는 식물 및 광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해경》에 우스꽝스러운 내용은 많아도 고대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하늘·땅·물 세 개의 주요 공간과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가지 존재 즉 초자연적 존재(신, 괴물)와 인간에 대한 인식으로 이뤄져 있다.

 

상상력은 이미지로 살아나고 이미지는 다시 상상력을 환기한다. 《산해경》은 텍스트와 함께 있는 강렬한 이미지들로 인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많은 지식인이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박지원과 이덕무는 《산해경》을 흉내 내는 글을 남겼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와 마찬가지로 유학이 지배하는 조선 사회에서 상상력의 보고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유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산해경》이 《초사》라는 역사서에 환상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실을 다룬 문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종교 및 학문 헤게모니의 사슬에 묶였던 금지된 지식은 상상력의 날개를 다는 순간 급작스레 해방된다. 성경 이외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던 중세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다시 자연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어서 하나의 답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분명한 것은 12, 13세기 무렵부터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델모와 같은 채식사들은 금지된 지식을 유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중세에 드리워진 기독교의 장막이 걷어지게 되자 세계를 이해하려는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대항해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인식의 씨앗이 발아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산해경》처럼 상상력과 자연 세계를 결합한 서적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존 맨더빌의 여행기다. 《맨더빌 여행기》(오롯, 2014)는 동방의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의 등장으로 인해 콜럼버스와 같은 대항해 시대의 탐험가들이 신비의 세계로 알려진 동방을 찾으러 모험을 감행했다.

 

《맨더빌 여행기》와 《산해경》은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상상력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백과사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괴물이 나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두 권의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서로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산해경》 해외서경(海外西經)편에 여자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국은 이름 그대로 온통 여자만 사는 나라다. 여자국에는 들여다보기만 하면 임신이 된다는 신비한 우물이 있다고 한다. 또 여자가 목욕하고 나오면 저절로 임신이 되는 못도 있다. 만약에 여자국에 남자가 태어난다면 세 살이 될 때 죽여 버린다. 《맨더빌 여행기》도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조니아는 여성 전사들이 살고 있으며 남자의 지배권을 부정한다. 아마조니아 사람들은 가끔 다른 나라를 침입하여 남자와 짧은 기간 동안 사귀기도 하는데 임신해서 남자아이를 낳으면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부친에게 보내거나 죽였다. 신분이 낮은 여자는 오른쪽 유방을 잘라 궁수가 되고, 신분이 높은 여자는 반대로 왼쪽 유방을 잘라 방패를 드는 전사가 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 아마조네스 이야기와 거의 일치한다.

 

 

 

 

 

《산해경》에 언급되는 목이 없는 거인 형천은 중국 신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형천이라는 이름에 ‘머리를 베어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의 선조 황제(黃帝)와 맞짱 뜨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그 벌로 머리가 잘렸다. 잘려나간 머리는 상양(常羊)산에 묻혔는데 형천은 포기하지 않고 젖가슴을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아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고 있다고 전해진다. 머리는 없고 몸통에 눈, 코, 입이 달린 형체는 《맨더빌 여행기》에도 나온다. 《산해경》과 《맨더빌 여행기》에서 발견되는 이미지의 유사함을 그냥 우연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맨더빌이라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유럽인은 1322년부터 1356년까지 바다 건너 세계를 여행하고 난 뒤에 이 여행기를 썼다고 알려졌다. 그가 정말로 여행을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여행하는 도중에 동양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접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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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크래커 2015-05-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하의 박학다식에 경의를 표합니다. 재미있습니다.

cyrus 2015-05-06 19:14   좋아요 0 | URL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우연히 발견하고 글로 정리했을 뿐입니다. 늘 모자람이 많아서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피북 2015-05-0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의 뜻대루 대단하세요 어쩜 소개하시는 책들을 관통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막힘없이 술술하실 수 있으신지!
읽는동안 오~~아~~하는 감탄사만이 ㅋㅡㅋ,, 특히 이덕무, 박지원 이야기에선 띠용~~ >~< 동서양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낼수 있는 글 솜씨에 빠져 재밌게 읽었습니다

옛날에 `여인국`을 소재로 했던 단막극도 있었고 제주도 쪽을 그런 나라로 인식했던 글도 본 적있는거 같은데 이런 문헌에서 시작된거군요 참 재밌어요^~^

cyrus 2015-05-06 19:17   좋아요 0 | URL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라서 `여인국`에 대한 문헌들을 모아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국 하니 갑자기 엉덩국`이 생각나네요..ㅎㅎ

cyrus 2015-05-06 19:20   좋아요 0 | URL
곰발님도 엉덩국의 만화를 아시는군요. ㅎㅎㅎ

돌궐 2015-05-0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cyrus님 덕분에 이번에 장수철역 산해경을 샀는데요. 정재서 역 산해경보다 삽화가 많아서 좋습니다. 저도 형천 이야기 좋아해요. 형천 그림을 비교해 봤는데 두 번역서에 사용된 그림이 다르더라구요.

cyrus 2015-05-06 19:23   좋아요 0 | URL
저는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로 복간된 장수철 역 <산해경>을 읽었어요. 산해경 삽화가 여러 가지 판본이 많은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누락된 것도 있어서 원본 그대로 보는 게 쉽지 않을거예요.

AgalmA 2015-05-0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해경 그림들이 책마다 수록된 게 다른가봐요. 제 산해경도 예전 cyrus님 소개한 산해경과 좀 다르더라고요. 출판사마다 수록과 누락이 있나 싶어 그림이 전부 원형으로 다 있는 걸 갖고 싶고 그러네요

cyrus 2015-05-06 19:29   좋아요 0 | URL
산해경 삽화는 여러 가지 판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삽화를 비교해보면 묘사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아갈마님 말씀처럼 책을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그림은 누락되었을 것으로 추측해요.

transient-guest 2015-05-06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reference로 나오는 것을 봤는데, 책이 있네요. 나중에 구할 책이 또 늘어났네요.ㅎㅎ

cyrus 2015-05-06 19:31   좋아요 0 | URL
guest님이 구하고 싶은 책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 글에 소개된 <산해경>은 절판되었어요. 그래도 정재서 교수 번역본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따뜻해야 할 5월의 날씨답지 않게 어제는 보슬비가 온종일 지루하게 내렸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폭풍 주먹 제대로 날리지 않은 채 지루하게 경기를 끝냈다. 허무함만 남긴 먹튀 대결에 된 이 경기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사 가는 친구가 이삿짐 옮기는 일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이 경기를 TV로 끝까지 봤을 것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가 링 위에서 지루한 주먹 교환만 하고 있을 때 나는 친구의 짐을 새집에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 고등학생 때부터 처음으로 만나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10년 지기 친구의 부탁이라서 단번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 친구는 며칠 전에 여자 친구와 혼인 신고를 하고,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이제부터 그들은 부부가 된 것이다.

 

 

 

 

 

 

 

 

 

 

 

 

 

 

 

 

 

친구도 나처럼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즐겨 읽는 책은 다르다. 친구는 판타지소설을 즐겨 읽는다. 가지고 있는 판타지소설의 양은 많지 않지만, 시리즈 전권을 모은 것도 꽤 있다. 반면, 제수는 만화책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 만화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고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00% 공감할 것이다. 이사를 할 때 많은 양의 책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집의 공간이 좁더라도 자신이 모은 책을 끝까지 보관하고 싶은 것이 애서가의 마음이다. 《장서의 괴로움》(정은문고, 2014)의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는 이사야말로 책을 처분할 기회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책을 팔고 남은 돈으로 새 책을 산다. 이처럼 애서가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장서량이 어느 한도를 넘어서게 되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지만, 책장은 좁디좁기 때문이다. 특히 각각 다른 공간에서 생활했던 남녀가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질 때 책은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앤 패디먼의《서재 결혼 시키기》(지호, 2002)는 ‘책의 결혼’이 극적으로 성사되기까지 겪게 되는 갈등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앤과 남편 조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결혼을 하면서 자신이 혼자 살 때 가지고 있었던 책을 모두 공동의 공간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장서를 보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앤은 자신이 정한 분류에 맞춰서 책을 꽂는 ‘세분파’라면, 조지는 분류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곳이나 책을 꽂는 ‘병합파’다. 두 사람은 분류 방식을 통일하기 위해 합의를 봤고, 그 과정에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는 것을 원하지만, 조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발표 연도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앤의 장서 보관 방식을 반대한다. 

 

어제 친구와 제수는 새 보금자리에서 ‘책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식 거행에 앞서 나는 주례사를 자처하여 두 사람의 서재를 축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원하는 장서 보관 방식을 알아봤다. 친구와 제수가 원만하게 책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다. 친구는 조지처럼 병합파다. 그가 가진 책들은 전부 다 판타지소설이라서 주제를 분류하면서까지 책을 꽂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제수의 생각은 달랐다. 세심파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만화책이 눈에 띌 수 있도록 꽂히기를 원했다. 보기 좋게 깔끔히 정리된 서재를 선호했다. 두 사람 다 고집이 센 편이라서 이들을 만족하게 해줄 타협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최대한 형수의 취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책을 정리하기로 했고, 완결된 판타지소설과 만화책은 책장 맨 위 칸에 꽂을 것을 제안했다. 형수는 황미나의 《레드문》구판 시리즈 전권(2000년 서울문화사에서 나온 구판의 권수는 총 18권이며 애장판은 총 12권으로 이루어졌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만화에 문외한이지만, 황미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2004년에 나온 애장판마저 절판인 데다가 이미 오래전에 판이 끊긴 구판 전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만화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으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레드문》 시리즈를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띌 수 있는 칸에 꽂고 싶었다. 책장 맨 위 칸의 높이는 보통 어른 키만 하므로 책장을 볼 때 시선이 가장 먼저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 옆에는 친구가 아끼는 판타지소설 시리즈를 꽂았다. 신기하게도 친구와 제수의 애장도서가 처음으로 만나서 합방한 맨 위 칸에 남은 공간이 생기지 않았다. 책들이 딱 맞게 꽂혔다.

 

제수는 《레드문》 18권을 첫 번째 칸에 보관하는 나의 제안에 무척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알고 보니 이 책에 두 사람 간의 애정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추억이 숨어 있었다. 친구와 제수가 한창 뜨겁게 연애를 하고 있던 시절에 제수는 《레드문》을 소장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녀의 소원을 알고 있었던 친구는 수소문 끝에 구하기 힘든 그 만화책을, 그것도 전권을 사는 데 성공했다. 제수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 친구의 모습에 무척 감동했고, 지금도 이 《레드문》을 가장 아끼는 만화책으로 여기고 있다.

 

애서가에게 책은 ‘사랑’의 대상이다. 애인 다루듯 소중하게 읽고 간직해야 한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이나 독서 행위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러나 책에 대한 취향만큼은 모든 애서가가 다 똑같을 순 없다. 책을 다루는 습관이 서로 다르면 갈등이 드러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독서 취향을 존중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상대방의 독서 취향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경의 표시를 보이면서 무시하는 반응은 애서가가 경계해야 할 자세다. 상대방의 독서 취향을 포용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책을 사랑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신이 애서가라면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나는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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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대필작가가 4명이란 소리도 있던데, 작품 진위여부까지 따지는 부부가 있다면 서재이혼소송까지 갈지도요ㅎㅎ
그러니까 이삿짐 옮기는 것보다 책정리 전문가로? 이거 괜찮은 직업일수도ㅎ

cyrus 2015-05-05 15:33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서 그런지 책정리는 귀찮게 생각하지 않아요. 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15-05-0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독서 취향의 존중... 깊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독서를 하는 그 날이 먼저 오길 기대해 봅니다.

cyrus 2015-05-05 15:39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요즘 책이 많은 집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에이바 2015-05-0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패디먼 글에서 책을 다룰 때 궁정파 연인이랑 육체파 연인으로 나누는 것도 감명 깊었어요. 전 궁정파인데 싸이러스님은 어떤 연인이신가요 ㅎㅎ

cyrus 2015-05-05 15:41   좋아요 0 | URL
저도 궁정파입니다. 책에 조금이라도 접히는 걸 싫어합니다. ^^;;

게으른독서가 2015-05-04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결혼식이라, 책을 다루는 습관이 달라 생길 수 있는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정말 그러네요. 합의점을 찾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4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란 말을 들을지도... ㅎ

cyrus 2015-05-05 15:45   좋아요 0 | URL
<서재 결혼 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도 남편과 장서 보관 방식에 대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 부부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고백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결혼할 때 앤의 경험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수이 2015-05-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기 보지 못했는데 어쩐지 승리한 기분이라니 ㅋㅋ 음 좋은 일 했는데_ 결혼해서 책 처음 뒤섞고 정리할 때 생각나서 잠깐 짜릿했어. 신혼 기분을 만끽해주는 이 페이퍼 아주 굿이오!

cyrus 2015-05-05 15:48   좋아요 0 | URL
누님은 형님이랑 책 보관 때문에 싸운 적 없어요? 형님도 책 엄청 좋아하잖아요. 지민이도 두 분처럼 책 좋아하면 이거 행복한 고민에 빠지겠어요. 앞으로 책 정리하기가 힘들어질 거예요. ㅎㅎㅎ

수이 2015-05-05 23:42   좋아요 0 | URL
지민이도 책 욕심은 많아_ 아직까지는 괜찮은데_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아, 다만 난 다시 읽을 책이 아니다 싶으면 선물도 하고 중고서점에도 잘 갖다 파는데 비해 남편은 일단 자기 품에 들어온 책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조차 싫어하는 소장파? 그래서 이번에 이사할 때도 내 책은 많이 처분했지_ 네 매형이 알면 난리법석 피울 거 알아서 조용히 팔았는데 눈치챈듯_ 책이 왜 이렇게 조금이야? 하더라고 ㅋ

transient-guest 2015-05-05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이웨더-파퀴아오 경기를 재미있게 봤어요. 다만 메이웨더가 너무 도망다니기 바쁘고, 둘 다 뚜렷산 우세가 없었기 때문에 UFC였다면 아마 무승부로 처리되었을 것 같습니다. 6년전, 파퀴아오가 전성기 때 싸웠다면 메이웨더는 KO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분 부부의 이야기는 사람과 서재가 모두 각각의 상대와 결혼하는 듯해서 재미있습니다.ㅎㅎ 그걸 도운 님도 대단한 듯..

붉은돼지 2015-05-0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결혼식의 주례(?)를 보시다니 정말 멋지고 보람찬 일입니다 ㅋㅋㅋ
레드문도 빨리 재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5-05-05 15:53   좋아요 0 | URL
게스트님은 복싱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사실 저는 세기의 대결이라는 광고에 혹해서 무척 궁금해서 경기를 보려고 했던 복싱 문외한입니다. ^^;;

저는 그 날 이삿짐 정리를 얼른 끝내고 집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저뿐만 아니라 두 사람도 이 날을 잊지 못할 겁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5-0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문 저렇게 귀한 책인줄 모르고 20년지기 친구한테 선물로 줘버렸죠~ 오래되서 누렇게 변했는데도 주라고 계속 졸라대서 ㅎㅎ

cyrus 2015-05-05 15:55   좋아요 0 | URL
아.., 정말 후회 많이 했겠어요. 귀한 책이라서 중고가도 높아졌을 겁니다.

2015-05-0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5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5-06-2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던 두 권입니다. cyrus님의 글을 통해 보니 더 반갑네요.

cyrus 2015-06-20 22:54   좋아요 0 | URL
두 권의 책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읽어봤을 것입니다. ^^
 

 

 

 

 

 

 

 

 

 

 

 

 

 

 

 

 

제임스 조이스는 극심한 녹내장에 시달렸는데 평생 열두 차례의 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한 왼쪽 눈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안대를 착용한 채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실명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 속에서도 조이스는 펜을 손에 놓지 않았고 《피네간의 경야》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오감 중의 하나가 발달하지 않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다른 감각이 일반 사람의 감각보다 훨씬 뛰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시각장애인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청각과 촉각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물체를 시각화할 수 없어도 감촉만으로 물체 모양이나 사람을 인지할 수 있다. 조이스는 청각이 뛰어났다. 그의 소설을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이스는 청각으로 세상을 느끼고자 했고, 청각에 의지하여 추상적이면서도 관념적 대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율리시스》에는 아일랜드 민요, 오페라, 유행가, 성가(聖歌) 등 노랫말을 인용한 대사가 많다. 이러한 조이스의 서술 방법은 이야기의 장면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텍스트를 읽는 것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어떤 노랫말은 소설에서 진행되는 특정 상황이나 주인공의 내적 심리를 암시하고 있지만, 그 외 나머지는 이야기 진행과 상관없다. 그러므로 독자는 노랫말이 삽입된 텍스트에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

 

조이스는 사물, 인물의 움직임이나 모습을 의성어와 의태어로 묘사하는 표현도 즐겨 사용했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들어간 텍스트를 읽노라면 사실감과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조이스는 자신의 소설은 단순히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소리 내서 읽어보라고 말한다. 조이스가 시키는 대로 하면 《율리시스》는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귀로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된다. 청각이 발달한 조이스다운 독특한 발상이다. 어쩌면 조이스는 《율리시스》처럼 귀로 읽는 소설 혹은 귀로 듣는 소설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을 했을 것이다. 이는 곧 오디오북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율리시스》는 분량이 많은데다가 방대한 지식이 함축되었고, 독자의 기를 빠지게 만드는 ‘의식의 기법’ 방식으로 인해 읽으면 지루하고 어렵다는 평이 많다. 그렇지만 끝까지 참고 읽다보면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조이스가 당부했던 대로 아일랜드 어가 그대로 실려 있는 원문을 낭독한다면 조이스가 구사한 언어유희가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다. 원문은 아니지만, 원문에 있는 의성어를 우리말로 옮겨진 조이스의 문장을 인용해서 소개해본다. 

 

 

코크 호반으로부터 긴 올가미를 이루며 물이 넘쳐흘렀다. 모래의 푸른 황금 빛 개펄을 덮으며, 솟으면서, 흐르는 것이다. 나의 물푸레나무 지팡이도 떠내려가겠지. 나는 기다리리라. 아니야. 그들은 계속 흘러 갈 거야. 통과하며, 낮은 바위에 부딪치며,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이다. 이 일은 재빨리 해치워야겠다는 듯이. 귀를 기울어봐요: 네 마디 파도의 언어를: 쉽슈, 허스, 르세이스, 우우즈. 바다뱀들, 뒷발을 디딘 말(馬). 바위 사이의 파도의 격렬한 숨결. 바위 컵 속에 물이 쏴 쏟아진다: 풍덩 인다. 쏟아진다. 찰싹인다: 통 속에서 출렁인 채. 그리하여, 지쳐, 그의 언어가 멈춘다. 물은 소용돌이치며 흐른다, 넓게 흐르며, 웅덩이 거품일게 하며, 꽃 펼치면서. (《율리시스》 제3장 프로테우스 중에서, 김종건 역, 122쪽)

 

 

코크 호로부터 긴 올가미 모양을 이루는 물줄기가 황록색 모래늪 위로 굽이치며 힘차게 흘러갔다. 나의 물푸레나무 지팡이가 떠내려갈 것이다. 나는 기다리리라. 아냐, 물은 지나갈 것이다. 낮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고 소용돌이치며. 어서 일을 끝내는 편이 좋겠다는 듯이. 저 소리를 들어 봐. 네 단어로 된 물결의 언어. 시이슈우-, 스스스스-, 크르르르-, 우우우 - 바다뱀, 뒷발로 선 말들, 바위 틈에서 나는 격렬한 물의 숨결. 바위의 잔에 물이 넘친다. 철벅, 철벅, 철벅 하고. 술통 안에서 술이 출렁이듯이. 그러고 나서 물은 피곤해져 지껄이기를 그만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잔물결을 이루며 넓게 흐르고 웅덩이처럼 펼쳐진 꽃 같은 거품을 부글거린다. (김성숙 역, 93쪽)

 

 

 

《율리시스》 3장에서 스티븐 디덜러스는 샌디마운트 해변을 혼자 거닐면서 자유로운 명상에 빠진다. ‘율리시스’는 그리스어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영어식 표기다.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모델로 한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19년 동안의 방랑 끝에 귀향하는데 조이스는 블룸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하루 동안 더블린 시내를 걷는 것으로 압축했다. 프로테우스는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변신에 능한 신이다. 여러 가지 짐승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프로테우스처럼 스티븐의 명상은 쉴 틈 없이 다양한 주제와 관념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가 이야기 종반부에 스티븐은 파도 소리를 듣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조이스는 스티븐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를 단, 네 마디의 언어로 묘사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당신은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속에 나오는 거친 파도 소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청각을 중시하는 성격답게 조이스는 독자에게 파도 소리에 귀 기울어보라고 말한다. 조이스가 묘사한 파도 소리는 큰 바위를 부술 듯한 거친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격렬한 숨결’이 느껴지지만, 파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물은 바위 웅덩이 안에 고여 물거품만 잔뜩 쏟아내고 있을 뿐이다.

 

코크 호숫가의 ‘코크(cock)’를 주목해보자. ‘cock’가 얼핏 지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남성 성기를 뜻하는 속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cock’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면, 바위 사이에 흐르는 파도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파도 소리라고 이해한 독자가 있다면 조이스의 장난을 알고 나면 당혹스러워 할 것이다. 당신이 문장으로 들은 파도 소리는 사실 소변이 볼 때 나오는 소리였으니까. 바위 웅덩이에 거품을 일면서 흐르는 물이 스티븐의 소변이다. 《율리시스》는 내용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외설 판정을 받아 출판이 지연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율리시스》 읽기의 또 다른 재미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조이스의 성적 농담이다. 레오폴드 블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콩팥을 사러 밖으로 나가다가 하숙집 처녀의 엉덩이를 보고 성적 충동을 느끼는 장면(《율리시스》 4장 칼립소)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한 대사도 있고, 별것 아닌 문장 속에 성적 의미를 은밀하게 숨겨 놓기도 했다. 내용이 어렵고, 엄청 지루해도 《율리시스》 속에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 이래서 《율리시스》 를 안 읽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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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5-0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느낄 수 있다고 하던데... 딱 그런 책이군요.

cyrus 2015-05-03 21:04   좋아요 0 | URL
율리시스를 완독했다면 다이제스터님이 남기신 댓글 내용처럼 한줄평으로 썼을 겁니다. ^^

붉은돼지 2015-05-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cyrus님 덕분에 공부 많이합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5-05-03 21:04   좋아요 0 | URL
맨땅에 헤딩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

수이 2015-05-0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프로젝트는 뭐야?

cyrus 2015-05-03 21:10   좋아요 0 | URL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에 나오는 작품들을 다 읽어보기 위한 제 개인적인 독서 계획이에요. ^^

blanca 2015-05-0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무려 율리시스를 완독하신 겁니까. 소리 위주의 표현 기법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어요. 흥미롭네요. 안 그래도 제임스 조이스의 눈 관련 문제가 간혹 나오더라고요. 의외로 작가들 중에 시력을 잃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cyrus 2015-05-03 21:14   좋아요 0 | URL
아니요. 7장까지 읽었어요. ㅎㅎㅎ 《율리시스》를 그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읽어보면 기존에 나왔던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표현 방식이 나와요. 그래서 줄거리를 알면서도 다음 장이 궁금해져요. 조이스의 글쓰기에 감탄합니다. ^^

stella.K 2015-05-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 게 숨겨져 있었구나. 이걸 발견하다닛! 대단하다 시루스.
너의 글을 읽으니까 나도 제임스 조이스에 도전해 볼까?
그런 무모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ㅋ

청각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요즘 종편에서 방영하고 있는
<실종느와르 M>이란 드라마가 있는데 어제 재방송을 보니
박희순이 소리 식별하는 장면이 나오드라.
저건 남자가 소변 보는 소리라고 그러더라. 낙차가 (여자에 비해) 크다나?
그리고 이 소린 여자가 브래지어 내리는 소리래.ㅋㅋㅋ
어떻게 소리만 듣고 그런 상상이 가능한지 드라마니까 저렇게 썼겠지
하다가도 그렇게 쓸 생각을 한 작가가 새삼 대단하다 싶기도 하더군.
혹시 안 봤으면 한 번 봐. 나름 꽤 잘 만든 드라마 같드라구.^^

cyrus 2015-05-03 21:21   좋아요 0 | URL
조이스는 《율리시스》에 수수께끼를 감추어서 앞으로 대학교수들이 이 소설을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율리시스》를 조이스가 만든 방대한 문장 암호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율리시스》가 어려워요. ㅎㅎㅎ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소리를 식별하려면 동물적 청각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아요. 드라마 한 번 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