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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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잡지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눈꺼풀을 빼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왼쪽 눈꺼풀을 수만 번 깜빡거리는 노동으로 글을 썼다. 도우미가 알파벳을 순서대로 제시하면 눈 깜빡임으로 철자를 골라 문장을 만들었다. 책 제목은 잠수복과 나비(동문선, 1997). 잠수복을 입고 심해에 갇혀 있지만, 나비를 희구하는 저자를 상징한다.

 

뇌는 여러 구조물을 부품으로 한 조립품이 아니라 수백억의 신경세포가 연결된 통신망에 가깝다. 뇌 속의 뉴런은 1천억 개에 달한다. 한 개의 뉴런이 뇌 속에서 수천 개의 뉴런과 연결된다.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과정은 사실 이 뉴런들이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다. 마비는 뇌의 명령을 근육에 전달하는 신경 경로가 차단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세포는 남아 있어서 여기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근육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컴퓨터가 뇌 활동을 읽어내 전기 자극으로 자동 변환시킨다.

 

국내에서도 이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뇌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분야를 뇌공학이라고 한다. 과학 분야에 생소한 독자라면 뇌과학과 뇌공학의 차이점이 궁금할 수 있다. 뇌과학은 뇌의 작용 원리를 밝혀내는 학문이라면 뇌공학은 뇌를 포함한 신경계의 기능과 행동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제반 공학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학문 용어를 둘러싼 독자의 혼동을 피하고자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뇌공학을 뇌과학과 공학기술이 만난 학문으로 보면 된다. 그만큼 뇌공학에서 다루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분야를 융합하고 창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은 뇌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에 대한 연구개발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 시냅스와 뉴런이 뇌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은 컴퓨터의 연산처리 기능과 유사하다. 2005년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들이 모여 인간의 뇌 신경 연결지도를 만드는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를 출범시켰다. 휴먼 커넥톰은 뇌 회로에 신호를 보내고 자극할 때 회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 연구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목표는 뇌 동작 원리 전체를 밝히는 데 있다. 뇌가 어떻게 기억을 형성하고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지, 또 팔다리나 시청각 등과 관련된 인체 기관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밝혀낸다. 이게 가능하다면 영화 <아바타>와 같이 뇌의 기억을 읽어 내거나 조작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

 

매튜 네이글이 참여한 브레인게이트(BrainGate)’ 프로젝트는 BCI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있다. 칼에 찔려 척수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매튜 네이글은 유타 대학교에서 개발한 미세 전극 배열 칩을 두뇌의 운동 피질 표면에 이식됐다. 기기 오작동으로 인해 한 차례 실패가 있었으나 두 번째 재이식은 성공했다. 전극은 주위의 뉴런으로부터 전기신호를 포착해 환자의 두뇌에 있는 칩으로 전송한다. 전송된 신호는 복잡한 케이블을 타고 컴퓨터에 연결돼 원하는 동작을 이끌어낸다. 매튜 네이글은 원하는 움직임을 상상만 하면 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늘 염려와 경계가 따른다. 인공심장 박동기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땐 인간성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에는 두뇌와 기계와의 만남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과학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고, 공학은 불편함에서 시작되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뇌공학은 우리의 뇌가 질병으로 야기된 문제 또는 태생의 한계에 따른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뇌공학이 발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부분적인 기술들이 융합되지 못하면서 장애인들의 바람을 희망 사항에 머물게 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거나 군사적 활용도가 높은 곳에 치우친다면 윤리적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자아, 능력, 성격 등 인간 본연의 실체이므로 이에 대한 윤리적 측면의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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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jung 2015-07-2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뇌과학에 관심이 많아요...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cyrus 2015-07-27 18:00   좋아요 0 | URL
내용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과학 용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슬람과 중동 문제의 모든 것
서정민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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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나라를 보면 이슬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특히 대구북부정류장 인근에 가면 방글라데시,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 온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유동 외국인만 해도 하루에 수백 명에 달한다. 염색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북부정류장에 들어선 식당 또는 식료품 가게를 많이 찾는다. 이곳이 이들의 주된 생활공간. 어려운 현실이지만 강한 유대감으로 대구의 한쪽에서 터전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작 돈이 아니다.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이 더 크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슬람’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부정적 이미지다. '테러 집단'과 거의 유사한 뜻으로 이해한다.

 

이슬람이란 아랍어는 원래 ‘평화’의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이 알라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종교적 의미를 포함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나오는 화면은 늘 화약 냄새가 가득하고, 사람들의 비명이 넘친다. 우리는 화면에 비친 이슬람을 자주 보면서 저곳은 테러리스트가 판치는 아수라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 IS(이슬람 국가)의 위협과 공격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IS를 비롯한 테러 단체와 전면전에 나선 이후로 전 세계 곳곳에서 반 무슬림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는 꾸란’, 이슬람의 폭력성을 말할 때 흔히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슬람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13세기 기독교의 십자군이 중동 원정에서 이슬람군에 패배하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을 심어주기 위해 처음 한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왜곡된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지금껏 이슬람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현재의 중동 분쟁을 만든 이슬람과 적대적 이해국인 서구의 시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는 ‘이슬람=테러’라는 생각을 전 세계 사람들이 갖게 하였다.

 

이슬람주의의 요체는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 샤리아(이슬람법)로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다. 대표적 이슬람주의 단체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창시자 하산 알 반나는 서구의 가치들이 무슬림들에게 조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초기엔 온건한 사회운동을 펼쳤으나, 주요 이론가였던 사이드 쿠틉 등 많은 조직원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급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이드 쿠틉은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성전을 옹호한 과격 이슬람주의의 아버지다.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와 과격 이슬람주의, 두 개념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무슬림들을 모조리 과격한 사람으로 봐선 안 된다. 이슬람교는 무슬림의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규정하는 문화적, 종교적 제도를 의미하지만, 과격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IS는 자신들의 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해 쿠란의 일부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테러 행위를 위대한 ‘성전(聖戰, 지하드)’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성전을 원래 적에게 향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의미가 아니다. 알라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불신자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알라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의로운 전쟁이다. 또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자살은 금기사항이다. 무장 세력들이 무슬림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지하드를 선포하고 자살테러를 시키는데, 정치적 수단일 뿐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IS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 테러를 감행해 존재감을 확산시키고 수니파 과격세력을 결집한다. 그러므로 중동이 혼란에 빠진 원인을 그저 종파적 갈등으로만 보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종파 갈등 이면엔 정치적 목적과 이득을 위해 종파 간 대립을 조장한 집단이 있다. 서방국도 중파 갈등을 부추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미국과 러시아도 냉전 시대부터 중동과 아랍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 간 갈등을 이용했고,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지원한 무장 세력 단체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알 카에다였다. 이런 사실로 비춰볼 때, 수니와 시아의 반목은, 서구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 조장이 원인이며, 지금의 유혈충돌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과격 세력들이 행하는 테러를 ‘테러리즘미즈(Terrorism+ism)’와 ‘알 카에디즘(Al-Qaeda + ism)’의 대결 구도로 보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테러리즘미즈’는 미국이나 서방국이 중동의 테러를 ‘적의 소행’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뜻한다면(예를 들면, 이란과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인식), ‘알 카에디즘’은 IS처럼 자생적으로 세력을 확산하고, 테러를 꾸미는 무장단체를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아마도 이 두 단어는 저자가 직접 만들었을 것이다. 이슬람을 무조건 적대적으로 보는 편견을 표현하기 위해서 굳이 ‘테러리즘’에 ‘ism’이 더 붙는 단어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의미상 이런 단어는 성립할 수 없다. 학계에서 공인된 단어가 아니라 저자가 만든 것이라면 이 사실을 본문에 명시해줘야 한다. IS 관련 소식 이후로 이슬람 관련 서적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도 출판 열풍 속에 나온 신간이다. 분량이 제법 두꺼운 책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과격 이슬람주의 형성의 역사에서 오늘날 IS에 관한 최신 정보까지 소개하고 있다. 다만, 중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아랍인들은 이슬람 이전의 시대를 자힐리야(Jahiliyya), 즉 무지의 시대라고 말한다. 알라에게 복종하지 않는 중동의 상황은 자힐리야다.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이용된 종파 분쟁이 이제는 목적과 이유는 사라진 채 오로지 반목과 갈등, 대립을 위한 존재로 남아 있다. 그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이슬람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한 손에 폭탄을, 한 손에는 총’이 더 어울린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수니와 시아파는 지금 자신들이 왜 서로를 죽이려 하는 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들이 믿는 신은 잘 알고 있을 텐데.

 

 

 

 

“결국 당시 수상이었던 마흐무드 알 누크라시 파샤가 무슬림형제단 조직원에 의해 됐다” (86쪽) → ‘살해’가 빠진 채 인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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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 2015-07-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팔레스타인 원혜진 저..책이 아주 쉽고 명확하게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서구의 프레임으로 중동의 문제를 인식해왔다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편견을 깨려면 한발.. 앞으로 나가고 손을 내미는.. 일들을 계속해나가야겠어요. 읽고 싶은 책입니다 리뷰 감사해요

cyrus 2015-07-26 15:46   좋아요 0 | URL
중동 문제에 관한 책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 사코의 만화 <팔레스타인>과 같이 읽어보고 싶군요.

csp 2015-07-2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읽은 your fatwa does not apply here 이란 책이 생각나는군요. 알제리 출신의 미국 법학교수인 저자가 수년간 이슬람 국가들을 오고가며 이슬람 근본주의와 싸우는 무슬림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책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슬림 근본주의의 대두와 연이은 테러행위를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문명 내부의 충돌이라고 설명했는데 눈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cyrus 님이 소개하신 이 책의 `테러리즘미즈` vs. `알 케에디즘` 프레임과는 전혀 대치되네요. (둘 다 좀 괴상한 조어라 느껴지는군요-_-;;)반-무슬림 어젠다를 생산해내는 미국 우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여성할례나 부르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리버럴한 서구 인텔리들에 대한 쓴소리도 가득 담겨져 있었는데 요즘과 같은 시대에 여러가지로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국내 저자가 쓴 양질의 이슬람 관련 서적이 부족하다고 늘 느끼는데 소개하신 책을 언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cyrus 2015-07-26 15:50   좋아요 0 | URL
슈퍼맨님이 읽으셨던 책은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거지요? 혹시 책의 저자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일단 저자의 이름이라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저는 처음에 테러리즘미즈와 알 카에디즘이 학계에 공인된 용어인 줄 알았어요. 사실 이 책을 중동에 모르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책입니다. 아마도 슈퍼맨님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csp 2015-07-26 19:47   좋아요 1 | URL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것 같지 않습니다. 저자 이름은 Karima Bennoune 고 테드에서 강연도 했어요. 관심이 가시면 한번 영상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다가 본문에 있는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혹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책 55쪽을 펴보시라. 여성의 강간을 옹호하는 미국 공화당 정치인 다섯 명의 망언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올 것이다. 이 다섯 명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2012년 선거에서 모두 낙선되었다. 몰상식한 발언을 한 다섯 명의 공화당 정치인의 이름을 소개해보겠다. 토드 어킨, 리처드 머독, 린다 맥머혼, 톰 스미스, 존 코스터. 이 다섯 명 중에 한 사람만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린다 맥머혼. 놀랍게도 다섯 명의 공화당 정치인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다섯 명이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몰라도 이름만 봐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역자는 ‘린다 맥머혼’이라고 썼지만, 원어민의 발음대로 하면 ‘린다 맥마흔(Linda McMahon)’으로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린다 맥마흔’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 네이버 검색창에 ‘린다 맥마흔’이라고 치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WWE를 즐겨 본 사람이라면 린다 맥마흔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미국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회장 겸 CEO인 빈스 맥마흔이다. 필자는 WWE라는 이름으로 변경하기 전이었던 WWF 시절부터 미국 프로레슬링 경기를 즐겨 봤다. (WWE는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약칭이며 WWF는 ‘World Wrestling Federation’의 약칭이다. 2002년에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의 명칭 관계로 소송에 휘말려 패소하는 바람에 지금의 WWE로 단체명이 변경되었다.) WWE는 프로레슬링에 오락적인 요소가 더해진 세계 최대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단체이다. WWE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화려한 기술을 역동적으로 구사하는 레슬러들의 경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레슬러 간의 신경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1970년대 한국레슬링의 에이스였던 장영철이 ‘프로레슬링은 쇼다’라고 외친 이후로 국내 레슬링의 위상은 한순간에 떨어졌지만, WWE는 여전히 건재하다. 마치 생방송 드라마처럼, 때로는 돌발 상황마저 그다음 주의 스토리라인에 이용할 정도로 치밀하게 각본을 진행한다. 실제로 WWE에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각본진이 따로 있으며 종종 선수들도 각본을 만드는 일에 개입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WWE에 관한 부연 설명이 조금 길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린다 맥마흔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녀와 WWE의 관계를 지나치면 안 된다. 내용이 너무 길다고 느껴진다거나 현재 북플로 글을 읽고 있다면 안 읽어도 된다.

 

 

 

 

 

 

WWE가 WWF였던 시절, 그러니까 1990년 중반에 TV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극단적인 스토리라인이 나왔다. 빈스 맥마흔은 당시 CNN 창립자 테드 터너가 운영하는 또 다른 레슬링 단체 WCW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려고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가족을 링 위에 등장시킨다. 아들 셰인 맥마흔, 딸 스테파니 맥마흔 그리고 아내 린다까지 각본에 투입되었다. 빈스는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틈만 나면 가운뎃손가락(‘Fuck you’)을 들어 올리는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을 괴롭히다가 끝내 불쌍하게 얻어터지는 악덕 회장으로 링 위에 등장했다. 또한 빈스와 셰인 간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여 아버지와 아들 간의 레슬링 경기가 실제로 펼쳐지기도 했다. 린다는 섹시한 여성 레슬러를 애첩으로 둔 바람기 많은 남편을 철저히 응징하는 사모님으로 등장했다. 이제 곧 손자, 손녀를 봐야 할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도 린다는 레슬러의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온몸으로 맞아주는 살신성인의 연기를 보여줬다. 이렇듯, 진정한 막장 스토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과거 WWF를 보면 된다.

 

현재 WWE의 최고경영자는 빈스 맥마흔이지만, 원래는 린다가 그 자리에 있었다. 린다는 정계 진출을 위해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물러났다. 2009년, 그녀는 코네티컷 주 교육위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의 교육위원 임명 과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꽤 많았다. 반대자들은 그녀가 WWE에서 활동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WWE의 본사가 코네티컷에 있어서 린다 입장에서는 지지 세력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역시나 WWE에서의 활동은 그녀의 정계 입문에 제약되었다. 그러나 린다는 반대 여론에 개의치 않았고, 그해 9월에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하겠다고 공식 발표를 했다. 아내의 상원의원 당선을 위해서 빈스 맥마흔은 WWE의 방송 등급을 14세 이상 연령이 시청 가능한 PG 등급으로 조정했다. 이로써 성인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자극적인 각본과 여성 레슬러들의 과도한 신체 노출 장면이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린다는 2010년, 2012년 상원의원 선거에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비록 각본에 따른 ‘쇼’의 일부였지만, 린다는 바람을 피우는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면서도, 결국에는 남편의 뺨을 날리고, 그의 급소를 향해 발로 차는 여장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악덕 회장에게 복수하는 린다의 사이다 같은 퍼포먼스에 팬들은 통쾌했다. WWF 시절 여성 레슬러들은 남성 레슬러를 보조하는 매니저 역할로 국한되었고, 남성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성 상품에 불과했다. 린다 맥마흔은 남성 위주의 프로레슬링단체 속에서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녀가 과거에 WWE 최고경영자였다는 사실만으로도 WWE 내 그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발언을 한 린다의 태도가 유감스럽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린다가 정치인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본심을 밝히자면, 절대로 정치인이 돼선 안 된다. 이 말이 여성 정치인의 한계를 겨냥하기 위한 것임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필자는 여성 정치인의 진출 기회가 많아져서 정치력 신장이 더 높아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필자가 정치인으로서의 린다를 반대하는 이유는 강간의 심각성을 모르는 무지한 발언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낙태를 반대해온 공화당 소속이라고 해도 보수적인 남성처럼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은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같은 공화당 소속의 상원의원 후보로 나선 토드 어킨은 “진짜 성폭행(legitimate rape)을 당한 여성이 임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막말을 하는 바람에 당 전체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승리를 민주당 후보에게 헌납했다. 참고로 공화당 내 여성 의원들과 중도파 의원들도 낙태금지법에 반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빈스 맥마흔은 아내의 꿈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대준 엄청난 금액의 정치 자금을 무척 아까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린다 맥마흔이 세 번째 상원 의원 출마 도전에 성공하더라도 제2의 힐러리 클린턴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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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7-2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화당 지지자치고 제대로 된 놈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 ?!

cyrus 2015-07-25 16:56   좋아요 0 | URL
공화당 의원 중에 정말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의원이 많지 않습니다. 공화당 측에서는 린다 맥마흔을 적극적으로 밀어 줄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07-2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시는 분야가 있으세요? 미국프로레슬링까지.....

cyrus 2015-07-25 16:57   좋아요 0 | URL
예전에 프로레슬링에 관한 역사를 다룬 글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어서 레슬링에 종사했던 선수나 관계자 이름 정도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요즘은 레슬링 경기를 잘 보지 않습니다. ^^
 

 

 

 

 

 

 

 

 

 

 

 

폴 고갱은 나이 서른다섯 살까지만 해도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일했다. 증권거래소에 다니면서 저축한 돈으로 경제적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수집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주말 화가’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주식으로 흥한 자는 주식으로 망한다. 주식이 크게 폭락하고 증권거래소가 문을 닫으면서 고갱은 실직자가 되고 만다. 1882년의 주식 폭락은 1929년의 블랙 튜스데이(Black Tuesday)와 1987년 블랙 먼데이(Black Monday)에 비할 만큼 경제사의 암울한 날로 기억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백수 고갱은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이 마흔둘에 남태평양의 타히티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렸다. 가족들과 주변 동료들은 고갱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전에 그림 한 점만 팔렸다는 반 고흐보다는 조금 더 나은 형편이었지만, 고갱의 그림 또한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다. 생전에는 상업적으로도 실패면서 남들이 보기엔 말년에 꼬인 실패한 인생이라고 볼지 모르겠지만, 그는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병마와 고독 속에서 끝까지 붓을 놓지 않는 모습에 연민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반 고흐에게는 ‘광기의 화가’, 고갱에게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들의 삶을 총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중은 이 수식어만 믿고 그들의 그림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결과를 볼 뿐, 우여곡절 많은 삶의 과정을 아는 사람은 적다. 고갱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를 원시의 화가로만 기억하는 것은 고갱의 삶 반쪽만 보는 것과 같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고갱의 진실을 아는 순간, 그동안 미디어가 부추긴 예술가를 향한 맹목적인 열광과 평가가 허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Scene #1  <아방 에 아프레>와 <노아 노아>

 

 

 

 

 

 

 

 

 

 

 

 

 

 

 

 

 

 

 

 

 

 

 

 

 

 

 

 

 

 

고갱은 생전에 글을 많이 남겼다. <아방 에 아프레(Avant et apres, 우리말로는 ‘전과 후’)>는 고갱이 사망한 후에 나왔다. 책 내용은 전반적으로 자서전에 가깝다. 여기에 반 고흐와 함께 살았던 일과 반 고흐가 귀를 자르기 전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고갱은 반 고흐가 면도날로 자신을 위협했다고 증언한다. <노아 노아(Noa Noa)>는 타히티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수기다. ‘노아 노아’는 ‘향기’ 를 의미하는 타히티 어다. 타히티 생활을 뒤로하고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타히티의 풍속과 신화를 소개하는 <마오리의 고대 신앙>과 <노아 노아>를 펴낸다. <노아 노아>는 고갱이 생각하는 원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하지만 이 책에 사실보다는 허구가 많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본 것은 태초의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미 문명의 손아귀에 들어간 식민지 섬의 모습이었다. <노아 노아>에서는 타히티 신화 일부를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 내용 또한 고갱이 조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프랑스 식민지가 된 타히티에서 기독교가 타히티 민간 신앙 자리를 대신했다. 그래서 타히티 신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고갱은 타히티의 원시성을 강조하여 유럽 독자들의 입맛을 맞추려고 일부러 윤색했을 가능성이 있다. <노아 노아>에 나오는 일부 이야기는 피에르 로티의 소설 <로티의 결혼>과 거의 비슷하다. <로티의 결혼>은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연애소설이며 고갱은 이 소설을 읽었다.


 

 

 

 Scene #2  바느질하는 쉬잔

 

 

 

 

폴 고갱 누드 습작또는 바느질하는 쉬잔」 (1880년)

 

 

앞으로 이 그림을 소개할 땐 ‘「누드 습작」 또는 「바느질하는 쉬잔」’ 으로 불러야 한다. 그림 속 모델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고갱은 1881년 인상주의 전시회에 「누드 습작」을 출품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벌거벗은 모델은 고갱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쉬잔이다. 그런데 고갱의 아내 메테는 그림에 푹 빠진 남편에 못마땅했다. 당연히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누드화를 그리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메테가 직업 모델을 부르지 못하게 하자, 고갱은 하녀를 누드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이 성공하자, 메테는 쉬잔을 해고했다.

 

 

 


 Scene #3  친구의 여동생을 사랑했네

 

 

 

 

 

폴 고갱 「마들렌 베르나르」 (1888년)

 

 

고갱은 에밀 베르나르, 샤를 라발, 메이에르 드 한 등과 함께 퐁타방 파를 결성한다. 이들은 퐁타방 지방에 거주하면서 함께 그림 작업을 했다. 에밀 베르나르의 여동생 마들렌은 퐁타방 파의 홍일점이었다. 그녀는 샤를 라발과 약혼한 사이였다. 고갱은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마들렌에 특별한 감정을 가졌다.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고갱은 노골적으로 그의 여동생에게 관심이 있다고 썼으며 심지어 그녀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행히 에밀의 부모의 반대로 고갱과 마들렌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하지 않았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0년)

 

 

고갱은 자신의 얼굴을 기괴한 형태로 변형해서 만든 도자기 병을 마들렌에게 사랑의 선물로 주었지만, 마들렌은 고갱의 선물을 거부했다. 당시 고갱은 그로테스크한 얼굴의 표정이 있는 도자기 병 제작에 열중했다. 마들렌의 눈에는 고갱이 만든 도자기가 예술 작품이 아닌 그냥 괴상망측한 물건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갱의 도자기는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오른쪽 상단에 등장한다.

 

 

 


 Scene #4  가족의 믿음을 저버리다

 

 

 

 

 

폴 고갱 「이브닝 드레스을 입은 메테」 (1884년)

 

 

 

고갱은 아내 메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꼭 파리에서 성공한 화가가 되면 예전처럼 같이 살자고 썼다. 고갱은 메테와 자식들을 아내의 고향이 있는 덴마크에 남겨두고, 아들 클로비스를 데리고 파리에 거주했다. 그러나 고갱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고, 수중에 들어오는 돈만으로 고갱 혼자 아들을 양육하는 것이 무척 버거웠다. 결국, 고갱은 아들을 아내가 있는 덴마크로 돌려보냈다.

 

아내에게 보내는 고갱의 편지를 이중섭의 낭만적인 편지로 생각해선 안 된다.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했고, 닭살 돋는 애정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고갱은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처한 궁핍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내에게 돈을 부쳐 달라고 부탁한다. 경제 형편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아내의 불만을 다그치기 위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낫다고 합리화한다. 한 번은 아내가 가슴에 종양이 생겼다는 소식을 편지로 접하자, 수술을 무조건 받으라고 썼다.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태도에 서글펐을 것이다. 고갱은 편지로나마 아내와 아이들을 항상 생각한다고 썼지만, 몸과 마음이 멀어질수록 예전의 화목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고갱은 화가로서의 성공에 눈이 먼 나머지, 가족의 믿음을 저버리는 태도로 돌변한다. 고갱은 삼촌으로부터 유산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삼촌의 유산을 양분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고갱은 그 돈으로 자신의 새 작업실을 마련하는 데 써버렸다.


 

 

 

 Scene #5  고갱이 만난 여자들

 

고갱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수도 파페에테에 정착했을 때, 티티라는 이름의 여인을 정부로 삼았다. 그러나 고갱은 티티가 완전한 타히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른 섬으로 떠나면서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다. 티티의 아버지는 영국인이었고, 티티는 서양식 생활에 관심이 많은 여자였다. 문명인이 되고 싶은 여자를 고갱은 원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원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처녀였다. 고갱은 외롭다는 핑계로 원주민 여자를 만났다. 그는 열세 살 혹은 열네 살로 추정되는 테하마나와 동거했다. 고갱은 테하마나와의 만남을 타히티의 전통 풍습이라고 둘러대면서 정당화했다.

 

 

 

 

폴 고갱 「자바 여인 안나」 (1893년)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화상 앙부르아즈 볼라르의 소개로 ‘자바 여인 안나’를 만났다. 그러나 안나와의 만남은 고갱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악연이 되었다. 안나와 함께 콩카르노 항구 주변에 산책하다가 동네 건달들과 시비가 붙었다. 고갱은 건달들과 맞서다가 그만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발목 부상은 고갱이 죽을 때까지 낫지 않았다. 고갱이 발목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사이에, 안나는 고갱의 작업실에 있는 귀중품만 훔치고 달아났다.

 

 

 

 

폴 고갱 「테 타마리 노 아투아 : 그리스도의 탄생」 (1896년)

 

 

파리에서의 굴욕적인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 타히티로 돌아왔을 때도 고갱은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할 동반자가 필요했다. 열네 살의 파후라를 만나 부부처럼 생활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비록 첫딸은 태어나고 며칠 만에 죽었지만, 고갱은 출산의 기쁨을 「테 타마리 노 아투아 :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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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23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그림 그리는 분이 달과 6펜스를 읽을때 고갱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기주의의 절정을 달리는 사람이라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저런 횡포와 방종을 합리화해서는 안된다면서..
예술가는 저래도 되는 어떤걸 가지고 있어도 된다는 인식이 너무 불편하다고 열변을 토했었던 적이 있었어요..
한편에서는 예술가는 저런 면 이해해야되는거 아니냐고~ 본인이 예술가면서 저런것을 도덕적으로 매도해버리면 안 되는것 아니냐고~ 반론하고 ㅎㅎ
가치관의 차이이겠지만 글을 읽으면서 드는느낌은 고갱은 그림뿐 아니라 합리화의 천재이기도 하는군요 ㅎㅎ
초기 직업의 영향일까요? ㅎ

cyrus 2015-07-23 21:36   좋아요 0 | URL
고갱은 참 재미있는 화가예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데, 국내에서 고갱은 인기가 없어요. 고갱도 은근히 반 고흐 못지않게 자존심이 세고,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성향이 있어요.

오후즈음 2015-07-2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의 삶을 보니 고흐의 삶이 왜 이렇게 더 슬프게 느껴지는걸까요?

cyrus 2015-07-23 22:12   좋아요 0 | URL
제가 몇 주 전부터 반 고흐와 고갱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까 고갱의 삶도 슬퍼요. 공교롭게도 반 고흐와 헤어지고, 그가 자살한 후부터 고갱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자신을 따랐던 동료 화가들은 고갱의 곁을 떠났고, 고갱은 죽을 때까지 매독에 시달렸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둘째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자살을 시도했어요. 고갱은 말년이 좋지 않았어요.

syo 2015-07-23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그림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갱의 그림은 그렇게 색채가 강렬한데도 어쩐지 슬퍼보여요. 슬픈 반 고흐가 무얼 그려도 자기 안의 것이 뛰쳐나와서 슬프다면, 고갱은 무얼 그려도 자기가 원하는 자기 밖의 것을 그릴 뿐 결국 가 닿지 못한다는 느낌이라 슬프고 막 그렇더라구요.

cyrus 2015-07-24 18:49   좋아요 0 | URL
고갱의 그림 중에 슬프게 느껴졌던 것이 <황색 그리스도>였습니다. 온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단순하게 그린 예수인데도 표정만으로도 슬픈 감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그림을 좋아합니다.

꽃핑키 2015-07-2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 보니 갑자기 <달과 6펜스> 다시 읽고 싶어져요!! ㅋㅋㅋ

cyrus 2015-07-24 18:49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안 읽어봤어요. ㅎㅎㅎ
 
사긴 사야 하는데...

 

 

 

 

 

 

붉은돼지님, 책의 두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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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7-22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야 뭐 책 두께에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어쩌면 크고 두꺼운 놈을 좋아하는지도 모르죠~~ 호호호
중세는 992쪽인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1401쪽(54천원), 율리시스 1324쪽(45천원, 품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1236쪽(38천원), 나니아연대기 1080쪽(32천원), 예루살렘전기 964쪽(38천원), 빈서판 901쪽(40천원) 등등 두꺼운 놈들도 꽤 되는듯.....

저는 다만 가격이 왜 8만원 씩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두께만으로 비교할 때는 4~5만원 정도가 적당할 듯한데요..
가격에 대한 불만이나 문의도 많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언급은 없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2 14:56   좋아요 1 | URL
가격 갑질하는 대표적 출판사가 새물결이죠. 가끔 욕나옴...

cyrus 2015-07-22 21:59   좋아요 2 | URL
이렇게 비싼 가격으로 책정해놓고, 안 팔린다고 품절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두 권 세트 정가가 99000원이었어요. 총 페이지 수가 1400쪽 넘습니다. 어문학사의 제임스 조이스 전집도 비싸죠. 정가 13만 원, 전자책은 78000원입니다. 곰발님 말씀처럼 새물결에서 나오는 좋은 책은 가격이 좀 비싸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그렇고요.

레삭매냐 2015-07-22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네 권 세트해서 8만원이라고 착각했었네요.

cyrus 2015-07-22 22:00   좋아요 1 | URL
네 권 세트 8만 원이라면 사볼만 합니다. ^^

페크pek0501 2015-07-2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격을 떠나서 두꺼운 책은 부담스럽더라고요. 분량 많을 땐 상,하 또는 상,중,하로 나눠
출판한 책이 좋더라고요. 첫 권을 읽고 나서 그 다음 권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도 할 수 있고 말이에요. 또 책을 들었을 때 무거우면 읽을 때 불편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중요한 것 또 하나, 상중하로 읽고 세 권을 읽은 것으로 독서목록노트에 기록할 수 있는 장점이 있거든요. 이 세 권짜리 분량의 책을 한 권 읽은 것으로 기록하는 건 무척이나 억울한 노릇이에요. 한 권 추가될 때마다 얼마나 쾌감이 있는데요... (유치했나요? )ㅋㅋ

cyrus 2015-07-22 22: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다가 그만둔 이유가 분량이 너무 두꺼워서 편안하게 읽을 수가 없어요. 안 그래도 더운데 두꺼운 책을 읽으니까 짜증만 늘어나요 ㅎㅎㅎ

[그장소] 2015-07-22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살며시, (c~ 손! 하고 )돈 없으면 책도 못사는 거지같은 세상~! 하고 물을 원샷 했더랬어요!
솔직히, 저게..옛날 목침 (머리받침해 주무시던 할아버지 꺼)용이지...사실..놓고 봐야 겠네요.
들고 다닐 생각은 하지말고..^^ 마포 김사장님이라면, 벽돌 보내드리니, 집짓는데 보태라고 좋아 웃을것이 분명한...그런 정도의 책..인것입니다..두께는 좋습니다..만, 어찌 가격이 7~8만원대인 것입니까? 금테 둘렀답니까? ^^:

cyrus 2015-07-22 22:05   좋아요 0 | URL
과연 도서관은 저 책을 구입할까요? 책값 때문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하기 망설여집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