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서머싯 몸은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계량할 수없는 불가해한 존재인가를 그려내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의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과학적 객관성에 입각해 인간의 정신을 해부하는 데 전 생애를 보낸 그였지만, 몸은 자서전에서 “나는 여전히 인간을 모르겠다”고 썼다.

 

인간을 이해하는 공부는 그만큼 어렵다.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은 모든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비합리적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경제학 이론의 출발점이다. 남보다 더 잘살아 보겠다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은 경제학을 지탱해주는 두 개의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를 통해 대부분 이론이 실제 현실과는 많은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들이 밝혀졌으며 이와 관련 최근 들어서는 완전하게 합리적일 때보다는 약간은 비합리적일 때가 더욱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논리가 제기되었다.

 

우리는 기상예보가 틀리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지만, 기상통보관은 적어도 현재 기상상태에 대해서는 80%의 정확도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 반면 경제학자들은 경기예측은 차치하고 현재의 경제 상태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한다. 새해가 다가오면 각종 경제 관련 연구소들이 앞다투어 경제전망치를 내놓는다. 물론 예측의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전망치와 실적치가 몇 배씩 차이가 벌어진다면 아무래도 전망치들이 틀렸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 선택을 잘못하면 현세대에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도 고통이 전달된다. 잘못된 정책의 선택은 두고두고 말썽이 된다. 그래서 장하준은 경제학이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1]

 

경제학자들 가운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극단적인 예측과 독설로 주위의 관심을 끈다. 반대로 밋밋하거나 방향성 없는 예측을 하는 경제학자는 인기가 없다. 기상예측은 틀리면 난리지만 경제예측은 맞으면 오히려 난리다. 우리 사회가 경제예측의 오류에 더 관대한 덕분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틀려도 별문제 없이 살아간다. 여기서 경제예측을 실패한 경제학자들 자체를 비판할 의도는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데도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경제학자들이 문제다. 한 가지 슬픈 것은 잘못된 예측을 되풀이하는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각종 미디어에 얼굴을 내밀며 또 다른 엉터리 예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경제이론을 근거로 경제를 예측한다. 거듭된 오판에도 여전히 자신의 경제학이 과학이라며 떠들고 다닌다. 이들은 어쩌다 우연히 홀인원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점점 더 알 수 없는 블랙홀로 빠져든다.

 

경제이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가정과 추상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론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문제는 이론과 현실 간의 간격 자체가 아니라 이론의 현실 설명력이다. 과거에 잘 맞던 이론이 지금은 아닐 수 있고, 특정 시대에서 잘 통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은 늘 변하며 그것을 느낀 다음에야 기존 이론의 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학의 잣대로 문제에 접근할 때 반드시 다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다양성을 고려하면 경제학이라는 일반적 원칙이 적용되더라도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전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제학은 ‘자기충족의 학문’이 아니다. 경제학은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 다양성 속의 혼성(Hybrid)을 축복하는 지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장하준은 서로 다른 학파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을 '이종 교배'라고 표현했다) 재벌로부터 기금을 두둑이 받아 설립한 자유경제원은 좌익을 ‘시장경제의 적’으로 설정하여 한국사회를 국정 파탄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장이냐 분배냐, 시장이냐 정부냐 등의 기존 좌우 담론은 모두 철 지난 유행가에 불과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여전히 이념이란 믿음은 시대착오적이다. 기득권 세력이 대항세력을 좌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대항세력이 기득권 세력을 극우 반동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똑같이 무의미한 도발이요 치우친 시각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고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존재다. 기존 이론을 수정하고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려는 경제학자들의 꾸준한 노력 없이 현실 경제가 발전할 수는 없다. 충분한 해답은 아니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경제이론이다.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이 손잡아 이익집단 간의 상충한 이해관계를 정당이나 개인의 권력 확장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학의 지적 토양을 피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여 국가경쟁력을 약화하고,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의 수준이 저하된다. 이러한 과대망상증 경제 선동가 · 정치꾼들 때문에 중요한 경제문제들이 정치적 이슈의 홍수 속에 잠겨 정책 시행의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경제 선동가를 비판하지 못하고 정치꾼들을 계속 선출해 준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래, 다 좋은 얘기 같기는 한데,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는 말이야?”[2]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경제학이 전문적 권위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학자들은 비아냥거리면서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에 점점 더 무관심해졌다. 예전에는 위대한 한 개인의 노력이 그 시대 사회개혁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한 경제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현상에 대한 기본 지식은 이 시대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우리 개인은 잘해야 ‘제한적 합리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를 공부할 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는 게 좋다. 토론과 비판은 기본이다. 그래야 엉터리 경제학자나 ‘블랙 스완(black swan)‘을 만나더라도 덜 충격 받는다.

 

 

 

 

[1]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25쪽

[2] 같은 책, 440쪽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맥(漂麥) 2017-01-1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경련·자유경제원이 좀 그랬지요. 우측으로 너무 함몰된... 전 이 책이 상당히 균형(?)잡힌 서술이었다고 생각한답니다...^^

cyrus 2017-01-16 00:13   좋아요 0 | URL
자유경제원은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학파를 적 또는 무용한 것으로 설정하여 까내립니다. 자유경제원 소속 사람들의 페북 계정을 봤는데, 지적 우월감에 빠져 있어요.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상대하고 싶지 않게 만듭니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이 책에 문제점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

2017-01-16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6 00:15   좋아요 1 | URL
어제(15일)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리뷰 이벤트 응모 마감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이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썼습니다. ^^;;

yureka01 2017-01-16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학자인지 경제이론중에 경제이론의 가정부터가 틀렸다고 지적하더군요..인간은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경제활동을 한다고 전제 했던 기존의 입장과 달리,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경제활동도 자주 하고 뻔한 오류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얼추 이해 되더군요..대구 경북지역에 조희팔의 사기에 4조씩이나 떨려서 당하는거 보면요....경제적 이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인데도 말이죠. 과욕과 탐욕이 이성과 논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한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7-01-16 15:04   좋아요 0 | URL
인간은 오래 살아봤자 죽으면 모든 활동이 정지되고, 죽을 때까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실수를 하고 생각이 틀립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당연한 약점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북프리쿠키 2017-01-16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경제학 전공자로서 아직 21세기자본도 읽기 버거워 이러고 있네요
싸이러스님의 다양한 독서에
박수를 보냅니다!!

cyrus 2017-01-16 15:05   좋아요 1 | URL
저는 피케티의 책을 안 읽어봤습니다. 경제학 원론조차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원론 그 이상의 내용의 경제학 책은 일부러 피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꼬마요정 2017-01-1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계효용의 법칙도 사실 불완전하죠. 사람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니까요. 이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7-01-16 15:07   좋아요 0 | URL
패러다임이 바꾸려면 일단 자유경제원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부터 싹 바뀌어야 합니다. 아니면 자유경제원을 해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1-16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가 생각하는 걸 나도 생각한다고
그가 생각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은 최고의 이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는 균형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쉬 교수가 생각나네요..

그 분의 업적보다도 정신분열증을 극복해내는 의지가 존경스러워요..

cyrus 2017-01-16 15:09   좋아요 1 | URL
존 내쉬의 명언이 좋군요. 박근혜를 좋아하는 자유경제원 소속 사람들은 자신들만 옳게 생각한다고 믿지,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간단하게 종북주의자로 몰아세우죠.
 

 

 

 

※ 글 제목에 대한 주석 : 일본 애니메이션 '도쿄 구울'을 패러디했음

 

 

 

 

 

 

 

 

 

 

 

 

 

 

 

 

 

 

 

《러브크래프트 전집 4》는 전집 중 유일한 공동 번역본이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1, 2, 3, 5, 6권은 정진영(필명 정탄) 씨가 단독으로 번역했고, 정진영 씨와 함께 전집 4권을 번역한 분은 러브크래프트 관련 웹사이트인 ‘위어드 테일스(Weird Tales)’ 공동 운영자인 류지선 씨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출간의 서막을 알린 1권은 2009년에 첫 선을 보였다. 이미 5년 전에 정진영 씨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한 편 번역한 적이 있다. 그 작품이 바로 『사냥개(The Hound)』다. 이 작품은 《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에 수록되었고, 정진영 씨의 번역이 있는 《러브크래프트 전집 4》에 수록되었다.

 

그런데 두 권의 책에 있는 『사냥개』를 같이 읽어보면, 문체가 확연히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원문 1

By what malign fatality were we lured to that terrible Holland churchyard? I think it was the dark rumor and legendry, the tales of one buried for five centuries, who had himself been a ghoul in his time and had stolen a potent thing from a mighty sepulchre.

 

* 《러브크래프트 전집 4》 282쪽

대체 어떤 사특한 운명이 우리를 그 소름끼치는 네덜란드 교회 묘지로 꾀어냈을까? 그 시작은 음산하게 떠돌던 풍문과 전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평생을 도굴꾼으로 살면서 한 거대한 분묘에서 중요한 물건을 훔쳐냈다는, 5세기경에 매장된 어느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 《세계 호러 걸작선》 228쪽

그 무슨 사악한 숙명이었기에, 우리는 그 오싹한 폴란드의 교회 묘지로 이끌렸던가? 그것은 오백 년 전 그 자신이 구울로서 권력자의 무덤에서 중요한 물건을 훔쳤다는 어느 인물의 이야기와 관련된 음산한 풍문이며 전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 원문 2

I remember how we delved in the ghoul's grave with our spades, and how we thrilled at the picture of ourselves, the grave, the pale watching moon, the horrible shadows, the grotesque trees, the titanic bats, the antique church, the dancing death-fires, the sickening odors, the gently moaning night-wind, and the strange, half-heard directionless baying of whose objective existence we could scarcely be sure.

 

* 《러브크래프트 전집 4》 283쪽

삽으로 그 도굴꾼의 묘지를 팠던 모습과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우리가 얼마나 전율적인 흥분을 느꼈는지 나는 기억한다. 그 무덤, 창백한 목격자인 달, 으스스한 그림자, 괴상망측한 나무들, 거대한 박쥐 떼, 고색창연한 교회당, 춤추는 도깨비불, 그 병적인 악취, 길게 울음 울던 밤바람, 그리고 어디선가에서 들려오곤 있으나 존재한다고 객관적으로 확신할 수도 없었던 음산한 개 짖는 소리.

 

* 《세계 호러 걸작선》 229쪽

우리가 어떻게 그 구울의 무덤을 삽으로 파들어 갔는지, 우리 자신과 무덤의 형체에, 창백히 지켜보는 달과 섬뜩한 그림자들에, 괴괴한 나무와 거대한 박쥐 떼에, 낡은 교회와 춤추는 도깨비불에, 메스꺼운 악취와 나지막이 탄식하는 밤바람에, 그리고 어딘지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기이하고 아득한 정체불명의 짖음에 우리가 얼마나 전율했는지, 나는 기억한다.

 

 

 

‘Holland’는 네덜란드의 미국식 표기다. 《세계 호러 걸작선》를 번역한 정진영 씨는 ‘폴란드’로 잘못 썼다. 구울(ghoul)은 묘지를 파내어 시체를 먹는 괴물이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4》의 『사냥개』를 정진영 씨가 번역한 건지, 아니면 류지선 씨가 번역했는지 알 수 없다. 누가 했든 간에 ‘ghoul’은 정식 명칭이기 때문에 ‘도굴꾼’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고딕 소설에 관심 많고, 오래전부터 러브크래프트 전집 번역 작업에 착수한 정진영 씨가 구울을 모를 리가 없다. 특히 구울은 『사냥개』 이외에도 러브크래프트의 다른 작품에서도 언급되는데, 『픽맨의 모델』에서는 비중 있게 등장한다. 『픽맨의 모델』은 《러브크래프트 전집 1》에 수록되었으며 물론 이 책의 역자는 정진영 씨다. 그는 러브크래프트 전집보다 먼저 나온 《세계 호러 걸작선》에서 ‘구울’이라고 썼다. 자신이 이미 번역한 적이 있는 작품을 새로운 문체로 재번역한다고 해도 기억력이 좋지 않는 이상 ‘구울’을 ‘도굴꾼’으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전집 4》의 『사냥개』를 번역한 사람은 류지선 씨일 가능성이 높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1-15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5 22:02   좋아요 0 | URL
네. 리뷰 작성 부담 갖지 마시고 천천히 읽으셔도 됩니다. ^^

yureka01 2017-01-1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라인 게임에 보면 구울,, 몹으로 나오죠..

cyrus 2017-01-15 22:0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게임을 하면서 구울을 처음 알았어요. ^^

transient-guest 2017-01-2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번역문제는 정말 짜증나네요 편집간계에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을텐데 말이죠

cyrus 2017-01-20 15:32   좋아요 0 | URL
번역가들도 가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제일 나쁜 건 독자나 다른 번역가들이 오역을 지적했는데도 이를 수정하지 않는 뻔뻔한 출판사들의 태도입니다.

hskim890 2021-02-0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1판 1쇄 3권 읽는데198쪽 윗문단에서 가스트의 얼굴은 코와 입 따위가 없음에도라고 나옵니다. 근데 가스트 이미지로 볼라고 위키 보니까 입이 나올 부분이 forehead고 따위는 important particular더군요. 이걸 그냥 따위라고 번역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1, 2권도 검색해보니까 아닌 부분도 몇번 봤고요.

hskim890 2021-02-0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아식 건축이라고 자주 나오는데 검색하니까 그루지야하곤 무관하게 영국왕 조지 양식인데 왜 조지아로 되는지도 모르겠고 Arcturus를 아루크투루스라고 할 때는 일본어판 중역본인가 의심도 들었고요. 첫판 나올때 사서 이제야 읽을 엄두를 내서 보는 데 도대체 얼마나 왜곡이 있을지 생각하니 진짜 짜증납니다.

hskim890 2021-02-0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hose face is so curiously human despite the absence of a nose, a forehead, and other important particulars

hskim890 2021-02-0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 원전을 전집으로 읽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안의 크리처에 대한 묘사를 읽고자 하는 것도 있는데 최소한 그 부분만은 신경써서 번역해 주었으면 합니다. 위에 한 문장만 보더라도 번역자가 원문을 얼마나 뭉개서 번역했을까 싶어 불안하네요.

cyrus 2021-02-12 12:01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오역이 많군요. 필로소픽 출판사에서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이 쓴 러브크래프트 평전이 나온다고 해요. 그래서 오랜만에 러브르래프트 전집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hskim890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순탄치 않은 독서가 될 것 같아요. ^^;;
 

 

 

 

 

 

 

 

 

 

 

 

 

 

 

 

 

 

파블로 네루다의 처녀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제목을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인생이란 많은 사랑의 시와 오직 하나의 큰 절망의 노래로 표현할 수 있다. 『절망의 노래』는 절망 속에 빠져 침잠하지 않고 무거운 인생 위로 가볍게 띄워 올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천근 무게의 절망을 띄워 올리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강력한 희망의 힘을 발휘해야 할까. 네루다는 인간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우리가 녹아들고 절망한 / 희망과 힘의 미친 결합’이라고 썼다. 육체적인 큰 고통에 비하면 사소하다 할 만한 것들, 이를테면 사회생활에서 빚어지는 온갖 오해와 갈등들, 그리고 그것들이 자기 비하의 감정과 뒤범벅이 되었을 때 삶은 내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정신적인 건강함을 유지하며 희망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망은 잠깐일 뿐이다.

 

 

 

 

 

 

《시, 희망을 노래하다》는 삶의 고통이나 위기를 늘 행복으로 전환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찾아온 편지처럼 시인들의 시는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일상과 평범함 속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 같은 것을 준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들의 누추한 삶 또한 삶의 아름다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시를 읽는 우리 독자들의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이태수 『환한 아침』, 14쪽)

 

 

삶이 내던져진 채로 바쁘게 살다 보면, 살아가는 나날의 의미 같은 것을 물어볼 틈이 없다.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없다고 마냥 엄살만 떨 일도 아니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하루를 맞아서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일 수는 없다. 무릇 어떤 것에나 비교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어떤 삶이 더 낫고 잘 사는 삶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시인에게 삶의 아름다움이란 예술에 있지 않다. 사소한 일상, 익숙한 자연 등 흔한 것들에서 건져 올린 그 무엇이다. 시인은 세상의 탁함에도 찌푸리지만은 않는다. 맑은 언어로 걸러내서 희망의 증거를 찾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제자리에서 맞이한 환한 아침’이다. 시인이 맞은 아침은 세상과 쉽게 통정(通情)하지 않겠다는 고고한 결의로 읽힌다.

 

 

모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퇴근했다

저녁밥은 산나물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먹었다

뉴스 보며 흥분하고 연속극 보면서 또 웃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건만 보람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하면서도

남들처럼 세상을 탓해보지만

늘 그 자리에서 맴돌다 만다

 

세상살이 역시 별 것 아니라고

남들도 다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살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생각났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곳에서

별 것처럼 살려고 바둥거리니 너무 초라해진다

한심한 생각에 눈감고 잠 청하려니

별의별 생각들 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무탈한 모습들 보니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워

행복의 미소가 눈언저리까지 퍼진다

 

(공영구 『오늘 하루』, 122쪽)

 

 

이 시에서 언급된 행복은 그리 요란하지 않다. 가족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사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이다. 새해에 의례적으로 나누던 덕담은 ‘복 많이 받으세요’다. ‘복’이라는 말에는 재물 복, 자식 복, 부인 복, 남편 복 등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제물 복이다. 물질적 풍요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재물은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의 벌이로 자신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상대적 상실감은 매우 깊어진다. 돈이나 명예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행복이나 쾌락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들은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따라온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덜 가지고 덜 욕망해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며 내일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사람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생의 위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생의 고통을 당했더라도 내게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언제든지 새롭게 일어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절망한 순간 이 삶의 끝에 있는 희망을 생각해보자. 견뎌야 할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진정한 복이다.

 

 

 

※ 정경진의 『꽃자리 한때처럼』 9행(34쪽)에 ‘달아나는 베꼽’이라는 표현이 있다. ‘배꼽’의 오자로 보인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7-01-14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오늘을 살게 하니까요...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cyrus 2017-01-14 16:06   좋아요 1 | URL
희망이 무조건 내 자신의 마음과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깁니다. 그래서 희망을 쉽게 포기해선 안 되고, 그 희망을 꿈꾸면서 살아야 합니다. ^^

프레이야 2017-01-1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 시 내용이 와닿네요. 새해 들어오늘따라. 새해 좋은 희망의 기운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

cyrus 2017-01-14 16:08   좋아요 0 | URL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라딘 서재에서 알고 지내는 분들과 일면이 없지만, 다들 모두 행복하고, 잘 살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

dellarosa 2017-01-14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의별 생각들...... 다들 그런것 같아서 힘이됩니다 ^^;

cyrus 2017-01-14 16:11   좋아요 0 | URL
저도 별의별 생각 많습니다. 결혼은 해야 되나, 집은 구할 수 있을까 등 고민이 많습니다. 온라인 공간 속 사람들은 늘 좋은 것만 보여주고, 늘 좋은 것만 보고 싶어 합니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나름 고민이 있습니다. 몇 몇 분들의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는 살아가는 데 힘이 됩니다. ^^

우민(愚民)ngs01 2017-01-14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나라냐! 라는 혼란의 시대에 희망이 없다면 살아갈 힘조차 없겠지요
그래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아자 아자
대한민국 화이팅! !

cyrus 2017-01-14 16:15   좋아요 1 | URL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걱정하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세상에 대한 희망을 염원해봅니다.

2017-01-15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몸나무의 추억 민음의 시 61
박진형 지음 / 민음사 / 1994년 6월
평점 :
품절


 

 

 

 

 

 

 

박진형 시인은 현재 대구시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서출판 만인사 대표이기도 하다. 만인사는 유병찬님(a.k.a yureka01)의 《소리 없는 빛의 노래》를 펴낸 곳이다. 박진형 시인은 198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1994년 첫 시집 《몸나무의 추억》을 발간했다. 시집을 펴낸 출판사는 민음사다. ‘몸나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집의 제목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봄나무’로 착각할 수 있다.

 

우리는 가지가 꺾였거나 말라 죽은 나무를 보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무생물’로 규정한다. 그렇지만 죽었다고 생각한 나무의 생명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나무는 여전히 버섯이나 박테리아와 반응하면서 분해를 통해 흙으로 돌아가는 나름의 길을 계속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 순환에 기여하는 나무의 모습은 생명의 힘을, 그 궁극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일, 절창 끝에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기억하는 일. 그런 작업이 시인의 몫이다.

 

 

 

나는 꽃 피는 몸나무이다

한 번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의 추억이다

 

새로 어린 나무를 옮겨 심은 뒤

물을 뿌리며 나도 꽃 피던 몸나무인가

딱딱한 껍질을 초록 이빨로 깨물어

연한 기쁨의 상처를 만드는

나무는 즐거울거야. 내 몸도 덩달아

 

잎 밀어낼거야. 수돗물에서

외눈박이 도깨비들이 투당탕

튀어나온다, 없는 손마다 페놀방망이

수은방망이 납방망이 카드뮴방망이를 들고

닫힌 집들의 창자를 요란스레

두들기도 다니는

 

몸이 가렵다, 부스럼딱지가 숭숭 돋고

손톱이 할퀴고 간 꽃 진 자리마다

희디흰 거품 피가 묻어난다

마음의 문고리를 흔드는

한때 꽃 피던 몸나무의 시절은

육각수(六角水)의 집인가

 

무지막지한 시간에 시간(屍姦)당한

쿵쾅 도깨비가 뛰어다니는

봄에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는

꿈꾸는 힘으로 버팅긴다

 

(『몸나무의 추억』 28~29쪽)

 

 

 

고통과 절망 뒤에는 회복력과 희망이 생기는 법. 나무의 생명력은 인간의 손길보다 훨씬 빠르다. 몸나무의 껍질에 생긴 상처에는 희디흰 수액이 아닌 푸르른 생명력이 흘러나온다. 상처에 새살이 돋듯 ‘기쁨의 상처’는 싱그러운 꽃으로 덮인다. 푸릇푸릇한 잎새가 자라는 데 방해하는 페놀, 수은, 납 등은 나무의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페놀 방망이’는 대구 · 경북 지역민들에게 물 오염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의미한다. 오염된 수돗물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물이다. 죽은 물을 흡수해 독소가 축적된 몸나무는 생명력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많은 군중을 넘어 가장 바깥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자아, 즉 나무를 응시했던 시인은 절망을 느끼되 굴복하지 않는다. 몸나무는 꽃을 피웠던 추억을 되살려 생의 맥박이 끊어지지 않도록 버틴다. 고통의 시간이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을 촉발한다.

 

시집의 추천사를 쓴 이하석 시인은 박진형 시인을 가리켜 ‘식물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소개했다. 박진형 시인의 식물적 상상력은 지나치게 관념적이지 않다. 식물적 상상력은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풍요롭게 하는 회복제이다. 시인은 상상력으로서의 생명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무와 같은 친숙한 자연의 소재들을 선택했다. 『돌배나무는 불구가 아니다』에서 돌배나무를 친친 감싼 철사는 나무의 생명력을 서서히 파괴한다. 돌배나무를 기르는 김씨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숨쉬기 어려운 통증이 엄습한다. 김 씨가 체험하는 식물적 상상력은 파괴적인 충동이 아니다. 김 씨는 자연마저 파괴해버리는 폭력이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것들임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기르는

돌배나무는 베란다에 혼자 나가

가을비에 흠씬 두들겨 맞았다

철사에 온몸에 감긴 채

잎과 꽃을 지우고

거짓말처럼 탐스런 돌배 두어 개

허공에 매달아 두었다

 

자라지 않는 몸을 하고

행상에서 돌아온 김씨는

날마다 우우 고함을 지른다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어싶어싶어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발음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때로 생각난 듯

철사에 친친 몸이 감긴

나무에게 희망의 소다수를 뿌리며

 

나는 불구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가난에 막무가내로 결박당한

돌배나무일 뿐이야, 하고

김씨는 중얼거린다

 

(『돌배나무는 불구가 아니다』 32~33쪽)

 

 

 

비록 입 안에서만 겉도는 혼잣말이 되었지만, 김 씨는 폭력과 억압으로 인해 인간성이 결박당한 시대 속에서 희망을 외치려고 한다. 인간성 회복을 호소하는 김씨의 목소리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정신을 생각하겠다는 결연한 자세이다. [1]

 

무성한 잎새와 과실을 달고도 끄떡없었던 나무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가을에 접어들면 허룩한 잎새는 무거운 듯 떨군다. 그렇지만 그 뻣뻣해진 나무속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초록의 추억만큼은 남아 있다. 그 초록의 추억은 분명하다. 그것은 생명력이다. 그리고 재생의 꿈을 간직한 희망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무의 몸을 투시한 박진형 시인은 살아있는 존재가 느끼는 아름다움 슬픔까지 환히 들여다보는 명징한 시를 썼다. 섬뜩한 한강의 식물적 상상력과 차원이 다른 따뜻한 박진형의 식물적 상상력을 느껴보시라. 시선집으로 나온 《길은 헐렁한 자루 같다》(만인사, 2014년)에 《몸나무의 추억》에 모아놓은 시가 있다.

 

 

 

[1]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있는 구절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1-12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2 17:27   좋아요 1 | URL
제가 말했던 시집이 이 책입니다.. ㅎㅎㅎ

저야 영광입니다. 시인의 처녀시집에 친필 사인을 받고 싶어요. ^^

2017-01-12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2 17:53   좋아요 1 | URL
만인사에서 펴낸 시집도 같이 챙겨야겠습니다. ^^

yureka01 2017-01-12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부분 대구지역의 시인들이죠...아마 시리즈로 50권이 넘은 걸로 압니다.^^..50권 시집이라면 엄청 많은 분량이라서 저도 몇권 밖에 없어요.ㅎㅎㅎ 다 모으기는 것은 문학지망생정도면 ..봐야할지도요 ^^ ㅋ

cyrus 2017-01-12 18:01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찾는 서부도서관에 ‘향토문학관‘이 있어요. 대구 경북 출신 문인들의 책이 많습니다. 구하기 힘든 옛날 책도 있어요. ^^

낭만인생 2017-01-13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어찌 이리 좋습니다. 혹시 오십 넘으신 건 아니죠?

cyrus 2017-01-13 09:29   좋아요 0 | URL
올해 서른입니다. 제 글보다는 시가 더 좋습니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후대 공포문학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이다. 47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갔으며 은둔적인 생활을 하면서 정신이상자로 매도되기도 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 조숙했다. 그의 독서 벽은 독특한 암흑 신화, 즉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의 초석을 세우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오거스트 덜레스가 완성한 크툴루 신화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격상되었다.

 

크툴루 신화의 성공에 힘입어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았지만, 최고의 찬사를 너무 많이 받은 탓에 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묻히는 경우가 있다. 러브크래트프의 소설과 크툴루 신화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러브크래프트가 문제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아도 그의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인종차별주의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 그 집에 있는 그림

(The Picture in the House, 《러브크래프트 전집 1》 38쪽)

 

“생각할수록 그림들이 정말 희한해. 앞쪽에 있는 이 그림을 좀 보게. 이렇게 큰 이파리를 늘어뜨린 나무를 본 적 있나? 그리고 이 사람들, 흑인일 리가 없어. 내 생각에는 아프리카에 살긴 해도 아메리카 인디언과 비슷한 부족일 것 같네. 이쪽에 원숭이처럼 생긴 사람도 있잖아. 반은 원숭이고 반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어.”

 

원문 : "Queer haow picters kin set a body thinkin'. Take this un here near the front. Hey yew ever seed trees like that, with big leaves a-floppin' over an' daown? And them men—them can't be niggers—they dew beat all. Kinder like Injuns, I guess, even ef they be in Afriky. Some o' these here critters looks like monkeys, or half monkeys an' half men, but I never heerd o' nothing like this un."

 

 

19세기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에 사는 토착 원주민들 또는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을 ‘과학’이라는 경지에 올려놓는 억지를 부렸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약육강식 이론은 동물의 세계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 설명하는 자연 불변의 법칙이며 숙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야만스러운 짐승’으로 여겼고, 그들을 처참하게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유럽인들은 강한 힘을 가진 자신들이 약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불변의 자연법칙이며 숙명이라고 전 세계 사람들을 세뇌해왔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의 그늘 속에 살았던 러브크래프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늘 서재에서만 틀어박혀 지낸 러브크래프트에게 아프리카 대륙은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더 나아가 인간을 위협하는 야만인들이 사는 무시무시한 세계였을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옮긴 원어는 ‘Injuns’이다. 이 영단어는 상당히 안 좋은 의미가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하할 때 쓰는 속어다.

 

 

 

* 벽 속의 쥐 (The Rats in the Walls, 《러브크래프트 전집 1》 113쪽)

 

 

역자 정진영 씨는 원문의 ‘Nigger Man’‘고양이 깜씨’로 번역했다. 그리고 이 단어에 대한 주석을 달았고, ‘러브크래프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보는 단적인 예’로 설명했다. 과거에 흑인 차별이 심했을 때, 백인들은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Nigger’를 많이 썼다. 오늘날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간 평생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난받는다.

 

 

 

 

 

 

 

 

 

 

 

 

 

 

 

 

 

 

 

황금가지 번역본보다 먼저 러브크래프트 작품들을 소개한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공포의 보수》에 『벽 속의 쥐』가 수록되어 있는데, 《공포의 보수》의 역자는 주인공 델라포어의 고양이 이름을 ‘네로’라고 썼다. 《공포의 보수》 113쪽에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동서문화서 번역본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한 것이다. 1970년대에 박혜령이 부른 동요로 널리 알려진 ‘검은 고양이 네로’와 연관성이 있다. ‘검은 고양이 네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이 노래를 번안해서 불렀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번역한 일본인이 흑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검은 고양이 이름 때문에 일부러 ‘네로’라고 썼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어 번역본을 참고한 《공포의 보수》의 역자는 ‘네로’가 워낙 우리나라에도 친숙한 이름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긴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공포의 보수》 114쪽에는 고양이 이름을 ‘깜돌이’라고 썼다. 136쪽에는 다시 ‘네로’로 썼다. 역자 한 사람이 쓴 문장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래서 동서문화사 번역본이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가 있다.

 

 

 

* 크툴루의 부름 (The Call of Cthulhu,《러브크래프트 전집 1》 148~149쪽)

 

 

웹 교수는 48년 전에 고대 비문 발견에는 실패했지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탐사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린란드 서부 해안의 고원 지대에서 쇠락한 에스키모 부족을 만났다. 그들의 종교는 악마를 숭배하는 기묘한 형태의 이교로서 무엇보다 극도로 잔인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웹 교수는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다른 에스키모 부족들은 그 종교에 대해 거의 몰랐고 설렁 거의 아는 이가 있다고 해도 몸서리를 치며 입에 올리기 꺼려했다.

 

 

 

* 북극성 (Polaris, 《러브크래프트 전집 3》 15쪽)

 

 

이누토스는 땅딸막한 황색의 흉악한 악마로서 5년 전에 미지의 서쪽에서 나타나, 우리 왕국의 국경지대를 유린했고 결국 도시들을 포위했다. (중략) 그 땅딸막한 종족들은 전투력이 막강했다. 키가 크고 눈이 회색인 우리 로마인들이 명예를 존중하여 무자비한 정복을 자제해 온 반면,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가 묘사한 이방 민족이나 혼혈 민족은 원주민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흉악한 존재 또는 악마숭배론자들이다. 이누토스(Inutos)는 에스키모(Eskimo)로 잘 알려진 이누이트(Innuit)를 모델로 한 가상 종족이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을 의미하고, 이누이트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전자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인데, 북극 원주민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이누이트를 악마를 숭배하고, ‘인간’의 모습과 거리가 먼 무자비한 종족으로 묘사했다. 특히 『북극성』에서 ‘키가 크고 눈이 회색’인 로마인과 ‘땅딸막한 종족’인 이누토스를 비교하는 묘사에서 백인우월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 고 아서 저민과 그 가족에 관한 사실

(Facts Concerning the Late Arthur Jermyn and His Family, 《러브크래프트 전집 4》 157쪽)

 

 

웨이드 경은 가문에 전해지는 불안증 면에서도 유별났다 .아프리카로 다시 여행을 떠났을 때, 기니 출신의 볼썽사나운 흑인 여자(원문: loathsome black woman from Guinea) 외에는 누구도 자신의 어린 아들 곁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작년에 브렉시트 찬성론자이자 친 트럼프 인사로 알려진 나이절 패러지 영국독립당(영국의 극우 정당) 전 대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역겨운 생물체(loathsome creature)’라고 심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loathsome’은 ‘혐오스러운’이라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 레드 훅의 공포 (The Horror at Red Hook,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72쪽)

 

체구가 땅딸막하고 전매특허처럼 눈이 째진 이들 무리는 야릇한 미제 옷을 걸쳐 입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청 인근의 부랑자와 뜨내기 폭력배들 사이에서 무수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레드 훅의 공포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78쪽)

 

경찰이 현장을 급습하는 동안, 눈이 째진 동양인들(원문: squinting Orientals)이 문마다 몰려들어 소극적으로 저항했을 뿐이다.

 

 

* 레드 훅의 공포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91쪽)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공포의 전율에 맞춰 춤을 추고(원문: Apes danced in Asia to those horrors), 무너져가는 벽돌집마다 숨어든 수상한 자들 사이에 암적인 요소들이 둥지를 틀고 퍼져 나가고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전 작품과 그가 남긴 수많은 분량의 편지를 연구한 인도계 미국인 비평가 S.T. 조시(S. T. Joshi)는 『레드 훅의 공포』를 ‘끔찍하고 나쁜(horrendously bad)’ 작품으로 평가했다. 『레드 훅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의 외국인 혐오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러브크래프트가 크툴루 신화의 성공으로 불멸의 명예를 얻었어도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그의 문학을 선호하는 작가들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적인 면모를 비판했고, 《사이코》의 작가이자 러브크래프트와 편지로 교류했던 로버트 블록은 러브크래프트의 흑인 차별이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구시대적 인식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옹호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일단 그가 외출을 멀리하고,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이 문제였다. 책 속에 있는 세상이 어린 러브크래프트가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인종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비판 없이 그대로 흡수했고, 죽을 때까지 인종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깨닫지 못했다. 그의 은둔 생활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었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외모와 언어가 다른 민족을 두려워하는 감정으로 형성되었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1-10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0 17:09   좋아요 2 | URL
제가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읽기 시작한 때가 2011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글을 여러 번 읽었는데도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러브크래프트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러브크래프트 문학을 비판하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국내에 러브크래프트 작품이 알려지게 된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편입니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작품에 관한 비판 논의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쉬운 소리를 더 하자면 우리나라에 러브크래프트 평전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암울한 출판시장 현실과 장르문학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1-10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품은 작품이고 비판받아야 할 점은 분명히 비판 받아야죠~

cyrus 2017-01-10 17:1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박사모가 평소에 생각하고 다니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 항상 좋은 것, 자기가 믿고 있는 것만 보려고 합니다.

책한엄마 2017-01-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말씀하신 차별적 요소가 있던 책이 바로 이 러브크래프트군요-

이렇게 사람은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러브크래프트가 현 시대에 살고 요즘 책을 읽으며 집 안에 있었더라면 그 시대와 다룬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cyrus 2017-01-10 22:17   좋아요 1 | URL
러브크래프트가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해서 지인들과 편지로 주고 받으면서 지냈어요. 그래서 생전에 그를 한 번도 만나지 않고, 편지를 주고 받아서 친하게 지낸 작가도 있어요.

러브크래프트가 이 시대에 살아서 작가가 되지 못했으면 키보드워리어가 되었을 것이고, 작가였다면 우익 계열 쪽으로 활동했을 겁니다. ^^;;

캐모마일 2017-01-1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공포증후군과 결함이 있엇던 작가로 알고 있긴 했었는데, 덕분에 인종차별 요소 알고 가네요. 전집은 갖고 있지만 유명한 편만 흥미위주로 읽어서 파악을 못했나 봅니다.

cyrus 2017-01-11 10:39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읽었을 때 인지도 높은 작품 위주로만 봤습니다. 전집 4권은 단편이 많은데, 작품의 퀄리티가 1~3권보다 떨어집니다. 그래서 4권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캐모마일 2017-01-11 0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점뿐 아니라 결함과 오점까지 알고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게 작가를 알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공포와 편견, 결함 속에서 크툴루 신화의 토대가 완성됐나 봅니다.

2017-01-1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1-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쓰신 글에서 많은 것 배웁니다!

cyrus 2017-01-11 18:1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transient-guest 2017-01-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러브크래프트가 싫어집니다 그런데 은근 많죠 그런 서구작가들 그 시대엔 특히

cyrus 2017-01-20 15:3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실망했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어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알라딘 서재에서 러브크래프트 좋아한다고 자주 언급했으니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