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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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한다. 대부분 사람은 뇌가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1.4kg에 불과한 회백색 단백질 덩어리는 깊이를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지구상에 사는 인구는 75억 명이지만 한 사람의 뇌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신경세포의 수는 140억 개에 이른다. 지구는 넓고 크지만, 우리의 뇌는 그보다 더 크고 무한하다. 뇌를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들은 고도의 사유 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를 핀셋으로 집어내듯 밝혀내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수준 높은 사고는 뇌의 여러 부위가 협력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게 최근 연구의 잠정적 결론이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은 절대 서로 무관하지 않은 뇌과학과 인간의 행위 간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추적한다. 호흡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생명 활동에서부터 복잡한 감정의 표현들, 학습과 기억, 상상 그리고 자아 성찰까지 뇌가 하지 않는 일은 없다. 뇌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물질이면서 정신을 가진 유일무이한 부위이다. 김대식 교수는 철학적인 질문인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과학적으로 궁구한다. 이 책의 주제가 과학과 철학의 접목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 정체성은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달리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성자(聖者)들은 흔히 진정한 나는 내 안에 있다, 깨달음이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이라고 안내한다. 그러나 뇌과학의 관점으로 보면 인류가 여태껏 생각하던 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뇌의 총체적인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순전히 덕분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이 기억은 거의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 우뇌의 기능 분화설을 발표한 과학자 로저 스페리(Roger Sperry)는 뇌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지 못하며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기계[1]라고 주장했다. 뇌를 뛰어난 기계 혹은 컴퓨터에 비유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상황에 대처하는 이성적 사고라는 것은 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얻는 반응의 일종이다. 인간은 뇌에 저장된 우연한 경험들을 결합하여 필연의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지식과 체험을 통해 뇌 속에 담긴 정보는 오늘날의 를 규정짓는다. 스페리의 주장은 우리의 뇌가 우리를 속이고 인간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대식 교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철학적 명제를 나는 뇌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과학적 명제로 바꾸어 놓았다. 데카르트의 명제가 갖는 효과는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가 됐다는 점이다. 이성을 가지고 세계를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파악한 것을 무기 삼아 세계를 지배할 힘이 인간에게 생긴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묻는다. ‘는 어디서 나온 거야?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내 생각이야? 뇌를 활용하는 주체는 인데, 그 정보가 거꾸로 를 통제한다. 이런 에게서 뇌를 빼면 시체 또는 좀비다.

 

이 책을 읽다가 멀쩡한 를 잃어버릴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의 뇌를 인식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사고 전환이다. 뇌는 신체의 한 기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온전히 활용해야 할 소중한 대상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자신의 뇌를 어떻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나의 뇌 속에 있는 숱한 고정관념과 편견 등을 하나씩 걷어내면, 그동안 살면서 의식하지 못한 본질적 자아를 발견한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의 여정은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 뇌의 본질적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온갖 정보 속에 덧씌워진 를 올바르게 보는 길이다.

  

 

 

[1]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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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1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뇌과학에 관한 책이 쏟아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비판하는 데서부터 인지부조화 그리고 실수에 대한 주제까지... 저두 이 분야의 책을 주섬주섬 모으다 보니 책의 주제가 한 3부류 정도 나눠지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일독하면 매우 유익한 책들인 것만은 분명하고 읽고 나면 내가 아주 유식해진 기분이 들곤하는 책들이죠~^^

cyrus 2017-06-14 20:04   좋아요 0 | URL
한 번 본 지식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도 뇌가 일으키는 자기정당화 경향인 것 같습니다. ^^

2017-06-14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23:3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인간이 다가 오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뇌의 발달에서 비롯된 인간 고유의 사고 행위입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생존 방식을 늘 생각해야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어요. 이 모든 일이 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죠. ^^

AgalmA 2017-06-15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명제 참 잘 지은 듯ㅎ
생각 좀 한다하는 분들 이 문장 응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나 봐요.
바바라 크루거 -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 등등ㅎ

cyrus 2017-06-15 09:46   좋아요 0 | URL
바리에이션이 많은 명언입니다. 아무나 끼워 맞춰도 문장을 만들 수 있어요. ^^
 
초판본 주홍색 연구 - 188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아서 코넌 도일 지음, 송성미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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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쪽에 아서 차펜티어, 해군 중사입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에 해당하는 원문은 “Arthur Charpentier, sub-lieutenant in Her Majesty’s navy”입니다. ‘sub-lieutenant’해군 중위를 뜻합니다. 중위는 위관급에 속하는 군대 계급이며, 중사는 부사관 계급입니다. 영국 해군 중사는 ‘Petty Officer’입니다. 28쪽에 멘델슨의 <무언가>’가 언급된 문장이 있습니다. 멘델슨은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Mendelssohn)의 영국식 발음입니다. 88쪽에 오역이 있지만, 문장이 읽기 편해서 대체로 만족할 만합니다.

 

<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에 실린 시드니 패짓(Sidney Paget)의 초판본 삽화뿐만 아니라 다른 판본에 있는 삽화도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판형이 작아서 삽화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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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20: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글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오역 문장들을 찾아내고, 소개하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요즘 저는 홈즈 전집 번역본들을 살펴 보고 있습니다. 제가 전문 번역 일을 하지 않아서 오역을 지적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번역에 대한 제 의견을 보시게 되면, 비판적인 첨언을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5월 17일에 작성된 글에도 ‘sub-lieutenant‘ 오역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sub-lieutenant‘를 ‘중사‘로 오역한 책이 더 있어요.

※ http://blog.aladin.co.kr/haesung/9343606

2017-06-14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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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 먹자!” 아기가 징징대고 떼를 쓰다가도 과자 하나만 주면 만사 오케이다. 정치를 잘 모르는 어른들도 까까를 참 좋아한다. 까까는 과자가 아니다. 어른들의 까까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을 까는 행위를 의미한다.나는 깔 거야. 빨갱이 정치인을 깔 거야.” 박사모는 까까를 엄청 좋아한다. 그들은 ‘좌파 까기 인형이다. 좌파 까기 인형은 진보 정치인들을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여 빨갱이딱지를 붙인다. 박사모의 집단행동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형의 모습과 같다. 여전히 수인번호 503’을 잊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 정치가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변질될수록 까까를 찾는 어른들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정치 잘 모릅니다. 까는 것만 잘할 뿐이죠.” (5)

 

서민적 정치의 머리말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이 말은 서민적 정치의 저자 서민 교수가 밝힌 솔직한 고백이다. 이 사회에 정치에 무지한 사람들이 엄청 많다. 나도 그렇다. 정치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모른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내버려 두면 무식(無識)으로 직결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치가 뭔지 전혀 모르고 정치인을 까기만 한다. 정치인을 까면 정치 무식자 소리를 듣지 않는다. 정치를 더 모를수록 여론 주도층의 분위기에 쉽게 빠져든다. 내 주변 사람들이 공통으로 한 명의 정치인을 까기 시작하면, 눈치껏 따라 한다. 정치인을 까는 것을 정치적 식견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정치를 몰라서 근거도 없이 정치인을 까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감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야구에서도 정치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망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누가 감시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관중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판의 관중, 즉 유권자들은 야구경기의 관중들과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승패만이 중요하다 보니 자기 팀이 부정한 방법을 쓰고, 그들과 결탁한 심판이 눈감아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7~8)

 

정치판은 정치인들만 짜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이 내 손으로 권력을 선택해서 바꿀 수 있어야 민주적 정치가 정착된다. 그러나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은 권력의 들러리로 전락한다. 박사모처럼 일편단심 응원부대가 되기도 한다. 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숙한 시민의 노력이다.올바른 사회에서는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도 번영할 수 있고, 어려운 사회 문제를 만나면 이념을 초월해서 협력할 수 있다. 반면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선거를 자신의 앞날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도박으로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 생명을 걸고 선거 운동에 임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낙선이란 굴욕적 패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선거 구도에 불리한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반전을 꾀하려고 극언(極言)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대통령 후보는 대선에 이기지 못하면 보수 우파들이 한강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로서 그의 극언은 불쾌하다. 왜 내가 한강에 빠져야 하는가.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은 이념 하나로 똘똘 뭉친 집단에서 나타나는 심리이다. 낙선 후보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한강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치인의 극언은 그저 웃고 지나갈 말이 아니다. 다음 선거에도 이념 세력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어필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선거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되는 국민의 소중한 선택이 아닌 세력의 운명이 결정되는 게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정치인과 지지 세력들은 결과를 인정하지 못한다. 다음 대선에 이기려고 여당을 까기 시작한다. 근거 없는 소문을 동원해서 비난을 일삼고,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탄핵하자는 소리까지 한다. 우리의 정치권은 정치 게임을 원하는 정치꾼에 의해 심각히 오염되었다. 정치꾼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의무는 팽개쳐 놓고 권한만을 행사하기 위하여 아전인수 격으로 행동한다. 본래 염불에는 보다는 잿밥에만 마음이 있으니 인간적인 기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공정한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서 교수는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가 진행되는 광장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과거를 반추하는 동시에 뼈아픈 교훈을 확인한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촛불로 상징되는 거리의 정치는 우리나라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30)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갔다고 해서 정치 보는 눈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없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heim)은 대중이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했지만, 유권자인 대중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현실을 오판한다고 지적했다. 무지를 먹고 사는 국민이 무섭다. 이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최악의 결과가 나타나면 책임을 회피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이 높아지면 그들의 마음은 미움과 증오를 넘어 무관심과 냉소로 가득 차게 된다. “정치판이 가장 썩었다며 모든 정치인을 싸잡아 욕한 뒤 정치판과 선거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나이든 기성세대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무관심이 제2의 일베, 박사모를 만들어낸다. 서 교수는 서민적 정치를 하기 위한 제안으로 독서와 토론을 강조한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에서 찾고,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 불행하게도 인터넷에서 정치인을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서민(庶民)’이다. 인터넷에서 불평을 늘어도 세상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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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10:24   좋아요 0 | URL
비난과 비판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비난은 흑색선전의 논리에 가깝습니다. 비판은 근거가 충분해야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transient-guest 2017-06-14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컨텐츠가 있어야 논쟁도 가능하죠. 그런데 극으로 달리게 되면 사실 좌나 우나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어야 하죠. 다만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문제를 보면 우로 워낙 기울어진 탓에 논객을 자처하는 수준 낮은 자들이 너무 많았고 이들과 논쟁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로지 비난하고 욕할 수 밖에 없었던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와 토론은 아주 중요해요. 요즘 저희 아버님이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고 세월호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으시면서 조금씩 비전이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은 오스기 사가에 자서전을 읽으면서 받으신 것 같지만요.ㅎㅎㅎ 꾸준한 독서와 토론이 중요하다는 예라고 봅니다.

cyrus 2017-06-14 10:30   좋아요 1 | URL
책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편견과 아집에 둘러싼 사람은 책을 읽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책을 오독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불리해지는 입장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합니다.

레삭매냐 2017-06-14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다른 책 빌리러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빌렸네요.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정독
하면 바로 다 읽을 수도 있지만 쉬엄
쉬엄 읽고 있답니다.

cyrus 2017-06-14 15:16   좋아요 1 | URL
글의 장르가 정치 칼럼이다 보니 교수님 특유의 유머러스한 면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전에 나온 책들과 비교하면 글의 분위기가 진지했어요.

yamoo 2017-06-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거 같아요.. 마태우스 님이 전방위적으로 책을 내고 계신 듯합니다..ㅎㅎ

cyrus 2017-06-14 20:06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이 《소설 마태우스》 같은 소설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생충 문학의 부활을 고대합니다. ^^

자강 2017-06-1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고 진지하게 봤습니다 역시 서민 작가님~

cyrus 2017-06-15 18:47   좋아요 0 | URL
다음 신작은 재미있고, 웃긴 내용이었으면 좋겠어요. ^^;;
 

 

 

 

 

 

 

 

 

 

 

 

 

 

 

 

 

 

 

 

 

1인 전자책 전문 출판사 페가나 북스에서 윌리엄 올라프 스테이플던(William Olaf Stapledon, 1886~1950)의 작품 두 편을 출간했다. 스테이플던은 영국의 SF 소설가다. 그가 1930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최후이자 최초의 인간(Last and First Men: A Story of the Near and Far Future)은 열일곱 번의 진화를 겪는 인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불꽃(The Flames: A Fantasy)1947년에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화자는 외계의 불꽃 생명체를 만난 화자가 토스(Tho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친구에게 경험담을 들려주는 편지 형식의 작품이다.

 

 

 

 

 

 

 

 

 

 

 

 

 

 

 

 

* 이상한 존(오멜라스, 2008)

* 시리우스(오멜라스, 2008)

* 스타메이커(오멜라스, 2009)

    

 

 

SF 평론가 박상준 씨가 SF 전문 출판사 오멜라스 대표로 활동했을 때 스테이플던의 작품 세 편이 출간되었다. 이상한 존(Odd John: A Story Between Jest and Earnest)초인(Übermensch)’의 의미와 유사한 호모 슈페리어(homo superior)가 등장한다. 존 웨인라이트(John Wainwright)로 알려진 이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초인이다. 이 소설은 1970년대의 문고본 시리즈 아이디어회관 SF문고를 통해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일어 중역판 축약본은 스테이플던 작품 특유의 사변적 분위기를 느끼기에 부족하다.

 

 

 

 

 

 

 

 

 

 

 

 

 

 

 

2015년에 ‘EQ 세계추리 SF문학시리즈의 수록작으로 출간되었다. 안 봐도 축약본이다.

 

스타메이커(Star Maker)SF문학의 한 장르인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스타메이커는 모든 존재의 원천으로 볼 수 있는 유한하고 창조적인 정신또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정신으로 해석된다. 작가가 스타메이커에 나오는 용어의 의미를 정리한 해설 편을 썼을 정도로 이야기의 규모가 무척 방대하다. 시리우스(Sirius: A Fantasy of Love and Discord)는 인간의 지능을 가진 개와 인간 여성의 관계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글은 스테이플던의 작품 세계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미흡한 점이 많다. 사실 필자는 스테이플던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절판된 스테이플던의 소설 두 권을 가지고 있다. 페가나 북스의 신작 출간 소식 덕분에 잊고 있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려고 페가나 북스가 발행한 무크지 2를 참고했다. 스테이플던의 소설을 읽기 전에 무크지를 먼저 읽는 것이 좋다. 스테이플던의 작품 세계에 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고, 최후이자 최초의 인간불꽃의 번역문 일부를 볼 수 있다. (페가나 북스 공식 블로그 : http://pegana.tistory.com/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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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3 18:34   좋아요 1 | URL
SF문학이 재미없고, 비주류 문학이라는 편견이 많습니다. 복거일 선생이 SF문학 보급에 노력한 작가입니다. SF 문학에 대한 복 선생 칼럼 몇 편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칼럼들이 극우 언론에 게재되어 있어서 안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7-06-14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 직행했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구해야 할 텐데요..ㅎ 복거일의 책은 본 적이 없고, 예전에 다른 책들이 언급한 것만 봤습니다. 정치성향이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네요.

cyrus 2017-06-14 10:31   좋아요 0 | URL
오멜라스에 나온 종이책을 절판되었어요. 다행히 전자책은 나오고 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06-14 10:45   좋아요 0 | URL
아 이런 급 실망입니다 ㅎㅎ
 
아무도 없어요 최측의농간 시집선 1
박서원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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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쯤은 있다. 어떤 이들은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기억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슬픔, 고통 등 온갖 부정적 현상들은 뇌리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어 하는 게 어쩌면 인지상정일 수 있다. 안 좋은 기억은 잊을수록 좋다. 아름다운 추억의 빛이 바래져서 희미해지면 서글프다. 달콤한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눈을 감자마자 사라질까 봐 두려울 때도 있다. 죽는 것보다 더 아픈 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힌다는 것이다. 그 누구로부터 잊힌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과 멀어지는 일이다.

 

시 속에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현실을 뛰어넘은 곳이다. 시인은 현실에 묶여 있어서 늘 그곳을 벗어나려 한다. 박서원 시인의 시 세계는 어두침침한 방과도 같다. 또한, 그러하면서도 늘 무언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 그리움때문에 시인은 온몸으로 현실과 철저하게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생명수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시 밖의 세계인 현실에서 거침없는 언어를 토했다. 밖의 세계 이곳저곳 부유하는 그녀의 언어는 다시 시 세계로 편입되어야 한다. 언어는 시인의 피와 살이 녹아든 것들이다. 그런데 뱉어낸 언어를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시인의 시 세계, 즉 시인의 방은 공허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기가 흐르는 어둠의 방이 된다. 정말 그곳에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어요.

원고지도 비어 있고

화병도 비어 있어요.

하루 종일 노딜다 간

햇살도

벌써 가고 없어요.

 

거울 속에는

내 얼굴만 있군요.

근데 얼굴은 없고

생각만 이리저리

굴려 다녀요.

 

약이 떨어진 볼펜은

권태롭고

약속해주지 않은 채

하루는 가고 있어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억제되어 박혀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까요.

 

벌써 불을 끌

시간이군요.

 

가만,

 

드디어 계단에

발소리가 들리는군요.

누군가 나를 채워주려

오나 봐요.

 

그러나 역시 아무도

안 와요.

나는 물만 마셔요.

차라리

그리움이 그리움을

삭발하고

거울 앞에 설레요.

 

(아무도 없어요, 61~63)

 

 

시인은 방 안에 홀로 서서 대체 무엇을 기다렸을까? 그녀의 세계, 즉 방 안에는 시인 자신의 지나온 삶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있다. 그 거울 속에는 사랑과 열정, 그리움과 후회, 상처 등이 흑백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시인은 거울 표면에 맺힌 그리움의 흔적을 응시한다. 그렇지만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이 깔린 방에서는 볼 수 없다. 아무도 없어요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밤과도 같다. 밤은 공포의 시간이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검은 흔적을 두려워한다.[1] 그것은 악몽으로 재현된다.

 

 

밤에 잘 때

은순이는 눈을 뜨고 잔다

눈을 뜨고 꿈을 꾸면서

살아 있는 것들과

죽어나는 것들의 싸움을

풍랑이 이는 바다와

파선되는 고깃배를 본다

은순이는 꿈속에서,

꿈속에서 볼 수 있는 것만

보고도

10년 동안의 인생살이를 겪고

잊혀 가는 많은 일들을

제자리로 한 데 모아

길고 긴 상처를 만든다

 

(악몽중에서, 37)

 

 

은순이(시인의 분신으로 해석하고 싶다)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쓸쓸한 상징이 되어 다시 아픔과 슬픔을 불러낸다. ‘잊혀 가는 많은 일들을 제자리로 한 데 모아만든 길고 긴 상처는 시인의 마음을 자극한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단 한 줄의 시를 쓰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데도, ‘잊혀 가는 많은 일을 부단히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시인을 자극하는 것이다.

    

 

  누구나가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지만 난 그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제기랄, 근데 실패하고 말다니 연습이 아니었는데도 그건 살아있는 파멸이었어 검은 밧줄, 괜찮은 유희였는데도 말야

 

(실패중에서, 22)

 

 

시인의 삶 역시 우리들의 보편적인 삶과 같다.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독을 앓고 있다. 시인은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실패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는 열정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생을 담보로 언어를 만들어냈고, 시인의 피와 살에서 떨어져 나간 것들은 시인의 방을 새롭게 구축하는 재료가 되었다. 시인의 방은 곧 시인의 의식이며 언어가 있는 곳이다. 시인이 그 방에 있다는 것은 그곳이 현실을 떠난 곳임을 말해 준다. 그곳은 시인의 도피처이면서 시인의 세계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이 방에 남아 있다.[2] 시의 탄생은 시인의 죽음과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에 그녀의 첫 시집이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시인의 방은 열려 있다아무도 없어요는 시인의 세계를 통한 바깥세상 읽기다.

 

 

[1]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2]나비는 죽어서도 이 땅에 남는다.” (박서원 나의 나비,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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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2 13:40   좋아요 0 | URL
시집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이 시집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9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서원 시인의 시는 상당히 어둡고 외로운 느낌이 드네요... 밤에 혼자 읽기는 조금 싫을 것 같아요^^:

cyrus 2017-06-12 13:43   좋아요 1 | URL
박서원 시인이 1990년대에 활동했습니다. 201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부고 소식이 최근에서야 알려졌어요. 생전에 시인이 고독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시집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둡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6-10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기억.. 스티그마.. 누구나 깊고 어두운 기억을 갖고 있죠

‘행복해지기 위해 아픈 기억과 기꺼이 동행하겠습니다‘

이제는 이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cyrus 2017-06-12 13:48   좋아요 0 | URL
아픈 기억을 억지로 떼어내려고 하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yamoo 2017-06-1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도 읽으시니 사이러스 님^^

저는 시집을 읽지 않습니다. 네, 그렇구말구요..^^;;

cyrus 2017-06-12 13:49   좋아요 0 | URL
시집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닙니다. 문제는 제가 시집을 많이 사는 독자가 아니에요. ^^;;

돌아온탕아 2017-06-1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은 제게 너무 어렵더군요. 그래도 이 글을 읽으니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7-06-12 13:50   좋아요 0 | URL
이 시집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둡습니다. 시집을 읽기 전에 박서원 시인의 삶을 알아야합니다.

북깨비 2017-06-1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없어요 라는 시를 읽는데 우울함과 동시에 한글의 예쁨이 마구마구 쏟아져서 와아- 와아- 하면서 읽었어요. 아무도 없는거랑 원고지가 빈 거랑 화병이 빈 거랑 없는건 다 똑같은데 공간적인 차이가 주는 느낌때문에 어머 말이 정말 예쁘네 하고 있는데 햇살이 놀다가고 없다하지 거울을 보는데 이런저런 생각만 많아서 얼굴은 없다 그러지 또 와아- 엄청 반하고, 발소리가 들린다고 잔뜩 청각을 자극해놓고 나를 채워주려 오나 아무도 안 오네 하며 순식간에 다시 텅 빈 나, 텅 빈 내 공간에 스포트라이트가 가면서 정말 우울한데 그런데도 그 말들은 너무너무 예쁜거에요. 이런 때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말을 하는게 너무 행운이구나 싶죠. 저 너무 일차원적으로 시를 읽지만 그래도 시 참 좋아요. ㅎㅎ 좋은 시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전체적으로 우울하다니 맘 단디 먹고 한 권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cyrus 2017-06-16 18:48   좋아요 1 | URL
<아무도 없어요>의 마지막 연이 애상적이었어요. ‘그리움이 그리움을 / 삭발하고 / 거울 앞에 설레요’ 시를 읽으면 생전에 시인이 느꼈을 고독감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져요.

임모르텔 2017-10-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그리움이 그리움을
삭발하고
거울 앞에 설레요.

(『아무도 없어요』, 61~63쪽)
.........

아~~~~~~~~~~~!!! 저는 시를 참 좋아하는데요.
이 시구절을 심상화하니.... 코끝이 찡!! 하니~양파까며 울던 그때 그 느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