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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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움직이지 않고 목소리를 내 마치 인형이 말하는 연기를 복화술이라고 한다. 남성 작가가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일종의 복화술이다.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당대 남성 작가들은 겉으로는 여성에게 목소리를 부여해 발언하게 하는 듯했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남성 작가의 복화술은 여성의 발화를 원천 봉쇄한다.[1] 주체적으로 표현할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한 여성은 가부장제가 만든 울타리에 갇힌 채 ‘메아리 없는 절규’를 외친다. 조남주《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7)은 이 시대 텅 빈 여성의 잃어버린 목소리, 그 메아리 없는 절규를 받아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한 여인의 삶을 깨뜨리는 냉소적인 담화로 가득 차 있다. 여성이라면 이 소설을 읽을 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담담한 문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서른네 살의 기혼 여성 김지영이다. 이름만 보면 그리 특이한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은 지영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시작한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친정엄마로 빙의해 가슴 속으로 꾹 삼켰던 말들을 쏟아 내뱉는다. 때에 따라 죽은 대학 동아리 선배가 되거나 어렴풋이 아는 다른 여성이 되곤 한다. 기이한 언행을 하는 아내가 걱정된 남편은 그녀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어린 시절부터 학창 생활, 회사 업무 그리고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 지영의 삶의 궤적을 사실감 있게 보여준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김지영이란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이해할 수 없던, 그녀 주변의 남성들이 공감하지 못했던 여성으로서의 비감(悲感)이 느껴진다.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으로서의 삶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현실이 아닌 자신들의 여성 판타지에만 공감하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무시해버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여성차별과 여성 혐오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일상화돼 있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성범죄는 곳곳에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십 년 전에도 그러했고 어제도 그랬다. 스마트폰이나 초소형 카메라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사진 · 영상을 촬영하는 ‘몰카(몰래카메라)’ 성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몰카 성범죄는 공중화장실, 사우나, 수영장, 탈의실 등 특정 장소는 물론이고 출퇴근길의 지하철이나 버스 안처럼 많은 사람이 밀집된 공간에서 자신이 찍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촬영이 되어, 불특정한 수많은 피해자를 낳는다. 몰카 성범죄 경우 다른 성범죄인 강간이나 강제추행보다 가벼운 혐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영이 다니는 회사의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남성 직원들은 몰카 성범죄를 ‘가벼운 일탈’로 생각한다.

 

 

“조사받은 남자 직원들이 우리한테 너무했대. 자기들일 몰카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나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좀 본 거 가지고 성범죄자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사진 유포했잖아. 범죄를 방조했잖아. 근데 그게 잘못인 줄도 몰라. 완전히 개념이 없더라니까.” (155쪽)

 

 

남성 직원들은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남자 보안 요원이 찍은 사진을 돌려 봤다. 그들은 야동을 보며 멋대로 키워오던 성적 판타지를 실현했다. 그들의 말과 의식 속에 성범죄는 따로 있다. 성범죄는 너무나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한 것이기에 정신병자의 소행이 분명하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한 이 ‘가벼운 일탈’을 성범죄로 문제 삼는 피해자가 신경과민이다. 따라서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라는 결론을 낸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 익숙한 남성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데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남성 직원들은 성범죄의 방관자 혹은 공모자다. 이런 주장 뒤에는 남성들의 반발이 아우성칠 것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두려움과 선입견을 품고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피해의식 프레임과 결합하여 반남성주의적 담론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82년생 김지영》이 ‘물 만난 고기’처럼 잘 팔린 책이 되었다고 말하여 어떤 이는 ‘여성의 피해의식으로만 가득한 최악의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평가하는 것과 아예 안 읽은 상태에서 평가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남성 독자들이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적어도 다섯 번 이상 읽어보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이 있잖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던 중간부터 읽던 계속 읽어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차별과 편견이 보이리라.

 

남성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치 붕어빵 기계로 찍어놓은 듯 ‘판박이 남성성’에 맞춰 살아왔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남성성이라는 정해진 틀을 강요당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을 비판할 뿐, ‘남성’ 자체를 악의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부 남성들은 페미니스트가 ‘평범하고 착한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로 매도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착한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착한 남성’은 여성에게 인정받으려고 만든 ‘남자다운 남성성’의 변형이다. ‘착한 남성’ 프레임은 남성들의 행동과 생각을 제한한다. 따라서 이들은 일상 속 성차별, 성범죄를 묵인한다.[2] 짝꿍인 남자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지영은 이미 어렸을 때에 ‘착한 남성’ 프레임이 여성의 고통을 공감하는 데 방해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던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꾸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41쪽)

 

 

이 장면을 잘 살펴보면 데이트폭력을 당사자 간의 애정 문제로 가볍게 치부하는 인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학교는 그릇된 성차(sexual difference)를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자기 아들이 ‘착하다고’ 믿는 부모는 자식이 여자아이를 심하게 괴롭히는 것을 단지 여자아이를 ‘좋아해서 시작한 아이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아이에게 괴롭힘당하는 여자아이와 남자친구가 휘두르는 주먹에 얼굴을 맞는 여자는 그 행위가 ‘폭력’이라고 인지하고 있지만, 자신을 향한 관심의 표현이고 과한 애정 때문이라는 생각에 개인이 감당해야 할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성차에 기인한 젠더 폭력(gender violence)이 ‘착한 남자’ 프레임에 가려지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문제는 비단 남성이 저지르는 착각의 제가 아니다. 여성도 프레임의 덫에 한 번 빠져버리면 성차 문제에 둔감해진다. 혼자 귀가하다가 자신을 쫓아오는 남학생에게 봉변당할 뻔한 지영의 곁에 있어 준 여자의 위로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69쪽)

 

 

이 ‘좋은 남자’라는 표현은 자신을 ‘착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단어다. 하지만 그들은 여성 혐오와 폭력 앞에 서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착하고 좋은 남자’들은 여성 문제를 몇몇 나쁜 남성, 예외적 남성이 저지르는 일이라고 본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표방한 소설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온건적 페미니즘)’에 위치한다. (물론, 내 주장이 옳다고 볼 수 없다. 책과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또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은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강조한다. 그래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으로 보고 줄기차게 비판한다. 작가는 이야기에 각종 도서, 신문 기사, 통계 보고서 등 객관적 자료들을 적절히 배치했다. 여성을 불편하게 만드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부각하는 작가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암시하는 복선이나 결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작가는 여성을 억압하는 그릇된 사회 구조를 직시하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82년생 김지영》은 여성 개인의 자아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3]을 전달하는 데 그친다. 이것이 ‘급진적 페미니즘’ 관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82년생 김지영》의 한계다.

 

김지영의 잃어버린 목소리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여성’의 것인가.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 여성, 귀화 여성도 여성 혐오 대상이 되고, 가정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아내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 문제로 한국인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외국인 아내의 취약성(발화불가능)을 담보로 한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망하기 사흘 전에 스물두 살(1986년생, 그녀가 현재 살아있다면 서른 한 살이 된다)의 베트남 여성 쩐타이란 씨는 일기장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녀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한국에 온지 1주일 만에 이혼했다.[4]

 

 

“자기들이 필요해 베트남으로 와서 결혼하자고 한 게 아닌가.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인간이다. 단지 국적만 다를 뿐이다.”

 

 

여성이 살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현실은 소설보다 더 냉혹하다.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도식화된 이분법에 익숙한 남성중심 사회에 분노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여성의 목소리이자 '정당한 무기'다. 하지만 이 ‘여성의 무기’를 손에 대지 못한 채 소외되는 여성들도 있다. 과연 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김지영’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공감한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김지영’이 된다. 조남주 작가와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86년생 쩐타이란 씨도 ‘우리’에 포함되는가?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섹슈얼리티 이슈와 얽힌 고민의 끈을 계속 부여잡는 일이다. 페미니스트는 인종과 계급을 넘어 여성이 연대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여성=김지영’이라는 도식적인 형태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김지영 신드롬’이 진지한 성찰 없이 ‘한국 여성들만의 공감과 분노’에 그친다면 《82년생 김지영》은 실패한 페미니즘 소설이다.

 

 

 

 

 

 

[1] 엘리자베스 D. 하비 《복화술의 목소리》 (문학동네, 2006)

 

[2] 토니 포터 《맨 박스》 (한빛비즈, 2016)

 

[3] 베티 프리단 《여성의 신비》 (이매진, 2005)

 

[4] [죽거나 죽이거나 ‘이주여성 잔혹사’]

(시사인, 2009년 3월 5일 / '북플'에서 링크 기능 X)

이 기사에 언급된 '쩐타이란'은 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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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7-09-15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저도 방금 이 책의 리뷰를 썼습니다. 비슷한 내용인 듯합니다. 남녀는 공존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욕먹을 남정네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으니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09-16 15:00   좋아요 0 | URL
리뷰로 쓰기 어려운 책이었어요.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느낀 독자들의 생각이 거의 비슷하거든요.

북프리쿠키 2017-09-16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모임에서 전 주로 이 책의 한계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는데요.
싸이러스님께서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셨네요^^
하지만 많은 남성들이 거부감없이 접근할 수 있게 마케팅한 부분은 성공적이라 생각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러한 담론들이 차근차근
많은 남성들에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구요.
대결구도가 아닌 좀더 성숙한
방향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아쉬움 또한 크답니다^^














cyrus 2017-09-16 15:06   좋아요 1 | URL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는 말로 해도 귀 담아 듣지 않는 남성들이 답답해 보일 겁니다. 그래서 공격적인 ‘미러링’을 시도하게 되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미러링을 시도하게 만든 가장 큰 일차적 원인이 페미니즘을 무시했던 남성들의 태도입니다. 그래도 미러링의 역효과를 지적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남성 독자들의 공감을 유도하는 책이라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블랙겟타 2017-09-16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정성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최근 저는 페미니즘운동의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이 많은데요. cyrus님의 글에서 힌트를 얻고 갑니다.

cyrus 2017-09-16 15:06   좋아요 1 | URL
목표점은 같아도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갈 수 있는 길이 여러 갈래로 이루어진 학문이 페미니즘입니다. 길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싸울 필요 있나요? 이 길도 가고, 저 길도 가보면서 살아야죠. ^^

yamoo 2017-09-1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모 중고서점에서 천원 코너에 있었는데..아니다, 굿윌 양천점이었구나...구매할까하다가 한국소설책드을 처분하는 마당에 구매하면 바로 나가야해서 구매안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작가 작품은 안 읽는게 상책이라는 결론을 얻는 요즘입니다. 정말 좋은 작품들이 널렸는데...한국 소설을 읽는다는 건 시간낭비 같은 느김이 자꾸들어서요.

그럼에도 사이러스 님은 이런 소설을 읽고 이리도 정성스런 리뷰를 써 주시네요~ 재밌든 없든 꾸준히 한국작품을 읽고 리뷰 쓰시는 사이러스 님이 존경스럽습니다!

cyrus 2017-09-16 15:09   좋아요 1 | URL
제가 외국 소설만 읽게 되니까 국내 작가들의 활동을 모르게 되더라고요. 국내 문단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아요. 그런 문단을 제대로 비판하려면 국내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내 소설을 잘 안 읽던 독자가 국내 문단을 까면 설득력이 떨어져 보여요. ^^;;
 
남성성/들 이매진 컨텍스트 42
R. W. 코넬 지음, 안상욱.현민 옮김 / 이매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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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남자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믿음.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남자가 그까짓 일로 울면 안 된다라는 시선 때문에 감정을 수축시키며 살아왔다. 특히 한국 남성들은 강한 남자가 돼야 한다는 경쟁심리 속에서 살아왔고, ‘남성성은 어느새 이들의 삶을 살아가는 인식의 지도가 되었다. 남성이 쥐고 있는 이 낡은 인식의 지도가 시대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어떻게 만들었는지 추적한 책이 R.W. 코넬남성성/(이매진, 2013)이다.

 

천지개벽이니 상전벽해니 하는 말로도 어쩌면 부족할 것 같다. 기나긴 세기 동안 있었던 남성성의 형성 과정을 묘사하려면 말이다. 근대의 남성성개념은 한 사람의 행동을 여성성과 견주어서 규정한다. 남성성과 거리가 먼 사람은 종종 부정적인 것(‘눈물이 많은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으로 폄하됐다. 그렇지만 남성성을 성격과 행동 등 개인성(individuality)을 근거로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은 젠더 분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젠더가 육체적 경험, 인격, 문화가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면 남성성은 애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제도 담론이 그렇게 명명하고 실천하도록 지식 체계를 동원한 결과가 된다. 따라서 젠더는 사회적 실천이며 사람들은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젠더를 배치한다. 저자는 젠더를 배치하는 실천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재생산의 무대라고 말한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남성 중심적, 남성 우월적 가치평가, 남성에 의한 여성지배 구조의 재생산적 구조 등을 들 수 있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란 사람은 가부장제 사회관계를 재생산한다. 헤게모니(hegemony, 주도권)를 잡은 남성들은 여성을 현모양처의 틀에 가둬놓았고, 동성애 남성에게 남성성에 배제된 비정상적 존재라는 낙인을 새겼다. 헤게모니 남성성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특성을 보인다. 국가는 신체가 건강한 남성에게 나라를 지키는 애국심 강한 군인으로, 기업은 일할 수 있는 남성에게 국가 경제의 기둥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성을 전시하고, 남성에게 주도권을 부여한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 ‘국가 경제의 기둥에 배치되지 못한 동성애 남성과 여성의 능력은 무시 받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지위가 격하된다. 동성애 남성, 트랜스 남성(female-to-male transgender)은 헤게모니 남성성을 실천하는 재생산의 무대에서 추방당하는 종속된 남성성 된다.

 

최근에 와서 전통적인 성역할 구분은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인간이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에 장애요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성역할의 이상적인 모델로서 심리적 양성성의 개념을 제시한다. 심리적 양성성이란 한 개인이 강인한 남성성과 섬세한 여성성 모두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성적인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남성적 역할과 여성적 역할을 융통성 있게 적절히 수행할 수 있다. 잃어버린 남성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대안 중 하나가 심리적 양성성이다. 현실에서 무너진 헤게모니 남성성(실추된 권위)심리적 양성성으로 보상하려 한다. 하지만 심리적 양성성을 중심으로 한 남성 운동은 기껏해야 단순 논리 차원에서 남성의 권위만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뿐이며 가부장적 구조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데 일조한다. 또 성차별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

 

남성성은 헤게모니 남성성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젠더 질서에 가장 높은 정점에 위치한 헤게모니 남성성은 남성성의 모범으로 자리 잡아 동성애 남성이나 트랜스 남성 같은 특정 유형의 남성성을 차별하고, 혐오한다. 헤게모니 남성성을 수호하는 남성은 자신이야말로 진짜 사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진짜 사나이란 없다. 오늘날 혐오와 차별을 양산하는 재생산의 무대위의 주인공은 남성이다. 그들이 입고 있는 무대복은 헤게모니 남성성이다. 이제 여성들도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남성을 위한 연극을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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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5 22:35   좋아요 1 | URL
살아있는 존재는 서로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관계축이 한쪽으로 쏠리면 문제죠. 그렇다고 다른 존재를 아예 없으면 평형 관계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sprenown 2017-09-1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모두 남성성과 여성성을 같이 갖고 있지 않나요? 상황에 따라 그 성향이 발현되고요..다만 남성성이 지나치게 우세하고, 그걸 장려하는 사회문화가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요.

cyrus 2017-09-16 05:18   좋아요 1 | URL
칼 융이 남성과 여성이건 모두 적어도 남성성과 여성성 일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주장을 선호합니다. 남성 운동론자들이 이 주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문제는 남성이 유리하도록 해석합니다. 양성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전히 레즈비언의 남성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의 과학 읽기 - 과학과 사회를 관통하는 생각의 힘을 찾다!
김동광 외 지음 / 궁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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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미래’를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래’라고 하면 어두운 불안보다는 무엇인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희망을 떠올린다. 현재는 비록 어둡고 괴롭더라도 언젠가 가능성의 미래가 있기에 참고 이겨나가는 것이 인간사가 아니던가. 과학은 세상의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를 좀 더 바람직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기여한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과학은 세상을 분명한 것으로 그려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해당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언제 어디서 ‘불확실성’이라는 괴물로 변할지 모른다. 아무리 과학기술을 잘 활용하여 변화를 촉발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변화가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 어떠한 결과와 영향을 가져올지 명확하게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사회 현상을 일으키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을 우리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불확실성으로 충만해 있다. 따라서 정부 관료나 과학자 등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내놓거나 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과학센터’에 소속된 총 여덟 명의 과학기술 사회학(science technology & society, STS)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민주적 논의와 토론’을 강조한다. 《불확실한 시대의 과학 읽기》(궁리, 2017)는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여덟 가지 사회 문제(구제역, 변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변형식품 논란, 화학물질 규제, 우울증 치료법, 핵발전소의 안정성,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기후 변화 대응 방안)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진지한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구제역은 전염성이 강해 세계동물보건기구가 인정한 가장 위험한 A급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구제역은 일단 발병하면 불가항력적이다. 정부는 전염병 확진 판정이 난 농장은 물론 주변의 돼지와 소, 염소, 양, 사슴을 모두 살처분한다. 2010년 최악의 구제역 사태 당시,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의 70% 이상이 환청이나 불면증 등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응은 극히 제한적이다. 정부의 조치는 소독과 이동제한, 살처분이 고작이다. 무자비한 가축 살처분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동광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원은 구제역의 피해에 대한 판단을 독점하고, 가축 방역에 대한 낮은 의식을 가진 정부의 자세를 비판한다. 가축전염병으로 인해 수조 원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가축방역 전담조직은 미미하다. 체계적인 방역 장비 및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의 대책을 내놓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건 큰 문제다.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부소장의 글은 유전자변형식품을 둘러싼 찬반 입장이 균형 있게 정리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GM 어류에 내용이 나온다.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 유전자를 조작시킨 식품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이의 유해성에 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문제는 유전자변형식품이 인체 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연식품의 경우 인간이 오랫동안 섭취해온 것이라 인체가 완벽히 적응된 상태다. 그러나 유전자변형식품은 인체로서는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어서 인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는 게 과학자들의 지적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유전자농작물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에 유전자조작 여부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유전자농작물의 수입, 판매를 금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전자변형식품 표시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크게 제한할 소지가 있다.

 

막대한 건설비, 안전성,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원전의 안전성과 장래에 대해 끊임없이 논란이 일고 있지만, 원전은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전원(電源) 중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이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로서는 원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박진희 시민과학센터 소장과 이영희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계와 필요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원전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원자력을 다루는 사회적 합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정-발표’로 이어지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방식을 버리고, 시민 사회와 정부, 원자력 사업자가 함께 원전 문제 및 탈핵 대안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불확실한 시대의 과학 읽기》는 과학 논리만으로 다 해명되지 않는 과학 안의 갈등, 논쟁, 권위 같은 사회적 요소들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과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과학지식의 절대적 권위에 익숙하고, 과학기술을 마치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예상 가능한 확실성으로 착각하는 이들에겐 낯설기까지 하다.

 

정치 세력 혹은 정치적 이념이 과학에 의지하면 돈 혹은 명예를 누리려는 기회주의자들이 빌붙게 마련이다. 이런 세력이 퍼뜨리는 거짓 정보에 속지 않으려면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무지가 낳은 편견은 어떤 자기 검열 과정을 무시하고 거짓과 교만을 먹이 삼아 자란다. 집단적 편견이 지배 담론으로 일방적으로 행세하는 사회가 되면 사회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활성화하지 못한다.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는 그 갈등을 야기한 쟁점을 충분히 공론화해서 이해당사자들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숙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숙의란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하는 자세이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논의와 사회적 학습이 중요하다. ‘확실한 해답’만 찾으려는 논쟁은 타협할 수 있는 값진 학습기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그 결과 사회의 불확실성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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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1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적 논의와 토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죠.

cyrus 2017-09-14 19:09   좋아요 0 | URL
당연한 건데, 우리 사회의 현 상황을 봐서는 힘들어 보입니다. ^^;;

표맥(漂麥) 2017-09-14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미래’는 밝음이었지만... 지금은 우울할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항상 한 귀퉁이를 붙들고 있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면 불안이 좀 줄어들까요? ^^

cyrus 2017-09-14 21:00   좋아요 0 | URL
과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아직 과학이 풀지 못한 현상이 많습니다. 그리고 과학이 ‘만능 열쇠‘가 될 수 없습니다. ^^

감은빛 2017-09-1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과학자 혹은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절대 안된다는 걸
황우석 사태 때 뼈저리게 느꼈을텐데,
지금 핵마피아들은 또 똑같은 말들을 반복하고 있네요.
그들이 소위 전문가라면,
탐욕에 눈이 멀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스스로 깨우쳐야 하지 않을까요?

cyrus 2017-09-15 22:4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원전’,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다룬 두 편의 글이 나옵니다. 그런데 탈핵 문제를 심도 있게 접근하는 감은빛님의 수준을 생각하면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소개하는 글로 보일 수 있습니다.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어요. ^^;;

sprenown 2017-09-15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과학의 조직된 회의주의 정신은] 과학이 다른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저항의 원천이 된다. 종교계 쪽에서의 저항은 경제나 정치적 그룹의 저항에 비해서 이제 덜 중요해졌다. 최근 저항들은 과학의 특정한 발견이 종교, 경제, 정치의 영역에서의 도그마를 부인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저항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최근의 저항들은 과학의 회의주의가 기존 권력의 분배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타나는 상당히 모호하지만 넓게 확산되어 있는 양상을 띤다. 머튼, 「과학의 규범적 구조」 (1942) 중에서

cyrus 2017-09-15 22:48   좋아요 0 | URL
지나친 회의주의는 과학을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학문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저는 과학의 회의주의가 삶을 즐겁게 해주는 상상력까지 제한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화성 연대기》는 ‘화성’을 소재로 한 28편의 단편소설을 연작 형태로 꾸민 작품이다. 1950년에 처음 출간된 이후로 두 편의 작품이 추가되면서 여러 권의 판본이 나왔다. 그래서 국내 번역본(샘터, 2010)에는 2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행히 나머지 두 편도 번역되었고,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문신을 새긴 사나이와 열여덟 편의 이야기》(황금가지, 2010)《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현대문학, 2015)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 …In This Sign / November 2002 : The Fire Balloons (1951)

불덩어리 성상

 

 

 

 

 

 

 

 

 

 

 

 

 

 

 

 

 

 

* The Wilderness / May 2003 : The Wilderness (1952. 11)

황야

 

 

 

 

『불덩어리 성상』 1974년 영국에 출판된 《화성 연대기》(원제는 ‘The Silver Locusts’)에 처음 수록되었다. 그 후 1979년 보급판, 출간 40주년 기념판에도 수록되었다. 『황야』는 1974년 영국 판본, 1979년 보급판, 1997년 판본 순으로 수록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1997년 판본은 ‘31년 후’의 미래를 묘사한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1950년 제1판본의 연대는 1999년부터 2026년까지 설정되었고, 1997년 판본의 연대는 2030년부터 2057년까지 정해져 있다. 연대는 달라도 제1판본 내용과 똑같다.

 

 

 

 

 

 

《화성 연대기》 (국내 번역본) 수록작 원제와 발표연도

 

 

 

* The Watchers / November 2005: The Watchers (1945. 5)

200511월 지켜보는 사람들

 

 

* The Million-Year Picnic / October 2026: The Million-Year Picnic (1946)

202610월 백만 년짜리 소풍

 

 

* ...And the Moon be Still as Bright / June 2001: And the Moon be Still as Bright (1948. 6)

20016월 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

 

 

* The Earth Men / August 1999: The Earth Men (1948. 8)

19998월 지구인

 

 

* The Long Years / April 2026: The Long Years (1948. 9)

20264월 긴 세월

 

 

 

 

 

 

 

 

 

 

 

 

 

 

 

 

 

* 최세진 외 공역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오멜라스, 2010) 

 

 

* Mars Is Heaven! / April 2000: The Third Expedition (1948)

화성은 천국! ('오멜라스' 번역본 제목) / 200043차 탐험대

 

 

 

* The Off Season / November 2005: The Off Season (1948. 12)

200511월 비수기

 

 

* The Spring Night / August 2005: The Summer Night (1949)

1999년 8월 여름밤

  

 

* The Silent Towns / December 2005: The Silent Towns (1949. 3)

200512월 적막에 휩싸인 도시들

 

 

* Impossible / September 2005: The Martian (1949. 11)

20059월 화성인

 

 

* I’ll Not Ask for Wine / February 1999: Ylla (1950. 1)

19992월 일라

 

 

* Carnival of Madness / April 2005: Usher II (1950. 4)

20054월 어셔2

 

 

 

 

 

 

 

 

 

 

 

 

 

 

 

 

 

* 김상온 역 최후의 날 그후 : SF거장 14인이 그린 핵전쟁 그 이후의 세상

(에코의서재, 2007)

 

  

* August 2026: There Will Come Soft Rains (1950. 5)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에코의서재' 번역본 제목) / 20268월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

 

 

* December 2001: The Green Morning (1950)

200112월 녹색 아침

 

 

* August 2002: Night Meeting (1950)

20028월 한밤의 조우

 

 

* June 2003: Way in the Middle of the Air (1950)

20036월 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

 

 

* January 1999: Rocket Summer (1950)

19991월 로켓 여름

 

 

* February 2003: Interim (1950)

20032월 그 사이에

 

 

* February 2002: The Locusts (1950)

20022월 메뚜기 떼

 

 

* November 2005: The Luggage Store (1950)

200511월 가방 가게

 

 

* April 2003: The Musicians (1950)

20034월 연주자

 

 

* August 2005: The Old Ones (1950)

20058월 노인들

 

 

* August 2001: The Settlers (1950)

20018월 이주자

 

 

* October 2002: The Shore (1950)

200210월 바닷가

 

 

* March 2000: The Taxpayer (1950)

20003월 납세자

 

 

* 2004-05: The Naming of Names (1950)

2004~2005년 이름 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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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모나리자』(Monna Lisa). 이 그림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Francesco de Gioconda)의 세 번째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동성애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벌거벗은 두 여인이 욕조에 들어가서 묘한 행동을 한다. 왼쪽 여인이 오른쪽 여인의 유두를 쥐고 있다. 왼쪽 여인은 마치 뜨거운 것이라도 잡는 양 왼손가락으로 아슬아슬하게 반지를 잡고 있다. 가슴의 유두를 잡은 왼쪽 여인의 자세는 이름 모를 남성 화가가 의도한 연출이다. 저기요, 아재! 당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자, 가슴은 그만 보고, 욕조가 있는 방의 구조를 살펴보자. 불이 타오르는 난로 옆에 바느질하는 여인이 있다. 여인의 머리 위에 작은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런데 액자 크기가 너무 작다. 아무리 두 눈을 크게 떠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난로 위에도 그림 액자가 있는데, 절반이 가려져 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델의 다리만 보일 뿐이다.

 

 

 

 

 

 

 

 

 

 

 

 

 

 

 

 

 

 

 

 

 

 

 

 

 

 

 

 

 

 

* 김복래 《프랑스 왕과 왕비, 왕의 총비들의 불꽃같은 생애》 (북코리아, 2006)

* 나가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세미콜론, 2009)

* 엘리아 보슈롱 《수수께끼에 싸인 미술관》 (시그마북스, 2014)

* 유경희 《가만히 가까이》 (아트북스, 2016)

 

 

 

작자 미상의 그림을 보는 사람보다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그림 제목이 알려져서 관람객은 벌거벗은 두 여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반지를 쥔 오른쪽 여인이 프랑스의 왕 앙리 4세(Henri IV)의 애첩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다. 왼쪽 여인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동생 빌라르 공작부인(duchesse de villars)이다. 공작부인은 왜 언니의 유두를 쥐고 있을까?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관람객들은 저 두 사람을 '수수께끼 자매'라고 불렸을 것이다.

 

이 그림이 제작된 16세기 당시에 가슴의 유두 상태로 여성의 임신 여부를 판단했다. 따라서 동생의 행위는 가브리엘의 임신 사실을 암시하며 바느질하는 여인은 장차 태어날 아기(왕의 자식)가 입게 될 배냇저고리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앙리 4세의 전처는 여왕 마고(La Reine Margot)’로 알려진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였다. 마르그리트는 왕의 아이를 낳지 못했고, 왕은 매력적이고 자식까지 낳아줄 수 있는 가브리엘과 어울려 다녔다. 왕은 한때 58명의 애첩을 거느린 호색가였다고 한다.

 

 

 

 

 

 

 

 

 

 

 

 

 

 

 

 

 

 

* 다카시 하마모토 《반지의 문화사》 (에디터, 2002)

* 원종옥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이다미디어, 2009)

 

 

 

가브리엘의 손에 쥔 반지는 앙리 4세와의 약혼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반지에 박힌 보석은 사파이어(sapphire)다. 이때 당시 앙리 4세가 교황으로부터 왕비와의 결혼무효 판결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브리엘은 ‘왕과 약혼한 애첩’이었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왕이 준 귀중한 증표를 손가락에 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의 반지는 단순한 약혼반지가 아니다. 왕권의 존엄성과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에 가브리엘의 정치적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브리엘은 왕의 조언자가 되었고, 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했다. 따라서 그림 속 반지는 왕과의 약혼을 알리는 증표임 동시에 ‘여왕을 넘어선 애첩’이었던 가브리엘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어트리뷰트(속성, attribute)다.

 

 

 

 

 

 

 

 

 

 

 

 

 

 

 

* 진중권 《성의 미학》 (세종서적, 2005)

 

 

 

진중권은 반지를 색다르게 해석했는데, ‘여성의 성기’를 암시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매의 근친상간 관계를 상상하기도 하는데,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왕과 가브리엘 사이에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1599년에 왕은 가브리엘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마르그리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혼식이 거행되기 일주일 전에 가브리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임신 6개월이었다. 가브리엘이 사산아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지만, 그녀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있다.

 

 

 

 

 

 

 

 

 

 

 

 

 

 

 

 

 

* 박경성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라는 책은 가브리엘 자매를 그린 그림에 ‘두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는 여인을 봤을 때 에로틱의 대명사 ‘비너스(Venus)’를 떠올렸던 걸까. 그렇지만 16세기 후반 작자 미상의 프랑스 화가가 그린 그림이 1519년에 세상을 떠난 다 빈치의 작품으로 소개된 내용은 잘못된 정보다.

 

 

 

 

 

 

 

 

 

 

 

 

 

 

 

* 에이민 E. 허먼 《우아한 관찰주의자》 (청림출판, 2017)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벌거벗은 자매를 쳐다보는데 집중한 나머지 ‘그림 속 그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자매 뒤에 또 다른 그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뜻밖의 사실을 잘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에 빠지게 된다. 모델의 하반신만 보이는 그림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자유롭게 추정할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이 남자라면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Ares)’), 아름다운 소년으로 알려진 아도니스(Adonis)일 수 있다. 아도니스는 사냥하는 도중 멧돼지의 엄니에 찔려 죽고 마는데, 땅바닥에 누워 죽어가는 아도니스의 모습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다.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비너스가 홀딱 반한 남자들이다. 모델이 여자라면 누워 있는 비너스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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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림 한번 얄궃구만.ㅋ

cyrus 2017-09-13 16:5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왕을 위해서 야릇하게 그렸을 거예요. ^^;;

sprenown 2017-09-1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군요...미술사학자들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요

cyrus 2017-09-14 13:48   좋아요 0 | URL
미술사학자들이 발견하고, 확인한 내용 중에는 추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을 공부하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7-09-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 중에는 동성애자가 많은 것 같아요. 예술과 동성애,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cyrus 2017-09-14 15:21   좋아요 0 | URL
정말 어려운 질문이군요. 동성애자 예술가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주류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도전 정신이 있었을 겁니다. ^^

2017-09-13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13:50   좋아요 0 | URL
그림 속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미술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꼬마요정 2017-09-1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의 미학‘이랑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재밌게 봤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데, 아직도 저는 그림이 어려워요 ^^

cyrus 2017-09-14 13:52   좋아요 0 | URL
제가 책으로만 미술을 공부했는데요, 저도 아직 그림 보는 것을 몰라요. ^^

2017-09-14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21:01   좋아요 0 | URL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미술 전문가라고 해서 그의 해석이 무조건 볼 수 없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