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늘 장영희 교수님의 1주기 추모행사가 생전 강단에 서던 서강대에서 개최하였다.
교수님의 유족이 주관하고 지인들의 참석하여 추모글을 낭독하였다.
이번 행사를 주최함으로써 어떤 삶을 살더라도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고인의 메시지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장 교수님의 추모행사 소식을 접하면서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주는 경외감의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예전의 시간이 떠올렸다.

작년 4월, 우스갯소리로 죽도록 일만 해야 한다는 일병 시절에  

장 교수님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생활관에는 3칸짜리 조그만 책장이 있었는데 비록 많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책장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군사 교본과 병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잡지와 음악 CD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입대 후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보지 못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책장에 눈에 띈 이 책을 집어 들어 읽게 되었다.
그 때는 ‘장영희’ 이름 석 자의 지은이에 대해 잘 몰랐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중학교 때 배운 영어 교과서의 집필에 참여한  

유명한 분이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독자들의 눈물을 훔쳤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음에 영양분을 주는 글

 

교수님의 에세이들은 접했을 때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장이 쉽게 읽혀졌고
자신의 투병 생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은 점에서  

왜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이 읽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통해 교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을 느꼈다.
교수님의 글 중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내용이 있다.
어느 날, 교수님에게 편지 한 통이 왔는데 30년 전 초등학생 시절에  

술집 주인의 딸이라고 해서 친하기를 꺼려했던
친구의 이름이 편지 주소에 적혀 있는 것이다.
교수님은 그 편지의 이름을 보자마자 마음 한 구석에 지워져 있을 줄 알았던
친구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30년 후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비록 그 친구와의 재회 내용은 없었지만 (이 글을 집필 이후에 만났을 수도 있겠다)
글로나마 친구에게 미안함을 나타냈다. 
 

이 글뿐만 아니라 책에 수록되어 있는 교수님의 에세이들을 읽으면
군 생활로 지친 내 마음에 영양분을 얻은 거 같았다.
영양분을 얻은 힘으로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을 보다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1달 후, 교수님의 사망 소식이 뉴스에 전파되었다.  

   

 

웃음으로 가려진 눈물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 후회를 많이 느끼게 되면 마음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신체가 쇠약해지고 병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님의 글이 항상 밝고 순수한 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의 몇 몇 에세이들을 보게 되면 신체 불구자로서의 삶과 투병 생활에 대해
잠시 자괴심과 절망감에 시달린 적도 있고, 우울감에 빠졌다는 내용도 있다.
고골의 글은 ‘눈물로 가려진 웃음’이라는데
교수님의 글은 ‘웃음으로 가려진 눈물’이었다.
교수님은 글을 통해 의학적으로 치유 불가능한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들을
자기 자신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마음 속에서도 투병 중이었던 것이다.
힘든 투병의 휴유증이 교수님의 수명을 단축하게 만들었을까?
조금씩 병들어 있는 마음을 치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불꽃같이’ 떠나버렸다.

교수님 부고 이후 다시 이 책을 읽었다. 
책에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내용은 교수님이 자신이 죽었다는 가상 설정 하에  

무슨 유언을 남기고 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몰랐었는데 이 글에 교수님이 멋진 유언을 남기셨을 거라는  

기대감에 읽어나갔다.
하지만 교수님은 얄밉게(?) 유언 같지 유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지었다.
교수님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란다.
하긴 이 글을 쓰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죽음이 자신 코 앞에 있었다는 것을  

느껴지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그 구절을 읽으면서 교수님의 유머에 웃음을 머금었지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책에 남긴 가상 유언이  

실제로 되어버린 것만 같아 슬펐다.
두 번째로 교수님의 글을 읽게 되어 ‘웃음으로 가려진 눈물’을 또 한 번 느꼈다.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교수님의 삶은 이 책의 부제처럼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살다 갔다.
교수님이 처음 쓰고 출판한 처녀작이 유언처럼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책 앞표지에 있는 불나방이 꼭 교수님을 상징하는 거 같다.  

(누구든지 이 책 표지 디자인을 보면 나비라고 생각하지만)

하늘을 훨훨 날기 위해 온갖 성장통을 감수하면서
자라나지만 결국 불꽃을 향해 뛰어들어 타버리는 것처럼.....
먼저 떠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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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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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솝 우화와 동물 농장 

 

어렸을 때, 집의 책장에 자리하고 있는 아동문학전집에는 ‘이솝 우화’가 있었다. 
 

세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순진한 아이는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를 보면서

착한 행동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나쁜 행동으로 살 것인가에 따라서
평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는 다 읽은 책을 덮고나서 다짐한다.

"베짱이처럼 살지 않겠다고....."

이솝 우화가 어린 나에게 권선징악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솝 우화’는 책장 구석 한 켠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집의 책장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에는 ‘동물 농장’이 있었다.

세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단 맛, 쓴 맛 본 남자는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이솝 우화’에 눈길을 준다.
이 책도 단순히 현대판 ‘이솝 우화’일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하지만 우화가 주는 특유의 유머와 페이소스를 한번 더 느끼고 싶은 맘에 읽었다.
읽고 난 후 책을 덮고 나서 남자는 생각한다.  

 

"동물농장이라는 곳이 진짜로 존재하는 곳이구나....."  

  

 

 50년 후, 동물 농장은...  

 

이 책의 번역자 도정일 교수는 작품 해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 
                                               - p 151, ‘작품 해설 [동물농장]의 세계’ 중에서 -

 
   


오웰이 이 책을 집필하고 있던 1940년대에는 소련의 스탈린이 정적 트로츠키를 축출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있을 때였다. 스탈린은 나폴레옹, 트로츠키는 스노볼  

그리고 나머지 동물들은 당시 소련 국민을 뜻한다. 그리그 그들의 에피소드는  

스탈린 체제의 사회상을 풍자한 것이다.
냉전의 벽과 철옹성 같았던 소련은 무너지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

과연 50여 년 전의 시대상을 풍자하고 있는 이 책은 아직까지도 유효한가?

그렇다. 동물농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의 동물농장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간 세태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동물들은 농장주 존즈 밑에서 안위된 생활을 누리지 못한 채 죽어라  

일만 하고 고생한다.
이는 곧 우리 사회의 ‘워킹푸어(working poor)’, 즉 ‘근로 빈곤층’이다.
그 동물들 중에 나폴레옹이라는 돼지는 농장의 생활 개선을 위해 동물 반란에 참가하고
그 공로로 농장을 이끌어가는 존재가 된다. 농장에서의 돼지가 동물들 사이에서  

계급 지배력이 높은 점을 이용하여 동물들을 선동하고 적인 스노볼을 쫓아냄과  

동시에 자신이 다른 동물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웃 농장주인 필킹턴과 화친을 맺게 되는데 결국 나폴레옹은 자본가와  

협력하여 특권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노동자, 즉 ‘노동 귀족’이다.  


소설은 동물들이 필킹턴과 나폴레옹의 만남을 그냥 창 밖에 지켜보고 있는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작가는 잘못된 권력 부패 사회를 비난함과 동시에
이를 그냥 의도적으로 묵시하고 있는 정치 앞에서 무기력한 대중을 비꼬고 있다.
벤자민이라는 당나귀는 여기에 나오는 동물들에 비해 등장 비중은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 당나귀는 동물 반란 이전이나 이후에도 여전히 농장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정치에 무관심을 가지며 정치를  

참여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책무를 기피하는 정치적 모라토리엄 인간인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화는 동물을 의인화하여 그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 사회를 풍자하고 교훈을 주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단순히 텍스트를 읽다보면 독자는 사회 풍자에 대한  

페이소스만 얻을 뿐 우화가 전달하고 싶어 하는 문학의 현실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결국 우화는 특유의 아우라를 발휘할 수 없게 되고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의 우화인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소설 속의 농장이 현실감이 느껴졌다.
이 책은 우화가 주는 재미와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아니, 지금도 동물농장은 문을 닫지  

않았음을 경고하고 있다. 소설은 점점 부패하고 망가져가는 농장의 모습을 끝으로  

마무리 짓는다.  만약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면 비참한 동물들의 생활이 계속  

이어져나가거나 동물들 중에 새로운 제3자가 등장하면서 나폴레옹 체제를 무너뜨려  

새로운 지배 사회가 등장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 된다’고 토인비는 말했다. 동물농장의 역사도 그렇게 될 것이다.

 아마도 동물농장은 영원히 문을 닫지 못할 거 같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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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열린책들 에서 나온 버전으로 동물농장 을 봤는데 무척 몰입해서 흥미진진했던게

기억나네요.

도정일 이 번역한 민음사 판도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0-11-06 15:54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 버전이랑 민음사 버전이랑 번역에 약간 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재미있으면서도 독자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는,, 정말 훌륭한 작품인거 같습니다.

2016-11-04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1-04 14:21   좋아요 0 | URL
부끄럽네요. 옛날에 썼던 글을 보면, 앨범에 있는 아기 돌 사진을 보는 것 같아요. ㅎㅎㅎ

이때 서재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서 글에 서툰 표현이 많습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과학의 변경 지대 -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
마이클 셔머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황우석, 오점의 신화  

 

  2005년 11월 22일,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에서 [황우석 신화의 난자 매매 의혹]이라는 제목의 내용이 방영되었다. 방송 내용은 줄기세포 연구팀의 여성 연구원의 난자 제공이  

있었고, 논문 조작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 이후 논란의 후폭풍이 컸다.  

생명 윤리론과 국익론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광고 중단이 불거지고 방송 잠정 중단,  

결국 프로그램의 사과문 방영 등으로 이어졌다. 문제적 방송이 나가기 전,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 배아 연구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황 박사의 존재는 우리나라가 자랑할 수 있는 국민 과학자였고 우리나라에도 처음 노벨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무척 컸었다. 사태가 커지면서 황 박사 연구팀 내부에서도 엇갈린 주장이 나오면서 법정 싸움까지 가고 말았다. 결국 1개월 뒤에 줄기세포는 없었다는 서울대의 잠정결론이  

발표되었고 황 박사가 발표했던 사이언스 지의 과학 논문은 철회되었다. 황 박사는 법정  

공방 끝에 논문 조작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였고 특히 줄기세포에 희망을 가지고 있던 불치병 환자와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황우석 신화는 연구윤리 부재로 인해 ‘황우석, 오점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   

     

 

정상 과학과 비 과학 사이  


  이 책은 황우석 사태 전에 우리나라에 출판된 것이다. 황우석 사태 이전에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도 과학 연구 결과 조작 사건이 있었다. 원서는 2001년에 발간되었는데  만약 황우석 사태 이후에 나왔으면 분명 저자 입장에서는 황 교수의 에피소드를 자신의 책 내용 구성에 빠뜨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책 제목이 말하는 ‘과학의 변경 지대’란          정상 과학과 비(非) 과학 사이에 있는 정확한 기준이 없는 애매모호한 과학을 뜻한다.       예로 든 변경 지대의 과학은 심령과학에서부터 최근 이론 물리학에서 각광받고 있는        초끈 이론까지 다양하다. 심령과학은 엉터리 과학이라고 치더라도 초끈 이론도               변경 과학의 경계에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과학도서  출판 유형을 보면        초끈 이론에 관한 대중적인 책이 많이 나왔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이론에 대한          관심사가 크다는 것이다. 
  

 

 지식 필터  


  이와 같은 과학의 대중적 열풍에 대해서 저자는 과학 연구 내용이 신뢰성이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 “지식 필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대중들이 유행했던  

비(非) 과학 연구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과학자들의 의도적인 왜곡, 잘못된 과학 연구  

방법,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를 찾고 불리한 증거를 배제, 무시하는 ‘확인의 편견’,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영향 그리고 대중들의 극단적인 믿음이 있었다.  

지식 필터를 가짐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비(非) 과학의 유형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법정에서 드러낸 황 교수팀의 불법적인 과학 연구 절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연구팀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연구 지원 투자 그리고 ‘황우석 신드롬’을 탄생시킨 언론들의 

부추기기와 대중들의 믿음.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지식 필터를 적용하면  

결국 비(非) 과학의 유형에 일치한다. 

    

 

 

바보가 된 대중들 

 

  지금 대중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초끈 이론도 엉터리 과학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는 대중의 무조건적인 과학 신봉이 어떤 결과를 

나오는지 보여준 사례이다. PD 수첩 방송 이후 황 교수 동정론자들은 방송 관계자들뿐  

아니라 방송사에 대해 비난을 하였다. 동정론자들의 여론에 힘입어 다수 절반의 대중들도 방송국으로 비난의 화살을 겨냥하였다. 그러나 속속히 황 교수의 진실이 드러남에 따라  

반대로 황 교수를 제물로 삼아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결국 대중들은 자신 스스로 바보라는 것을 말해주는 꼴이 되었다. 진정한 과학자가 돼서 정상적인 과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는 연구 방법이 정립되어야 한다. 올바른 과학 연구 방법은  

과학자로서의 연구 윤리와 생명 윤리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광범위한 과학 앞에서  

대중들이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과학지식 습득과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비판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과학이라는 넓은 지대 앞에 서 있다. 거기에는 ‘변경 지대’라는 경계  

구역이 있다. 올바르고 제대로 된 과학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넓은  

과학의 지대 속에서 눈 뜬 장님이 되어 헤매고 있을 것이다.         

 

 

 

 

관련 내용 출처 및 링크 

 

위키백과 [PD수첩의 황우석 사건 보도]  

http://ko.wikipedia.org/wiki/PD%EC%88%98%EC%B2%A9%EC%9D%98_%ED%99%A9%EC%9A%B0%EC%84%9D_%EC%82%AC%EA%B1%B4_%EB%B3%B4%EB%8F%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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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책 

  제대 후 나는 '정신적 증세'를 치유하기 위해 어김없이 도서관에 찾아갔다  

  예전처럼 '010 도서학, 서지학'부터 마지막 '990 전기'까지 책장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020 문헌정보학' 쪽에서 이 책을 3년 만에 만났다 

  책 상태는 그럭저럭 양호한 걸로 보아 그동안 대출자의 손길을 많이 대하지 않은거 같았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책의 내용은 유럽의 저명한 많은 문학 교수들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문학도서 1001권을 

  뽑아 요약, 소개한 글이다. 제목과 양으로 봐서 훌륭한 책일 것 같으나...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는 분들이 딱 제목보고 반하기 쉽상일텐데

  이 책을 보면 "문학도서 1001권" 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인 유럽문학을 기초로 하여  

  문학의 변방인 북유럽, 아프리카와 아시아 문학도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독자의 입장으로 이 책의 치명적인 단점은 

  이 책 1001권 중의 500권 정도는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작가와 책이라는 것이다 

  수치는 나의 추측이지만 '1900년대 쪽'부터는 처음 보는 작가와 책이 많았다 

  (비록 3년 전에 출판했기에 지금 그 사이에 번역되어 있는 책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의 간략한 소개는 여기까지고 왜 이 책이 나에게 영향을 준 이유는 

  나에게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는 목표를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차례와 내용의 질로 봐서는 썩 훌륭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도서들을 대충 열거하자면 

     나관중 - 삼국지 

    다니엘 디포 - 걸리버 여행기 

    도스토예프스키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스콧 피츠제럴드 - 위대한 개츠비  

  우리가 위대하다고 일컫고 꼭 읽어야 하는 고전들은 소개되어 있다

  삼국지, 걸리버 여행기...  예전 어렸을 때 읽었다. 하지만 한 번 읽었다고 그것이 

  진정한 독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용으로 

  된 삭제판이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와 피츠제럴드의 저 유명한 대표작을 포함해서  

  문학사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살면서 한 번도 읽어보지도 않았다(!)   

  나름 동네 공공 도서관을 많이 드나들었건만 예전의 독서 습관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독서란 한 권을 여러 번 읽고 그 한 권을 통해 또 다른 

  연관적인 독서를 하면서 폭넓은 감상과 함께 새로운 시야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1001권의 문학 도서들이지만 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한 번 읽고 싶다는 

  오기가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독서 방식일 수도 있다 

  죽기 전에 1001권이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 것은 둘째치고 

  죽기 전에 번역되어 있는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월이 지나 현실주의자가 되어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를 등한시하게 될 지도 모른다

  더욱 서글픈 것은 앞날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내가 오래 산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만 예기치 않은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은가 (memento mori~) 

  하지만 예전처럼 아무 생각없이 읽는 것보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있는 동안 전 세계 인류 역사적으로 독자들이 많이 애독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정신적 성장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처음으로 인생이 달려있는 진정한 독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마지막 구절로 마무리짓겠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다른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가지 않는 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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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는 3년 전 도서관이다  

  3년 전에는 책의 제목이 눈에 띄어 읽으려했었지만 

  '두께의 압박' 포스에 밀려 빌려 보지는 않았고, 이 책은 그냥 나에게 스쳐지나가는  

  그저그런 책이었다

  나는 도서관에 오면 십진분류법에 표시되어 있는 모든 책장을 훑고나서 보자마자 

  Feel이 꽂힌 책이 있으면 3분 관찰하고 읽을만하다 싶으면 빌려가서 읽곤했다

  그리고 도서관에 책을 빌리게 되면 빌릴 수 있는만큼 읽는다

  도서관 1회 5권 대출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5권 모두 빌릴 수 있으면 꼭 5권 빌려와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도서관 한 번 오면 3시간만에 빌리고 싶은 책 두 세권 고르게 마련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습관을 비유하자면 '無 생각 과식, 편식형 독서' 라고 해야하나...?  

  일단 책 읽으러 도서관에 왔건만 과연 내가 무슨 책을 읽으러 왔는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읽고 싶은대로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고르고나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많다  

  지금 그 때의 독서 습관에 대해 생각해보면 문제점이 너무 많이 있었다 

  일단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계획을 짜지 않고 도서관에 오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그리고 닥치는대로 내가 읽고 싶은 책 5권을 빌려 읽게 되면 대부분 절반은 못 읽는다  

  거기서 읽게되는 책은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이고 영양가 없는 독서가 되는 것이다

  복합적 문제를 가진 독서는 바로 악영향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2년동안 나라의 의무를 다하고 왔을 때는 '머릿 속 공허감'이라는 영양 결핍 증세가  

  나타났다.  무작정 읽기의 영향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 2부 내용은 다음 마이페이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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