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토요일.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이날에만 내가 보고 싶은 연극이 무려 세 편이나 상연된다연극 한 편은 서울에서, 두 편은 대구에서 한다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이 겹치는 데다가 서울과 대구를 오고 가는 시간도 부족하다결국 서울에서 하는 연극은 포기하고, 대구 연극 두 편을 관극(觀劇)하기로 했다.







내가 서울에 가서 보고 싶었던 연극은 일본 극작가의 작품이다. 매년 이맘때에 일본 극작가의 희곡 작품을 낭독극 형식으로 선보이는 현대 일본 희곡 정기 공연이 있다. 2002년 도쿄에서 시작된 정기 공연은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한다.






 










*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엮음 현대일본희곡집 7(연극과인간, 2016)

* 기타무라 소, 김유빈 옮김 호기우타(지만지드라마, 2024)




이번 공연에 공개되는 극작품은 마쓰이 슈(松井周) <지하실>기타무라 소(北村想)호기우타(寿歌). 공연 장소는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이다. 낭독 공연은 어제 금요일에 시작되었고, 첫 공연작은 <지하실>이었다.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연속으로 연차를 쓰지 못하는 바람에 금요일에 상연된 <지하실>을 보지 못했다.

 















* 윤영선, 윤성호 죽음의 집(책공장 이안재, 2022)




<지하실>을 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의 연출가와 출연 배우 때문이다. <지하실>의 연출가는 윤성호. 작년에 내가 소극장에서 관극한 죽음의 집을 쓴 극작가다. 죽음의 집2007년에 세상을 떠난 극작가 겸 연출가 윤영선의 미완성 희곡이었는데, 윤성호가 완성했다.

















* 나탈리 사로트, 이광호 · 최성연 옮김 아무것도 아닌 일로(지만지드라마, 2023)




<지하실>의 출연진 명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박세인 배우문가에 배우다. 박세인 배우는 희곡 전문 가게 <인스크립트> 공동 대표. 202312, <인스트립트>에서 역사적인 첫 번째 낭독극 공연이 진행되었는데, 작품은 바로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2인극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박세인 배우와 문가에 배우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공연의 페어(pair)’로 만났고, 나는 두 배우의 낭독극을 관극했다.


공교롭게도 연희동에서의 <인스크립트>의 삶은 오늘이 마지막이다<인스크립트> 시즌 2는 다음 달부터 혜화동 대학로에서 새롭게 시작된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2년마다 대구에서 원로 연극제가 펼쳐진다대구 경북에서 활동하는 원로 연극배우들과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연극 축제다지난주에 이미 첫 연극 작품이 무대에 올랐는데, 경주 출신 극작가 손기호<복사꽃 지면 송화꽃 날리고>지난주 토요일 저녁 공연을 봤다. 

















* [품절] 손기호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연극과인간, 2020)




<복사꽃 날리면 송화꽃 지고>2011년 서울 연극제 대상 수상작이다. 손기호의 희곡집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에 수록되어 있다. 이 희곡집에 표제작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가 실려있는데, 세 극작품은 경주를 배경으로 한 경주 3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복사꽃 날리면 송화꽃 지고>는 경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극 중 인물들은 사투리를 쓴다. <복사꽃 날리면 송화꽃 지고>노부부의 소탈하면서도 정겨운 대화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 배삼식 화전가(민음사, 2020)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셰익스피어 전집 10: 소네트. (민음사, 2016)





원로 연극제두 번째 작품은 배삼식화전가.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경북 안동의 어느 시골에 환갑을 앞둔 닭실할매김 씨를 위해 두 며느리와 세 자매는 환갑 잔치 대신에 화전놀이를 준비한다. 여인들은 술을 마시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나눈다화전가는 김 씨의 막내딸 봉이가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소네트 15을 읊으면서 시작된다.








내가 예매한 <화전가> 공연은 오후 3에 시작된다. 이 작품을 다 보고 나면 달서아트센터로 이동해서 저녁 7시에 하는 중국의 고전 잡극(雜劇) <회란기>를 관극한다. <회란기>는 서울시극단 단장 고선웅이 연출했다서울에 가면 볼 수 있는 연극을, 그것도 대구에서 오늘 하루만 하는 연극을 놓친다는 건 연극쟁이로서 어리석은 일이다.

















* 이잠부, 문성재 옮김 회란기(지만지드라마, 2019)

※ 흰색 표지로 된 구판은 2012년에 출간됨, 당시 출판사는 지식을만드는지식





<회란기>원제는 포 대제가 슬기롭게 석회 동그라미로 판결을 내린 이야기라는 뜻의 <포대제지감회란기>(包待制智勘灰闌記). 포 대제는 판관 포청천으로 알려진 포증(包拯)이다. 포청천은 포증의 별명이다. <회란기>의 포 대제는 남편을 독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친자식마저 빼앗기는 위기에 처한 여인을 구제한다


기생 출신의 장해당은 졸부 관리인 마균경의 첩이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수랑이라는 이름의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다. 반면 마균경의 본처 마 부인은 자식이 없어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마 부인은 남편 몰래 관청에서 일하는 조 영사(令史)와 바람을 피운다. 두 사람은 마균경을 죽이기로 모의한다.

 

마 부인과 조 영사의 계략에 걸려든 장해당은 간통녀로 오해를 받아 남편에게 학대당한다. 해당은 국 한 사발을 마균경에게 대접하는데, 마 부인은 국에 독약을 몰래 넣었다. 해당은 졸지에 남편을 독살한 과부가 되었고, 마 부인은 남편의 유산과 해당의 아들을 차지하기 위해 송사(訟事)를 신청한다. 마 부인과 조 영사는 송사에 이기기 위해 해당의 출산을 도운 산파들과 관아의 관리들을 매수한다. 궁지에 몰린 해당은 모진 고문을 받게 되고, 고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거짓 자백을 한다.


해당은 개봉부의 사령(使令)으로 일하는 친오빠를 우연히 만난다. 개봉부는 포 대제가 근무하는 관청이다. 해당의 친오빠는 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포 대제에게 판결을 의뢰한다. 개봉부에서 다시 만난 장해당과 마 부인. 포 대제는 석회로 바닥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그 안에 아이를 세우게 한다. ‘하얀 동그라미는 진짜 친엄마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한 장치다.

















* 한국브레히트학회 엮음 브레히트 선집 1, 2, 3(연극과인간, 2015)

※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희곡 선집 3권에 수록됨



 

1924년 독일에 처음으로 번역된 <회란기>의 번안 제목은 하얀 동그라미.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포 대제의 재판 장면을 재해석한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썼다.








오늘 공연 관극을 위해 어젯밤부터 뜬눈으로 한국, 중국, 일본 희곡을 전부 다 읽었다. 이렇게 희곡을 몰아서 읽는 것도 흔치 않다. 게다가 놀라운 사실은 세 편의 희곡을 쓴 극작가와 연극을 만든 연출가 모두 브레히트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지하실>을 번역한 연극 전문 번역가 이홍이2015년에 상연된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번역했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의 연출가 정철원(극단 한울림 대표)대구시립극단 예술감독 시절인 2021년에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 엄마와 그 자식들>을 연출했다.

 

극작가 배삼식의 데뷔작1998<하얀 동그라미>.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각색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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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베이컨 - 프랜시스 베이컨의 파란색과 함께 통과하는 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야닉 에넬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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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붓질은 포악하다

그는 붓을 휘두르면서 모델의 얼굴을 때린다







붓에 맞은 입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진다

검정, 회색, 빨간색이 불길하게 뒤섞인 피부는 거칠거칠하다

베이컨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한 빨간색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보인다.







베이컨의 초상화와 인물화를 만나게 되면 지옥도(地獄圖)가 떠올린다.고어(gore: )’로 가득한 그림들이 유명해지자, 대중은 베이컨을 폭력의 화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대중의 감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본인은 즐거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는 야만과 전쟁이 판치는 이 세상이야말로 자신의 그림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비판한다베이컨의 일침은 틀리지 않았다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베이컨은 한술 더 떠서 지옥은 바로 이 세상이야!”라고 말했다.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어두침침한 그의 그림은 볼 때마다 무섭다. 여기서 베이컨 그림의 기괴한 매력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고민한다. 폭력잔혹. 살벌한 단어를 쓰지 않고, 베이컨의 그림이 덜 무섭게 보이도록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책이 바로 블루 베이컨(Blue Bacon)이다.


이 책을 쓴 야닉 에넬(Yannick Haenel)은 청소년 때부터 베이컨을 좋아한 작가다. 그는 베이컨의 작품들이 전시된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er), 그것도 한밤중에 혼자 관람한다.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혼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일은 축복이다. 하지만 저자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베이컨의 그림들과 함께한 하룻밤이 마치 지옥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저자는 베이컨이 만든 지옥의 쓰라린 맛을 느낀 이후로 편두통에 시달린다하룻밤의 그림 감상의 후유증이다하지만 푸른 기운이 감도는 베이컨의 또 다른 그림을 보자마자 그의 머리를 콕콕 찌르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편두통에 짓눌린 저자의 마음을 치유해 준 베이컨의 그림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Water from a Running Tap)이다이 그림은 베이컨이 세상을 떠나기 십 년 전인 1982년에 완성되었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난폭한 베이컨이라는 수식어가 나오게 만든 검은색이 가득한 그림들과 다르게 아주 평범하다. 노란색 배경 한가운데에 푸른색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만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베이컨의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파란색에 흠뻑 젖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앞에 서 있었다. 물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물의 시원함은 우리를 가득 채워준다. 그 시원함 덕분에 유익한 빛이 내 머리 주위로 흘러들었다. 나는 점점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숨도 잘 쉬었다.


(47쪽)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기분 좋은 청량함을 느낀다저자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색상처 없는 나라로 이끄는 빛으로 비유한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 천국이다


블루 베이컨 그림 없는 미술 책이다저자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단어로 이미지를 설명한다이 책을 펼치자마자 베이컨의 기괴한 그림들이 불쑥 튀어나와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일은 없다유명한 블랙 베이컨’을 만나기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이컨의 파란색 그림을 먼저 알고 있으면 좋다. 그러면 검은색에 가려져 있던 색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베이컨은 붓으로 자신과 인물들을 분해했다블루 베이컨베이컨의 삶에 칠해진 검은색을 분산시켜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cyrus의 주석>

 



* 21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1]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 42




 

 데이빗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흠잡을 데 없이그려진 자신의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언급한다.


[1] 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25년간의 인터뷰 (디자인하우스, 2015).





* 51




 

 앙토냉 아르토반 고흐의 까마귀가 지구를 황폐화하는 악령에 맞서기 위해 세워진 허수아비라고 확신했다. [2]

   

[2] 앙토냉 아르토, 이진이 옮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읻다, 2023), 조동신 옮김,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도서출판 숲, 2003, 절판)





* 58




 

 우리는 우리 삶의 질료가 갇혀 있는 이 같은 고통을 인식하지만, 베이컨은 그것에 예술이라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경험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정도 예민함의 차원에서는 사는 것이 참을 수 없지만, 것의 극히 짧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림은 그 고통에 굴하지 않고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랭보 나는 나의 풍요가 어디서나 피로 얼룩졌으면 좋겠어라는 싯구[3]에 그것이 있다.

 

[3] 시구(詩句)’가 올바른 표현이다. 인용된 시구가 있는 시의 제목은 착란 I: 어리석은 처녀. 출전: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78




 

 조르주 바타유는 라스코의 벽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 풍요로움의 놀라운 광채를 위해 태어났다고 느낀다.”

   

[4] 조르주 바타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워크룸프레스, 2017).





* 119




 

 질 들뢰즈는 그가 베이컨에 관해 쓴 저서[5]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불쌍한 고기 같으니!” 이보다 더 진실한 외침은 없다. 그날 밤 베이컨의 그림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5]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08).





* 128




 

 랭보의 시에 등장하는 사랑의 열쇠라는 시구[주6]는 나를 꿈꾸게 한다.

   

[주6사랑의 열쇠이라는 제목의 시에 나온다. 출전랭보김현 옮김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163




 

필립 솔러스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 166




 

 15세기에 회화 예술을 이론화한 레오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란 분수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껴안는 것이라고 썼다. [주7]


[7]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김보경 옮김, 회화론 (기파랑에크리, 2011), 노성두 옮김, 알베르티의 회화론 (사계절, 2002년, 절판).





* 177~178







 

 1953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여러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레슬링 장면을 기록한 뮤브리지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두 인물또는 레슬러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뮤브리지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

 




* 217




 

 앙드레 브르통<나드자>(Nadja)[주8] 서두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선호했다.

   

[주8앙드레 브르통, 오생근 옮김, 나자 (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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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회의론자 - 신경과학과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희망의 과학
자밀 자키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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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바이러스는 혼자서 살지 못한다. 세포를 만나야 살 수 있다. 바이러스는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더 큰 세포에 빌붙는다. 세포를 장악한 바이러스는 혼자 있을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인다. 바이러스는 자신과 똑같은 바이러스를 계속 만든다. 이때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 바이러스가 증식하면 세포는 죽는다.


냉소주의(Cynicism)는 성격이 쌀쌀한 바이러스다. 냉소주의가 좋아하는 먹잇감은 마음이 가냘픈 사람이다. 마음이 가냘프면 외로움을 더 잘 느낀다. 그리고 세상이 더 어둡게 보인다교활한 냉소주의는 마음이 가냘픈 사람에게 다가가서 귀띔한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잘 살 수 있어.” 마음이 가냘픈 사람은 냉소주의자가 된다. 냉소주의자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며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냉소주의적 처세술에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듯이 냉소주의자는 능수능란하게 변장한다냉소주의자는 음모론자로 변신해서 사람들을 이간질하여 갈등과 싸움을 부추긴다.


교활한 냉소주의에 속지 않으려면 백신(vaccine)을 접종해야 한다. 냉소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최고의 백신은 회의주의(skepticism)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회의주의를 냉소주의의 동의어로 오해한다. 냉소주의에 이미 감염된 사람은 회의주의 백신 접종을 거부한다. 간사한 냉소주의자는 가짜 회의주의자로 변신해서 냉소주의에 감염된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희망찬 회의론자과학적으로 증명된 냉소주의의 위험성회의주의 백신을 꼭 맞아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회의주의자는 지식을 의심한다. 지식을 의심하는 태도는 지식을 완전히 믿지 않아서 거부하는 냉소주의와 다르다. 회의주의자는 냉소주의자처럼 상대방의 견해를 매몰차게 대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존중한다. 그런 다음에 상대방의 견해가 확실한지 아닌지 판단한다. 냉소주의자는 똑똑한 척한다. 그래야 자신의 결점을 철저히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회의주의자는 자신 또한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 책의 저자는 신경과학을 연구한 심리학자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을 똑똑하지 않은 전문가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책을 썼다희망찬 회의론자는 회의주의자의 고백록이다. 저자는 과거에 냉소주의자로 살아왔고, 지금도 가끔 냉소주의의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기면 고인이 된 신경과학자이자 친구인 에밀 브루노(Emile Bruneau, 1972~2020)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에밀 브루노는 이 책이 태어나게 해준 산파이자 희망찬 회의주의자. 에밀은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있지만 않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자신의 생각과 다른 상대방을 만나면 먼저 다가와서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회의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최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저자는 에밀을 만난 이후로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속이는 냉소주의를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냉소주의자는 공감과 연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뿐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냉소주의자의 이중성을 잘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의 약점을 집요하게 찾아내는 냉소주의자가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겉멋이 든 냉소주의자는 자기만족을 위해 지금도 요리조리 변신한다.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을 주도하는 익명의 개인, 음모론을 퍼 나르는 정치인, 사이비 종교의 교주, 이해타산이 빠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비웃는 사람들희망찬 회의론자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냉소주의자들의 허울을 벗긴다.


백신 거부론자들은 백신을 치료제라고 우긴다. 그들의 거짓 논리를 믿는 사람들은 백신 접종자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꺼림칙하게 느낀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기 시작한다.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약이다회의주의 백신은 우리의 마음 주변을 기웃거리는 냉소주의를 예방하는 삶의 태도다. 회의주의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회의주의로 둔갑한 냉소주의를 파악할 수 있다.


거짓 정보와 냉소주의는 끈질긴 불치병이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회의주의 백신은 죽을 때까지 계속 맞아야 한다우리는 끊임없이 정확한 정보를 만날 수 있도록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회의주의 백신의 주요 성분은 희망이다. 희망찬 회의주의자는 어려운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 사전에 냉소라는 단어는 없다. 회의주의자 사전에 있는 희망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생각을 신뢰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하는 마음이다. 회의주의 백신을 맞으면 상대방의 마음에서 나오는 정직한 온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회의주의자는 따뜻하다. 다정한 회의주의자는 상대방의 차가운 손을 감싸안을 수 있다.







<회의주의자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34




 

 은행원의 아들인 디오게네스[1]는 자기 마을의 통화를 위조한 죄로 고소당해 추방됐고 아테네 거리를 전전하며 음식을 구걸하고 큰 도자기 단지 안에서 잠을 자면서 살았다.



[1] 은행원에 해당하는 원문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환전상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디오게네스의 생애가 나오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의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6을 번역한 이정호 교수(정암학당 이사장) 환전업자로 번역했다. 당시 환전상은 돈을 빌려주거나 돈을 주조하는 일도 했는데, 은행의 원시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대부분 경제사학자들은 은행의 역사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희망찬 회의론자의 저자는 디오게네스가 화폐를 위조했다고 주장하지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디오게네스의 아버지는 나랏돈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돈을 위조한 죄로 추방당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환전업자인 디오게네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화폐를 맡겼는데, 일에 미숙한 디오게네스가 화폐를 위조했다. 결국 아버지는 감옥에 끌려가서 죽었고, 디오게네스는 추방당했다(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 나남, 2021, 494~495).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참고한 고대 문헌들이 전부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은 고대 철학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책이다. 라에르티오스의 책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면 고대 철학사에 해당하는 내용이 빈약했을 것이다.





* 193




 

 19세기 러시아 왕자[2]이자 자연주의자(후에는 무정부주의자로 투옥됨)였던 피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2]은 시베리아를 여행하며 야생을 관찰했다. 그는 저서 상호 원조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이 생명의 기본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 194




 

 오드리 로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기 돌봄은 공동체와 결속에 그 뿌리를 둔다. 이 현상은 크로프트킨[2]이 목격한 생명의 본성과 심리학 및 뇌과학이 인간에 대해 알려주는 사실과 일치한다.

 


[2] 왕자의 원문이 ‘prince’로 추정한다면, ‘prince’를 왕족 출신의 왕자가 아니라 군주나 귀족의 칭호로 번역해야 한다. 굳이 원문을 확인할 필요 없이 러시아 왕자는 오역이다. 왜냐하면 크로포트킨은 왕족 출신이 아니며 많은 영지와 농노를 소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크로포트킨의 이름 ‘Peter’를 러시아식으로 표기하면 표트르194쪽에 크로프트킨이라는 오자가 있다.





* 301, 302






 

프러포절 프로포절(proposal)

포르포절 프로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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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02-18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루스님의 글에서는 주석과 정오가 제일 재미있어요. 자밀 자키라는 사람이 영어로 쓴 책인지, 혹시 다른 언어로 쓴 글을 영어로 옮긴 책을 중역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은 중역하는 일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제법 많았었죠.

시루스님이 지적하는 다양한 오류들을 번역자가 놓쳤다면, 편집자라도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베테랑 번역자들은 나라와 시대 상황에 따른 내용들까지 찾아보면서 일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냥 원문을 우리 말로 옮기기만 하는 선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오래전 제가 편집을 맡았던 역사책 번역자도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었는데, 번역 초고가 정말 형편없었어요. 글도 비문이 많아서 아예 고쳐써야했고, 시루스님이 주로 지적하시는 이름 표기법이나 유명한 사람이나 사건의 실제 상황들이 많이 잘못되어 있었어요. 원서가 독일어 책이었는데, 나중에는 제가 아예 원서와 독일어 사전을 놓고 한 문장씩 다 검증해야 했어요. 역사적 상황들도 많이 찾아보고, 번역된 글이 검색이 안되면 영문으로 찾아보기도 했구요. 그렇게 열심히 작업했는데, 당시 번역자는 제가 뭘 얼마나 고쳤는지 알지도 못하더라구요.

cyrus 2025-02-20 09:21   좋아요 0 | URL
주석과 정오표가 많은 저의 서평은 ‘배꼽이 큰 배’라고 할 수 있어요.. ㅎㅎㅎ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보라고 만든 건데 실제로 댓글로 반응을 해주신 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번역을 해본 적이 없지만, 번역을 잘하려면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식과 표기법이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거든요.
 














대한민국 연극제 대상 기념 앵콜 공연

<평화>

 

연극 저항집단 백치들

원작: 아리스토파네스

연출, 창안: 이상명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2025년 2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플라톤(Plato)의 대화편 향연소크라테스(Socrates)와 그의 친구들이 술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향연(아카넷, 2020)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

* 플라톤, 천병희 옮김 플라톤 전집 1: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도서출판 숲, 2017)





술 잔치에 참석한 아리스토데모스(Aristodemus)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날이 밝아오는 무렵에 잠에서 깨어난 그가 본 것은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었다. 요란했던 술 잔치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비극 작가 아가톤(Agathon),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였다아리스토데모스의 증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두 사람 앞에서 비극 작가와 희극 작가는 같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향연》 223d). 지칠 대로 지친 아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는 잠들어버렸고, 소크라테스는 집으로 돌아갔다. 향연은 이렇게 끝이 난다
















* 천병희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




그리스 비극과 희극을 모두 번역한 천병희 교수향연의 결말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비극과 희극을 다 쓸 줄 아는 시인으로 해석했다(그리스 비극의 이해, 16쪽).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아리스토파네스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도서 출판 숲, 2013)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투키디데스천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서출판 숲, 2011)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을 현대극으로 다시 만든 <연극 저항집단 백치들>의 평화 희비극이다. 희비극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비극으로 시작해서 희극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희비극의 주인공은 비극적 파탄에 이르게 되지만, 상황이 역전되어 행복을 맞이한다.


작품의 주인공 트리가이오스(Trygaeus, 남우희 분)는 길고 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지쳐 있다. 그는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트리가이오스]


평화를 되찾아 무너진 세상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그는 인간 세계의 전쟁을 구경만 하는 신들을 직접 만나 따지기 위해 커다랗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풍뎅이 막시무스(김학수 분, 원작은 쇠똥구리다)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기로 결심한다하지만 트리가이오스의 하인(이영찬, 강민주 분)은 그가 미쳤다면서 비웃는다.


트리가이오스는 하늘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신은 헤르메스(Hermes, 유지원 분)제우스(Zeus)와 다른 신들은 전쟁이 싫어서 다른 곳에 가버렸고, 전쟁(정성태 분)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전쟁이 절구통에 모든 나라를 넣고 절굿공이로 빻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을 따르는 두 명의 부하 혼란이(전소영 분)’절망이(성창제 분)’는 절굿공이를 들고 다닌다. 기세등등한 전쟁패거리는 평화(이연주 분)’를 구덩이에 가둔다.


트리가이오스는 평화를 구출하기 위해 헤르메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신들에게 전쟁의 위험성과 평화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전쟁을 피해 멀리 떨어져 살아온 신들(최예나, 이영찬, 강민주 분)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한다. 트리가이오스는 전쟁을 방관하는 신들의 태도에 절망하지만, 다행히 평화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행복한 희극이다. 그러나 연극 평화는 희극에 가려진 현실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원작처럼 희극을 끝날 뻔한 작품이 비극으로 전환된다.


소녀(김강원 분)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인물이다. 소녀는 관객들에게 평범한 일상과 자신의 꿈을 무너뜨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들려준다

 

 


[소녀]


당신을 알까? 당신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다. 꿈꾸고 싶다.”

 


소녀는 원작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소녀는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어린이다. 소녀의 독백은 우리가 잊기 쉬운 진짜 비극이다. 원작 평화는 전쟁에 지친 어른이 평화를 찾는 이야기라면연극 평화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느낀 전쟁과 평화 이야기다.


 <백치들>은 2023년에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사건(원작 허선혜연출 이성재)를 만들었으며올해에도 청소년극을 선보일 예정이다그리고 작년에 극단은 지역을 순회하면서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연극 공연 프로그램인 신나는 예술 여행을 진행했다연극 평화는 어린이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아동극이자 청소년극이다그리고 자녀에게 평화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싶은 부모들이 보면 좋은 작품이다연극 평화는 극단 <백치들>이 꾸준히 만들어 온 연극관(演劇觀)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다.


연극 평화는 결말이 없다.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크림반도와 가자 지구에서 시작된 전쟁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아이러니하게도 비극(전쟁)과 희극(평화)을 만들 줄 아는 작가가 인간이다. 그러나 연극은 비관적이지 않다. 인간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고생하다가 끝내 희망을 찾게 되는 희비극적인 존재다연극은 전쟁광들이 만드는 비극이 계속되어도, 평화라는 희극을 다 함께만드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말자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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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희극을 만났다. 오늘 저녁, 단 하루만 공연되는 연극을 보기 전에 원작을 읽고 싶었다올해 첫 번째로 관람하는 연극은 아리스토파네스 원작의 평화.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아리스토파네스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도서 출판 숲, 2013)


아리스토파네스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2》 (도서 출판 숲, 2013)





평화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1에 있다. 이 작품을 2023년에 읽었다. 당시 나는 대명 공연 거리에 있는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의 정회원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권은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였다. 대명 공연 거리는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근처에 있다. 이곳에 여러 개의 소극장이 모여 있고, 극단들이 공연을 하거나 공연 연습을 한다.







평화를 만들어 무대에 올린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줄여서 백치들’)은 대명 공연 거리에 활동하는 극단 중 하나다.






 







 

 





* [절판] 히라타 오리자성기웅 옮김 도쿄 노트》 (현암사, 2013)

[절판] 히라타 오리자성기웅 옮김 과학하는 마음》 (현암사, 2013)

히라타 오리자성기웅 옮김 서울 시민》 (현암사, 2013)





내가 처음으로 본 <백치들> 연극 작품은 일본의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연극 원작은 히라타 오리자 희곡집 2권인 과학하는 마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절판되어서 도서관에 빌려서 읽었다. 희곡집 1도쿄 노트, 3서울 시민은 구매했는데, 오늘 1권이 절판된 사실을 확인했다.


공연 날짜는 202311월 말이었다. 연극은 낭독극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극 중 인물들은 시골에서 기생충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대화 중간에 생소한 기생충 이름이 언급된다이 작품을 만든 원작자와 연출가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마음껏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재미있게 봤다

















* 김슬기, 이오진, 허선혜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제철소, 2017)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가 끝난 후에 <백치들>이 선보인 다음 작품은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 사건(허선혜 원작이성재 연출)이었다. 10분의 중간 휴식(인터미션)이 주어졌고이어서 햄스터 살인 사건』 공연이 시작되었다이 작품도 낭독극으로 진행되었다. 연극 원작은 청소년극 선집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에 수록되어 있다



















* 이오진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제철소, 2023)




이 희곡 선집에 이오진 극작가의 청소년극 두 편도 있다. 이오진은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 <호랑이 기운> 소속 연출가이기도 하다. 2023년 제14회 두산연강예술상(공연 부문)을 받았으며 그해 말에 본인의 첫 희곡집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발표했다.







연극 감상문을 작성하면 알라딘 블로그와 개인 인스타그램에 공개한다. 그런데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감상문은 블로그에만 공개했다. 글을 공개한 지 열흘이 지난 후에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를 만든 이상명 연출가가 내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어떻게 이런 조용한 곳을 알고 찾아오셨는지 정말 신기했고 감사했다.


작년에도 <백치들> 공연 작품들을 봤는데, 이상하게도 불운한 일들(?)이 일어났다. 20244월에 처음으로 선보인 평화평일 공연이라서 예매하지 못했다. 7월에 평화두 번째 공연 날이 토요일로 정해졌는데, 공연하는 지역은 대구가 아니라 경기도 용인이었다. 두 번째 공연 역시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 [절판] 정의신 정의신 희곡집(연극과인간, 2007)




햄스터 살인 사건이성재 연출가<검은 머리 해적단>이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신진 극단의 첫 연극 작품은 재일교포 출신 극작가 정의신의 20세기 소년 소녀 창가집이었다. 나의 연차 휴가 날짜와 공연 날짜가 겹친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예매했다. 20세기 소년 소녀 창가집이 수록된 정의신 희곡집은 절판된 책인 데다가 도서관에 없는 책이다. 다행히 대구의 어느 도서관 딱 한 군데에 이 책이 있었다. 다가오는 휴가를 기다리면서 희곡을 읽었다.

 

그런데 휴가 하루 전날에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다.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이 나에게 자신의 휴가 날짜와 바꾸자고 제안했다. 동료 직원의 휴가는 다음 주 목, 금요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상을 당했고, 동료 직원은 장례식 준비를 위해 부득이하게 휴가를 바로 써야 했다. 내가 일하는 공장의 연차 휴가 규정에 따르면 하루에 쉴 수 있는 직원은 세 명이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직원이 이미 휴가가 확정되었기에 동료 직원은 연차를 쓸 수 없다. 하루에 직원 네 명은 쉴 수 없는 것이다. 작업반장은 내게 다가와서 동료 직원을 위해서 양보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내 휴가는 다음 주로 미뤄졌고, 20세기 소년 소녀 창가집예매를 취소했다공연 전날에 취소한 것이라서 관람료 전액을 돌려받지 못했다.



















* 레오노르 콩피노, 임혜경 옮김 벨기에 물고기(지만지드라마, 2019)


* 이혜빈 지금도 가슴 설렌다(걷는사람, 2018)




예매 취소 이후에 이상명 연출가의 연극 결혼벨기에 물고기를 봤다. 결혼이혜빈 극작가의 작품인데, 원작은 텍스트로 출판되지 않았다. 텍스트로 된 원작 없이 연극을 보면 감상문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소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이혜빈 극작가의 다른 극작품 지금도 가슴 설렌다희곡 가게 <인스크립트>에서 구매했다








벨기에 물고기서평은 썼지만, 연극 감상문은 쓰지 못한 희곡이다. 원작의 재미를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원작에 없는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원작에 잘 녹아들었다. 글쓰기를 미루는 바람에 감상문을 쓰지 못했다잘 만든 연극을 감상문으로 소개하지 못한 것 또한 불행한 일이다.






 













* 아리스토파네스, 이희원 옮김 리시스트라타(지만지드마라, 2024)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리시스트라타는 희극 전집 2권에 있다.





올해 공연될 예정인 <백치들> 작품들이 공개되었는데, 9월 공연작이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타가 있다. 이상명 연출가의 작품이다. 아테네 여성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하는, 일명 (sex) 파업을 그린 작품이다인물들의 대사 곳곳에 성적 표현들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섹스 코미디다. 이 작품도 재미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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