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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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 읽기’ 에 도전하다 

 

나는 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 주로 세계문학을 읽는다.
가끔 한국문학도 읽지만 지금까지 도서관 대출 도서들을 기억해 본 결과
세계문학이 압도적으로 많이 빌리고 읽었던 거 같다.
그리고 집에 소장되어 있는 문학 도서를 살펴보면
세계문학은 초등학생 때 읽었던 아동용 문학전집과
중학생 때 샀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과 모파상 단편선,
(지금도 생각하면 이 책을 사서 읽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모으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과
파트리크 쥐스킨트, 움베르토 에코.....
소설 책 대부분 외국 작가 쪽이다.
유독 세계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한 번도 책표지에 손을 대본 적이 없는 작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예전부터 사실 읽고 싶지도 않았고 일부러 읽지 않으려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려울 거 같아서.....
그리고 소설이 아니라 희극 형식이다. 연극 공연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과연 극 작품을 읽을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그러던 중에, 몇 달 전에 TV 홈쇼핑 광고를 통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을 구입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 속에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몇 권 있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에 도전하기로 했다.
도전 첫 작품은 “햄릿”.
집에 소장한 책인만큼 일단은 부담 없이 천천히 읽어나갔다. 
  

 

 <햄릿> 속에는 ‘햄릿’ 만 있다?

 

극 중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들과
자신의 생각들을 어필하게 하는 동작까지 하나 하나 빠짐없이 읽어나갔다.
생각보다 극 작품 읽기도 소설과 비슷하였다.
읽다보면 평소 들어봤던 유명한 구절도 있었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 라든가
햄릿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유명 대사 "To be or Not to be",
"죽느냐 사는냐, 그것이 문제로다“ 로만 알고 있었던
구절들이 보였다. (이 책에서는 ‘있느냐 없느냐’ 로 번역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물들 간의 갈등에 관련된 스토리라고 하던데
역시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부터 시작해서
햄릿의 삼촌이자 양 아버지인 클로디어스, 어머니 거트루트,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오필리아 등 주요 인물들은 하나씩 갈등을 가지고 있다.
특히 햄릿이 겪고 있는 갈등은 그야말로 ‘최악’ 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삼촌한테 독사당하여 아버지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마당에
어머니는 삼촌과 결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친 아버지의 유령을 보게 된 이후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심지어 어머니까지 빼앗아 가버리는 것에 대해서
클로디어스를 경멸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까지 위험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삼촌과 결혼한 거르투트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도 하고
오필리아와 대화하는 도중 화를 내다가 갑자기 기분이 풀어지는  

약간의 조울증도 보여진다.
햄릿, 이 친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유부단한 사람을 햄릿형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읽는지,
무엇보다도 정신이 불안정한 어느 덴마크 왕자의 비극적 이야기에  

독자들이 열광하는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햄릿이 처한 갈등을 중심으로 이 비극을 읽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안 그래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극적인 캐릭터로 자리잡은 그를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 ‘햄릿’ 의 비극적 갈등과 최후로 치부하는 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구성 의도를  

주인공인 덴마크 왕자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에는 ‘햄릿’ 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햄릿만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햄릿 주위의 인물들도 말 못하는 고민으로 괴로워한다.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햄릿뿐만 아니라
각자 처해진 갈등으로 인해 반응하는 다른 인물들의 심리적 상태들도 흥미로웠다. 
 

 

 <햄릿>의 등장 인물들의 심리 상태 :
 햄릿과 거트루트 중심으로 분석한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우리도 불안감에 시달린다.
프로이트는 불안을 ‘현실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도덕적 불안’ 으로 분류했다. 
 

가장 기본적인 현실적 불안자신을 위협하는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게 되면 경험하게 되는데,
클로디어스는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햄릿은 클로디어스의 등장으로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현실적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머지 두 가지 불안은 앞에서 언급했던 현실적 불안에서 파생된 것이다.
신경증적 불안어떤 욕망을 충족시키려 했을 때 올 수 있는 위험을
그러한 행동을 하기 전에 미리 경험하는 불안이다.
햄릿이 왕비 거트루트와의 대화 도중에 휘장 뒤에 숨어있는
폴로니어스를 삼촌인줄 알고 죽이게 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아는 햄릿 때문에 미쳐버리고 만다.
비록 작품 속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햄릿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미쳐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과연 자신이 삼촌을 죽이면 괜히 죄 없는 어머니까지 미쳐버릴지 않을지
신경증적 불안감을 한 번쯤은 가졌을지 않았을까?

도덕적 불안자신의 욕구나 욕구 충족을 위한 행동이
자신의 도덕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경험하는 불안이다.
쉽게 말하면, 양심이라는 도덕 기준에 의해 생기는 비난을 두려워하는 불안이다.
비록 삼촌이지만 어머니와 결혼이 성립됨으로써 아버지이며 한 나라의 왕이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인다면 패륜아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고  

주위의 신하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햄릿은 삼촌을 증오하지만 그와 결혼한 어머니가 존재하고 있어
도덕 기준 때문에 삼촌을 죽이고 싶은데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나는
도덕적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불안은 어떤 종류이든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 될 수 없으며
불안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현실을 파악하는 자아의 기능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없애려 할 것이다.
햄릿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가지 불안감은 햄릿의 자아 기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1막에서 아버지의 유령을 보면서 이성적으로 판단할 겨를 없이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피해 망상적인 투사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극 후반부로 갈수록 판단력이 저하되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햄릿 이외에도 그의 어머니인 거르루트에도 흥미로운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다.
거트루트는 자신의 재혼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아들 햄릿에게
‘곱고 애정 어린 말’ (제1막 제2장 121행)을 언급하면서
과거에 선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지내길 바라면서 햄릿을 설득한다.
하지만 거트루트의 설득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일뿐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자신이 가진 나쁜 감정을  

완전히 반대의 감정으로 표출하는 경우를  ‘반동 형성’ 이라고 한다.
거트루트가 친자식인 햄릿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에는 억지스러운 면은 있지만
양 아버지가 싫다고 자기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면  

그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있을까?
그런 자식에게 무조건 강압적으로 설득하면 무용지물이다.
아이를 잘 타이르려면 좋은 감정을 내세우면 긍정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
결국 그녀는 남편 동생과의 결혼이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유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왕비’ 라는 자신의 권력도 상실하기 때문이다.
선왕이 죽으면 그 동생이 왕위에 오르게 되어 그녀는  

권력 유지를 위해 결혼을 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햄릿에게 설득하기 위해 내세웠던 권유 뒤에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야심가의 어두운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햄릿 읽기의 첫 경험을 기억하면서

 

내가 감히 불멸의 고전에 대해 개인적이고 억지스러운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슈바니츠의 햄릿: 그리고 이 작품을 문화적 기념비로 만든 모든 것>
(들녘, 2008)을 읽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비록 얇은 분량이지만, 저자는 <햄릿>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들을 펼친다.
저자는 햄릿을 다시 읽으면서 느꼈던 새로운 경험들을
완전하지 않지만 자신의 학문적 일대기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문화적 기념비’로 남기고 싶어 했다.
나도 기념비 정도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셰익스피어 도전 첫 관문으로 <햄릿>을 선택하였으며
햄릿 읽기의 첫 경험을 했기에, 나의 독서 일대기에 좋은 경험으로 남기는 차원으로
나만의 해석을 여기 이 리뷰에 기록을 한 것이다.

<햄릿>은 단순히 보면 400여 년 전에 쓰여진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햄릿은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 어디선가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가

‘험한 세상에서 고통 속에 숨을 쉬며’(제5막 제2장 356~357행)
전하는 햄릿의 사연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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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 궁리하는 과학 4
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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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엄마, 나 어디서 태어났어요?” 

 

만약 당신의 어린 자식이 이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자식을 길러 본 부부에게는 이 질문이 아이들이 꼭 물어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아서 쩔쩔매는 그야말로 ‘블랙리스트’ 질문이다.
예전에는 우스갯소리로 아이에게 다리 밑에서 주웠다는 말을 하는 부모도 있었다.
부모님 말이 무조건 맞는 줄만 아는 순진한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벌써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을 겪게 되는 웃지 못할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반면 아이들에게 충실히 답변해주고 싶은 부모들은
아빠와 엄마가 서로 사랑하여 생긴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어렸을 때에도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냥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런데 부모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어린이가 지금도 있을까?
비록 내 생각이지만 물어보는 아이가 별로 없을 거 같다. 
요즘 어린이들은 인터넷의 영향으로 성에 눈뜨는 시기가 빨라졌다.
어린이들이 벌써부터 성인물을 보는 안 좋은 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활용에는 쉽고 빠르게 인터넷 정보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다.
시기가 빠르면 유치원 교육 과정 때 성 교육을 배울 수도 있고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 성 교육을 재량활동으로 하는 학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 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 단체도 많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성 교육이 예전보다 질적으로 우수하고
어느 정도 확립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정 외부의 교육들이 많아지게 되면
가정 내에서만 배울 수 있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아주 기본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법 교육은 사라지게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어린이야말로 인간 중에서 가장 순수하게 자연성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순수한 어린이들은 부모에게 직접 질문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세상의 지식을 터득하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도 자기 앞에 펼쳐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게 된다.
교육이라곤 고작 어머니한테만 배운 어린 에디슨이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순수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어머니에게 질문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항상 호기심이 많고 질문을 하는 존재이다.
끊임없는 탐구욕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함으로써 광범한 자연의 세계를 밝혀냈다.
하지만 많은 세월동안 자연 현상을 탐구하면서도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과 생물들을 숨 쉬고 활동하게 만드는 그것.
바로, ‘생명’ 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수많은 생명의 원리들을 밝혀냈지만
그 원리를 작동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규명하지 못했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자신의 탄생에 대해서 물어보는 질문처럼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생물학자들에게는 대답하기 곤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생물학과 전혀 관련 없는 물리학자가 과감히 질문에 대한 논증을 펼친다.
비록 이 책을 집필한 시기가 60여 년 전이라서
그 때 당시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 읽어 볼 때에는 진부한 면도 있다.
그리고 저자의 전공이 물리학인만큼 생물학 지식의 오류도 간간이 보인다.
인간의 염색체는 48개라든가, 유전자는 단백질일 것이라고 하는 내용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물리학적 입장으로 생명의 원리를 설명하려고 한다.
서문의 말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생명’ 이라는 사실과 자신의 주 전공인 ‘양자 물리학’ 이론을 종합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저자는 생명 현상은 통계적 법칙이 아닌 양자 물리학의 법칙에 의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고전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

 

슈뢰딩거는 단순히 생물학 주장을 넘어서 책 제목 그대로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내용이 어느새도 모르게 철학 서적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가지지 않았기에 1장을 읽기가 힘들었건만,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철학적 입장으로서의 내용들이 나오면서
책이 말하고자 하는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저자는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어떤 새로운 메커니즘이 생명현상을 이루게 하고 있다고
예상하면서 논증을 마무리 짓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후대의 과학자들이 그런 현상을 밝혀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는 과학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이 책이 출간한 50년 뒤에 물리학자에서부터 생물학자, 세포학자, 뇌 연구가 등등
다양한 학문의 석학들이 모여 슈뢰딩거의 논제가
지금까지도 유효한 지에 대한 논쟁을 펼치게 되는데 그것에 대한 결과물들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 (지호. 2003) 이라는 책으로 나오게 된다.

비록 슈뢰딩거는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 확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죽은 뒤에도 후세의 학자들에게  

서로 다른 학문의 관점들이 모여 탐구하려는
학문적 경계 넘기 시도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읽을 가치가 있으면서도 막상 읽기가 어려운 책.
하지만 읽을수록 깊이 있는 사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만의 특징이 아닌가. 
  

 

 과학자는 단순히 과학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슈뢰딩거는 우리가 느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생명’ 에 대해 탐구를 함으로써
생물학자들만의 구역의 경계를 무너뜨려 다양한 관점들로 바라 볼려고 했다.
저자의 서문을 읽다보면  

자신은 통일적이고 포괄적으로 알려고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론적 맥락은 조금은 다르겠지만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이론을 보는 거 같다.
어쩌면 에드워드 윌슨보다 앞서 지식의 통합을 시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학을 이용하여
인간을 살상하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는 내용도 있다.
그만큼 슈뢰딩거는 단순히 과학만 연구하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생명현상의 신비함에 대해서 경외심을 느끼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생명 존중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어떻게 보면 에르빈 슈뢰딩거는
에드워드 윌슨과 생명 존중을 강조하는 최재천 박사와 일맥상통하다.
공교롭게도 최재천 박사는 에드워드 윌슨에게서 생물학을 배웠으며
우리나라에 최초로 통섭 이론을 먼저 소개하였다. 
그리고 최재천 박사가 자신의 전공인 생물학으로  

사회 현상의 문제들을 접근하는 점도
전공 학문이 다를 뿐 슈뢰딩거의 의도와 비슷하다.

 

이 유명한 두 과학자가 슈뢰딩거의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든 과학자가 되었든 간에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기에 한 번이라도 읽었을 것이다. 
 

 

 “너는 어른이 되면 뭐될래?”

 

어려운 질문에 당황했던 부모가 이제 아이에게 반격하는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장래 희망에 대해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아이에게는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다거나  (아직 어려서 장래희망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거나)

혹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더라면
어른들의 이런 질문에 아이들도 대답하기가 난감해진다.
분명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아이가 꼭 있을 것이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나도 어른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과학자’는 꼭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과학자가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도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과학자라는 직업이 멋있으며 돈 많이 벌 거 같아서 하고 싶다는 것과
또 하나는 과학에 관심이 많고 좋아서 하고 싶다는 것.  

솔직하게 내가 과학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전자 쪽에 속한다.
하지만 모든 직업들도 쉬운 것도 없으며 무척 힘든 것도 있다.
그 중, 과학자는 ‘되는 것’ 도 힘들며 심지어 ‘하는 것’ 도 힘든 직업인거 같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과학자라고 하면
자신이 연구하는 하나의 주제에 몇 십년동안 몰두해야만 한다. 
그리고 연구의 성과가 자판기에 커피 뽑듯이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직업의 특징으로 인해 연구 성과에 눈이 멀어
실험 이용 대상이나 생명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실험을 조작한다든가 심지어 다른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가로채기도 하는
그릇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라이너스 폴링.....  

 

유명한 과학자들의 공통점은 어렸을 때 과학에 흥미를 가졌으며
과학자가 되어서도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과학이 인간에게 올바른 이익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비슷한 대표적인 과학자에는
최재천 박사와 정재승 박사가 있다.

간혹 신문에서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과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는 소식을 보게 되면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어느 정도 세계에서도 인정 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권위 있는 노벨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그런 과학자가 노벨 상을 받으면 뿌듯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노벨 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과학자가 유명하고 권위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미래에 신문 첫 일면지에 이런 기사가 게재되었다고 상상해보자.

“ 한국의 이 아무개, 탄소나노 튜브의 반도체 성질 연구로
   우리나라 첫 노벨 물리학상 수상! “

과연 이 신문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우리나라 과학자의 첫 노벨 상 소식이기에 그 과학자의 연구 공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과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탄소나노 튜브’ 에 얼마나 관심이 가지겠으며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할 것인가?
우리나라 과학자 '이 아무개의 노벨 상 수상' 에만 관심에 집중되지 

굳이 '탄소나노 튜브 연구가 이 아무개' 라고 생각하겠는가?
아마도 ‘이 아무개=노벨 상 수상’ 이라는 이미지가 뇌리에 박힐 것이다.

 

내가 지은 가상의 일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노벨 상을 받았다고 해서 훌륭한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과학자는
과학이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과학이 사회에 유익한 방면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고,
무엇보다도 과학적 성과보다는 생명 존중이 우선시하는   

올바른 윤리적 가치관이 정립된 과학자이다.

 

정말 자신이 과학이 좋아서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
자기 자식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을 바라는 부모에게는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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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속도
스티븐 M. R. 코비 지음, 김경섭.정병창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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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의 사임

 

며칠 전, 영국의 고든 브라운이 총리직과 노동당 당수직에서 사임의 뜻을 밝혔다.
사임 이유를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 정부 구성 협상을 위한 것이라는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가 갑자기 사퇴를 결정했을까? 
 

고든 브라운 총리의 유세 활동 때 일어난 일이다.  

총리 일행은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총력전으로 국민들을 향한 총선을 위한 유세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 유세 장면을 전국 TV에 생방송으로 방영 중이었다.
그러자 국민들에게 악수를 나누고 있던 총리에게 한 여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에게 총선과 총리의 당에 대한 여러 가지 정치적 내용에 관한 질문을 말했다.
이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은 짧았지만 정치 토론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총리는 정곡을 찌르는 여성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였지만, 얼굴은 당황함이 역력했다. 
그 여성에게 혼줄이 날 정도로 진땀을 뺏던 총리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면서 참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엉망이었어. 그 여자를 왜 만난 거야…누구 아이디어야? 웃긴 여자 같으니라고'  
 

그런데 문제는 혼잣말로 한 험담이 전국 방송을 탔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총리의 양복 가슴에 소형 마이크가 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매스컴에서는 총리에 대한 가쉽거리를 쏟아냈고,
총리는 그 여성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였다.
안 그래도 노동당과 자신의 지지율이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미 그가 내뱉은 말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일명 ‘혼잣말’ 구설수가 일어난 후
몇 일 뒤에 고든 브라운 총리는 다우닝 가를 떠나게 되었다. 
 

 

 신뢰의 중요성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간에는 ‘신뢰’가 아주 중요하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신뢰가 우리에게 주는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신뢰성’ 이라는 좋은 이미지 하나만으로 말단 직원에서  

사장까지 수직 상승한 직원에서부터
한 순간의 행동으로 인해 신뢰를 주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정치인 등
신뢰를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그 한 사람에 대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것이다.
영국 총리의 사임은 영국 정치의 특수적 상황에 맞물려 결정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총선 중에 생긴 구설수에도 그를 사임하게끔 만들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항상 국민들 앞에서 청렴결백의 이미지를 보여줘야 할 정치인이
국민에게 잘못된 언행을 하거나 부정적인 정치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면
그에 대한 신뢰감이 하락하게 되고 그것은 선거 영향에까지 미치게 된다.
이렇듯 신뢰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알고 지켜야 할 중요한 미덕인데도 불구하고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하고 결국 손해를 보게 된다. 
  

 

 신뢰를 측정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는 신뢰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을 고치고
좀 더 나아가 살아가면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실천 방안들과
실천하면서 얻게 되는 신뢰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신뢰의 효과를 예로 들면서 신뢰는 실체적이며  

규정할 수 있기에 측정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신뢰 수준이 내려가면 작업 속도도 내려가고 비용은 올라가는 반면
신뢰 수준이 올라가면 작업 속도도 올라가고 비용은 내려간다는 것이다.
일상 생활을 비유하자면 우리가 내고 있는 세금들은  

사회 전반에 이루어진 낮은 신뢰가 만든 현상이다.
어느 대기업에 사장이 된다고 하자.  

그런데 그 기업 문화가 신뢰성이 낮다는 것은
결국 그 기업의 사장도 신뢰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사장은 영문도 모른 채 세금을 내게 된다.
반면 높은 신뢰로 형성된 기업은 임무 수행 속도가 빠르고 성과도 많다.
그리고 성과에 대한 경제적 수익도 많아지고 이에 따른 수입 배당도 상승시켜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신뢰는 자기가 만드는 것

 

대부분 사람들은 한 번 잃은 신뢰는 평생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회복하는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뢰라는 것은 무조건 상대방에게 ‘받는 것’ 이라고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오해를 반박하면서
신뢰는 행동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함으로써  

거시적으로 대인관계, 조직, 시장, 사회로 확장된다.
대인관계나 조직이든 신뢰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의 문제에 비롯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신뢰를 높여주는 행동들이 13가지나 제시되어 있다. 
 

솔직하게 말하기, 상대방 존중하기, 책임 있게 행동하기, 경청하기, 약속 지키기..... 
 

신뢰에 대해 새로운 방안과 인식을 제시한 책이라고 해서
이를 위한 행동도 새로운 것이기를 바라면서 읽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에 나오는 행동 원칙들은 많은 자기경영 도서에 나오는 단골 내용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 한 번 다 읽고 커버를 덮고 나면
내용들은 머릿 속에 잊혀져버리게 되고 실천하지 않는 위선적인 독자들 아닌가.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약속을 지킬 줄 아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문학가 에머슨이 말한 격언이 생각난다.

 

자기 신뢰는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자 영웅의 본질이다    

 

많은 사람들의 추앙받고 있는 유명 CEO들은  

대부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자라거나 젊은 시절에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있었다.
그들은 항상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자기 자신의 성공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을 위해 모든 일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였기에
성실성으로 얻은 사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은 성공한 ‘영웅’ 이 된 것이다.

걷기 힘든 진창길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 길을 가듯이
좀 더 편한 방법으로 택하여 짧은 시간 안에 성공하는 ‘로얄로더’ 가 되고 싶어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는 속담이 있듯이
무엇을 하든 성공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자기 인생에 성공이 일찍 찾아온다면 여생은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루어진 성공은 오래 갈까?
유명 경영인이나 CEO들은 단기간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자신들만의 신뢰를 구축하면서  

지금까지도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시간 어딘가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분명 성공을 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책을 끝까지 완독을 하든 나처럼 필요한 부분만 읽었던지간에 

책에 있는 원칙들을 실천했으면 좋겠다.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의 성공할 뿐만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인용 관련시가 출처 및 링크 

 

['유권자 험담' 고든 브라운 또 구설수] MBN 4월 29일 입력 

http://mbn.mk.co.kr/news/newsRead.php?vodCode=502250&category=mbn00008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사임] 연합뉴스 5월 12일 입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2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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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창조성
모기 겐이치로 지음, 김혜숙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창조성 권하는 사회 

 

대형 서점가의 자기계발류 코너를 살펴보면
사회인(주로 직장인)들을 겨냥하여 쓴 ‘창조성’에 관한 도서들이 다양하다.
왼손을 자주 써서 뇌를 자극하면 발달하는 ‘좌뇌형 인간’.
그리고 매스컴에 나오는 명사(名士)들의 창의적인 사고 방식들을 소개하는 책들까지.....
비단 자기계발류뿐만 아니라 창의력 있는 영재를 위한 유아 도서부터
일상생활 속에서도 창의력, 창조성을 강조하는 글쓰기 방법이나 처세술 도서,
심지어 창조성 향상을 위한 퍼즐 모음집도 나왔다.
이렇듯 남녀노소, 창조성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많이 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창조성에 관한 책들은 다 피차일반이다.
하나의 새로운 유행이 나타나면 그 인기의 편승해 비슷한 것들이 나오는 사회 아닌가.
제목만 바꿔져 있을 뿐 내용은 다 똑같다.
그리고 오른손잡이들을 억지로 왼손으로 글을 쓰는 습관을 길들어져야 하는가?
굳이 스티븐 잡스처럼 따라 하면 우리도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책에 나오는 방식대로 뇌에게 강제로 의식시켜주면  

장기적으로 실행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진지하게 실행한다고 쳐도 여러 가지 요인들과 계획들이  

우리의 삶을 가만히 놔둘 것인가.
일이 늘어나게 되어 시간이 없어서,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 등으로
결국 창조적인 인재 되기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실용도서를 읽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살아가면서도
제대로 실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 생활 속의 창조성 

 

그러면 창조적인 인재는 특출한 두뇌를 가져야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일본의 뇌 연구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창조성의 신화화’를 깨뜨린다.
창조성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잡스와 같은 우리가 천재가 부르는
이들만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그들은 뇌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했기에
그만큼 이에 대한 결과물이 나오면서 우리가 그들을 천재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창조성은 특별한 사람들의 능력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뇌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창조성이 배어난다고 말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일상 속의 대화는 창조적인 뇌 기능의 작용이다.
인간이 활동하는 사회 세계는 불확실의 세계이다.
그만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학습되어 있는 행동을 토대로 뇌는 프로세서를 실행한다.
상대방과의 대화 이전에도 우리가 무의식한 상태에서
뇌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하며 무슨 대화를 나누어야하는지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쳐 느끼지 못하고 있던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창조성이 키워지고 있던 셈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읽게 되면 실망감이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자기계발류 도서와는 거리가 멀어 확실한 방법을 찾는 독자에게는
목차부터 훑어보게되면 읽을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뇌 연구가가 쓴 책이라고 해서 뇌와 관련된 전문적인 것도 아니라서
뇌에 관심이 많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독자에게는 교과서 수준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창조성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창조성의 근원을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 관계에서 찾는  

저자의 관점이 사뭇 독특하였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 라는 존재를 알 수 있을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나’ 와 상대방과의 ‘차이’의 감각을 통해서 

창조성을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2년 동안의 군 생활을 끝내고 사회 생활로의 재적응을 위해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타인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앞으로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카오스틱(Chaostic)한 삶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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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대산세계문학총서 1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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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무서운 시

 

몇 년 전, 심야 시간에 방송되는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가수이자 아티스트로 유명한 조영남씨가 출연하여
출간된 지 좀 오래 돼 보이는 검은 색 바탕의 시집을 소개하였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김붕구 번역 
 

당시 나에겐 보들레르의 시집은 생소하였고
거기에다가 졸음이 마구 쏟아졌기에
조영남씨가 입에 침을 마르도록 책을 추천하게 된 이유를 말하는 사이

힘없는 두 눈꺼풀은 이미  TV의 광선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렷이 들리는 그의 말은
가수가 젊었을 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느낌은
‘무서웠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간혹 생각나면 이 시집을 여러 번 읽었고
더 중요한 건 젊은 시절에 이 책을 읽게 돼서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시를 읽었는데 무서웠다니.  

그러고는 읽었다는 것이 행운이란다.  

역시 독특한 언행으로 가끔 매스컴을 뜨겁게 달굴 만한 조영남씨다운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단지 ‘무섭다’는 말이 이 시집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날, 동네 도서관에 자료 검색 결과
역시 조영남씨가 소개한 책이 도서관에 소장되어있었지만,
출판된 지 오래되어서 서고자료에 있었다. 
서고자료에 있는 책을 빌리기 위해 사서에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을
소심했던 나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러고는 옛날에 나온 책이니깐 활자 상태가 좋지 못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자기 위안으로 읽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포도를 따 먹으려다가 포기한 여우처럼 말이다.  

  

 

 악의에 찬 단어들

 

몇 년이 지나고 주말에 도서관의 문학 쪽 서적을 뒤적거리다가
책장에 내가 읽고 싶어 했던 책이 꽂혀있었다.
김붕구 교수가 번역한 판은 아니었지만
그 때의 어리석은 판단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기대로 가득 찬 눈으로 시를 읽어나갔다.
그의 모든 시 구절 하나하나 읽어 나갈수록
가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을 감정이 내 가슴 속에 치밀어 올라왔다.
그리고 그의 시에 나오는 악의에 찬 단어들이 주는
불쾌감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하였다.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여 페이지가 되는 시집을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 악, 지옥, 쾌락, 구더기, 시체, 해골, 저주 』

보들레르의 시에 자주 나오는 대표적인 단어들이며
그의 시를 한 단어로 축약하여 표현해주는 것들이다.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우리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언급하기도 싫은, 일상 속에서도 금기시되는 것들이다.
당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시의 윤리성 문제로 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법적 재판까지 가게 되어 6편의 시가 삭제 조치를 받게 되었다. 
 

지나치게 우울하고 퇴폐적이면서도 이 단 한 권의 시집으로 인해
그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미적 가치의 이중성

 

보들레르의 시는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사고 방식들을
대립적인 이원성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의 시들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이라는  

대립적인 개념이 부딪히고 있다.
선과 아름다움은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나타내고
악과 추함은 동물적인 경향이면서도 인간의 육체적 타락으로 빠지게 만든다.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잔느 뒤발과의 연애 속에
보들레르는 끊임없이 갈등을 겪으면서 고뇌한 것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잔느 뒤발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으나
잔느 뒤발은 어떻게든 그에게 돈을 타내려고 하는 방탕한 여자였다.
그래서 시집 몇 편의 시에는 그녀를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 되어진다.
그리고 이 시에서 잔느 뒤발은 추악한 여자로 표현된다.

   
 

   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 넣겠구나.
  추악한 여인이여! 권태가 내 마음을 악독하게 만드는구나.

  

  (중간 생략)  

                             

  은밀한 섭리를 품은 위대한 자연
  너, ― 계집아이 오, 죄악의 여왕이여 
  비천한 짐승이여, ― 너를 가지고 어느 천재를 반죽해 낼 때에 

                                       - [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 넣겠구나] 중에서 -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는 그녀를 ‘위대한 자연’ 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비록 추악하지만 본연에는 여자로서의 출산의 기능
즉, ‘자연’ 으로서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보들레르는 선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추한 것은 악마적이라는 일반적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모두 내재하고 있는 미적 가치를 추구하려고 한다.
그 결과 보들레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도덕성에 탈피하여
영원성을 지닌 대상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추하다고 할지라도
미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집의 제목인 '악의 꽃' 처럼 악의에 가득 찬 꽃에도  

사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향기가 뿜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는 현실적이다.
그가 살았던 프랑스의 시단의 주류는
속세에 초연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추구하는

예술 지상주의적인 고답파(高踏派)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가치들을 표현했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인간 내면으로 느끼는 이중적인 가치를 주제로 삼아
인간이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는 단어와 감정들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시집의 서문에서는 독자들에게 위선자임을 대놓고 말하는 동시에
결국 이 시집을 읽는 그들도 ‘악의 꽃’의 향기에 취했음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기성 문단의 비난과 모욕을 감수해야만 하는 비주류,   

파리의 Outsider로 살아가야만 했다. 
  

 

 저주받은 시인

 

   
 

  이 날개 달린 항해자여,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파이프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 [알바트로스] 중에서 -

 
   


보들레르는 자신의 삶은 저주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위대한 문학성에 대해 세상을 알아주지도 않고
잔느 뒤발과의 마약 같은 사랑은 그녀가 먼저 죽은 후  

상실감의 고통 속에 얼마 안가 그도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후세는 그를 ‘저주받은 시인’ 이라고 부른다.

이 시가 그의 불운한 삶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알바트로스는 항해자들에게 앞으로 가야 할 바닷길을 알려준다는 전설이 깃든 새이다.
이처럼 하늘을 날 때는 자유와 위엄을 누리는 멋진 항해자이지만
뱃전에 내려오면 선원들의 비웃음을 사는 현실에서 낙오된 알바트로스였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들볶이고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야하는 자신의 운명을 자각했던 것일까.

저주받은 알바트로스. 
  

비단 보들레르를 지칭하고 있는 것만 아닌 거 같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장밋빛 기대감에 가득찼으나
막상 현실 속에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거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우리의 젊은 세대를 칭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하루 종일 우울한 시인의 우울한 시를 읽어서 생긴 우울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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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민음사 판으로 이 책을 가지고 있어요.

주인장의 리뷰 잘 봤어요. 감상문 보니까 저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서 봐야겠네요

구입 후 방치중이었는데 --

시 란 장르에 관하여 보통 번역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대학문학 개론 시간에

첫 시간에 나오는 시니피앙 시니피에..... 결국 강사가 말하고 싶은것은 의미는 남아도

미묘한 뉘앙스는 도저히 번역불가능 한것이라고 받아들여 지더군요.

외국어를 모르기에, 상상은 안 가지만 한국의 시 가 외국어로 도대체 어떻게 번역될까

상상해보면, 대충 짐작만 가요.

이외수가 자신의 소설을 번역한 외국교수의 책을 봤는데 자기가 영어가 짧아서 다른 것은

확인 할 수 없어서 호리병 만 확인해 봤는데 번역자는 병 을 질병 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옮겼다고 하더군요.

cyrus 2010-11-06 15:59   좋아요 0 | URL
저는 김붕구 씨의 번역본으로 보들레르를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헌책방 돌아다니면서 구하고 있답니다.
아마도 김붕구 씨의 번역과 윤영애 씨의 번역에도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이조부 2010-11-06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판 이 김붕구 번역본이네요.

필요하다면 보내드릴께요~

cyrus 2010-11-06 21:39   좋아요 0 | URL
제가 말한 김붕구 씨의 번역본이 민음사에서 나왔군요.
감사합니다. 꾸랑님은 책 한 권 한 권을 소중히 여기는 분 같은데
제가 이 책 다 읽게 되면 다시 꾸랑님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다이조부 2010-11-06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요.

근데 책주인은 따로 있다는 생각은 가끔 해요.

주소 알려주시면, 짬 날때 보내드릴께요~

cyrus 2010-11-06 23:29   좋아요 0 | URL
그러면 꾸랑님 서재에 있는 메일보내기를 통해 주소 보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