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있고, 금오신화는 없다?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을 찾기 위해서 모 사이트의 블로그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어느 블로그에 서울대 권장도서 목록 발견하였다.
역시 좋은 대학교는 뭔가 다른 거 같다. 서울대 소속의 권위 있는 교수들이 모여서
총 100권의 도서들을 동, 서양 문학과 과학, 사상 등으로 분류하였다. 권장도서  

목록 작성 취지는 대학생들의 다양한 분야를 읽게 하는 독서 활동을 증진시키는  것과  

더불어 동, 서양 고전을 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목록에 선정된 100권의  

도서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많이 읽지는 않지만 제목과 저자만 들어도 아는 고전들로  

선정되어 있다. 그런데 목록을 훑어보니 실망감이 조금 느껴졌다.
정말로 서울대 교수님들이 심사숙고 끝에 논의를 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목록을 만든 건지 의문이 들었다. 100권의 도서들 중 서양에서 출간된 도서가 
많이 차지하였다. 그리고 분야로는 서양 문학, 그 다음에는 서양 사상이었다.
사실 동, 서양 지성사를 통틀어 비교를 하면 서양의 지성이 역사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과 더불어 균형적으로 선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고전이라고 하면 질겁을 하는 판에 우리나라의 고전들도  

안 읽는 것도 당연지사다. 무엇보다도 권장도서 목록에 대해서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문학 분야의 권장도서였다. 내 생각이지만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국어 수업 시간 중에 제일 싫어할 때가 고전시가를 배울 때일 것이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암호 같은 옛 말을 해석하는 것이 고역일 것이다.  

선생님들은 직접 시들을 우리말로 해석하고 제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그 뜻을 설명해줘도 학생들은 딴청을 피우거나 너무 졸린 나머지
두 눈은 내려앉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시가가 다 어렵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작품성이 갖추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옛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한국적인  

멋이 깃들어진 한시들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한시들을 쉽게 우리말로 풀어낸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는데 원문인 한자와 함께 뜻을 배치하여 읽기가 쉽다.  

그런데 권장도서에는 대충 ‘고전시가전집’이라고만 되어 있다.  

도대체 어떤 고전시가전집을 말하는 것인가. 인터넷 도서에 '고전시가전집'이라고 

검색만 쳐도 관련도서만 수십 권 이상 나오는데.....

딱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지는 생각이 안 들게 된다.
고전 산문에는 고작 5권(연암산문집, 춘향전, 구운몽, 한중록, 청구야담)밖에 없다.
고전 소설이 고작 2편 밖에 없다. 나머지는 수필과 이야기 모음집이다.
아쉬운 것은 그 작품의 이름이 목록에 없었다는 점이다.
목록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있었지만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없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문가 및 신문이나 교육 단체에서 선정하는 추천 도서 목록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목록의 단점이라면 도서 선정 기준이 선정 단체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정작 유명 단체와 전문가의 추천도서를 읽고 싶다면 되도록 다양한 단체와 분야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도서를 균형적으로 읽는 것이 좋다. 
 

 

 소설이야? 한시야? 
 

학창 시절의 문학 시간에 직접적으로 김시습의 작품에 대해서 공부한 적은 없다.
당시 학교에서 배우고 있던 교과서에도 없었으며 따로 보충 시간에 부교재로 사용하는
문학 문제집에서나마 <금오신화>에 수록되어 있는 ‘만복사저포기’만 접하였다.
주인공 양생이 부처님 앞에서 주사위 내기에 이겨서 소원으로 여자를 얻게 되는 내용은
나뿐만 아니라 교실에 있던 남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게 만든 장면이었다.  

평소에 신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그 당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푹 빠져 있어서
<금오신화>라는 제목만 봐도 나머지 4편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최근에 ‘민음사 문학 전집 읽기’라는 거대한 독서 목표를 실천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
이번 기회에 <금오신화>를 읽게 되었다.

<금오신화>가 중국의 <전등신화>를 본뜬 것이라고 국문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전등신화>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김시습이 단순히 <전등신화>를 모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신화의 등장인물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한  

능력을 소유한 초인들이다. 중국 신화의 허구적인 전개 방식을 읽다보면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편으로는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금오신화>도 신화의 전형적인 특징인 허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중국 신화와 비교하면 전혀 과장스럽지가 않다. 5편 모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들이 조합되어 있다. 제목은 신화이지만 내용면으로는 고전  

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금오신화> 작품들 모두 학식을 갖춘 재주 있는 남자  

주인공과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자가인(才子佳人)적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 구성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고전 소설 주인공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중간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한시들은 <금오신화>만의 색다른 구성이다.
다른 고전 소설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내용 중간에 
한시나 노래가사가 나온다. 모든 고전 소설들과 비교하면 <금오신화> 내용의
절반은 한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황하게 이어지는 고전 소설의 문체를 읽다보면
지루한 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금오신화>의 한시들은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전개 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함으로써 지루한 감 없이 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김시습은 어렸을 때부터 한시에 타고난 재능을 보인 신동이라고 한다.
소설 속 한시들은 천재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훌륭한 내용 전개를 갖춘  

소설과  아름다운 한시가 절묘하게 결합된 고전 문학사상 보기 드문 걸작이다. 
 

 

 5인 5색,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  

 

<금오신화>는 서로 관계가 없는 '~생'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먼저 <만복사저포기>는 앞에서 언급을 했듯이
양생이라는 남자가 부처님과의 주사위 내기에 이겨서 아리따운 여인을 얻게 되지만
사실 여인은 귀신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실망한 양생은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약초를 캐러 간 후 소식이 끊겼다는 이야기이다. <이생규장전>은 ‘주인공 이생이 담  

넘어 엿보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작품도 <만복사저포기>의 전개와 조금 유사하다.  

이생은 담 넘어 양반집 처녀 최랑에 보고 한 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양쪽 집안의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극복하고 혼인을 맺게 되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인하여 양가의 부모는 물론 부인 최랑마저 살해되고 만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생은  

최랑의 죽음에 슬퍼하지만 이생 앞에 최랑이 환생하여 나타난다. 그리고 이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최랑은 이승의 인연이 다했다고 말하며 사라지게 되어 그 뒤로  

이생은 시름시름 앓다가 병을 얻어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취유부벽정기>는 주인공  

홍생이 평양의 부벽루에서 자연의 흥취를 즐기고 있다가 기자의 후예라고 말하는  

선녀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밤새도록 그들은 시로 화답하여 놀았으나,
새벽이 되자 옥황상제의 엄명이라고 하여 선녀는 하늘로 돌아간다. 그 후로 홍생은  

그녀를 못 잊어서 병에 걸리게 되고 그도 다른 작품의 남자 주인공처럼 꿈에서  

죽음의 계시를 받고 곧 그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설명한 세 작품과 다른 전개의 작품이다.
<남염부주지>는 염라국, <용궁부연록>은 용궁을 배경으로 하는 사회 비판 소설이다.  

이 두 주인공은 꿈 속에서 각각 염라국인 남염부와 용궁의 왕들을 만나 사회 현실에 대해 

대담을 펼친다. 꿈에서 깬 뒤 그들은 꿈 속 별세계가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맞이할 죽음을 두려움없이 받아들여 그곳에서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다섯 편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공통점은 벼슬에 오를 정도의 학식을 갖추어 있으나
부당한 사회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일명 재야인사들이다. 김시습도  

작품 속 남자 주인공들처럼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불만으로 벼슬길을 사양한다. 이런 작품들은 ‘방외인(方外人) 문학’이라고 한다.  

방외인이란 세상 바깥에 있는 인간들, 즉 아웃사이더를 말한다. 벼슬에 관심이 없으며  

기존의 권위와 규범을 지키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김시습 본인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펼치지 못한 불행한 인생을 살다 갔지만 아웃사이더의 기질과
시각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되어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고전 문학 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다.  

  

 <금오신화>에 김시습이 있다?

<금오신화>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방랑 생활을 하는 도중에 쓴 작품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김시습은 승려  

신분으로 전국을 방랑하였다. 김시습을 포함한 기존 사회에 반발하여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명의 선비들은 생육신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부당한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끝내 사형을 당한 여섯 명의 신하들은 사육신이라고 한다.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통해 세조의 시대를 은근히 조롱하였다. 그리고 벼슬길을  

사양함으로써 끝까지 절개를 지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우리는  

생육신보다 사육신을 절개를 지킨 충신들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세조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육신이라고 하면,  

생육신은 살아 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채, 또는 방성통곡하거나 김시습처럼 두문불출하여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서 소극적인 삶을 선택하였다.
김시습은 직접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마저도 말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방랑이라는 사회 도피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해 사육신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 걸까?   반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사형당한 사육신의 시신들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시습이 직접 시신들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생육신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면서 얻게 된 죄책감을 풀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사육신의 넋을 기리려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김시습은 <이생규장전>의  

이생을 통해 그 죄책감을 평생 잊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홍건적의 무리들이 침입을  

하였을 때 이생 자신만은 살아남고, 최랑과 양가 집안사람들이 죽게 된다.  

독자들에게는 이생이 사랑하는 최랑을 버리고 자신만 살아남는 장면에 대해서 수긍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생의 행동은 자신이 살아남는 것에 급급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지 못하는 대장부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작품 속의 화자는
잔혹한 장면을 간략하면서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이생에 대한 일체의 비난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이생이 작가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생의 행동은  

옳지 못하지만 환생한 최랑의 영혼과 만나게 되면서 최랑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이생은 최랑이 살해당했던 곳으로 가서 자신이 직접 최랑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치르게 한다. 부당한 사회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김시습은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  

이생을 통하여 사죄의 마음을 표현하고 사육신들의 넋을 기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금오신화> 
 

국문학사적으로 소설의 발달 과정을 보게 되면 <금오신화>에 이르러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이 확립되었으며 그 이후 고전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소설을 꼽으라면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등  

누구나 다 읽었으며 알고 있는 작품들이다. <금오신화>는 이들 작품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대부분 작자 미상인 고전 소설이 많은 반면에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작가의 이름이 분명하게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가 알려진 고전 소설은 <홍길동전>(허균 작)과 <구운몽>, 

<사씨남정기>(이상 김만중 작), 그리고 연암 박지원의 소설들 밖에 없다.
<금오신화>가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음에 불구하고 다른 작품들로 인하여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불명예스럽게도 서울대 권장도서 축에도 끼지 못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소설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금오신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유사한 플롯이 눈에 띈다. 
 

 

 <금오신화>의 영향을 받은 유명 고전 소설들

<남염부주지>의 결말에는 꿈속에서 염라국인 남주부에 갔다 온 박생은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사회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이상향인  

남염부로 가서 염왕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남염부의 왕인 박생은 현실 세계에서는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있던 제한적인 인물이었다.
허균의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도 박생과 흡사하다. 신분 차별과 부당한 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이 비범한 능력을 펼치치 못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그 곳의 왕이 된다. 허 균 역시 사회 개혁을 꿈꾸지만 결국에는  

반역 음모로 인해 처형당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두 작품 다 사회 개혁에 대한 작가의  

좌절을 소설 속 이상향으로 도피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삼고 있다.

<이생규장전>최랑은 이생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끝에  
양가 집안 부모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생과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인해 이생과 최랑 부부와 양가 집안사람들이 도망치는 도중에
이생만 살아남고 최랑은 그 자리에서 정절을 지키려다가 결국 도적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최랑처럼 계급 차이를 벗어난 사랑을 하였으며 정절형 인물이라면 춘향이 밖에 없다.
기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춘향은 사대부 집안의 아들인 이몽룡과 자유로운 연애를 한다.
그리고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게 되어 온갖 고초를 받고 옥에  

가두게 된다. 최랑과 춘향을 통하여 봉건사회의 도덕률을 파괴한 남녀 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용궁부연록>은 주인공 한생이 꿈속에서 용궁에 갖다오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인간이  

용궁에 갖다오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심청전>이다. 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용궁, 옥황상제, 선녀는 선(仙) 사상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그리고 <용궁부연록> 이외에도 나머지 네 작품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유교, 불교, 선 사상이 혼합되어  반영하고 있다. <심청전>도 내용을 살펴보면  

유, 불, 선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심청은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뜰 수 있게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삼백 석을 얻으려면 인당수에  

뛰어들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인당수에 뛰어들게 된다.  

심청의 희생을 통해 조선의 유교 사회에 강조하는 효의 덕목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 앞으로 사주를 하면 신통력으로 눈을 뜰 수 있다는  

말하는 장면에서는 불교적 사상이 드러나고 있다. 

 

 <TV 고전 문학관>이 방영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우리나라 사람들 고전은 잘 안 읽어도 고전을 패러디한 영화나 드라마는 잘 본다.
최근에 개봉했던 <방자전>은 <춘향전>의 등장인물들을 색다르면서도 파격적인 해석을 

시도하여 적지 않은 관객 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제 슬슬 여름이 시작되면 항상  

TV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전통 귀신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납량특집 드라마  

<구미호>이다. 이번 작품에는 <구미호>의 기본 포맷을 유지하고 있으나 구미호의  

딸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게 되어 방송 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는 좋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고전들이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에만 해석의 시도는 해서는 안 된다.  

<금오신화>도 <춘향전>과 <구미호>처럼 귀신과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며  

남녀 간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의 감정과 풍속을 묘사하고 있어서 드라마로 만들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요즘 심야 시간에 90년대에 방영했던 <TV 문학관>이 방영되고  

있다. <신 TV 문학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작년 12월 말에 이문열 원작 <사람의 아들>  

방영 이후로 올해에는 새로운 드라마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또 한 편의 현대  

소설을 각색하여 드라마화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인데 이번 기회에 

<TV 고전 문학관>으로 새롭게 방영하면 어떨까? 역사적인 첫 화는 <금오신화>로  

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고전을 읽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감도 가져본다.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목록]이 있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henda?Redirect=Log&logNo=108096549 

* '서울대 권장도서' 라고 검색창에 치게 되면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음  

 

관련도서 

<권장도서 해제집>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구판절판


"좋은 칼럼과 사랑의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사랑도 칼럼도, 물론 우리를 지금 행복하게 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의 아름다움과 힘은
우리 영혼에 얼마나 깊이 인상을 남겼느냐에 따라 평가되지요."-22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권

내가 그 당시 경험했던 감정에 대해 다른 언어에서도 흔히들 ‘상심(傷心)’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깨진 도자기 심장을 여기에 전시하며, 이 심장이 박물관에 온 사람들에게 내 통을 잘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p 11)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케스킨 씨 가족의 오래된 물건들, 특히 고장 나고 녹슬고 오랫동 안 작동하지 않은 자명종과 손목시계를 보면서, 그것들이 얼마나 기이한지, 얼마나  ‘시간 밖’의 존재로 보이는지, 어떻게 자기들끼리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었는지 봐 주었으면 다     (p 34) 

 

그녀는 달콤하고 진심 어린 미소를 두 번 지어 보였고, 잠시 후 소금 통(나의 수집품이 될)을 내게 건네줄 때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에 닿는 것도 허락했으며,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갔다      (p 53) 

 

텔레비전을 보다가 케스킨 씨 가족의 어떤 물건(예를 들면 세월이 흐를수록 수가 늘어 갔던, 퓌순의 손의 향기가 배어 있는 수저)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p 90) 

 

그렇기 때문에 연필이나 양말, 비누 같은 작은 선물들 사이에 ‘라피 포르타칼 골동품 상점’에서 파는 이런 비싼 컵을 가져간 것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p 90) 

  

나의 이런 믿음에 대한 또 다른 예로, 그 시절의 새해 복권을 전시한다     (p 91) 
 

"케말 아저씨, 톰발라에서 아저씨가 딴 손수건 있잖아요.....”
“응.”
“그건 퓌순 누나가 어렸을 때 쓰던 손수건이에요. 그거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알리, 어디에 넣었는지 모르겠는걸.”
“난 알아요. 이 주머니에 넣었어요. 거기 있을 거예요.”
아이는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을 태세였다     (p 98) 

 

네시베 고모는 식사가 끝나면 냄비와 커다란 접시를 치우고, 다먹지 않은 음식을 냉장고
(언제나 마법같이 느껴졌던 케스킨 씨네 냉장고에 박물관 관람객들은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에 넣은 다음, 낡고 커다란 비닐봉지 속에 든 ‘뜨개질 도구’를 집어 들거나 퓌순에게 가져다 달라고 했다     (p 138~139)

저편에는 네시베 고모의 옷감과 골무 들이 있었다. 화려한 도자기 골무와 퓌순이 조금 전에 신경질적으로 매만지던 오렌지색 파스텔 연필을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p 168)

그녀가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아하게 만지고 있던 소금 통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주머니에 넣고는, 천천히 라크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때 소금 통이 내 주머니에 있다는 것 

을..... (p 169)

성냥갑, 퓌순의 담배꽁초, 소금 통, 커피 잔, 머리핀, 머리 묶는 고무줄처럼 모으기 힘들지 않는 것이나 주의를 끌지 않는 물건을 다음으로 재떨이, 찻잔, 슬리퍼 같은 좀 더 주의를 끄는 것들을 가져오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것을 대신할 물건을 새로 하나하나 사 가지고 가기 시작했다        (p 172)

한구석에 돈을 놓아둔다든지 내가 가져간 물건 대신 아주 비싼 새것을 다음 날 가져갔다.
바늘겨레와 개, 혹은 개와 재단용 줄자 같은 것들이 동시에 텔레비전 위에 놓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p 177)

나는 습관에 따라 조금 전 케스킨 씨네 집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강판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p 178)
*** 모과 잼이나 음료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강판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케스킨 씨네 집에서 화장수 병을 가져가서, 멜하메트 아파트에  

모아 두고 있었다     (p 194)

케스킨 씨네 집 식탁에 앉아 있던 팔 년 동안, 나는 퓌순이 피운 4213개의 담배꽁초를  

가져와서 모았다     (p 199)

사기로 된 소금 통, 개 모양의 재단용 줄자, 무섭게 생긴 통조림 따개,  

퓌순네 집 부엌에 언제나 있었던 바타나이 해라바기 유 병     (p 205)

여기 전시한 사고 보고서에 의하면, 그녀의 두개골은 주저앉았고.....     (p 341)
*** 자동차 사고 현장과 사고 당시 퓌순의 상태에 관한 내용이 적힌 보고서

때로는 어떤 물건, 예를 들면 내가 샹젤리제 부티크에서 퓌순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가
신고 있던 노란 구두를 들고는,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물었고, 나는 설명해 주었다
(p 3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신이 이 글에서 말하는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마우스 위에 올려 있는 검지손가락으로 이전 웹 페이지로 이동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 페이퍼를 안 읽었으면 좋겠다.

 * 오르한 파묵의 신작 <순수박물관>을 아직 읽지 않았다
 * <순수박물관>을 읽고 있는데 아직 1권 혹은 2권을 읽고 있는 중이다
 * <순수박물관>을 읽고 있는데 내용이 너무 많아서 미칠 것만 같다.

    더 이상 끝까지 못 읽어나가겠다 
 * 그의 신작을 읽지 않았지만 작가가 실제로 ‘순수박물관’을 세운다는  

    뉴스는 들어봤다  

 * 작가가 세운 순수박물관에 관람하고 싶지만 여행 비용이 부담스럽다

<순수박물관>을 도서관에서 빌린 지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예전에 그의 전작인
<내 이름은 빨강> 두 권짜리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떨쳐버리고
신작 <순수박물관> 두 권짜리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깐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독자가 순수박물관에  

찾아갈 수 있도록 약도를 그려 넣은 것은 좋다. 그런데 도록이 없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도록은 빠질 수가 없다.
2권 마지막에 소설 속 등장인물의 목록이 있고 순수박물관의 전시물 도록이 없었다.
2권을 너무 빨리 읽다보니 케말이 모은 물건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작 생각난 것이 처음 박물관 전시 1호 물건인 퓌순의 귀고리 한 짝이 유일하다.
그래서 이 훌륭한 작품을 그냥 읽기에는 허전함이 남았다. 케말이 퓌순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 박물관을 세웠듯이 나도 오르한 파묵의 신간을 읽은 기념으로  

내 나름대로 도록 같지 않은 도록을 작성하였다. 
 

참고로 순수박물관의 도록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낳게 한 아이디어의 근원은
최근에 읽은 사이토 다케시의 <독서력>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읽었던 책을 더욱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 ‘매핑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록 방식을 추천하고 있다. 쓰는 방식과 주제는 자유롭다.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에 대해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읽었던 책들을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을 예로 들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것이다. 읽고 난 뒤, 책 속에 소개된 법정 스님의 책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렇게 되면 책 내용에 관한 기억이 확실히 나게 되며, 자연스럽게 법정 스님의 책들도  

읽게 된다. 매핑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은 읽은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며  

창의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방식을 착안하여 좀 더  

<순수박물관>을 읽은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도록을 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 두 권짜리를 또 읽었다. 사실 적지 않은 양의 두 권을 또 읽어야한다는 점이
고통스러웠지만 막상 시작해보니깐 어느 새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완독 끝에 두 권에 등장하는 모든 순수박물관의 전시 물품들을 일일이 작성하였다. 

전보다 빠른 속도로 읽어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빠뜨릴 수가 있겠다.
하지만 굳이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또 한 번 두 권을 완독하는 것도 힘들며
나름 재미 삼아 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하지만 직접 터키에 있는 순수박물관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케말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사랑의 증거들을 책에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다시 한 번 말하겠지만, <순수박물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더 이상 밑의 글을 읽지 말고, 직접 책을 읽고 나서 도록을 확인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이 스포일러성으로 될 수도 있고, 괜히 허접한 글 때문에

독자 분들에게 기대감을 떨어뜨리게 만들게 하고 싶지도 않다.

혹시 읽어본 독자 분들 위해서 1, 2권 따로 정리했으며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페이지 수도 기록하였다.  
 

  

 

1권 

퓌순은 내가 박물관의 첫 번째 물건으로 전시할 귀걸이 한쪽을 빼서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p 59) 
 


그날 퓌순의 가방에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접어 놓은 그녀의  

꽃무늬 손수건을 여기 전시한다. 이후 퓌순이 담배를 피우면서 책상 위에서  

만지작거렸던 어머니의 크리스털 잉크병 필기도구 세트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연약한 온정의 징표가 되었으면 한다     (p 61~62) 
 


그 당시 터키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이상하고, 가장 용감했던 칼럼니스트
제랄 살리크(여기에 그의 칼럼 한 편을 전시한다)의 부드러운 손을 진심 어린 존경을  

다해 맞잡았다     (p 212) 
 


퓌순이 오늘 안 올 거라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던 그 십 분에서 십오 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는 여기에 전시한 시계, 성냥개비와 성냥 더미로 잘 설명될 것이다
(p 239~240) 
 


시벨과 누르지한이 읽던 프랑스 정원과 주택 관련 잡지에서 영감을 얻고 거기에 전통적인  

느낌을 접목해 꾸렸던 피크닉 바구니, 차가 가득 든 보온병,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든 돌마 모형, 계란, 멜템 사이다 병, 자임의 외할머니가 쓰던 멋진 덮개를 전시한다 

(p 249) 

  

 

나도 비슷한 것을 어렸을 때 사용했고, 어쩌면 그래서 퓌순에게 선물했던 학생용 자
우리 박물관의 첫 번째 진짜 물건이다. 그녀를 연상시키고, 그녀의 삶에서 고통으로
얻게 된 물건 (생략)     (p 267) 
 


여기에, 그 시절 안간힘을 써서 떠올리고 파악하려고 했던 새 니샨티쉬 지도를 전시한다
(p 270)
*** 카멜의 집이자 박물관인 멜하메트 아파트가 있는 지역의 지도. 지역 주위에
카멜과 퓌순이 함께 걸었던 길이나 퓌순과 관련된 장소가 표시되어 있음 
 


아파트에 들어가서는 찻잔, 잊어버리고 간 머리핀, 자, 빗, 지우개, 볼펜 같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물건을 만지거나.....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의 수집품을 늘려 나갔다.     (p 294) 
 


여기에 전시한 편지는 나의 수집품을 처음 모으기 시작했던 그 중요한 시절에 쓴 것이다
(p 295)      *** 케말이 퓌순에게 보내기 위해 쓴 편지 
 


이제 관람객들이 내 사랑의 고통에 질려 버렸다는 걸 알기에 신문에서 오린 멋진 기사를 

전시한다. 퓌순과 미인 대화에 같이 출전했던 친구 제이다의 대회용 사진과 삶의 목표가  

‘이상적인 남성’과 행복한 결혼하는 것이라고 했던 그녀의 인터뷰 (하략)     (p 296) 
 


잠시 후 조금이나마 고통을 잊고 잠에 빠져들었다. 아버지가 그날 입었던 파자마의  

칼라 항상 나를 우울하게 했던 슬피러 한 짝을 여기에 전시한다     (p 300) 
 


관람객들이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가장 특별하고 중요한  

물건들의 작은 사진을 순서대로 여기에 전시한다     (p 312~313) 
 


오십 년 후에 나의 이야기와 사건에 관심을 보일 새로운 세계의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
그 당시 담배 가게에서 팔았던 테두리가 꺼끌꺼끌한 전화 토큰을 여기에 전시한다
(p 3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안해요 Mr. Pamuk 
 

200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이 <눈>을 발표한 지 7년 만에  

신작이 나왔다. 더군다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로 소설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가의 유명세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은 최근에 나온 <순수박물관>이 처음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오르한 파묵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한  <내 이름은 빨강>을 읽어보기는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 당시  

워낙 유명했던지라 동네 공공 도서관에 대출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빌려가곤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예약자가 많아서 예약 기회도 없었다. 꼭 읽어야겠지  

하고 벼르다가 이 책을 알게 된 지 두 달 만에 드디어 그의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두 달이라는 인고(忍苦)의 시간동안 느꼈던 책에 대한 기대감이  

첫 페이지를 넘길수록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를
알리게 한 이 책의 독특한 역순행적 구성과 16세기 말의 터키를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색채의 문장에 기대감만큼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의 장르가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 읽었건만 추리소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몰입과 긴박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뭐야, 이게 추리소설이라고? 그냥 터키에서 유명한 추리작가의 작품이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1권의 절반도 채 읽지 못한 채 다음 날 도서관에 반납을 하였다.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풋내기 독서력이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다. 2년 뒤, 터키에서 유명한 추리작가는 세계적인 문학상의 No.1인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오르한 파묵을 저평가했던 과거의  

망상이 떠오르는 동시에 나의 유치했던 독서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의 노벨상 수상 이후로 대형 서점에는 그의 책들이 진열되어있는 코너가 마련되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는 추리작가가  

아니었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은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장편소설이었던  

것이다. 또 한 번 나의 무지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미안해요. Mr. Pamuk. 당신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그리고 작가 앞에서는 염치없겠지만 노벨상 수상 이후의 작품이라는 광고에 혹하여
<순수박물관>을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망설임없이 직접 2권을 공공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여 두 권 모두 완독을 하였다. 
 

 

 그녀를 찾습니다

이번 작품은 2권이며 합친 분량만 따지면 900쪽이 넘는 대작이다. 그리고 파묵은  

작가 생활을 하면서 펴낸 전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어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간략하다.  

케말이라는 남자가 미모가 출중한 퓌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녀는 돌연  

말없이 사라지게 되어버린다.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들어버린 퓌순을 찾기 위해  

케말은 그녀를 찾기 위해 방황의 시간 속을 헤매다가 결국 퓌순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퓌순은 이미 결혼한 사이였다. 케말은 포기하지 않고 구애 끝에 퓌순과  

재결합하게 되지만 결과는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인생의 절반을 퓌순에게  

사로잡혔던 시간동안에 간절한 그리움의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그녀가 사용한  

물건들을 멜하메트 아파트에 모아둔다. 퓌순과의 사랑에 대한 추억이 담긴 수집품들은  

결국 책 제목처럼 ‘순수박물관’을 세우게  되면서 30여년에 걸친 그의 사랑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사랑에 빠져버린 우리들의 모습 
 

제목과 내용만 봐도 사랑에 관련된 한 남자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인거 같은데.....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케말과 같은 사람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화성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그 사람이 주었거나 혹은 관련된 물건을 

버리기 마련이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을 지워버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케말은 

정 반대이다. 퓌순은 케말이 약혼녀 시벨과 결혼하게 된 시점부터 돌연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케말은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불문하고 단지 퓌순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갑작스런 이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 대한 결핍과 부재가 낳은 케말의 고독감은  

그녀의 손길을 스쳐간 물건들을 멜하메트 아파트 방에 가득 채워 넣는다.  

멜하메트 아파트는 케말과 퓌순만을 위한 사랑의 공간이며 유토피아(Utopia)이다. 

하지만 그의 ‘화성인’다운 행동에 대해서 이상하게 본다거나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지 마시라. 케말의 행동은 결국 사랑에 빠져버린 우리들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어 연인이 되면 꼭 하는 일이 있다.
그들만의 사랑의 징표라고 알릴 수 있는 커플링을 끼고 다니거나,
만난 지 22일이 된 날을 ‘투투데이’, 100일이 되면 그 날에 기념을 하고 선물을  

주고 받는다. 커플들의 이런 행동들은 자신들 간 사랑을 더욱 더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며 서로 간의 사랑의 유대감을 강하게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곁에 없지만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공간에 그녀의  

물건들을 수집하면서 케말은 퓌순과의 사랑을 자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념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끝끝내 버리지 않는다. 그녀의 부재 속에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수집 행동이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찾아다니는
끝에 재결합을 이룰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만남은 곧 헤어짐의 시작이라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에도 이별이 있는 법이다. 케말에게는 시벨이라는 약혼녀가 존재하고 있어서  

사실 처음부터 퓌순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한 번의 이별을 겪고  

다시 한 번 퓌순과 재결합하게 되지만 교통사로로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운명조차도 이들의 행복한 사랑을 오래가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케말의 퓌순에 대한  

사랑은 이상적인 사랑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한 번 사랑에 빠지게 되면 오래갈  

것이라고 행복감에 도취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생각이다. 

더욱이 그런 행복감에 지나치게 빠지다보면 이별 후의 후유증이 오래 남게 된다.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이성과 헤어지게 되면 아직까지도 상대방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후유증의 영향은 이별 이후에도 그녀가 준 물건들에 대해 더욱 더 애착이  

가게 된다. 그녀에 대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면서 이별을 선택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기도 하며 심지어 다시 재결합하기를 바라면서 상대방에게 애걸복걸  

매달리기도 한다. 어쩌면 케말도 퓌순을 사랑했던 기간 동안 지나치게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퓌순이 사라진 뒤에도 그녀의 물건을 수집하는 행동은
이별 뒤에 찾아오는 사랑의 후유증을 보여주고 있다. 
 

 

 순결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케말과 퓌순의 사랑이 유토피아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작품 속 삼각 갈등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 ‘순결’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갈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는 시벨과 퓌순이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관은 다르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은 서구 문화가 들어오고 있는  

70년대 터키의 여성상을 말해주고 있다. 시벨은 전통적인 여자이다.  

그녀는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케말의 이중적인 사랑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
반면에 퓌순은 예전에 미스코리아 대화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서구적인 여성이다.
케말이 약혼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그에 대한 사랑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여
멜하메트 아파트에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사랑에 대해서는 개방적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케말은 여성이란 결혼 전에는 순결을 지켜야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퓌순과의 사랑은 순결만 따져서는 안 되는 특별한 사랑으로 치부한다.
케말은 시벨과의 말다툼에서 자신의 사랑 관념을 드러나고 있다.

 "순결이 아직도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그렇게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척하는 거야?
  최소한 좀 솔직해졌으면 해.” 
 “모두들 이 문제에 대해선 정직해..... 너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본다는 게  

  너의 문제야.
  어쩌면 너나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리 유럽적이고 현대적이라 할지라도, 이 문제는 이 나라에서  

  그리고 한 여자에게는 중요해.” 
                                                                                             - 2권 p 234 -

남성들 입장에서는 순결은 참으로 모호하고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워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남성들끼리 암묵적으로 금기시하기도 한다. 케말처럼 남성들도  

순결 앞에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과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과 사귀기 전에 과거의 남자를 사귀었던 경험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괜히 민감해진다. 그리고 자신과 사귀고 있는 여성이 ‘순결 여(女)’임을 바라는 

남성도 있다. 여성이 과거에 남성과 사귄 경험이 많다고 하면 우리들은 그녀를 안 좋게    

바라보곤 한다. 남성의 심리는 여성은 순결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남성들은 자신들에 대한 순결은 생각해보지 않는다. 남성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어발식 연애를 즐기는 남성도 있으며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여자 친구 몰래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남성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여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 행동에 대해서 동족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자랑하고 다닌다. 무엇보다도 남성들 사이에서는 숫총각을 ‘천연기념물’이라고
비유하여 은근히 성적 비하를 하기도 한다.
결국 남성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관점은 남성 지배적인 사고가 자리 잡혀 있다.
그리고 남성이 여성에게 순결을 지킬 것임을 강조하는 사랑 방식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사랑이며 잘못된 것이다. 
 

 

 남성들이여, 케말을 본받자

개방적인 서구식 문화가 유입되면서 남녀 간의 사랑 관념도 변하고 있다.  

특히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가치관은 천차만별이다. 한 번 사랑한 남자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끝까지 정절을 지키는 춘향이식 사랑은 옛 말이다. 2년이라는 세월동안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오면 군 입대 전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했던 곰신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도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원 나잇 스탠드도 이성 관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다양해진 만큼 타인의 눈으로 이들의 행동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예민한 성격을 가지다보니 이성의 부재 시 느끼는 고독감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다. 2년이라는 기간. 누구에게는 짧은 기간이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긴 시간일 수가 있다. 군에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가가 정신적으로 힘들다보니 다른  

이성과 눈 맞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자유연애를 즐기는 것에 대해 자신들이 만족함을 

느낀다면야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또 젊음은 질풍노도라는 말이  

있듯이 한창 혈기왕성할 시기에 이성에 대해 사랑을 느끼고 연애를 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의 본능이며 젊을 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많은 사랑의 경험은 하되 올바른 방식의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연애를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버리듯이 한 달에  

수십 번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랑을 하지 말자. 짧아도 100일이라도 좋다.   

왠만하면 오랜 기간동안 연애를 하자. 자신의 잣대를 벗어나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 더 너그러이 이해하고, 케말처럼 ‘너 없으면 못 살 거 같다’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뜨겁게 사랑을 표현해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케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집착적으로 모으지 말자.  

다만 상대방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을 해서 준 물건들은 무시하지 말자. 세월이 흘러  

그 사람과 헤어져 있다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면 가끔  

그 물건들을 보면서 ‘아! 나도 예전에 이런 사랑을 했었구나’하고 즐거웠던 추억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남성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기념일은 잊지 말자는 것이다.
남성들은 기념일 외우는 것이 귀찮고 날짜 자체에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여성은 

다르다. 여성은 기념일로 하여금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랑을 더욱 더 특별하게  

여기고 싶어 한다. 또 한편으로는 기념일을 계기로 이성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며  

이 사랑이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심리도 가지고 있다. 여자 친구와 오래 사귀고 싶다면  

여자 친구에게 애정 표현을 자주 하고 이런 기념일도 챙겨주면서 여자 친구와의 사랑을  

돈독히 하자. 그럼 언젠가는 오랜 열애의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를 끝맺음을 안도현 님의 시로 장식하겠다. 케말도 이 시에 나오는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도 케말처럼, 아니 이 시에 나오는 연탄재와 같은
사랑을 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