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하늘의 챌린저호와 땅 위의 버스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의 역사적인 발사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 플로리다 주의 케이프커내버럴 기지로 모여들었다. 원래 발사 당일로부터 사흘 째 연기된 터라 사람들은 이번에는 챌린저호가 지구 밖으로 나가 우주로 향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챌린저호 본체의 엔진이 점화되어 보조추진로켓이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나 발사된 지 73초 만에 챌린저호는 공중에서 폭발하고 만다. 챌린저호 안에 탑승하고 있던 7명의 승무원이 전원 사망하게 되는 참사였다. NASA에서 발족한 챌린저호 사고 진상 조사규명회의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P. Feynman, 1918~1988)은 챌린저호의 O-Ring 추진 장치가 폭발 원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발사 당시 날씨가 쌀쌀할 정도의 낮은 온도와 발사 점화를 하면서 발생하는 초고압을 견뎌내지 못해 결함이 발생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실 파인만이 지적한 O-Ring 결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 발사된 콜롬비아호도 O-Ring 결함이 발생한 상태에서 운 좋게 발사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챌린저호 사고는 이전에 발견되었던 심각한 문제점을 인지한 상태에서 강행된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조그만 결함이 7명의 생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들었고, 추진 중이었던 우주왕복선 운용 계획은 2년 간 중단되어야만 했다.

인재로 인한 대폭발 사고는 미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2개월 전,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던 천연가스 버스의 엔진이 갑자기 폭발하여 사고 현장 주위의 행인과 버스 탑승자들이 부상을 입은 아찔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최근에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이 제출한 서울  천연가스 시내버스 점검 실태에 관한 자료에 의하면 2007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총 3만 13대의 버스를 대상으로 점검을 실시하였는데 그 중 748대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여 부적합 판정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대응도 없이 운행하도록 방치하고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시내버스 폭발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도 이미 버스 엔진의 문제점을 지적된 바가 있었다면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관련기관의 행정 태도를 비난하였다.

하늘 위에서 폭발하고, 땅에서도 폭발해버리고.....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두 사고는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다가 발생한 사고이다. 두 가지 사례와 관련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와 유사한 유형을 법칙으로 정한 것이 있다. 법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고 하는데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들이 반드시 발견된다는 내용이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고들을 분석해본 결과, 대형사고에는 1명의 중상자가 발생하는데 그 전에는 같은 원인의 사고로 인해 29명의 경상자가 있었고, 또 그 전에는 부상을 당할 뻔한 300명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을 1:29:300 법칙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대형사고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여 생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무시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대개 "전에는 이런 일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다 언젠가는 그게 문제가 되는 때가 오는 것이다. (『체크! 체크리스트』p 52)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유, 프로가 아마추어로 된 이유 
 

우리나라 속담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높은 나무 위를 잘 타고 오르는 원숭이도 가끔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어떤 것에 잘하는 사람들도 간혹 실수가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요즘은 작년에 개그 프로그램 속 코너로 인해 유행했던 말이 이 속담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상대방이 예기치 않은 실수 한 번 하는 것을 보면 바로 이 멘트를 날려준다.

그런데 우리는 실수하는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왜 원숭이가 나무에 떨어지는 이유를, 그리고 프로 같이 하는 일마다 능숙하게 처리하고 똑똑했던 사람이 왜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하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봤는가?  우리는 실수를 한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하여 자신과 비교함으로써 상대방을 비하하여 낮추게 보려는 일말의 자만심만 느낄 뿐이지 실수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체크! 체크리스트』의 저자 아툴 가완디는 인간이 실수하는 이유를 무지(無知)와 무능(無能)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을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가 된 인간은 지금까지 습득한 지식만 있으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무지 속에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항상 일정하게 일어난다는 법은 없다. 간혹 불규칙적이면서도 인간이 예측하지 못했던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결국, 이런 현상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하게 된다. 지식은 있으면서도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을 모를 때도 실수가 발생한다.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무능한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한 지식 적용 능력을 인지를 하고 있든 말든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그대로 방관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무지한 자와 무능한 자가 실수를 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실수 앞에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기만하려는 인간의 얄팍한 심리로 인해 커다란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크리스트 활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체크! 체크리스트』속에서 소개되는 병원 업무에 대한 사례는 체크리스트의 중요성을 더욱 더 강조되게 해줄 뿐, 아툴 가완디가 말하고자 하는 올바른 체크리스트를 만들기 위한 예들은 그리 신선하지가 않다. 쓸데없는 정보를 버리고 소속 일원들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질문사항, 소속 집단의 리더만 사용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모든 소속 일원들이 체크리스트를 숙지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체크리스트의 단계들을 다시 한 번 상키 시켜줄 수 있는 팀워크의 필요성 등등. CEO나 비즈니스 업계 종사자들을 겨냥한 성공학 개론서에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사람들이 한 번 읽은 내용들을 바로 행동으로 실천을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도 가볍게 보다가는 시낭 낭비, 무의미한 독서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유용한 것은 책의 제일 마지막 뒷장에 직접 체크리스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실제 체크리스트 표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나 CEO들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도 인간이다 보니, 이런 성공학 관련 도서 10권, 50권 읽고 또 읽어도 책 속 내용들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고작 한 두 개 정도 밖에 없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바빠지는 삶에 치이게 되다보면 자연스럽게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러다보니 『체크! 체크리스트』를 읽을 때도 체크리스트 활용에 대해 중점적으로 보기 보다는 제1장 「왜 전문가들조차 실수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유심히 읽었으며 지금도 기억이 남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통해서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또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솔직히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서 자신의 실수를 무작정 고치려는 것보다는 자신이 왜 실수를 일으키는지 그 원인을 알고,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 내용과 외람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재로 인한 대형사고에는 꼭 인재를 일으키게 하거나 혹은 이를 묵인한 관련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 중 낯짝 두꺼운 얼굴을 한 일부는 뻔뻔스럽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사고의 진상이 밝혀진 이상 자신의 오류와 실수를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자꾸 변명만 늘어놓으면 오히려 자신을 절벽 끝으로 몰아넣게 만드는 불리한 상황으로 만들 뿐이다. 공인(公人)이기에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마추어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챌린저호 관련 내용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디피아 백과사전

* 관련기사 출처
[이종혁 "부적합 CNG버스 2년여 간 748대 적발"]  연합뉴스 2010년 10월 3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68432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06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6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책들 세계문학 122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1-817] 어느 작가의 오후

 

 

 

      꿈꾸는 작가의 오후 
 

   

우연히 도서관에서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를 만났다.
평소에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작품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께가 얇은 탓도 있지만, 겉표지 없는 노란색 책이 한편으로 작가노트 같은 분위기도 나서  
(작가노트라기 보다는 노란색 열린책들 북북이 같기도 하다)
페터 한트케의 책에 저절로 손이 갔다.


제목 그대로 이름이 없는 작가의 오후를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단순히 작가의 눈으로 보고 있는 오후의 풍경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작업실 내부 

                                                             

정원 
                                                              

공원 
                                                              

강변 
                                                              

들판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도시의 거리 등등. 
 


우리가 현실에서 쉽게 마주하면서도 지나쳐버리는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경험하는 세상은 현실과 꿈이 교차하고 있는 환상의 공간이다. 
오전부터 시작된 소설 쓰기를 중단하고 오후에 짬을 내서 쉬려고 했건만
‘작가의 본분’이라는 직업병이 머릿속에 각인된 작가는
소설 구상에 필요한 언어가 잃어버리지 않을까봐 걱정을 하기도 하고, 
소설 속 서술처럼 주변 시선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의 장르 자체가 소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작가의 망상은 갈수록 심화된다.
자신의 서재가 있는 작업실로 돌아오면서도 자신이 보고 있는  

사람과 풍경이 모두 환영이라고 생각한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온 작가는 소설을 쓰게 될 오전이 올 때까지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을 끝으로 작가가 겪었던 환상적인 오후는 그렇게 저물어 간다.  

 

 

  
 
                                     고립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다      

 

                   

 

사실 작가라는 직업에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산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작품 구상을 위한 심혈을 기울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접촉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보니 고립된 생활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불후의 명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코르크로 둘러싼 병실 안에서
고독과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중고에 맞서야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인생처럼 말이다. 

한트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가처럼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글을 써야하는 실제 작가들에게는 어쩌면 외부 세계와의 만남은
그들이 꿈꾸는 하나의 일탈일지도 모르겠다.  

잠시나마 펜과 글을 놓아두고 외부 세계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집필 생활하면서 느껴보지도 못했던 정(情)도 느껴보고  

창작의 고통으로 인해 생긴 번뇌의 찌꺼기를 뱉어내고 

고립으로부터 해방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작품 속 작가는 해방을 시도해보나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노쇠하게 만들어버렸다.
작업실에서 탈출을 해도 자신에게 외부 세상은 낯설게만 느껴지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작품 구상에 결부시키려고 한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도 얻지도 못한 채 그냥 오후동안 싸돌아다닌 것이다.  

결국 그는 고립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잠시나마 느끼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걷는 에셔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현실과 꿈을 혼동한 채 살아야 하는 고립의 굴레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독자에게 새로운 현실의 만남과 작품으로서의 해방을 제공해주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것 한갓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에서 인용)

   

 

 

비록 작가는 고립으로부터의 해방은 못했지만,  

작품 읽기를 통해 낯설고도 새로운 현실을 체험할 수 있었다. 

『어느 작가의 오후』는 단지 일상 모습을 그대로 나열하고 있는 무의미한 텍스트이면서도  

작가가 겪는 망상이 가득한 꿈에 불과하다. 

그러나 독자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무의미한 텍스트에도 현실감이 부여된다.  

훈데르트바서의 말처럼 작품을 읽는 독자는 작가의 꿈 같은 체험에 자연스럽게 개입되어 

전혀 꿈 같지 않는 실제 현실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며 만남이다.  

 

'모든 요소들이 자유로운 상태로 열려 있는 것' (『어느 작가의 오후』p 40) 

작품 속 구절을 빌린다면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페트케의 서술 방식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어느 작가의 오후』 속의 모든 요소들이 '자유'라는 것이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자유롭게 작가의 꿈에 공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은  

읽는 내내 순차적으로 돌아가는 소설의 일반적인 전개가 없었던 것이다.   

발달,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통해서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텍스트 속 줄거리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스토리는 필수 요소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만든 허구적 전개를 읽도록 하게 만든다.

작품 스토리 자체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보이지 않는  

작가와 독자 간의 주종 관계가 형성된다.  

 

『어느 작가의 오후』에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내용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각각의 과정에서 유난히 눈에 띄인 것도 없이 무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야기 없는 이야기 속에는 독자에게 작가의 오후를 강제적으로 이해시키려는  

한트케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무의미한 전개일수도 있으며  

작품 하나로 인해서 작가와 독자가 처한 상황은 극명하게 갈라졌지만

나에게는 스토리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 한트케의 노마드적 전개가 무척 좋았다. 

이런 카타르시스를 평생 살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작품으로서의 해방이라고 해야되나?  

 

이 한 작품을 통해서 페터 한트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알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낯선 작가로부터 느껴보지도 못했던 낯선 이야기를 통해서  

다독(多讀)에 얽혀 살았던 수많은 시간들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어서 좋았다. 

페터 한트케와의 만남.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 그림 출처    

 

에드워드 호퍼 <작은 도시 속 사무실>
http://blog.naver.com/ziggy1980?Redirect=Log&logNo=80102996673

발튀스 <거리>
http://blog.naver.com/amorfati05?Redirect=Log&logNo=30023096112  

 

M.C. 에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http://blog.daum.net/chic_black/6589707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http://jschoe69.blog.me/400142074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rap #1  

요컨대 아침볕을 받는 곳은 저녁 그늘이 먼저 들고,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람은 이리저리 옮겨 붙어 한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이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좌절로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한 마리 가을 매가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눈은 건곤을 작게 보고, 손바닥은 우주를 가볍게 보아야만 한다.

                                                                     - p 36, 학유가 떠날 때 노자 삼아 준 가계 -        

 

 ...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하늘을 박차고 오를 수 있는  

     한 마리의 매의 기상이 있어야 한다 ...
     男子漢胸中, 常有一副秋隼騰霄之氣 
  

 언제나 봐도 참 멋진 말이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다산의 글이 대부분 자신보다 어린 자식이나 젊은 제자들에게 전하는 형식이 많다.
 그래서 요즘도 그의 글을 읽어도 전혀 오래되어 보이지 않다. 수백 년이 지나도 다산의 글에는
 스승으로서 제자와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정말 다산과 같은 정신적인 멘토 한 분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scrap #2 

오직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질이 달아나기를 잘하고, 들고 나는 것이 일정치가 않다. 비록 가까이에 꼭 붙어 있어서 마치 서로 등지지 못할 것 같지만, 잠깐만 살피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록(利祿)으로 꼬이면 가버리고, 위협과 재앙으로 으르면 가버린다. (중략) 한번 가기만 하면 돌아올 줄 모르고, 붙들어도 끌고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천하에 잃기 쉬운 것에 ‘나’만 한 것이 없다. 마땅히 꽁꽁 묶고 잡아매고 문 잠그고 자물쇠로 채워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  p 42, 수오재기(守吾齋記) -    


 세상에서 변하기 쉬운 것은?
 .
 .

 .   


 만약에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 ,      

 바로 ‘자기 자신’ 이라고 할 것이다.
 화려한 부귀가 눈앞에 있으면 1초에 생각할 겨를이 없이  

 혈육의 정과 우정을 쉽게 집어치울 수 있는 속물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이러 저리 당을 옮기는 정치인들,
 잠깐의 향락이 주는 달콤함에 도취하여 단물이 쏙 빠지면 다른 향락을 찾는 젊은 세대들 

 (물론 나 자신도 포함된다).
 이들은 변해가는 세상과 현실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들이 세상의 변화에 쉽게 휘둘러서 수동적으로 산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끝내 ‘자기 자신’도 변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산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삶의 방식도 좋지만,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거나 유혹당하지 않도록 ‘나’라는 본질적 자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scrap #3

예로부터 성현은 모두 ‘개과(改過)’ 즉 허물 고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중략) 왜 그랬을까? 대개 사람의 정리란 빈번이 허물이 있는 곳에 대해 부끄러움이 변해 분노가 된다. 처음엔 아로새겨 꾸미려 들다가 마침내는 어그러져 과격하게 되고 만다. 허물을 고치는 것이 허물이 없는 것보다 어려운 까닭이다. 우리는 허물이 있는 사람이다. 마땅히 급하게 힘쓸 것은 오직 ‘개과’ 두 글자뿐이다. 세상을 우습게 보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기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영예를 탐하고 이익을 사모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뜻이 같으면 한 패가 되고 다르면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잡서를 즐겨 읽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요, 새로운 견해 내기에 힘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이 같은 병통들은 이루 다 꼽을 수가 없다. 한 가지 마땅한 약제가 있으니, 오직 ‘개(改)’란 한 글자일 뿐이다.

                                                                                   - p 60,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 
 

 

 예전에 동물 프로그램에서 좀 문제가 있는 애완견들의 성격을 바로 잡아주는
 ‘개’과천선(멍멍 짖는 동물의 개 + 잘못을 고쳐 올바르게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개과천선의 합성어)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주인에게 받은 애정이 부족하여 이상 행동을 보이는 강아지부터 시작해서
 주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버릇을 가진 강아지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애완견들이 등장하여 애견 전문 훈련 소장님이 개들의 못된 습관들을 고쳐주는  

 일종의 동물 치료를 해주는 나에게는 기억이 남는 코너였다.
 그 많고 많은 문제견 중에서는 자신이 주인인 마냥 진짜 주인 사람한테 으르렁 짖어대면서  

 물려고 하는 하룻강아지 주인 무서운 줄 모르는 녀석도 있다.
 그러나 주인도 고치지 못했던 애완견의 악습관들은 소장님의 특별한 처방과 훈련으로
 쉽게 해결된다. 그리고 애완견들이 자신이 드디어 ‘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예전의 못된 성격은 온데간데없다.
 개들은 제대로 훈련만 잘 해주면 못된 습성들을 쉽게 버리던데...
 일부 몇 몇 인간들은 자신이 못된 허물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거나
 혹은 허물을 벗으려는 ‘개과’하려는 노력도 하지도 않으니...
 옛날부터 허물이 있는 부족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불렀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scrap #4 


사람은 늘 스스로를 가볍게 보고 자신을 업신여긴다. 그런 까닭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헐뜯거나 기리고, 닥치는 대로 비난하고 칭찬한다. 그 사람의 영욕과 이해가 이처럼 서로 아득한 줄은 생각지 못한다. 허락해서는 안 되는데 허락하는 것은 잘못이 오히려 내게 있지만, 배척해서는 안 될 때 배척하는 것은 해로움이 장차 남에게 미친다. 그러나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은혜와 원한은 흔히 한 마디 말 때문에 생기고, 화와 복은 한 글자로 인해 야기된다.

                                                                                                   - p 64, 도산사숙록 -  

   

요즘 출판사 인터넷 카페나 알라딘 서재에서 멋진 글을 읽게 되면 항상 감사의 댓글을 남긴다.
댓글 남기는 일이 습관이 되다보니 읽었던 글이 잘 쓰든 못 쓰든 그 글에 대해서  

무조건 댓글을 남기려고 한다. 나 자신도 그렇게 좋은 글 솜씨도 아니길래  

잘 썼다 못 썼다라고 비평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상대방의 글을 읽게 되면 항상 좋은 점을 보게면서 글에서 인상이 깊었던 점 등을 언급하다보니  

대부분 댓글의 내용이 칭찬과 감사 인사가 많다.
그런데 가끔 댓글 남기는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생각할 때가 많다.
상대방의 글이 좋아서 남긴 것뿐인데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괜히 상대방이 나의 댓글에 부담스러워할까 댓글 하나하나 남기는데 노심초사한다.
한 번은 어느 분의 서재의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겼는데
본의 아니게 글 작성자의 닉네임을 잘못 적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글 작성자께서 작은 실수로 넘어가주셔서 망정이지,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른 일은 글 작성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일일 수 있다.
이 일을 계기로 평소에 댓글을 남겼을 때도 너무 감정에 사로잡혀 작은 일에도  

가볍게 봤던 점에 대해서 반성을 할 수 있었다.  

말을 할 때도 잘 헤아리면서 말을 해야 되는 것처럼
댓글 작성에도 신중을 가해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키가 작아서 슬픈 남성들이여 
 

작년 말에 ‘루저(Loser)’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다. TV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여대생이 키가 180cm 이하 의 남자와는 사귀기 싫으며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말을 한 것이다. 이 방송 전파가 되고난 후 관련 방송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졸지에 네티즌들에게 뭇매를 당한 것부터 시작해서 ‘루저녀’라는 좋지 않은 별칭이 붙여진 발언 여대생은 한동안 곤혹을 치러야 했고, 비난의 여파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미칠 정도로 컸다. 남자 시청자들은 해당 관련 방송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신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 방송 프로그램은 폐지되기까지 이르렀다. 그 후에도 ‘루저’는 지금까지도 각종 포털 사이트는 물론이고 방송에서까지 패러디하여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유행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키 180 이하 남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루저 논란이 좀 잠잠하나 싶더니 한 달 전에도 또 한 번 ‘루저’ 논란이 불거졌다. 한 결혼정보회사 2곳이 남성 고객의 키인 158cm가 너무 작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사이트 가입을 거부시킨 것이다. 관련 해당 업체들은 키 작은 남성을 원하는 여성 회원이 적어 주선이 어렵다는 이유로 165㎝ 이상으로 회원가입기준을 정해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결혼정보회사가 회원 가입을 거부한 것을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판단, 해당 업체에 관행을 개선하도록 권고 조치를 내렸다. 또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신체적 조건으로 서비스 이용을 배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차별행위에 해당 한다”고 말했다. 

 
  

우생학의 그늘에 갇혀버린 현대 의학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습과 능력에 대해서 남들과 비교를 하여 더 우월해지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 하나라도 생기게 되면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신체적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형 의술의 힘을 빌려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란 만족을 모르는 불가사의라는 팔만대장경 속의 격언대로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성형 치료를 여러 번 받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외모를 갖출 때까지 얼굴에는 들이대는 메스 질은 수십 번 해야지 직성이 풀린다. 결국, 무리한 성형 의술로 인해서 이전의 용모는 온데간데없고 몰골이 흉해지게 된다. 얼굴에는 온전한 살덩어리는 찾을 수 없고 끔찍한 흉터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신체적 외모뿐만 아니라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의학의 힘을 빌린다.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이 세 사람은 미국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홈런왕이면서도 금지약물 복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약물 슬러거’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새미 소사는 2006년 시즌에 600홈런이라고 대기록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 복용 사실로 인해서 야구팬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는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에 자신의 소속팀인 시카고 컵스로부터 퇴출당하기도 한다. 소사의 쓸쓸한 말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새미 소사가 역대 시카고 컵스 팀에서 배출한 최고의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카고 컵스 구단은 소사의 등번호 21번을 영구결번을 시켜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뛰어난 활약을 한 은퇴선수에게 소속 팀에 활동할 때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이 되면 영광스런 훈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새미 소사는 영구결번의 명예를 받을만큼 충분한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복용이라는 야구 인생의 오점 때문에 은퇴해서도 그리 후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얄궂게도 2007년 시즌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의 배리 본즈가 통산 756호 홈런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나 일명 ‘BALCO 스캔들’이라고 부르는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으로 인해서 대기록의 명성에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프랜시스 골턴(1822~1911)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의학 기술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주된 목적은 상실되고 외모와 능력이 뛰어난 우월한 인간 완성의 손쉬운 도구로 전락되었다. 힘이 넘치는 헤라클레스와 영원한 미의 상징 비너스를 되기 위한 인간의 끝없는 집착이 의학 기술의 이용 목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러나 어두운 욕망의 집착에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우생학의 그늘이 있다. 우생학은 유전 법칙을 기반으로 인간 종족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손자인 프랜시스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은 우월한 유전인자를 가진 인간을 육성하고 열등한 유전인자의 인간은 의도적으로 억제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으며 독일의 히틀러가 시행한 극단적인 유태인 학살은 우생학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후로 우생학은 인류의 살육과 인권 침해 우려로 인해서 폐기되었지만 아직도 우생학의 흔적은 남아 있다. 유전학적 질병에 걸린 환자를 강제로 피임시키는 우생법안은 부분적으로 세계 곳곳에 남아 있으며 유전인자의 개선에 중점을 둔 기존의 우생학을 뛰어넘어 환경과 교육의 개선으로 인류를 개량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인 우생학인 우경학으로 발전되었다.  
 

  

 

제2의 김연아, 박지성 만들기 : 노력이냐? 재능이냐?  

 

우생학에 사로잡힌 인간의 욕망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자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한계를 실감한다. 마이클 샌델은『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 우생학에 사로잡힌 인간의 심리를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우월한 능력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부적 요소인 재능보다는 외부적이며 인위적인 요소의 노력을 중요시하는 대중의 무지함을 지적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 최고의 기록을 남긴 김연아 선수나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축구선수 박지성을 보면서 대중들은 끊임없는 노력만이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그들이 지금까지 유명 선수로 발돋움하기 전의 활동들을 언급하여 그들의 노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노력이 만든 실력을 강조하고 있다. 김연아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난 뒤에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려는 여자 어린이들이 증가한 점과 박지성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진출한 뒤에 유소년 축구 교실의 학생 수가 늘어난 것을 보면 오직 노력을 통해서 제2의 김연아, 박지성을 꿈꾸는 어린이들, 그리고 그 뒤에는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또 마이클 샌델은 부모들이 노력을 최우선시하는 세상의 틀로 자녀들을 구속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심지어 자녀의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생명 공학적으로 조작하는 사례를 언급하기도 한다. 부모가 완벽한 자녀 만들기에 집착, 과잉 교육을 하게 되면 자녀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말한다. 생명 공학까지 언급하면서까지 부모의 과잉된 자녀 교육을 비판하는 저자의 의견이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자녀의 재능과 적성을 모르는 채 오직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제적으로 교육시키는 우리나라의 극성적인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마이클 센델의 지적이 단순히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유전공학과 프로메테우스 
 

마이클 샌델은 유전복제 기술이 윤리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들이 옹호하는 이유도 우생학의 흔적이 남긴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배아줄기세포가 단순한 세포 덩어리냐 아니면 인간의 일부로 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적인 논란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배아 복제 기술이 단순히 우월성을 위한 목적의 맞춤형 인간 만들기에는 반대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우월성에 사로잡혀 유전 공학에 의존하다보면 사회 집단 내에서 유지되고 있는 평등과 공정성이 무너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정의하고 겸손이 깃든 인간적 연대감이 형성되는 인간적인 윤리관을 제안하고 있다. 찬반론자 사이에서 인간 복제 문제에 관한 공방은 치열하지만 유전 공학이 단지 인간에게 이로운 점도 있기에 일부 국가에서는 유전 복제를 허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저자의 바림직한 소망은 추상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유전 공학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센댈의 제안을 한 쪽 귀로 흘러 보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윤리적 가치관이 확립된 상태에서 좀 더 인간에게 이로운 점을 줄 수 있는 의학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흙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빚어냈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에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름 그대로 신들의 소유물이었던 불의 유용함을 알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다가 제우스가 내린 죄로 독수리들에 간이 뜯기는 벌을 받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는 불리함을 알면서도 자신이 완성시킨 인간들을 위해 무모하게 불을 훔쳐냈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고마움을 모른 채 지구의 주인인 마냥 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능력까지 훔쳐내고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소유물인 불을 훔치려고 했듯이 말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죄로 벌을 받았듯이 인간 복제 중심의 유전공학으로 인해서 인간이 해로움을 입지 말라는 법이 없다.시대가 가면 갈수록 유전공학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만큼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처럼 인간 배아복제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과 앞으로 닥쳐올지도 모르는 해로움를 바라볼줄 아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할 때이다. 
 

 

 

 

* 관련기사 인용 출처   

 

[키작은 ‘루저’ 결혼정보회사 가입거부는 차별] 경향신문 2010년 9월 15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9151112541&code=9401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Nella Fantasia], [Gee], [심장이 없어]의 공통점은?  

 

   

출처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10011057473&sec_id=540101&pt=nv  


많은 시청자들에게 합창곡의 아름다운 선율과 찐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던 <남자의 자격 - 남자 그리고 하모니>가 2개월동안의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들이 보여준 하모니는 감동 그리고 아름다운 그 자체였다. 각기 다른 직업과 성격을 가진 32명의 목소리로 재탄생된  ‘Nella Fantasia'는 급 결성 초짜 합창단에게 장려상이라는 뜻밖의 쾌거도 안겨주었다. 마지막 방송이 텔레비전으로 전파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32명의 합창단원들은 아직도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계속될까봐 두렵다고 하였다. 이들뿐만 그런 거 아니다. 많은 시청자들도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하모니를 잊지 않았다. 이틀 전, 라디오를 통해서 들은 건데 Nella Fantasia의 멜로디를 잊지 못해서 이 노래를 신청하는 청취자도 있었다. 사실 필자는 <남자의 자격 - 하모니 편>을 보기 전에는 Nella Fantasia라는 노래가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에는 귀가 심심하면 MP3에 들어있는 Nella Fantasia를 듣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하모니가 남긴 Nella Fantasia 후유증이라고 해야 되나..... 이전에 합창곡에 관심도 없었는데 <남격> 방송 때문인지 합창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합창단이 불렀던 노래들도 자주 듣곤 한다. Nella Fantasia 다음으로 많이 듣는 게 실버합창단이 불렀던 ’그대 있는 곳까지(Eres tu)' 라는 노래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대 있는 곳까지’는 멜로디의 선율이 애잔하면서도 가사 내용이 좀 슬퍼서 좋다)  

 

 

특정 음악을 계속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음악의 힘은 Nella Fantasia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에 전국을 '소시' 열풍으로 만든 소녀시대의 ‘Gee'는 어린 10대부터 젊은 층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대중가요를 잘 듣지 않는 4, 50대들도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소녀시대의 율동이 노래가 인기를 끌 수 있는 데 한 몫 했지만 결정적으로 이 음악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노래 속에서 반복되는 후렴구 멜로디와 가사인 후크(Hook)의 영향이 컸다. 대중들은 언제나 들어도 귀를 즐겁게 만드는 노래 속 후크 부분 때문에 ’Gee'를 많이 듣게 되었다. 

 

  

 

소녀시대의 Gee 이외에도 반복되는 후렴구와 가사로 이루어진 후크송(Hook Song)이 대중가요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후크송이 대중들의 귀만 사로잡는 것이 아니다. 에이트(8ight)의 ‘심장이 없어’는 작년에 모 인맥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뽑은 최고의 인기곡으로 뽑힐 정도로 반복되는 애절한 후렴구와 가사로 이루어진 발라드 곡이다. 노래의 강렬한 중독성 때문에 박진영이 에이트의 노래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24시간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특정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이유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특정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 하며 또 반복되면서 듣는 걸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의 보이지 않는 마력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는 음악이 뇌의 반응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음악과 뇌의 상관성에 대한 신비스러운 힘은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올리버 색스는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 결과들의 예를 들면서 음악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뇌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음악을 지각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정밀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로돌포 이나스라는 뇌 연구 전문가는 “인간은 느닷없이 머릿속에서 노래가 들리는 일들이 가끔씩 일어난다”고 말하였다. (p 69 인용)

또 다른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음악을 상상하면 뇌 속의 운동 피질과 청각 피질이 음악을 듣는 것보다 더 활발하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음악적 심상 능력이 향상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음악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도 뇌 속에는 특정 음악에 대한 멜로디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남아있으며 또 듣고 싶어지는 욕구가 발현된다. 이를 비자발적 음악 심상이라고 말한다. 특정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게 만드는 마음의 상태이다. 특히 음악의 반복적 멜로디에 노출될수록 비자발적 음악 심상이 쉽게 생성된다. 


 

너무 지나치면 독? 
 

그러나 특정 음악에 대한 기억이 강한 것도 그렇게 좋은 현상은 아니다. 올리버 색스는 후크송의 영향을 뇌벌레(Brainworm)라는 재미있는 단어로 규정하고 있다. 애벌레가 사과 속을 파먹으면서 그 안에서 자라듯이 일명 ‘뇌벌레’라고 부르는 음악의 특정 소절이 인간의 뇌 속에 깊이 각인시키게 된다. 벌레가 사과 속살을 파먹으면 이 사과는 먹을 수가 없게 된다. 저자는 뇌벌레가 특정한 신경 질환에 걸린 사람에게는 큰 타격을 준다고 말한다. 몇 시간동안 머릿속에 특정 노래의 구절이 들려오는 환청이 맴도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심할 경우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에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특정 음악에 사로잡는 현상을 심각한 정신적 증상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 역시 음악 애호가인 만큼 본인도 특정 음악을 좋아해서 자주 듣는다고 실토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히 발생하는 현대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이런 현상을 겪는 요인으로는 반복되는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음악의 경향과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후크송이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끊임없이 울려대는 음악 폭력에 포위된 상태’(p 80 인용)라고 비꼬기도 한다. 너무 특정 음악에만 듣게 된다면 청력이 상실될 수 있으며 뇌벌레 환청이라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신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음악은 위대하다

   이제는 정말이지 그들이 아름답고 즐거운 바이올린 연주를 듣겠거니 했다가  

  실망한 듯, 연주 전체가 지겨워졌는데 다만 예의에서 그들의 안식을 방해하게끔  

  내버려두고 있다는 듯한 태도가 완연한 인상이었다 (.....) 그런데도 누이동생은  

  참 아름답게도 연주했다. (중략)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될 수 있으면  

  어쩌면 누이와 눈길이 만날 수 있도록, 머리를 바닥에 바싹 붙였다.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동물이란 말인가? 마치 그리워하던, 미지(未知)의  

  양식에 이르는 길이 그에게 나타난 것만 같았다.

  - 『변신』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역, 민음사, p 66 -   

 

 

한순간에 인간에서 벌레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고민하던 그레고르는 누이동생의 음악을 듣고 자신에게 인간의 모습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기뻐한다. 음악 감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힘은 대단하다, 아니 위대하다. 청각을 상실함으로써 이미 음악가로써의 인생이 끝난거나 마찬가지였던 베토벤은 머리속으로나마 음악을 듣고 느끼려고 노력한 끝에 초창기 시절의 곡보다 훌륭한 불후의 명곡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잃어버린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서 재발견한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책 제목인 Musicophilia(음악사랑)의 뜻처럼 인간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동물일 수도 있겠다. 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음악사랑의 감정이 있었기에 인간이 각종 무형의 소리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음의 소리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수 없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을 듣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이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지금 두 발을 걷고 다니는 고등동물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