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이번 신간도서 소개는 고르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평가단원분들에게는 좋지 않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이 소개하신 페이퍼를 참고하여 소개하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이번에 평가단원분들이 쓰신 페이퍼에는 내가 점찍어둔 책들을 많이 중복되어서 무척 좋았다. 이제서야 신간평가 활동이 좀 적응이 되는가보다.  

지금 내 귓가에 이적의 노래 '다행이다' 가 흐르고 있다.  라이브 음악 동영상을 올리고 싶지만 컴맹이라 못 올리겠고 , , ,  이번 페이퍼 작성의 심정을 이적의 노래 가사를 패러디로 표현해봤다. 

 

그대를 만나고 / 그대의 페이퍼를 볼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 그대가 소개한 책을 같이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조국 & 오현호 / 오마이북  

조국 교수라는 이름을 언론이나 뉴스에서 간혹 접한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가 쓴 책들, 그리고 그의 생각들은 낯설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라는 것도 나와 동떨어진 주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 , ,   아 , , , 사실은 우연히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 발견되어서 지금 읽고 있다. 진보에 대해 문외한이다보니 이들의 대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이들의 대화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올줄이야.   

그리고 '진보'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이들의 대담은 지루하기보다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비록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읽고 있지만, 이 책.  집에 소장하면서 두고두고 보면 좋을거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점.  

 ' 나는 진보주의자였다. '  

       

 * 뱀꼬리 조크  

예전에 군 복무하고 있을 때, 저녁 점호(밤 9시 30분 시작) 전에 선임들과 함께 생활관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 때, 뉴스에서 조국 교수의 인터뷰 장면이 잠깐 나오게 되었다.  잘 생긴 얼굴, 그리고 자막에 떠 있는,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은 이름 두 글자를 본 순간, 그가 조국 교수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 때, 어느 선임병이 조국 교수의 장면이 나온 걸 보고 했던 말. 

  " 저 사람은 이름이 조국이니깐 조국기도문을 잘 외우겠는데. . . ? "   

 * 조국기도문 : 군대에서 아침 점호를 하게 되면 점호를 참여하고 있는 병사 한 명이 말 그대로 조국의 안녕에 대한 기도문을 말하는 것이다.  (ex. 오늘도 모든 장병들이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훈련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트리스트럼 헌트 / 이광일 역 / 글항아리 

마르크스와 함께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음에도 그에 대한 신상소개에 대한 책은 부족했으며 마르크스에게 밀린 감이 있었다. 그래서 <엥겔스 평전>이 반갑기도 하였다.

 '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 라는 부제를 본 순간, <공산당 선언> 한 글자도 읽어본 적 없었던 나는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이 사람, , , 왠지 사상이 멋있을거 같다. 하지만, 이 책 역시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 처리된 상태라서 (이 책이 이번 신간평가 도서가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평가도서가 확정되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거 같다. 평가도서 확정날을 12월 27일 정도 잡는다면 그 전에 이 책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지도 , , ,  

그런데, 왜 책 표지 속의 엥겔스를 보면, 에픽하이의 미쓰라진이 떠오는걸까 , , , ?     

  

 

 

 

 

 

 

 

 

 

 

 

 이정원 / 웅진지식하우스  

 우리나라 고전소설들을 '욕망' 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이 외국의 고전문학에 밀리다보니 원전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 많이 없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고전소설을 재해석한 책들은 간략히 고전소설의 줄거리들을 파악 할 수 있고 고전소설 읽기의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데이비드 몽고메리 / 이수영 역 / 삼천리 

이번 페이퍼를 작성하는 동안 평가단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 역시, 위에 소개된 <엥겔스 평전>과 함께 같은 날, 같은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신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역시 선정되어 소장한다고 해도 아쉬울게 없다. 흙에 대한 문명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매주 토요일마다 일간지 북섹션을 통해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딱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쉽싸리님이 생각났다. 분명 이 분도 이번 페이퍼에 소개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내 예상이 적중하였다.  이래서 평가단원분들의 서재를 들리게 되면 참 좋은 거 같다.  

 

 

 

  

 

 

 

 

하리하라 (이은희) / 해나무  

지금까지 신간평가 페이퍼를 작성하고 다른 평가단원분들의 페이퍼를 보게 되면 유독 과학도서가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다.  나름 인문학, 과학, 사회과학, 역사 등으로 균형있게 5권을 선정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하리하라' 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대중 과학 저술가의 신작이다. 중학생 시절에 나온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이후 그녀의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본다.  과학 내용들이 어렵지도 않고 재미가 있다. 이번에는 '질병' 키워드로 보는 우리 몸의 이야기이다.  이 책이 선정될거라는 희망은 없다만, 아주 좋은 과학도서이기에 소개해본다.  

  

 

* 신간도서 후보였지만, 현재 읽고 있는 책들이라서 제외해야했던 책들   

 

 

 

 

 

 

 

 

요네하라 마리 / 김석중 역 / 마음산책 

이 책이 도서관에 일찍이 소장되어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나온 <발명 마니아>가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그녀의 저작물인줄 알았는데, 또 나오게 되다니 , , ,  무척 반갑다.   제목에 있는 '교양' 이라는 단어부터 끌린다. 그녀 특유의 통찰력과 유머가 기대가 된다.

 

 

 

 

 

 

 

 

 노엄 촘스키 & 미셸 푸코 / 이종인 역 / 시대의 창 

사실, 촘스키와 푸코의 사상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하지만 이 책 역시 '본성' 이라는 주제로 두 사상가의 대담이며 예상 외로 다른 평가단원분들이 이 책을 소개했다.  

그래서 정말 운이 좋게도, 오늘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서 이 책을 만났다!  

촘스키와 푸코. 사상의 연관성이 딱히 떠오르지 않지만 이들의 대담 역시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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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2-09 18:49   좋아요 0 | URL
ㅎㅎ 정말 엥겔스와 미쓰라진 똑같네요.
알라딘 신간 평가단 알찬 것 같아요.
이럴줄 알았으면 신청해 보는 걸 그랬다 싶어요.
전 2기때 해 봤는데(그것도 신청했다 지웠는데 그게 떨거덕 되버렸거든요)
책을 너무 많이 보내줘서 리뷰를 생각보다 많이 올리지 못했었요.
부담되서 못하겠더라구요.
하지만 바뀐 걸 나중에 알았죠.
다음 9기때 신청해 볼까 하는데 내년 3월까지 아직 한참 남았네요.
물론 될지 안 될지도 모르면서...^^

cyrus 2010-12-10 10:15   좋아요 0 | URL
글 쓰신거 보면 되실거 같은데요. 다음에 다음 기수 때 도전해보세요^^
읽어야 할 책을 정하는게 까다롭지만 한 달에 두 권 정도 읽고
쓰는게 이전 기수 활동 때보다 덜 힘든거 같습니다.

2010-12-09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0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2-09 23:43   좋아요 0 | URL
저와 겹치는 책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겠네요. 그런데 사이러스님. <몸 이야기>는 저도 관심있어서 봤었는데 12월 출간도서여서 다음 달에 추천하려고 해요.

cyrus 2010-12-10 10:1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러면 다음 달에 이 책을 추천해야겠습니다.

꽃도둑 2010-12-10 13:46   좋아요 0 | URL
조지 레이코프가 그랬던 거 같은데요? '원래 인간은 보수적이다'
나는 진보주의자라고 고백한 사이러스 님 글을 보면서 저도 한때그랬거든요, 난 확실히 진보주의자야....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 같네요.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것 같기도 하고....암튼 진보집권플랜을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

엥겔스 평전도 흥미롭고..몸도 그렇고.... 몸에 관해선 저는 <감각의 박물관>을 읽고 좋았던 기억이 나요. 페이퍼 잘 보고 갑니다. 추천~~^^

cyrus 2010-12-10 16:00   좋아요 0 | URL
지금 이 책,,, 중간 부분을 읽고 있어서 제가 진보주의자라고 섣불리
단정지은 점도 있는거 같습니다. 그래서 보수 입장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물론, 꽃도둑님이 소개하신 <감각의 박물관>도
읽어봐야겠네요. 제가 고등학생 때 나온 책이었는데,, 그 책 어떤가요?
그 때는 그 책을 선뜻 읽기가 어려워하던 나이라서요 ^^;;

다이조부 2010-12-10 17:02   좋아요 0 | URL


대구에 갈 일이 있었어요~ 대기업 취직한 대구친구가 막창 사줬는데

정말 맛있더군요. 주인장이랑 술 은 마실 짬은 안 나도 커피라도 마시고 싶어서

문자했는데 답이 없길래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구요. 근데 주인장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서 다시 받았는데 아저씨(?) 음성이더군요. 차마 혹시 알라디너?묻지는 못했죠 ㅋ

cyrus 2010-12-10 22:13   좋아요 0 | URL
혹시 연말 잘 보내라는 문자를 보내신 분이 꾸랑님이신가요?
그 때 보내주신 소포 받자마자 어머니께서 얼른 소포를
처리하신 바람에,,,^^;; 꾸랑님의 연락처를 미처 못 적었습니다.
제가 새벽에 일하고 낮에는 잠만 자기 때문에 오전에는 전화를 받지
못한답니다. 제 생각이지만 아마도 낯선 번호로 거신 분이 저희
아버지일 수 있겠네요,,, -_-;; 어쨌든 연락을 받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이조부 2010-12-10 22:26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ㅋ

아 어쩌면 아버지 일 수 있겠네요 ㅎㅎ

대구는 출생지 이긴 한데 역시 나의 고향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만 다시 했어요 헐~

자신을 무슨 주의자 라고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 있다는게 부럽네요 ^^

cyrus 2010-12-10 22:50   좋아요 0 | URL
부럽다니요,,, 사실 저 때 좀 과장이 좀 있었답니다. ^^;;
'진보주의자' 라기보다는 그냥 진보적인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는
쪽으로 보셨으면 좋겠네요.ㅎㅎ

다이조부 2010-12-11 08:41   좋아요 0 | URL

에픽하이 미쓰라진 연상에서 다시 한 번 뿜었습니다 ㅋ

비로그인 2010-12-13 23:22   좋아요 0 | URL
cyrus님 올리신 책, 두 권이 겹치네요. 제가 옆에 쌓아둔 책 말이죠.

지난주는 정신 없었고, 이번주도 그러할 예정인데.. 잠시 짬 내어 서재 마실 다니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늘 한결같아서 좋습니다.

다양한 책 소개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0-12-14 23:4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이 지금 보신 그 두 권의 책이 뭔지 궁금하네요.
바람결님 서재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 멋진 그림과 음악, 그리고
글을 올리셔서 한결같고 좋아요.

이제 겨울날씨가 시샘을 부리고 있으니 감기 조심하셔요^^
 
열일곱 살의 인생론 - 성장을 위한 철학 에세이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영원히 풀 수가 없었던 시험문제

 

나는 어느 학교의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칠판, 그리고 회색빛 교탁과 수많은 책상들. 

확실하지는 않지만 몇 년 전에 졸업한 고등학교 교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고등학교 교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걸까? 

갑자기 교실에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한 손에는 하얀 종이 뭉치가 들려져 있었다.  

선생님은 하얀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면서 

아무 말 없이 하얀 분필을 잡아 칠판에 크게 ' 시험 ' 이라고 썼다. 

그러고는 맨 앞에 있는 학생에게 자신이 가져온 하얀 종이를 전달하였다.  

 

' 아 . . . 이것은 시험인가 보다. '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도 갑자기 이 곳에 있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아무런 예고 없이 시험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두려움이 엄습 해왔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시험지 한 장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샤프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황이면서도 

이상하게도 나는 어떻게든 책상 위에 놓인 시험지의 문제를 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시험지에는 알아보기 힘든 문자와 기호들이 뒤죽박죽 나열되어 있었다.  

도저히 풀 수가 없는 문제들이었다.  

 

시험지가 잘못 인쇄된 줄 알고 나는 손을 번쩍 들었지만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시험을 치고 있는 학생들을 멀뚱히 쳐다볼 뿐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의 행동.  

나는 어떻게든 시험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험시간임에도 소리를 질렀다.  

 

" 이거 시험지가 잘못 나왔어요.  빨리 다른 시험지 주세요.  

지금 시험문제 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 

 

소리라도 질러봤지만 여전히 선생님은 팔짱만 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부터 시험문제를 풀고 있던 학생들 몇 몇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외친 소리가 그들의 귀에는 들렸는가보다. 

 

그런데,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의 얼굴들이 무척 낯이 익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녀석들인 것이었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만나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니 , , ,   

 

친숙한 얼굴들을 본 순간,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시험감독인 선생님이고 뭐고, 자리에 벌떡 일어나 친구 한 명 곁으로 다가갔다.  

중학교 때 내신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으며  

나와 같은 반이 되면서 친했던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가 풀고 있는 시험지를 봤다. 

하지만, 그 친구가 풀고 있는 시험지 역시 오류투성이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내 눈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기호로 나열된  

시험문제를 그 친구는 일말의 생각도 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친구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시험문제 푸는데 여념이 없었다.

시험을 치고 있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이나  

교실 속에 있는 이들은 나의 말, 아니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딩동, 딩동, 딩동 

  갑자기 교실 안에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종소리가 울러 퍼졌다. 

이는 분명 시험시간이 마감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종소리였다. 

선생님은 종소리가 나오자마자  

학생들이 풀고 있던 시험지를 재빠르게 거둬들이고 있었다.  

 

빈 자리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아무것도 풀지 못한 시험지마저도 . . .  

나는 그런 모습을 서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었다.  

  

 

  갑자기 재발한 마음의 상처      

내년에 복학을 앞두고 있는, 요즘 잠을 자게 되면 가끔씩 꾸게 되는 꿈이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밤과 낮의 생활이 반대인 지금, 아침에 퇴근하여 집에 오게 되면 낮에는 잠만 자게 된다.  그런데 낮잠에도 기억이 또렷한 꿈을 꿀 수 있는가 보다.  잠을 깨고 난 뒤에도 꿈 속 장면들이 기억이 날 정도 꾼 것은 이례적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요즘에는 자주 예전에 다녔던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 시험을 보는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항상 시험문제들을 풀지 못한 채 꿈에서 깨고 만다. 자다가 꿈에서 깨고 나면 시험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기게 되지만 얼마 안 가 ' 아, 이것은 꿈이구나 ' 하고 뒤늦게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도 졸업한 상태인데도 꿈 속 고등학교 시험문제에 얽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나 자신 스스로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가볍게 웃음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꿈이 아니었다. 꿈은 살아가면서 겪어가는 경험들, 그리고 느끼게 되는 감정과 의식들을 상징, 형상화되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한 일이 꿈에 나타나는 현상을 심리학적 용어로 타게스레스트(Tagesrest)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경험과 감정, 의식에 대한 억압적 욕망이나 불안이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 꿈이라고 정의하였다. 자의적으로 꿈을 풀이해본다면 스스로 감추고 억압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불안정한 감정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년이 지나서야 꿈 속에서나마 등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 죽어라 공부했었다. 특히 고등학교 3년은 오직 '수능' 이라는 목표를 내다보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10분이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도 나는 책상에 앉아서 <수학의 정석>에 있는 문제들을 풀곤 하였다. 수학은 다른 과목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유독 성적이 썩 좋게 나오지 못했던 과목이였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몇 몇 주위 친구들의 시선에는 나의 이런 모습이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 때 친구들의 농담이 생각이 난다.  

  " <수학의 정석> 책만 보다가는 진짜 책에 구멍 나겠다. "  

  " 공부하는 자세랑 시간만큼은 정말 넌 전교 1등감이다. "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 아, 나도 고등학생 때 너처럼 그렇게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대학 갈 수 있었을텐데, , , "   

성적은 공부의 양만큼 좋게 나오지 못했지만, 모든 학생들은 그런 공부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은근히 시기를 하기도 했었다. 좋은 의도인지 나쁜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나의 공부하는 모습을 칭찬 일색으로 치켜세우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꼭 이런 말도 했었다.

  "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니야?  그러다가 쓰러지겠다. "   

그들이 친구로써 나를 위해 진심어린 말을 했었지만 듣는 나를 속으로는 무척 가슴이 쓰리듯이 언짢았다.  ' 너네들이 뭘 안다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야.'  

그들의 칭찬과 위로가 죽도록 공부해도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를 은근히 비웃는거 같았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살갑게 물어보곤 했었지만 마음 속에 조금씩 열등감이 쌓아져 갔다.  처음에는 성적 결과에 대한 열등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는 존재에 대한 열등감으로 커져만 갔다.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이성 친구를 사귀는 '멀티 플레이어' 친구를 보면 무척 부럽기도 하였다. 

요즘 학교 교실에 있는 꿈을 꾸고나니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했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에 묵혀왔던 열등감과 분노가 나의 심기를 툭툭 건드렸던 것이다. 사춘기 시절도 지났건만 별 이상한 내용의 꿈 하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니 , , , 

  

 

  열일곱살이 된 철학교사 안광복

이런 불안의 나날을 겪고 있는 속에 때마침 철학교사 안광복 씨가 쓴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라는 얇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의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꿨던 꿈을 이야기해주면서 자신의 학창시절동안 겪은 사춘기로서 형성하게 되는 열등감이나 그 때의 고민들을 거리낌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학창시절에 자신보다 잘난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생겼으며 그 때의 괴로움을 치유하지 못했다고 저자 스스스로 밝히고 있다.  마음 속에 생긴 감정의 상처들을 독자들 앞에서 고백하기기 쉽지 않았을텐데 어린 독자들을 위해서 서슴없이 고백하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의 말할 수 없는 속내들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 한번쯤 마주치게 되는  ' 돈, 열등감, 사랑, 인생, 가치관 ' 등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책의 부제를 ' 성장을 위한 철학 에세이' 라고 하는 것을 보면 무척 딱딱하고 어렵게 여기기 쉽상이다.  

하지만, 안광복 씨의 글은 어렵게 쓰지 않았으며 그렇게 '철학적' 이지가 않았다. 학창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인용하여 저자 자신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사춘기의 고민거리와 각종 문제들을 함께 공유하고 성찰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마흔 살의 안광복은 23년 전으로 돌아가 열일곱살의 안광복이 되어 있었다. 철학교사답게 철학자들의 지혜를 빌려 청소년 시절에 겪게 되는 고민과 생각의 문제들을 스스로 성찰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고 있다. 

 

 

  열등감을 열등감으로 극복하기  

열등감에 대한 그의 입장과 극복 방안은 독특하다. 열등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의 독을 오히려 인생의 성장을 위한 약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열등감이 크면 클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에 그의 주장이 깊게 와닿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3년동안 줄곧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도 이에 비례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음을 물론이고 오히려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짓눌려 스스로 괴롭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곧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열등감의 원인에는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와 남이 자신보다 잘하면 생기는 질투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나면 주위 시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못한 상대방 역시 나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게 되고 미워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생기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순간적인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나쁜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난 과거의 열등감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할 현재의 삶에 발목을 잡고 있는 부정적인 요인이다.

 

  

  성숙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학창시절에 생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온 나로써 2010년이 저물어가고 있는 끝자락에서야 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고 무척 고마웠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나도 열일곱살이 되어 있었다. 저자가 풀어내는 학창시절의 경험들이 나 역시 겪어본 일이었기 무척 공감이 갔었다.   

피부의 상처나 염증을 오래 방치하게 되면 피부조직이 썩어 누런 고름이 생기게 된다. 과거의 쓰라린 감정의 상처 역시 그래도 놔두게 되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의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괴로움에 살아야하며 30대,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 성숙되지 못한 채 정서의 성장은 저하될 것이다. 몸은 어른이며서도 마음은 청소년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저자는 어른 독자들에게 철학적인 물음을 통해서 스스로 10대와 '직면' 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이게 저자가 권하고 있는 '직면' 의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동안 마음 속에 굳어져 있었던 학창시절의 열등감 응어리를 감상문에서 낱낱이 밝혔다.  

글을 쓰고나니 책을 다 읽고 난 뒤보다 속이 후련하다. 이번 글쓰기는 내 마음 속에 숨어있던 못된 감정들의 기(氣)를 풀어 없애는 살풀이가 되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시험지를 푸는 꿈을 꾸지 않게 된다면 이번 살풀이는 성공인 것이다.  과연 성찰적(?) 살풀이가 먹혔을지 앞으로 잠 잘 때 두고봐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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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2-0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기회되시면 <스무살의 철학>도 읽어 보세요.
문장도 좋고, 생각할 꺼리를 주기도 하죠.
17세. 전 그때 뭐했을까요?
학교 안 가고 독학으로 문리를 깨우치고 싶어했었다능...ㅋㅋ

cyrus 2010-12-08 15:00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텔라님이 소개하신 책 내용이
무척 궁금합니다^^

2010-12-08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08 15:01   좋아요 0 | URL
일단 며칠 정도는 두고봐야할거 같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오래 잠을 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름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12-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가 읽어봐야할 책이군요.
열등감.. 참 심했어요, 저.

사이러스님 복학을 앞두고 계시는군요. 오늘 글 너무 이뻤어요.
사실... 요즘 사이러스님의 서재 글을 보면, 보석 하나 발견한 기분으로 즐겁습니다.

사이러스님 시험지의 문제 묘사를 보면서,
왜 이렇게 인생 살이와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합니다.
정말이지 모를 문자들과 정리되지 않는 상념들, 체계들, 정답이 없는 그런 문제들.
차라리.. 답과 목표가 확실한 고교 학창시절이 더 행복한거 같다 싶으면서도
다시 가라면 가기 싫은. ^^.
역시 나의 선택이 보장된 어른 시절이 나은거 같기두 해요, 더 어려운 길이긴 하지만.

복학하시면, 이제 앞일에 대해 진정 고민하시겠네요.
우리...... 천천히 가요. 한번씩 뒤두 돌아보고 주위도 돌아보면서.
그리고 오늘처럼 눈오는 하늘도 즐기며. ^^

cyrus 2010-12-08 15:05   좋아요 0 | URL
복학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꿈을 꾸고나니
내년 학업 관리뿐만 아니라 적성 준비까지 고민들이 많네요.
하지만 마고님의 댓글을 마음에 깊이 새겨 넣어야겠습니다.
오늘 마고님 댓글도 이뻤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12-08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08 15:12   좋아요 0 | URL
오탈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탈자 지적하신 분들 덕분에
저는 우리말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은데요.^^
나름 올바르게 쓸려고 주의를 하게 되지만 막상 쓰게 되면 쉽지가 않네요.
사실 저도 가끔 예전에 썼던 글이나 다른 알라디너의 댓글을 보게 되면,
간혹 옥의 티가 있어서 혼자 속으로 부끄러워하곤 했었는데,
다음부터는 맞춤법에 유의해야겠습니다.^^

굿바이 2010-12-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살의 인생론,이라니.... 잠깐 10대의 저를 복기해보니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일은 죽는 날까지 숙제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영 극복은 힘들 것 같고, 그저 잘 달래면서 살아가는 것이 쉬울 듯 싶어서 요즘은 살살 달래면서 살고 있습니다.
좋은 책 정보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0-12-08 17:0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고나니 감정을 추스르고 있답니다. 굿바이님 말씀대로
완전한 극복은 힘들거 같고, 나쁜 마음이 재발하면 다시 한 번 이런 책들을
읽어보고 좋은 문장들을 곱씹어봐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의 순수한 마음은 없어지고 그 미성숙함만 남으니 나이는 먹어도 미성숙한 인간이란 정말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내가 못한 것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심리가 그런 경우지요.

cyrus 2010-12-08 17:07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미성숙한 인간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점을
자식들로부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  


  - 남진 <님과 함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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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같은 집  

그림 같은 집

   그림 같은 집  





.  

 

  ' 그림 같은 집 ' 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  

남진이 부른 노래 '님과 함께' 에서는 사랑하는 님과 함께 사는 인생이야말로 그 어떤 삶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예찬하고 있다.  ' 멋쟁이 높은 빌딩' 에 사는 어떤 이들은 자신이 더 잘 산다고 떵떵거리고 으시대고 있지만 노래 속 화자는 허름한 ' 반딧불 초가집 ' 이라도 사랑하는 그대, 님과 함께 산다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 초원 위에 지어진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한 그림 같은 집을.    

이 노래가 발표되자마자 남진은 대한민국 명실상부한 톱 스타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남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 님과 함께 ' 이다. 노래가 나온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흥겨운 멜로디 덕분에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부르고 있는 국민적인 애창곡이 되었다. 몇 주전에 올해엔터테이너계에서 많은 핫 이슈를 몰고 온 대국민 오디션 프로젝트 ' 슈퍼스타 K 시즌 2' 에서 장재인이 오디션 본선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됨으로써 그녀의 소름돋는 가창력이 화제가 된 것뿐만 아니라 장재인이 태어나기 전에 나온 남진의 노래는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들은 스피커에 흘러나오는 흥겨운 멜로디를 좋아할 뿐, 노래가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가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백년해로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소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소망하는 지향점은 다르다.  요즘 사람들은 남진의 노래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에 유념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하면 빈곤에 쪼들리지 않고 잘 살아야할지 생각하기 마련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님과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살림보다는 윤택한 살림이 우선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배우자 선택 조건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집' 이다.  하긴, 집은 옷과 음식과 더불어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요소이다.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으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바로 집인 것이다.    

집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한민국에서의 '집' 은 ' 잘 사냐 못 사냐' 식의 기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통과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는 곳에 넓디넓은 정원이 있으며 아름답게 꾸며진 넓은 거실과 화장실이 갖춰져 있는 궁전 같은 집이라면 모든 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집이다.  하지만, 이런 집을 사기에는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을 모은다하더라도 부족하기만 하다. 그리고 화려한 내부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집들은 일명 ' 돈 많고 잘 사는 사람 ' 들이 모여 산다는 서울 강남 쪽으로 몰려있기도 하다. 그래서 강남에 세워져 있는 타워팰리스 가격만해도 정말 '억' 소리가 날 정도로 수억 정도에 달한다.  

사랑하는 님과 가족들이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야말로 ' 그림 같은 집' 이라고 남진은 흥이 넘치도록 불렀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강남의 멋쟁이들이 으시댈 수 있는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집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바라는 '그림 같은 집' 이 되고 말았다. 

 

 

  좋은 집을 가지기 위해서는 빚이 늘어나는 대출도 마다하지 않으리 

자신들이 꿈꾸는 '그림 같은 집' 을 가지기 위해서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자신의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어느 정도 살림에 지장이 업없을 정도의 직업을 가진 중산층들에게도 억 소리가 나는 타워팰리스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집도 '돈' 이 되는 시대이기에 중산층들 사이에서는 '집' 은 자신의 부를 축적시키는것뿐만 아니라 상류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투자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부동산 전문가들의 희망적인 조언들은 서민들의 투자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중산층 서민들은 금리가 낮을 때 대출을 함으로써 투기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집을 사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 높은 가격으로 매겨진 집을 보유하고 있는 과거의 부동산 벼락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 시세를 생각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부동산 업계라는 거대한 바다에 뛰어든 레밍이었다.  레밍은 나그네쥐라고 불리우는 집단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인데 떼 지어 이동하게 되면 앞에 있는 동료들 따라 바다로 가게 되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특성을 빗대어 인간이 어느 현상에 대해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현상을 ' 레밍 효과 ' 라고 부르고 있다. 중산층 서민들은 단지 희망적인 예상에 불과하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말과 과거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인 부자들의 비법만을 강조하는 부동산 관련 업체들의 감언에 속아 넘어 가고 말았다.   

전문가의 말과는 반대로 고공으로 치솟아오르게 되는 금리와 주택가격의 폭락은 희망으로 가득찬 삶을 예상했던 중산층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짓밝고 말았다. 최고로 비싼 가격의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중산층들은 화려하고 럭셔리한 삶을 사는 상류층이 되지는 못했다. 과거에 집을 사기 위해서 무리하게 대출을 하여 생긴 빚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집 그리고 어마어마한 빚이었다.  그리고 집 때문에 상류층으로 상승하려다가 되려 가난에 허덕이는 하류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우스푸어 : 부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아파트투자 5적과의 절묘한 만남

이렇듯, 집이 있으면서도 가난한 중산층 서민들을 경제학적 신조어로 '하우스푸어(House Poor)' 라고 말한다.  최근 통계조사에 의하면 집을 보유하는 직장인들 중 30%는 스스로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들은 평균 월 가계 총소득 326만 원 가운데 74만 원을 주택자금 대출이자로 지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에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게 만든 원인에 대해서는 1순위로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고 그 다음에는 개인의 투자 욕심이라고 하였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크게 하락한 통계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작 적은 수준으로 하락한 점으로 분석한 것에 대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허울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부의 정책이 만든 사회적인 문제는 한국경제의 위기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을 동원하여 경제성장에 일시적인 도움이 되었지만 그 뒤에는 서민들의 빈곤 문제와 불안정한 경제 흐름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정부로만 탓할 수 없다. 경제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에 대해서 순위를 매겨서 우선적인 요인만 크게 나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논리이며 하우스푸어는 자본주의 구조가 만들어낸 다차원적인 문제이다. 국가 가계가 안정되기 위해서 정부는 금융기관 및 부동산 정보업체들을 보호해주었으며 이들은 정부의 보호 아래 자신들의 자산 규모를 증식시켜나갔다. 이런 호황에 아파트 건설업체들도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떡고물 만들기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다. 건설업체들은 자신들이 만든 아파트 건물을 무수히 세워놓고 분양가를 높게 잡아버렸다. 이런 상황에 서민들이 높은 분양가를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에는 금융업체에서 가계대출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밑에서 부동산 정보업체-금융기관-건설업체의 자본주의적 공생 관계는 서민들의 빈곤 문제를 야기시키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언론 역시 하우스푸어를 양산해낸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 각종 일간지에서는 아파트 및 부동산 투자 광고들은 경제의 흐름에 무지한 서민들에게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부동산 업계의 상황이 나쁘면서도 일간지에 소개되는 부동산 관련 전문가의 말이나 광고 문구는 서민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매일 아침, 대문 앞으로 도착되는 일간지들 사이에 하나씩 껴있는 부동산 관련 기사 섹션은 경제적인 문제를 수수방관하는 언론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투자 오적의 소굴이 된 강남 및 수도권 지역

하우스푸어의 급증은 단순히 고가의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 강남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의 판교신도시에 대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우스푸어는 단순히 부동산 업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중산층들의 몰락을 낳는 심각한 문제이며 상류층 역시 경제적인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만들어낸 과도한 투기는 안정된 삶을 한순간에 깨뜨릴 수 있다. 결국에는 사회계층의 불균형적인 분포가 형성되게 되며 빈부격차도 늘어지게 된다. 

김지하 시인은 <오적(五賊)>이라는 시에서 '서울' 을 대한민국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라고 하였다. 지금의 서울은 자본 이익에 우선시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오적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악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는 지금의 경제 상황와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고 있어야한다. 사람들은 하우스푸어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부동산 투기라는 놀음에 빠져 있다. 남들에게 으시댈 수 있는 화려한 ' 그림 같은 집' 을 갖기 위해서 말이다. 허황된 정보에 혹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면 또다른 하우스푸어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집' 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며 동시에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을 뜻하고 있다. 집이란 단지 우리가 살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 콘크리트 덩어리일뿐이다.  당신이 바라는 행복한 삶이란 남들에게 과시하는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지내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다. 돈보다는 따뜻한 온정과 사랑으로 가득찬 집이야말로 노래가사 속에서 말하는 '그림 같은 집' 이 아닐까?

 

 

  

 

* 인용 관련기사 출처

[직장인 10명중 3명은 ‘하우스 푸어’] 경향신문 2010년 11월 2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011354321&code=920202

['짝퉁 경제대통령'의 허풍] 미디어오늘 2010년 11월 24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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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0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올해의 책 후보로 손색이 없죠 ㅎㅎ

cyrus 2010-12-08 15:1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워킹푸어>를 진지하게 읽었던터라 이번에 <하우스푸어>를
읽어보니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요즘 이런 사회, 경제 관련 책을
읽고나니 MB정부의 실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이조부 2010-12-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좋지만 작년ㅇㅔ 출판된 선대인 위험한경제학 도 만만치 안게 읽을만해요

그 책은 1탄 2탄 있는데 전 1권 만 읽었는데 소장 가치 있을 정도로.....

하우스푸어 이 책은 위험한 경제학에게 빚진 면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뭐 물론 위험한 경제학 기존의 이미 존재했던 자료에게 빚진 면이 분명히 있겠지만

말이죠~ ㅎㅎㅎ

cyrus 2010-12-08 17:02   좋아요 0 | URL
선대인 씨의 책이라면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심도있게
볼 수 있겠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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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인 18세기 후반 러시아는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8세기 초에 표트르 대제(1672~1725)는 폴란드와의 국토 분쟁 해결, 발트해 진출로 승승장구하면서 러시아는 대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좀더 나은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표트르 대제는 군사, 행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행력 부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강압적으로 밀어부친 인세 제도는 왕정에 대한 귀족들의 반발만 높이 살 뿐이었다. 제국 내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가득차기 시작하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럽게 얻은 병으로 표트르 대제가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러시아 내 정세는 점차적으로 불안정해져만 갔다. 

여제 예카테리나 2세(1729~1796)가 1762년에 즉위될 때까지 그 전에 황제들은 오랫동안 나라를 통치하지 못했다. 특히 예카테리나 2세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남편인 표트르 3세(1728~1762)의 왕위를 찬탈하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재위한지 6개월 만에 부인한테 왕관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리고 부인이 여제로 즉위된지, 1주일 후에 그는 여제의 친위대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예카테리나 2세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 불고 있던 계몽주의 사상에 입각하는 계몽전제군주로서 개혁을 꾀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이 역시 시끄러운 정세를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이전에 표트르 대제가 규정해 놓은 엄격한 종신근무제는 귀족들의 힘을 키워놓고 말았으며 반면, 귀족들에게 예속된 농노들의 힘은 약해져만 갔다. 러시아의 농노들은 사회적인 지위도 보장할 수도 없는 노예가 전락하고 말았다.  농노들은 자신들의 불리한 입장에 불만을 토로하였지만 예카테리나 2세는 귀족의 특권을 보장해주기만 하였다.

자신들의 부당한 지위가 이어지자 농노들은 농노제에 반발하는 농민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그 농민 반란의 핵에는 푸가초프(1742~1775)라는 인물이 있었다. 1773~1775년동안 푸가초프는 러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푸가초프는 자신이야말로 표트르 3세라고 자칭하며 새로운 지도자라고 주장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농노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지주들을 잔인하게 처형하였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땅들은 농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러시아 군사력과 비교하면 수준은 낮았지만 반란군은 반란 초기부터는 전국적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농노들로 주축된 반란군에도 치명적 결함이 있었고 확실한 기동력을 갖춘 러시아 정부군에게 패배하였다. 결국, 농민반란의 우두머리인 푸가초프는 1775년에 처형당하게 된다.  

 

  뿌쉬낀의 펜으로 재탄생된 푸가초프의 난

러시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푸가초프의 난은 18세기 러시아 왕족, 관료, 귀족들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난이 진압당한지 정확히 61년 뒤인 1836년에 러시아의 시인은 푸가초프의 난을 주제로 한 걸작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대위의 딸>이다. 

뿌쉬낀이 활동하던 그 당시 러시아에서도 농노제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부 입장에서는 기억하기 싫은 푸가초프의 난을 주제로 젊은 작가가 글을 쓴다면 아니 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뿌쉬낀은 작품 속 푸가초프를 인간미가 넘치는 순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로서는 푸가초프에 대한 뿌쉬킨의 묘사는 파격적이다. 정부들이 기억하는 푸가초프는 귀족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잔혹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789년부터 1799년까지 유럽 대륙 전역에 불었던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러시아에서까지 미치게 되자 정부는 급진적인 자유 사상가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자유적인 사상이 담긴 글 때문에 유배당한 적이 있었던 뿌쉬낀 역시 정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쓴 글들은 항상 검열의 대상이었다. 뿌쉬낀은 정부의 검열을 교묘히 피하기 위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예카테리나 2세 역시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인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뿌쉬낀은 왕정을 옹호하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집필한 것이 아니다.  뿌쉬낀은 작품 속에서 은근히 러시아 정부의 부패를 비판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농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입장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푸가초프의 난을 중립적인 관점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잔인하기만 했던 푸가초프의 활동에 크게 중점을 두기보다는(이 구성 역시 뿌쉬낀이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문학적 의도라는 점을 배제할 수 없지만) 역사 속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건을 간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믿음 ' 이 만들어낸 해피엔딩  
   
<대위의 딸>은 청년장교 그리뇨프와 사령관의 딸인 마리아 간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도 볼만 하지만, 푸가초프와 그리뇨프의 만남 또한 흥미롭다. 작품 속에 형성하고 있는 그리뇨프-마리아, 그리뇨프-푸가초프와의 관계는 '믿음' 이라는 연결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들 간의 관계에서 드러나고 있는 믿음은 그리뇨프와 마리아뿐만 아니라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바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결말로 이끌도록 하고 있다. 

 

                                     Turst #1  그리뇨프 - 푸가초프 

강압적인 군인 아버지의 명령에 그리뇨프는 어쩔 수 없이 마리아의 아버지인 사령관이 부임하고 있는 요새로 향하게 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씨 속에서도 그리뇨프를 성심껏 모시고 있는 마부와 함께 요새로 향하던 중, 한 농부를 만나게 된다. 농부와의 만남 덕분에 그리뇨프는 무사히 마을에 안착하여 눈보라의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덕분에 그리뇨프와 동행하게 된 농부 역시 다행히 동사를 면할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리뇨프와 농부는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농부의 복장이 안쓰럽기만 하였고 마을을 알려주게 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이 입고 있던 토끼털 외투를 농부에게 건네주게 된다.  따뜻한 토끼털 외투를 선물로 받게 된 농부는 그리뇨프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면서 자기 갈 길로 향한다. 


  부랑자는 나의 선물에 지극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마차까지 나를 배웅한 뒤 허리 굽혀 절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리!  나리의 덕행에 주님의 보답이 있으시길 빕니다. 나리의 은혜는 길이길이 잊지 않겠습니다.」 

  - <대위의 딸> (미스터 노 세계문학) 석영중 역, p 33 -  


이야기 중반부에 이르게 되면서 이 농부의 말은 진짜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푸가초프 반란군의 습격으로 인해서 그리뇨프가 장교로 활동하고 있던 요새는 점령당하게 되며 요새를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들은 처형당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인공 그리뇨프 역시 처형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처형당하기 직전에 그리뇨프는 반란군의 지휘자인 푸가초프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지휘자가 예전에 자신의 토끼털 외투를 줬던 그 농부였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리뇨프 곁에 있었던 마부가 먼저 푸가초프가 예전에 만났던 농부임을 알게 되면서 그리뇨프는 처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뇨프는 러시아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할 수 있는 요새의 장교였지만 푸가초프는 그 때의 만남처럼 거리낌없이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푸가초프는 그 때의 친숙했던 만남을 기억한 것뿐만 아니라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토끼털 외투를 낯선 이에게 선물로 건내준 일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푸가초프는 그리뇨프의 착한 인상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뇨프는 적군에게 속하고 있지만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푸가초프는 젋은 주인공을 끝까지 도와주었다. 그리뇨프와 마리아의 재회 역시 푸가초프가 없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작품 속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이다. 정부군에 의해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푸가초프는 그리뇨프라는 인물을 끝까지 믿고 있었다. 그리뇨프와 동행하는 도중에 푸가초프는 반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서슴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 모스끄바까지 진격할 생각입니까? 」

   참칭자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 나도 몰라. 나는 운신의 폭이 좁다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내 부하놈들은 잘난 척만 하고 게다가 모두 도적놈들 아닌가. 그래서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어. 전세가 역전되면 제 목숨 살리겠다고 당장에 내 모가지를 갖다 바칠걸세. 」

  - <대위의 딸> p 147 -


푸가초프는 농노들을 위한 더 좋은 나라를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군인이 아닌 농민인 본인으로서는 이미 커다란 일로 번지게 된 자신의 반란에 대해서 소신있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이끌고 있는 반란군들의 모함으로 푸가초프의 모가지는 정부군에게  바치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든 허구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잔인하기만 할 거 같은 반란군의 우두머리도 반란 활동의 한계를 깨닫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우면서도 자신의 강력한 우두머리 이미지에 부정적일수도 있는 반란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그리뇨프에게 밝히는 모습은 그리뇨프에 대한 푸가초프의 전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Turst #2  그리뇨프 - 마리아

마리아의 아버지가 부임하고 있는 요새가 푸가초프 반란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마리아의 부모들은 반란군 일당들에게 처형당하며 마리아만 간신히 살아남게 된다. 이전에 그리뇨프의 동료이며 요새 소속 장교였던 쉬바브린은 전세가 푸가초프 쪽으로 흐르게 되자 푸가초프 밑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 역시 사랑하고 있던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푸가초프에게 병든 아내라고 거짓말을 한다. 결국, 그의 거짓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뇨프의 등장으로 들통나게 되고 그리뇨프와 마리아는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푸가초프의 도움으로 마리아는 그리뇨프의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피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뇨프는 또 한 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푸가초프의 난이 진압되기 시작하면서 간사한 쉬바브린은 그리뇨프를 푸가초프와 한 패라고 정부에게 밀고하게 된다.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그리뇨프가 체포당하게 된 사살을 알게 된 마리아는 사랑하는 남자를 살려내기 위해서 예카테리나 여제가 살고 있는 뻬제르부르그로 가게 된다. 자신이 직접 여제를 만나 그리뇨프에 대한 선처를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도 그리뇨프-푸가초프의 만남처럼 마리아 역시 예카테리나 여제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그리뇨프를 풀려나게 할 수 있었다. 여제가 살고 있는 궁정으로 향하던 중 만나게 된 귀족 부인이 예카테리나 여제였던 것이다. 여제는 마리아를 호의적으로 보게 되었고 그리뇨프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면서 그를 석방시키도록 하였다. 초반에 마리아는 요새의 대포 소리에도 크게 놀라는, 요새 안에서만 생활한 어리숙한 여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뇨프의 선처를 구하기 위해서 머나먼 뻬쩨르부그르까지 가서 러시아에서 제일 높은 신분인 여제를 만나려는 무모함을 감행한다. 그 무모함 뒤에는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간절하고도 희망적인 마리아의 믿음이 있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뿌쉬낀, 그리고 농노들의 불신

그리뇨프와 마리아의 두 번째 재회로 작품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행복하게 끝나버리는 바람에 아쉬운 감이 있다.  뿌쉬낀은 이 작품을 통해서 러시아 정부의 농노제를 은근히 비판하고는 있지만,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개선에 대한 일말의 생각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나친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뿌쉬낀은 급진적인 자유 사상을 받아들인 시인이었지 사회 변혁을 꿈꾸는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귀족들만 잘 사는 러시아 사회를 묘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는 대놓고 비판할 수가 없었다.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젊은 시인의 한계이다. 그리고 뿌쉬낀은 귀족 출신이다.  농노들에게는 불리한 입장을 처하게 만들고 있는 러시아 농노제에 대해서는 불신의 입장을 보였겠지만 직접적으로 농노제의 폐해를 고칠 수 있는 사회 개선에 대해서는 귀족 신분인 그에게는 실질적으로는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잘 사는 사회를 위한 개선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마당에 러시아에서만은 사회 개선에 대한 변혁에 대한 생각은커녕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사회는 밑바닥으로 거듭 추락하고 있었다.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은 푸가초프의 난이라는 역사 속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실제 러시아의 사회 분위기는 혼돈 속으로 빠져만 갔다.  농노들을 위한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 반란을 주도한 푸가초프는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1861년에 농노해방령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노들의 생활고는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농노들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절망적인 불신은 날로 커져만 갔다.  절망적 불신이 만들어낸 민중의 시한폭탄과 이를 안일하게 대처한 정부의 태도는 결국 1917년, 레닌과 볼셰비키의 등장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게 되었다. 1613년부터 1917년까지 304년동안 러시아를 지배했던 로마노프 왕조, 그리고 러시아의 카이사르로 자칭하던 지배자인 차르(Tsar)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게 되었다. 자신이 끝까지 러시아의 지배자라고 자칭하면서 처형당한 푸가초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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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2-0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위의 딸은 초등학교 시절에 어린이 문고판으로 읽었는데
참 여간해서 러시아 문학은 손이 잘 안 가요.
재밌게는 읽은 것도 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없고.
마침 저 책은 절판이네요. 새판이 나왔나...?
시루스님 정말 책을 많이 읽나봐요. 하루에 몇 시간? 한 달이면 몇 권?
님 전공이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ㅋ

cyrus 2010-12-05 13:53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일환으로 몇년 전에 'Mr.know 세계문학' 으로
나왔었는데 지금은 그 전집들을 절판된 상태이고 '열린책들 세계문학' 으로
새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중에서도
몇 권은 절판인가 보네요. 뿌쉬낀의 <대위의 딸>은 열린책들 말고도
펭귄클래식에서도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새벽에 아르바이트로 편의점에 일하고 있어서 그 시간에는 카운터에 앉아서
독서나 개인적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퇴근하여 집에 와서
수면을 취하고 점심 시간 이후에는 운동을 하고 그 때에도 틈틈히 책을 읽습니다.

cyrus 2010-12-05 14:00   좋아요 0 | URL
그리고 점심 시간 이후에는 운동 하다가 저녁쯤에도 책을 읽습니다.
제가 TV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컴퓨터는 뉴스 검색,
서재 블로그랑 출판사 공식 카페에 들리는 것 외에는 오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 주에 많아야 5권 읽습니다. 서로 다른 내용의 책이라도
한꺼번에 읽게 되는거죠. 그렇게 읽으면 읽는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렇게 읽어보면 서로 다른 내용의 책들에서도 서로 상호연결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 좋은거 같습니다.

그리고 전공은 행정학입니다. 그리고 저 그렇게 하루종일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평일에는 야간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놀고 있을뿐이지, 일 안하는 주말에는 친구들 만나서 놀기도 합니다.^^

stella.K 2010-12-06 11:17   좋아요 0 | URL
한 달에 5권도 아닌, 한 주에 5권이라구요?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그랬구나. 행정학. 그러고 보니 얼핏 그렇게 쓴 걸 본 것도 같아요.
정신하군...ㅠ
야간에 일하는 거 힘들지 않나요?
댓글이 꼭 하루키를 문득 생각나게 만드는 서술이었습니다.ㅋㅋ

cyrus 2010-12-06 11:25   좋아요 0 | URL
사실 대학교 신입생 때는 한 달에 5권도 안 될 정도로 책을 멀리했었답니다.
학점 관리에다가 과 사람들 만나면서 술 먹게 되다보니,,,^^;;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책을 안 읽었던 시기가 대학교 1학년 때인
2007년인거 같네요. 수험생 시절이었던 고등학생 때에는
입시 성적 관리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대학교 때는
그 때보다 더 책을 읽을 수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저는 반대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어떻게든 읽고 싶은 책은 읽곤 했었는데
대학생이 되서부터는 책을 멀리하고 있었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그 때
시절이 가장 아쉬운 해로 남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복학 때는
일주일에 5권은 못 읽더라도 한 달에 5권 정도를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5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오래 전 푸시킨의 대표작이라는 명성만 듣고 구입해 읽었던 책입니다.드라마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예카테리나의 생애를 알고 싶었어요.그때 그녀의 전기가 번역된 게 있었거든요.하지만 어물어물하다가 못사고 말았습니다.지금도 서점엔 피요트르 대제 전기 번역본은 있어도 예카테리나 여제 전기는 없더군요.

cyrus 2010-12-06 10:58   좋아요 0 | URL
처음에 <대위의 딸>이 그 당시 러시아의 사회상을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그저 지루한 역사소설인줄 알았는데, 막상 읽고나니
러시아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드라마를 보는것같은
극적인 전개가 재미있었습니다. 자이트님이 소개하신 예카테리나의 생애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뿌쉬낀의 소설 속에서는 온화한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남편인 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차지할 정도로
간사하고 궁정 생활이 방탕했다고 하던데, 소설과 같이 읽어보면
흥미로울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6 16:51   좋아요 0 | URL
러시아사를 읽어보면 예카테리나에 대해서 유능하기 하지만 전형적인 전제군주였다고 하는 평가가 일반적이더군요.

모든 독자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은 아니니 그런 건 몰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소설을 쓰는 것도 작가의 역량이라고 봅니다.그런 점에선 이 소설은 잘 쓴 것이지요.

쉽싸리 2010-12-08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죠. 삼중당문고인가? 하여간 문고판,,,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러시아 소설들 참 좋아요. 뭐랄까, 저한텐 코끝이 찡해지는 게 있어요. 언젠가 다시 쭉 읽어봐야하는데, 그때의 감흥과는 다르겠지만,,,

cyrus 2010-12-08 14:58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러시아 소설들이 내용이 재미있고 작품성이 훌륭한거 같습니다.
뿌쉬낀 이외에도 도스또예프스끼나 고골도 재미있고요.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종말 분위기 나는 연말

올해 2010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12월 1일이 된 후부터 슬슬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는 ' 연말 잘 보네세요. '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주로 다니시는 은행에서는 벌써 부모님 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부모님과 동생 이름으로 가입된 보험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 XXX님,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2010년 마무리 잘 하세요. '  

아직 내 휴대폰에는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친구 녀석들은 평소에 자주 만나고 연락을 해서 그런지 아직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12월 31일이 되면 나에게 연말 인사 문자 보내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에게 오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는 많아야 5개다. 몇년 전에 한 번은, 대학교 과 선후배, 동기들에게 거하게, 아니 무식하게(?) 단체 연말 인사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보낸 사람들의 수만 해도 무려 20명 넘었는데 고작 답변 인사해준 사람의 수는 8명이다.  사실, 단체 문자 보내기전에는 20명 넘는 사람들이 답변 문자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평소의 예의 바른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서 보낸거 뿐이다.  오히려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답변 문자 오게 된다면 완전 문자 폭탄 수준이 될 것이다.  연말 인사 혹은 연말 인사 문자 답변을 안 해주는 이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새벽중에 보내는 연말 인사 문자이다. 인간의 약점을 간파할줄 아는, 잔머리 잘 굴리고 약삭 빠른 성격의 친구들이 간혹 보내기도 한다.  문자 메시지 도착 소리에 잠을 깬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12월 31일날에 잠을 자게 되면 항상 휴대폰을 꺼둔다.  그리고 새벽에 보내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와 비슷하면서 역시 짜증나게 하는 것은 생전 모르는 번호가 문자 보낼 때이다.  친구면 당장 전화 걸어서 쌍욕 날려도 무방하겠지만, 낯선 번호가 문자 오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잠결에 문자로 잘못 보냈다라고 폰을 만지작거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처럼 낯선 사람한테 욕을 할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결국에는 연말에만 잠시 폰을 끄고 잠을 자는데 특효약인거 같다. 

휴대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주구창창 받는 것도 괴롭지만, 그래도 연말이 되면 사람의 감정이 즐거워지게 되고, 내년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기분이 들뜬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연말에는 각종 망년회를 통해 한 해동안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들을 어느 정도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고(물론 너무 과하게 술을 마시면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피곤해진다. 이러니 연말이 되면 망년회라는 소리만 들어도 기피하는 사람들 있기 마련이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라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일도 있다. (혼자 사는 솔로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역시 그닥 반갑지 않은 날일 것이다)  이렇듯, 한 해의 기억들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차야지 정말 연말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이번 해는 그렇게 즐겁고 훈훈한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발생한 연평도 습격 사건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마음 속에는 북한 제2의 도발 그리고 전면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연평도에서 살았던 주민들은 그 때의 공포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지금도 좁디 좁은 찜찔방에서 지내고 있다. 

2010년이 끝나는 시점에만 사람들의 감정이 어두웠던 것이 아니다.  올해 초에는 용산 참사 사건으로 인해서 권력 앞에서 굴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TV로 목도했으며 해결되지 않은 4대강 사업 문제 때문에 올해 내내 대한민국은 소란스러웠다.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최근에 성황리에 마친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온 국민이 즐겁고 웃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TV와 신문에 비춰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들, 폭력으로 가득한 학교 교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잠깐 사그러졌던 대한민국 특유의 우울을 또 다시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 요즘 연말 분위기가 아니라 종말 분위기가 나는 듯해요. '  

내가 주로 들리는 인터넷 카페의 어느 회원분이 남긴 댓글 한 마디가 올해 연말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맞는 말이기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만 하다.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 읽게 되는 글

요즘 같은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는 나는 항상 책을 읽는다.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그나마 좋은 위안처이면서도 간혹 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개그맨 행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 독서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책 속 저자의 목소리가 나의 우울하고 상처받은 감정들을 토닥거릴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저자의 글로부터 위안을 받게 되면 잠시나마 흐트려져 있던 감정들을 추스릴 수 있게 된다. 특히 나의 감정을 쉽게 다스리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글이 바로 故 장영희 교수의 글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교수가 번역한 영미문학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생전에 썼던 칼럼을 모은 에세이집과 단상을 곁들인 영문학 시집들을 다 읽어봤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기만 했던 군대 일병 시절에 장영희 교수의 첫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을 접하면서 그녀의 글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첫만남부터 나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긍정적인 마음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그녀의 글이 무척 좋았다. 

작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을 때는 이제 맑디 맑은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워었는데, 최근에 나온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인 에세이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을 읽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또 한 번 '마지막' 이라는 감정이 앞선 나머지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그녀의 글은 나에게 ' 축복과 같은 꽃비' 가 되어 왔다. 마침 어두운 분위기의 연말에 때마침 그녀의 글을 읽게 되나디 정말 축복이다.  

다행히, 이번 글은 전작의 에세이들처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아가야하는 삶에 대한 자조적인 감정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간간히 몇 몇 문장 속에서 은근히 그녀의 어두운 면이 보이기도 했지만  '희망' , '사랑' ,  '웃음' 과 같은 그녀의 글에서 항상 등장하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많은 것은 여전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소개한 영미 시들 역시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해주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숨겨놓았던 눈물 

이번 에세이집에 수록된 모든 글과 시는 다 좋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 한 편은 ' 숨겨놓은 눈물을 찾으세요 ' 라는 이름의 글이었다.  장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는 것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요지는 다른 에세이의 내용과 비교하면 밀리는 감이 있고 읽는 사람마다 글에 대한 감정이 제각각이듯이 어떤 이들에게는 글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짦막한 글을 읽으면서 2010년을 살아가면서 그동안 눈물을 숨겨두었던 감정의 자세가 슬그머니 떠올려졌다.  감정이 뒤흔들 정도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과 책들을 보면서 눈물을 한 번 흘린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머릿속에는 눈으로 입력된 장면과 내용들이 오롯이 기억이 났었지만 정작 그 순간에 내가 눈물을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눈물을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것이다.   

 

 

  눈물 흘릴 줄 아는 방법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현대인들

올해 정말 기억에 남을 감동의 장면은 여름에 온 국민을 하모니의 감동으로 느끼게 해준 '남자의 자격 - 하모니 편' 이었다.  각기 다른 성격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 급조적으로 탄생된 오합지졸 합창단이 처음으로 합창 경연장에서 내는 목소리는 모든 국민들과 관중, 그리고 이들을 지도하는 박칼린 씨마저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의 결정체였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다음으로 눈물이 나올만한 장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비인기 종목이나 다름 없었던 인라인스케이트 선수 우효숙 씨의 금메달 시상식 장면이었다. 낯선 경기장이 있는 중국에 있는 동안 고국에 있는 몸이 불편한 친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서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마음도 굳게 먹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을 따게 되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감독이 조심스럽게 우 선수에게 비보를 전해주었다. 한국에 계시던 할머니가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메달 시상대에 오른 우 선수의 얼굴에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단순히 비인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닌,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애통의 눈물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우리들의 눈가를 촉촉히 할 정도로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의 감정에 동화되면서 나는 그들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니, 흘리지 못했다.  왜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것일까?   

아마도 남자는 세 번 울어야한다는, 깊게 박혀있는 사회적인 시선 탓도 있지만 요즘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방법이 잊혀지고 있었다.   

우리 주변 세상이 너무 어둡고 우울하다보니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과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 안에서 타인과의 만남 역시 우리들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있는 요인이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감정의 표현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한다. 

  " 이 사진 속 장면이 슬퍼요. ㅜㅜ ' , ' 멀쩡하던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ㅠ_ㅠ "  

'슬픔' 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눈물 흘리는 장면의 이모티콘으로 표현한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기 위한 방법으로 이모티콘이 유일하다.  하지만, 아무리 댓글에서 'ㅠㅠ' 를 남발한다고 해도 타인은 내가 진심으로 슬픈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나마 드러내는 언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다 간결하면서도 쓰기 편한 이모티콘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한 채 언어 껍데기들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이모티콘사용이 편하다는 이점 때문에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지 못한다면 ' 감정이 눈꼽만큼도 없는 '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바타' 과 자신의 실명이 아닌 '닉네임' 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감정을 표출하려는 '인간' 으로 보이려고 한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자

  '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이다. '

눈물에 관한 에세이의 마무리를 프랑스의 소설가 생 텍쥐페리의 명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눈물은 꼭 감정적으로 나약한 사람들만 흘리는 것이 아니다. 또 무조건 슬플 때나 화가 날 때 나오는 액체도 아니다.  나보다 못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영화 속 장면이나 책 속 문장을 보면서 생기는 감동적인 마음을 통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남들에게도 보이기 싫다면 혼자서라도 눈물을 흘려보자.  눈물은 사람의 우울한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을 때 눈물샘을 건드리는 순간이 온다면 눈물샘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자. 그러면 두 눈에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될 것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지금과 같은 암울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감정이 메마르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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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0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따뜻한 글이예요. 너무 감사드려요.
사이버 공간도 결국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페르조나(가면)이 훨씬 강화된 공간이기도 하구요. 그게 매력이기도 하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포장된 나로서 살아갈 기회의 제공이라는거.

연말. 사랑의 열매의 단란주점 사건으로 인해
뚝 떨어진 기부 문화 기온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올 연말은 이래저래....... 조금은 서글픕니다. 그래도
우리 멋진 겨울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내볼까요, 화이팅!

cyrus 2010-12-04 20:04   좋아요 0 | URL
많이 바쁘실텐데 제 서재에 들려주시네요.
마고님도 얼마 남지 않은 연말에는 서글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웃음으로 마무리되시길 바라요.

stella.K 2010-12-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일지는 모르겠는데, 안평도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데, 연평도 주민들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독기가 서려있더군요.
그게 더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어렵기는 다 같이 어려운데
사람들 저마다 어쩌면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싶더군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데, 한다면 나라겠죠.
근데 나라는 너무 거창하고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등등.
사는 게 점점 팍팍해서 큰 일이어요.

장영희 교수의 책들은 정말 좋죠.
저는 몇 년 전 모 신문에 칼럼 쓰신 거 보면서 정말 미문이구나 했어요.
그걸 책으로 묶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 아직도 제 책상 책꽂이에 꽂혀있습니다.
다른 책도 읽어봐야 할텐데 말이죠.^^

cyrus 2010-12-05 13:48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작스런 안평도 사건으로 인해 마을에 사는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되었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거기에다가 재벌 2세의 폭력 사태 등
자꾸 눈쌀을 찌푸리게하는 사건들이 연달이 터지니 나라 분위기가
어수선하네요. 내년에는 사회 분위기가 좋게 반전되기를 바랄뿐이네요^^


2010-12-05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