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작가 레오 페루츠(Leo Perutz)의 재능을 눈여겨본 어느 비평가는 그를 환상소설의 만능선수라고 평가했다. 페루츠의 주된 관심사는 작중 인물을 교란하게 만들거나 광기로 몰아넣는 초자연성이다. 페루츠가 1936년에 발표한 스웨덴 기사는 환상소설의 형식을 갖춘 역사소설이다.
















* 레오 페루츠 스웨덴 기사(열린책들, 2020)


4점  ★★★★  A-




스웨덴 기사는 작가 생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걸작이다페루츠는 기묘하면서도 그럴듯한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으며 그 속에 환상과 유머를 적절하게 삽입했다


스웨덴 기사의 중심인물인 무명의 도둑은 악한소설(picaresque novel)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도둑은 자신과 동행하게 된 귀족 크리스티안 토르네펠트를 속이고, 그의 인생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신분을 바꾸는 데 성공한 도둑은 스웨덴 기사라는 별명을 가진 영주 크리스티안 토르네펠트’로 살아간타인의 인생을 빼앗는 일은 악행이다. 도둑은 자신의 악행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도둑질하면서 절대로 가난한 사람의 재물을 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고리대금업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페루츠는 유대인 출신이다. 고리대금업자는 천대받은 유대인들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다. 작가는 왜 도둑의 입을 빌려 고리대금업자를 경멸하는 대사를 넣었을까. ‘고리대금업자=악랄한 유대인이라는 오래된 부정적 인식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가혹하게 채무자를 대했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작가의 비판으로 봐야 할까? 아무튼 도둑은 악한소설 주인공처럼 사회악에 반감을 드러낸다.


스웨덴 기사》는 처음에 진부한 상황에서 전개되어 조금씩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이른다. 그러다가 소설 마지막에 독자에게 놀라움을 주면서 마무리된다. 처음에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 그래라는 무난한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반전이 있는 결말에 이르면 ! 그래!’라고 감탄하게 된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1999)




스웨덴 기사에 있는 작가 연보에 따르면 페루츠의 첫 번째 장편소설 세 번째 탄환(Die dritte Kugel, 1915)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 코르테스의 병사들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코르테스의 병사들은 브레히트의 시 선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수록되어 있다.






※ Mini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주1]



* 218

 




 어쩌면 주교님은 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를 수도 있어요. 누군가 그분께 지금 상항을 전달해야 해요.



[주] 상항 상황






[주2]



* 265쪽





비명 소리 듣고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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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0 1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 네개는 오랜만에 보는거 같아요. 아! 그래! 하셨다니 급관심이~!

cyrus 2021-05-11 06:34   좋아요 1 | URL
이야기 중반부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결말에 다다를수록 재미있어집니다. ^^
 





전망 좋은 []

 

EP. 12



2021년 5월 4일 어린이날 

담담책방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지났다. 18개월 만에 재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원해서 한 것은 아니다. 문을 만드는 공장에 일하는데 생산직 특성상 야간 잔업이 많다. 예전처럼 책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때는 화이트칼라였다)이 부족하다. 하지만 생계소득 없는 삶이 장기화하지 않으려면 뭐든 해야만 한다. 고심 끝에 생애 처음으로 블루칼라가 되었다기회가 되면 육체노동의 일상을 글을 써보고 싶다직접 피부로 느낀 노동은 책으로 보는 노동과는 확연히 다르다.


책방지기는 내 근황이 궁금했다고 말씀했다. 책방지기 사모님도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하는데 두 분이 유독 나를 생각해준 이유가 있다. 처음으로 공장 일을 하기 시작하기 전인 3월 말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책방이 담담이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공장 관계자로부터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라고 연락이 왔었다. 원래 담담책방은 토요일에도 문을 열었다. 공장의 연락을 받은 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책방지기가 내게 토요일에 책방을 열어야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말씀했다. 그분은 목사라서 일요일 교회 예배를 위해 전날에 혼자서 예배를 준비한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불가피하게 토요일에 교회 관련 업무와 책방 일을 병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책방지기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결국 토요일도 책방 휴일(월요일도 책방이 쉬는 요일이다)로 변경되면서 나는 한 달 동안 담담에 가지 못했다토요일에 내가 갈 수 있는 책방은 읽다 익다 뿐이다. 문제는 책방이 너무 멀다. 버스 타고 책방에 가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도 읽다 익다는 내가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이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첫 주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생전 해본 적이 없는 육체노동을 막 시작했으니 벌써 지칠 만도 했고, 이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 고충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내게 격려해준 좋은 분들 덕분에 이른 포기를 하지 않았고, 일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분들에 담담 책방지기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이 급여를 받는 날인데 공휴일이라서 아직 받지 않았다. 공휴일 전날에 급여가 통장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공장에 기대한 내가 바보다. 다행히 넉넉한 생활비가 있었고, 이걸로 책방에 있는 책 두 권을 정가로 샀다. 급여가 들어오는 대로 읽다 익다’, ‘서재를 탐하다에 있는 책 몇 권을 더 살 예정이다. 주말에 대구의 다른 책방에 가봐야겠다.  


평생 직장은 없다. 죽을 때까지 블루칼라로 살고 싶지 않다. 야근을 많이 하면 일한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지만, 내 몸의 수명과 나만의 시간이 줄어든다. 야근 때문에 평일 저녁의 독서 모임에 참석이 어려워졌다(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독서 모임이 진행된다금요일에 진행되던 레드스타킹은 최근에 화요일 저녁으로 변경되었다. ‘우주지감은 목요일에 진행된다. 7시에 퇴근하면 조금 늦더라도 독서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이 점이 아쉽고 불만이 많다. 책과 글쓰기가 없는 삶은 시체와 같다. 독서와 글쓰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야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기상조이지만 블루칼라 노동 이후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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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5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휴일 전날 급여가 띵똥 들어왔음 공장 오너님 센스인증인데요! 아쉽네요. 일에 관해 글 꼭 쓰시길 응원드립니다.
조지 오웰이 퍼뜩 떠오릅니당ㅋㅋ신규 책방도 기대되구요!

cyrus 2021-05-10 06:04   좋아요 1 | URL
공휴일 다음 날 오후에 급여가 들어온 걸 확인했어요. 야근 잔업이 없는 날에 일에 관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5-05 2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cyrus님께서 보내고 계신 시간이 분명 의미있는 전환점,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한 주 보내세요!

cyrus 2021-05-10 06:05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겨울호랑이님의 댓글을 보니 힘이 납니다. ^^

mini74 2021-05-05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작가들의 시작이 퇴근 후 부엌 한켠 작은 전등 아래였다지만 현실적으론 참 힘들고 어려운 일, cyrus님께 어울리는 책방운영의 꿈이 얼릉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

cyrus 2021-05-10 06:07   좋아요 1 | URL
자투리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장소 불문하고 글을 쓴 작가들을 생각하면서 피곤해도 틈틈이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1-05-05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새로운 출발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먼저~~
블루 컬러로의 일상의 글, 기대하겠습니다^^
일하시면서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하시고 건강 챙기십시오**
엄마, 아니 누나같은 잔소리만 늘어놓습니다 ㅎㅎ

cyrus 2021-05-10 06:08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응원의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하고, 힘이 납니다. 페넬로페님과 여러 이웃님의 댓글을 보고나니 월요병이 쏙 들어갔어요. ^^

Angela 2021-05-05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쓰는데 다양한 경험은 좋은것같아요~

cyrus 2021-05-10 06: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확실히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은 차이가 있어요.

레삭매냐 2021-05-06 0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시는 회사의 결제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급여는 그전에
주나 나중에 주나 별 차이는 없는데...

자본가의 탐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원칙대로라면 휴일날이라
도 지급해야 하는데 그건 또 싫겠죠.

자기만을 위한 원칙 같지 않은 무원칙.

cyrus 2021-05-10 06:13   좋아요 0 | URL
한 달 일을 해보니까 개선해야 할 공장의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보다 오래 일한 사람들은 직업 환경에 불만이 많았는데 공장장은 공장 내부를 더 확장할 생각만 하고 있어요.

syo 2021-05-06 0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이 책방을 운영하시면 제가 노동하여 책을 사먹겠습니다.
그날까지 피차 잘 삽시다(?)

cyrus 2021-05-10 06:15   좋아요 0 | URL
돈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겠습니다. 책방을 여는 꿈이 언제 실현될지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그 꿈을 위해 준비하겠습니다. ^^

blanca 2021-05-0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글 읽는데 갑자기... 울컥했어요. 잘 살고 계신다는 얘기 드리고 싶어요. 육체 노동 가운데 읽고 쓰는 일의 무게와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마음이 너무 좋아요. 건강 잘 챙기시기를...

cyrus 2021-05-10 06: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lanca님. 피곤하다는 핑계로 독서와 글쓰기를 미루지 않겠습니다. ^^

stella.K 2021-05-06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건실 청년이다.ㅎㅎ
전에 모교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나?
1년 8개월을 공백이 있었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단 생각이드네.ㅠ
서재에서 너의 글을 볼 수 없다는 게 이쉽긴한데
그중에서도 너의 책방 이야기를 읽을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워.
재미가 쏠쏠했는데.
내가 이런데 책방 좋아하는 너는 더하겠지? 절절하다.
그래. 지금 블루칼라로 열심히 돈 벌어서 나이 좀 들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너의 글 계획도 기대된다.
뭐든지 거져는 없는 것 같아. 지금은 힘들어도 훗날 이때를 기억하게 될 거야.
살아보니 힘들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ㅋ
힘내라. 화이팅이다!!

cyrus 2021-05-10 06:20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누님. 대학교 사무실에 일한 건 더 오래됐고요, 그 다음에 한 일은 중소기업 사무직이었어요. 비록 급여를 많이 받지 못했지만, 일찍 퇴근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장 일을 해보니 주말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꼈어요. ^^
 
리얼리티 버블
지야 통 지음, 장호연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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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3.5점  ★★★☆  B+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는구먼.”

 

(영화 <자토이치>의 마지막 대사)




우리는 심각한 상황을 보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해서 대처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란 게 있다. 대형사고 1건이 일어나기 전에 작지만 비슷한 사고가 29건이나 일어나고 사소한 징후는 300건이 발생한다는 법칙이다불길한 조짐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경미한 징후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캐나다의 과학 저널리스트 지야 통(Jiya Tong)은 대형사고의 결정적 원인이 되는 문제를 미처 보지 못하는 인간을 현실 거품, 리얼리티 버블(reality bubble) 속에 갇힌 존재라고 말한다거품은 우리를 둘러싼 일상이다. 일상은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거품 속 세계에 익숙한 우리는 일상 너머에 있는 심각한 상황을 보지 못한다거품이 터지면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심각한 상황을 실감한다거품 속에 있는 우리는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거품 밖에 일어난 파국의 징후를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종종 외면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서 눈을 뜨고 있어도 나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경미한 문제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맹점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맹점은 현실 거품을 터뜨리는 경고성 징후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지야 통의 리얼리티 버블은 우리를 눈만 뜬 바보로 만드는 맹점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아주 크거나 아주 작은 규모의 존재나 사건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것들을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기후 온난화 같은 현재 진행형인 전 지구적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하다. 또 우리에게 이로운 미생물과 그 역할에 대해 무지하다.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한 존재라고 생각한다지구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믿는 우리는 주변 세상과 다른 존재와 상호 연결되어 살아가는 방식을 망각한다. 자신이 생물보다 한 단계 수준 높은 우월한 존재라고 본다인간만이 감각과 의식을 갖춘 유일한 존재라는 착각은 인간 중심주의의 한 예다. 인간 중심주의는 동물을 인간을 위해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대한다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맹점들이다. 맹점은 개인의 타고난 약점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한 집단 전체나 사회 안에서 작용하는 맹점도 있다


물과 전기가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싫다. 우리는 물과 전기의 소중함을 잘 알면서도 물과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과 전기를 낭비하고,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플라스틱을 무분별하게 쓰고 버린다.


맹점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삶이 지속할수록 지구의 수명은 줄어든다. 지구의 수명이 줄어들면 인류 최후의 날이 앞당겨진다. 맹점을 외면하면서 현실 거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에만 매달릴 수 없다. 터진 거품을 또 만드는 일은 거품 밖의 문제들을 소극적으로 보게 만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저자는 맹점의 오류에서 벗어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도구를 제시한다. 그 도구는 바로 과학이라는 이름의 렌즈. 과학 렌즈는 우리의 현실 인식 범위를 좁게 만든 낡은 세계관에 의문을 품게 만들며 맹점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지 말자.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과학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과학도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과 결탁한 과학은 정확한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한다. 따라서 과학 렌즈를 최대한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사용하려면 계속 연마해야 한다그러려면 지식을 의심하고 비판할 줄 아는 자세와 회의적인 사고를 늘 유지해야 한다과학 렌즈 연마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문제를 잘 볼 수 없는 원시(遠視)를 교정할 수 없다.






※ Mini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주1]


* 86






 주기율표에 나오는 118개의 원소 가운데 26개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주1] 가속기나 원자로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핵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진 방사선 원소를 인공 원소(artificial element)라고 한다. 자연에 아주 적은 양으로 존재하거나 특정 조건에서만 생기는 원소는 수명이 짧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미량의 천연 원소 역시 인공 원소로 분류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공 원소를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인공 원소의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원소의 개수가 달라질 수 있다.






[주2]


* 87쪽





트리니티는 인류 최초의 핵무기였다.

[원문]


Trinity was the world’s first nuclear weapon.

 


[주2] 인류 최초의 핵무기는 194586, 9일에 각각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다.






[주3]


* 413





발렌타인데이 밸런타인데이






[주4]



* 441





 g[중력 상수]가 지금보다 작았다면 빅뱅의 먼지는 그냥 계속해서 팽창하여 은하, 항성, 행성 그리고 우리로 결코 뭉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력 상수의 값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딱 적당하다.



[주4] 중력 상수(gravitational constant)대문자 G로 표시한다. 소문자 g중력가속도(gravitational acceleration)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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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2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날카로우시네요. 이건 그냥 할수 있는게 아닌~~ 저도 책보면 이런부분을 찾아봐야 겠어요~!!

cyrus 2021-05-05 21:45   좋아요 1 | URL
제 의견이 사실과 맞지 않고, 틀릴 수도 있어요. 다른 분이 제 글의 잘못된 주석을 확인하고, 비판한다면 당연히 오류를 인정하면서 고쳐야 해요. ^^

mini74 2021-05-02 2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니혼늄 이란 이름에 충격을 받았었지요. 가끔 양옆을 가린 경주마보다 좁은 시야를 가진것처럼 느껴질때가 있지요 ㅠ 오늘도 좋은
글 고맙습니다 ~

cyrus 2021-05-05 21:49   좋아요 2 | URL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새로운 원소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행했다고 하던데, 만약 발견에 성공하면 ‘코리아’가 들어간 원소 이름이 지어질 거예요. 그런데 저는 원소 이름을 지을 때 국명보다는 원소 발견자 이름이 포함되었으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1-05-02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얼리티 버블이란 말을 새로 알았네요. 무수한 징조들이 있지만 그걸 제대로 통찰해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는걸 다시 깨닫습니다.

cyrus 2021-05-05 21:52   좋아요 1 | URL
안목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이걸 단기간 안에 시도한다고 해서 안목이 빨리 가지는 건 아니죠. 느리더라도 길게 꾸준히 시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Angela 2021-05-04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이예요!!

han22598 2021-05-05 2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냥 한번 찾아봤는데, 지적하신 것들 중에 trinity는 인류 최초 핵무기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것이었지만 최초로 사용된 device 이름 맞는 것 같아요. 맨하튼 프로젝트일환으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같은 모델로 1945 년 7월 16일에 뉴멕시코 사막에서 실험 했던 거라고 하네요.

정보출처가 위키피디아라서 좀 그렇긴 하네요 ㅠㅠ
https://en.wikipedia.org/wiki/Trinity_(nuclear_test)

cyrus 2021-05-10 06:22   좋아요 0 | URL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뷰티풀 사이언스 - 한눈으로 보는 과학의 실체,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경이
아이리스 고틀립 지음, 김아림 옮김 / 까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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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솔직하게 말하면 과학의 법칙을 구구절절 설명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과학 교과서는 재미없다. 과학 교과서에 사진과 그림이 많이 있어야 한다그런 교과서로 공부한다면 지루하지 않을 거고, 외워야 할 과학 용어의 의미나 법칙을 이해하기 더 쉽다하지만 아기자기한 시각 정보로 과학을 설명하는 방식에도 단점이 있다눈으로 보는 내용만이 과학의 전부가 아니다시각 정보로 풀어 쓰지 못한 과학은 중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추상적이고 복잡한 개념을 억지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려고 시도하다가 개념의 핵심이 와전될 수 있다이러면 사실과는 다른 잘못된 과학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


뷰티풀 사이언스눈으로 보는 과학 교과서의 예시로 들 수 있는 책이다이 책을 쓴 저자 아이리스 고틀립(Iris Gottlieb)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다그는 또 과학관과 박물관에 일한 적이 있는 아마추어 과학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과학 상식들을 모아서 그림으로 그린 자신의 작업을 나뭇잎으로 화려한 둥지를 짓는 바우어 새(bower bird)로 비유한다. 바우어 새의 별명은 정원사 새. 뷰티풀 사이언스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과학의 정원이다. 이 과학의 정원은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 세 가지 테마는 생명과학, 지구과학, 물리 과학이다. 이해하기 쉬운 과학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그런 과학을 이해하면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을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은 아주 유익한 일이다


빙하의 구조를 초코바로 비유해서 설명한 점이 인상적이다(84~85). 빙하는 초코바 속에 채워진 캐러멜이라면 흙은 쿠키, 바위는 캐러멜에 박힌 땅콩 가루이다. 뷰티풀 사이언스는 과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과학 상식도 다룬다. 우주 탐사 실험에 투입된 동물의 목록(44~45)은 경이롭고 아름다운 과학의 이면이다. 과학의 역사는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의 이름만 새길 뿐, 익명의 피실험자를 지운다.


그런데 그림으로 만들어진 과학의 정원을 거닐다가 의아한 사실을 발견했다. 과학의 정원 안에 아인슈타인(Einstein)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없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의를 뒤집은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 언급되지 않다니. 저자가 상대성이론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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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학교 다닐 때 과학 교과서 정말 재미없었어요! 읽다 멈춘 상태지만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가 훨씬 흥미진진함요. 그림도 적절한 수준으로 담겨 있고요.😁

cyrus 2021-05-02 19:31   좋아요 1 | URL
과학 교과서가 <뉴턴 하이라이트>처럼 만든다면 재미있을 거예요. <뉴턴 하이라이트>에 일러스트와 컬러 사진이 많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일러스트의 비중이 많은 교과서를 제작하면 일반 교과서를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요. ^^;;

청아 2021-05-02 19:40   좋아요 0 | URL
바로 검색 들어갑니당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5-02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범위한 독서, 역시 대단하십니다.

cyrus 2021-05-02 19:37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광범위하지 않아요. 소설, 에세이, 인문학(특히, 철학), 한국미술 분야의 책에 손이 잘 안 가게 돼요. ^^;;

stella.K 2021-05-02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헐적으로 나타나니 스릴있고 애틋하다. 잘 지내지?ㅋㅋ

cyrus 2021-05-02 19:42   좋아요 1 | URL
서재 활동을 한 달 쉬니까 마치 일 년처럼 느껴졌어요... ㅎㅎㅎ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지난 달에 새로운 일을 하게 돼서 적응하느라 잠시 서재 활동을 쉬웠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야근 잔업이 많은 편이라 독서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이 많지 않아요. 예전처럼 꾸준히 서평을 쓰지 못해요.

Angela 2021-05-0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성이론을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까요?

cyrus 2021-05-05 21:55   좋아요 1 | URL
주로 많이 표현된 형태는 태양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에요. 그리고 움푹 파인 시공간 그림도 많이 나옵니다.
 

 



이탈리아의 작가 디노 부차티(Dino Buzzati)는 괴물이나 유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 환상 세계를 창조했다. 그래서 부차티의 환상적인 이야기는 카프카(Franz Kafka)의 세계를 떠올린다. 카프카의 세계는 상식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일상이다부차티와 카프카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독서를 해보면 좋겠지만, 국내에 번역된 부차티의 작품 수가 많지 않아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문학동네, 2021) 



 

작가들이 인정한 숨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부차티의 대표작 타타르인의 사막(Il deserto dei Tartari, 1940)다음에 후술할 그의 장편소설 한 편이 번역된 게 전부다타타르인의 사막》의 주제는 부조리한 기다림이다소설의 주인공인 젊은 군인은 국경 근처의 요새에 배치되어 사막을 지킨다. 요새의 군인들은 타타르인의 침공을 기다린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타타르인이 침공할 거라는 그들의 믿음은 불안감과 희망이 뒤섞인 납작한 일상을 작동하는 기제(mechanism)가 된다.
















* [품절] 프랑수아 레이몽, 다니엘 콩페르 환상문학의 거장들》 (자음과모음, 2001) 




부차티는 단편소설도 썼는데, 이 작품들이야말로 카프카의 세계에 근접한 이야기다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부차티의 단편소설 세 편이 환상문학의 거장들에 언급되어 있다책에 언급된 단편소설은 층계의 꿈(Paura alla Scala, 1948), 무슨 일이 일어났다(Qualcosa era successo, 1949), 승강기(L’ascensore, 1962)무너지는 계단(층계의 꿈), 땅속으로 무한히 들어가는 승강기(승강기), 폐기된 역에 도착한 기차(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불확실한 현상이다.


환상문학의 거장들에 당연하게도 부차티의 대표작 타타르인의 사막도 소개되었는데, 소설 제목이 타르타로스의 사막으로 잘못 번역되었다(241쪽). 타르타로스(Tartaros)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하 감옥이자 그곳을 지배하는 나락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을 모독한 인간은 타르타로스에 갇힌다그곳은 한 번 갇히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의 공간인데, 어떻게 보면 타타르인의 사막의 요새는 현실에 있는 타르타로스, 좀처럼 탈출하기 힘든 거대한 감옥인 셈이다.









 

타타르인의 사막은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부차티의 소설이 아니다. 디노 부자티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화분(창우사, 1986)이 출간된 적이 있다. 이 소설의 원제는 어떤 사랑(Un amore, 1963)’이다꽃을 피우지 못하는 화분은 부차티가 초기 작품들에서 보여준 환상성을 탈피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65년에 영화화되었다.















 

* [품절] 토머스 핀천 중력의 무지개(새물결, 2012)



 

부차티의 또 다른 장편소설 시칠리아에 곰들이 쳐들어왔어요(La famosa invasione degli orsi in Sicilia, 1945, 타타르인의 사막번역본에 표기된 제목은 시칠리아의 유명한 곰 습격 사건)’새물결 출판사가 기획한 문학의 우주시리즈 중의 한 권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출간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결국 문학의 우주시리즈는 단 한 편의 작품만 나온 채 페이퍼 플랜(paper plan)’이 되고 말았는, 그 작품은 바로 어마어마한 분량과 무시무시한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선사했던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중력의 무지개(Gravity’s Rainbow,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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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5-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을 피우지 못하는 화분>은 구해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역시 대단하시
다는.

<시칠리아에 곰들이 쳐들어왔어요>는
2019년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고 하네요. 너튜브로 검색해 보니 이태리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먹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왠지 재밌어 보이더라는.

비슷한 케이스로 타리크 알리의 지중해
5부작 가운데 <돌기둥 여인>도 나올 뻔
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어쩌면 역자의 창
고에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cyrus 2021-05-02 11:32   좋아요 0 | URL
<꽃을 피우지 못하는 화분>은 예스24 온라인중고에서 샀어요. 가격은 12000원이었어요. 모아 놓은 OK캐쉬백 포인트로 썼습니다.

부차티의 단편소설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왠지 내용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겨울호랑이 2021-05-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랫만에 cyrus님의 환상문학 이야기를 보니 좋네요.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범주의 책만 읽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cyrus님의 페이퍼는 경계를 너머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다는 면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바쁘시더라도, 좋은 글 자주 올려주세요!

cyrus 2021-05-02 11:46   좋아요 1 | URL
바쁘지는 않은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고 야근 잔업이 많아서 저녁에 글쓰기가 쉽지 않아요. 공장에 오래 일할 생각은 없고, 올해만 고생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려고 해요. 야근이 많을수록 급여는 많이 받지만, 평일에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없이 살아간다는 게 답답해요. 올해는 예전처럼 꾸준히 글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식지 않도록 틈틈이 써야겠어요. ^^

겨울호랑이 2021-05-02 12: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cyrus님 예전 페이퍼에서 건강으로 고생했던 글이 생각나네요... 건강에 조심하시고, 바쁘더라도 몸도 마음도 챙기시길 바랍니다!

cyrus 2021-05-02 12:05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일 년만 일할 생각인데, 여름이 고비에요.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지면 퇴직하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