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8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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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786] 향수

 

 

 

 

『향수』에 대한 기억 속의 향수(鄕愁) 
 

오랜만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걸로 포함하면 총 네 번째이다. 최근에 읽었던 때가 군 복무 시절이다. 군 생활 다 꿰뚫고 있다는 신의 계급(?) 병장 때는 말년 휴가를 가기 전까지 주말을 포함한 하루하루가 지루함의 연속이다. 그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낙은 부대에 마련한 작은 독서실에서 책 읽는 것이었다. 그 곳 책꽂이 에서 하얀 책표지가 없는 구판으로 출간된『향수』가 눈에 띄었다. 집에도 구판으로 나온 책이 있었고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 책을 보게 되니깐 책 제목처럼 갑자기 집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은 향수(鄕愁)가 느껴지고 그 밖에 옛날 이 책과 관련된 사춘기 시절의 조그마한 추억들도 떠올랐다.

이 책을 처음 구입하고 읽었던 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 때 샀던 구판의 겉표지는 지금과 다르다. 구판은 흰색 바탕에 아르누보 형식의 무늬가 있다. 지금의 개정판은 그르누이에게 체취를 빼앗긴 채 희생당한 여인 중의 한 명인지 아니면 향수에 취해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만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문학적 위상이 높아진 지금은 ‘열린책들 문학전집’ 시리즈 중의 하나로 나오고 있다. 학교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 책 제목의 부제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주위에 친구들은 이 책을 추리소설로 오해를 하기도 했으며 몇 몇은 왜 이런 암울한 제목의 책을 읽고 있냐고 묻기도 했다. 이런 오해가 다 책 표지에 ‘살인자’라는 제목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 때 교실은 남녀공학이었고 짝꿍은 여자였다. 짝꿍은 머리도 좋아서 공부도 잘하고 나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읽은『향수』를 그 친구가 읽을 수 있게 빌려준 기억이 있다. 그 친구에게 짝사랑한 감정은 없었지만 이성이 내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가져준 것 자체가 내 인생으로서는 처음이었기에 특별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그 애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향수』의 딱딱한 전개와 문장은 여자들이 끝까지 읽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조그만 참고 읽었더라면 이 책의 뛰어난 작품성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더 씁쓸했던 것은 그 아이가 성적 관리를 위해서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었다.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입시 위주의 학교 공부에 매달려야만 하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중학생 시절의『향수』와의 첫 만남은 충격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무고한 25명의 소녀들을 해하는 과정은 냄새에 집착하는 그르누이의 광기를 엿볼 수 있었고, 사형을 받기 전에 완성된 향수를 바르고 사형장에 등장하자 그 곳에 모인 시민들이 집단 성관계를 맺는 장면은 세상을 무아지경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르누이 향수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실감했다. 그리고 결말에도 향수의 위력은 그르누이의 잔혹한 죽음으로 몰고 간다. 향기에 취한 부랑자들이 한 순간에 식인종으로 돌변하여 그르누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장면은 여태까지 읽었던 문학 작품들의 주인공의 최후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특성 없는 남자

  

비록 첫 만남은 소설 속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에 치중하였지만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니 이제는 그런 설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그르누이가 왜 극단적인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만 했다. 그 끔찍했던 행동들은 잃어버리고 있었던 인간적인 자아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옛날에 TV 프로그램에서 아기들은 엄마의 모유를 정확히 알아맞힌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기들의 감각 능력은 성인으로서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데 특히 후각이 발달하여 엄마의 모유 냄새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르누이는 일반적인 아기들보다 더 우월한 후각 능력을 가졌을지 모른다. 아기였을 때부터 냄새를 맡기 위해서 유난히 조그마한 코를 벌름거리는 것이 전에 그르누이를 사랑스러워 했던 테리에 신부가 한 순간에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하였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가슴을 품어보지도 못했고 모유도 먹어보지도 못했다. 그르누이의 어머니는 그를 썩어가는 선 조각 더미에 버리고 도망간다. 자궁 속에 갇혔던 아기들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품 안에 안기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애 처음 느껴보는 동시에 그 아기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그런 고귀하고 행복한 특권을 누리기 못했다. 자신의 체취를 가지지 않은 그르누이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 받지 못하는 그냥 살아 숨만 쉬는 특성 없는 인간이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탐욕스럽게 유모의 젖을 빨고 심하게 코를 벌름거렸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르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는 순간이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를 천사와 같은 아기로 보기 보다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악마의 아기로 보았다. 
  

 

 ‘인간’이 되지 못한 '향수의 신' 그르누이 

 

그르누이가 추구했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향수는 자신의 잃어버린 체취. 즉,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자아의 결정체이다. 결국에는 처형당하기 직전에 그르누이는 자신이 만든 향수를 바른 채 등장한다. 드디어 자신을 경멸했던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끔 매혹시켜버린다.

 

  따뜻한 인간적 영혼도 없이 오로지 반항심과 역겨움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가,  

  작은 키에 구부정한 모습, 절름발이에 추한 얼굴로 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싶어지는  

  그가, 외모와 마찬가지로 내면 세계 역시 괴물인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데  

  성공한 것이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구판, p 358 -

하지만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는 너무나 훌륭했던 나머지,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인간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가 향수의 신이 되고 말았다. 25명이나 되는 소녀들을 죽이면서까지 향수를 완성했건만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증오하기 보다는 사랑하고 있었다. 그르누이는 자신에게 향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 변화에 혐오를 느낀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자신만을 위해 만들었던 향수가 25명의 소녀들에게 빼앗아 섞어 만든 조잡한 향수에 불과하다는 것과 이 향수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체취가 드러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커다란 절망감을 빠지게 된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중략)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날은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수의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가면을
  쓰면 얼굴이 없는 것과 같아서 그는 완전히 무취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구판, p 360~361 -

몸에 남은 향수의 향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공기 중에 증발되고 만다. 그가 만든 위대한 향수는 일시적이나마 상실된 자아의 단점을 커버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미봉책이었다. 결국 사형장에서 보여준 그르누이의 모습은 온 몸에 잠시 겉돌고 마는 향수 냄새와 같은 영원히 유지할 수 없는 자아의 가면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아를 완성하지 못한 채 특성 없는 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간적인 향기를 지닌 사람

 

그르누이가 살았던 17~18세기 유럽에는 향수를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치장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 향수를 뿌렸다. 당시 17~18세기 유럽은 위생 관리가 취약했던지라 아무리 잘 사는 왕이나 귀족일지라도 몸에 악취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결한 냄새를 드러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향수의 성분 특성상 몸에 나오는 악취를 제거할 수가 없다. 악취와 향수의 향기가 결합되어 오히려 더 이상한 냄새만 나올 뿐이다. 지금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혹은 이성을 매혹시켜 사랑을 받기 위해서 향수를 애용한다. 그 중에도 자신의 정확한 체취를 알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남에게 드러내기 싫은 체취를 가리기 위해서 자신이 향기에 취할 정도로 남발한다그러다보니 그르누이처럼 자신의 진실한 체취를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의 주제와 내용에 관련이 없는 결론이지 인간적인 향기를 지닌 사람이란 바로 이 시에 나오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따스해져 오는 사람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단순하면서 소박한 사람 
  

   - 이정하향기로운 사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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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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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값싼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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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데이빗 소로우    800원
    체 게바라               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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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를 뒤엎어 버리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체 게바라

  ※ 원문: http://blog.naver.com/sobin94?Redirect=Log&logNo=30083716327 
   

 

오규원의 시『프란츠 카프카』를 필자가 한 번 패러디해본 것이다. 원작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판에 서구의 유명한 문학가, 철학가 등을 이용하여 문학이나 인간의 정신을 상품화되어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시인이 제시한 문학과 사상, 철학뿐만 아니라 반문화(counterculture)를 상징하고 있는 아이콘들마저도 모든 제품에 가격을 붙여 상품화시킬 수 있는 자본주의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가 공동으로 펴낸 책『혁명을 팝니다』의 앞표지에 있는 스타벅스 컵 속에 그려져 있는 체 게바라처럼 반문화는 이미 그들이 거부했던 기성 문화처럼 변환되고 있다. 반문화는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도전하는 하위문화이다. 전통적인 기성문화에 도전했던 사회적 사례로는 1960년대 미국의 히피족이나 과격한 페미니스트들, 급진적인 종교 운동가, 사랑의 자유를 외친 동성애자들이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지금, 어느새 하위문화는 기성 문화로 변하게 되었다. 히피족 스타일은 하나의 비주얼적인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종종 거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모터사이클 족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복장 방식이다. 과거에는 기성 사회와 문화로부터 금기시하였고 배격 받았던 동성애는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에까지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 방식이 되어버렸다. 기존의 쿠바 정치 체제를 뒤엎으려고 했던 혁명아 체 게바라는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입고 있는 값 싼 티셔츠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열린 대중문화의 삼적(三敵): 프로이트, 마르크스, 히틀러  
 
  
두 저자는 록 음악에서부터 영화까지 대중문화들로 상징되는 개념들을 총동원하여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반문화의 실태를 분석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두 저자는 반문화를 형성하게 한 사람을 프로이트, 마르크스, 히틀러라고 규정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19세기 말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유럽의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가 옹호하려던 노동자 계급은 마르크스의 급진적 이론을 외면하였다.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신장시킬 수 있는 보다 실현성 있는 정책을 환영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이르게 되면서 프로이트가 등장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묻혀 있었던 마르크스의 사상이 다시 한 번 빛을 보게 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이 억압되는 과정을 통해서 문명이 발달된다고 주장한다. 전혀 통하는 게 없을 거 같은 사회 사상가와 심리학자, 두 사람의 기이한 만남은 대중 사회 속에서 ‘키메라(chimera)’ 문화를 낳게 만든다.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사회와 그 문명을 거부해야 한다는 반문화의 기본적인 사상이 형성되는 것이다. 엉뚱하게도 반문화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과 다르게 대중들이 제멋대로 해석하여 탄생하게 된다.    

 

 

거기에다가 본의 아니게 반문화라는 현상을 견고히 해준 것이 히틀러와 독일 나치스였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 대중들은 광적으로 자신들의 지배자인 히틀러와 나치스를 추종하였다. 독일 대중들이 비이성적으로 독재 권력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대중매체였다. 나치즘이 버무려진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은 히틀러의 선동에 세뇌당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히틀러와 나치스가 몰락한 이후 독일을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은 하나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무시무시한 힘을 각인시켰다. 히틀러가 남긴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했던 대중들은 언젠가는 제 2의 히틀러가 등장하여 자신들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기성 문화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고 저항하는 반문화라는 후유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자신들이 원했던 바가 아니었지만 역사적 인물 세 사람이 만들게 한 반문화는 지금은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종양이 되고 말았다. 반문화 사상을 주장하고 있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좌파는 우파 진영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으며 우파와의 대립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인류의 개인의 자유가 인정되며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열린 대중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두 진영 간의 화합이 필요하다. 사회적 갈등만 조장시키는 반문화를 만들게 한 세 사람은 열린 대중문화의 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저자는 반문화를 단지 대중문화에서 없어져야 할 주적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문화 형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본주의적인 얼굴의 대중문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체 게바라가 대량 생산되고 있는 티셔츠 속에 들어 있는 것과 반문화를 추구해했던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속했던 록 그룹 너바나의 앨범이 아직도 팔려가고 있는 현상이 그 예이다. 반문화 존재 자체가 성립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대중들이 왜곡되어 포장되고 있었던 반문화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망상에서 벗어나기를 경고하고 있다.  

  

 

  

자멸하고 있는 반문화 
 

최근에 러시아의 스킨헤드(Skinhead)들이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행사장에 난입하여 관객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스킨헤드’는 직역 그대로 하면 머리카락이 너무 짧을 정도로 바싹 깎은 머리이다. 원래는 1960년대 후반 영국 노동자 계급의 하부문화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폭력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고 있다.    

  

 록도 어떻게 보면 반문화 성향이 짙은 음악 장르이다. 스킨헤드 역시 초기에 반문화를 지향했던 점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두 반문화 집단 간의 충돌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결국에는 반문화가 열린 대중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해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서론에서 두 저저가 말했던 것처럼 반문화의 반란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비생산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만약에 몽둥이를 손에 들고 행사장에 습격한 러시아의 젊은 스킨헤드 일원들 중에서 미국산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지인 중 한 사람이라도 동성애라고 하면 혐오를 느끼면서도『왕의 남자』에 열광했으며 한창 TV에 방영되고 있는『인생은 아름다워』를 빠지지 않고 시청하고 있는 것이 지금 문화의 현실이다. 이런 반문화의 모습들은 웃지 못할 난센스이다. 반문화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대중문화 사회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이 약간 거칠고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미 반문화가 자본주의 사회에 잠식되어 있는 현실은 대중들은 자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관련 기사 인용 및 출처 링크 


[러 스킨헤드, 록 페스티벌 습격] 중앙일보 8월 31일자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8/31/3982088.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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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 경영, 오래 가려면 천천히 가라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츠카코시 히로시 지음, 양영철 옮김 / 서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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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대국 일본  

경제 전문 신문이나 경영 관련 도서들을 보게 되면 대부분 ‘일본’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작년에는『일본전산 이야기』가 경영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랭크되면서 불황기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의 성공 사례에 관련된 책들이 계속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일본 기업의 성공 사례와 경영 비법에 관한 책이 유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던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우리나라에 성공적인 경영인의 모델로 소개되면서부터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 그리고 지금은 다 쓰러져 가는 일본전산 회사를 살린 나가모리 시게노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 경영의 유행에는 단지 유명 기업인들의 성공 사례만 소개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 회사나 지역을 모델로 하는 기업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 비디오게임 제작 회사인 닌텐도 경영이 인기를 끌었다가 최근에는 교도식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구독자와 부수 기록을 자랑하는 어느 우리나라 신문매체에서는 교토식 경영과 관련된 특집 기사를 연재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일본 경영 방식이 주고 있는 성공적인 이미지가 얼마나 강했으면 리콜 사태로 곤혹을 치러야 했던 일본 도요타의 부정적인 시선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토식 경영 이전에 토요타식 경영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로 일본 도요타라는 하나의 회사에만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세계를 진출하고 있는 일본 대기업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도요타 자체만 기업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을 뿐이지 다른 일본 기업들은 도요타 역풍을 맞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의 기업들은 일본 특유의 경영 방식을 배우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경영대국으로서의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경영을 만나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이나모리 가즈오, 나가모리 시게노부 이외에도 일본에는 독특한 경영 방식으로 기업의 성공을 이룩한 경영인들이 많이 있다. 츠카코시 히로시 이나식품공업 회장이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이나모리 가즈오 때문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와 관련된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에 가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작은 불행이 오히려 복이 되었다. 내가 찾으려는 이나모리 가즈오와 관련 도서가 서돌 출판사 시리즈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어 다른 시리즈 책을 읽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츠카코시 히로시의 『나이테 경영, 오래 가려면 천천히 가라』라는 책이다. 

사실 책의 내용은 여타 다른 경영책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자신이 맡은 일과 관련된 것은 끊임없이 공부하기, 기업의 작업 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회사 직원 간의 화합의 중요성, 기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현장과 트렌드를 파악하기 등 많은 경영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단골 내용들이다. 책 분량도 얇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은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처음 으로 이 책을 마주하는 독자에게는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꼭 눈여겨 봐야할 점은 제3장에 소개되어 있는 ‘자연에서 배우는 경영’ 이라는 내용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장에는 히로시 회장이 말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경영 원칙이 잘 드러나 있다. 히로시 회장은 연륜 경영을 자연 현상에 빗대어 나이테 경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무의 나이테 속에는 그 나무의 성정 과정과 성장하게 만든 환경 조건들에 대한 기록이 담겨져 있다. 나무가 자라는 지역이 추운 곳이냐 따뜻한 곳이냐에 따라서 형태도 달라진다. 즉, 나무가 여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나이테는 회사의 성장률을 나타내는 기록이다. 그러나 히로시 회장은 성장 수치에 크게 연연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너무 성장에 매달리게 되면 더 이상 기업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성장률의 수치는 단지 기업 운영에 대한 결과일 뿐 앞으로 기업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경험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숙련된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숙련된 기업 운영이 바로 연륜인 것이다.    

 

 CEO가 항상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이 책에는 나이테 경영 이외에 히로시 회장이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프롤로그 중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경영자의 마음가짐’이라는 내용이 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항목이 자신의 전문 분야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폭넓게 알려는 노력이다.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인 것이다. 히로시 회장의 공부 예찬은 에필로그에도 이어진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공부라고 말하고 있다. 히로시 회장이 자연을 통해서 자신만의 경영 비법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배움으로써 축적된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부의 중요성은 히로시 회장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었으며 모든 성공한 기업인들도 모두 한결같이 꾸준한 공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배움이 세상을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통찰력과 장기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한 방법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이 책의 프롤로그의 제목과 같이 기업이 오래 가려면 성장뿐만 아니라 공부도 천천히 해야한다. 나무가 천천히 성장하여 나이테의 폭이 좁아지는 반면에 둘레가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내실이 잘 다져져 있어서 태풍에도 뽑히지 않은 나무처럼 외환에도 거뜬히 유지되는 훌륭한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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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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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들 앞에서 쩔쩔매는 크리스천 대통령 
 

요즘 미국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게 되면 나라 안의 여론 분위기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시끄럽기만  

하다. 특히나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이번 2010년은 자신의 임기 중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일지 
도 모른다. 불황에 빠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각종 정책들을 마련해보지만 번번이 죽을 쑤기 
마련이다. 멕시코 만 기름 유출 사건 이후 안일한 사고 대응 태도 때문에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 
아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이슬람 모스크 사원을 9.11 테러 사고 추모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인근에 세우자는 발언 때문에 이번에는 미국 국민들이 발끈하게 된 것이다. 다수의 미국인
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임을 감안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생뚱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 

령의 의중은 9.11 테러에 희생된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 신자들도 함께 추모하자는 뜻 

서 사원을 세우자는 것이었으며 결국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교 간의 불신의 기억을 지우고 평화 

위한 화합을 모색하자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미국 여론의 뜨거운 감자 

가 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이유는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서 모스크 사원 

세우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많고 많은 다른 주도 아닌 하필이면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뉴욕 한
복판에, 그리고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특별한 곳에서 이슬람 사원을 세우는 것이
문제의 화근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참혹한 테러를 일으켰던 주범인 이슬람에 대한 앙금
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모스크 사원 건립 발언 이후 미국의 다른 주에 계획되
어 있던 모스크 사원 건립에도 반발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대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오바마 대통령의 인지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로 
생각하는 국민이 예전 여론 조사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슬람 교 신자로 생각
된다는 국민은 오히려 많아지게 되었다. 점점 하락하고 있는 대통령의 인지도가 이제 곧 다가올 
11월 중간 선거에 변수가 될 우려를 민주당은 눈치를 챘던 것일까? 빌 버튼 백악관 부대변인은 
기자 회견에서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종교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대통령은 확실한 크리스천
임을 주장하였다. 
 


※ 기사 인용 출처 및 링크
[모스크 건립 갈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 중앙일보 8월 21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399464   

 

 

 

 ‘종교’라는 이름에 포장된 순교자들 
 

‘순교(殉敎)’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뜻하
며 사상(思想)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반미주의 경향이 강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미국 중심부에 있는 뉴욕 월드트레이드 빌딩을 무너뜨리게 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알라 신을 
위해 희생한 순교자라고 추앙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은 자들은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정말 신을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항공기를 빌딩 건물로 향하는 순간 그들은 그 짧은 시 

간동안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알라 신의 영광과 모든 이슬람 형제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곧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종교적 믿음이 강하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 

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한 인간이다. 눈앞에 곧 일어날 건물과의 충돌에 공포를 느꼈을  

법하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되자 후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믿었던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자, 여러분, 당신들의 위대한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나 알고 싶다고 했지?  
   당신네의 그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갔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먼.  (중략)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
   하고 동료들을 헐뜯는 꼬락서니라니 과연 한번 보기 좋았지.”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140 -

죽음이 코앞에 있는 인간들이 겪는 공포는 단지 테러리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빌딩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나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이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죽기 직전
에는 예수께 구원을 빌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불행한 테러 사고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의
해서 천국으로 간 순교자로 변주되었다. 그리고 무너진 빌딩 지역은 테러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숭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테러를 일으킨 죄인이며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성지를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세우는 것에 대해 반발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모스크 건립이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
이다.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는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 그 순교자들을 결코 싼 값에 팔아 넘겨선 안 돼.  
   빨갱이들에 대한 그 순교자들의 정신적 승리를 모든 사람이 목격하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75 -

<순교자> 속에 등장하는 장 대령은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공산당에 의해서 
희생당한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려고 한다. 작품 속 배경이 6.25 전쟁임을 감안하
면 장 대령의 순교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남한 내의 반공 헤게모니를 위한 초석인 것이다. 죽은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그들을 희생하게 한 공산당을 반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동시에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적’이라는 반공 사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자신들의 종교적 믿음과 우월성을 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코란을 내세우는 자들은 테러리스트 

을 위대한 순교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테러의 희생자들은 알라 신이 내려주신 벌의 댓가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성경을 내세우는 자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반 기독교적인 범죄 집단이라 

고 비난하는 있으며 오히려 희생자들을 주님의 은덕 아래 천국에 간 순교자라고 말한다. 서로 엇 

리는 두 종교 간의 주장은 웃지 못할 난센스를 연출하고 있다.  

 

 종교 앞에 선 인간의 고통   

 

장 대령의 반공 프로파간다는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는 미국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 

의 속내는 자신의 종교 이외에는 타 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 모습을 보이는 종교적 쇼비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반 이슬람주의 사상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들을 평화를 음해 

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자신들의 기 

독교 사상를 전파하는데 이용한다. 물론 기독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도 종교를 위해서  

쩔 수 없이 목숨을 바쳐야 했던 테러리스트들을 위대한 알라 신의 영광으로 기록될 순교자로  

만들고 있다. 

<순교자>의 번역가인 도정일 경희대학교 문학교수는 작품의 핵심을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의 

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을 한 층 더 심화시켜면 종교 앞에서는 
인간이 당하고 느끼는 원초적인 고통과 공포가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대위가 신을
믿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신의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처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양대
종교는 자신들의 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죽은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단지 죽은 자들의 

고통만 외면하고 있는가? 심지어 어느 사이비 종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외면하고 있다.  

신자가 온 몸이 아플 정도의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 종교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보호 아래  

을 수 있다는 희망만 심어준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일체 거부하고 무조건 신의 신성한 능력 

으로만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외면한 채  

말이다.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고뇌에는 인간의 고통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자들은 신에게 자신의 고통들을 고백하여 해결하려 한다. 결국 고통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
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이해하고 벗어날 수 있는 신성한 내적 생활이 종교임에도 불구
하고 지금의 종교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고통을 느끼도록 부추기고 있으며 심지어 눈 감고 외면하
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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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태어나서 - 한국인의 삶과 죽음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1
송기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노인을 위한 강좌는 없다

노인들이 뿔났다. 화난 이유는 국립중앙박물관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 관련 시민강좌의 수강자격 

을 63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노인들은 박물관회의 제한 규정은 ‘노인차 

별’이라고 반발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에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였다. 박물관회 측은 노인 수강자 

 격 제한은 노인들의 건강상 문제를 고려해서 30년 전부터 있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가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 60대 이상, 이하로 나누어 운영한다거나 70대 미만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관련기사를 쭉 읽고나니 박물관회 측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인을 위한 강좌가 마련되었다면 63세 이상  

노인들은 노인 대상으로 한 강좌에 수강하면 되었을 것이고 굳이 노인차별을 언급하면서까지  

화를  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 박물관회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한 번 국립중앙박물관회 홈페이지 

를 확인하였다. 노인들이 이의를 제기한 그 문제의 강좌는 ‘특설강좌’이다. 특설강좌 모집대상에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63세 미만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강좌 모집 안내에 분명히 노인 제한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국립중앙 

박물관에 찾아가서 현장 접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접수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이  

제한을 언급하면서 강의 신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63세 이상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특설강좌 이외에 다른 강좌들의 모집 요강에도 나이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박물관회 측에 서 있다고 말한 순수 노인들을 위한 강좌는 단 한 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수강신청을 원하는 노인들이 홈페이지 속 모집 안내를 믿고 신청했다간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늙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노인 차별에다가 강좌 모집 안내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박물관회의 처사에 노인들이 뿔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회의 노인에 대한 인식 

옛날에는 유교 사상의 영향에 의해서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였다.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 

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덕목이 있는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 공경이었다. 지금까지도 유교적 사상이 짙은 노인 공경에 대한 전통이 이어져 오 

고 있다. 항상 식사할 때는 나이가 높은 윗사람이 먼저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밥상머리 교육과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을 위해서 자리를 양보할 수 있도록 만든 버스의 경로석이 있다. 이렇듯,  

리 생활 곳곳에 노인 공경과 관련된 사회적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예법과 예의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에서도 노인 차별이 있었던 듯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노인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옛날 양대녕이 약관일 때 주한과 주앙 두 사람과 함께 한림원에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이미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 매사를 논할 때마다 양대녕은 그들을 업신여겨서 “두
  노인
은 어떻게 생각합니까.”하면 주한은 매우 불쾌하여 “그대는 늙은이를 그리 깔보지 

  마소. 필경은 이 백발을 남겨서 그대에게 선사할 것이네.”했다. 이에 주앙은 “백발을
  남겨서 그에게 주지 마오. 다른 사람이 또 그를 깔보는 것을 못하게 해야죠”했다. 그  

  뒤 양대녕은 과연 나이 오십도 못 살았다. 

  - 박지원『열하일기』구태이문 편, 송기호『이 땅에 태어나서』‘태어나서 살고지고 1’  

     p 135 재인용 -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태어났고 오래 살았기에 젊은 사람과 차원이 다른 삶의 진리 

가 축적,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은 성숙되더라도 육체는 점점 약해지고 이전과 다른 신체적 

변화를 갖게 된다. 젊었을 때 혈기왕성했던 힘은 노인이 되면서 무거운 것조차 들 수 없게 되어버 

리고, 탱탱했던 피부에는 주름이 생겨온다. 시력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어 돋보기안경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농사일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노인들이 삶의 스승으로서 대우받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 

는 약자였다.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직장에서 자동적으로 퇴직하는 정년제처럼 조선 시대 관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문종 시대에는 70세가 되면 스스로 벼슬자리에 물러나 

야 하는 치사(致仕)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벼슬자리에 물러나게 되면 해당 고을에서 매달 술과  

고기를 보내왔다고 한다. 퇴직 이후에 받게 되는 오늘날의 퇴직연금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는 일 

을 계속 하고 싶어도 정년제에 따라 스스로 퇴직하는 것이 상례인 반면에 조선의 치사제도는 지금 

 정년제와 비교하면 효력이 미미했을지도 모른다. 70세가 넘어서도 국가의 필요에 의해 퇴관  

하지 못한 자에게는 궤장(几杖)이라는 지팡이를 하사하는 일이 있었다. 70세의 사대부의 입장에 

 은퇴는 활동력이 상실된 노인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최후의 선택이며 오랜 세월 어렵게 키 

워 온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령이지만 건강에만 이상이 없다면 사대부들에 

게는 지금까지 올라온 높은 벼슬자리를 스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 
 

노인을 공경해야한다는 유교적 이념이 내세운 사회를 지향하는 조선 사회에서도 은근히 노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인’이 되고 싶어 했다. 즉, 늙더라도 오래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평균 인구 수명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옛날에는 의학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못해서 지금은 간단히 치료만으로 치유할 수 있는 병에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국에 전염병이 휩쓸었다하면 엄청난 인명 피 

해를 입었다. 그리고 사회적 형편이 좋지 않은 서민들은 먹는 것도 부실하다보니 굶어 죽는 사람 

도 많았다. 다양한 문제로 인해서『열하일기』속 양대녕처럼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다반사였으며 심지어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어린이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 오죽했으면  

태종도 50대에 이른 자신이 노인이라고 생각했으며 10년 뒤에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겠는가. 

(태종은 자신의 예언대로 하지 못했다. 60세를 넘기지도 못한 채 55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50세가 되어도 특별한 잔치는 하지 않는다. 60세가 되어서야 환갑잔치를  

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50세가 되면 잔치를 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영조는 오순 어연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평균 인구 수명이 50세임을 감안하면 50세가 된  

영조는 어느 정도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순잔치는 영조가 단순히 50세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영조가 장수하여 나라를 다스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도  

겨져 있다. 그런 화려한 잔치를 열어서인지 영조는 82세의 나이로 역대 조선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유령 노인 

여러 가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장수하는 사람들은 국가적인 경사였다. 조정에서는 

대대적으로 조선 인구의 수명을 조사하여 장수한 사람이 있으면 포상으로 많은 곡식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해마다 8월에는 전국의 노인들을 궁궐로 초대하여 양로연(養老宴)이 치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는 포상과 국가적인 연회에 눈이 멀어 나이를 속여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 이웃나라 일본이 장수 인구 통계 결과가 허위라는 것이 밝혀져서 장수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일본 최고령자로 알려진 111세의 노인이 실제로 30여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 

졌으며 100세 이상 고령자 노인 가운데 25명은 소재 불명자라고 한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고령 인구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의 행정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지만  

‘장수’에 대한 열망이 낳은 인간의 욕심도 배제할 수 없다. 사망한 111세 노인의 가족은 생전에  

노인이 받았던 연금을 받기 위해서 30여 년 동안 사망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며 인구 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면 노인이 살아있다고 허위 신고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에는 호적상 

에서는 존재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된 노인들을 이른바 ‘유령 노인’이라고  

한다. 조선과 일본의 이런 모습은 불행하게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 장수를 향한 열망과 돈에 집착 

하는 물질 만능주의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나타난 특수적 사회 문제이다.  

 

 

 장수국가가 된다고 해서 좋기만 할까?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 T.S. 엘리엇 <황무지> 황동규 역, 민음사, p 44 -  

 

시의 구절에 등장하는 무녀는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손안에 든 먼지만큼의 많은 햇수의 수명을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그는 아폴로로부터 어마어마한 수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녀는 늙어만가고 거의 죽은 시체와 다름없는 메마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어마어마한 수명만큼의 젊음도 달라는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녀는 죽음보다 

도 못한 죽은 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  

 

우리 인간도 무녀와 같이 장수의 꿈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지 모르는 채 무작정  

바라기만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노년층이 많아질수록 사회 내 계층 분포의 격차가 심해질  

뿐이고 사회적 자본도 노년층 복지에 편향될 우려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과도한 집중 투자로  

인해서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도 그렇게 좋은  

현상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의 표상(表象) 

으로 결부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학 기술도 발달된 만큼 인간의  수명도  

연장된다. 이제는 노년층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만큼 오래 사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일본과 같은 경우처럼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부모가  자신이 받은  

연금으로 자식을 부양하고 먹여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소식이 남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먼 훗날, 초고령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사례를 교훈삼아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의 진입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 기사 출처 및 링크, 관련 홈페이지   

  

[박물관 시민강좌, 노인은 오지 말라?] 한국일보 8월 10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8/h2010081002304721950.htm  

 

국립중앙박물관회 
http://www.mu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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