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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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여성들이 매월 주기적으로 겪는 월경.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치러야만 하는 이 생리 현상은 ‘여성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불결함’ 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불쑥 맞게 되는 첫 생리, 초경은 여성 입장에서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초경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감춘 채 입밖에 내기를 꺼려한다.

여성의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성하지 못하거나, 부정타고, 불결하고, 재수없고, 더럽고, 귀찮은 등 부정적이고 금기시하는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여성 자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특히 '순결, 깨끗함' 을 강조하는 생리대 광고는 여성들로 하여금 월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부추기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이는 생리란 원래 불편하고 지저분한 것이라는 전제에 기인한다. 생리대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들을 보라.  한결같이 순결한 20대 여성들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말할 수 없는 것, 감춰야 되는 것, 부끄러운 것, 불결한 것.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한 여러 가지 월경에 대한 오해와 금기들이 형성되어져 왔다.

  

 

  초경에 대한 두려움

    

 

에드바르드 뭉크 <사춘기>  1895년

  

유년기는 혼자만의 공포든, 사회 속에서의 공포든 두려움 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어쨌든 모든 것은 중학생의 끔찍한 머릿속에서 나온다.  아이들은 비열해지고 10대 시절에 느끼게 되는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취약해진다.  사춘기 또는 사춘기의 두려움 때문이다.  젖멍울이 맺히기 시작한 소녀들은 가슴이 절벽인 소녀들 앞에서 거만을 떤다.  탐폰이나 생리가 뭔지 모르는 아이는 지진아 취급을 받는다.  

- 에리카 종 [열네 살의 두려움] 중에서, <마이 리틀 레드 북> pp 35 -   

 

소설가 에리카 종의 표현은 초경을 마주하게 된 여성들이 갖게 되는 원초적 두려움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의 초반부에 갑작스레 샤워실에서 월경을 하게 되는 캐리를 비웃고 놀리는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 단지 캐릭터의 특징을 부각하기 위한 설정은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또래 여자아이들끼리 월경을 시작하는 특정 여자아이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장면이 에리카 종의 에세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변의 환경에 영향 받기 쉬운 사춘기 시기의 소녀들. 특히 입시 스트레스 및 교우관계 등에 얽매이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월경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고 심하면 피로와 불안감 그리고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다.   

<마이 리틀 레드 북> 속에 담겨진 월경과 관련된 추억담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모두 초경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 미지의 것이 적대적인 존재일지라도 일단 정체가 밝혀지면 인간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하면, 상상을 통해 두려움을 부풀리는 과정이 촉발된다 ' 라고 말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표현대로 자신의 몸에서 기인된 신비스러운 첫 만남이 여성에게는 두려움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대개 이런 경우의 증상들을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부모들은 초경 시기가 사춘기와 겹쳐 '질풍노도의 시기' 라 그러려니 하고 오해하거나 그냥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초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아버지 입장에서는 초경이라는 신체적 증상은 여성만 통하는 금기인마냥 내심 수줍어하기도 한다.    

내가 생리를 시작하자 아버지는 식물이 죽는다면서 물을 주지 말라고 했다.  

- 델마 캔들 [화분 물주기여 안녕], 같은 책 pp 42 -  

 

월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게 되면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왜곡된 금기마저 생기게 된다.  실제로 1920년대에는 생리 중인 여성의 몸에는 식물을 죽이는 '메노톡신' 이라는 물질을 분비한다는 학설이 존재하기도 했다.   

 

     

  초경, 여성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엄마는 흑인 여성으로서 우리의 초경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엄마가 될 수 있으며, 몸과 감정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의 중요한 날에 아빠는 덕담을 건넸다.  나는 개인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덕담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빠는 내가 더는 꼬마가 아니라 어엿한 여성이라는 뜻으로 축하한 것이리라.   

- 자넷 루이스 [초경과 책임감] 중에서, 같은 책 pp 62 -

 

하지만 초경은 징조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다.  이 시기에는 초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미리 미리 생리대를 준비시키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등 초경과 월경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부모의 역할은 올바른 상식을 상세하게 알려줘야 하는 법이다.   

<마이 리틀 레드 북> 속 월경 이야기에는 단지 초경에 대한 두려움만 기록되어 있는 건 아니다. 자넷 루이스의 경험처럼 초경을 맞이한 자녀를 위해 부모가 적극적으로 초경에 대해 이해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특히 자녀의 초경을 막연히 두려운 증상이 아닌 어엿한 여성이 되었다는 의미로운 기억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성대한 축하 파티도 열어주기도 한다.  

 

나는 결혼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자신이 이 지구라는 태양계의 제3혹성에 사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실감하게 됐다. 나는 지구에 살고 있고,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회전하며, 그 지구의 둘레를 달이 회전하고 있다. (중략)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내가 거의 정확하게 29일을 주기로 생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달의 참·이지러짐과 완전하게 호응하고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중에서 -

  

모든 여성들의 깊고 깊은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월경 때문에 잠시나마 고통을 겪어야하는 그들에게는 이런 마음을 한번쯤은 가져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구절처럼 생리를 하게 되면 힘겨운 하루를 보내면서도 속 시원하게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여성들의 말 못하는 고민을 이해할 줄 알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남편이나 애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에게 있어서 월경이라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생활의 일부이다. 월경 기간 중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생리통과 심리적 변화 등이 일어나 고생을 하지만, 이것이 월경 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에 특히 남성에게 알려질까봐 심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초경을 맞이한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살펴보고 지켜보고 아낄 수 있는 권리,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 역시 자신의 몸을 알고 소중히 할 수 있는 권리. 아직도 이런 권리를 여성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여성의 생리를 이해하면 여성이 보인다.  소중한 생명을 낳기 위해 28일을 주기로 신체에서 반복되는 여성생리를 잘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여성자신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몫이기도 하다.  여성의 생리가 정상이라는 말은 곧 여성이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여성의 생식기계가 특별한 이상없이 모든 기능이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월경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여성인권 보호차원에서 여성의 주장이나 권리의식이 신장됨으로 이제는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사회 변화와 함께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아지면서 월경은 더 이상 ' 말 못하며 말해서는 안 될 대상 ' 은 아니다.  정작 여성으로서의 몸에 대해서 모른 채 살아간다면 월경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오랫동안 강하게 자리잡을 것이고 자칫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초경과 월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충만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인생의 첫 관문인 것이다.     

    

 

P.S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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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3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8-14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책을 거리낌없이 읽어내시는 시루스님, 요즘 독서력이 최강이군요. 얼마 안남은 방학도 화이팅! 이 책 주제 참 흥미롭네요. 사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많이 읽어야 할 책인 듯한데.. 원래 남자분들 대상으로 나온 책은 아닌 거죠?

cyrus 2011-08-14 15:33   좋아요 0 | URL
시간이 많은 방학이라서 학기보다는 편한거 같아요. 벌써 다음 주에
2학기 수강신청 기간이네요. 방학도 얼마 안 남았네요.

남성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보다는 아무래도 여전히 월경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위한 책이라고 봐도 좋을듯해요.
물론 남성도 읽으면 참 좋고요 ^^
 
휴버먼의 자본론 -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리오 휴버먼 지음, 김영배 옮김 / 어바웃어북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춰주는 오래된 거울

책을 읽다보면 어떤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분명 해외의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시감을 보이며 나타나는데, 이상하게도 좋은 사례보다는 나쁜 사례의 유사성일 때가 많다.  특히 리오 휴버먼의 <자본론>를 읽을 때 그랬다.    

'휴버먼' 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책 제목에 달지 않았더라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고 착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자만 다를 뿐 내용은 여러 모로 비슷하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오 휴버먼의 <자본론>은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들을 통해서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  비록 60여 년 전의 미국 사회를 분석한 책이지만 '자본주의' 가 전 국민적 종교가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첫번째 거울:  자본가 vs 노동자,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다 

 

출처: 미디어오늘  

 

노동소득 분배율이 이명박 정부 들어 급격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임금 인상률도 하락 또는 정체 상태고 임금 격차와 불평등도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3일 발표한 이슈 페이퍼에 따르면 기업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난해 국민가처분소득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가계와 기업의 소득 증가율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노동소득 분배율은 외환위기 이전 1996년 62.6%까지 올라갔으나 2000년에는 58.1%까지 내려갔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면서 2006년 61.4%까지 회복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추락, 지난해에는 59.2%까지 떨어졌다. 기업의 영업이익과 비교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 성장의 과실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하 생략)

- [성장의 과실, 노동자에게 안 돌아온다] 미디어오늘  2011.8.3 -

 

' 자본가들은 돈 벌 기회를 포착했을 때 투자를 한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 작동 방식이다. '  

휴버먼의 <자본론>에 인용된 미국의 정치평론가 월터 리프만의 지적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자본가들을 이익에만 집착하는 속물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작동 방식' 은 생전에 리프먼이 살았던 1930년대랑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랑 별반 다를게 없다.  

자본가들은 자신이 투자한 이윤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노동자들의 대가로 지불하는 '임금' 이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그저 일을 해야 하는 기계체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편안하면서도 건강에 무리가 오지 않는 좋은 노동조건 및 시간 그리고 이에 걸맞은 임금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입장과 다르다.  이들에게는 기업의 성장, 이윤을 올리는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성공은 ‘얼마나 더 많은 이윤을 얻었는가’ 로 가려지게 된다. 이익을 많이 남기려면 재료를 더 싸게 구하고 상품을 더 넓은 시장에 팔아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행위를 정당화하게 만든다.  그러나 생산능력이 좋다고해도 팔리지 않는 상품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경기 불황이 찾아오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가들은 임시방편으로나마 돈을 더 들여가며 추가로 사람을 고용하지 않지만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취직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은 점점 더 쪼들리게 된다.   이렇다보니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풀타임으로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근로 빈곤층, 즉 워킹 푸어(Working Poor)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가진 자(부르주아지)와 못 가진 자 (프롤레타리아) 간의 갈등 관계 즉, '계급투쟁의 역사' 라고 지칭하면서 부르주아지를 ' 종교적인 외경심, 기사도의 열정, 속물적인 감상주의도 몽땅 이기적인 계산이라는 얼음물 속에 처박은 ' 존재로 냉담하게 비판을 했다. 

하지만 리오 휴버먼은 자본가를 노동자들과 비교해 탐욕스로운 존재로 매도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자본가들을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단지 자본가와 노동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인과적인 문제로 이해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가와 노동자들 간의 대립 관계를 서로 ' 목에 칼을 겨눈 ' 관계라고 비유하고 있다.   단지 자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상호이해와 조화보다는 대립과 갈등이라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 거울 :  노동조합과 투쟁의 필요성      

 

    

사진 출처: 프레시안

 

2011년 5월 24일 유성기업 공장 안에서 농성하던 530여 명의 노동자들은 "주·야간 맞교대근무제를 주간 연속2교대 근무제로 전환하고, 시급제 대신 월급제를 시행하라" 면서 회사 측에 대항하다가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조그마한 공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연행된 셈이다. 그동안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해 많은 노동자가 주야 맞교대제와 야간노동을 없애고 주간 연속2교대를 시행하자고 요구하던 상태여서 이번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야간노동 철폐투쟁은 노동자들의 오랜 염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현재 전 세계 노동인구의 약 20%가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제 근무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 이래 계속 24시간 맞교대제를 하던 철도노동자들은 2004년에서야 비로소 3교대제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 조립 공장들과 거기에 딸린 수많은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들, 조선업을 비롯한 많은 대규모 제조업체들에서는 아직도 주야 맞교대 근무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간호사뿐 아니라 간병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야간노동이 증가하는 추세다.     (중략)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도입된 이래, 교대제가 계속 지속하며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가 계급의 이윤추구에 있다. 자본가계급이 교대제를 지속적으로 도입하는 이유는 첫째, 불변자본의 절약을 위해서이고, 둘째, 교대제로 야간노동시간을 증대시켜 절대적인 노동시간을 연장해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다.   

- [" 야갼노동은 발암물질이다! "]  프레시안  2011년 6월 15일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상반된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열셤히 일을 해도 최저 생계비 수준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자본가들은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제품(goods)을 만들기보다는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상품(commodities)을 생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리오 휴버먼 <자본론> pp 30)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많은 노동자와 노동시간이다.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는 노동자는 그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으면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최저 생활비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최저 수준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이다.   리오 휴버먼은 노동조합 결성과 같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투쟁을 임금을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경제적 법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길'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같은 책, pp 35)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전태일을 필두로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민주적인 노동조합 투쟁을 끊임없이 지속시켰다. 그러나 자본가와 정권은 그러한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성과 투쟁성을 무력화하고자 해 왔으며 그 목표가 노동조합을 경제적 투쟁에 가두려고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자본가에게 파는데 그것은 결코 공정한 거래일 수 없다는 것과 이 불합리한 거래를 그만두기 위해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힘은 다수라는 점이지만, 이 힘도 단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보면 리오 휴버먼의 노동조합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입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번째 거울 :   살림살이 좀 나아 지셨습니까?  

지출 가운데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저소득층 엥겔계수가 8년 만에 최고치로 높아졌다.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소득하위 10%(1분위)의 올 1분기 엥겔계수는 전년동기 대비 0.9%포인트 상승한 17.9%로 조사됐다. 이는 1분기 기준으로 지난 2003년 1분기의 18.3%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1분위 엥겔계수(1분기 기준)는 지난 2008년 16.4%까지 하락했으나 환율 급등에 따른 물가대란이 발발하면서 2009년 17.5%까지 올랐다. 2010년에는 17.0%로 소폭 하락세를 타는 듯하다가 구제역 사태와 국제원자재값 폭등으로 올해 8년만에 최악의 상태로 악화됐다.

1분위 도시 근로자의 소득은 전년동기대비 0.3%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소비지출은 물가폭등으로 2.2% 증가하면서 엥겔지수가 높아졌다.

전체 도시 근로자의 1분기 엥겔계수는 12.6%로 전년동기대비 0.5%포인트 상승하는 등 물가대란으로 전체 근로자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 [저소득층 엥겔지수, 8년 만에 최악으로 급등]  뷰스앤뉴스 경제  2011년 5월 23일 -

 

언론과 방송에서는 경제 관련 지수와 코스피 지수 등을 통해서 경제성장의 낙관론을 끊임없이 거론되곤 한다.  게다가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이유만으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한발짝 앞선 것처럼 한껏 고무된 내용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허영심은 휴버먼이 생존하고 있었던 1920년대의 미국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로 풍요로운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지만 1929년, 미국 역사상 가중 부유했다던 그 해에 경제 대공황을 맞아야했다.  하지만 심각한 대공황의 현실 속에서도 미국인들은 경제회복과 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죽 했으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풍요로운 사회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허한 인식, 즉 '거짓말의 안개' 를 걷어내려고 했을까?       

나는 풍부한 자연 자원의 축복을 받은 거대한 대륙에 자리한 위대한 나라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 국민들 가운데 3분의 1은 열악한 주거와 의복 및 영양 상태에 빠져 있음을 나는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 1937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연설문 중에서, <휴버먼의 자본론> pp 87~88 -

경제 수준에 대한 우리나라의 정부 모습과는 상반된다.  도저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실업률과 무섭게 치솟아오르는 물가상승 앞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의지와 태도만 보일 뿐 실체적인 문제의 이면을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경제에 대한 '거짓말의 안개' 를 만들어내 경제 문제 해결에 대한 신뢰성을 낮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거짓말의 안개' 를 걷어내고 보면 우리나라 경제 수준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올해 집계된 엥겔지수 측정의 결과는 경제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보도문일수도 있지만 이번 수치 결과가 8년 만에 나온 수치들 중 최악이라면 물가 상승 문제가 사뭇 심각한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료품은 필수품으로서 소득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반드시 얼마만큼은 소비하여야 하며, 동시에 어느 수준 이상은 소비할 필요가 없는 재화이다. 그러므로 저소득 가계라도 반드시 일정한 금액의 식료품비 지출은 부담하여야 하며, 소득이 증가 하더라도 식료품비는 그보다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까닭에 식료품비가 가계의 총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즉 엥겔계수는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면 엥겔지수는 높아지면 이는 저소득층 가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단순히 식료품비 비율만 높다고 해서 심각한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데 식료품비만 지출하는 것이 아니다.  주택, 의복, 의료비, 교육비 등 가족 구성원들을 먹여살리는데 지출되는 비용 역시 많기 때문에 저소득층 가계의 생활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물가는 끊임없이 치솟고 있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 마당에 정부가 시행한 성형수술 및 애완동물병원비 부가세 도입은 도리어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키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불된 비용 항목 중에 '플라자 동물병원' 에 쓰인게 125달러였다.  '글로리아' 의 애완 고양이를 돌보느라 11월부터 그 다음 해 1월 사이에 들어간 돈이었다.  

- [뉴욕타임스] 1936년 1월 28일자, 같은 책 pp 99 -   

  

시대마다 화폐의 가치가 다르지만 오늘날 환율 수준에서 따져보면 125달러는 우리 돈으로 1천 3백 51만 2천 500원(=1,35,125,00)이다.   실제로 세 달동안 반려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지출한 비용이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심각한 사실은 글로리아라는 고양이한테 들인 비용이 온 가족의 옷을 장만하는데 쓴 돈보다 15달러 더 많았다는 점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어느 20대가 지신의 블로그에 반려견 치료비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었는데 대략 이렇다.

하루 입원비 5만원, 진료비 5천원, 약값 5천원, 골절 수술비 100만원대, 주기적인 엑스레이 2만원, 2차 수술비 80만원대 정도.

거기에다가 앞으로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면 비용과 부가세를 더 부담해야 될 것이다. 휴버먼의 표현대로 반려 고양이 글로리아나 변려견은 서민들보다 높은 경제적 사라디의 꼭대기에 여유롭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거울을 보고 난 뒤:  자본주의의 나르키소스는 되지 말자 

 

 

카라바조 <나르키소스>  1594~1596년

 

자본주의의 맹점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는 휴버먼의 분석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과 권력 그리고 노동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자본의 속성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마르크스처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윤 동기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는 음울한 종말을 맞을 운명이라고 진단하고 대안으로 사회주의로서의 대체를 예견하고 있다.  그에게 사회주의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즉 이전의 문제를 해결된 새로운 체제의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이를 사회주의적 접근 방법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휴버먼은 책의 제목을 처음부터 '사회주의의 ABC' 라고 지으려고 생각할 정도로 그동안 곡해되었던 사회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소개하려고 하였다.    

사회주의적 이상향이 건설되기를 믿었던 마르크스의 예언이 그렇듯이 그의 예언 역시 현실적으로 빗나가버린 사상적 유물로 전락되었지만 또 다시 전 세계가 경제 위기의 가시밭길에 걷고 있으며 전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목도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의 종말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겠다.     

 

거울은 우리의 겉모습인 표면만 보여줄뿐 우리의 내면 속에 감춰진 자아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외부적인 표면에만 집착하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의 화려한 이면만 볼 수 있는 자본주의의 거울 앞에 서 있다.  자본주의의 거울만 보다가는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버린 나머지 탈진해 죽어버린 나르키소스처럼 언젠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에 사로잡혀 휴버먼의 예언대로 경제의 종말이라는 재앙을 맞이할지도 로른다.

휴버먼의 <자본론>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허영을 그대로 비춰주는 가장 불온한 거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함을 역설한 휴버먼의 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방대한 분량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휴버먼의 <자본론>을 통해서 자본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본주의의 나르키소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불편한 속성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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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8-1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결국 마르크스와 휴버먼의 진단이 같군요. 자본주의는 말기암환자라는 것. 곧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점. 그러나 또 거기에는 '어떻게'의 문제도 있겠지요. 과연 '혁명'이 도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이 일어날 것인가.
웃..이거 조금은 위험한 포스트군요. 여기에 제가 혁명 운운하는 댓글까지 달았으니 더 위험해졌군요. (웃..농담입니다.^^;)

cyrus 2011-08-12 20: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휴버먼의 책 같은 경우에는 확실한 형태로 자리잡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어서 분석면에서는 지금도 봐도 유효한 내용들이
많았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8-1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오 휴버만과 폴 스위지는 모두 자본주의를 상업이나 유통 방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경제사 분야에선 유통주의자라고 하지요.자본주의의 개념정의를 둘러싼 논쟁을 공부하는 쪽으로 나아가면 사회과학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cyrus 2011-08-15 16:36   좋아요 0 | URL
유통주의자라는 단어 처음 들어봅니다. 군 복무 시절에
휴버먼의 <자본주의 바로 알기>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쉽게 잘 안 읽혀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 책이 내무반 책장에 꽂혀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그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못해서 그런데 그 책에도
자본주의를 비판한 내용이 있을거라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나온 <자본론> 같은 경우에는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고 있어서 좋았어요. 공상적 사회주의에서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까지, 이 책 덕분에 사회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8-15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스 베버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관을 비교하는 것도 좋고,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공부하는 것도 좋습니다.국사책에서 배우는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이것을 강조하면 유통주의자가 됨)이 과연 자본주의의 맹아냐 아니냐 하는 논쟁과도 연결되어 있으니 깊이있게 공부할 만합니다.
 

 

 

 

  

 

 

 

 

 

 

 

 

 

  고백

'리뷰' 의 정의가 무엇일까?   지금도 리뷰 또는 서평의 정의와 그 기준에 대해서 담론이 오고가고 있지만 확실하게 정의내리기는 어려워보인다.   

원래 리뷰라고 하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할 수 있게끔 정확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내가 항상 블로그에 리뷰나 페이퍼를 작성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책의 줄거리만 간단하게 요약약해서 소개만 하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독자로써 이야기에 대한 자신만의 감상 또는 생각 역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작성하고 있는 리뷰나 페이퍼는 일종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형식은 없지만, 읽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쓰는 것이 감상문이며 감상보다는 줄거리 중심으로 쓰게 된다면 그저 책의 내용만 소개하는 기록문일 뿐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떠오른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봄으로써 오히려 책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저 독서 경험의 흔적을 오랫동안 잊지 않기 위한 '독서 앨범' 이다.   

문득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면서 감상이 언급되는 부분을 기록하는데 적잖이 고심을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 때문에 오히려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며 더러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를 초월하면서 모든 독자들이 공통된 공감을 주는 책이 있다고하더라도 내가 이 책을 재미있다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게 100% 재미있게 느끼는 독자는 없다. 책 읽는 기호와 취향에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종종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입소문과 홍보에 혹해 책을 골랐는데 막상 읽어보면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보통이거나 또 광고나 서평자가 소개했던 내용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황스럽게 된다.  

그래서 항상 책을 소개하는 리뷰나 페이퍼를 소개하게 되면 왠만하면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제 막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도서나 내용은 좋으나 아무도 눈길을 주지 못한 채 잊혀져가고 있는 저주받은(?) 책의 경우에는 되도록 신중하게 쓰려고 하는 편이다.  

   

 

  반전의 독서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리뷰를 작성하면서 <사물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소비사회의 속박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런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리뷰에 기록된 주관적인 감상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뒤에 소개된 작품해설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사회적인 풍요로움 가운데 그랑 부르주아가 누리던 사치와 호사를 보통 사람들이 꿈꿀 수 있게 되자 마치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있기만 한 사물들에 대한 갈증 또는 지독한 시기였다.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해서 이 작품을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만 해석한다면 페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페렉 또한 자신의 작품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좌파 성향의 글쓰기로 단정 짓는 흐름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 작품해설 [우리는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다] 김명숙, <사물들> 펭귄클래식코리아 pp143 -

   

어제 글을 작성하면서 작품해설의 저 구절이 자꾸만 마음에 밝혀서 결론 부분에는 결국 페렉은 <사물들>을 통해서 물질에 대한 욕망과 행복과의 관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어설프게 마무리지었다.      사실 <사물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 제롬과 실비의 모습을 통해서 페렉이 소비의 욕망으로 가득한 1960년대 프랑스 자본주의 사회 속 절망을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제대로 뒷통수 맞아버렸다.   페렉이 원하지 않는 소설에 대한 반응이라니 살짝 김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게 바로 반전의 독서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페렉의 문학적 유희에 당한 것인가? 

 

 

  창조적 글쓰기의 윤리적 의무

책에 대한 독자의 감상이 작가가 원했던 의도와는 완전 정반대로거나 심하게 왜곡되었다면 그것은 작가에 대한 무례한 결례일 수 있겠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과 같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창조적인 작가와 같은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에 빗나갈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 <젋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글에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해석에 대해서 아주 멋드러지게 정의내리고 있다.    

 

창조적 작가는 자기 작품의 합리적 독자가 되어 억지스러운 해석에 반박할 권리는 갖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말하자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이미 자신의 글을 세상에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쓰기] 중에서, pp 16, <젊은 소설가의 고백> 움베르토 에코, 레드북스 -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쓴 소설들에 대해서 독자들의 해석에 반론하지도 않고 그 자신이 의도했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을 윤리적 의무라고 느꼈다.  그리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과학적 글쓰기가 아닌 이상 시나 소설과 같은 창조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는 독자에게 텍스트 해석을 위한 해답을 찾아보라고 주문할 뿐 공식을 정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같은 책, pp 17) 

     

 

  움베르토 에코의 윙크

그리고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황당했던 점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은 예민한 독자라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이 떠올렸을 거라고 설명한 부분이었다.  작년에 <감정교육>을 읽은 나로써는 (페렉이 실제로 이를 차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읽은지 꽤 오래 된 것도 있고 아니면 내가 교모하게 숨긴 페렉의 문학적 장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에코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소설 속에 숨겨진 암시를 '윙크' 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의 처녀작이면서도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 속에 숨겨진 자신의 '이중코드 기법' 을 예로 들면서 이를 알아차린 독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독자들이 <장미의 이름> 텍스트 속에 등장하는 방대한 중세의 지식에 비롯된 난해함에 그저 혀를 내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의 결론부에서는 문학은 독자들이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도록 도발하고 영감을 준다고 밝혔다 (pp 50)    

 

지금도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마르크스의 격언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어야 할까?   60년대의 소비 사회 비판에 대한 좌파적 시선의 알레고리인 것일까?   시간만 된다면 또 한 번 읽어봐야겠다.  독자들에게 도발하는 문학적 유희라고 할 수 있는 페렉의 윙크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P.S>

 

 

  

 

 

 

 

 

<젊은 소설가의 고백>에 네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 [궁극의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책에서는 글에 대한 정확한 출처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작년 국내에 출간되었던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2010) 출간 전에 썼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아니면 출간 후 책의 내용에 간력하게 요약한 에세이일 수도 있다, 인용문과 설명하는 내용이 중복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목록이 소개된 <궁극의 리스트>를 읽기 전에 <젊은 소설가의 고백> 속 [궁극의 리스트]를 먼저 읽는 것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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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좀 잘 써봤으면 좋겠어요.
리뷰는 아니 시루스님 말하는 독후감은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 같고,
우리가 쓰는 게 리뷰가 아니고 독후감이라면 진짜 잘 쓴 리뷰는 뭔지
그 뒤태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ㅜ
에코의 책은 넘 어려워 늘 열외죠.

cyrus 2011-08-11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딱히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명확한 것은 없지만 저는 항상
글을 쓰면 그렇게 생각해요, 간단하게 초등학교 때 정기적으로
책 읽고 독서기록장 노트에 감상문 쓰는 것처럼요. 어떤 책은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남는게 없다거나 도저히 쓸 거 없으면
아예 안 쓰는 편이에요.

<고백>은 에세이 형식이라 어렵지 않아요. 에코 본인의 소설에 대한
창작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고
소설에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

2011-08-11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2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저는 책을 발간했다는 자체로, 작가의 손을 떠난게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작가가 의도했던 부분도 있을테지만,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 한 무의식적 부분 역시 반영되었을테고.. 그것을 작가 자신은 모르지만 독자는 알 수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건 저희가 쓰는 페이퍼도 마찬가지일테죠. 물론,, 지나친 곡해는 곤란하고 글에 대한 해석 역시 예의를 잊어버리면 곤란하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두어야겠지만요.

그나저나, 제 글은 리뷰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고... 제 푸념? 아하하.

cyrus 2011-08-16 22:12   좋아요 0 | URL
와~~ 이번 마고님 댓글은 저를 공감하게 만드네요 ^^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적 부분이라,, 그 점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어요.

위의 이웃분들 댓글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쓰고
있는 글 (알라딘 서재에서 쓰고 있는 글까지 포함)들은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거 같아요. ^^
 
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1001-599] 사물들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 조르주 페렉 <사물들> 펭귄클래식코리아,  pp 63 -

 

   

  풍요 속의 욕망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부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그 까닭을 이렇게 풀어준다. ' 인간은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남들보다 잘살기를 바랄 뿐이다.'  

욕심은 끝없이 자라는 나무와 같다. 사람은 배불러도 만족을 모른다. 살 만해지면, 살림살이가 기죽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면 하는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자신과 비교하려는 ‘이웃’의 수준도 점점 올라간다. 처음에는 옆집, 옆 동네에 눈길을 주다가, 눈높이는 마침내 텔레비전에 나오는 재벌들 수준까지 나아가 버린다. 그들의 재산 수준을 비교하면서 본인에 대해서 자탄을 하게 된다.   

    

 

  조르주 페렉의 문학적 유희  

조르주 페렉의 처녀작 <사물들>을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다 읽고나게 되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의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소설이다.  

일단 첫 장부터 도입부가 독특하다.  소설 외부에 존재하는 화자는 관찰하듯이 방 안에 높인 사물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설명하는 묘사를 따라서 다음 장으로 읽어나가도 사물에 대한 관찰 묘사는 시종일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인물 간의 대화가 별로 없다.  이 소설 속에서 제롬가 실비라는 젊은 남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사건 전개와 괸련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인물 간의 대화도 많지가 않다.   제롬과 실비 역시 화자에게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과 동등한 '관찰' 대상일 뿐이다.  

작품 해설 내용을 제외하면 139쪽이라는 짧은 분량의 소설이 조르주 페렉을 처음 접해 본 독자에게는 지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이라고 하면 발표되는 소설마다 일반적인 소설 창작 형식의 틀을 가차없이 파괴하는 실험적 글쓰기를 주장한 프랑스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규칙 없이 나열되어 있어 보이지만 화자, 즉 페렉이 기록하고 있는 사물들에 대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묘사들이 결국에는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르주 페렉은 자신의 창작에 대해서 ' 빠져나갈 작정인 미로를 만들어야만 하는 쥐들 ' 이라고 스스로 정의하였다.  결국 인물 간의 대화를 최대한 배제한 채 소설 외부의 화자인 페렉이 유지하고 있는 관찰의 기록은 그가 독자들을 위해서 고안해낸 미로, 즉 문학적 유희인 것이다.  독자는 페렉의 미로에 들어가게 되면서 문학적 유희를 만들어낸 쥐, 즉 작가가 지나간 흔적을 좇아가게 된다.    미노스의 미궁에 갇혀버린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통해서 미로를 탈출할 수 있었듯이 소설 속 화자로서 개입한 작가의 관찰은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시켜주도록 만들고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물들>을 완독한다고해서 독자는 페렉이 만들어낸 사물들의 미로에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미로를 탈출하고 난 뒤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탈출구가 없는 사회적 미로에 갇혀버린 채 절망하고 안주하는 제롬과 실비 그리고 실제로 체엄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제롬과 실비는 끝없는 소비의 욕망을 갈구하게 되지만 끝내 좌절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지오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  소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혀주고, 우리에게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우리의 욕망과 기호가 소비행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행태가 우리의 욕망과 기호를 결정한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중략)     

반대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가난하지만 않을 뿐 부(富)를 갈망하는 가진 것 없는 젊은 커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없을 듯했다.  그들은 수준에 맞는 정도만 갖고 있었다.  (중략)    

그들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고 달리 기대할 게 없었다.  하지만 바로 곁 주변에, 늘 걸어 다니는 거리를 따라 죽 늘어선 골동품 가게, 식료품점, 지물포에는 매력적이지만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중략)   

이대로 영원히 취기 어린 상태로 그 유혹에 자신들을 내맡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빠져들고는 했다.  하지만 욕망의 끝은 냉혹하게 꽉 막혀 있다.  커져만 가는 불가능한 꿈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 같은 책,  pp 22~23 -  

  

소비주의에 낚인 사람들은 소비 나르시시즘의 나락에 떨어져 오로지 자기만이 예외적이고 특권적으로 중요하고, 자기만의 권력, 총명함, 성적인 매혹을 지녔다는 망상 속에서 산다.  이런 망상 속에서는 자신이 겪게 된 실패나 실망은 언제나 내가 아닌 외부의 잘못이다. 소비가 주는 기쁨의 유효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결국 삶의 감각이 마비된다. 소박한 즐거움에는 반응하지 못하게 되어 더 강한 자극을 찾아 구매욕에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사물들' 로 가득한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행복은 찾을 수 있을까?  

오늘날 물질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풍요로움이 어떤 정형화된 행복을 가져다주었지요.   (중략)   실비와 제롬이 행복하고자 하는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걸려든 겁니다.  행복은 계속해서 쌓아 올려야 할 무엇이 되고 만 것이지요. 우리는 중간에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 1965년 [레 레트르 프랑세즈]와의 인터뷰, 같은 책 pp 142 -


 

20:8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전체 결과의 80%는 20%의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의 법칙이다.  전체 부의 80%는 20%의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게 그 사례로 흔히 제시된다. 결국 20%만이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들이 끝내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행복' 이라는 단어는 헛된 희망이다.  결국에는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만족감에 불과한 '정형화된 행복' 일 뿐이다.

눈을 떠서 주변을 돌아보면,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게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영화, TV드라마, 광고 등을 이용하여 그 신화적 욕망을 이미지에 담아냄으로써 소유하고 소비하고픈 욕망을 일깨워준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화려한 성공신화를 홍보함으로써 ‘나’도 부르주아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태우게 한다.   하지만 소비의 사회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 준다. 그리고 실패한 나머지 모두에게는 ‘너희’가 능력이 안 되거나, 열정을 바치지 않았거나, 아니면 운이 없어서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현대 문명은 늘 ‘위기’ 상태이다. 욕망을 키워야만 버틸 수 있는 문화가 건강할 리 없다. 다스리지 못한 욕망은 재앙을 낳는다.  욕망이 만들어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소설 속 제롬과 실비처럼 튀니지로 도피하면 된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간 튀니지 역시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복으로 가득한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결국에는 자본주의 문명 속 우리들도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비상하지 못한 채 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미로 속에서 탈출하여 행복이라는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조르주 페렉은 <사물들>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 속의 소비 행태와 행복과의 관계를 적확하게 묘사할 뿐 아쉽게도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실타래를 독자들에게 건내주지 못했다.  

경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한없이 커져만 가는 우리의 욕심부터 경계할 일이다.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그것이야말로 지금 사치와 욕망으로 채워진 풍요로운 사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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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0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멋지게 페이퍼나 리뷰 뚝딱 써주시니 저야말로 고마울 따름! 그렇잖아도 민음사,펭귄,열린책들 다 검색중인데 이거 신간이네요. 발빠르신 시루스님.ㅎㅎ 주제가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되돌아보게 하네요. 욕심과 사치 때문에 정말 지켜야 할 행복을 많이 놓치고 사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공감!!!^^

cyrus 2011-08-10 21:1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작품해설에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래요, 오히려 페렉은 자신의 소설이 그런 쪽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반발했다고 하네요,, ^^;; 저는 해설을 읽기 전에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해설을 읽으면서 약간 김이 샜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강남 좌파'가 문제가 아니고
'강남 좌파'와 비교하는 '나'라는 존재의 생각이 잘못된거군요... 맞네요 맞아.

cyrus 2011-08-10 21:19   좋아요 0 | URL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강준만의 <강남 좌파>를 말하는거죠?
마고님 서재에 쓴 리뷰 안 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작가 본인은 자신의 소설이 좌파 성향으로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네요 ^^;;
 

 

 

 

  

 

 냄비받침 No! 베개대용 No!  1000페이지 클럽 이벤트 
 

   

 

  '언터쳐블' 이라 불리우는 책들

주말에 알라딘 이벤트 게시판을 확인하다가 재미있는 내용의 구매 이벤트를 발견했다.  정해진 가격 이상에 구입하게 되면 적립금을 주는 일반적인 구매 이벤트였지만 이벤트 대상도서들이 평범하지가 않다.   

책 한 권 분량이 적어야 700페이지 정도에서 많으면 3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책들이다.    

야구에서 경기 운영 능력이 특출한 선수에게 붙이는 수식어 중에 '언터처블'(Untouchable)' 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타율 성적이 좋은 타자라도 시속 150Km에 가까운 투구를 제대로 쳐내지 못하는 투수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빠른 공에 안타라도 쳐내지 못하는, 공 끝 하나라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고해서 붙여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야구 선수 중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언터쳐블형 투수라면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오승환 정도면 되겠다. 최소 경기 30세이브라는 기록을 남겼고 돌이라고 부를 정도로 묵직하면서 유일하게 빠른 직구를 홈런으로 쳐낼 수 있는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거포 이대호뿐이니 과히 언터쳐블이라고 불릴만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에도 '언터처블' 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책들이 존재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완독은커녕 몇 페이지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큰 돈 들여서 구입해도 두꺼운 분량의 책들은 바로 읽혀지기보다는 표지도 펼쳐내지 못한 채 서가에 그대로 방치되기도 한다.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단지 두껍게 보이는 시각적인 인식에다가 어마어마한 쪽수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발휘하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불행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가격은 일반적인 책 한 권 가격보다 2배 정도 비싸다보니 구입하는 독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다.  

 

사실 나도 500페이지 넘는 분량의 책을 못 읽는다.  아니, 방대한 분량에 겁먹어 안 읽는다고하는게 낫겠다.   정말로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내용이 아닌 이상 2권 이상 시리즈로 구성된 책들 역시 끝까지 못 읽는 편이다.   독서 습관이 한꺼번에 세 네 권 정도 같이 읽어야 속이 편하는 독특한 성미라서 한 번 읽은 시리즈나 두꺼운 책은 중도에 읽다가 포기해서 끝장을 보지 못한다.   

 

  

  군인들에게 좀 인기가 있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나마 일주일 잡아서 끝장까지 본 책이라면 모두 5권으로 이루어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6권으로 이루어진 <신> 뿐이다.   <개미>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읽게 되었는데 10분 밖에 안 되는 학교 쉬는 시간에도 <개미>를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만약에 <개미>를 다시 읽으라면 또 읽을 수 있다.     <신>은 군병원에서 입원했던 시절에 읽어서 그런지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평소에 사회에서는 책을 안 읽던 사람도 군인이 되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책을 읽게 되는데 그 중에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인기 많은 작가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다.  (혈기왕성한 군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게 만드는 '맥심' , 'GQ' 같은 시각적으로 즐겁게 만드는 잡지를 제외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책을 집으면 지나가는 군인들은 몇 마디 건넨다.  자신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었다는 등 이 소설의 내용이 재미있다는 등 생각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관심이 많은(?) 군인들이 꽤 있었다.   비록 개인적인 체험을 토대로 추측하는 것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국내에 다양한 연령층의 팬을 보유한 외국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독서와는 거리가 멀듯한 군인들까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면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사족: 참고로 군인들은 장르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다. 주로 판타지를 많이 읽고 내 주변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외에도 군인들에게 많이 읽혀졌던 장르소설 작가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과학 독후감 덕분에 읽게 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내가 읽었던 책들, 그러니까 완독한 책들 하에 정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쪽수의 책이었지만 끝까지 읽은 유일한 책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뿐이다.   

<코스모스>는 굳이 설명할 필요없는 유명한 과학의 고전이라서 인문계열에 속한 독자들도 많이 읽는 과학 도서일 것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느 <코스모스>는 보급판인데 맨 뒤쪽에 있는 찾아보기까지 포함하면 총 719페이지다.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 때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코스모스>가 화려한 올컬러 도판으로 이루어진 특별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지금도 특별판도 보급판과 판매되고 있는 중인데 정가가 45000원에 특별판답게 책의 크기가 대형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라도 비싼 가격에 편안하게 읽기에는 힘든 무거운 판형이라면 독자들이 외면하기에 충분하다.  특별판이 나온지 2년 뒤에 줄어든 가격에 편안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판형으로 보급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보급판이라고해도 600페이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압박은 여전하며 보급판 속의 도판이 흑백인데다가 특별판에서 볼 수 있는 몇 몇 도판이 삭제된 게 아쉽다.   

읽기 어려운 특별판이라고 해도 나에게 특별판은 화려한 올컬러 화보 때문에 그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책으로 교내 과학 독후감을 쓴 적이 있었다.  나름 유명한 과학 고전인 것도 있었고 그 때 마침 과학 독후감 대회가 있어서 정말 밤을 새면서까지 대형 특별판을 읽고 열심히 10장 분량의 독후감 한 편을 써냈다.   

하지만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최우수상은커녕 입선에도 뽑히지 못하고 마는 비극을 맛봐야했다. 그래서 지금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만큼은 왠만한 일반 독자들도 잘 읽지 않는 과학 분야 도서지만 지금까지 읽거나 내 손에 거쳐간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는 책들 중의 하나다. 유년시절의 독서 경험 덕분에 보급판을 구입해서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완독을 하지 못한, 지금도 조금씩 읽고 있는 '현재진행형' 독서의 책들     

   

 

 

 

 

 

 

   

 

최근에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을 읽게 되면서 그동안 책장에 방치되었던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7월에 있었던 리뷰 대회 때문에 읽게 된 것이지만 만약에 김태권 도서 리뷰 대회가 없었더라면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는 만화로 구성되어서 방대한 분량의 <사기열전> 속 내용을 재미있게 읽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그래도 사마천 특유의 역사적인 관점이 묻어있는 원전 <사기열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름 입체적인 독서를 한답시고 김태권의 만화와 <사기열전>을 동시에 번갈아 읽어봤는데 사실은 <열전>만 읽기에는 충분치가 않다.   

사기는 <열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대 제왕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본기>와 광활한 중국 대륙의 각각 지방을 다스리던 제후들의 기록을 담아낸 <세가>로 구성되어 있어서 간혹 <열전>에 있는 내용이 <본기>에도 다시 언급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본기><세가>까지 완벽하게 구비한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각 한 권의 방대한 분량 무시 못한다.   

지금 두 권으로 된 <열전>만 소장하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 <본기>와 <세가>를 구입하고 싶지만 절제 중이다.    일단 <열전>을 절반 정도, 아니 1권이라도 완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우선인듯싶다. 

 

 

  

 

 

 

 

 

 

 

  

평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일명 줄여서 '상절지백' 이라고 불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만의 잡다한 지식들이 총망라한 책을 더 좋아한다.   제목만으로는 백과사전일뿐이지 실상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백과사전답게 너무 진지하지도 않으면서도 굳이 살아가는데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평상시 우리가 지나치고 있거나 무관심하고 있었던 세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는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식 백과사전의 큰 장점인거 같다.   <상절지백>에 있던 내용에다가 새로운 지식을 추가한 <상상력 사전>은 자투리 시간에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항목을 틈틈이 읽기에 좋다.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철칙들 중에는 정말 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책은 굳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다보면 질리게 되고 미각의 쾌락이 오래 가지 못하게 되듯이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고 다 읽다보면 정작 찾아오는 것은 알 수 없는 허무감이 오며 읽고 난 뒤에 머릿속에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한 채 조금씩,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디트리히의 슈바니츠의 <교양>은 서양의 인문, 교양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읽으면 좋은 책인것은 분명하다.  이 책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출간되었는데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중학교 2학년, 이제 막 인문, 교양이라는 것에 눈 뜨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읽다가 도중에 잠든 기억만 날 뿐이다.   그 당시에는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중학교 2학년, 15세가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자주 들리는 헌책방에서 완전 반값으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 책은 나에게 '교양' 이라는 멋진 이름을 단 수면제다.   <상상려 사전>은 내용이 재미있어서 조금씩 읽고 있지만 반대로 <교양>은 내용 자체가 진지하고 쉽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서 천천히 읽는 편이다.  

 

 

 

 

 

 

 

  

  

 

 

이 세 권 다 내가 순전히 읽고 싶다는 마음에 구입한 책이면서도 과연 죽을 때까지 완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책들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인명사전까지 포함하면 총 1330페이지다.   몽테뉴는 죽을 때까지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수상록>를 남겼는데 분량도 10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방대하면서도 글 속에 묻어 있는 몽테뉴의 사유 방식 역시 분량 못지 않게 깊으면서도 방대한 범위를 자랑한다.   

죽음, 잠, 종교, 우정 등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행위들에 대해서 몽테뉴만의 진실되고 솔직한 성찰과 감정이 담겨져 있다.  꾸밈 없는 그야말로 솔직하게 쓰여진 기록이다보니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 때만 가능했던 제한적이면서도 구시대적인 관점도 있지만 몇 몇 수필과 문장 중에도 삶의 진리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내용이 많이 있다.    그리고 수필 중간에 호메로스나 세네카와 같은 고대 문장가들의 격언까지 인용되어 있어서 현대인의 정신을 살 찌우게만드는 좋은 명문들이 수필 곳곳에 박혀 있다.  

 

<광기의 역사>는 단지 미셀 푸코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선뜻 구입했는데,,,  지금까지 앞쪽의 해제만 여러 번 읽었을 뿐 독서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제일 심각한 책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지금까지 구입한 책들 중에서 산 지 얼마 안 된 책이다.  이 책을 구입한 동기 역시 단순히 서양미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큰 맘 먹고 구입했는데 미술학과 전공도서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읽어내기가 순탄하지가 않다.  게다가 책의 활자가 깨알 같아서 덕분에 <교양>과 더불어 대구의 열대야를 이겨내는 좋은 수면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 전에는 대중의 기호에 맞춘 편안하고 읽기에 무던한 미술사 관련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대학전공 수업 내용에 맞먹는 정말 '제대로 된' 미술사 도서를 만났으니 이 책을 읽기만 하면 부담스러우면서도 고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역사적 순서대로 한 챕터씩 읽으려고 했지만 독서 패턴이 단순해서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인상주의를 소개하고 있는 챕터를 읽어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서를 시도해봤지만 집에서 편안하게 읽을 정도의 책은 아닌거 같다.    관련 미술화파를 알기 위해서는 그 전에 유행했던 미술화파 역시 알고 있어야하기에 미술사에 대한 순차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않는 이상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술 비전공이다보니 이 책이 미술사와 관련해서 책들 중에서 명불허전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미술 비전공자들에게는 깨알 같은 활자는 읽기 불편하다는 것.   그래도 시험을 위해서라면 전공책을 통독한 나로써는 활자는 수면을 부르게 할 뿐 불편을 감수하면서 읽고 있는 중이다.  광범위한 미술의 역사를 딱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게 어디인가.  

 

  

  분량이 두꺼워서 슬픈 언터처블 책들이여

무더움과 장마가 찾아오는 여름날에 어떻게 보면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더위와 짜증 그리고 수면만 늘어나게 만들 수 있다.   간혹 정계 인사나 CEO들이 휴가철에 읽는 도서들을 보면 조금은 두꺼운 분량의 고전 몇 권이 끼여있기 마련인데 여름철 무더위와 일상의 피곤함을 벗어나기 위한 휴가에 정말 제대로 읽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특별한(?) 사고방식을 가진 몇 몇 사람만 제외하고는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책은 꼭 휴가철에만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꾸준히 읽어야 할 정신적인 영양소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을 즐겁게만 해주는 우리들의 기호에 맞춰주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    

요즘에는 읽기 어려워하는 고전을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대중들의 독서를 위한 집필의 취지는 좋지만 정작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렵고 분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오리지널은 외면받고 있다.  비단 고전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내용들이 할애되는 철학이나 과학 분야의 도서들의 외면은 더하다.  가격도 비싸서 서러운 판에 단지 분량이 많다고해서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알맹이를 먼저 확인하지 못한 채 그저 형식상 겉모습만 보고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나마 자신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구매서평마저 없는 책도 있다.   

노천명의 시에 등장하는 사슴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다고 하는데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일명 '언터쳐블' 책들은 판형이 크고 두꺼워서 슬프다.  독자들의 손에 쥐어쥔다고 해도 자신보다 가벼운 분량의 책처럼 바로 읽혀지기보다는 항상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항상 뜨거운 라면이 담긴 냄비받침이나 목침 못지 않은 딱딱한 베개가 되기도 한다.   

주인 잘못 만나 서러운 경험을 하게 되지만 '언터쳐블' 책들은 화려한 홍보가 아닌 언제나 점잖게, 서점 책장 어디선가 자신을 선택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독자를 기다리면서...

   

 

 

 P.S>

 

                                                 

 

 

 

 

 

 

 

두꺼운 책이라고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들뢰즈 &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빠질 수가 없다.  평소에 이 두 권의 책에 그저 눈빛만 보내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망해버려서 알라딘에 판매되고 있던 <율리시스>가 품절되고 말았다.  진작에 구입하지 못한 아쉬움만 자꾸 든다.  

반면에 들뢰즈라는 악명 높은(?) 철학자가 쓴 <천 개의 고원>은 출간된 지 꽤 되었고 역시 어마어마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중인데,,,   이 책 역시 언젠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품절 혹은 절판될 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 든다.   <천 개의 고원> 역시 편안하게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지만... 재정적 여건만 된다면 빠른 시일내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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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에서 놓친 진정한 의미의 1000페이지 클럽 책들은 여기에도 있당^^
    from 퀸의 정원 2011-08-11 12:04 
    즐찾에서 cyrus님의 글을 읽다보니 냄비받침 No! 베개대용 No! 1000페이지 클럽 이벤트란 행사을 알게 되었네요. 가벼든,가볍지 않든 교양서적은 좀 무식한(?)사람 입장에서 페이지 수가 작아도 읽기 힘든편인데 권당 페이지수가 최소 7백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니 평범한 사람 입장에선 일단 그 크기에 압도되어 읽을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ㅜ.ㅜ 그런데 문학서적분야에도 인문 교양서적 못지않게 무자비히게 페이지 수가 많은 책들이 있는데 정말 장식장용으로 딱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0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재미있는 페이퍼예요! 갑자기 정말정말 두꺼운 책을 책상 한가득 펴놓고 읽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네요..ㅎㅎ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두꺼운 책은 <나니아 연대기>예요^^;; 1080쪽이네요.
그 다음이 <오디세이아> 이건 672쪽이네요.

<교양>에 대해 쓰신 부분이 제일 공감가요. 저도 제목과 책이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었는데 정말 교양인답지 못한 꼴로 결론이 나요. 책을 베고 잠이 든다던지, 읽던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한다던지요..ㅎㅎ

대학때 미술사를 배울 때는 책도 별로 없었어서 <미술의 역사>라는 정말정말 두껍고 무거운 양장 책을 교재로 썼어요. 미술사 들은 날은 정말 어깨가 아플 정도였어요. 그래도 비싼 책이라 학교에도 두고 다니지 못했다지요..ㅎㅎ

cyrus 2011-08-09 19:45   좋아요 0 | URL
저도 왠지 두꺼운 책만 보면 끝까지 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드는데,,
막상 읽고나면 중도에 포기할 때가 많았어요. 그러고보니
두꺼운 책이라면 <나니아 연대기>도 있었네요, 학창시절에 한창
<나니아 연대기>가 영화로 개봉되었을 때 판타지를 좋아하는 제 친구가
그 두꺼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무거워도 함부로 보관할 수 없는게 전공책의 아이러니인거 같아요.
무겁다고 해서 학과 사무실이나 사물함에 따로 보관하게 되면
누군가가 훔쳐가거든요,, ^^;; 도난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본인이 직접 챙기는 수밖에요 ㅎㅎ

stella.K 2011-08-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두꺼운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거의 허영인 경우가 많구요, 한 320페이지 내외면 딱 좋은 거 같아요.
저 상상력 사전은 알사탕 안 붙었으면 안 샀을텐데 사 놓고 모셔만 두고 있다능.ㅜ

cyrus 2011-08-09 19: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완독할 수 있고 적당한 최적의 분량이 그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책을 멀리하는 이들에게는 300페이지도 두껍게
보인다는 사실이에요 ^^;;

아이리시스 2011-08-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광기의 역사]보다 얇아서 푸코 책을 한 권 소유중인데 제목이 뭐더라. 흐아, 까먹었네요. 저건 다 가지고 계신 거죠? 저도 [서양 미술사] 있는데..^^

cyrus 2011-08-10 21:21   좋아요 0 | URL
푸코의 책 중에 얇은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아닌가요?
저는 마그리트 그림을 좋아해서 도록이랑 그 책도 구입했는데,,
역시,,, 푸코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

사진에 있는거 다 읽으려고 구입한 거에요. 과연 다 읽을 날이 오게 될까요?
^^;;

마녀고양이 2011-08-1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책 욕심이 많아서, 저렇게 두꺼운 책이 한벽 가득하다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읽었냐구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난번에 800 페이지 넘는 아인슈타인 자서전 읽다 죽을뻔했죠~ ^^
아하, 율리시즈는 저기서 저를 보는군요. 나니아는 저도 읽었어요. 참 길죠~
뒤에 꽂힌 책을 보니, 도둑 들어오면 저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들 냅다 던지면 될듯.

cyrus 2011-08-10 21:2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사진에 있는 책들은 한번도 끝페이지를 보지 못했어요 ^^;;
두꺼워서 읽지 못하는 책도 나름 쓸만한 용도가 있었군요 ㅎㅎ


콜로서스 2011-09-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율리시스 품절된 거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워지는....

cyrus 2011-09-02 23: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콜로서스님 ^^

예전부터 구입하려고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미루다보니 그만.. 결국에느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답니다. ^^;;

북깨비 2015-10-0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기의 역사에 대한 코멘트가 재밌어서 좋아요를 꾹 누르고 갑니다. ˝진도가 안나가는 제일 심각한 책˝은 내용이 제일 심각한 책인가요 심각하게 진도가 안나가서 제일 곤란한 책인가요. ㅎㅎㅎ 저도 `책이 좀 많습니다`에서 추천글을 보고 급 땡겼는데 cyrus님 올리신 사진보고 그 생각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ㅎㅎㅎㅎㅎ

cyrus 2015-10-12 18:11   좋아요 0 | URL
북깨비님 덧글 덕분에 예전에 썼던 글을 오랜만에 보게 됩니다. 다시 봐도 정말 부끄럽군요. ㅎㅎㅎ 분량이 엄청 많으면서도 몇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만난다면 곤란해요. 여러 번 도전했는데 완독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아요. 그래서 심각한 책이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Dora 2015-11-2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개의 고원 내년에 도전하고 싶은데 ..혹시 비법을 전수해주실 수 있으신지요(사셨을 거라 믿고) 구입하기도 전에 두려움에...

cyrus 2015-11-30 17:51   좋아요 1 | URL
답글을 재스민님의 서재 방명록에 남겼습니다. 확인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