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역사 -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장영란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인들에게 '영혼' 이란...?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날 현대인에게는 '영혼' 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 수 있다.   

-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 장영란, 글항아리. pp 7 -

 

'영혼'   우리가 살아가는데 귀에 들리는 익숙한 단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작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정보가 흘러넘치는 이 시대에 '영혼' 을 들먹거린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시대에 뛰떨어진 추상적인 관념을 논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혼' 이라고 하면 단지 죽은 사람의 넋이라는 일반적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영혼' 이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의미에만 국한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간혹 '영혼을 팔아서 OO를 이루겠다.' , ' 혼란스러운 세상으로 인해 병든 도시인의 영혼들' 이라는 식으로 이 '영혼' 이라는 단어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영혼' 은 그저 죽은 사람의 넋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모든 정신활동을 함축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영혼' 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나간다면 '마음' 또는 '정신' 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병든 영혼' 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현대인의 정신은 그야말로 피폐해져만가고 신체 질환 못지 않게 마음과 정신의 병을 죽을 때까지 달고 살아가기도 한다. 아무리 시대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남녀노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높아지고 있으며 정신적인 고통을 견뎌내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무엇이 현대인들의 '영혼' 을 병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정신상담 관련 카운셀러나 전문의들은 대체적으로 현대인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현대인들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차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우울증 문제는 단지 사회 구조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좁은 발상이며 실질적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따른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를 쓴 그리스 신화 및 고대철학 전문가인 저자는 현대인들의 피폐한 삶을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고대 그리스로 대표되는 고대인들의 영혼 개념에서 찾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림으로써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영혼을 고대의 선조들이 남긴 지혜, 즉 그리스 신화와 철학을 통해서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영혼의 개념  

'영혼' 은 '숨쉬다' 라는 말을 뜻하는 그리스어 psycho에서 유래되었다.  오늘날에는 '정신' 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지만 영혼의 기능이 정신적인 의미로 자리잡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며 똑부러지게 한 가지의 의미로 특정짓기보다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영혼' 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제시한 호메로스<일리아드><오뒷세이아>를 통해 다양한 표현으로 영혼의 기능을 설명해주었지만 매우 한정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영혼의 어원이 '숨쉬다'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듯이 그저 죽은 자들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였으며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즉, 신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은 바로 죽음이며 그것은 인간이라고 불릴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는 호메로스가 남긴 문헌들,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를 보게 되면 영혼을 생명의 원리로서 본절적 특성을 부여한 표현도 있지만 호메로스는 영혼의 본질적 의미에 심도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리스 철학이 등장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영혼의 개념이 철학적 사유로 분석되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밀레토스 학파의 시조인 탈레스는 모든 만물에는 그 자체 속에 생명을 갖추고 있다는 물활론을 확립하여 영혼을 통해서 만물이 스스로 운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에도 초기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각기 다른 영혼의 개념을 내세우게 되었는데 아낙시메네스 는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야말로 영혼이라고 생각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영혼 개념에 '인식' 능력을 덧붙였다.   

  

 

  오르페우스교 & 피타고라스 학파 :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두 학파의 입장 

영혼의 개념이 확립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영혼의 불멸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자연히 인간의 신체가 죽음으로 소멸해도 영혼은 다른 신체에 들어가 윤회하게 된다고 여겼다.      

  

 

 카미유 코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1861년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뤼디케가 있는 지하세계 하데스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뛰어난 리라 솜씨로 스튁스 강의 뱃사공 카론과 괴물 케베스(케로베로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까지 감동시켜 에우뤼디케의 영혼을 데리고 갈 것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지하세계의 법칙을 어겼고, 결국 아내의 영혼을 헤르메스에 의해 이끌려 되돌아갔다.  오르페우스는 그녀 무덤 앞에서 슬픔을 감출 수 밖에 없었다.  

- 같은 책, pp 256 -

 

죽은 아내 에우뤼디케를 데려오기 위해서 죽은 자들만 갈 수 있는 지옥 세계에 도달한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리라 연주가 오르페우스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오르페우스교는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영혼이 영적 존재로서 불멸의 행복을 얻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영적 불멸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엄격한 수행이 요구되는데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권장하는 것이다.    

수학 시간에 배우게 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의 사상을 주축으로 형성된 피타고라스 학파는 전생과 윤회를 믿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 학파에 가입된 학자나 사람들은 육식과 동물 살생을 금기시하였는데 인간의 영혼이 완전하게 정화될 때까지 다른 생물로 형체를 바꾸며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플라톤 : 영혼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한 일상적인 방법  

플라톤은 시간과 더불어 변하는 일 없이 동일한 것으로서 머무는 영원불변한 형상, 즉 이데아(Idea)를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진실한 존재로서의 이데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영원불멸한 진리를 인식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재판 이후 비극작가로의 꿈을 접고 철학의 길로 들어선 플라톤은 그가 살아가는 초라하고 부적절한 세계보다는 마음속으로 더 순수하고 더 확실한 미래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 플라톤에게 있어 영혼은 육체보다 완벽하며, 이데아는 육체나 영혼보다 더 완벽하였다. 그에게는 배움마저도 태어나기 전부터 비자연적인 존재로부터 배웠던 것을 ‘상기’해 내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삶을 음미하는 행위 자체를 곧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주의 깊게 성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혼을 성찰하고 돌보기 위한 일상적인 행위로서 플라톤이 제시한 방법은 바로 '글쓰기' 다.  그러나 문자 자체로서의 의미만 파악한 채 정작 참된 의미의 지혜를 기억하지 않는 글쓰기 행위를 경계하였고 인간이 문자를 배워 글쓰기에만 신뢰한다면 지혜의 기억에 무관심해져 영혼이 더 쉽게 망각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단 한 편의 저서를 남기지 않았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는 반대로 대화편을 남긴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의 모습과 상반되는 사실이다.  

 

 

  에피쿠로스 학파 vs 스토아 학파 : 영혼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 형성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공통적으로 영혼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실천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며 행복한 삶은 최대의 쾌락과 최소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가르친 반면, 스토아 학파는 행복을 정신과 영혼의 안정에서 찾았으며 욕망을 버리는 금욕주의를 행복을 달성하는 실천 윤리로 제시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옹호하면서도 그것을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 두 가지로 분류했다. 전자는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형성되는 쾌락(아포니아, aponia)이다. 후자는 욕구가 충족된 뒤 더는 그것을 느끼지 않는, 그야말로 영혼이 동요되지 않는 평정한 마음 상태의 쾌락(아타락시아, ataraxia)이다.  에피쿠로스는 그러한 감각적이며 순간적 쾌락으로 대표되는 아포니아를 부정하고,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쾌락인 아타락시아를 역설하여 쾌락의 질적 구별을 인정하였다.  에피쿠로스가 정적 쾌락을 중시한 것은 욕구의 충족보다는 그것의 제거가 인간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행복의 관건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쾌락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죽음과 신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죽음과 신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곧 불멸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 <세네카의 죽음>  1773년 

여느 스토아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세네카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삶은 자연에 일치하여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세속에 물들면서도, 끝내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을 갖췄기 때문이며 유일의 선(善)인 덕(德)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중략) 

- 같은 책, pp 493 -

 

반대로 스토파 학파와 같은 경우에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면서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쾌락에도 고통에도 무감각한 부동심의 마음을 강조했다.  변화무쌍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성' 에 따름으로써 분노, 슬픔 따위 감정의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자기보존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에 일어나게 될 상황들을 예측하고 상상함으로써 미리 영혼의 준비를 하는 훈련을 할 것을 강조하였다. 

    

 

  고대인들의 지혜를 통한 잃어버린 영혼 되찾기  

고대 그리스 신화나 철학에서 언급되는 있는 '영혼'의 의미들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관념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영혼' 의 의미보다는 한층 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어> 위정편에 '온고지신'(新)이라는 구절이 있다.  옛 것을 배움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현존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영혼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들 중에는 오늘날에도 현대인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내용도 있다.  

자신의 삶, 즉 영혼 그 자체를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쉬운 방법이 글쓰기임을 플라톤은 제시하였고,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곧 삶의 욕망으로 발전하여 자신 스스로 영혼을 병들게 한다고 봤다.    즉, 고대인의 지혜가 함축된 철학을 배움으로써 단순히 진리를 인식하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일상적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더욱 고달퍼지고 퍽퍽해져나가는 세상 속에서 영혼이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굳이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상담 카운셀러와 전문의를 만나는 것보다는 자신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해보고 이를 해결해나가 수 있는 영적 훈련을 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플라톤의 스승이 델포이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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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9-0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아, 근데...진짜..무엇이 현대인들의 '영혼' 을 병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요? 정말 궁금해요...저 책에는 나와있지 않은가요??

나 자신을 알면 병든 영혼을 치유할 수 있을지...근데, 이거...넘 어려운거 아닌지...ㅜㅜ

cyrus 2011-09-02 23:25   좋아요 0 | URL
제가 그 부분만큼은 글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네요.
자칫 읽는 분들이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겠습니다. ^^;;

참고로 이 책에서는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병에 대한 원인은 상세하게
밝히지 않고 있답니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현대인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단초로 고대인들의 신화나 철학 속에 등장하는
영혼 개념이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덧글로나마 글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현대인들이 정신적인 병에 생기는 이유가 스토아 학파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자신 스스로 병들게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 책의 내용이 어렵기는 해요.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면 읽는데 수월할거 같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에피쿠로스나 스토아 학파에 대해서 학창시절에 인상깊게 배운 적이
있어서 제가 최대한 소개할 수 있었던 내용이랍니다.

꽃도둑 2011-09-0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안농안농! 잘 지내시죠? 아, 여전하네요.. 보기 좋아요..^^
정말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네요.
그냥 인사차 들렀어요.. 잊을만 하면 또 올게요.
몸, 마음, 정신, 영혼 모두모두 건강하게 지내세요~~

cyrus 2011-09-02 23:26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이네요. 꽃도둑님 ^^
잘 지내고 계시죠. 꽃도둑님도 건강하시고,, 제 생각이 나신다거나
심심하면 들려주세요 ^^
 

  

 

  수강신청 못지 않게 골치 아픈 수강변경 

2주 전에 수강신청을 하고나서도 마음 속에는 수강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긴장'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과장스러운 면은 있지만 아무리 완벽한 강의 시간표를 만들었다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변수' 라는 것은 수강 시간과 날짜 및 강의실 그리고 수강을 담당하는 교수(또는 강사)가 교체되는 것, 수강 신청 인원 미달로 폐강 결정되는 것 등을 말한다.  수강 시간과 날짜, 강의실이 변경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수강 신청 기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폐강되는 강의와 갑작스레 강의 담당 교수가 교체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기 때문에 수강변경 역시 수강신청 못지 않게 시간표를 구성하는데 중요하면서도 은근히 골치 아픈 일이다.

수강신청하고 난 뒤부터 거의 컴퓨터 앞에만 서면 항상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수강신청 및 변경 관련 공지사항이었다.  방학이 끝나지 않는 이상 하루에 한번씩 수강시간표 내용이 변경되는 사실을 알려주는 공지문이 게시된다.   만약에 공지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자신이 신청한 강의가 폐강된 것도, 그리고 담당교수가 교체되는 줄도 모른채 개강을 맞이하게 된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신청한 줄 알았다가 개강날이 되서야 뒤늦게 낭패를 보는 것이다.   

    

 

  개강하는 첫 날의 중요성

대학교의 수강변경 기간은 개강하기 시작하는 날 이후에 편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강하는 날, 그러니까 수업의 첫 날은 그 수업에 대해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간략하게 소개하는 오리엔테이션(OT)이다.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해봤자 길어야 30분 정도 밖에 안한다. 강의 첫 날이니깐 교재를 챙길 필요도 없다. 그리고 수업 공인 출석에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학생들 대부분은 개강 첫 날의 오리엔테이션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강의실보다는 제일 먼저 술집으로 향한다.

대학 강의의 오리엔테이션은 새로운 내용의 수업에 참관하려는 학생들에게, 그 개요를 이해시켜 새로운 학문에의 적응을 위한 심적 자세를 갖도록 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들마다 다르지만 학생들에게 자신의 교육 스타일을 알려준다.  시험평가 및 과제물 평가 기준 등과 같은 수업계획서에 있는 내용을 알려주지만 어떤 교수는 개강 첫 날부터 학생들에게 학점 이의제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단호하게 경고하기도 한다.  그만큼 OT는 교수가 강의에 대한 모든 것들을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하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강의를 신청한 학생은 OT를 통해서 자신이 신청한 강의가 자신의 적성과 학습 목적에 부합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즉, 수강신청 기간에 공개되는 수강계획서보다 실감적으로, 그리고 상세하게 자신이 신청한 강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수강계획서만 가지고 그 수강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학생은 오리엔테이션에 참관하여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강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수강변경 기간을 통해서 다른 강의로 변경, 신청할 수 있다.   

   

 

  이상하게 편성된 수강변경 기간   

그런데..!!! 

수강변경 기간이 방학 기간 안에 편성되어 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앞에서도 언급한 OT와 수강변경 기간의 정의를 함께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잘못된 편성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다니는 학교가 이처럼 기이하게 편성된 수강변경 기간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을 가중시켜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동시에 수강계획서가 게시된다. 학생은 수강계획서 속 내용을 가늠하여 시간표를 만든다.   그런데 이 수강신청할 수 있는 모든 과목 전부 다 수강계획서가 게시되는 것은 아니다.    수강신청 할 수 있는 과목 100개 중 30개는 수강계획서가 올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몇 몇 과목은 아직 담당교수가 확정되지 않은 미선임 과목도 있다.   학생들은 수강계획서 내용만을 토대로 수강을 신청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수강계획서에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는 수업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차마 신청하기가 껄끄럽고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학년별 전공필수과목일 경우에는 더욱 난감하다.  가끔 이런 경우도 발생한다.  

  

 

 과목 A1 ,    김 아무개 교수 담당,  수강신청 가능 인원 60명        수업계획서 있음 

  과목 A2,     박 아무개 교수 담당,  수강신청 가능 인원 60명         수업계획서 없음  

 

 

만약에 전공필수과목 A1과  A2가 있다고 하자.  과목명과 수강신청 가능 인원은 60명으로 제한되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담당교수는 다르다. 그리고 A1 강의는 수업계획서가 상세하게 공지되어 있고 반면에 A2 강의는 수업계획서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수강신청을 하게 된다면 A1과 A2 중에 어떤 수업을 신청할 것인가?  당연히 수업계획서가 있는 과목 A1을 신청할 수 밖에 없다.    수업계획서 내용이 없으니 A2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수많은 학생들은 수업계획서가 있는 수업을 신청하는 쪽으로 편향하게 된다.  한 학년에 100명이 넘는 학과일 경우에는 먼저 신청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100명 중에 60명이 재빠르게 과목 A1을 신청하면 나머지 40명은 과목 A2를 신청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전공의 학생들도 신청하게 된다면 신청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물론 A1 과목을 신청하는 학생 수가 많으면 분반이 개설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롭게 개설된 분반 역시 A2 과목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 분반된 강의가 A1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라면 별 문제가 없는데 임시방편으로 개설되다보니 대부분 시간강사가 담당하게 되며 수강계획서가 올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늦게 신청한 40명은 울며 겨자 먹기 씩으로 분반 또는 A2 과목을 신청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수강변경 기간이 개강 이후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일단 그 수업을 들어보고 강의의 호불호에 따라서 다시 변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수강인원이 꽉 차 있어도 그 수업 교수에게 수강허가서를 제출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수강변경 기간이 방학 기간 내에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방학 때 학교에 교수나 강사들이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수강허가서를 제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나처럼 캠퍼스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학생 또는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는 방학 기간에 캠퍼스를 찾아야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수강허가서 제출이 불가능해지자 몇 몇 학생들은 교수에게 전화를 걸면서까지 사정을 해보지만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는다거나 수강 인원이 꽉 찼다는 이유만으로 거절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학교 전체의 신뢰를 추락시킨 수강변경 기간 논란 사태  

이런 사례 이외에도 잘못된 수강변경 기간 편성으로 학생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수강신청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이 원하는 학점을 채우지 못한 채 한 학기 수업을 들어야한다. 특히 취업 전선을 뛰어들어 준비해야 할 대졸 예정자 4학년일 경우에는 다른 학년에 비해 손해가 크다.   얼마 남지 않은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수강신청을 하게 되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수업 또는 전공필수과목을 신청하지 못해서 내년에도 또 다시 학교를 다녀야한다.  안 그래도 취업 구멍이 좁아서 정신적 부담을 가진 마당에 멈출줄 모르는 고액의 등록금을 수강신청하지 못한 몇 몇 과목 때문에 내야하는 재정적 부담까지, 그야말로 이중고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수강변경 기간이 다가오기 전부터 학생들은 수강변경 기간의 편성의 문제점에 대해서 학생 게시판에서 제기를 해왔지만 수강신청 업무를 총괄적으로 담당하는 수업학적팀에서는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편성했을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을 밝혔다.   사실 방학 기간 내에 수강변경 기간 편성은 올해가 처음이다.   내가 1학기 수강신청한 작년에는 일반적으로 수강변경 기간이 개강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미 학생들이 예고했던대로 수강변경 기간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학교 게시판에서는 수강변경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학생들의 불만이 하나씩 터졌으며 심지어 수업학적팀뿐만 아니라 학교 행정부 그리고 총학생회까지 비방하는 사태까지 불만이 일파만파 커지고 말았다.  수강변경 기간에 불만이 많은 학생들은 이번 일이 학교 행정부와 총학생회 간의 합의된 탓이라고 억측으로 비난함으로써 졸지에 총학생회는 학생들에게 '무능하다' 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뒤늦게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해명의 글을 올렸지만 이미 불만과 짜증으로 가득찬 학생들의 화를 달래기에는 늦었다.  

학생회장의 해명 글에 의하면 총학생회에서 내건 공약에 따라 지난 10년간의 수강신청 전산 시스템의 수요에 따라 복수전공과 교양수업에 치중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신의 과에 전공수업을 늘리는 방안으로 변경되었으며  

학교 학칙 제4장 제8조(수업일수)가 16주간의 일정 내에 15주차에 모든 수업 일정을 마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그것에 의거하여 수업학적팀에서 수강 변경기간을 학기 중에 시행하지 않고 방학 중에 수강신청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학교는 수업역량강화사업 1주일, 법정공휴일, 그리고 학기중 1주일 수강정정 기간을 가지게 되면 사실 고등교육법에서 나와 있는 15주를 채우지 못하는 사항이 되고, 이것은 곧 학생들의 등록금을 내고도 올바른 수업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하였다. 

 

 

값비싼 등록금을 내는만큼 학생들에게 질 좋은 수업을 제공하기 위한 학생회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섣불리 도입한 감이 든다.  10년동안 축적된 전산 수요 시스템으로만 학생들의 수강 신청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학생들 개개인마다 수강신청의 형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수전공에 치중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신의 과에 전공수업을 늘리는 방안' 은 취업을 위해서 복수전공을 신청하는 오늘날 대학생들의 수강신청 추세를 읽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문제의 학교에 소속된 학생으로서 정작 학생들을 위한 제도를 만든답시고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도입한 학교 행정에 문제가 있지만 수강신청에 대한 수요를 잘못 파악한 점 그리고 학생들의 불만이 증폭되어가는 상황에 뒤늦게서야 해명의 글을 올리는 학생회도 문제가 있다.    

또 이번 수강신청과 변경과 관련해서 가장 큰 책임을 담당하고 있는 수업학적팀의 미온적인 태도도 넘어갈 수 없는 처사다.  수업학적팀이 먼저 이번 사태에 관련된 해명의 글을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총학생회만 모든 학생들의 비난을 감당하게 된다면 총학생회 전체의 이미지만 추락하는 꼴이 된다.      

결국에는 수강변경 기간을 개강 이후 기점으로 새롭게 추가편성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수강변경은 이렇게 편성해야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번 논란으로 인해 학생 행정부, 학생회 그리고 학생들 모두에게 서로 신뢰와 타협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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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3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골치 깨나 아프셨겠습니다.
지금은 안정된 거죠?
반값 등록금은 언제쯤 될까요?
시루스님 졸업 전에 되면 좋을 텐데...
아무튼 불미스럽고 번거롭긴 했지만 또 한 학기 힘차게 시작하십쇼!^^

cyrus 2011-09-01 12:14   좋아요 0 | URL
며칠전 신문에서 봤는데 국회에서 반값 등록금 문제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채
잠정 무산 결론을 내렸더군요. 정말로 반값 등록금 문제가 실현될 수
있을지 점점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되네요.

일단 지금은 수강변경 사태가 어느 정도 잠잠해졌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서
학생들과 학교 행정부 그리고 학생회 사이 간의 불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거 같습니다.

비로그인 2011-08-3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정말 복잡하네요. 저는 필 꽂히는대로 확확 신청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수강신청 변경 기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대학 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구요. '강의실<도서관' 요런 공식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니까요 ㅋㅋ (어쩌다보니 수강신청 페이퍼에 이어 수강변경 페이퍼에 덧글을 달게 되었네요, 하하)

cyrus 2011-09-01 12:16   좋아요 0 | URL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미리 수강신청 전에 시간표를 짜는 것이죠.
그런데 미리 짜봤자 제가 100%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답니다.
다만 수강 실패율과 후회감을 줄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해요 ^^;;




2011-08-30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8-3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경이 학교 측 사정이나 인원미달, 강의실 문제 등으로 될 때 미리 계획 짜논 학생으로서 살짝 신경질 나죠. 이제 정말 개강인가 봅니다. 시루스 님 만나고 첫 개강도 아닌데 가을이라 그런지 더 응원하고 싶어요!

cyrus 2011-09-01 12:21   좋아요 0 | URL
응원 팍팍 해주세요~~ ^^ 이번 학기 수업은 1학기때보다
쉽지가 않거든요 ㅎㅎ

pjy 2011-08-3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입장을 고려해서 편성을 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는건지...참-_-; 문제가 없는데 왜 나중에 변경기간은 생겼는지~

관련자 모두를 만족시킬수 없는게 당연하겠지만, 갑만 만족하는 결론에 현재 매우 시달리는 "을" 괜히 울컥하고 있습니다....

cyrus 2011-09-01 12:22   좋아요 0 | URL
결국 이번 사태는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과 사태의 책임을 떠안게 된 학생회만
피해를 보고 말았어요. 지금 학생의 복지를 위해서 선도해야할 저희
학교 학생회의 이미지가 지금 말이 아니랍니다. ^^;;

yamoo 2011-08-31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강신청 변경...이거 참 골치아프죠. 시간표 맞추기도 힘들고...

아니, 근데 학교측은 어쩌자고 그런 행태를 보이는지....이건 학생들이 데모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상하게 학생회는 이런데에는 잘 데모를 안하는 거 같다는..--;;

그나저나 진짜, 반값등록금은 언제 시행되는지...

cyrus 2011-09-01 12:25   좋아요 0 | URL
야무님 말씀대로 정말 사태가 계속 확산되었다면 정말로 학생들이
데모를 펼쳤을거에요. 저희 학교 학생회 같은 경우에는
사학재단 복귀 반대 시위를 펼친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등록금 문제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밖에 없게 되고요. 얼른 사학재단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등록금 문제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말이죠.

맥거핀 2011-09-01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별 얘기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글을 읽었는데, 막상 끝까지 읽어보니 이것 참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로군요. 문제가 발생하면 빨리 고치면 될텐데, 사실 학교 조직도 어지간히 답답한 조직이라(예전에 '조교'했던 경험을 돌이켜볼 때) 공문 오가야 하고, 보고도 해야하고 어쩌고 해서, 참 잘 안되지요. 아무튼 그동안 피해는 학생들만 본다는...;;

cyrus 2011-09-01 12:27   좋아요 0 | URL
맥거핌은 조교 경험이 있으시군요. 정말 조교도 수강 신청이나 변경
기간만 되면 머리 아플거 같아요. 학생들이 전화로 수차례 문의를 하거나
사무실에 찾아간다면 조교 입장에서는 바쁘겠어요. ^^
 

 

  

 

 

[당신의 미소가 그립습니다] 

조선일보 2011년 8월 22일자 

  

 

이번 달 들어서 셰익스피어를 읽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비극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 그리고 사건 전개를 유심히 보게 된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이나 이야기를 인용한다거나 작품 속에 그대로 차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가 주로 인용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원전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가 많다.   <변신 이야기>는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널리 알려져 있는 신화 속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야마로 신화를 집대성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세련된 묘사는 후대의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동기를 제공해주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시대까지도 고대 로마 시기 때 탄생된 오래된 문헌이 읽혀졌던 것이다.   

국내에는 소설가 겸 번역가인 故 이윤기 씨와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의 번역본이 있다. 마침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윤기 씨의 번역본을 소장하고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이윤기 씨가 쓴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가 서점가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때의 독서 열풍에 따라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이윤기 씨가 쓴 책이었다.    

그리고 몇 학년용 교과서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확실한 것은 중학교 때 배웠던 국어 교과서에 신화에 관한 이윤기 씨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 때 수록된 이야기가 태양 신의 마차를 몰다가 제우스의 벼락에 불 타 죽은 파에톤 이야기다.

덕분에 이 때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신화와 관련된 이윤기 씨의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어봤던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독서의 범위는 넓혀지게 되었고 그 분이 번역가와 소설가로 활동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한국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라 그 분이 쓴 소설은 단 한 권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분이 번역한 소설은 읽어봤다.    특히 제일 감명깊게 읽은 것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인 조르바>다.   청소년기에는 이윤기 씨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도사였다면 지금은 이윤기 씨라고 한다면 항상 먼저 떠오르는 것이 조르바다.    

글을 쓰는 작가나 또는 다른 언어로 문장을 번역을 하는 번역가나 다 자신의 손에서 탄생되는 문장 그리고 글에 대해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윤기 씨 같은 경우에는 번역만큼은 자신의 글을 읽게 되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 번역에 대한 자신의 사명감 그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문장가들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개정판 출간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의 번역활동이며 <변신 이야기>는 이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둔갑 이야기>라는 제목의 축약본을 토대로 온전한 완역본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천병희 교수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에 쓰여진 텍스트들이 라틴어 원저 그대로 충실히 번역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윤기 씨의 <변신 이야기>는 원저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러틴어 판을 번역한 영문판과 일어판을 중역한 것이다.   <변신 이야기> 1권 첫 장에 들어가면 '일러두기' 라는 머리말이 있는데 이윤기 씨는 라틴어 판으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를 솔직하면서도 타당성 있게 밝히고 있다.   

 

라틴어 대본을 쓰지 않은 데엔 두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는 역자에게, 고전 라틴어를 능숙하게 우리 말로 번역할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틴어 원문은 원래 운문인 데다, 상당 부분이 2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중략) 

역자가 현대 영어로 번역된 영어 판을 대본으로 삼은 것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2인칭 문장이 독자를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변신 이야기> 1권, 일러두기 중에서 -

  

애초에 머리말에 본인의 라틴어 번역할 능력이 부족함을 알림으로써 중역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윤기 씨는 원전 자체 그대로 완벽하게 번역하는 의미에 두기보다는 원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온전하게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번역을 취하고 있다. 

번역가들마다 각기 다른 번역가 특유의 고유한 문장 스타일이 있듯이 독자들마다 번역에 대한 취향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책의 단점을 지적하자면 문장 곳곳에 있는 한문으로 이루어진 단어에다가 간간이 나오는 중역투의 문장 때문에 젊은 층의 독자 입장에서는 재미가 반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에는 이와 관련된 화려한 도판이 있어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민음사판에는 도판이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올컬러가 아닌 흑백이다.   

아직 천병희 교수의 <변신 이야기>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이윤기 씨의 번역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산문형이다보니 읽으면서 할아버지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본업인 소설가답게 멋들어진 문장이 있어서 참 좋았다.   

 

<변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대한 문장가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사실 그리고 다시는 그의 글을 읽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변신 이야기>는 1998년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는데 2권에는 이윤기 씨가 남긴 후기가 수록되어 있다.   번역 후기치고는 짧은 내용인데 지금도 이 부분을 읽게 되면 그 분의 글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 <변신 이야기>는 연대순으로는 비교적 후대에 씌어진 것이기는 하나 역자의 손에서 이루어질 고대 신화 번역 총서의 한 시발점을 이룬다.  이 작업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뒤세이아>,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 아폴로도로스의 <황금 나귀>,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그리스 신화>로 이어질 것이다.   실로 평생 소원하여 마지않던 대장정이다.  험할 것으로 예감하나 이 대장정이 끝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이로써 한국의 독자들을 위한 고전 교실이 하나 세울 수 있다면 이 또한 우리 문화, 우리 문학의 초석이 될 터이다.  세계의 고전문학의 고삐를 잡고 우리 문학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변신 이야기> 2권, 개정판 후기 중에서 -  

  

1998년, 그러니까 무려 13년 전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개하기 위한 대장정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니 붓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 그의 포부를 이제는 실현될 수 없어서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번역가이자 그의 친딸인 이다희 씨가 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고들을 정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생전 이윤기 씨가 꿈꿔왔던 '대장정' 이 실현되기에는 너무 버겁게만 느껴진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된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가 남기고 떠난 수많은 문장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했던 말처럼 당신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는 지금의 모습이 아름답지만 잊혀지기 위해서 죽음이 이루어진다는 생각만큼은 동의할 수가 없다.     훌륭한 문장가를 잊어야한다는 점이 아쉽다기보다는 살아 생전에 꿈꿔온 그의 원대한 포부가 세월의 흐름에 잊혀져야간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특히나 당신의 글을 각별하게 좋아했던 나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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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7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1년인가요?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이윤기씨 책 한권쯤은 다 가지고 있다고 봐요.
저도 몇권 가지고 있는데.
명이 짧아서 그렇지 한 세상 멋지게 살다간 사람중의 한 사람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cyrus 2011-08-30 17: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설가, 번역가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해박함까지
독특한 필치를 가진 몇 안 되는 멋진 문장가라고 생각합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8-2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씨가 그리스 로마신화의 지식이 많다고 해서 어떤 이들은 그가 서양 것에 너무 치우쳐있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건 오해죠.이윤기 씨는 우리 전통의례나 나무, 꽃에 대해서도 해박합니다.그의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난 소설이 그의 가장 긴 소설인 <하늘의 문>전 3권입니다.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풀어낸 소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이윤기의 진짜 팬들이 전국의 헌책방을 뒤져 찾아내려고 한다는 소설이죠.

cyrus 2011-08-30 17:05   좋아요 0 | URL
작년에 이윤기 씨기 별세했을 때 어느 일간지 칼럼 글이 생각나요.
이윤기 씨가 그리스 로마 신화 전문가와 번역가로만 알려지다보니
정작 소설가로서의 진면목을 독자들이 알지 못해서 그의 부고에
안타깝다고 하더군요.

yamoo 2011-08-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이윤기 선생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 분이 쓴 문학작품보다 번역본으로 선생을 먼저 접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움베르토 에코인데...조형준씨와 이윤기 선생 아니었다면 일찍 에코를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학부때 광적으로 좋아했던 에코였어요..

노이에자이트님 말씀처럼 이윤기 선생은 정말 전통적인 우리 것에 대한 소양도 아주 깊었죠. 그분이 쓰신 소설보단 에세이가 훨씬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시루스님은 중학교때부터 독서광이었군요...전 고등학교때까진 책하고 담쌓고 살았눈뎅...ㅎㅎ

cyrus 2011-08-30 17:10   좋아요 0 | URL
중학교 때는 책을 읽긴 했는데 그 때까지는 설렁설렁하게 읽었다고 해야되나요?
^^;; 독서라는 행위의 참된 의미를 모른채 그저 시간 때우기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는 수능 공부를 하다보니
고등학교 3년은 그야말로 암흑기라고 할 정도로 책을 가까이 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면 독서할 시간이 많을줄 알았는데,,
1학년 때는 술 먹고 노느라 그 때도 책이랑 담 쌓고 있었어요.
그래서 군 복무하면서 이제서야 독서의 의미를 깨달았어요.
정말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책이 많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대하면 정말 제대로 된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

마녀고양이 2011-08-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지 않나요. 어떤 분야에 저렇게 매진하셨다는 자체로도
그 결과물에 상관없이 너무 멋진 분이세요.

저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하고 바랍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런 정열과 노력.

cyrus 2011-08-30 17:11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에 마고님은 지금도 정열과 노력을 가지고 계시는데요 ^^

아이리시스 2011-08-3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네요. 그리스 로마 신화 때는 정말 인기가 대단했는데. 소설가,번역가로서는 물론 인간적인 매력도 대단할 것 같은 분이에요. 너무 안타까웠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각별히 책을 읽어야겠어요. 책이 어디갔는지 다 없네요. 빌려 읽었었나 봐요.

cyrus 2011-09-01 12:28   좋아요 0 | URL
신화 열풍과 번역가로서의 능력 때문에 이윤기 씨의 문학적 재능이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었죠.

희망찬샘 2011-09-09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 드립니다. 순오기님 서재 타고 왔는데, 그냥 스윽 지나쳐 가려고 했는데, 이 서재에서 글 읽느라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아서 글 하나는 남기고 가야 할 것 같은... 개인적으로는 행정학과에서 쪼금 반가웠고(울 언니, 형부 행정학과 나왔걸랑요.) 그리고 정말 좋은 글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님의 서재글을 읽으면 지적으로 충만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저는 쉬운 책만 읽는 편이라 말을 섞을 형편은 안 되지만, 가끔 놀러와서 쓰윽 읽고 가겠습니다. 대학생이시라는 말에 가르쳤던 아이들 얼굴이 퍼뜩 지나갔고 우리 아이들이 이런 모습으로 자란다면 참 근사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대단히 멋지'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cyrus 2011-09-09 22:1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희망찬샘님 ^^

닉네임과 서재 잠깐 들려봤는데 학교 선생님이시네요. 저도 한때 선생님을
많이 동경하고 한 때 장래희망이기도 했었어요 ^^

저도 아직 많이 배우고 알아야할 학생입니다. 여기 이 곳 서재를 이용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학생이랍니다. 찬샘님도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정신병과 심리학
미셸 푸코 지음, 박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이성은 자신이 현명한 줄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은 미친 것이다. 이성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성은 자신이 올바르고 믿었으나 실제로는 망상에 빠져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정신병과 심리학> 중에서, pp 136 -

 

 

  젊은 푸코의 '광기' 에 대한 풋풋한(?) 학문적 탐구     

인간의 광기는 흔히 정상적인 것과는 대칭에 선 비정상의 개념쯤으로 통한다. 우울증과 죽음, 욕망, 폭력, 비판과 같은 광기의 양상은 위험하고 혐오되야 할 가치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래서  광기는 정치와 철학, 역사의 범주에선 늘상 배제되고 억압받곤 한다. 그러면 광기는 정말 비정상적이고 배척해야만 할 주제일까.    

이성의 광기에 대한 배제와 억압의 역사를 담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다가 독서 진도가 나아가지가 않아서 <광기의 역사>가 출간되기 전에 쓰여진 <정신병과 심리학>을 겸하여 읽게 되었다. 

푸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기의 역사>는 1961년에 발간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광기의 역사>가 푸코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처녀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광기의 역사>를 읽기 전에는 그저 '푸코' 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던 터라 <광기의 역사>가 푸코의 처녀작인줄 알았다.    <정신병과 심리학>은 1954년에 푸코가 심리학과 조교수로 역임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공식 저작물이다.   으레 푸코라고 하면 철학자라고 떠올리기 쉬운데 그가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오르면서 전공했던 학문이 심리학이다.  전통적인 철학의 학문적 범위에만 한정하지 않는 그의 광범위한 지식 편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신병과 심리학>에는 심리학을 통한 정신병에 대한 탐구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심리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정신병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이론 등과 같은 다양한 심리학 이론 등을 논지로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으며 2부에는 광기의 사회문화적 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1부는 심리학적 용어가 많이 언급되는데 사실 심리학적 지식이 빈약한 편이라 굳이 1부를 읽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광기의 역사>를 읽고 있는 상황이라  '광기' 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2부만 따로 발췌해서 읽었다.

700여페이지나 되는 <광기의 역사>를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병과 심리학> 2부는 훗날 <광기의 역사>로 집대성하기 전. '광기'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젊은 푸코의 풋풋한(?) 학문적 탐구를 볼 수 있었다.   <정신병과 심리학> 2부 '광기와 문화'가 푸코 사상의 청소년기라고 한다면 <광기의 역사>는 사상의 범위가 한층 더 광범위해지고 성숙되어진 청년기인 것이다.  

 

 

  서구문화적 관점이 만들어낸 광기의 정의

푸코는 하나의 사회집단 속에서 특정 개인이 '정신병 환자' 로 간주될 수 있는 원인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과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분석에서 찾고 있다.   

뒤르켐은 '사회' 를 정치체계, 가족체계 및 그 밖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체계 등 여러 부분이 합성된 하나의 실체로 보고 있다.  즉, 사회 그 자체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특징을 부분으로 한정지어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에서 과학적 조사를 실시한 최초의 사회학자이다.  그는 통계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이를 근거로 이론을 제시하였다.  사회집단에 속한 사회 구성원들은 유기적 연대를 강화하는데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가 무규제 상태로 사회 내 도덕적 규범의 가치가 상실된다면 그 현상은 일탈 행동으로 보게 된다.     이를 푸코는 통계학적 시각의 관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 <미친 여인>  1822년 

 

우리 사회는 사회가 추방하거나 감금하는 정신적 환자 속에서 자신을 알아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질환을 진단하는 바로 그 순간, 환자를 축출한다.   

- 2부 광기와 문화 서론, pp 110 -

 

그리고 루스 베네딕트와 같은 미국 심리학자들의 관점 역시 뒤르켐의 통계학적 관점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원시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원주민 집단은 대체로 옷을 입지 않은 채 벌거벗은 상태이며 신발 역시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생활한다.  그런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있는 50명의 원주민 중에서 단 한 명만이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고 가정해보자.   평소에 벌거벗고 맨발로 다녔던 원주민들에게는 옷과 신발로 무장한 그 원주민이 무척 낯설게 느껴지며 그동한 자신들이 생활했던 행동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는 원주민 집단의 고정된 문화적 유형에서 배제되는 행위이며 이는 곧 사회집단 내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뒤르켐과 베네딕트의 분석과 같은 서구문화적 관점에는 공통적으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양식, 도덕적 규범 등에 위반되는 행위는 비정상적, 또는 정신병자로 간주되어진다는 점이다.   

 

 

  광기의 역사   

 

피터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1562년경  

 

15세기 말은 확실히 광기가 언어의 본질적 힘과 다시 관계를 맺게 된 세기들 중 하나다. 고딕 시대의 마지막 징표들은 차례차례, 그리고 연속적으로 죽음과 광기에 대한 강박관념에 지배받았다.  죄없는 자들의 묘지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Dance macabre), 피사의 캄포 산토 벽에 새겨진 '즉음의 승리' 가 그것이다.  그리고 또 그 당시에는 광인들의 수많은 춤과 축제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럽이 그렇게 기꺼이 기념하던 광인 춤과 광인 축제가 존재했다.  

- 5장 정신질환과 역사적 형성 중에서, pp 116~117 -  

  

2부 '광기와 문화' 에는 <광기의 역사>에서 다루어지게 되는 광기라는 단어가 형성되어지는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광기는 일반인들에게는 혐오스러운 '비정상적' 행위이지만 15세기 때만 해도 어느 곳에나 광인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광인의 심리에 대한 저작물도 출판될 정도로 그 당시 대중들에게 광기는 친숙한 주제였다.   광기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가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사회학적 대상이었다.

 

 

 윌리엄 호가스 <연작 '탕아의 편력' - 정신병원에서>  1732~1735년    

 

가난한 불구자들, 빈곤층 노인들, 고집 센 실업자들, 성병 환자들, 온갖 유형의 방탕아들, 가족이나 왕권이 가하는 공식 처벌을 기피하는 자들    (중략)     간단히 말해서 이성, 윤리 그리고 사회 질서에 비추어 볼 때, '문란' 의 신호를 보이는 모든 자들을 이 강제수용소에 감금했다.  

- 5장 정신질환과 역사적 형성 중에서, pp 119~120 -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광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광인들을 수용하기 위한 강제수용소가 생기게 되면서 광기는  개인적인 문제의 대상으로 그 범위가 변형되었다.   그리고 '광인' 에 포함되는 대상은 단순히 정신질환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7세기의 강제수용소는 단순히 의학적으로 정신병에 걸린 환자들을 수용하는 의학적인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다. 사회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가난한 부랑자에서부터 사회 질서에 어긋나고 부도덕적인 범죄자들까지 사회에서 인정될 수 없는 비이성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강제수용소에 감금했다.    강제수용소의 탄생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성' 을 통용하는 권력집단의 사회적 통제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이성을 감금하고, 광기라는 낙인을 붙여 치료의 대상으로 전환시킨 것은 심리학과 정신병리학이 등장한 근대 이후부터다.  그러나 사회적 일탈과 범죄 행위로 결부되는 광기의 시선은 변함없었다.

     

 

  광기 그리고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깨자

광기에 대한 편견의 출발점은 사회적 소수자와 그 대척점에 있는 기득권자들의 평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후자만이 그 기준을 정하고 평가함으로써 비극을 낳고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이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광기에 대한 편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배척과 소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당연히 가져야 할 교육과 직업을 얻을 기회를 빼앗아 놓고 장애인을 사회적 무능력자로 낙인찍어 사회로부터 보호가 필요하거나 격리의 대상으로 삶을 규정해버리거나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병균체로 사회를 오염시키거나 격리가 필요한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등의 사회적 판단이 여전히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있다.

정신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요인이 있지만, 영화나 언론매체에서의 정신과 환자에 대한 왜곡된 묘사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영화나 언론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실제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확률이 높지 않은데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정신병 환자의 소행으로 모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편견으로 음지에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준다.   

이제 정신병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정신병은 더 이상 숨길 병도 아니다. 다른 질병처럼 주위 사람과 상의하고 감기를 치료하듯 스스럼없이 병원도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는 의료인들이 더 노력하고 연구할 문제이지만, 의료시스템을 포함한 사회제도적 측면에서도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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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6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사람의 상태를 둘로 나눌 수 있을까요... 살다보면 스스로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광기와 정상을 오가는 삶이랄까요.

cyrus 2011-08-27 13:11   좋아요 0 | URL
푸코가 이성의 헛점을 지적했듯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그런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비로그인 2011-08-2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었던 기억을 더듬으면 푸코의 <광기의 역사> 는 흥미진진하게 시작하다가 읽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다가 다시 빨라졌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서양의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자 현대 사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준 책으로 도서관에서만 보다가 돈벌고 나서 거의 처음으로 구입하게 된 책인 듯 싶네요 ^^

푸코에 말한 판옵티콘의 구조를 갖고 있는 학교, 병원, 감옥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경고는 앞으로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1-08-27 1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읽을 때 각 내용마다 속도가 달랐던거 같아요. 처음에
광인의 배에 대한 내용 때는 좀 흥미진진했었는데 그 뒤로는 진도가
잘 안 나갔어요. 그래서 좀 얇은 분량의 푸코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책의 1부는 너무 어려웠고요. ^^;;

2011-08-27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7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려움 때문 아닐까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얼마 전 버스에서 한 아이를 봤는데, 자리에 앉더니 머리를 앞뒤로 크게 흔들더군요.
몸을 감싸안고 박자에 맞추어 흔들흔들. 사람들이 다 그 아이를 보더군요. 그런데
한눈에 그 아이가 자폐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과 자폐증이 어떤 유형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나니 무섭지 않더라구요.

아마 아이는 버스에서 자신의 불안을 견디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인거 같았거든요.
대견한거죠.

광기에서 많은 기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죠.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장 차이기도 하고.
결국 관용의 문제인데, 현 사회는 관용과 여유를 부리기에는 다들 너무 빡빡한거 같아 슬퍼요... ㅠ

cyrus 2011-08-27 13:21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말씀대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푸코의 삶을 완전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푸코가 학창 시절에
정신 발작을 경험했고 동성애자였다네요.
제가 읽은 <정신병과 심리학> 역자 후기에는 왜 푸코가
광기와 성이라는 주제의 연구에 매달렸는지 이애할 수 있었어요.
사회 내에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온 감시와 처벌, 그리고
광기와 이성으로 구분짓는 경계 때문에 고뇌하고 이를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7 13:26   좋아요 0 | URL
심리학이든 철학이든
자신의 경험이 반영되었다 하잖아요. 그리고 특히 심리학은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적용 가능하지만, 원시 부족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말에... 그렇구나 싶어집니다.

아래 <지나가는 이>님의 댓글로 인해 생각이 많아져버렸어요.
지금 팽팽 돌아가는 중이예요,, 아하하.

cyrus 2011-08-27 13:33   좋아요 0 | URL
저의 부족한 글 때문에 괜히 마고님 머리 아프게 만들었네요 ^^;;


2011-08-27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08-27 23:09   좋아요 0 | URL
푸코가 에이즈땜시 사망했다죠..

지나가는이 2011-08-2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흥미롭네요. 제가 알기에는 푸코가 제시한 문제제기는 설명할 수 없는 타자를 자폐증으로 재단하는 지식권력의 문제인데요. 이걸 관용이나 사회적 통념 또는 제도적 변화로 해결하자는 것은 정신병을 생산한 지식권력을 내재화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푸코가 가장 비판할만한 답변일 듯 싶은데요......

cyrus 2011-08-27 13:3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글의 오류를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깐 정말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제 막 푸코의 사상을 접한 것이라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오류를 범했네요. 푸코를 읽은게 <정신병과 심리학> 그리고
현재 읽고 있는 중인 <광기의 역사>뿐이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푸코의 사상적 특징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텍스트에 접근하고 있는 식이라
아직은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님이 언급하셨던 부분은
푸코의 사상을 읽는데 꼭 명심해야할 내용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좋은 내용의 댓글 남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좋은 주말 되셨으면 합니다. ^^

2011-08-27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다오 
아~아~ 그 정의는 어디에
아~아~ 그 정의는 어디에
 

- 정훈희의 노래 <안개>의 가사를 개사함 -

 

 

  너무나 어둡기만한 공지영의 안개

무진(霧津).  우리말로 풀어보면 '안개 나루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문학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독자라면 '무진' 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떠올릴 것이다. 서울 생활에서 상처받은 인물이 남쪽 고향인 무진에 와서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여러 면모를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때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무진은 안개로 덮여 있다.  '감수성의 혁명' 이라는 별명답게 김승옥 작가는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 이라고 음습하면서도 멋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안개의 이미지는 어둠, 억압, 소통 불능, 희망 없음 정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역시 '무진' 이라는 지명을 무대로 한 공지영의 <도가니> 역시 안개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김승옥이 바라본 무진의 안개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김승옥의 안개는 몽환적이라고 한다면 공지영이 본 무진의 안개는 런던의 스모그 못지 않게 너무 불투명하면서도 어둡기만 하다.     당최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악의 카르텔

장애인 학교 '자애 학원' 내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성폭행 사건을 토대로 구성한 소설은 세상에 만천하에 공개된 사건 실체의 내막 자체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점은 이 불행한 사건이 전혀 공권력의 힘이나 지역사회 상식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역 인권단체에서 교장의 파렴치한 장애 학생 사실을 고발하지만 무진경철서 형사, 시교육청 장학사, 시청 담당 공무원, 판 검사 하물며 영광제일교회 교인들, '무사모' 라는 무진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단체까지 철저히 담합을 형성하여 이 사건을 은폐시키는 데 일조한다.  지역사회의 기득권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총동원되어 비리 주범인 자애학원의 이강석 교장을 무혐의받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성벽처럼 견고하고 거대한 악의 담합 앞에서 인간의 양심은 보잘것없는 사치에 불과한 것인가?    작가의 머리에서 탄생된 순전히 허구적인 내용이라고 하면 모를까 실화를 토대로 구성한 진실적인 내용이기에 우라나라의 현실에 대해 탄식이 절로 흘러나올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무진에서 벌어지는 이 협잡과 타락의 추악한 풍경이 단지 소설 속의 가상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데 있다.  점점 더 강자 중심으로 변해가는 권력 기득권자들의 담합과 약자들에 대한 억압, 정의의 실종과 같은 사회적 퇴행 현상이 무진에서 벌어지는 '악의 카르텔' 을 닮아가고 있다.  

 

 

  잘못된 사회가 괴물을 만든다 

 

 

" 죽다 살아난 세계적 사회지도층의 미소 "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前 총재는 

법원으로부터 공소 기각 결정을 받아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다. 

(사진 출처: 로이터)

 

범죄도 대중의 관심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에 무엇보다도 장애인은 언제나 가장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유독 장애아의 성폭행에 관해선 둔감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인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당사자도 그렇지만 장애 아이를 키우거나 대한민국에서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는 늑대 굴에 어린 양을 풀어놓는 것과 다름없는 기분일 것이다.   

요즘에는 집 근처 평범한 이웃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지위를 누리는 사회지도층, 심지어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다던 IMF 총재까지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이 비이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게중에 몇 몇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일으킨 행위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을 지지 않은채 법의 심판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검찰 조직의 집단적인 성 접대가 만천하에 알려져도, 경제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무혐의 처분을 받는 나라와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하기만 한 권력자들로 인해 상식적으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비인간적인 행위마저도 범죄가 안 되는 세상은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별반 다를게 없다.  

장애 소녀를 집단 성폭행하고도 멀쩡하게 학교에 다니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인면수심으로 가득한 어른으로부터 신체적 상처를 입은데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의 기억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여성을 하나의 성적인 유희의 도구로만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장애아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들이 억울한 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도 막아주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장애아들은 여전히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나와 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호는 불편한 진실을 간직하지만 그 진실 안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뛰어들어 해결하지 않으려 하는 진실은 결국에는 묻혀버리고 만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2, 제3의 자애학원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공지영의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소설 발간 당시 그랬듯이 가을에 곧 개봉될 동명제목의 영화 역시 과연 소설 속 충격적인 내용을 어떻게 영상화가 될지 개봉 전부터 영화팬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어떻게 잔인한 성폭행 장면을 묘사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충격 요법형으로 현실의 치부를 그대로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잘못된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 절박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문제다.

세상은 감상으로 변하지 않는다. 제 자리에서 분노하고 공감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변화와 문제의 시점을 파악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비로소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방관자의 무서운 침묵은 사회를 더욱 미쳐버리게 만들게 되며 괴물 같은 아이를 양산하고 그런 괴물들은 더욱 기괴한 모습으로 성장해 정의를 집어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두렵고 무서운 사회를 방조하는 권력자들부터 변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는 희망의 햇빛 한 줄기 보이기는커녕 그저 어둡고 음습한 악(惡)과 거짓의 안개로만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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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8-2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부하신 것이 곧 개봉할 영화 포스터인가 보네요. 포스터 분위기 한번 으스스 합니다. 저는 소설은 읽지 않았는데, 영화로 개봉하게 되면 한 번 보려구 해요.^^

cyrus 2011-08-26 21:59   좋아요 0 | URL
9월에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네요, 맥거핀님은 영화를 즐겨 보시는 분이시니까
영화리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blanca 2011-08-2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우리나라는 성범죄에 관대한 것 같아요. 특히 합의에 의해 처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오히려 유야무야 넘어가는 사태를 조장하는 것 같고요.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cyrus님의 리뷰를 읽으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네요.

cyrus 2011-08-26 22:02   좋아요 0 | URL
간혹 언론과 뉴스를 보게 되면 법전 내용의 형식에 너무 지우쳐서
분명 범죄 행위임에도 무죄나 가벼운 형량을 받은 사례를 보곤 해요.
성범죄만큼은 확실히 규제할 수 있는 형법의 도입이 필요한거 같아요.

비로그인 2011-08-2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영화.. 저도 자극적인 내용 묘사보다는 그 분위기와 생각할거리를 어떻게 던져주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한편 흥행이라는 면도 고려해야 할텐데, 과연 어떻게 될지.

영화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책에서 받은 느낌의 반밖에 되질 못했었는데 이 소설이 영화가 되어 보게 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cyrus님 덕분에 영화가 나오게 되는 걸 알았네요~

cyrus 2011-08-26 22:04   좋아요 0 | URL
예전 <우행시>가 성공했듯이 <도가니>도 블록버스터급 외국 영화가
개봉되지 않는 이상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소설 속 인호 역으로 공유입니다. 얼핏 <우행시>의 강동원이
생각나네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아니 자주 현실은 소설보다 더 무섭죠...제가 이 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은 5% 정도일 것 같은데 보게 된다면 아마 공유때문일 것 같네요 ㅎㅎㅎ

cyrus 2011-08-27 14:05   좋아요 0 | URL
<도가니>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공유의 역할도 큰 비중이 있다고
봐야될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