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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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93] 위대한 개츠비

 

 

  삶은 풍요로웠지만 정신적으로 부족했던 남자, 개츠비

올해 읽은 소설 중에서 다양하면서도 개성있는 성격을 가진 소설 속 인물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을 가진 인물들도 종종 발견하곤 한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같은 경우에는 올해만 해도 여러번 읽었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경우에는 각각 민음사와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출간한 번역본을 가지고 있어서 개츠비라는 인물이 낯설지가 않다.  (소설가 김영하가 번역한 문학동네와 올해 최근에 나온 열린책들 번역본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두 소설의 작가는 미국 출신이며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책을 읽기 위해서 몇 페이지를 펼처보는 순간, 처음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 대해 별로 호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사회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차 욕설만 내뱉는 홀든의 그런 모습이 싫은 것처럼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부를 축적하여 아메라카 드림을 꿈꾸었지만 한 순간의 오해로 인해 허망하게 죽음을 맞게 된 개츠비가 그렇게 위대해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의 죽음이 너무 허무할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면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습을 보는 시각과 생각이 달라지듯이 피츠제럴드의 소설 역시 그랬다.   여러 번 읽고나니 개츠비라는 남자에 대해 연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알량하고 경솔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부르주아, 그러나 모든 걸 가진 척했지만 결핍으로 가득했던 남자,  그가 바로 제이 개츠비였다. 

 

 

 어두운 재즈 시대에 자란 한 송이 민들레꽃, 개츠비

중서부 출신의 가난한 청년 제이 개츠비는 군 복무 중 미모의 데이지 페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중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고 기다린다던 데이지는 곧 시카고 출신의 부자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종전 후 귀국한 개츠비는 데이지의 결혼 사실을 알고 그녀를 되찾고자 롱아일랜드에 대저택을 산다. 여성관계가 복잡한 톰에게는 머틀 윌슨이라는 정부가 있고, 데이지도 알고 있으나 풍족한 생활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톰의 곁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개츠비가 나타난 것이다.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머틀의 남편 윌슨이 서부로 가자고 채근하자 광란 상태에 빠진 머틀은 거리로 뛰쳐나가다 데이지가 운전하는 차에 치어 사망하고 윌슨은 아내를 죽인 사람을 찾아 나선다. 머틀을 죽게 한 것이 개츠비라고 알고 있는 톰은 윌슨에게 개츠비의 집을 가르쳐 줌으로써 자기 가정의 위험분자를 제거할 기회로 삼는다. 윌슨의 총을 맞고 개츠비는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고 만다.  

개츠비는 3년 동안 번 돈으로 큰 저택을 사고 호사 주말파티를 열어 손님들을 모은다. 단지 첫사랑을 만나보려는 일편단심에서다. 혹 데이지가 들르지 않나 기다리다 결국 그녀의 사촌 닉 갤러웨이 집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장면은 아주 극적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닉은 두 사람을 소개하지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자 개츠비는 우리는 전에 만났다고 말하고, 데이지는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다고 받는다. 개츠비는 5년 만에 보는 것이라 말하고 오는 11월이면 꼭 5년이 된다고 덧붙인다. 데이지와 헤어진 후의 날짜를 꼬박꼬박 세고 있었던 것이다.    

한평생 데이지라는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그는 청교도적 경건함과 도덕적 가치가 무너지기 시작한,  20세기 초 미국의 재즈 시대 속에서 유일하게 자라난 '일편단심' 민들레였다.  그러나 꽃이파리를 펼치기에는 거대한 재즈 시대의 사회는 늘 어두웠고 너무나 감정이 메마른 지대였다.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데이지의 사랑을 다시 얻고자 고군분투하는 개츠비. 그러나 상류사회의 이기주의에 희생되는 것은 낭만주의자 개츠비다.  그의 대저택의 불은 꺼지고, 작품 속의 사랑은 모두 막을 내린다.  꿈의 완결편인 데이지를 차지하겠다는 개츠비의 순정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부르짖는 사회와는 맞지 않았다.  이 점을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는 '위대한' 이라는 반어적인 의미의 수식어를 붙였던 것일까?  

<위대한 개츠비>가 집필되었던 20세기 초 미국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누구나 부자가 되고 미인을 차지하고, 밤마다 파티를 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 개츠비는 재즈 시대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빼어닮은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개츠비가 단지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인 것만은 아니다.  개츠비의 모습에는 불안정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살아가야하는 '88만원 세대' 그리고 이제는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하는 '삼포세대' 라는 암울한 명함 한 장을 받게 된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개츠비의 어이없는 죽음 못지 않게 더욱 불운한 사실은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은 개츠비처럼 경쟁과 이기심으로만 가득찬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 '사랑' 이라는 낭만이라는 감정마저도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노력 끝에 거부가 된 개츠비의 아메리칸 드림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불의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평생 부와 명예를 추구하면서도 낭만과 순정을 버릴 수 없었던 그의 원대한 꿈은 소설이 출간된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존재하고 있는 삶의 포부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 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pp 255)

 

이것은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동시대 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 '88만원 세대' , '삼포세대' 를 향한 각성의 외침이기도 하다. 허무를 딛고 일어서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한다고.

안개 너머 비치는 희미한 초록색 불빛, 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 수 있었던 개츠비의 삶. 그 위대함을 가슴에 품은 채 말이다.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찾아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결국 자신의 파멸로 나아간 개츠비의 인생은 그럼에도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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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0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시루스님의 리뷰를 스마트폰으로 접하네요. ^^전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이 읽고 글을 써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제 시선이라는 것이 웃겨서 다양하게 보고자 하지만 어딘가에 고정돼 책을 바라 본다고 생각들거든요.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읽게 됐는데 전 그닥 느낌을 받지 못 했어요. 삼류드라마를 본다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제와서 시루스님의 리뷰를 보니 그런 오해를 싹 사라지게 하네요. ^^ 전 참 시루스님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쉬운 책을 읽는 요즘 세태에 시루스님의 독서는 그야말로 제가 20대 때 그토록 원하던 청년상이에요. ㅋㅋ 완전 멋져!

cyrus 2011-10-05 00:03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랬어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요.
사실 피츠제럴드의 이 소설 역시 처음에 출간되었을 때는 통속소설처럼
반응이 냉담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암울했던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는 고전이라고 불릴 이유가 있더군요. ^^
 

 


한국정부론 3주차 수업에서는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청와대는 파란 지붕으로 된 대통령의 관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는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으며,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설정하여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청와대 공식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개설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몇 몇 국민들 중에는 청와대에 공식 홈페이지가 있다는 사실도 모를 수도 있겠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현직 대통령의 모든 일정, 국정뉴스, 국정자료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까지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전에 시작한 한국정부사 관련 과제를 하는데 청와대 홈페이지 속 자료들 덕분에 금방 끝낼 수 있었다.

홈페이지 속 수많은 사진과 자료 중에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5대 국정지표 였다. 국정지표란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 정부가 지향하려고 하는 일종의 국가적 청사진 혹은 비전(vision)이라고 할 수 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앞으로의 국정 운영을 위한 지향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정부에 따라 국정지표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글로 밟히기기에는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올해 4년째 되어가는데 정부의 국정지표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5대 국정 지표는 다음과 같다.


1. 섬기는 정부, 2. 활기찬 시장경제, 3. 능동적 복지, 4. 인재대국, 5. 성숙한 세계국가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섬기는 정부’ 는 지방분권을 확대하여 지방경제를 살리고, 나라살림을 알뜰히 꾸려나갈줄 아는 유능한 정부의 모습이다.   ‘시장경제’ 에서는 신 성장동력과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동시에 ‘녹색성장’ 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추구한다. ‘능동적 복지’ 는 모든 국민, 특히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맞춤형 복지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부가 바라는 ‘인재’ 는 과학기술 발전에 필요한 핵심 인재이며 이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복지의 확태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세계국가’ 의 모습은 한. 미 동맹 관계를 구축하면서 굳건한 안보체제를 확립하며 국익을 우선하면서 세계에 기여하는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5대 국정지표 내용 속에는 국정을 올바르게 운영하기 위한 20가지 전략과 그 전략에 대응하는 100개의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친 서민 중도실용’과 ‘공정 사회’ 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는 정부 국정 운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정지표 속에는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훗날 이 국정지표 속 전략과 과제들을 통해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롭게 제시되는 국정지표, 정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국민이라면 꼭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국정지표 속 과제와 전략들 중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으며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꼭 나서야하는 중점적인 내용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정부의 국정지표 속 내용들은 분야별 편차가 매우 크다는 점다. (지금도 이에 대한 현재 여론과 국민의 평가는 극명한 상황이지만) 한-미 공조회복과 G20 서울 정상회의 등을 통한 국제위상 제고 등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 중에서 좋게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이다.

반면 첫 번째, 두 번째 국정지표인 ‘섬기는 정부’ , ‘활기찬 시장경제’ 와 관련된 빈부격차 해소, 국민통합, 정치개혁, 물가 등 서민생활 안정과 일자리 창출 분야에서는 매우 부족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국정지표 속 내용과는 상반될 정도로 많이 부족한 부분은 ‘국민통합과 소통’ 과 ‘신뢰사회 구축의 미완성’ 이다. 소통의 부재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 3년간 계속 되어온 과제이면서도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광우병 사태, 구제역, 동남권신공항 문제 등 국론 분열이 심각한 대형 현안에 관해서 대처가 미흡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리더십의 부재다. 국민과의 소통 부재는 곧 국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신뢰정부’ 완성에 마이너스가 되는 요인이 되었다.
 

 

李대통령 "우린 선거때 돈 안받아 도덕적으로 완벽" 

조선일보  2011년 10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했다는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열린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더 적극적으로 일하자"며 이같이 말했다. 월 1회 대통령실장이 주재해서 열리는 '청와대 조회'같은 행사에, 이 대통령이 전례 없이 참석한 것이다. 최근 청와대·측근 출신들이 잇따라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계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생활이라는 게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되는데), 고통스러운 기간을 통해서 긍지와 보람을 찾아야 다 끝나고 나서 힘들게 일한 보람이 생기는 것 아니냐"면서 "국가 내에서도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데 가진 사람들의 비리가 생기면 사회가 좌절한다. 그중 (가진 사람)에서도 가장 높은 (도덕적)기준이 적용되는 게 청와대"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임 실장은 "청와대는 최종 책임을 지는 곳이고 무한 책임을 지는 곳"이라며 "(최근 일련의 일들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자"고 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 라고 자찬한 발언이 무색하게 할 정도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이명박 정부를 이루고 있는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을 보면 임기 2년여 남겨놓은 시점부터 친인척, 측근들의 대형비리가 터져 나왔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신의 정치적 업무를 스스로 섣불리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레임덕 현상에 유념해 임기 후반 기강확립에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기보다는 정부의 명예를 흠집내는 불미스러운 일을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척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리더십으로는 여러가지 자질이 필요하지만 만 기본적으로 갖춰야하는 것이 역사적 안목이라고 생각된다.  단기적 업적 치중보다 100년 뒤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거시적으로 바라볼 줄 알고 실현가능한 장기적인 국정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남은 임기 기간에도 정부가 물가관리 등 경제문제, 소통 강화를 통한 국민통합과 더불어 통일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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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10-0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관에서 국정지표를 담은 책자를 받았어요. 여러모로 필요이상으로 공을 들인 책자였는데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역시 빈깡통이 요란함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역사적 사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나신 그 분께서 소명소명하는데 오로지 손에 잡히고 눈에 당장 보이는 것에만 소명을 다하시니...이 어인 일일까요?....
역사에 이름 석 자 남겨두실라고 업적에 너무 목을 매시는 것 같아 보기 안 좋아요. 거기다 변명까지 늘어 놓으시니....전과 14범께서....
우리가 뭘로 보이시나?... 눈 가리고 아웅을 다 하시게... 도덕은 입에 올리시면 안될 것 같은데....참 세상은 주객이 전도되어도 그냥그냥 잘도 돌아가니...

cyrus 2011-10-07 17:29   좋아요 0 | URL
책자도 있군요. 뭐 아직 임기는 남았지만 그 사이에 국정지표 속 과제와
전략들을 실현시키기에는 늦은 감은 있네요. ^^;;

이화 2011-11-2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디로 어가는지 몰라서 여기에글을 올려봅니다 제가전화하니 좀있다 문자가왔는데 접수하라고하는데 어디서어떻게 들어가 접수를하는지 아직컴에익숙치않아 잘모르겠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남겼 거든요 꼭접수되었으면하는데요...

cyrus 2011-11-29 12:28   좋아요 0 | URL
댓글 내용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역사

이번 주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사실은 '한국정부론' 이라는 수업에서 내준 과제를 하고 있다.    과제의 주제는 이렇다.  '내가 만드는 한국정부사 ' 다.   

우리나라 정부의 역사는 1948년 제1공화국 수립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63년나 되었다.  짧으면서도 긴 그 세월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게 느껴지지만 생각보다는 어렵지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제1공화국에서 오늘날 이명박 정부까지 일어난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연표식으로 정리하였다.   시간적 순서로 배열된 단순나열식 연표보다는 각 정부 시기 때 일어난 사건들을 다시 정치, 사회, 경제면으로 분류하여 나름 입체적으로 한국 정부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구성하였다.  

지금 과제가 80% 정도가 완성되었는데 연표만 해도 A4 용지 8장 정도를 차지한다.  이번 과제에는 형식의 기준이 정해진 것이 없다보니 아마도 연표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과제 결론까지 첨가한다면 10장 이상은 거뜬히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과제의 제목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두 개의 한국정부사' 로 선택했다.   왜냐하면 보수진보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정부사의 쟁점에 대한 내용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역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의 팽팽한 대립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권에 따라 변화해왔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 시각에서 현대사를 이해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는데도 현대사는 크게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들이 고등학교 2~3학년이 배우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의 ‘좌파적’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이념 논쟁이 불거졌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근. 현대사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산업화, 경제 발전, 민주주의 확립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현행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계 등의 검증을 통해 확인된 내용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검정교과서 개정 문제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 표기에 대해서 또다시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정치적 논란을 불러오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현재에도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불러오고 있는데,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권위주의적 반공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진보 진영에서는 일부 보수 진영이 쓰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에 지금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운운하며 ‘자유민주주의’ 를 강조하고 있다.     

 

 

 

 

 

 

 

 

 

 

역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의 팽팽한 갈등은 자신들의 역사적 관점을 반영한 교과서를 출간하게 되면서 첨예한 대립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에서는 좌파적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의 문제점을 개선한 '대안교과서' 가 출간되었다.

지금도 한국정부론 과제를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 보수 진영을 대변하고 있는 역사교과서로 교과서포럼에서 나온 '대안교과서' 와 반대로 진보 진영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이 두 권의 책을 참고자료로 읽고 있다.  

현국현대사를 다룬 이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어보게 된다면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사의 주요 쟁점들이 서로 상반된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분단 책임     

진보 진영 역사학자들은 1948년에 좌익과 중간파의 통일정부 수립 노력이 있었으나 미군정과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고집하게 되었고 중립화 통일 노선을 택하지 못한채 분단노선을 결정한 것은 분단을 고착화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 소 공동위원회가 실패되기를 바랐던 이승만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가장 먼저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일명 '정읍 발언' 을 발표하였다.   

 

 

 

이승만의 '정읍발언' 이 게재된 신문기사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    

(<대안교과서 pp 40)

 
   

 

그는 통일정부 수립이 여의치 않으니 남한만이라도 임시적으로 단독정부를 수립하자고 연설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보수세력이 집결한 한국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은 이승만의 주장을 반대했다.    그리고 이승만의 판단과는 다르게 오히려 미군정은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김규식 등의 개혁적인 중도파 정치인을 지원했다.   하지만 미국과 좌우합작위원회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해서 좌우합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보수적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이 분단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승만의 독단적인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아닌 오히려 남침을 준비하기 위해서 소련의 스탈린의 지시로 남한보다 먼저 일방적으로 단독정부를 수립한 북한의 김일성에 책임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비판적인 정치 세력은 지금까지도 이승만의 이 발언(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시사한 이승만의 '정읍발언')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그에 따른 남북분단의 단서를 연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중략)     무엇보다도 이러한 비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당시 사실상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활동을 개시한 쪽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처럼 사실상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공산주의 체제의 건설을 목적으로 사유재산을 몰수하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토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남북 분단의 단초를 연 것은 북한의 소련군과 그에 협력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대안교과서> pp 140)



 

 2)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박정희 대통령 다음으로 지금까지도 극명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우남 이승만 (1875~1965) 

  

보수 진영에서 말하고 있는 이승만의 정치이념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민주주의, 반공주의, 반일정책. 북진통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은 정치이념에서 비롯된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대한민국 발전의 기틀을 잡는데 중요한 공훈을 세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후진국의 정치적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처럼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중략)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라시한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대안교과서> pp 158)

 

하지만 이에 대한 입장에서 진보 입장의 역사학자들은 이승만 정권은 분단과 빈곤으로 점철된 독재정권이자, 권력 연장을 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정권 인사 편성에 친일파를 등용해 민족 정기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김약수 국회부의장    

1949년 5월 20일 이문원 등 세 명의 현역 의원을 시작으로  

15명의 국회의원은 외국군대철수안, 남북통일협상안 등  공산당의 의견과 일맥 상통하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역사문제연구소, pp 92)  

 

무엇보다도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대안교과서에서는 반공주의 노선의 부작용을 간략하게 언급한 부분이다.     이승만 정권의 긍정적인 평가를 지면 한 장으로 할애한 정도에 비하면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역사문제연구소에 기획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에서는 좌익과 반대파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의 예로 국회 프락치 사건반민특위 습격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대안교과서에는 국회 프락치 사건이, 그리고 그 사건에 연루된 김약수의 이름마저도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3)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 성장에 대한 평가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도로에 샴페인을 뿌리는 박정희 대통령 

(사진출처: 한국경제)  

 

대안교과서에는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 를 낳았다고 정의하고 있다. (pp 186)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성장 정책은 그 당시로서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성정과 분배는 병행이 불가능했으며, 파이를 키우는 정책이 당시로서는 현실적이었다고 시사하고 있다.   전태일 분신사건 등과 같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 성장의 어두운 그늘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들도 소개하고 있지만 경제개발제체의 전개 및 성과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진보 진영의 역사학자들은 성장 중심의 박정희 시대의 경제 정책은 장기 집권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고, 경제개발계획은 장면 내각 정부에 수립된 것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며 경제 정책의 달성 결과에 치중한 편협된 평가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통치방식에 대한 교과서포럼과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바라보는 평가도 엇갈린다.  교과서포럼은 서양식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를 수립을 기여한 점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반면에 역사문제연구소는 일체의 민주적 행차를 무시한 '정보. 공작 정치의 최고봉' 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두 차례의 큰 전쟁 과정에서 군인으로 교육받고 입신한 그(박정희)의 정신세계는 타협과 조정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중략)    그는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소수 엘리트의 지도적 역할을 중시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에 관해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민주주의로서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대안교과서> pp 186) 

 

박정희는 철저하게 중앙정보부를 정치 통제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사용했다.  정보부는 박정희 체제를 유지. 강화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거의 모든 문제에 개입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체제를 '정보정치', '공작정치' 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략) 

박정희는 국회나 행정부를 통한 정치운영과 같은 일체의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했다.  그는 유신 선포 직후에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은 도리어 안정을 저해하고 비능률과 낭비만을 일삼아왔으며 정략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라고 말할 정도로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 절차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pp 257)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의 중요성 

지난 10년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정권의 ‘이념적 성향’ 에 맞는 내용을 넣기 위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며 충돌했다.    

편향 교과서를 비판하겠다는 교과서포럼은 대안 교과서를 출판했지만 편향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를 부합시키지 못했다.   일제시대에 대한 긍정적 기술과 여순 사건과 제주 4.3 사건을 ‘좌파세력의 반란’ 으로 규정,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체제 옹호론 등 또 다른 편향성 시비를 불러 왔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대안교과서 집필진들이 역사학 전공을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과연 이들이 역사를 공정한 기준과 관점으로 서술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교과서에 담기는 내용은 논란이 없을 정도로 학술적 검증이 마무리된 것들이 실려야 한다. 적어도 학술적으로 논쟁이 될 정도로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이라면 적어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수록되는 점에서 보류을 한다거나 다양한 시각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고 투명하게 임명된 검정위원들이 이를 검정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교과서로 공부해야만 하는 학생들이 항상 이 ‘교과서 전쟁’ 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역사 교과서를 재단하려고 하면 결국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만 혼란스러운 상황만 가중하게 될 뿐이다.      

결국 길고 긴 논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은 교과서, 아니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임무에 달려 있을 뿐이다.  좌. 우 이념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벗어나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사실을 토대로 객관적으로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역사 교과서 논쟁을 떠나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념으로 덧칠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볼 줄 아는 균형적인 안목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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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10-0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이가 교수가 된 것은 2000년 이후부터입니다.당연히 한국현대사는 정치학,사회학,경제학 전공자들의 전유물이던 때가 있었습니다.대안교과서 뿐이 아니라 <해방전후사의 인식> 필자들의 전공을 한번 살펴보십시오.사학과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현대사는 국사학과에서도 찬밥취급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정치학의 한국정부론이나 한국정당사에서도 한국현대사를 다루잖아요?

그리고 근대사에서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사 분야입니다.그런데 경제사는 경제학입니까, 역사학입니까...자본주의 이행논쟁을 초창기에 소개한 주종환 씨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경제사 교수입니다.이 분야는 농민층 분해를 다루니까 당연히 주종환 씨가 나선 것이죠.

원로 행정학자인 한정일 씨도 한국현대사에 대한 저작이 있습니다.행정분야를 연구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예를 들어 cyrus님도 한국지방자치제에 대해 연구한다면 당연히 한국현대사를 다룰 것입니다.나는 사학과가 아닌데...하면서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cyrus 2011-10-02 20:50   좋아요 0 | URL
<해방전후사의 인식> 필자들도 사학과 전공이 아닌 사람이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역사 중에서 현대사가 찬밥 신세라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행정학을 공부하는 책들을 보게
되면 한국현대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서양식
행정학 내용이 많아보니 비중있게 다루지 못하는 점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단점을 역사를 공부하면서 제 스스로 보완하는 길 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루쉰P 2011-10-0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국현대사라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처럼 아주 복잡한 것 같습니다. 이쪽도 자신이 정의요, 저쪽도 정의라 하니 말이에요. 결국에 내 자신의 역사관을 지니고 역사를 봐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면 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결론으로 오게 되고, 무지 복잡해 지는 것 같습니다. ^^
전 교과서로 역사를 읽은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접하다 보니 박정희나 이승만의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아주 분노가 깊어요. 게다가 우리나라 민중들이 정권에 반대해 저항을 한 것은 사실이니 분명 이 정권들에 대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겠죠. 흠..복잡해요. 복잡해.
시루스님도 과제하느라 복잡하시겠어요. ㅋㅋ 아이, 도움이 안 되네요. ㅋ

cyrus 2011-10-02 20:5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요즘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가지고 공방전을 펼치고 있으니까요
^^;; 저도 이번 기회에 독서라도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알고 싶어요.
위의 노자님 말씀대로 한국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만 찬밥 신세가 된 것이
아니라 실상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상세하게 배우지 않거든요.
막상 한국 근현대사 과목 수능 시험이나 모의고사를 치게 되면
20문제 중에는 한국현대사 관련되 문제가 3~4문제 정도,,?
제 기억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현대사보다는 근대사가
많이 나온다는거죠. 댓글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

ㅎㅎ 과제 오늘 마무리했습니다. 일단 첫 과제는 생각보다 일찍
끝냈는데 그 후로 연이은 과제가 나오게 된다면 여유가 없을거 같아요 ^^;;

2011-10-03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3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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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판결' 만 기억되는 <베니스의 상인> 

고전이란 누구나 내용은 알지만 읽어보지는 않는 작품이라고 했던가?   

<베니스의 상인>은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내용은 대충 안다.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인 샤일록에게 '1파운드의 살점을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 는 명판결만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앤토니오는 그의 이름만 대면 무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을 정도로 신용이 높은 상인이었다. 자신의 친구인 바싸니오포오셔에게 구혼하러 가기 위한 여비를 마련해주기 위해 샤일록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는 앤토니오에게 상당한 금액의 이자를 요구한다.  앤토니오는 샤일록의 부당한 제안에 경멸로 가득찬 비난을 하게 되지만 결국 그는 샤일록이 원하는 대로 원금을 제때에 갚지 못할 경우에는 '심장에서 가까운 살 1파운드' 를 주겠다는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빌린다. 그런데 공교롭게 상선의 사고로 원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게 되었고, 샤일록은 계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살 1파운드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앤토니오와 샤일록 간의 '살 1파운드' 논쟁은 법정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앤토니오 측이 불리한 입장에 놓여지게 되었지만 판결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법학 박사들의 등장으로 전세를 역전된다.   바싸니오의 연인 포오셔와 그녀의 시녀 니리서가 법학 박사로 변장하여 재판장에 나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포오셔는 계약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1파운드의 살을 떼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도려내라" 고 판결한다.  이것은 계약서의 내용이나 샤일록의 요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므로 법률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하지만 내심 앤토니오의 죽음을 원한 샤일록에게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을 도려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막판에 궁지에 몰린 샤일록은 오히려 '계약 내용에 베니스 인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 는 죄목으로 결국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는데다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받는 처지에 놓인다.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한 선한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를 살려낸 재치 있는 판결 정도만으로 알려져 있다.  샤일록이라는 이름은 사회적 약자에 횡포를 부리는 악덕 고리대급업자의 상징으로만 된 것이 아니다.  그가 '유대인 출신' 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은 오랫동안 '돈만 밝히는 민족' 으로 왜곡, 폄하되기도 하였다.    큰 맥락으로 보면 기독교와 이교도인 '유대교' 와의 싸움에서 기독교의 일방적 승리를 상징하는 작품으로도 볼 수도 있다.  

 

 

 샤일록은 왜 법정에서 칼을 갈았을까?

샤일록이 법정에서 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에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교도인 유대인이라는 점과 그 당시 중세 유럽의 유대인들에게는 고리대금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샤일록은 중세 유럽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스테레오 타입인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채권자로 그려질 수가 있었다. 

반면 앤토니오는 부자지만 친절하고 자기희생적인 한 마디로 말해 '선한 기독교인' 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는 이교도에 대해서는 비관용적이고 비타협적이다.   

 

샤일록, 나는 이자를 수수하는 금전거래를  

해본 적이 없지만 내 친구의 시급한 필요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관행을 깨려 하오.  

- 제1막 3장 중 앤토니오의 대사 (pp 26) -

 


그는 샤일록에게 빚을 청하면서도 고리대금업을 일종의 '투기' 로 인식하면서 이자수취를 경멸하는 기독교도로서의 도덕관을 드러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샤일록은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에 제법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 시대라도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그것 때문에 기독교로부터 멸시받고 조롱받고 증오를 받았기에 샤일록은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계약서를 흔들며 앤토니오에게 이자를 요구하는 것만 아니라 기독교에게 핍박받았던 '유대인' 민족으로서의 힘을 당당하게 과시한다.  

 

난 차용증서대로만 하겠고, 당신 말은 듣지 않겠소. 

난 차용증서대로만 할 작정이니까 말일랑 더 이상 마오. 

난 머리를 흔든다든가, 측은하게 여긴다든가, 한숨을 쉰다든가,  

기독교인 중재자들에게 주장을 굽히는 등의 우유부단하고 

멍청한 눈을 한 바보는 되지 않겠단 말이오. 따라오지 마시오. 

말하기 싫소이다.  난 차용증서대로 할 것이오. 

- 제3막 3장 중 샤일록의 대사 (pp 95) -

  

"계약대로 하겠다" 고 큰소리치며 법정 안에서 칼을 가는 샤일록의 모습은 이자에 집착하는 사악한 고리대금업자가 아닌 기독교인들의 박해에 대한 복수심에 불 탄 유대인의 모습이다.   

 

바싸니오   무슨 이유로 당신은 칼을 그처럼 열심히 갈고 있소. 

샤일록      저기 저 파산자에게서 벌금을 베어내기 위해서요.  

- 제4막 1장 중에서 (pp 115) -

 

그러나 그가 아무리 정당한 이론을 펼쳐도 결론은 KO패로 정해져 있다.  앤토니오를 신뢰하지 못하고, 계약서만 굳게 믿었던 샤일록은 크게 참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샤일록은 유대인으로서의 서러움을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는 민족의 위력을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결국 신뢰보다 취약한 계약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악인' 샤일록의 외로운 최후

'악인' 샤일록과 '선인' 앤토니오의 대결구도로 인식되어 온 <베니스의 상인>은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읽게 된다면 오로지 악하기만 한 악인과 선하기만 한 선인이 없으며 다만 '악의가 선의를 넘어서는 그 순간들' 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샤일록은 그동안 대부분 파렴치한 악인으로 그려졌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받고 난 뒤의 그의 모습은 동점심을 유발할 정도로 처량하다.   오랫동안 모은 재산의 절반은 한순간에 국가로 귀속되어지고 자신의 딸 제시커는 기독교인 청년 로렌조와 결혼하게 되어 아버지의 곁을 떠나게 된다.  샤일록은 악덕 고리대금업자가 아닌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받아야하는 외로운 민족의 전형이면서도 딸에게서도 버림받는 외로운 아버지의 모습이다.   

법정 판결 이후 샤일록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최후마저도 언급되지도 않는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두 딸이 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의 임종을 지키지 않는 것은 영감에게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파산 직전으로 몰리게 된 샤일록도 고리오 영감처럼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돈' 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악덕 고리대금업자가 '돈' 때문에 자신도 상처를 입고 몰락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돈' 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법대로' 를 외치는 샤일록이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종국엔 몰락을 겪는 모습을 통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만 샤일록은 돈만 밝히는 전형적인 수전노가 아니다.   유대인들의 사회적 진출이 막혀 있었던 그 당시 유럽의 사회가 '샤일록' 이라는 악명 높은 유대인 고리 대금업자를 만들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돈 많은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는다. 그만큼  부(副)의 위력에 따라 그 사람의 지위와 평가도 달라진다.  인간은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재물을 늘리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은 원초적 욕망도 무시할 수 없다.  물질만능 시대의 사회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앤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삼겠다는 샤일록의 욕망은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정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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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의 악인은 사회가 만든 부조리와 악행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예나지금이나 본인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는생각해요. 글쎄....써놓고보니 어려운 주제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cyrus 2011-10-01 11:36   좋아요 0 | URL
현맘님 말씀이 맞아요. 우리가 나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조건 성격만 가지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잘못된 사회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과 사고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아이리시스 2011-10-0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밤 읽을 책, <베니스의 상인> 당첨! 시루스님 덕분.^^

cyrus 2011-10-01 11:41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하네요. 참고로 베니스의 상인은
민음사에서도 나왔는데 개인적으로는 문학동네판을 추천하고 싶어요.
민음사에서 나오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최종철 교수가 번역을 맡고 있는데
이 분의 번역한 문장이 문어체라.. 간혹 대사 중에 한문으로 이루어진 단어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0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또래의 극작가로 크리스토퍼 말로가 있었는데 라이벌이었다네요.말로는 <베니스의 상인>에 맞서 역시 유대인이 주인공인 <말타의 유대인>을 썼답니다.이 두 작가의 관계는 상당히 재밌어서 역사가나 문학애호가들에게 회자되었죠.우리나라에도 말로의 작품이 몇 개 번역되어 있더군요.유대인이 당시의 기독교권 국가의 문학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고 싶은 연구자들에겐 이 두 작품이 흥미로운 비교연구대상이 될 것 같아요.

cyrus 2011-10-02 20:58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 번역본 해설을 보게 되면 크리스토퍼 말로는 꼭 언급하더라고요.
노자님 말씀대로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에 말로의 희곡작품이 번역된
걸로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셰익스피어 읽기에는 말로의 작품을
무시할 수 없을거 같아요. 시간이 된다면 말로의 작품을 비교하여
읽으면서 노자님이 제시한 주제(?)에 대해서 탐구해봐야겠습니다. ^^;;
 

 

 

 

 

 

 

 

 

     

 

  

 Scene #1  대학교 축제의 모습

어제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맨스필드의 단편선집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그녀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의 동명제목인 '가든파티' 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제는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 첫 날이었다.  축제와 파티는 의미에만 조금 차이가 있을뿐 공통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술을 마시면서(?) 노는 것이다.  

원래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면 대부분 수업은 휴강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축제를 마음껏 즐기기 위한 교수님의 배려(?)도 있지만 실제로 축제 기간에 수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강의실 안까지 들려올 정도로 엠프에서 울려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흥겨운 노랫소리에다가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청춘남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수업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정말로 참기 힘들 정도로 고역이다.    교수님이 열심히 칠판에 써가는 내용은 안중에 없다. 그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된다.

하필이면 어제 들은 수업은...      '정치학' 이었다.    

안그래도 원래 수업도 지루한 마당에 어제 같은 날은 나뿐만 아니라 출석한 모든 학생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리라.  ^^;;

 

아직 축제 첫날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우리 학교 축제는 예전에 비해 간소화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뿐만 아니라 최근 대학 축제들은 24시간 하루종일 술만 마시고 유명한 가수들을 초청하는 그저 먹고 놀기만 하는 축제에서 탈피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 '반값 등록금' 에다가 대학 구조조정 등과 같은 대학교와 대학생들에게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이슈가 거론되고 있기에 예전과는 다르게 대학교 축제는 '경제적' 이면서도 한편 학생들에게 유익한 취업 및 문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취업' 과 '진로 선택' 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보니 축제를 즐길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어제 잠깐 학교 도서관에 들리게 되었는데 축제 기간 속에서도 열람실에서 공부에 열중한 학생들이 많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펙을 쌓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에 도서관 입구를 나오는 순간,  자신의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술에 떡이 된(?)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축제 기간이 되면 대학 캠퍼스 안에는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남이 무엇을 하든 간에 관심이 없으며 남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익숙한 현실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뿐이다.

 

    

 Scene #2   인생이라는게... 그런 것이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땅 위에 살아가면서도 인간은 자신의 삶과 상반되는 현실을 목도하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낯선 환경을 이해하고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번에 처음으로 읽는 맨스필드의 단편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여성 작가의 단편소설이라서 많은 기대감을 안은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과거에 오 헨리와 체호프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얻게 된 인상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성 작가답게 인물 심리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일상의 깨달음으로 전환하는 이야기 전개는 읽는 내내 결말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인 '가든파티' 는 주인공 로라가 끝내 말하지 못한, 형용할 수 없는 여운으로만 남겨진 그녀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초여름의 어느 날, 주인공 로라는 노동자들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천막을 치고 밴드를 옮기며 파티를 준비하는 것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빈촌인 아랫 마을의 스콧이라는
젊은 짐 마차꾼이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파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빠 로리만 제외하고, 모두 가든파티와 죽음은 별개의 문제라며 예정대로 파티를 연다. 끝내, 로라는 한 쪽에선 사람이 죽었는데도 파티를 계속한다는 것은 비정하다면서 사치스러운 파티를 떠난다.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죽은 짐 마차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어둡고 누추한 집을 찾은 로라는 마치 잠을 자듯 평화롭게 누워 있는 짐 마차꾼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난 후, 흐느끼며 집을 나오게 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 오빠 로리를 만나게 되는데 로라는 오빠에게 수수께끼와 같은 의미의 말을 하게 된다.

 

“무서웠어?”
 
“아니.” 

로라가 흐느꼈다.

 "그저 대단했어. 하지만 오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말, 그렇지?”

로리가 말했다.                  

([가든파티] 중에서, pp 114)

  

이 소설은 파티에 들뜬 부유한 사람들과 교통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비참함을 비교하며 인생의 한 단면을 펼친다. 하지만 그 방법이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그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소녀가 하층 계급 노동자의 죽음을 접한 후 겪는 심리 변화만 따라간다. 사건 뒤에 담긴 의미들은 로라가 마지막에 오빠에게 하는 말, `인생이라는게... 그런 것이다` 라는 말에 모두 압축된다.

 

  

 Scene #3  '현실' 이라는 익숙한 동굴에 갇혀버린 인간

 

피터르 브뤼헐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1555~1558년경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를 읽으면서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이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로 하늘을 날게 된 인간 1호이면서도 비행을 하다 추락사를 하게 된 불명예스러운 인간 1호이기도 하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카로스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제목과는 다르게 목가적인 풍경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오른편 커다란 배 앞에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는 두 개의 다리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최후 모습이다.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이카로스의 발버둥은 그 비극적 상황에도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주의를 끌지 못한다. 농부는 여전히 밭을 가는 데 여념이 없고, 배는 자신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낚시꾼도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저 고기잡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양치기만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브뤼헐은 '이상' 을 좇는 이카로스보다 열심히 '현실' 을 살아가는 이름 모르는 민중들을 그림의 중심에 놓았다.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이카로스의 욕망을 무모하고 어리석은 의미로 그렸다.   

하지만 그림 속 민중들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매진하는 현실주의적 삶도 부작용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삶의 환경에 익숙해지고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은 자칫 '현실 안주' 라는 문제점으로 발전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익숙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미지의 상황 앞에서는 두려움으로 인해 움츠려들게 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제시한 '동굴의 우상' 처럼 동굴에 오랫동안 생활한 인간은 동굴 밖에 펼쳐져 있는 넓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결국에는 현실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편견을 낳게 된다.

   

 

 Scene #4   하나의 세상, 두 가지 현실

베이컨은 다른 사람의 감정, 정서 및 경험과 비교함으로써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로라가 하층민 가족이 겪은 죽음과 그로 인한 슬픔을 접 목격함으로써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잠깐이마나 고개를 돌려본다면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조세희의 <난쏘공>을 읽고나서부터 항상 느낀 것이지만 하나의 세상 속에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모순적인 현실이 공존하고 있다.  '난쏘공' 과 '가든파티' 속 시대적 배경의 모습처럼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상반된 인생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공장 노동자들은 24시간 투쟁을 벌이고 있고, 정부와 기업의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면서 골프를 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는 실직으로 인한 가난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권에서는 민생 대책에 고심하기보다는 곧 치뤄질 대선의 승리라는 현실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세계적 금융 위기라는 찬 바람이 슬슬 불어 오고 있는데도 정부는 경제적 혹한에 취약한 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따뜻한 옷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서민들은 올해의 겨울은 지난해처럼, 아니 이보다 더한 혹독한 계절을 맞이하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권력형 비리로 인해 잡음이 일어나고 있고 각 정당들은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발빠르게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의 그늘 진 곳에서는 또 다른 어느 누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로라의 애정이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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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9-2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선거철만 되면 인간 대접을 받으니 다행이죠. 개인적으로는 매일 선거였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1-09-29 19:21   좋아요 0 | URL
선거철이 지나도 정말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11-09-28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제 때 수업을 하는 교수님이 어딨니?
축제를 간소화 할 필요는 있지만 축제는 축제대로 놀아줘야 하는데
그 기간에도 스펙을 쌓기위해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니 좀 그러네.
울나라 대학생은 가면 갈수록 불쌍해지는 것 같아.
대학의 낭만이란 게 없는가 보다.ㅠㅠ

cyrus 2011-09-29 19:23   좋아요 0 | URL
원래는 축제 기간 때는 수업을 안 하는데 이틀 전 수업 같은 경우에는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한거예요.
2학기 같은 경우에는 축제 기간에다가 공휴일이 있어서 1학기보다는
수업 일수가 적거든요.

저뿐만 아니레 제 주변에도 대학의 낭만을 점점 잃어버리는거 같아서
씁쓸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제때 수업이라뇨..ㅎㅎㅎ 요샌 정말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저희 학교는 축제가 재미없어서 그런지 남학생들이 여학교로 다 놀러가는 바람에
학교에 여학생들만 득실댔었던 안좋은(!) 기억도 있어요.ㅎㅎㅎ
그래도 그때만큼은 공부하는 학생들은 없었는데 정말 세월이 다르네요.

cyrus 2011-09-29 19:24   좋아요 0 | URL
글 쓰면서 언급을 안 했는데,,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이 있어서
학습 진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거예요. ^^;;

blanca 2011-09-28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새 축제 분위기는 사뭇 다르군요. 다른 학교 축제 원정 가는 일도 이젠 드문 풍경이 되었겠어요. 아, 저도 요새 양극화 풍경을 절감합니다. 인생이라는 게 때로 참 잔혹한 것 같아요. 저 그림에서 이카루스를 한참 찾다 보고 웃었어요^^;; 재미있는 그림이네요.

cyrus 2011-09-29 19: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역시 다른 학교 축제 원정이라고 갈려고 했었는데,,
2학기 때는 축제를 안 하는 학교도 있었어요. ^^;;

잘잘라 2011-09-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쪽에서는 축제 한 쪽에서는 수업이라니.. 허어어 우째 그런 일이..
인생이.. 시절이.. 참....

cyrus 2011-09-29 19:27   좋아요 0 | URL
ㅎㅎ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했던거에요 ^^;;
야간 수업 같은 경우에는 휴강인데 주간에 강의가 있는 몇 몇 교수님은
축제 기간에도 수업을 하기도 한답니다.

맥거핀 2011-09-2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이 참 좋아요. 맨스필드의 단편으로부터 학교 축제, 그리고 이카로스의 그림, 사회의 조망...(개인적으로는 그냥 쓸데없는 생각들이 드네요. 그때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시끄러운 축제를 원망하는 학생이었으면 지금 좀 나으려나? - 축제 때, 늘 술에 떡이 된 몰골로 본부앞 잔디밭을 굴러다니던 1人이 하는 한탄..;;)

cyrus 2011-09-29 19:29   좋아요 0 | URL
저도 4년 전, 1학기 때 이틀동안 잠 안 자면서 술 마셨어요. ^^;;
특히 3일동안 축제 기간하면 절대로 집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1-10-0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라 정도의 적당한 감상주의가 사회안정에 좋지요.거기서 계급간 갈등 운운 하다가 혁명을 해야겠다고 선동하면 글쎄요...혁명 좋아하는 자칭 정통 혁명주의자에겐 이 단편이 불철저한 감상주의를 전파하는 유해한 반혁명적 작품이겠지요.

cyrus 2011-10-01 21:18   좋아요 0 | URL
ㅎㅎ 혁명론자들에게는 소설이 그렇게도 볼 수도 있겠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1-10-0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대학이 제대로 된 낭만을 즐기던 때가 있었나요.1985년 신동아에선가 본 기사인데 요즘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된다는 내용이었어요.축제기간에도 도서관에서 취직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요즘에만 있는 게 아니고...그리고 그렇잖아도 방학도 긴데 축제기간까지 강의를 안 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죠.시간이 모자라면 축제기간에라도 수업해야죠.

cyrus 2011-10-01 21:19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실업의 역사를 정리한 강준만의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최근에 일어난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노자님이 언급하신 80년대 중후반에도 대학생 취업난이
거론되었더군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80년대의 대학생들은
졸업만 하면 다 취업이 되는줄만 알았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10-01 22:3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고학력자를 많이 흡수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보면 일제시대에도 고학력자들은 실업자기 많았다는 내용이 있고요.

지금의 50대 전후 나이들도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