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보면 희곡
멀리서 보면 연극
No. 7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철학극장
원작 요코야마 다쿠야
연출 / 무대 디자인 고해종
2024년 6월 8일 토요일 오후 3시 공연 관람
‘친구는 가까이하고, 적은 더욱 가까이하라(Keep your friends close, but your enemies closer).’ 영화 <대부 2>에 나온 대사다.
친구와 가까이 지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갈등이 생긴다. 쩍 벌어진 관계의 틈에서 미운 감정이 새어 나온다. 친구와 오랜 우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크게 싸운 후에 부서질 뻔한 가냘픈 우정이 더 단단히 굳어져서 더 친해지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친구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 적이 된다. 내 몸과 마음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친구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적이다. 과거에 친했던 친구의 얼굴이 불현듯이 떠올리면 그의 이마에 ‘적’이라는 글자를 크게 새긴다. 분이 풀릴 때까지 증오심이 가득 묻힌 화살을 적의 얼굴에 계속 쏜다.
미로 같은 서울 을지로 4가의 골목길에 소극장 ‘을지 공간’이 숨어 있다. 예전에 낭독극으로 선보였던 요코야마 다쿠야(横山拓也)의 희곡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이 을지 공간에서 정식으로 초연되었다.
*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엮음 《현대일본희곡집 10》 (연극과인간, 2022년)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수록 (이혜정 번역)
일본 희곡을 무대 위에 올린 ‘철학 극장(philotheatre)’은 ‘연극으로 철학 하기’를 지향하는 극단이다. 극단 대표 겸 연출자 고해종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자크 라캉(Jacques Lacan),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철학을 접목한 연극을 만들고 있다.
무대는 단순하다. 다다미가 깔린 좁은 직사각형 형태의 개방형 무대다. 무대 위에 나무로 만든 작은 창살문 두 개가 있다. 극 중 인물들은 창살문 사이에 두고 대화한다. 대화하는 도중에 직접 문을 옮기기도 한다. 객석은 무대 양쪽에 있다. 객석과 무대가 상당히 가깝다. 배우들의 표정 연기뿐만 아니라 건너편 객석에 있는 관객들의 표정까지도 볼 수 있다.
연극은 관객들에게 과거(1991년 여름)와 현재(2018년 겨울, 2019년)가 겹쳐진 ‘불편한 상황’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에 그림 실력이 뛰어난 오사와 준(大沢 潤, 권주영 분)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왼쪽 눈을 크게 다친다. 그는 평생 오른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준의 왼쪽 눈을 다치게 만든 사고에 휘말린 가나모리 기미코(金森 君子, 박수진 분). 그녀는 <명탐정 메에>라는 그림책을 발표하여 신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기미코의 얼굴에 반쪽이 된 기쁨의 표정이 서려 있다. 어린 시절에 일어난 사고가 기미코의 기쁜 표정을 완전히 펼치지 못하게 꽉 잡고 있다. 기미코는 죄책감에 지배당한 채로 성장한다. 그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친하게 지냈던 준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 가해자라고 생각한다.
불의의 사고는 준과 기미코의 우정뿐만 아니라 두 가족의 평범한 일상마저 무너뜨린다. 기미코의 아빠 유타로(悠太朗, 박승현 분)는 자신이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일찍 세상을 떠난 기미코의 엄마를 대신해 조카를 친딸처럼 돌본 마이코(舞子, 심은우 분)는 준의 부모(준의 아빠: 황규찬 분, 준의 엄마: 고은민 분)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준의 부모가 사이타마로 이사하게 되면서 준과 기미코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준의 사연을 들은 가자미 마사시(風見 匡司, 최준하 분)는 기미코의 그림책에 어린 시절 준이 그렸던 양 그림과 비슷한 삽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가자미는 준의 왼쪽 눈을 다치게 한 것도 모자라 준의 그림을 도용한 기미코를 용납하지 못한다. 가자미는 준과 기미코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는 준에게 기미코를 만나면 사과와 보상을 제대로 받으라고 재촉한다.
연극에 몰입한 관객은 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가자미를 옹호할 것이다. 가자미의 감정에 이입하면 기미코는 준의 친구가 아니다. 준의 왼쪽 눈에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었고, 준의 그림 실력을 훔친 적이다.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이별하게 된 준과 기미코는 27년 만에 다시 만난다. 하지만 여기서도 관객들은 또 한 번 불편한 상황을 눈앞에서 본다.
기미코는 자기 때문에 준이 평생 힘들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준의 한쪽 눈을 잃게 만든 본인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데 준은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기미코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기미코에게 사과하지 말라고 한다. 기미코를 너그럽게 대하는 준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준의 얼굴에 ‘철학’이라는 조명을 비추면 그가 기미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준의 얼굴은 철학자의 얼굴과 비슷하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와 자크 데리다. 이 두 철학자의 얼굴이 포개져 있다. 두 철학자의 관심사는 ‘용서’와 ‘환대’다.
[레비나스 철학 읽기 모임 첫 번째 선정 도서(6~8월)]
*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2024년)
레비나스는 ‘나’라는 주체가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탐구했다. 레비나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이성으로 무장한 주체를 중시했다. 여기서 레비나스는 주체 및 자아 중심 철학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주체를 이성적 존재로 상정하게 되면 타자는 주체에 동화되거나 흡수되는 존재로 격하된다. 레비나스는 주체의 권력화 또는 특권화가 전체주의로 자라나는 문제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서 경고한다. 레비나스의 타자 중심 철학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관계를 강조한다. 레비나스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도 ‘이웃’이다. 타인이 사회적 약자라면 그들의 고통을 보듬어주면서 보호해야 한다. 레비나스가 바라보는 타인의 얼굴은 개별성과 존엄성이 내포되어 있다.
* 자크 데리다 · 안 뒤푸르망텔, 이보경 옮김 《환대에 대하여》 (필로소픽, 2023년)
* 자크 데리다, 배지선 옮김 《용서하다》 (이숲, 2019년)
* 강남순 《데리다와의 데이트: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행성B, 2022년)
레비나스가 타자를 환대하는 방식이 ‘무조건적 환대’라고 한다면, 데리다는 환대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환대의 개념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데리다는 환대의 복잡성과 양면성을 좀 더 드러내기 위해 ‘호스티피탈리티(hospitalité)’라는 신조어를 제시한다. 환대와 적대를 뜻하는 두 단어를 합친 것으로, ‘적환대’로 번역되기도 한다. 데리다는 이 신조어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환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낯선 손님을 만나면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데리다 철학에서는 이 질문을 ‘문지방 질문(threshold question)’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호기심 어린 눈빛과 친절한 미소로 손님에게 드러내면서 ‘누구세요?’라고 말하면서 먼저 말을 걸어온다. 이것은 ‘환대의 질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낯선 손님을 향해 경계의 눈빛을 쏘면서 ‘누구세요?’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 상황에 나오는 ‘적대의 질문’이다.
문지방은 환대와 적대가 동시에 있는 경계다. 하나의 용어 또는 명제에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들어 있는 것을 ‘아포리아(aporia)’라고 한다. 데리다의 환대는 아포리아다.
극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 장치인 창살문은 상대방을 환대하거나 적대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데리다의 문지방 즉 ‘호스티피탈리티 문지방’이다.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이 재공연된다면 극 중 인물들이 서로 대화할 때 창살문을 어떻게 옮기고, 또 어디에 배치하는지 살펴보는 일이 연극 감상 포인트다.
어른이 된 준은 오랜만에 만난 기미코를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적이 아니라 어렸을 때 친하게 지낸 이웃 친구로 대한다. 준은 자꾸만 자신을 향해 거듭 사과하는 기미코에게 “사과하는 거 금지”라고 말한다. 기미코는 준과 헤어지기 직전에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551쪽). 자신을 용서한 준의 도움으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말끔히 씻어낸 기미코는 환대의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준과 기미코는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확답하지 않지만, 두 사람은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를 바라본다. 웃음은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면서 상처 입은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은 텍스트로 여러 번 읽어도, 공연을 봐도 모호한 느낌이 독자와 관객을 맴돈다. 모호한 연극의 단점이 난해함이라면, 장점은 관객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은 아포리아적 희곡이다. 철학 연극은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려주지 않는다. 관객은 스스로 철학자가 되어 질문해야 한다.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 나를 아프게 한 타인을 용서하면서 환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 덧붙이는 토막글
* 권주영 배우와 박세인 배우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를 운영하고 있다. 박세인 배우가 맡은 역은 기미코의 친한 후배 이시모토 도모(石本 智)다.
* 세 장의 사진에 등장한 남성은 오사와 준을 연기한 권주영이다. 권주영 배우는 작년 10월에 공연된 청소년극 <Tank; 0-24>에 출연했는데, ‘권융’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공연을 다 보고 난 후에 나는 권주영 배우에게 본인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때 배우 얼굴이 나온 사진을 쓰겠다고 허락을 구했다. 권주영 배우는 흔쾌히 사진을 보내주면서 얼마든지 써도 된다고 했다. 3개월이 지나서야 약속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