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 여성이 헬레네(Helen), 안티고네(Antigone), 메데이아(Media) 등이다. 국내에서의 인지도가 다소 낮지만, 사실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도 앞의 세 사람 못지않게 우여곡절을 겪은 비극적인 인물이다.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2(도서출판 숲, 2021)

1권 『메데이아수록, 2권 『헬레『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수록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소포클레스천병희 옮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도서출판 숲, 2008)

안티고네』 수록


* 소포클레스, 김기영 옮김 오이디푸스 왕 외(을유문화사, 2011)

안티고네수록

 

* 소포클레스, 강대진 옮김 오이디푸스 왕(민음사, 2009)

안티고네수록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결성된 그리스 동맹군의 총지휘관이다. 그런데 아울리스 항구에 순풍이 불지 않아서 수많은 군함이 꼼짝하지 못한다. 예언자의 신탁에 따르면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Artemis) 신에게 제물로 바치면 순풍이 생길 수 있다. 아르테미스의 도움을 받은 이피게네이아는 죽음을 면하고, 타우로이족이 사는 타우리케라는 곳에 살게 된다. 그녀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을 하는 사제가 된다. 제물은 표류 중에 타우리케에 당도하는 그리스인들이다. 타우리케에 있는 그들은 이방인이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이피게네이아가 타우리케에서 우연히 만난 동생 오레스테스(Orestes) 일행과 함께 극적으로 탈출하는 과정을 그려낸 공연극이다


제물 바치는 신전에 이피게네이아와 하녀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하녀들은 포로로 잡혀 온 그리스인들이다. 하녀들은 합창하는 코로스(Chorus)극 초반부에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여기에 맞춰 코로스는 이피게네이아의 불운과 비관적 상황을 강조하는,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대의 노래에 화답하여, 여주인이시여,

나는 아시아풍 가락의 야만적인 노래

부를 것인즉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무사 여신들의 만가에서나 울려 퍼지고

하데스가 환희의 찬가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부르는 그런 노래예요.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179~185, 천병희 옮김, 296)



에우리피데스는 아시아풍 가락의 야만적인 노래(180행)를 죽은 자를 위해 부르는 만가(挽歌)와 같다고 묘사한다.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그리스인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아시아(에 속한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와 다를 것이다.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으면 이방인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니면 이방인으로 간주한다. 때론 이방인을 민주정과 평화를 중시하는 그리스적 정체성과 상반되는 야만적이면서 호전적인 존재로 취급한다.


타우리케의 포로가 된 그리스 여성들은 자신들 또한 억압받는 이방인이지만, 또 다른 이방인들의 나라인 아시아를 야만적인 나라로 보고 있다. 그리스인을 이방인과 거리를 두면서 그리스 문화 및 민족의 우수성을 은근슬쩍 드러내는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비극인데도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코로스의 노랫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자면, 타 국가로부터 억압받는 여성을 단순히 피해자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들의 정체성 및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인종과 계급은 피해자 집단 내에 차별을 생산한다. 여성은 단순하지 않다. 여성은 살아가는 과정이 비슷하고, 공통된 차별을 경험하는 단일하고 매끄러운 존재가 아니다


이방인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거기서부터 생긴 편견과 차별은 아주 질긴 생명력으로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자라나고 있다. 인종 혐오와 차별은 잘라내도 그 자리에 또 다른 머리가 생기는 신화 속 괴물 히드라(Hydra)와 같다.

















[대구 장르문학 전문 책방 <환상문학> 여름 호러 독서 모임 선정 도서]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김지현(아밀) 옮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현대문학, 2014)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진영(정탄)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황금가지, 2009)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진영, 류지선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4(황금가지, 2012)




고대부터 존재해온 인종 차별’ 히드라는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소설 속에서도 살고 있다러브크래프트우주에서 온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을 쓴 공포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괴물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외형이 끔찍하다. 불쾌한 냄새까지 풍긴다그로테스크한 괴물들은 소설 속에서만 나타나는 가공의 존재다. 하지만 인종 차별히드라는 소설과 현실 속에 살고 있다.
















* 미셸 우엘벡, 이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필로소픽, 2021)




러브크래프트는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 그는 흑인과 유대인을 싫어했다. 자신의 몸속에 백인 앵글로색슨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고, 순수한 백인의 피에 다른 인종의 피 한 방울이라도 절대로 섞이면 안 된다고 믿었다러브크래프트의 극단적인 인종 혐오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 러브크래프트의 삶과 작품을 비평한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그가 쓴 소설 몇 편만 골라서 읽어 보면 인종차별적인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다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크툴루의 부름악마를 숭배하는 이누이트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웹 교수는 48년 전에 고대 비문 발견에는 실패했지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탐사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린란드 서부 해안의 고원 지대에서 쇠락한 에스키모 부족을 만났다. 그들의 종교는 악마를 숭배하는 기묘한 형태의 이교로서 무엇보다 극도로 잔인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웹 교수는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다른 에스키모 부족들은 그 종교에 대해 거의 몰랐고 설렁 거의 아는 이가 있다고 해도 몸서리를 치며 입에 올리기 꺼려했다.

 

(정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148~149)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가로 활동하는 김지현은 자신이 번역한 크툴루의 부름차별적인 의미가 담긴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사람들)’가 아닌 이누이트로 썼다. 실제로 이누이트는 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익혀 먹는다. 


김지현 작가가 번역한 단편 선집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레드훅의 공포는 수록되지 않았다. 레드훅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 팬과 러브크래프트 전문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최악의 작품이다레드훅의 공포에 눈이 째진 동양인들(정진영 번역, squinting Orientals)’이라는 표현이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이교 집단을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공포의 전율에 맞춰 춤을 춘다(정진영 번역, Apes danced in Asia to those horrors)’라고 묘사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비현실적인 괴물이 아니다. 여기저기 떠도는 인종 차별괴물을 경계해야 한다. 이 녀석은 현실적인 괴물이다.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 괴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데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대중의 침묵과 무관심을 먹고 자라는 인종 차별괴물이 더 무섭다.






<cyrus의 주석>



* 크툴루의 부름중에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182

 

 바로 거기서 시드니 사임[주1]이나 앤서니 앤거롤라[주2] 같은 화가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기괴한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 183쪽 역주


 Sidney Sime(1867~1941)[주1] 영국의 화가. 환상적이고 기괴한 장면을 많이 그렸다. 



[1] 시드니 사임의 출생 연도는 1865이다.


[2] 앤서니 앤거롤라(Anthony Angarola)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러브크래프트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흑인과 유대인 등 타 인종을 혐오한 순수 백인 앵글로색슨 혈통주의자인 러프크래프트가 이민자 출신 화가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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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09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드훅의 공포 굉장히 매력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인종차별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지요..

cyrus 2023-08-12 07:52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몇 개 나오지만, 러브크래프트의 한계를 인지하고 소설을 읽으면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 사계절 만화가 열전 21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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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에 새로운 독서중독자가 등장한다. 별명은 다크섹시다. 직업은 사서. 2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다크섹시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집안에서 혼자 책을 좋아했다. 독서에 재미를 못 붙인 집에 책이 늘어날 까닭이 없으니 별수 없이 같은 책을 반복해 읽었다


(8)

 


이 문장을 보면서 살짝궁 눈가가 촉촉해질 뻔했다면 당신은 독서중독자다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시작 전에 독서중독자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부모가 강요하지 않아도 책 읽기를 좋아한 아이







책을 읽지 않는 부모라면 자녀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을 수 있다. 책 대신에 자녀에게 유익하면서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쳐줄 것이다. 하지만 책 읽지 않는 부모도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책 읽기를 강요할 수 있다나는 ‘책을 읽지 않는 부모가 강요해서 책 읽기를 좋아한 아이였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는 내가 똑똑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잔뜩 구매했다어머니는 내가 밖에 돌아다니면 껄렁껄렁한 아이들과 어울릴까 봐 잔뜩 걱정했다. 오락실에 가지도 못하게 했다. 혼자서 밖에 나갈 일이 없던 나에게 장난감이 먼저 다가왔다. 그 장난감은 바로 이었다.


아버지는 배고픈 청춘 시절에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일을 했다. 그중 한 일이 책 장사였다. 노상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책들을 올려놓고 파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 일을 얼마 동안 했는지 모르겠다. 경상도 출신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지 않은 아버지는 책 파는 일이 썩 즐겁지 않으셨나 보다.


그래도 팔다 남은 책 몇 권은 버리지 않았다. 그 책들은 지금도 우리 집 창고 어딘가 먼지 이불 속에서 자고 있다. 몇 년 전 창고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든지 펼쳐 볼 수 있었다. 내가 자주 봤던 책은 문고본으로 나온 명탐정 셔얼록 호움즈》 전집과 세로쓰기로 된 세계 단편 문학 전집이다. ‘셔얼록 호움즈셜록 홈스의 옛 표기. 말이 전집이었지 셜록 홈스 시리즈에 속한 모든 단편이 수록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편집 상태가 상당히 조악했다. 그렇지만 틈만 나면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세계 단편 문학 전집은 나를 세계문학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진입하게 해준 결정적 역할을 한 책이다. 아, 갑자기 이 오래된 친구들이 보고 싶다. 당장 창고에 가서 얼른 깨워주고 싶군.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독서중독자들을 위한 거울이다. 하지만 거울이라고 해서 독서중독자들의 공통점만 보여줄 수 없다. 분명 동족과 다른 독특한 성격과 독서 취향을 가진 독서중독자도 있다독서 모임을 참여해보면 알 수 있다. 독서중독자들은 책을 좋아하는 성격만 같을 뿐이지 읽은 책에 관한 생각이나 책을 대하는 태도 등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전작에 등장한 축구광 독서중독자인 사자는 독서중독자들은 가짜 뉴스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독서중독자들은 책 읽느라 가짜 뉴스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127~128). 나는 사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책 속에 독서중독자들도 무심코 믿어버리기 쉬운 가짜 정보가 있다. 사자가 생각하는 책은 여기저기 가짜로 널려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반대되는 가짜 정보가 없는 청정 지식의 보고. 하지만 현실 속의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의 유익함을 지나치게 긍정하고, 책을 쓴 저자의 견해를 의심 없이 옹호하는 것은 우리 개는 절대로 사람 안 물어요라고 주장하는 견주의 생각과 비슷하다. 반려견의 성격과 행동에 무관심한 견주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반려견이 자기 말을 잘 알아들을 정도로 똑똑해서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리하고 순둥순둥한 반려견도 어떤 내 · 외적 요인에 의해서 타인, 심지어 견주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견주가 많다.

 

논리적 추론 능력이 뛰어난 독서중독자도 책 속의 가짜 정보와 저자가 사실을 왜곡한 거짓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다. 우리 독서중독자는 사람인지라 편견에 빠지기 쉽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 자신이 책에서 봤던 내용을 반박하는 견해를 접하면 낯설어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가짜 정보로 채운 책의 손아귀에 벗어나지 못하는 독서중독자는 가짜 정보를 제대로 간파한 독서중독자를 무시하거나 공격한다. 책의 강점을 너무 믿는 그들은 떳떳하다. ‘내가 읽은 책은 정말 좋은 책이에요.’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착한 개가 절대로 없듯이 모든 독서중독자에게 유익한 좋은 책은 없다


친애하는 익명의 독서중독자 친구들이여, 조심하자

믿는 책에 독서중독자 머리 찍힐라.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cyrus의 주석>




* 77






남방 우편기는 생텍쥐페리(Saint-Exupéry)의 첫 소설이 아니다. 1926년에 발표된 단편 <비행사>(L’Aviateur)가 생텍쥐페리의 첫 소설이다. 남방 우편기1929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 119~120









광인이라는 별명의 독서중독자는 전직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다. 그는 단테(Dante)의 신곡을 좋아하는데, ‘광인과 같이 일하는 잔디 코치T.S. 엘리엇(T.S. Eliot)의 장시 황무지에 푹 빠져 있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신곡황무지는 깊은 연관성이 있다.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초고를 검토해준 선배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위해 헌사를 남겼다.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


(황동규 옮김, 황무지》, 민음사)

 


‘il miglior fabbro’는 단테의 신곡연옥 편 26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황무지와 엘리엇의 또 다른 대표작인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속에 신곡지옥 편을 인용한 시구가 나온다. 시를 좋아하는 독서중독자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시, 특히 황무지같은 텍스트가 언급되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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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08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그러니까 같은 동족이지만
결국 다를 수 밖에 없다.
읽은 텍스트는 같지만 해석은 다
르기 때문에...

오래 전, ˝리바이어던˝에 대한 해석
을 진영 논리에 따라 기묘하게 뒤틀
어 버린 어느 지식인 행세를 하던
인사의 글을 읽고 식겁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른바 포스트트루스 시절의 단상
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cyrus 2023-08-09 12:13   좋아요 2 | URL
예전에, 그러니까 박근혜 탄핵 전에 페이스북에 자유주의를 강조하려고 고전이나 그 밖의 다른 책들(주로 경제 서적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인용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활발히 활동했어요. 그런 글의 공통점은 결국 ‘ 종북 좌파는 문제 많아, 우파 최고’로 결론을 내리더군요. 본인 글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의견이 나오면 교묘히 깎아내리면서 비난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신념이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신념에 집착하는 사람을 재수 없게 만난 책은 아무 죄가 없어요. ^^;;

우끼 2023-08-08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ㅋㅋ 저도 편향적으로 독서하는 인간이기도 하고요 ㅎㅎㅎ

cyrus 2023-08-09 12:15   좋아요 1 | URL
저 또한 익숙한 주제와 분야와 관련된 책만 자주 읽게 돼요.. ㅎㅎㅎ
 
읽기의 의미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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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 산울림 <너의 의미>(1984) 노랫말 -





<직립보행>대구 삼덕동에 있는 인문학 헌책방이다. 주말에만 여는 곳이다. 책을 매우 좋아하는 부부가 책방을 함께 지킨다. 내 집 드나들 듯이 <직립보행>을 찾아간다. <직립보행> 부부와 대화할 때가 무척 즐겁다. 한 번은 내가 부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두 분은 책 한 권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을 잘하시던데 왜 서평을 안 쓰시는 거죠?” 그러자 부부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면서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그땐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부부는 집이든 책방이든 늘 붙어 다니면서 각자 읽은 책이 어떤 내용인지 이야기한다. 책 읽고 느낀 생각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 부부의 독서 취향은 다르지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각자만의 읽는 경험을 공유한다. 부부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한다. 매일 머리와 마음에 책을 품고 사는 부부의 애정 온도는 늘 따뜻하기만 하다. 부부는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읽는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있었다.


혼자서 책을 읽기, 혼자서 책이 많은 곳에 가기, 혼자서 책 속에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기.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기록하기. 책을 펼치는 순간 내가 주로 하는 일들이다. 내게 서평과 독후감은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읽고 기록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삶의 흔적이다. 내 글은 특별하지 않다. 내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써야 한다. ‘읽고 기록하는 나로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책에 대한 기억을 혼자만 알고 있다면 기록해야 한다기억이 또렷한 형체로 남으면 기록이 된다기록하지 않으면 읽는 경험과 관련된 모든 기억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삶의 의미도 희미해져 버린다.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임주혜읽기의 의미는 책을 읽은 후에 기록한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어디선가 책 읽고 글을 쓰고 있을 무명의 존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비타민 영양제. 저자에게 문학 읽기쓰는 일은 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읽기의 의미를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이렇게 읽어볼 것을 제안한다. 당연히 독서의 시작점은 서문(즐거운 발견)이다. 그다음은 1부 제일 마지막 글 나의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는다. 이 두 편의 글은 저자가 글로 쓴 자화상이다. 글로 쓴 자화상은 읽고 기록하는 인간으로서 살아온 작가 자신 모습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무조건 글을 쓰라는 건 아니다. <직립보행> 부부처럼 읽는 경험을 말로 표현해서 (책을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들려주는 일 또한 희미해져서 잃어버리기 쉬운 내 삶을 알록달록 빛나게 해준다. 독서 모임은 읽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다.


저자의 글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하지만 글이 서평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워서 책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은 글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언제나 위대하다라는 글은 저자가 C. S. 루이스(C.S. Lewis)책 읽는 삶: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두란노, 2021)을 읽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글에 언급된 책은 책 읽는 삶이 아니라 루이스의 다른 책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2018)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 2018). 책 읽는 삶은 루이스가 남긴 수많은 책과 편지 속에 있는 책과 독서와 관련된 문장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편집 상태가 엉망진창이다. 띄어쓰기가 안 지켜진 여러 개의 문장은 눈 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오자가 너무 많다. 오자 발견은 읽는 이에겐 썩 즐겁지 않다. 교정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오자가 책에 몰입한 눈동자를 멈추게 하는 건 화가 나는 일[]이다. 게다가 각주로 달린 책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다.




* 43


 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아마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녀의 글(세월, 진정한 장소, 사건 등)은 다 읽었을 거다.


* 88


염상섭의 삼대, 윤흥길의 장마도 읽지 않았다.



책 제목임을 알 수 있는 기호(‘《》’, ‘<>’)를 표시해야 한다.





* 59





 얼마 후 김화영 선생님이 번역한 장 지오노의 글을 읽게 됐는데, 다시 카뮈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가 읽었다는 장 지오노(Jean Giono)의 글 제목이 언급되지 않았다. 김화영 선생이 유일하게 번역한 장 지오노의 글은 나무를 심은 사람(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민음사, 2009)이다.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하루해는 어둠의 혼란된 시각에서 시작하고 끝난다~)은 김화영 선생의 책 행복의 충격: 지중해, 내 푸른 영혼》(문학동네, 2021)에 있는 구절이다.





* 67





또렸하게 → 또렷하게





* 69

 

 나는 기억한다. 매일 밤 8,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흐트러짐을 허용하면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었던 그의 모습을.



69쪽 문장은 남아있는 장면들이라는 제목의 글 속에 있다. 손석희장면들: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창비, 2021)에 대한 글이다. 손석희 앵커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한 JTBC 뉴스 프로그램 <JTBC news 9> 오후 2055, 즉 밤 9시에 시작했다. 손석희 앵커는 매일 밤 뉴스를 진행하지 않았다. 평일 방송은 손석희가, 주말 방송은 박성태 앵커가 진행했다.





* 149






<일리야스> <일리아스>

경계 → 경계가





* 157





문학?이라고 하면 너무 고고하게 느껴지려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물음표가 엉뚱한 곳에 있다.





* 164






포터에벗 → 포터 애벗





* 165쪽 각주






우찬 우찬





* 175






추긍하기 시작한다 추궁하기 시작한다.





* 193쪽 각주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임종성 옮김, 홍성사



C. S 루이스 C. S. 루이스


역자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역자는 두 명이며 장경철과 이종태다.





* 195






굴직한 절망들을 경험하고 견뎠다 굵직한 절망들을 경험하고 견뎠다.





* 200~201





내 주변 사람들의 언어에는 진심 어린 격려와 사랑이 늘 베어있다.


* 201


 <대성당>이라는 장편으로 유명한 레이번드 카버. 그의 단편 소설집을 읽으며 나는 카버가 세상을 존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베다는 날이 있는 물건으로 끊거나 자르는 상태를 표현할 때 쓰는 동사다정확한 표현은 스며 있음을 뜻하는 배다(배어있다).


레이번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카버의 대성당(문학동네, 2014)은 장편이 아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 220





 <멋진 신세계>는 다양한 철학적 의미가 담긴 글로 유명하지만 사실 나는 헉슬리의 문체가 좋아서 책을 다시 펼친다. 소설의 차가운 배경과 달리 문제는 한없이 따뜻하다.


 

문제‘(헉슬리의)문체의 오자다. 멋진 신세계번역본은 여러 권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본인이 읽은 멋진 신세계의 역자와 출판사 정보를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는 어떤 번역본을 읽었길래 헉슬리의 문체가 좋다고 하신 걸까? 번역본이 아니라면 멋진 신세계원서의 문체일 수 있다.





* 238






위플 위플래쉬





* 252쪽






제레미 리프킨 → 제러미 리프킨

 




사실 발견된 오자가 몇 개 더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배꼽(정오표와 주석)이 배보다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 2부에 있는 글 제목이다. 저자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난다, 2022)를 읽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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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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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내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서평을 이러쿵저러쿵 줄거리 소개하면서 마무리로 ‘애서가는 꼭 읽어보십쇼로 쓴다면 시간 낭비다. 왜냐하면 책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얼마나 재미있는 만화인지 애서가들은 다 안다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의 기둥이자 알라딘 파워블로거 레샥매냐는 이미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대구 책방 <일글책> 주인장‘서울의 최해성(cyrus)서한용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엄청 재미있다고 추천했으면 끝난 거지. 두 책쟁이 사이에 낀 내가 가세해서 글로 추임새를 넣고 싶지 않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속 등장인물들의 얼굴에서 본인 모습이 보인다면 당신은 독서 중독자. 나만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인다. 그러면 내가 아는 독서 중독자들에게 책을 보라고 권하게 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실제 독서 중독자들끼리 서로 돌려 가면서 보는 거울이다. 거울이 말한다. 너두 독서 중독자야.

 

인물들의 대화나 장면 곳곳에 실제로 출간된 책뿐만 아니라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잡다한 상식들이 나온다. 그래서 서평 대신에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속 대사나 장면에 대한 주석을 모은 글을 쓰려고 했건만, 책 뒤편에 작가가 직접 쓴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주석이 있다. 젠장!


하지만 그냥 조용히 넘어갈 최해성이 아니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초판 발행 연도는 2018년이다. 내가 읽은 책은 3쇄다. 비록 쓸데없는 정보이지만, 다음 쇄가 나오기 전에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다옥에 티도 있다.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cyrus의 주석>

 


* 145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은 총 1,058쪽의 양장본이다. 닉네임이 경찰인 남자 인물은 한 손으로 벽돌 책을 들면서 읽는다. 실제로 저렇게 읽으면 손목이‥….






*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작가 주석, 381

 




브릴 엠볼로2022년에 프랑스 리그앙(Ligue 1, 1부 리그)에 속한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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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26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난 이 책 아직 안 봤다. 만화는 내 취향이 아니라. 글고보면 난 아직 중독자는 아닌게벼. 근데 그리 재밌다며 별점은 만점이 아니구만. 역시 깐깐해. 쵝오!👍

cyrus 2023-07-29 04:53   좋아요 2 | URL
책 좋아하는 독자 중에 만화 속 대사나 장면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만점을 줄 수 없었어요.. ㅎㅎㅎ

은오 2023-07-26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서재에 계속 올라와서 나만 안 읽었나.. 근데 딱히 땡기진 않았는데 사이러스님 이 리뷰 읽으니까 궁금해집니다. 좀 재밌을 것 같다.....!!

cyrus 2023-07-29 04:55   좋아요 1 | URL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읽기 전에 주의할 점이 있어요. 만화 속에 실제로 나온 책들이 언급돼요. 그 책들 중 몇 권은 읽고 싶거나 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독서 욕구와 구매욕을 부르는, 무서운 책입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3-07-28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긴 한데 사서 보기는 좀 망설여집니다 ㅋ

cyrus 2023-07-29 04:55   좋아요 1 | URL
저는 <일글책> 책방지기님 책을 빌려 읽었어요. 그분이 만화가 재미있다고 부추겨서 저도 보게 됐습니다. ^^
 
예술의 이유 - 예술 입문, 라스코에서 쿤스까지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 옮김 / 서광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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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난 이렇게 널 바라보는데

넌 날 보며 웃지도 않아.

알 수 없는 널 사랑하기는

어려 어려워 정말 어려 어려워.

 

닥터레게(Dr. Reggae), 어려워 정말(Who Are You?)노랫말

1993






“Ninety percent of science fiction is crud, 

but then, ninety percent of everything is crud.”

 

공상과학소설의 90%가 쓰레기라면,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



미국의 SF 소설가 시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이 남긴 말이다.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SF90%를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그러자 스터전은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라고 응수했다


대다수 사람에게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자.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지 싶다. 요즘 예술의 90%는 쓰레기라고. 과격한 표현이지,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올해 초 제프 쿤스(Jeff Koons)풍선 개가 관람객의 실수로 훼손되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풍선 개의 감정가는 훼손되기 전까지만 해도 42,000달러(5,500만 원)였다. 풍선 개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을 때 당시 현장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관람객 중에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처음에 풍선 개가 부서지는 상황이 행위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미술품 수집가는 풍선 개의 파편을 구매했다. 비싼 작품 일부를 가질 수 있어서 흡족했다고 한다.


반면 ‘예술90%는 쓰레기’ 설을 믿는 사람들은 어이없어한다. “요즘 예술가들도 쓰레기군.” 그 사람들의 눈에는 요즘 예술 작품들은 아름답지 않고, 무슨 생각으로 만들어졌는지 도통 알 수 없고,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들이다.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다전혀 아름답지 않은 예술 작품들이 너무 많다.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있는 미술이 죽은 단어(死語)라고 주장해도 이상하지 않다그래서인지 미술가를 포함한 몇몇 사람은 현대 예술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것 같다그래도 미술이든 예술이든 어려워서 머리가 아픈 건 매한가지다.


‘예술의 90%는 쓰레기설을 반박할 수 있는 스터전과 같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미술가가 아닌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가 현대미술 옹호를 자처한다그의 책 예술의 이유: 예술 입문, 라스코에서 쿤스까지현대미술을 위한 변명(apologia)’이다옹프레는 자신을 현대 예술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라고 겸손하게 소개하지만, 이 책을 쓰게 된 의도는 자못 진지하다. 예술의 이유는 옹프레가 예술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불행한 사람들’과 투쟁하기 위해 쓴 책이다.


현대미술 앞에만 서면 기가 죽어서 작아지는 사람들은 미술(, 아름다울 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 예술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보면 볼수록 예쁘고, 우아하고, 고상함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은 걸작으로 칭송받는다. 그들이 미술 작품 또는 예술 작품의 기준은 단순하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져야 한다.


옹프레는 미술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가 주장하길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의미. 라스코 동굴 벽화는 항상 미술사의 시작점으로 거론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이다. 벽화를 그린 익명의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름답게 동물들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사냥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동물들을 그렸을 뿐이다아름답지 않은 예술 작품이 쓰레기라면 동굴 벽화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쓰레기.


옹프레는 동굴 벽화에서 제프 쿤스에 이르는 미술사를 개괄하면서 보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발전해온 예술을 주목한다. 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예술가는 그림이든 조각이든 다양한 형태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예술가의 생각 또한 작품 제작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재료다


옹프레는 예술 작품 속 의미와 메시지를 언어로 비유한다예술가는 무뚝뚝하지 않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특수 언어로 관객들에게 말 건다혼자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거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그런 예술가 이미지는 대중의 상상과 편견이 만든 것이다. 예술가는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술가는 철학, 음악, 문학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다. 예술가는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한다. 동료 예술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다가도 때로는 생각의 차이(예술의 정의, 표현 방식, 정치적 이념 등)로 인해 서로 죽일 듯이 다투기도 한다


예술가의 생각이 담긴 예술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변한다. 그 대신에 관객이 늘 원하던 아름다움은 점점 투명해진다. 이제 관객은 예술가의 생각을 찾아야 하고, 예술가의 요청에 응답해줘야 한다. 예술가가 죽고 없어도 예술 작품은 우리를 향해 계속 말 걸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죽지 않는다. 다만 가 사라질 뿐이다. 영원히 남아 있는 건 예술 작품이라는 형체가 되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


의미가 눈에 보이려면 눈으로만 예술 작품을 감상해선 안 된다. 머리로 감상해야 한다. 그런데 예술 작품을 눈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예술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는 행위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옹프레는 예술 작품의 의미에 부합하는 열쇠를 찾으라고 제안한다. 그의 말이 맞긴 하는데 열쇠 찾는 일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감상법이 아니다. 열쇠가 필요 없는 예술 작품도 있다. 그런 작품들은 오로지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술 작품 속 의미를 이해하자고 강조하는 옹프레의 견해는 진부하고 한계가 있다. 열쇠를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예술 작품에 잘 들어맞던 열쇠는 시간이 지나면 녹슨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단 하나의 열쇠는 없다.


예술은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예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오래전 헤겔(Hegel)이 주장한 이후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예술 종말론은 인제 그만! 예술 다양한 목소리로 채워지면서 항상 변하는 유기체’ 같은 개념이다. 예술가와 예술에 대해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예술이 뭔지 열심히 떠들고 있다. 예술이 어려운 걸 잘 알면서도. 예술은 어려워, 정말!






※ cyrus의 주석



* 127

 




 <>(1917)은 보통 벽에 수직으로 고정되어 있다. 갤러리, 박물관 또는 수집가의 집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에서 <>은 아랫부분에 ‘R. Mut’[]라는 서명과 함께 받침대 위에 눕혀져 있다.

 

[] 정확한 철자는 ‘R. Mutt’.





* 역자 주, 198





 


귀도 디 피에로(Guido di Piero→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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