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그림은 악의 꽃이었다 -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만든 기상천외한 화가들 청색종이 예술선 3
박세현 지음 / 청색종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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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세기말은 희귀 단어다. 그 이유는 세기말은 일상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세기가 끝나가는 무렵에 사람들은 이 단어를 많이 쓴다. ‘세기말야누스(Janus)의 얼굴을 가진 단어.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서만 묘사되는 ()의 신이다. 문이 열리면 앞으로 지나갈 수 있으며 뒤로도 지나갈 수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앞뒤가 공존하는 문을 상징하는 야누스의 얼굴이 두 개라고 생각했다. 야누스의 얼굴은 처음과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야누스에서 유래된 1(January)한 해가 끝난 뒤에 이어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이다.


필자는 1980년대 말에 태어난 할배다. ‘세기말이 대중의 뇌리에 꽂혔던 1999년을 통과했다. 1999년의 문을 통과하기 직전 대중은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1999년 종말 예언설을 들먹거렸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했다. 종말을 믿는 사람들은 공포의 대왕지구와 충돌하는 거대 소행성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가 21세기를 인식하지 못해 오작동할 수 있다는 ‘Y2K’까지 가세했다. 세기말의 짝꿍 ‘Y2K’‘Year 2000 Problem’를 뜻하는 단어다


당시 여린 심성을 가진 어린 필자는 종말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점점 다가오는 1999년의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래도 지구는 돌았다1999년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순간지구가 펑 터지는 줄 알았다공포의 대왕21세기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인류를 축하해 주러 찾아오지 않았다. 모든 컴퓨터는 똑똑했다. 21세기가 익숙하지 않은 몇몇 컴퓨터만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세기말과 Y2K는 역사를 보관하는 서랍 속에 있다. 21세기 말에 인류는 서랍을 열어 세기말을 꺼낼 것이다. 필자가 오래 살아서 세계 최고령 인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면 1999년에 만났던 세기말을 재회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장수하는 것보다 지구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구의 건강을 악화하게 만드는 인간이 공포의 대왕이다. 지구에 사는 공포의 대왕은 이기적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을 파괴한다. 그리고 지구에 온난화이불을 푹 덮어주기도 한다. 인간이 덮어준 이불 때문에 지구는 열병에 걸려 펄펄 끓는 상태다. 지구가 열 받으니까, 빙하가 너무 많이 녹는다.


세상이 점점 좋아질수록 공포의 대왕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판친다.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나머지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렵고, 괴롭다자고 일어나면 찾아오는 다음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진실과 가짜 뉴스를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가 가짜 뉴스를 걸러낸다고 해도, 여전히 두렵다. AI가 가짜 뉴스와 가상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 세기말 없는 세기말에 살고 있다


과거 사람들 또한 세기말 없는 세기말을 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을 살았으니까. 예술가들은 세상이 변하면서 요동치고 있을 때 느꼈을 당대 사람들의 반응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묘사했다. 어떤 예술가는 절망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묘사했다면, 또 다른 예술가는 명랑하고 행복한 분위기만 주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종말이 연상되는 세기말에 훗날 걸작으로 칭송받는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다. 세기말의 그림은 악의 꽃이었다: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만든 기상천외한 화가들[주1]은 세기말에 나온 예술 작품들을 시대별로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세기말은 어스레한 중세의 황혼빛이 남아 있는 15세기 말이다. 중세의 끝과 르네상스의 시작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화려한 르네상스를 돋보이려고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하는 역사관은 편협하다. 중세 말과 르네상스 초기에 활동한 화가들은 종교 갈등을 직접 경험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구원해 줄 것만 같았던 종교는 갈수록 경건함과 멀어지고, 종교인들은 교파 지키기에 혈안이 돼 있다.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세기말적 우울에 예술가의 정신은 휘청거린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예술가들은 더 이상 종교적 구원에 기대지 않았고, 종교 개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암울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였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렸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제각각 다르지만, 세기말의 문 앞에서 항상 축제와 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희망 가득한 축제를 더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세기말의 문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동족을 죽이면서까지 향락을 누리려는 인간의 잔인한 행보에 실망하여 인류애를 상실한 사람들은 세기말의 문을 열기가 두렵다. 예술가들은 빛과 그림자가 섞인 세기말적 풍경을 캔버스에 기록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도덕이 타락하여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세기말 영국의 모습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는 왕정 독재 정치를 무너뜨린 시민혁명을 지지했다. 하지만 믿었던 혁명파는 보수적인 기득권이 되었다. 도미에는 과감한 변화를 두려워해서 세기말의 문을 여는 일에 소심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웃음 가득한 축제와 울음이 그칠 줄 모르는 전쟁의 틈 속에 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과연 21세기의 세기말 없는 세기말이 만든 예술은 어떤 색으로 남게 될까? 잔인한 핏빛? 따뜻함이 전혀 묻어 있지 않은 비정한 파란색? 아니면 검댕이 까뭇까뭇 묻은 초록빛? 우리 시대 예술의 색은 21세기 말 사람들이 평가해 줄 것이다.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1] 책 제목에 있는 악의 꽃은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집 제목이다. 그런데 이 책에 보들레르가 두 번 언급되지만, 정작 시집을 언급한 내용은 없다.








[2] 그리고 보들레르를 보를레르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144, 148).





* 31

 




 현재 보스가 남긴 회화는 40여 점 내로 이들 작품에는 날짜가 정확히 기재가 되지 않아서, 후대 미술사가[3] 그 창작 연도를 추정하고 있다.


[3] 미술사가들이





* 32





보스 그림에 나타나는 목시록[4] 세계관은 중세의 기본 이념이다.

 


[4] 묵시록적





[주5] 38





 알리기에리 단테 단테 알리기에리




[주6] * 42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화

→ 한스 홀바인의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화>






* 115

 




 나폴레옹은 당시 스페인 왕인 찰스 5[주7]를 협박해 왕위를 자신의 동생[주7] 조제프(Joseph Bonaparte)에게 넘겨주도록 요구했다.

 

[주7] 당시 스페인 왕은 찰스 5가 아니라 페르난도 7(페르디난드 7)’조제프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의 형이다. 본서 126쪽에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로 적혀 있다.




* 117

 




 1820년부터 1870년까지 프랑스는 정치적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이 혼란스런 정치적 격변이 사회와 문화는 물론, 민중들의 삶에 직격타가 된다. 샤를 10세의 왕정복고에 이어, 7월 혁명과 루이 필리프의 입헌 왕정 체제에서 다시 2월 혁명과 제2공화정의 설립, 다시 나폴레옹[주8]의 쿠데타에 이은 폭정과 전쟁, 프로이센의 지도 아래 통일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와 벌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생략)




* 122





 검열은 도미에의 창작 활동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나폴레옹 1[주8]의 지지자들이 일명 촛불 끄는 덮개를 고안했는데, 이것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의 빛과 지식의 불을 끈다라는 의미였다.



[주8] 1820년부터 1870년에 살았던 나폴레옹은 우리가 아는 나폴레옹 1(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몰락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821년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나폴레옹의 명칭은 나폴레옹 3또는 루이 보나파르트.





* 참고문헌

 




박홍규, 오노레 도미에, 소나무, 1987[8]



[주9] 출판연도는 2000이다1987년은 소나무 출판사가 처음 등록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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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곡선 범우문고 168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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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  C





아리스토파네스의 는 우화 형식이 섞인 희극이다. 피테타이로스(Pisthetaerus)는 아테네에 불만이 많다. 그는 새의 왕을 직접 만나 하늘에 거대한 도시를 세워 옛날처럼 인간을 다스리라고 설득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작품에서 길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빈곤으로 인해 국력이 소진되고 있는 아테네의 세태를 풍자한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곡선에 수록된 작품은 두 편이다. 구름. 구름은 아리스토파네스의 대표작으로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와 그 제자들을 희화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소크라테스가 무대 장치에 탄 채 구름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구름이 공연된 이후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신을 모독한 혐의로 재판받는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극 중 인물들의 목소리로 간접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냈다. 따라서 아테네의 당시 상황과 작품에 언급된 인명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독자는 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에 부닥친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곡선의 서문(이 책을 읽는 분에게)과 역주가 독자의 도우미가 되고 있지만, 역주가 있어야 할 대사가 많다의미를 알 수 없는 대사 속 단어와 인명을 몇 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사카인 (109)


팔레로스의 정어리 (112)


가브조스 (135)



역주가 부족한 번역서는 완성된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독자는 역주 없는 번역문을 대충 읽으면서 넘기고 만다.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다 본다고 해도 띄엄띄엄 읽는 행위를 완독이라고 보기 어렵다. 책을 성의 없이 읽는 독자는 잘못이 없다. 완독 불가능한 책을 만든 주범은 역자와 편집자다.


108쪽 역주는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이야기에 대한 설명이다. 역자는 테레우스가 아내 프로크네의 동생 필로멜라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라고 썼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이야기의 출전은 오비디우스(Ovidius)변신 이야기》(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7년). 그런데 역자의 설명과 변신 이야기에 기록된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이야기가 다르다. 원래 이야기는 잔혹하고 끔찍한데, 테레우스는 아내 모르게 필로멜라를 강간한다. 그리고 필로멜라의 혀를 잘라내고 그녀를 감금한다. 역자가 언급한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이야기의 출전은 어쩌면 변신이 아닌 다른 고대 문헌일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출전을 밝혀야 한다.


117쪽 역주의 문둥병’, ‘문둥이는 눈에 거슬리는 단어다. 한센병(나병)과 한센병 환자를 멸시하는 반응이 녹아든 낡아빠진 표현을 이제 안 쓸 때가 되지 않았나. 오역과 오류를 말끔히 지운다고 해서 개정판이 되는 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단어를 고쳐 쓴 개정판도 나와야 한다.


종반부에도 소크라테스를 풍자한 대사(192, 코러스)가 나온다.



스키아포데스의 나라에 오염된 늪이 있어

소크라테스가 그 늪에서 사람의 혼을 부른다.



의 원문을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다이모니온(Daimonion)’을 뜻하는 단어일 것이다. ‘다이모니온신령스러운 것또는 영적인 것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소크라테스 철학이 압축된 플라톤의 대화 편에 자주 나오는 개념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다이모니온은 자기 내면에서 등장하는 반대의 목소리. 플라톤(Plato)알키비아데스 Ⅰ』(김주일 · 정준영 옮김 알키비아데스 ·Ⅱ》, 아카넷, 2020년)에 묘사된 다이몬니온은 자신을 지켜주는 후견인이다.

 

알키비아데스(Alkibiades)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정치가다. 그는 잘생긴 외모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으나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는 바람에 아테네의 적국 스파르타 편을 들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지지 세력의 힘을 입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오지만, 친스파르타 행적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알키비아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게 된 원흉으로 지목되어 몰락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알키비아데스를 혀짤배기 소리로 말하며 아테네 평화에 위협적인 인물로 묘사한다(『벌』, 『개)

 

알키비아데스 Ⅰ』는 플라톤의 대화 편에서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오랫동안 위작으로 알려진 탓에 깊이 있는 철학적 대화를 나눈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모습은 묻혀버렸다.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애로 바라보는 피상적인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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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의 몸 - 몸을 통해 탐색한 중세의 삶과 죽음, 예술
잭 하트넬 지음, 장성주 옮김 / 시공아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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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가 아니라 서평이다. [주1]









 “그림이 움직이는 걸 들키면 서커스단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어. 문신이 날뛰는 걸 보고 누가 좋아하겠나. 게다가 그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네. 자세히 보고 있으면 곧 그림이 이야기를 시작할 걸세. 한 세 시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몸뚱이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스무 편쯤은 볼 수 있어. 소리도 들리고, 생각도 전해질 거야. 누가 봐주기만 기다리고 있단 말일세.”

 

(레이 브래드버리, 장성주 옮김[주2],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문신을 새긴 사나이와 열여덟 편의 이야기중에서, 13~14)

 




중세라는 이 외로운 친구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자. 어떤 이름이 잘 어울릴까. 중세는 한자 이름이고, 순우리말 이름은 미들이(Middle)’중세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붙여준 작명가는 히스토리(History)’그리스 출신의 아테네 학당 소속 학생 엘 그레코(El Greco)’[주3]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교양인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 사이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중간한 이름을 받았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09~1511




엘 그레코가 르네상스 맨보다 나이가 많다. 엘 그레코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B.C: Before Christ)부터 살았다. 두 사람은 태어난 곳이 다르고,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아주 친하다. 엘 그레코와 르네상스 맨은 고전을 좋아한다. 엘 그레코는 르네상스 맨에게 아테네 학당에 같이 가자면서 꼬신다. 아테네 학당에 가면 플라톤(Plato) 선생님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같이 갈래?”

 

미들이는 항상 성경을 들고 다닌다. 그 친구가 자주 가는 곳은 교회다엘 그레코와 르네상스 맨은 미들이를 싫어한다. 두 사람은 지나가는 미들이를 보자마자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쟤는 신밖에 몰라저렇게 재미없는 녀석은 처음이야.


엘 그레코와 르네상스 맨은 재미없고, 멋이 없는 미들이에게 좋지 않은 별명을 지어준다. 미들이의 별명은 암흑어둠의 자식이다두 사람은 미들이를 만날 때마다 놀린다. 미들이 어딨어? 어! 여기 있었구나. 야 이 어둠의 자식아, 암흑시대에서 태어났냐? ㅋㅋㅋ 네가 깜깜해서 안 보인다 ㅋㅋㅋ


미들이는 쓸쓸하다. 아무도 미들이를 알아주지 않는다. 공자 선생은 미들이에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라(不患人之不己知)’[주4]고 위로해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미들이가 슬픔을 삼키면서 참아보지만, 미들이를 싫어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불어난다. 그들은 종교에 심취한 미들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미들이가 미친 마법사들[주5]과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학구적인 엘 그레코와 멋쟁이 르네상스 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과묵하고 무식한 미들이를 외면한다.


우리는 중세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중세의 참모습을 완전히 가린 옷이다. 온통 검은 이 옷은 중세를 미워하거나 오해한 사람들이 억지로 입힌 거추장스러운 거죽이다. 중세 시대의 몸: 몸을 통해 탐색한 중세의 삶과 죽음, 예술벌거벗은 중세를 보여주는 책이다


중세인들은 몸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 자신을 신의 피조물로 여겼으면서도 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중세인들은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의 의학 문헌을 참고하면서 몸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다. 하지만 고대의 의학 문헌에 남아 있는 의술과 약 제조법 대부분은 전혀 효과가 없는 것들이다. 대부분 사람은 엉터리 지식을 믿은 중세인들을 비웃는다. 중세는 억울하다. 중세인들의 무능한 수준을 비웃기 전에 고대인들의 한계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순리다엘 그레코가 미들이를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가 연출한

<The Simpsons> 핼러윈 특집 에피소드 오프닝의 한 장면


문신을 새기는 사람이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옆에 있는 사람은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




중세인들은 몸을 하나의 세계로 이해했다그들은 작은 세계를 하나하나 해부해서 관찰했고, 부위별로 등급을 매겼다머리는 세계의 꼭대기라서 가장 높은 1급이다. 2급은 심장이 있는 가슴이다. 3급은 소화 기관이 있는 복부(). 가장 낮은 4급은 노폐물이 나오는 생식기와 항문이다중세 지식인들은 펜에 지식을 묻혀서 인간의 몸에 문신을 새겼다그들은 문신으로 작은 세계를 가득 채웠다. 제각각 다른 이 문신들이 잘못 만들어진 거죽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중세의 참모습이다따라서 중세 시대의 몸은 중세의 참모습을 압축한 도상(圖像)이다.


중세인들의 육체는 땅속에 누워 있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중세의 몸에 새겨진 문신은 지금도 꿈틀거리면서 움직인다살아 있는 문신에 과거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는 이야기(story)가 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역사(History)라고 불러야 한다중세라는 몸뚱이에 펼쳐지기 시작한 문신 형태의 이야기는 생명력이 강하다. 중세 이야기 속 주인공은 신이 아니다. 신의 기적을 믿지 않았고, 식욕을 참지 못했고뜨겁게 사랑할 줄 알았고, 성욕을 숨기지 않은 인간이 주인공이다. 생기 넘치는 문신은 르네상스로 쭉쭉 뻗치면서 자란다중세라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중세를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주6] 아름다운 붉은 석양이 생긴 황혼으로 비유했다. 중세가 없으면 르네상스도 없다. 중세가 저문 자리에 르네상스가 다시 태어났다. 중세는 어둡지 않다. 문신이 가득한 벌거벗은 중세는 빛나고 있다


자, 이제 알록달록 무늬들이 계속 생기는 중세를 위해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자. 나는 이 친구를 국카스텐(Guckkasten, 만화경)’[주7]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1] 원문은 당연히, 이것은 수기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제사(題詞).

 

[2] 중세 시대의 몸의 역자이기도 하다.

 

[3] 스페인의 화가. 그리스 출신이라서 본명보다 엘 그레코(그리스 사람)’라는 별명이 더 알려졌다.

 

[4] 논어학이, 16

 

[5, 6, 7]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수록된 단편소설 제목.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The Mad Wizards of Mars),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No Particular Night or Morning), 만화경처럼(Kaleidoscope).

 





* 14

 

 중세라는 시계의 작동 버튼을 공식적으로 눌러도 좋은 시점은 다름 아닌 로마 제국 붕괴 무렵이다. 이 제국은 이전 몇 세기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광대한 땅을 병합하고 지배했으나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게르만족 오도아케르[주8]에게 폐위당하면서 곧바로 중세가 시작됐고, 이로써 유럽에서는 제국 지배기가 막을 내렸다.



* 원문





[8] 원서에 ‘Germanic King Odoacer’라고 되어 있다. 역자는 게르만족 왕으로 직역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로 보면 ‘king(왕)’은 적절하지 않은 호칭이다. 오도아케르는 게르만족 왕족 출신이 아니다오도아케르의 혈통에 관한 견해도 엇갈리는데, 몇몇 역사가들은 오도아케르가 순수 게르만족이 아니라 훈족의 피가 섞인 스키리족 출신이라고 주장한다오도아케르는 서로마 제국의 장교로 활약하다가 황제를 폐위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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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는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희극이다. 지난주 토요일 오전 모임을 위해 기사()을 읽었다. 두 편의 희극을 읽은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두 편이 재미없다는 소감을 밝혔다.





























* 아리스토파네스,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도서 출판 숲, 2013)


*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도서 출판 숲, 2020)

 

*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도서 출판 숲, 2021)


* 아이스킬로스, 천병희 옮김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도서 출판 숲, 2008)

 

*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도서 출판 숲, 2008)

 




희극보다 비극이 더 재미있었다고 말한 분도 있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대명공연거리에 있는 <한울림 소극장>에 펼쳐진 극단 수작의 연극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예병대 작박세향 연출)를 보면서 그 말이 우연이 만든 공연 감상의 복선이라는 걸 알았다. <일글책>에서 나온 낮말이 <한울림 소극장>까지 들렸던 것일까. <한울림 소극장><일글책> 바로 건너편에 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종환 옮김 햄릿》 (지만지드라마, 2019)


* 윌리엄 셰익스피어, 설준규 옮김 햄릿》 (창비,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경식 옮김 햄릿》 (문학동네,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박우수 옮김 햄릿》 (열린책들, 2010)


* 윌리엄 셰익스피어, 노승희 옮김 햄릿》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햄릿(민음사, 1998)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희곡 햄릿을 재해석한 공연작이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고민하는 인간의 대명사다. 햄릿은 선왕을 암살하고 자신의 어머니 거트루드와 결혼하여 왕관을 차지한 숙부 클로어디스를 복수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찮다. 왕자는 혼자서 괴롭게 고민한다. 고민 끝에 미친 척하면서 은밀하게 복수를 준비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햄릿은 자신이 사랑하는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인다. 예상하지 못한 불의의 사건은 오로지 숙부에게만 겨눈 햄릿의 칼날을 어지럽게 만든다. 햄릿의 칼날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나타난 레어티즈를 지나치지 못한다. 한편 오필리아는 모멸에 찬 햄릿의 날카로운 말에 찔려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햄릿의 칼날이 초래한 아버지의 죽음은 오필리아의 마음속에 깊이 팬 상처를 더 벌어지게 만든다. 오필리아는 실의에 빠져 미쳐버리고 비참하게 죽는다.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는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는 햄릿이 떠안은 세 가지 선택을 보여준다. 첫 번째 선택은 어머니를 위해 오필리아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두 번째 선택은 이승을 떠도는 아버지의 망령을 위로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수하는 것. 마지막 세 번째 선택은 원작 속 햄릿의 선택을 반영한 것이다. 첫 번째 햄릿의 선택은 모든 인물이 행복해지는 희극에 가깝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선택은 비극이다. 두 가지 비극이 진행될수록 평탄하게 진행된 희극은 희미해지고, 비극의 농도는 짙어진다. 등장인물의 삶이 크고 작은 갈등에 휘말려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비극이 웃음소리만 나는 희극보다 재미있는 이유다.

















* 데이비드 볼, 김석만 옮김 통쾌한 희곡의 분석: 희곡을 제대로 읽는 방법(연극과인간, 2020)




연극적(theatrical)’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연출가 데이비드 볼(David Ball)관객의 열렬한 반응을 유도해내는 모든 것연극적이라고 말한다. ‘연극적 매력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다. 솜씨 있는 극작가와 연출가는 작품을 만들 때 연극적인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연극적 매력에 푹 빠지면서 감정적 반응(즐거움, 슬픔, 분노, 공포 등)을 드러낸다. 연극적 매력의 반대말은 지루함이다. 지루한 연극은 실패작이다.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는 관객을 휘어잡는 연극적 매력이 가득한 수작(秀作)이다. 원작 햄릿의 원제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이다.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는 비극인 기존 원작에 두 가지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가지 이야기는 햄릿(예병대 분)에게 주어진 또 다른 선택 상황이다.


햄릿의 첫 번째 선택. 1막은 등장인물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희극이다. 이 희극에서 햄릿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묵직한 고민의 짐을 내려놓는다. 결국 그는 어머니 거트루드(김소현 분)의 행복을 위해 선왕을 죽인 숙부 클로디어스(이동학 분)를 양부로 받아들인다. 햄릿과 오필리아(박은솔 분)는 결혼해서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 태어난다. 귀여운 손자를 안아 보고 싶은 클로디어스가 관객에게 직접 아기 안은 방법을 묻는 장면은 햄릿의 희극에서 원작에서 볼 수 없는,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다. 1막의 연극적 매력은 무대 밖의 현실 세계와 무대 위 극 중 세계 사이에 놓인 투명한 4의 벽’이 깨지면서 클로디어스가 체면을 내려놓은 손자 바보로 나오는 장면이다.


1막의 유쾌한 분위기는 웃으면서 즐긴 관객을 방심하게 만든다. 본격적으로 비극이 시작된다. 햄릿의 두 번째 선택. 2막의 햄릿은 원작에 드러난 우유부단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선왕 아버지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수를 실행한다.


햄릿의 세 번째 선택. 3막은 원작을 반영한 이야기다. 극 중 배우들의 연기가 정점에 이르면서 비극적인 효과는 배가 된다. 햄릿은 선왕을 죽인 숙부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곤자고의 암살이라는 궁중 연극을 자신이 직접 연출한다. 햄릿 역의 예병대 배우는 공연작의 연출자다. 배우 겸 연출자가 햄릿이 되어 극 속의 극을 연출하는 장면은 비극 속의 소소한 희극적인 요소다


곤자고의 암살공연이 진행되자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 햄릿과 오필리아가 함께 공연을 본다. 여기서 곤자고의 암살을 보는 네 사람의 표정 연기와 무언의 행동은 3막의 연극적 매력이 발산하는 장면이다. 클로디어스는 곤자고의 암살의 하이라이트인 독살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수상히 여긴다. 그러면서 거트루드와 귓속말한다. 이 장면은 거트루드가 선왕 암살의 공모자임을 암시한다. 햄릿에게 외면받은 오필리아는 슬픈 표정으로 공연을 본다. 햄릿은 자신이 연출한 공연을 유유히 바라본다. 하지만 공연은 안중에 없다. 그는 그토록 기다리던 복수의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복수는 햄릿이 진정으로 원하고, 반드시 진행해야 할 희극’의 결말이다. 이 희극이 진행되면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는 자신들이 예상하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햄릿에게 버림받은 오필리아 역시 비극의 주인공이다. 3막에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 네 사람 모두가 비극과 희극의 주인공이다.







극 중 음악 또한 관객을 사로잡는 연극적 매력이 될 수 있다. 햄릿이 선택의 기로 앞에 멈춰서서 고민할 때 90년대 초에 큰 인기를 끌었던 콩트 <이휘재의 인생극장>의 배경음악이 나온다. <이휘재의 인생극장>에서 이휘재가 연기한 주인공은 두 가지 삶을 선택한다. 콩트는 두 가지 삶이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보여준다. 이 음악은 역재생된 상태로 나오는데 시간을 되돌리는 순간임을 강조한다.


곤자고의 암살장면에서 나온 음악은 차이콥스키(Tchaikovsky)의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4악장 꽃의 왈츠. 원작의 시대적 배경이 12세기라서 19세기 말에 만든 러시아 음악이 나왔다는 이유로 따지고 싶지 않다. 12세기 덴마크 궁정 내부에 어울릴만한 곡을 찾기 힘들다. 원작의 오필리아는 실성해서 미쳐버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꽃을 주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쓸쓸히 물에 빠져 죽고, 거트루드는 오필리아의 무덤에 꽃을 뿌린다. 즐거운 분위기의 춤곡 꽃의 왈츠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암시한 귀로 듣는 복선이다. 원작의 주제인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로 해석할 수 있다.




















* 디트리히 슈바니츠 슈바니츠의 햄릿: 그리고 이 작품을 문화적 기념비로 만든 모든 것(들녘, 2008)

 




원작을 어느 정도 반영하면서 햄릿를 재해석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예병대 배우님은 햄릿70분으로 압축해서 만들었다종이로 된 햄릿과 무대 위의 햄릿은 다르다. 종이 햄릿은 얇고 가볍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무대 위의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 제일 길다. 햄릿을 독자적으로 분석한 디트리히 슈바니츠(Dietrich Schwanitz)햄릿공연이 보통 2~3시간 걸리기 때문에 저녁 공연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무대 위의 햄릿은 종이 햄릿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게다가 햄릿의 대사는 전체 분량의 40%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많다. 실제로 무삭제판 햄릿공연극이 1899년에 선보였을 때 중간에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종이 햄릿를 무대 위에 올리려면 각본가와 연출자는 과감하게 원작을 해체해야 한다.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에 잘린 유명한 장면은 햄릿이 궁정 광대 요릭의 해골을 쳐다보면서 탄식하듯이 독백하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원작 51장에 나온다. 포스터와 입장권에 요릭의 해골이 그려져 있다.


지난주 토요일은 비가 많이 내렸다. 그날 연극을 본 내 선택은 옳았다. 비극이 희극보다 재미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만, 비극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당연히 희극 같은 일이 좋을 수밖에 없다. 연극이 끝난 후에 내 갈 길을 막아서던 비가 드디어 그쳤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채플린 씨, 그날만 당신의 말이 틀렸어요. 종종 우리 삶의 희극은 가까이에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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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9-22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말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은 채플린이 한 말은 아니에요. 원래는 ˝비극은 클로즈업으로 찍고 희극은 롱쇼트로 찍는다˝라는 영화 촬영과 관련된 말이었습니다.

cyrus 2023-09-23 07:0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많이 인용된 말이라서 채플린이 진짜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글을 쓰면서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고 싶을 때 실제로 유명인이 한 말이 맞는지 의구심이 생겨요. 이럴 때 좀 더 검증했어야 했는데 제가 그걸 무시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dman님. ^^

그레이스 2023-10-0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전독서 동아리를 하고 있습니다.
반갑네요^^
저도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은 이 책으로 읽었습니다.

cyrus 2023-10-02 09: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은 희극 어땠어요? 읽어볼 만했어요? 희극에 대한 모임 회원들의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2권 읽기는 미루었어요... ㅎㅎㅎ 그래서 이번 달은 희극 2권이 아니라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것으로 결정되었어요. ^^

그레이스 2023-10-02 09:24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았습니다.
5, 6년 전인가 읽었는데, 다들 반응이 좋았었습니다.
배경을 더 잘 알고 읽으면 좋았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역사나 문화사를 먼저 읽는것도 좋지요.
지금 다시 읽으면 그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겠죠.

cyrus 2023-10-02 09:3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역사적 배경과 대사에 언급된 인명이 낯설어서 재미를 못 느낀 분들이 많았어요. 2권 첫 번째 희극 <리시스트라테>는 유명한 작품이고, 예전에 읽었을 때 재미있어서 이것만큼은 같이 읽자고 건의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래서 희극 2권은 저 혼자 읽으려고 해요.. ^^;;
 
그림 속으로 들어간 화가들 - 위대한 화가들의 은밀한 숨바꼭질
파스칼 보나푸 지음, 이세진 옮김 / 미술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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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점  ★★★★  A-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모두가 숨어버려 서성거리다 무서운 생각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지.


- 조용필 못 찾겠다 꾀꼬리(1982) 노랫말 -

 






그대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 일기예보 인형의 꿈(1996) 노랫말 -





저기요, 나 여기 있어요!” 


조용히 있던 그림이 갑자기 입을 연다


, 여기 있다니까. 잘 좀 찾아봐요.” 


소곤소곤 말하는 그림에 눈을 마주친 관객

하지만 그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다


잠깐만, 어디 가?” 


그림은 무심코 지나가는 관객의 발길을 잡아보려고 

한참 동안 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애타게 불러봐도 소용없다


그림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당신은 다른 곳만 보고 가버리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또 홀로 덩그러니 있는 그림. 또 기다리는 그림.

 


적막을 깨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그림은 살아 있다. 이 그림 속에 작은 그림이 숨어 있다. 그림의 목소리는 작은 그림에서 나온다. ‘작은 그림의 정체는 자화상, 즉 화가 자신이다. 그런데 화가의 얼굴이 너무 작게 그려져 있어서 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자화상의 희미한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큰 그림 속 작은 자화상을 마주치는 관객은 술래가 된다. 하지만 작은 자화상은 언제나 술래다. 자기를 알아보는 관객을 찾으러 미술관을 헤매는 술래다. 그림속으로 들어간 화가들: 위대한 화가들의 은밀한 숨바꼭질은 조그만 술래들의 도우미다. 이 책은 카메오처럼 그림에 슬쩍 나타난 화가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그림을 그리려면 유명한 화가가 운영하는 공방에 가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방에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손님이 주문한 그림을 제작한다. 그들의 신분은 화가라기보다는 기술자 또는 장인이었다. 공방에서 만들어진 그림에 제작자의 서명이 없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이름 없이 알려질 뻔한 화가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이다. 바사리의 본업은 화가 겸 건축가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잊혔고, 당대 화가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그의 책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6, 한길사)이 더 유명해졌다. 바사리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큰 그림 속 자화상을 언급했다. 붓을 내려놓고 술래가 된 것이다. 바사리의 술래잡기 놀이 덕분에 공방의 익명 기술자는 화가라는 개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Renaissance).

 

가장 유명한 큰 그림 속 자화상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벽화 최후의 심판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시녀들이다. 두 작품 속에 화가가 숨어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말을 걸고 있다. 나는 여기 있다고. 그리고 내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사는 중이라고.

 

관객과 화가 둘 다 계속 술래가 될 수밖에 없는 그림들도 있. 화가는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손님은 화가에게 자화상을 넣어도 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럴 때 화가는 가면을 쓴 자화상을 손님 몰래 그린다. 숨바꼭질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화가는 가면을 쓴 채 숨는다. 가면을 쓴 자화상은 자꾸만 말을 걸어오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그가 진짜 화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 술래가 된 관객과 미술사학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숨바꼭질을 얼른 끊고 싶어 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화가의 모습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잡아서 저 사람이 화가일 거야라고 주장하는 것뿐이다. 엉뚱한 사람을 화가라고 지목한 관객을 지그시 바라보는 그림 속 화가는 어떤 심정일까?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지 않아서 안도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기를 찾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무서운 생각에 슬피 울고 있을까? 끝없는 기다림에 지친 자화상은 나지막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조금만 눈길을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익명이라서 영원히 술래로 남은 그림 속 작은 자화상이 미술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서 하는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는다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숨어 있는 에 티를 찾으러 술래가 된 cyrus의 주석



* 118





 1505년에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건너온 미켈란젤로는 1564218일에 사망할 때까지 레오 10, 하드리아누스 6, 클레멘스 7, 바오로 3, 율리우스 3, 마르첼로 2, 바오로 4, 비오 5[1]까지 여덟 명의 교황을 모셨다.

 

[1] 역대 교황 재위 순을 따르면 바오로 4세 다음 교황은 비오 4. 그다음으로 선임된 교황이 비오 5세다. (참고 문헌: 호르스트 푸어만, 차용구 옮김, 교황의 역사: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도서 출판 길, 2013)





* 138





 특히 593~594년경 사망하고 30여 년이 지난 후 황제[2] 그레고리우스 1가 그의 경건한 삶을 전했기 때문에, 성 베네딕투스의 첫 번째 기적을 그림에서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2] 그레고리우스 1세는 황제가 아니라 교황이다. 그와 레오 1세만이 ()교황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 126: 아폴론


* 243: 비너스, 에로스 [3]


[3] 이 책은 올림포스 신들의 이름을 그리스식이 아닌 로마식(라틴어)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폴론을 아폴로, 비너스는 베누스, 에로스는 쿠피도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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