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책]방
EP. 21
철학 서점 소요서가
2023년 12월 9일 토요일
지난 추석 연휴인 9월 27일에 <철학 서점 소요서가>에 갔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 절판본 몇 권이 책장에 꽂혀 있다. 이런 책들은 판매 불가능한 ‘열람용 책’이다. <소요서가>에 꽂힌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문학의 고고학》(허경 옮김, 인간사랑, 2015년)도 서점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책이다. 절판본에 눈이 먼 나는 ‘열람용 책’ 표시를 확인하지 못한 채 그 책을 계산대에 들이대고 말았다.
그날 저녁에 <소요서가> 직원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어떤 출판사가 《문학의 고고학》 개정판을 제작’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깊은 실망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한 달 후에 《거대한 낯섦》(허경 옮김, 그린비, 2023년)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단 책이 나왔다.
새 책 출간 소식을 알려준 <소요서가> 대표와 직원이 고마웠다. 책이 다시 나오면 직접 서점에 가서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소요서가>가 직접 출간한 첫 번째 책 《소크라테스》(루이-앙드레 도리옹 저, 김유석 옮김, 2023년)도 알라딘으로 주문하지 않았다. 마침 <소요서가>의 두 번째 책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정영목 저, 2023년)도 나온 터라 겸사겸사 샀다. <소요서가>에 방문해서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을 구매하면 화가 장욱진의 그림이 있는 엽서 5종 세트를 받을 수 있다.
내년이면 ‘<일글책> 토요일 고전 읽기 모임’ 2년 차로 접어든다. 본격적으로 서양철학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만나게 될 철학자가 플라톤(Plato)이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는 생전에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 편’은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내년에 읽을 책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글책> 주인장의 도서 목록에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향연》, 그리고 《국가》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 플라톤, 천병희 옮김 《국가》 (도서출판 숲, 2013년)
※ 서평
《국가》
<국가란 무엇인가?> 2013년 4월 28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6336460
《국가》는 10년 전에 읽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그때 당시 ‘알라딘 신간평가단’ 제도가 있었다. 신간 도서를 읽고 정해진 기간 안에 서평을 등록하는 일이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은 기수별로 진행되었다. 나는 8기, 12기, 13기에 활동했다. 도서 분야는 ‘인문/사회/과학/예술’이었다.
《국가》는 2013년 상반기에 진행된 12기 인문/사회/과학/예술’ 신간 도서였다. 故 천병희 교수의 책을 무료로 받는다는 소식에 친하게 지낸 블로거 한 분이 엄청나게 부러워했던 반응이 기억난다. 이때 출간된 《국가》는 ‘플라톤 전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2013년 《국가》 초판 표지는 ‘플라톤 전집’에 속한 지금의 책과 다르다. 초판 속 본문의 위치가 지금 인쇄된 책과 같은지 확인해 봐야 한다. 너무 많이 차이가 나면 독서 모임 때 읽기 힘들어진다. 이러면 책을 또 사야 한다!
* 플라톤, 김주일 · 정준영 옮김 《알키비아데스 I · II》 (아카넷, 2020년)
* 투퀴디데스, 천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서출판 숲, 2011년)
최근에 관심 있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소크라테스에게 총애를 받은 제자 알키비아데스(Alkibiades)도 관심 대상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와 함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한 정치가이다.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알키비아데스의 시라쿠사 정벌 실패가 아테네의 쇠퇴를 불러온 ‘재앙’으로 평가한다. 결국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와 대립하고 있던 스파르타로 피신한다. 알키비아데스는 《향연》에 등장하지만, 한동안 위작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저평가받은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에서는 스승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 글에서 소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의 글귀를 언급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좀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서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이학사, 2020년)를 골랐다. 고대 그리스 문헌 번역 일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강대진과 김주일 등 <정암학당> 소속 연구자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한 책이다.
* 미셸 푸코 외, 심세광 · 오르트망 · 전혜리 공역 《마네의 회화》 (그린비, 2016년)
* 미셸 푸코, 심세광 · 오르트망 · 전혜리 공역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 수양》 (동녘, 2016년)
※ 서평
《마네의 회화》
<푸코의 침묵> 2016년 4월 20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8442364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 수양》
<너 자신을 돌보라> 2017년 1월 18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9063551
《소피의 세계》에 나오는 철학 교사 알베르토 크녹스(Alberto Knox)는 철학에서의 ‘이성’의 장점을 은근히 강조한다. 읽는 내내 거부감을 느꼈다. 다른 철학자들은 ‘이성’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그래서 이성을 중점적으로 논한 책이 필요해서 《이성의 역사》(프랑수아 샤틀레 저, 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4년)을 골랐다. 알라딘에 독자 서평이 단 한 편도 없고, ‘판매 지수(세일즈 포인트)’가 100을 넘기지도 못할 정도로 잘 팔리지 않는 책이다. 이 책의 역자는 미셸 푸코 전공자이며 푸코의 책들도 번역했다(이중에 내가 읽은 책은 《마네의 회화》와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 수양》이다).
내가 고른 책을 계산한 직원은 <소요서가> 첫 방문 때 뵈었던 분이다. 첫 방문했던 날에 그분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저, 박이소 옮김, 현실문화, 2022년)를 읽고 있었다. 직원이 내게 ‘도서 구입 카드’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엥? 그런 것도 있어요? 몰랐어요! 도서 구입 카드의 존재를 그날 처음 알았다.
<소요서가> 도서 구입 카드는 손님이 구매한 책 목록인데, 도서 구입 카드를 다 채우면(11권을 사야 한다) 다음에 책 살 때 할인이 적용된다. 다행히 서점을 방문했던 모든 날들의 기록이 남아 있어서 어떤 책을 샀는지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요서가> 도서 구입 카드 할인이 적용된 가격으로 다섯 권의 책을 구매했다. 이 정도면 많이 산 건 아닌데, 어째서인지 가방이 무거웠다. 하긴 이미 가방 안에 읽으려고 들고 온 책 세 권, <과학책방 갈다>에서 산 책 두 권, 여기에 노트북까지 있어서 어깨에 가방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