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박경리 문학상을 아시나요?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상입니다. 박경리 문학상은 국내 최초의 세계 문학상입니다. 그래서 이 상은 전 세계의 모든 작가에게 주어집니다. 수상 자격에 우리나라 작가도 포함됩니다

















* 최인훈 광장 / 구운몽(문학과지성사, 2008)




2011년 첫 번째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는 광장을 쓴 소설가이며 극작가로도 유명한 최인훈(1934~2018)이었습니다

















* 실비 제르맹, 김화영 옮김 밤의 책(문학동네, 2020)





박경리 문학상은 올해로 13회를 맞이했어요. 9월 말에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수상자는 프랑스의 소설가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입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한데요, 그녀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철학을 가르친 교수가 바로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대계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입니다. 작가의 데뷔작은 1984년에 발표된 밤의 책입니다.


1010일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날이었어요. 출판계와 독자들이 한강에 빠져 있을 때 실비 제르맹이 우리나라에 찾아와서 강연했어요. 
















* 실비 제르맹, 김화영 옮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문학동네, 2006)




세계 문학 작품 읽기 전문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1월의 작가 올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실비 제르맹입니다. 함께 읽고 싶은 실비 제르맹의 책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입니다이 소설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실비 제르맹의 작품입니다. 1991년에 발표된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이에요작가의 첫 번째 소설 밤의 책2020년에 번역 출간되었는데요,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2006년에 번역되었어요.

















* 실비 제르맹, 박재연 옮김 빛의 아틀리에(마르코폴로, 2024)

 



실비 제르맹은 저에게는 낯선 작가입니다. 그녀가 쓴 책 중 유일하게 읽은 것이 미술 에세이 빛의 아틀리에였어요. 작가의 소설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실비 제르맹이 우리나라 독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일부를 요약한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의 문학 세계를 알 수 있는 글입니다어제 나온 글이라서 따끈따끈하군요.








<[조용호의 문학 공간]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KPI뉴스, 2024111


https://www.kpinews.kr/newsView/106557325381976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11-02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박경리 문학상은 상금이 얼만지 모르겠어.
울나라는 문학상을 제정해도 울나라 사람만 주는데
그래도 이 상이 외국 작가에게도 주니까 뭔가 권위있어 보이긴 하지.
그래도 실비 제르맹의 책이 제법 번역이 많이 되있네.
이 사람 작품 어떤지 궁금하긴 하다.

cyrus 2024-11-03 12:15   좋아요 2 | URL
그러고 보니 제가 상금은 안 적었네요.. ㅎㅎㅎ 방금 알아봤는데, 상금은 1억 원입니다. 13명의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중 최인훈, 윤흥길을 제외하면 외국 작가는 11명이에요. 이 사람들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종종 거론되는 작가들이에요. 실비 제르맹도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에요. ^^
 
세 개의 쿼크 - 강력의 본질, 양자색역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김현철 지음 / 계단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괴상한 유령이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쿼크(quark)라는 유령이.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가속기 LHC(거대 강입자 충돌기)와 검출기가 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신성한 과학 동맹을 맺었다.[주1] 괴상한 유령을 처음으로 언급한 물리학자는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이다. 그는 강입자(hadron) 속에 괴상한 작은 입자가 세 개나 있다고 가정했으며 쿼크라는 특이한 이름을 붙였다물리학자들은 당혹스러웠다원자보다 훨씬 작은 입자를 어떻게 찾는담?”


원자(atomos)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뜻이 담긴 입자다. 과거에 원자가 만물의 기본 입자로 여겨졌다. 그런데 원자는 쪼개질 수 있다! 원자를 쪼개면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들이 나온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가 있다물리학자들은 이 세 개의 입자가 모든 물질의 기원이라고 생각했다폴 디랙(Paul Dirac)은 한 시간마다 말 한마디 할 정도로 과묵하기로 유명한 물리학자다. 그런 그가 동료 학자들 앞에서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디랙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입자가 있을 거라고 예언했다. 그 입자는 훗날 전자의 반입자(antiparticle)인 양전자로 밝혀진다. 모든 입자는 반입자를 가지고 있다. 반입자는 전하(물체가 띠고 있는 정전기의 양)를 제외한 모든 입자의 성질을 닮았다


계속해서 새로운 입자들이 하나둘씩 발견되었다. 혼돈에 빠진 물리학자들은 기본 입자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쿼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겔만도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겔만은 청중들 앞에서 쿼크를 언급할 때마다 자신이 미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운을 떼었다. 하지만 기본 입자를 찾는 일에 미친 젊은 물리학자들은 가속기와 검출기를 작동시켜서 괴상한 유령의 정체를 밝히기 시작했다.


세 개의 쿼크는 쿼크를 찾는 과학 동맹군의 실험 방식을 되짚어보고, 입자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 장치인 가속기가 어떻게 변화하면서 작동됐는지 보여준다이 책은 2021년에 나온 강력의 탄생의 후속작이다강력(strong force)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하게 만드는 힘이다강력의 탄생은 철학자들의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던 관념적인 물질로만 알려진 원자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강력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시점까지 다루고 있다.[주2]


입자는 크기가 아주 작을 뿐만 아니라 마치 유령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런 입자를 공명 입자(resonance particle)라고 한다가속기는 입자들끼리 서로 충돌시켜서 나온 물질들을 분석하는 장치다LHC가 설계되기 이전에 거품상자사이클로트론(cyclotron)이 과학 동맹군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왜 쿼크를 볼 수 없을까? 두 개의 쿼크가 서로 가까워질수록 힘은 약해지고 결합력은 낮아진다. 이러한 현상을 점근적 자유성이라고 한다. 반대로 두 개의 쿼크가 멀어지면 힘은 커진다. 쿼크는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항상 두 개 이상의 쿼크가 합친 상태로 돌아다닌다쿼크는 강입자 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강입자 밖으로 절대로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두 개 이상의 쿼크를 합치게 만드는 힘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쿼크와 강입자가 한 몸이 되다시피 하는 관계를 쿼크 가둠(quark confinement)’이라고 한다. 쿼크는 강입자라는 아주 작은 감옥에 영원히 갇힌 유령이다. 그래서 쿼크를 볼 수 없다.


쿼크는 물리학자를 웃고 울렸다. 겔만은 발견되지도 않은 쿼크를 이야기할 때마다 쓴웃음을 지었다. 쿼크가 있다고 믿은 젊은 물리학자들은 입자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기쁨의 웃음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울었다. 크기가 엄청 작은데다가 분해되면 금방 사라지는 입자들을 검출하려면 성능이 향상된 가속기와 검출기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과학 동맹군이 풀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많다. 물리학자들은 강력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개의 쿼크가 각각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을 띠고 있다고 가정한다. 여기서 탄생한 학문이 양자색역학이다지금까지 과학 동맹군은 겔만이 예측한 세 개의 쿼크를 포함해서 6개의 쿼크를 발견했다. 쿼크를 이해하는 일은 만물의 근원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1] 마르크스(Karl Marx)엥겔스(Friedrich Engels)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을 패러디했다. 번역본마다 문장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내가 참고한 공산당 선언펭귄클래식 판본(권화현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절판)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 227쪽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 유럽의 모든 세력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Metternich)와 기조(François Guizot),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 밀정이 이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신성한 동맹을 맺었다.



[2] 책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독자는 내가 쓴 강력의 탄생서평을 참고하면 된다. [원자핵 속에 있는 힘을 밝혀낸 과학자들의 여정] (2021719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2790459



<정오표>

 


* 371



 


 그러니까 쿼크 두 개가 아주 가까워지면, 서로의 존재를 점점 더 희미하게 느낀다는 말이다. 이것을 점근적 자유성라고[주3] 한다.

 


[3]점근적 자유성라고 점근적 자유성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벨기에 물고기
레오노르 콩피노 지음, 임혜경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5점  ★★★★☆  A





동심은 신이 나서 팔딱거린다. 어린이는 놀기 좋아하는 동심이 이끄는 대로 세상을 여행한다. 어린이는 새로운 것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 지칠 줄 모르는 동심을 품은 어린이는 놀면서 한 뼘씩 계속 자란다. 동심은 어린이가 어른으로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은 동심을 가두는 감옥이다. 꼼짝 없이 어른에 갇힌 동심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어른으로 변한 어린이는 자신의 가슴속에 살고 있었던 동심이 죽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랑스 극작가 레오노르 콩피노(Léonore Confino)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비록 동심을 만나지 못했지만, 콩피노는 동심 찾기를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안의 어린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콩피노의 희곡 벨기에 물고기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동심을 다시 만나라고 부추긴다벨기에 물고기에 나오는 인물은 40대 중년 어른과 10대 어린아이. 그랑드 므시외(Grande monsieur)는 혼자 사는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이다.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평소에 여성의 옷을 입는다. 그랑드 므시외는 잊을 수 없는 불행한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그는 과거에 한 명의 자식을 둔 유부남이었다. 아내는 여성의 옷을 입는 동성애자 남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프티 피유(Petit fille)는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는 부모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그랑드 므시외를 만난다. 친한 성소수자 외에 타인을 경계하는 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없는 그랑드 므시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프티 피유의 말과 행동에 쩔쩔맨다프티 피유는 특이한 인물이다. 자신이 물고기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양쪽 옆구리에 아가미가 있다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의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고아가 된 프티 피유는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데, 한 번 나온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프티 피유가 흘린 눈물은 어항을 한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 극작품에 튼튼한 금붕어가 나온다. 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를 위해 특별한 상중 의식을 치른다.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눈물로 채운 어항에 집어넣는다. 일주일 동안 물고기와 함께 산다. 일주일이 지나면 물고기를 방망이로 한 번에 때려서 기절시킨다. 빈사 상태가 된 물고기를 튀겨서 먹으면 상중 의식은 끝이 난다. 하지만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는 튼튼한 금붕어를 죽이지 못한다. 빗자루로 여러 번 내려쳐도 금붕어는 죽지 않는다. 두 사람은 금붕어와 함께 산다.


벨기에 물고기에 묘사된 시공간은 어른어린이의 경계가 없다. 그랑드 므시외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장하는 인간이다. 그랑드 므시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독한 어른이다. 프티 피유를 만난 이후부터 그는 가족과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죽지 않는 튼튼한 금붕어살아서 움직이는 동심을 상징한다. 동심은 단순히 어린이만 가지고 있는 백지상태의 마음이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는 일을 하는 작가 김소영동심을 어린이의 세계’라고 표현한.[어린이의 세계는 계속 커진다. 어린이의 세계 안에는 어린이가 세상을 만나면서 얻게 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 즐겁고 유쾌한 추억만 있는 건 아니다. 눈물과 상처도 있다. 어린이의 세계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자양분이다. 성장이 멈춘 어른은 어린이의 세계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린이의 세계를 소중히 간직하는 어른은 날마다 달라지는 세상과 친해지려고 열심히 배우는 인간이다. 낯설고 새로운 것을 환대할수록 그들의 정신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따라서 동심은 계속 자라는 마음이다.


벨기에 물고기희미해진 어린이의 세계로 향하는 거울과 같은 희곡이다.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가 주고받는 대화를 읽으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했던 말버릇과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맞아, 나도 저랬었지!’라고 느꼈다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동심이 꿈틀거릴 것이다. 동심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사를 쓰는 철학 연구자들은 ‘AD’위대한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로 강조한다. 철학사의 ‘AD’는 예수가 태어난 해(Anno Domini)를 뜻하는 서력기원의 약자가 아니다. 데카르트 이후(After Descartes)’를 뜻한다. 데카르트 철학이 등장한 이후부터 철학은 신학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개인의 주체성과 이성의 가치를 강조한 데카르트 철학은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AD’를 높이 평가한 철학 연구자들은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여겼다


















* 르네 데카르트, 이재훈 옮김 방법서설: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휴머니스트, 2024)

 

* 르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방법서설: 정신지도 규칙(문예출판사, 2022)




코기토(cogito)’는 데카르트 철학의 핵이다이 단어 하나로 데카르트는 진리 앞에서 생각하고 의심하는 인간의 존재를 처음으로 깨달은 철학자로 알려지게 된다예전에 철학을 철학사 겉핥기식으로 배운 나(예전에 내가 쓴 글에 이런 유형의 사람을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썼다)는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출발점에 서 있는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다그렇지만 데카르트 철학을 제대로 읽어보면 데카르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그의 이름에 항상 따라붙던 최초또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떼어내야 할 낡은 꼬리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데카르트의 주저 방법서설생각하는 나’, 즉 데카르트 본인 스스로 철학을 하는 과정을 우화 형태로 쓴 책이다. 기존 철학사는 개인의 주체성을 처음으로 주목한 책으로 방법서설를 언급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데카르트가 말한 는 완벽에 가까운 합리주의적인 주체의 동의어가 아니다. ‘생각하는 나는 무지와 편견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이용할 줄 아는 존재이다데카르트는 방법서설6부 막바지에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지성은 유한하므로 모든 자연법칙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진리를 생각해 온 본인 역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면서 솔직하게 밝힌다.



 나는 사람들이 내 글들을 검토한다면 기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를 위한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하려고 나는 내 글들에 관해 반대한 것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 반론들이 수고스럽더라도 나의 출판사로 보내주시기를 간청한다. 출판사가 내게 그 반론들을 알려준다면 나는 나의 답변을 거기에 동시에 첨부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두 가지를 함께 보면서 그만큼 더 쉽게 진리를 판단할 것이다. 실제로 나는 답변을 길게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내가 나의 오류를 인식한다면 그것을 아주 솔직하게 인정하겠다고 약속하며, 내 오류를 깨닫지 못한다면 내가 쓴 것을 변호하기 위해 요구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간단하게 말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방법서설》 중에서, 163쪽, 이재훈 옮김)

 


방법서설에서 묘사된 생각하는 나는 합리주의적 인간이 아닌 회의주의적 인간에 더 가깝다전자는 너무나도 똑똑해서 이성을 사용할 줄 아는 존재라면, 후자는 무지해서 이성을 제대로 사용해야 하는 존재이다.

















* 미셸 드 몽테뉴, 심민화 · 최권행 옮김 에세(민음사, 2022)





신학과 고대의 고전 문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진리에 대해 검토하고 숙고하는 일을 실천한 철학자는 데카르트가 처음은 아니다. 데카르트보다 먼저 태어난 몽테뉴(Montaigne)가 이미 생각하는 나의 중요성을에세에 언급했다.


















* 미셸 옹프레, 곽동준 옮김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인간사랑, 2011)


* 미셸 옹프레, 변광배 · 김중현 옮김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들: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 (서광사, 2022)




피에르 샤롱(Pierre Charron)은 몽테뉴와 데카르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철학자다. 그는 몽테뉴와 교류를 맺었는데, 이로 인해 샤롱이 1601년에 발표한 저서 <지혜에 대하여>는 몽테뉴의 에세의 아류작 또는 모방작으로 알려졌다. 비주류 철학자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철학 세계로 이루어진 () 철학사를 쓰는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지혜에 대하여>세속 도덕의 출생 신고서라고 평가한다. 이 책의 글머리에 샤롱은 신의 지혜가 아닌 인간의 지혜를 위해 글을 썼다고 밝힌다. 샤롱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출간되기 30여 년 전에 신학과 구분되는 철학을 지지했다.


반 철학사를 쓰는 철학자답게 옹프레는 프랑스 철학의 시조 격으로 평가받는 데카르트에 낀 거품을 제거한다. 이 거품은 주류가 된 철학자들만 모여있는 철학사가 만든 것이다. 이 두꺼운 거품에 둘러싼 데카르트가 많이 주목받은 바람에 데카르트 이전에 태어난 몽테뉴가 철학자였다는 사실이 잊혔다.







몽테뉴와 데카르트는 고전을 꾸준히 탐독했지만, 그 속에 담긴 진리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진리를 의심했다. 주류 철학자들만 기억하는 철학도들은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우대했고, 몽테뉴를 은둔하는 수필가로 취급하여 철학자들의 전당에 초대하지 않았다. 철학사를 사랑하는 철학 공부는 철학자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에 맞지 않는 철학자들을 무시한다자신의 입맛에 맞는 철학자들만 졸졸 따라다닌다반면에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를 숭배하지 않는다. 철학이 현재 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의심하고 숙고한다소크라테스(Socrates)가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진리를 검토했듯이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 짓지 않고, 철학자들의 글을 두루두루 만난다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안다. 몽테뉴와 데카르트가 순수하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er)’이었다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까이서 보면 희곡

멀리서 보면 연극


No. 8









6회 실험극 페스티벌 in 골목 실험 극장 작가 시대

(1018~113)


<갈망>

 

창작19(일구다) & 살판협동조합

· 연출 강현욱

공연 장소: 골목 실험 극장

 

20241019일 오후 7시 공연 관람

 





열쇠가 없어서 열 수 없는 술병 진열대탄탈로스(Tantalus)’라고 한다. 탄탈로스는 그림의 떡과 비슷한 뜻의 관용어다. 열쇠를 잃어버린 술병 진열대의 주인도 탄탈로스로 변한다. 그는 진열대에 보관된 술을 꺼내서 마실 수 없다. 탄탈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는 신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술을 훔친 죄로 지옥에서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눈앞에 음식과 물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탄탈로스의 마른 입술이 음식과 물에 닿으려고 하면, 음식과 물은 저 멀리 도망가 버리거나 사라진다. 탄탈로스는 영원히 갈증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6회 실험극 페스티벌 첫 번째 참가작 <갈망> 탄탈로스의 기갈(飢渴)’과 같이 만남과 대화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인간관계를 음악, , 오브제(무대 소품)로 표현한 작품이다극은 드럼(연주 김재영)과 베이스(연주 강현욱, <갈망> 창작자 겸 연출가)에서 흘러나오는 사이키델릭(Psychedelic)풍 음악이 흐르면서 시작된다. 음악에 맞춰 무용수(하서정)가 춤을 춘다여자(양지선 분)는 우연히 만난 남자(도윤호 분)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녀는 남자와 매일 만나면서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질수록 여자의 방에 남자와 관련된 물건이 하나둘씩 놓인다여자의 방은 한 남자를 위한 갤러리가 된다(이 작품의 다른 제목이 <누구의 갤러리_갈망>이다).


극은 남자와 여자가 남남에서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단순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남자는 무대 위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두 개의 텔레비전 화면에만 나온다. 여자는 텔레비전에 갇힌 남자와 대화한다. 이때 텔레비전 한 대에 남자가 말하는 영상이 나오고, 다른 텔레비전 화면은 ‘의문의 영상을 보여준다얼굴이 아닌 여성의 상체를 클로즈업한 영상남자의 말 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하얀 가면을 쓴 수수께끼 인물의 얼굴도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데,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으로 꾸민 자아로 해석할 수 있다두 사람은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불길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갈망>에 묘사된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가 애초부터 어긋난 채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여자의 방에 놓인 남자의 물품 중 하나인 피노키오 인형진실하지 않은 감정 또는 중독에 가까운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수록 그의 코는 커진다. 대화를 많이 해도, 남자가 여자의 방에 자주 들어와 몸으로 섹슈얼한 대화를 해도,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잘 모른다. 상대방을 알고 싶어서 자주 만나고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못한다반복된 만남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텅텅 비어 있고, 친밀감은 서늘하다.


극 중간에 관객들에게 간식과 음료를 주는 퍼포먼스가 있다. 관객들에게 제공한 음료 중에 도 있다(이 공연은 만 19세 이상 관객만 볼 수 있다). 아주 짧으면서도 달콤한 인터미션(intermission, 쉬는 시간)일 수 있겠지만, 간식과 음료에 입을 댄 관객들도 무대 밖에 있는 배우가 된다. 몇몇 관객이 간식을 먹은 후에 배가 고프군,’ ‘간식 하나 더 먹고 싶은데라고 느꼈을 수 있다. 그런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생리적인 갈망이다. 갈망의 형태는 다양하. 어떤 사람은 물질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가지며 어떤 이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성공했는데도 계속 성공하고 싶은 갈망을 느낀다. 인간관계가 지속되기를 갈망하는 이들도 있다하지만 갈망이 너무 커지면 원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진다<갈망>은 관객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다인간은 지옥에 가지 않고도 탄탈로스가 될 수 있다자꾸만 갈망을 부추기는 이 세상이야말로 지옥이다.







<Trivia>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연출가가 긴 글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었다. 글 위에 아래의 시를 읽어주세요라는 지시문이 있다. 시는 사라 케인(Sarah Kane)<갈망>(crave)이다. 여기서 케인의 글이 시로 소개되어 있지만, 사라 케인은 시인이 아니다. 영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다. 그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럴드 핀터(Harold Pinter)의 극찬을 받은 동시에, 파격적인 표현과 연출을 선보여서 논란을 일으킨 극작가다. 케인은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총 다섯 편의 희곡과 영화 한 편을 남긴 채 1999년에 자살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28세였다. <갈망>1998년에 초연된 케인의 단막극이다. 종이에 적힌 케인의 글은 <갈망>에 나오는 ‘A’라는 인물의 독백 대사다. 사라 케인 원작의 <갈망>2012년 우리나라에 초연된 적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