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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
케네스 클라크 지음, 이연식 옮김 / 소요서가 / 2024년 6월
평점 :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철학 전문 서점 <소요서가>에서 구매한 책입니다.
평점
2.5점 ★★☆ B-
문명은 어떻게 현재 모습이 되었을까. 지금까지 문명의 시작점과 발전 과정을 요약한 견해들이 숱하게 나왔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인류는 고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앞서 창출된 학문과 예술의 정수를 ‘책’에 담아서 보존하고 후대에 전수했다. 이 기록들이 차곡차곡 모여지면서 문명이 계속 발전됐다. 지성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문명이 성장한 흔적을 되돌아보는 긴 여정이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역사를 ‘세 권의 책’으로 비유했다. “위대한 민족은 자신의 역사를 세 권의 책으로 보여준다. 행동의 책, 언어의 책, 예술의 책이다. 각각의 책은 다른 두 권의 책을 읽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세 권의 책 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의 책이다.” 러스킨은 미술 비평문을 써서 젊은 화가들의 재능을 널리 알렸다. 전업 화가는 아니었지만,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가치를 믿었다.
인류의 학문과 예술을 모아 놓은 책이 발명되지 못했으면 인류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과 똑같이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과 같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앨범’이다. 우리는 이 앨범을 보면서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는 러스킨이 중요하게 여긴 ‘예술의 책’을 펼쳐서 ‘문명의 역사’를 읽었다. 그리고 본인만의 관점이 반영된 ‘예술의 책’을 다시 만들었다. 그 책이 바로 1969년에 BBC TV 시리즈로 방영된 《문명: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이다.
기존 서양 역사서들은 문명을 논할 때 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시작한다. 대부분 역사가는 학문이라는 꽃이 만발한 지역을 문명의 발상지로 여긴다. 바로 이어서 고대 중동, 동아시아에 활짝 핀 학문의 꽃들을 소개한다. 문명은 ‘서구에만 있는 정원’이 아니다. 케네스 클라크는 동양에도 문명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동양 언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동양 문명을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그는 서문에 《문명》이 ‘여백이 많은 예술의 책’이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는 동양 예술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 등 다루지 못한 예술사조가 너무 많다고 시인했다.
저자는 예술을 문명 성장의 기준점으로 잡은 다음에 종교와 음악, 문학, 과학, 철학까지 관심사를 쭉쭉 뻗어나간다. TV 시리즈 <문명>의 주연은 ‘예술’이다. 그동안 예술은 대하드라마 같은 역사에 조연 또는 단역으로 출연했다. 케네스 클라크는 ‘위대한 문명’이 생기려면 반드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천재 예술가’ 한두 명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명이 천재들의 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을 취한다. ‘천재를 믿는(《문명》 270쪽)’ 저자는 사회적인 상황이나 정치제도와 같은 외적 환경이 예술에 영향을 준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문명을 만든다’라는 저자의 관점은 너무 밋밋하고 고리타분하다.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하는 인간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케네스 클라크는 러스킨이 말한 ‘예술의 책’에 영감을 얻어 《문명》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문명을 바라보는 클라크의 관점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영웅 숭배론》(박상익 옮김, 한길사, 2023년)에 가깝다. 칼라일은 영웅의 조건으로 성실성과 통찰력을 꼽았다. 그는 인류가 누리는 모든 것은 영웅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는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라고 주장한 칼라일의 관점이 영웅사관이라고 비판했다(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 개역판, 2015년, 까치, 72쪽). 이로 인해 칼라일은 영웅사관을 확립한 학자로 오랫동안 지목받았다. 그렇지만 칼라일이 선호한 영웅은 ‘비범한 천재’가 아니라 ‘성실한 노력형 천재’다.
케네스 클라크의 ‘천재 예찬론’은 영웅사관과 맞닿아 있지 않다. 그는 천재를 미화하지 않았으며 문명에 드리운 그림자도 살핀다. 그는 문명의 정점인 르네상스를 칭찬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한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르네상스는 궁정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의존하던 시대다. 이 책 마지막에 클라크는 문명의 위대한 성취에 눈이 멀면 생기는 ‘자만심(Hubris)’을 경계한다. 그는 문명이 무질서하게 파괴되지 않으려면 ‘역사에서 배우려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은 45년 전에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 속에 담긴 모든 지식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지식에도 수명이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항상 변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명》은 ‘여백이 많은 책’이다. 그리고 ‘고쳐야 할 내용’도 많은 책이기도 하다.
* 127쪽
아케이드는 리듬과 균형을 지녔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맞아들이는 개방성이 있습니다. 이는 앞선 시대에 생겨나 여전히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저 어두운 고딕 양식과 완전히 모순됩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쓴 문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철학자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다.
* 228쪽
셰익스피어 이래 오늘날까지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 1789~1839)나 보들레르 같은 위대한 염세가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쩔 수 없는 무의미함을 셰익스피어만큼 강렬하게 느꼈던 사람이 있을까요?
레오파르디의 정확한 알파벳 표기는 ‘Leopardi’다. 책에 ‘i’가 빠져 있다. 사망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1837년이다.
* 270~271쪽
흔히 베살리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근대 최초의 위대한 해부학자 판 베셀은 네덜란드인이었습니다.
베살리우스(Vesalius)의 출신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 있어야 한다. 베살리우스는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당시 브뤼셀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인 합스부르크 네덜란드(Habsburg Netherlands)에 속했다. 그래서 케네스 클라크는 베살리우스를 네덜란드인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베살리우스를 ‘벨기에 출신 해부학자’로 많이 소개되는데, 브뤼셀의 역사를 생각하면 클라크의 설명이 무조건 틀렸다고 볼 수 없다.
* 286~287쪽
데카르트가 빛의 굴절을 연구했다면, 하위헌스는 파동설을 내놓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네덜란드에서 이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뉴턴이 입자설을 제창했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었거나 어쨌든 하위헌스의 파동설보다 나을 게 없었지만, 뉴턴의 가설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권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빛의 성질이 파동과 입자 중 어느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17세기 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당시 뉴턴(Isaac Newton)의 권위가 막강해서 입자설이 우세했다. 그러나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 빛은 전자기파라고 주장하면서 파동설이 우위를 점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양자역학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견해가 등장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은 파동과 입자 형태를 모두 갖춰진 이중적인 성질이다.
* 363쪽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1569)은 1522년에 안트베르펜에서 로마로 가는 길에 알프스를 스케치했습니다. 이 그림에는 지형에 대한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는 요소가 보이며, 훗날 그의 그림 속에 이용되어 감동적인 효과를 자아냅니다.
피터르 브뤼헐의 출생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1525년부터 153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브뤼헐이 1522년에 여행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브뤼헐은 1551년에 로마로 향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아마도 원서에 고쳐지지 않은 오류이거나 역자의 실수일 것이다. 클라크는 브뤼헐이 알프스를 스케치했다고 설명했는데, 여행 기간에 산의 풍경을 그린 스케치들이 브뤼헐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처: Wikipedia, Pieter Bruegel the Elder)
* 426쪽
발자크(Honore de Balzac, 1597~1654)
오노레 드 발자크의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틀렸다. 1799년에 태어나서 1850년에 사망했다. 1597년에 태어나서 1654년에 사망한 인물의 정체는 장 루이 게즈 드 발자크(Jean-Louis Guez de Balzac)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이며 아카데미 프랑세즈 창립 회원 중 한 사람이다.
옮긴이가 쓴 주석에도 오류가 있다.
* 69쪽 역주 62 [안티고네]
기원전 441년경 상연된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주인공. 왕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처형당한다.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비극에 묘사된 안티고네(Antigone)는 감옥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 245~246쪽, 246쪽 역주 170 [롱기누스]
에라스뮈스 이래 북유럽의 지식인들이 성인의 유골에 대한 신앙을 모욕했는데, 그렇다면 성유골의 중요성을 강조해서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안에 네 개의 대지주를 거대한 성유골함으로 만들겠다는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들 대지주 중 하나에는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의 일부가 들어 있고, 그 앞에는 새로운 광명에 눈이 부신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는 베르니니가 만든 롱기누스 상이 서 있습니다.
[역주] 3세기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롱기누스(Longinus)라는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렸다. <요한복음서>에는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병사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외경 복음서로 알려진 <니코데모 복음서>에 이름이 나온다. 롱기누스와 관련된 역주에 ‘3세기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로 잘못 적혀 있다. 기독교 전설에 나오는 로마 군인과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이름만 같은 다른 인물이다. 역자가 언급한 철학자는 카시우스 롱기누스(Cassius Longinos, 213?~273)로 추정되는데, 사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플라톤 철학을 계승했으나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314쪽, 역주 197 [데모크리토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애국적 웅변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세계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설을 주장한 압데라(아브데라) 출신의 철학자다. 아테네에 활동한 웅변가는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다.
보조사가 틀린 문장도 있다.
* 98쪽
기사도을 → 기사도를
* 310쪽
현재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에는 루비야크이 만든 헨델 상이 있는데, (생략)
루비야크이 → 루비야크가
* 457쪽
쇠라의 <아니에르의 물놀이>을 → 쇠라의 <아니에르의 물놀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