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독서 모임을 꾸린다면 과연 몇 명을 모을 수 있을까? 나를 제외한 두 명이 모인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독서 모임 이름은 책세상 출판사의 책 제목에서 가져왔다. 최근에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모임 이름을 줄이고 싶어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포’와 ‘summer(여름)’를 합친 ‘포썸’으로 정하면 4명만 모여서(foursome) 골프를 치는 모임으로 착각할 수 있다. ‘포썸’은 말하기가 망설일 정도로 위험천만한 단어다. 왜냐하면 ‘4인 난교’를 뜻하는 성적인 은어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포 읽기 모임’ 꾸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임을 만드는 사람이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문제가 ‘독서 모임 선정 도서’다. 수많은 번역본 중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모르그 가의 살인: 추리. 공포 단편선》 (시공사, 2018년)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 추리. 공포 단편선》 (시공사, 2018년)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환상. 비행 단편선》 (시공사, 2018년)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장편소설》 (시공사, 2018년)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글쓰기의 철학: 작법 에세이》 (시공사, 2018년)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글쓰기의 철학: 시 전집》 (시공사, 2018년)
단편소설, 장편소설, 시, 에세이 등 포의 모든 작품을 수록한 ‘전집’을 함께 읽으면 좋겠지만, 모임 진행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포의 모든 글에 관심 있는 독자 한 명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소설보다 난해한 시, 단편소설들보다 인지도가 낮은 미완성 장편소설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포의 글 쓰는 방식을 알 수 있는 에세이를 읽어보겠다는 ‘특이한 독자’가 나타난다면 ‘기인’으로 볼 게 아니라 ‘귀인’으로 대해야 한다. 음울하고 음산한 묘사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포의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Gothic novel, 공포 소설) 읽기가 거북할 수 있다. 공포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잔뜩 기대한 독자들은 포의 고딕 소설이 시시하게 느낄 것이다.
‘포 전집 함께 읽기’ 모임 꾸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포의 대표작들만 읽는 독서 모임을 꾸려야 한다. 포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관심을 높이려면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포의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 위주로 수록된 ‘포 단편 선집’이 좋다.
잘 만든 ‘포 단편 선집’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이 골고루 수록되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번역자의 주석이 많을수록 좋다. 포의 소설은 현학적이다. 그의 글에 국내 독자들이 모르는 저자 이름, 책 제목, 인용문이 나온다. 세 번째, 포의 생애와 포 문학의 위상을 알려주는 해설문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포 단편 선집은 총 세 권이다.
* 에드거 앨런 포, 김석희 옮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열린책들, 2021년)
* 에드거 앨런 포, 전승희 옮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2013년)
* 에드거 앨런 포, 마이클 코널리 엮음, 조영학 옮김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RHK, 2012년)
‘열린책들’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는 포의 대표작이 수록되어 있다.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 『어셔가의 몰락』(어셔가의 붕괴)은 포 단편 선집에 반드시 있어야 할 작품들이다. 그러나 ‘민음사’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 유일하게 실린 추리소설은 『도둑맞은 편지』다.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는 단편 선집이지만, 포의 시 두 편(<까마귀>, <종소리>)과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 그리고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에 소속된 추리 소설가들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가 만든 상이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에게 주는 ‘에드가 상’이다. 이 단편 선집의 해설문을 쓴 열다섯 명의 소설가는 에드가 상 수상자다. 이중에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는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킹이 추천한 포의 소설은 『고발하는 심장』(일러바치는 심장)이다. 소설가들이 쓴 글은 해설문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래서 글이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작가들은 자신이 포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와 포 이야기의 매력을 알려준다. 모든 작가가 포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사라 패러츠키(Sara Paretsky)라는 작가는 포의 암호소설 『황금 벌레』에 흑인을 비하하는 묘사를 지적한다.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에 ‘아쉬운 점’이 있다. 포의 초기 단편 소설 『병 속에 든 편지』(병 안의 수기) 끝부분에 ‘포의 주석’이 달려 있는데, 이 책에 원주가 빠져 있다(‘민음사’ 판본에도 원주가 없다). 실제로 포는 고양이 집사였다. 88쪽에 포의 반려묘 이름이 나온다. ‘카타리나’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기는 ‘캐터리나(Catterina)’다. 422쪽에 오자(‘<종소리>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