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스톤(Yellowstone)은 엄청 뜨거운 국립공원이다. 이곳 지하 밑에 엄청난 양의 마그마 덩어리가 있다. 옐로스톤의 온천과 간헐천은 섭씨 100도에 이른다. 특히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간헐천은 최대 50m까지 온천수를 뿜어낸다. 전 세계 관광객들은 지구가 내뿜는 뜨거운 분수 쇼를 보기 위해 옐로스톤을 방문한다.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두 번째 모임(11월) 선정 도서]
*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 2020년)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15장 제목은 ‘위험한 아름다움’이다. 이 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옐로스톤의 화산 지대를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의 이야기다. 빌은 옐로스톤에 근무하는 폴 도스(Paul Doss)라는 지질학자를 만난다. 폴은 지질학을 연구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옐로스톤이라고 주장한다. 온천에 암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달걀 썩는 냄새와 비슷한 황 냄새가 나는 온천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262쪽). 폴은 옐로스톤을 사랑하는 지질학자다.
* 스켑틱 협회 편집부 《SKEPTIC 23: 과학의 시대, 종교를 생각한다》 (바다출판사, 2020년)
과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연구하는 대상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특히 수학자들은 수학 공식을 아름답다고 한다. 도대체 과학자들은 과학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기에 아름답다고 표현할까? 과학의 아름다움을 무조건 미학적 관점으로 국한해서 이해해야 할까?
지난번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의 선정 도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였다. 나는 앞서 언급한 폴 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름다운 과학’의 의미를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발제문을 만들었다. <수레바퀴와 불꽃> 소속 회원 지용 님은 과학 잡지 《스켑틱 SKEPTIC》 23호에 실린 글 한 편을 추천했다. 글 제목은 <실험의 미학에 대하여>이다. 글쓴이는 분자생리학자 전주홍 교수다.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과학 연구는 이렇다. 가설 설정으로 시작해서 가설을 확증할 수 있는 실험을 반복해서 수행한다. 이렇게만 보면 과학이 객관적인 학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전 교수는 실제로 진행되는 과학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정확성이 떨어질 정도로 뒤죽박죽으로 진행된다. 몇몇 과학자는 가설의 오류를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처음으로 제시한 가설이 틀렸는데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설이 ‘참’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실험 단계를 수정한다. 이러면 실험 과정이 번잡스러워진다. 그렇지만 전 교수는 과학자들의 실패와 오류가 빈번히 생기는 비과학적인 실험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실패와 오류를 즐기면서 과학을 배우기 때문이다.
<수레바퀴와 불꽃> 회원 진범 님은 시를 좋아하고, 평소에 시를 쓰는 분이다. 진범님은 과학이 끝내 증명하지 못한 것들이 언급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흥미롭다고 했다. 진범 님이 느낀 ‘과학의 아름다움’은 과학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이해하기 위해 계속 질문하고 실험하는 과학자들의 태도다.
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 인용된 빌의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은 겉으로는 우아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너저분한 학문이다(《거의 모든 것의 역사》 194쪽). 우리가 알고 있는 ‘우아한 물리학’은 정확하다. 우리는 실험하지 않아도 이미 증명된 ‘법칙’으로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너저분한 물리학’은 비논리적이며 오류투성이다. 실험은 과학자의 계획대로 착착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설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성능이 뛰어난 실험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과학자가 처음에 지정한 실험 장비만 가지고 실험을 반복할 수 없다. 더 나은 실험을 수행하려면 연구비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 김현철 《세 개의 쿼크: 강력의 본질, 양자색역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계단, 2024년)
입자 가속기의 한 종류인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의 초기 형태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그래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실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입자보다 아주 더 작은 입자를 찾기 위해 사이클로트론을 꾸준히 개량했다. 그러면서 사이클로트론은 점점 거대해졌다. 사이클로트론의 변천사는 과학이 실험 장치의 개선을 통해서 발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험실의 장치화[주]는 과학자들의 연구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실험 장치가 많아지자, 과학자가 혼자서 실험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다수의 과학자가 함께 연구하고,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도 함께 쓴다.
* 김재영 《상대성이론의 결정적 순간들: 세계에 대한 관점을 뒤바꾼 가장 유명한 이론의 탄생과 발전》 (현암사, 2023년)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아프리카 프린시페섬에서 개기 일식을 관측해 태양 주변의 별빛이 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별빛이 태양의 중력 때문에 휜 것이다. 1919년 아서 에딩턴의 개기 일식 관측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관측으로 증명해 낸 역사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관측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에딩턴이 주도한 관측대 팀이 얻은 데이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지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프린시페섬 관측대 팀과 브라질 소브라우 관측대 팀은 같은 시간에 개기 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브라질 팀은 스물여섯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프린시페 팀은 단 일곱 장의 사진만 가까스로 건졌다. 관측 사진을 찍는 날에 프린시페섬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아침에 심한 천둥이 쳤고, 오전 내내 하늘에 짙은 구름이 드리워졌다. 운이 나쁘게도 프린시페섬 팀이 찍은 사진 전부 화질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쓸모 있는 사진 일곱 장을 건졌지만, 이 사진들만 가지고 태양 부근에 지난 별빛은 휘어진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증명할 수 없었다.
반면에 브라질 팀이 촬영한 사진들은 화질이 좋았고, 사진으로 확인 가능한 측정값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11년 말에 영국왕립학회와 영국왕립천문학회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공동 발표했다. 에딩턴을 비롯한 영국 과학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소원해진 영국 과학계와 독일 과학계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국 과학계는 자신들의 대선배나 다름없는 뉴턴(Newton)의 역학을 뒤집어버린 독일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양국의 평화를 위해 에딩턴이 브라질 팀의 측정값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브라질 팀이 촬영한 사진의 측정값은 뉴턴 역학에 근접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일반 상대성 이론과 크게 차이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에딩턴의 개기 일식 관측 결과와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과정에 논란이 있었으나 1979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의 효과로 별빛이 태양 근처를 지난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었다. 개기 일식 관측은 에딩턴의 임기응변이 아니었으면 실패한 실험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수레바퀴와 불꽃> 회원이자 소설가로 활동 중인 박하신 님은 과학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을 반복된 경험이 만든 후천적 감정이라고 했다. 과학자는 실패와 실수를 늘 반복하면서도 이를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실험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자에게 무수한 실패와 실수는 좌절감이 기다리는 종착점이 아니라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마르지 않는 출발점이다. 그래서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과학의 미학은 간결성과 완벽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과학은 아름답다.
[주] 전주홍, <실험의 미학에 대하여>, 《SKEPTIC 23: 과학의 시대, 종교를 생각한다》 125쪽.
※ cyrus의 변명
이번 달 초에 있었던 <수레바퀴와 불꽃> 독서 모임의 두 번째 후기다. 독서 모임 후기를 두 편 연달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기에 모임 때 언급하지 못한 내 생각이 덧붙여졌다. 결국 두 번째 후기의 분량이 길어졌다.
분량이 많은 글은 ‘지저분한(너저분한) 글’, 그러니까 한마디로 실패한 글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 나온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는 귀하다(이런 분이 있으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이 포함되었고, 이때부터 실패가 내 눈앞에 어슬렁거리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이 글을 썼을 때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두 번째 후기를 쓰겠다고 박하신 님에게 얘기하는 바람에 안 쓸 수가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이 글을 편집해서(분량을 줄여서) 올려야 하는데, 귀찮아서 다시 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