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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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데올로기(Ideology)는 지저분하다. 이 작은 단어에 인류의 머리에서 태어난 생각들이 무수히 들러붙어 있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진보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페미니즘, 파시즘, 제국주의, 종교[주1] 등등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갈수록 더러워지고 있다. 여기에 마음씨 고약한 극단주의까지 엉겨 붙어 있다. 극단주의는 다른 생각에 기생한다. 극단주의는 생각의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 먹는다. 영양가 없는 민주주의가 방심하면 전체주의로 변한다. 비실비실한 겁쟁이 자유주의는 멸공의 횃불을 휘두르는 반공주의 전사가 된다. 지나치게 격렬한 페미니즘은 자신과 다른 페미니즘들을 무시한다.


민폐를 끼치는 극단주의가 싫은 사람들은 칠칠치 못한 이데올로기를 피하고 싶어 한다단어를 입에 꺼내기 싫을 정도다하지만 이데올로기와 멀찍이 떨어져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먹고 마신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물이다.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자란 뇌에서 이데올로기가 다시 태어난다개인적인 뇌는 이데올로기적이다(The personal brain is the ideological)이데올로기에 단 한 번도 물들지 않은 순결한 뇌는 절대 없다.








이데올로기 브레인: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다양한 맛의 이데올로기를 먹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뇌는 한 번 맛본 이데올로기의 맛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이데올로기적 뇌는 고프다. 먹어도 먹어도 이데올로기를 자꾸 먹고 싶어 한다. 뇌는 고립된 상황을 싫어한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관계를 갈망하고, 소속감을 느껴야 만족한다. 이데올로기는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힘이면서도 이데올로기가 비슷한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힘이다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집단은 이데올로기 맛집이다.


이데올로기를 과식한 뇌는 뚱뚱하지 않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소화(학습)할수록 뇌는 점점 딱딱해진다. 이데올로기에 푹 젖은 생각도 딱딱하다. 이런 사람의 사고방식은 경직되어 있다. 경직된 뇌는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숙고하는 힘을 잃어버린 이데올로기적 뇌는 편견에 취약하며 음모론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데올로기적 뇌는 독단주의자와 극단주의자를 만든다.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한 사람의 몸과 정신도 경직되어 있다. 독단주의자는 자신과 다른 생각뿐만 아니라 불안정성, 모호함, 다양성도 거부한다.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독단주의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우리의 뇌에 스며든 이데올로기가 신체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과학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뇌는 이데올로기를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만든다. 이데올로기적 뇌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은 독단주의와 극단주의에 맞서는 정치학의 든든한 동지다.


이데올로기에 맛 들인 이상, 우리 뇌에 흡수된 이데올로기를 빡빡 닦아서 지우기 힘들다. 그러나 뇌는 이데올로기에 쉽게 통제당하는, 나약한 기관이 아니다. 사람의 뇌 구조는 모두 다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의 뇌는 이데올로기의 맛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또 다른 사람의 뇌는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검증한다. 뇌는 외부 환경과 경험에 따라 학습하고 변화한다. 이러한 뇌의 특성을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한다.


우리의 뇌와 몸속에 들어온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피가 되고살이 된다이데올로기는 유유히 걸어 다닌다. 살아있는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 회의주의적 태도와 비판 없이 다른 사람이 주는 이데올로기를 넙죽 받아먹어선 안 된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에 벗어나는 삶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뇌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각자가 이데올로기 필터(filter)를 설치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를 먹고 소화했으면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방해하는 것을 걸러내고 뱉어내야 한다



다 같이 먹은, 이 더러운 이데올로기를 함께 토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성토(聲討)해야 한다.







<cyrus가 만든 주석>




[1] 이데올로기 목록에 종교가 포함된 것에 따지고 싶은 분은 마르크스(Karl Marx)엥겔스(Friedrich Engels)에게 직접 따지시길.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거짓되고 추상적인 허위의식(Falsches Bewußtsein)’이라고 했다. ‘허위의식은 엥겔스가 만든 용어다. 마르크스는 종교 또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으며 자신이 쓴 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그 유명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문장을 남겼다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은 헤겔 법철학 비판》(칼 마르크스,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2011년, 절판)에 수록되어 있다.





 

* 199





 신경과학자들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유전자 중 하나가 카테콜-O-메틸기 전이효소 유전자이다. 줄여서 ‘COMT’라고도 한다. 1958년 노벨상 수상자인[2] 줄리어스 액설로드가 발견한 COMT 유전자는 전전두엽 피질의 도파민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2] 1958년은 줄리어스 액설로드(Julius Axelrod)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연도가 아니라 COMT 유전자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해. 액설로드는 1970년 노벨상 수상자.





* 207




 

 과학자들은 어떤 유전적 효과에 대해 말할 때 

후성유전학epigenetic 효과[3]도 함께 주시한다.

 




[3] ‘epigenetic’후성유전적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epigenetic’ 뒤에 ‘s’를 붙이면 후성유전학을 뜻하는 단어가 된다. 원서에 있는 해당 단어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원문이 ‘epigenetic effect’라, ‘후성유전적 효과로 번역해야 한다. (참고문헌: 리처드 C. 프랜시스, 김명남 옮김, 쉽게 쓴 후성유전학: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시공사, 2013)





책 본문에 언급된 다른 저자들의 책은 국내 번역본 제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책 끝에 있는 <>의 참고문헌들은 원제만 있다.

 



* 22




 

 조지 오웰에 따르면, 정치적 언어는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리고, 살인이 그럴듯해 보이며, 가벼운 마음도 견고한 겉모습을 갖는 것처럼 보이게 설계되었다.”[주4] 우리는 사람이나 생각을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각각의 범주로 나누어 명확성을 높이고 어떤 정체성을 씌우려고 한다.






[주4]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 수록되어 있다(이데올로기 브레인》에 인용된 문장은 276쪽에 나온다).





* 148~149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제안한 것처럼, 이데올로기 공동체에서 삶은 일련의 아름다운 삶의 실험[주5]이 아니라 엄격한 프로토콜과 같다.






[5]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자유론 (책세상, 2005, 구판 절판). 110.





* 257




 

 몸과 관련된 문제에 결벽증이 있는가? 정치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이것은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다음과 같은 주장과 비슷하다. 인류 역사 내내, 스스로의 동물성과 도덕성을 두려워하고 증오한 지배 집단이 그것들을 체화하는 집단과 개인을 배제하고 주변화하고자 혐오를 사용했다.” [6]





[6] 마사 누스바움, 조계원 옮김,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민음사, 2015).





* 260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7]


[7] 에드문트 후설, 이종훈 옮김,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한길사, 2022).





* 295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다. 단지 은유 하나를 바꾼 것만으로도 놀랄 만큼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8]

 




[8] 조지 엘리엇, 이봉지 · 한애경 옮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민음사, 2007).





* 308~309




 

 마르티니크섬 출신의 철학자 프란츠 파농흑인을 대상으로 한 백인의 시선에 대해 이렇게 썼다. [9]

 


[9] 프란츠 파농, 노서경 옮김,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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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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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귓속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여러분! 귓속에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귀에 기생하는 음악 바이러스



귀 벌레(earworm)는 음악 바이러스의 매개체다. 귀 벌레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노래에 달라붙어 있다. 달팽이관으로 들어간 귀 벌레는 음악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음악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하면 머릿속에 멜로디가 계속 맴도는 증상이 일어난다.








음악은 다양하고,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음악 바이러스의 종류도 많으며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가장 유명한 음악 바이러스는 베토벤 바이러스(Beethoven Virus)이다. 2000년에 처음 나온 클래식 음악 바이러스로,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비창’> 3악장의 변이체(변주곡)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많이 나타나는 곳은 오락실이다펌프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댄스 리듬 게임 <Pump It Up>을 하면 베토벤 바이러스를 들을 수 있다.


멜로디가 뇌에 잘 꽂히는 사람은 음악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 멜로디가 반복해서 들리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단점 하나만 빼면 음악 바이러스에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바이러스보균자. 그는 말러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썼으며, 2010년에 쓴 왜 말러인가?: 한 남자와 그가 쓴 열 편의 교향곡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Why Mahler?, 이석호 옮김, 모요사, 2010년)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해야 할 그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집어삼켰다연주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음악인들의 악기는 침묵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에 쓰러진 음악인들의 부고까지 들려오자, 레브레히트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마음이 약해진 그를 다독여준 것은 베토벤의 음악, 베토벤 바이러스였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받아들인 레브레히트는 말러에 이어서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톺아본다왜 베토벤인가(Why Beethoven)는 전 세계 음악인들의 귓속에 살고 있는 불멸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소개한 책이다이 책은 100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베토벤의 곡들과 그 곡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베토벤의 대표작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범작들과 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나온다. 저자는 젊은 시절에 클래식 음반을 수집했다. 명반(名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베토벤 연주곡 음반들뿐만 아니라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음반들을 소개한다오랫동안 귓속에 베토벤 바이러스를 달고 살아온 클래식 음악광과 베토벤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입문자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다.


위인전에 갇힌 베토벤은 음악 천재. ‘위인 베토벤은 어린 독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결국 어린 독자들은 그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음악인으로서 힘들게 살아온 과정을 읽는다. 위인전에 베토벤의 작품들, 그중 가장 유명한 대표작들의 제목만 언급된다. 그러나 작품들은 작곡가의 천재적인 능력만 돋보여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위인전은 베토벤의 생애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간혹 사실과 다른 내용을 덧붙여서 쓰는 위인전 지은이도 있다.


왜 베토벤인가는 베토벤 전기(傳記)저자가 다시 만난 베토벤은 천재 베토벤이 아니다.음악 바보 베토벤이다평생 음악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베토벤. 음악과 동거한 베토벤의 방은 지저분했다. 음악을 껴안은 베토벤은 소변이 가득한 요강을 비우는 것을 잊었다베토벤은 반권위주의자. 그는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베토벤은 반전통주의자. 그는 오랫동안 유행한 작곡 형식을 거부했다. 베토벤은 기존의 형식에 벗어난 멜로디를 만들었다전통적인 멜로디에 익숙한 당대의 음악인들은 베토벤의 곡이 귓속을 거칠게 문지르는 소음으로 느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비창>)을 제외한 베토벤의 음악은 감상자뿐만 아니라 연주자들도 대단히 어려워한다


레브레히트는 독자와 감상자들을 위해 베토벤의 음악이 어려운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왜 베토벤의 음악은 어려운가? 베토벤은 혼돈의 음악을 제대로 만들려고 했다. ‘조화로운 음악은 대부분 화려하고, 감상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와 정반대인 혼돈의 음악은 거칠다연주 중간에 나와서는 안 되는 악기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감상자는 다음에 어떤 멜로디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인들이 사랑하는 음악 바이러스다연주자들의 숙원은 베토벤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다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는 베토벤이 만든 9개의 교향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다. 바흐(J. S. Bach)<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천재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한 글렌 굴드(Glenn Gould)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을 카라얀(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마력은 문학과 미술에도 뻗어 있다음악 바이러스는 작가들의 펜에 침투하여 한 편의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톨스토이(Tolstoy)는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 영감을 얻어 동명의 소설을 썼다.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는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교향곡 9번 합창’> 피날레 환희의 송가를 끔찍한 폭력의 송가로 만들었다.






 18974, 구스타프 말러가 빈 국립 오페라단에 입성한 그 주에 구스타프 클림트는 반항적인 예술가들을 모아 빈 분리파 운동을 시작했다. 5년 뒤에 클림트는 황금 지붕을 얹은 분리파 건물을 지어 전시회를 열었다.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영웅적이고 옷을 거의 다 벗은 모습)이 중앙 홀에 놓였고, 벽 위쪽에 그려진 벽화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보이는데 용모가 영락없는 말러다.

 

(301)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베토벤 사망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에 벽화 <베토벤 프리즈>(The 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감상자를 압도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독재자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곡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은 베토벤의 음악을 오해했고, 베토벤의 반권위적인 참모습을 알지 못했다. 왜 베토벤인가는 독자와 음악광들을 향해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베토벤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그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절대로 해롭지 않다

음악 바이러스는 잘못이 없다

음악을 곡해하는 나쁜 귀(bad ear)가 달린 사악한 인간, 

악귀(bad ear)가 달린 악귀(惡鬼)가 음악을 오염시킨다

그들의 귓속에 음악은 없다. 귓속에 ()이 들어 있다.







<cyrus가 만든 주석>








초판 1쇄 발행 2025328[1]



[1]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짜는 326일이다.





* 37





 마르셀 프루스트는 할머니가 연주하는 <비창>을 듣더니 이 곡을 베토벤 소나타의 스테이크와 감자라고 했다. [주2]


[주2] <비창>이 언급된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책 참깨와 백합서문, <독서에 관하여>. <독서에 관하여>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유정화 ·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2014)에 수록되어 있다.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군요.”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기 때문에 도리어 매우 어려운 이 요리는 요리 경연의 이상적인 주제로요리의 비창」 소나타이며[생략]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중에서, 138)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그녀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할 줄 모르네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다는 자체로 어려운 이 요리는 바로 그 때문에 요리대회 경연에 이상적인 음식이고, 요리 분야의 <비창 소나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생략]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중에서13)



스테이크와 감자의 프랑스어 원문은 ‘Le bifteck aux pommes’. 두 책의 번역문이 다르다. ‘pomme’는 사과와 감자를 뜻하는 단어.






* 58




 

 체코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에서 자란 알프레트 브렌델은 1951년 빈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크리스마스트리 모음곡>으로 음반 데뷔를 했다[주3] 미국 음반사 복스-턴어바웃이 빈 필하모닉을 가짜 이름을 내세워 고용하고는 브렌델을 데리고 베토벤의 피아노곡 전곡 녹음에 나섰다.


[주3] 이 책에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사실. 복스-턴어바웃(Vox turnabout)에 고용된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이 첫 번째로 녹음한 곡은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피아노 협주곡 5G장조 op. 55>이다. 이 곡은 브렌델의 첫 음반이 발매되기 일 년 전인 1950에 녹음되었다.






* 160~161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임상적 증거나 부검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최근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4]






[주4] 이미 반증되었고, 근거가 빈약하지만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견해를 비교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데버러 헤이든, 이종길 옮김, 매독(길산, 2004)





* 286




 

 제러미 덴크[주5]농담이 섞인 진지한 작품이 아니라 () 곡 전체가 웃음바다이며 웃음이 곡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주5] 제러미 덴크(Jeremy Denk)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작년에 그가 쓴 책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장호연 옮김, 에포크)가 출간되었다이 책의 부록은 제러미 덴크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 목록이다. 이 목록에도 베토벤의 명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 451




 

 베토벤은 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주6]


[주6]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는 불길한 숫자로 알려진 13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13일에 태어난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13 공포증이 심한 쇤베르크는 악보에 쪽수를 적을 때 13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쇤베르크는 713일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 482





 웨일스 시인 딜런 토머스가 말한 빛의 스러짐” [주7]


[주7] 빛의 스러짐(The dying of the light)’이 나오는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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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스카스 2025-04-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후기를 남겨주시다니!
장바구니 고민은 끝입니다^^
 




전망 좋은 []

 

EP. 29






<인스크립트> 1막

(2025년 2월 1일 토요일)




2023624일, 연희동에서 연극 놀이(play)를 시작했던 희곡 가게 <인스크립트>222일 토요일에 막을 내렸다.


<인스크립트>의 폐막은 1월 중순에 이미 알고 있었다. 1월 중순 토요일에 방문했을 때 <인스크립트> 부부 주인장의 남편 권융스크립트역을 맡고 있는 권주영 배우님이 희곡 놀이터를 지키고 있었다. 권 배우님은 나에게 <인스크립트> 영업 종료를 미리 알려주셨다.




































연희동 <인스크립트>를 마지막에 방문한 날은 21일 토요일이었다. 이날이 지나면 연희동에 갈 일이 없고, <인스크립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가게 앞모습과 가게 주변 골목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았다. 책방 내부 전체를 샅샅이 훑어보면서 사진 여러 장 찍었다








 

나는 권 배우님과 박 배우님이 <인스크립트>에 함께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그날은 <인스크립트> 부부 주인장의 아내 세인스크립트의 박세인 배우님이 혼자 있었다. 그날 권 배우님은 감기에 걸려 집에 쉬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사진 촬영을 원하는 나를 위해서 <인스트립트>에 오셨다.







대구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게 앞에 서 있는 두 배우님의 모습을 사진 찍었다. 사진을 어설프게 찍는 똥손이라서 못난 사진이 나올까 봐 내심 걱정했다. 셀카를 즐겨 찍는 선남선녀답게 두 배우님의 모습이 잘 나왔다(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이]






전망 좋은 []

 

EP. 30



<인스크립트> 2막

(2025년 4월 5일 토요일)




연극 놀이터 <인스크립트> 1막이 끝나고, 45일 토요일에 <인스크립트> 2막이 시작되었다. <인스크립트> 2막의 새로운 무대 장소는 이화동이다이화동에서 제일 가까운 행정구역은 혜화동이다. 이화동과 혜화동을 지나는 대학로에 크고 작은 공연장과 극단들이 모여 있다한 달 동안 부부 주인장은 인스크립트 크루로 알려진 동료 배우들과 함께 이화동에서 연극 놀이터를 새로 심었다.


44일 관악구에서 탄핵의 밤을 즐겁게 보낸 나는 연희동이 아닌 이화동으로 이동했다. <주책필름><그날이 오면>을 방문한 이후로 가방이 더 무거워졌다.








이화동 <인스크립트>3층 건물에 있다. 건물 입구가 상당히 작다. 입구 주변에 책방 이름이 적힌 나무 간판이 있다. <인스크립트>로 안내하는 이 간판을 잘 찾아야 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빨간색 방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인스크립트>. 내부 공간이 더 넓어졌다. 창문 밖을 볼 수 있는 1인석 자리가 늘어났고, 빨간색 원형 탁자가 새로 생겼다
















원형 탁자는 네 개의 책상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형태가 마치 거대한 피자처럼 생겼다. 원형 탁자를 분리해서 치우면 넉넉한 공연장을 만들 수 있다.


<인스크립트> 2막은 정오에 시작했다. 나는 희곡 놀이터 2막이 시작한 지 40분이 지난 뒤에야 이화동에 도착했다. 내가 <인스크립트>에 들어왔을 때, 책방 안에 어떤 여자 한 분이 계셨다. 처음에 나는 그분을 <인스크립트> 2막에 처음으로 방문한 손님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은 손님이 아니었다. 책방 영업을 돕기 위해 출근한 인스크립트 크루소속 배우였다. 이화동 <인스크립트>의 첫 번째 손님은 바로 나였다. 그리하여 나는 두 번 연속으로 책방 개업 날(2023624, 202545)에 첫 번째로 방문한 손님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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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4-2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희동보다는 대학로가 더 친근하네요.
언제 꼭 가봐야겠어요.~^^
좋은 장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망 좋은 []

 

EP. 28



그날이 오면

(2025년 4월 5일 토요일)









내 정신은 순결하므로

내 기도는 영원했으므로

전신이 토막나서 없어진다 해도

땅속 깊이깊이 묻힌다 해도

에헤라 그날이 오면 나는 되살아나겠네

불같이 타올라 아아 그 5월이 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마구 지천으로 피어나는 감자 꽃이겠네

민주의 넋이겠네

 

 

김용락

그날이 오면중에서,

 푸른 별》(창비, 1987년)에 수록





새벽 두 시에 서 씨와 헤어졌다. 되우 작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눈을 떠보니 아침은 세우(細雨)에 젖어 있었다.


이번에 처음 와본 신림동을 그냥 떠나기가 아쉬웠다. 아침을 맞이한 신림동의 풍경을 보고 싶었다신림동에 도림천이라는 하천이 흐른다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하천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그날이 오면>이 있는 동네까지 걸어서 갔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1988년에 태어난 인문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다. 서울대 앞 녹두거리에 있다. 카페에서 책을 보다가 10시 조금 넘었을 때 서점으로 향했다. 불이 켜진 서점을 금방 찾았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서점 자동문에 외출 알림판이 달려 있었다.








 

알림판에 연락처가 적혀 있어서 처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처의 주인은 받지 않았다. 10분 뒤에 연락처의 주인으로부터 곧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오래 기다릴 수 없어서 서점에 언제 돌아오는지 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답변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빗방울은 굵어졌다.


더 기다려보고 11시가 되면 대학로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신림동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고, 서점 근처에 있는 버스 정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마침, 서점 문을 열기 시작한 직원을 만났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날이 오면> 첫 방문이 이루어졌다.


서울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그날이 오면>에 있는 모든 책을 천천히 살펴본 후에 책을 샀을 것이다. 사야 할 책을 고르는 시간이 적어도 한 시간(!)이다. 눈동자를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책장을 주마간산으로 구경해보니, 사고 싶은 책이 5권 넘었다. 책을 너무 많이 사면 가방이 무겁다. 게다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가방 앞쪽이 젖어서 가방 안에 있는 책도 젖는다.












10분 동안 책장 전체를 다 훑어본 후에 숨어 있는 책’ 다섯 권을 골랐다. 다섯 권 모두 절판(또는 품절)된 상태다. 이 중에 한 권은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다.


신림동에서 대학로로 가는 버스를 타면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도착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것은 마치‥… 연희동에 있었던 서점으로 가는 분위기와 비슷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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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4-0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쳇, 책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꼭 똥폼을 잡는단 말야. ㅎㅎ
평생 심심하진 않겠어. 우리나라 서점 다 돌아다니려면...^^

cyrus 2025-04-14 06:42   좋아요 1 | URL
서울에 안 가본 책방이 몇 군데 더 있어서 전국 책방 투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하루 만에 서울 책방 세 군데 둘러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네요. 이러다가 주말에 서울에 가면 1박 2일 할 수도 있어요. ^^;;

yamoo 2025-04-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날이 오면..대학동까지 방문하셨네요! 아직도 건재하다니, 놀랍습니다. 그 옆에 길 건너 헌책방들은 다 없어졌는데...그 건물 옆에 버스 종점이 있었는데...152번인가..ㅎㅎ

cyrus 2025-04-14 06:43   좋아요 0 | URL
<그날이 오면>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데, 신간 도서 소개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실제로 가보니까 인터넷 서점에 구매할 수 없는 구간 도서도 있었어요. 아날로그 서점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

페크pek0501 2025-04-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겨운 나들이, 이십니다. 저도 알라딘을 알기 전까지는 동네 서점을 애용했어요. 매달 책을 사니까 주인 사장님이 저를 단골로 알고 친절하게 책을 구해 주시곤 했어요. 그 푸른 시절이 떠오릅니다.

cyrus 2025-04-14 06:46   좋아요 0 | URL
날씨 빼면 1박 2일 서울 여행이 즐거웠어요. 가방은 무거웠지만, 좋은 책들을 건졌습니다. ^^;;

Comandante 2025-04-1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서점 가셨군요^^ 사진을 보니 또 이사를 간 모양입니다. 고시촌 안에서 계속 이사를 하네요 ㅎㅎ

cyrus 2025-04-15 19:44   좋아요 1 | URL
맨 처음 생긴 위치에서 지금까지 쭉 오래가는 서점이 흔하지 않아요. 서점 운영하신 분들에게는 서점을 옮기는 일이 고역이겠지만, 서점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독자들과 단골은 서점이 어디든 자주 찾아오게 되어 있어요. ^^
 





전망 좋은 []

 

EP. 27


주책필름

(2025년 4월 4일 금요일)






44일 금요일. 용산 독재자가 파면되었다. 오전 11시 22분. 그 순간 탄핵의 날이 되었다. 소리 높여 독재자에 저항한 광장의 시민들이 이겼다.








44일 금요일서울에 갔다. 다행히 그날은 일이 일찍 마쳤다. 오후 722분. 서대구역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관악구로 향했다. 그곳에 희곡 및 영화 전문 가게 <인스크립트>와 비슷한 책방이 있다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이 서점은 <인스크립트>와 다른 매력이 있다책을 읽으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서점이다당곡역에 내려서 골목길을 조금만 더 걸으면 늦은 밤에도 불빛이 흘러나오는 서점을 만날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책과 술, 그리고 영화가 있는 서점 <주책필름>이다


주책잡기(酒冊雜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술을 마시는 일)의 달인인 나는 오래전부터 <주책필름>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주책필름>영화와 책을 좋아하는 부부가 운영한다. 아내인 ()사장님은 1230분까지 <주책필름>을 운영하고, 남편인 ()사장님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작당모의>를 운영한다. <극장 작당모의>는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있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극장 작당모의>에서 단편 독립영화들이 상영되는데, 하루에 세 편의 영화가 나온다.










<주책필름> 안에 영화와 관련된 소품들로 가득하다. 서점의 벽에는 독립영화 포스터로 채워져 있다. 책방 한구석에 비디오테이프로 만든 탑이 있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으로 비디오테이프 영화를 볼 수 있다. <주책필름>관악구의 시네마 천국이다.










희곡 전문 서점이라면 반드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드라마에서 펴낸 보랏빛 표지의 희곡들이 있어야 한다<주책필름>에서 지만지드라마 책을 사면 사장님이 직접 비닐 책 커버를 씌워 준다비닐 책 커버는 책 표지의 손상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손끝에 남아있는 기름기가 책 표지에 묻히는 것을 방지한다.









































* 와즈디 무아와드, 임재일 & 최준호 함께 옮김 화염(지만지드라마, 2019)

 

* 와즈디 무아와드, 임재일 옮김 연안 지대(지만지드라마, 2019)

 

* 나탈리 사로트, 이광호 & 최성연 함께 옮김 아무것도 아닌 일로(지만지드라마, 2023)

 

* 팔로마 페드레로, 박지원 옮김 변신(지만지드라마, 2023)

 

* 아리스토파네스, 이희원 옮김 리시스트라타(지만지드라마, 2024)

 

*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김선욱 옮김 살라메아 시장(지만지드라마, 2024)

 

* 세르히오 블랑코, 박지원 옮김 테베랜드(지만지드라마, 2024)




<주책필름>에 판매하는 지만지드라마 책 중에 이미 구매한 책은 총 일곱 권이다. 이 책들의 절반은 <인스크립트>에서 샀다.







<주책필름> 한가운데에 너덧 명의 손님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가 있다. 혼자 오는 손님과 커플 손님들은 동네 풍경을 훤히 볼 수 있는 작은 탁자를 선호한다. 나는 커다란 책상에 앉아서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저녁 식사를 거르고 바로 서울로 간 나는 책벌레보다는 술고래가 되고 싶었다.







첫 번째 저녁 메뉴는 팝콘과 버터 맥주였다. 팝콘은 작은 그릇에 담겨 나온다. 팝콘을 아주 좋아하거나 같이 온 손님이 있으면 큰 대접의 팝콘을 주문할 수 있다. 먹다가 남으면 봉지에 담아서 가져가도 된다. 나는 큰 대접의 팝콘을 주문했는데, 밥 한 공기와 같았다. 그 자리에서 팝콘을 다 먹었다.







여사장님은 서비스로 땅콩과 피스타치오를 주셨다. 그리고 탄핵의 날기념으로 작은 위스키 잔에 따른 달콤한 탄핵 주()’도 얻어 마셨다.









 

저녁 식사 두 번째 메뉴는 치즈와 막걸리 하이볼이었다. 하이볼을 금방 다 마셔서 아마‥… 맥주를 주문했다. ‘아마‥… 맥주는 아마겟돈 맥주의 줄임말이다.


커다란 탁자는 여사장님과 <주책필름>의 단골들이 주로 앉는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건너편에 멋진 수염을 기른 서 씨라는 청이 있었는데, <주책필름>의 단골 중 한 사람이다. , 여사장님, 청년, 우리 세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사장님의 고향은 포항이며 서 씨는 대학생 때 경산에 생활한 적이 있었다<극장 작당모의> 영화 상영을 마무리한 남 사장님이 <주책필름>에 돌아오셨고, 운이 좋게도 <주책필름> 첫 방문에 부부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 백상현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그림으로 읽는 욕망의 윤리학(책세상, 2014)




서 씨는 프로필사진을 촬영하는 사진가<주책필름>에 오면 주로 위스키를 마신다고 했다이분도 책을 좋아하는 열혈 독자. 그분이 <주책필름>에 왔을 때 손에 들고 있던 책은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이었다


<주책필름>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 서 씨는 자신이 자주 가는 위스키 바가 있다면서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우리는 걸어서 위스키 바에 갔다. 자정이 지나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갔던 <블렌더스>라는 이름의 위스키 바는 건물 지하에 있다. <블렌더스>는 새벽 2시까지 영업하며 위스키뿐만 아니라 포도주와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우리는 포도주 한 병 주문하여 함께 마시면서 대화했다. 우리는 독서 취향이 비슷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경험한, 크고 작은 서글픈 순간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가슴속에 눌러앉아 있던 나의 감정들을 경청해 준 서 씨가 정말 고마웠다. 우리는 포도주 한 병을 비우고 헤어졌다. 다음에 또 <주책필름>에 오게 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서 씨는 토요일에 시간이 되면 관악구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그날이 오면>에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그날이 오면>1980년대에 문을 연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서점 이름만 들으면 책을 사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은 금방 녹아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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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4-08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년 서 씨와 위스키 바 간 거 너무 드라마 같은데요? 저는 술을 끊었지만 하이볼을 부르는 페이퍼네요.

cyrus 2025-04-09 20:03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셨어요. 낯선 곳에서 밤에 혼자 술 마시는 것이 사실 무모한 일이라 조금은 두려웠어요. 다행히 크게 취하지 않아서 서 씨가 집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숙소에 무사히 돌아왔어요. ^^

stella.K 2025-04-0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덕분에 눈요기한다. 나도 한때는 그랬는데 말야.ㅠ

cyrus 2025-04-09 20:04   좋아요 0 | URL
누님도 과거에 술을 좋아했었나요? ㅎㅎㅎ

stella.K 2025-04-09 21:20   좋아요 0 | URL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근데 사람들이 술 잘하게 생겼대.
내가 어디 봐서...? 치! ㅎㅎ

Comandante 2025-04-0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이 오면 서점 꼭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꼭 가볼만한 곳입니다.

cyrus 2025-04-09 20:04   좋아요 0 | URL
다음 날 아침에 <그날이 오면>에 갔습니다. 역시나 좋은 서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