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포와 도쿄 - 1920년 도시의 얼굴
마쓰야마 이와오 지음, 김지선 외 옮김 / 케포이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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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천국의 도서관으로 떠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별명은 ()의 거인이다. 눈만 뜨면 뇌가 고픈 거인은 엄청난 양의 책을 사 먹으면서 글을 썼다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루고루 먹는 삶을 살아온 그가 절대로 눈과 뇌에 대지 않는 이 있었다. 거인이 먹지 않은 책은 바로 소설이었다지식욕이 왕성했던 젊은 시절의 거인은 소설을 즐겨 먹었다. 이랬던 그가 왜 소설을 먹지 않게 되었을까?


거인은 현 시대의 문학 속에서 현실’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책을 먹으면서 무럭무럭 성장했던 젊은 거인은 기자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책 밖에 펼쳐진 거대한 현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카시가 바라본 당시 일본은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다카시는 경제 성장에 눈이 멀어 정의와 도덕을 짓밟는 사회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책과 펜을 무기로 만들어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다카시는 화려한 금빛으로 물든 현실에 가려진 추악한 인간 군상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사회 문제에 민감한 다카시는 소설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거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다카시는 현실을 외면한 문학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는 현실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논픽션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다독가는 무지와 편견을 경계하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다독가의 뇌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 뇌는 게으르다. 어려운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뇌가 느슨해지면 인간의 정신 상태도 느슨해진다. 다독가도 예외가 아니다. 다독가는 스스로 못 느끼겠지만, 느슨해진 뇌의 명령을 순순히 따른다. 여기서 편견이 생긴다. 뇌는 너무나도 얇고 투명한 편견 콘택트렌즈를 만든다. 눈동자에 편견 콘택트렌즈를 낀 다독가는 왜곡된 상태로 책과 세상을 바라본다. 책과 세상은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다. 그러나 게으른 뇌에 속은 다독가의 눈에는 검은색과 흰색만 보인다다카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눈동자에 달라붙은 편견 렌즈를 떼어내지 못했다. 그는 소설은 검은 책’, 논픽션 서적을 하얀 책이라고 믿었다.


다카시는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소설을 읽어봤을까? 그가 란포의 소설을 읽었다면 이야기에 ‘음침하고 불쾌한 검은색이 칠해져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생전에 란포가 사인하면서 자주 썼던 문장이다란포는 이 말을 신조로 삼아 글을 썼다. 그매혹적이면서도 기이한 환상적인 세계를 묘사했다. 란포가 묘사한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다. 종이로 만든 인형을 사랑하는 남자(압화와 여행하는 남자), 신이 되고 싶어서 무인도에 지상 낙원을 만든 몽상가(파노라마 섬 기담)는 현실 도피적인 인물이다. 란포 소설에 반사회적인 인물도 등장한다. 그들은 상식을 넘어선 망상을 실현하거나 비뚤어진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란포가 소설을 쓸 때 자주 다룬 소재를 네 가지 단어로 요약하면 환상’, ‘범죄’, ‘몽상가’, 변태. 그래서 독자들은 란포의 소설을 자극적인 이야기로 취급한다. 하지만 란포의 소설은 환상이라는 가면을 쓴 현실적인이야기. 지금까지 독자들은 란포의 글에 씌워진 가면만 보고 있었다. 란포와 도쿄: 1920년 도시의 얼굴은 란포 소설의 환상’ 가면에 가려진 현실을 주목한 책이다.


란포의 소설 속에는 다카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란포가 작가로 등단한 해는 1922년이다란포와 도쿄란포의 소설들을 모아서 ‘1920년대 일본 도쿄의 얼굴을 복원한다. 1920년대 일본 도쿄는 서구식 근대화가 진행 중인 거대한 도시였다. 근대 도쿄의 얼굴은 유럽풍 문화로 분칠한 모습이었다. 도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시골 사람들은 서구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도시인이 되어 갔다. 도시인들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고, 유흥가로 알려진 아사쿠사(浅草)를 산책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타지인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했다. 그들은 빈곤에 시달렸고, 외로웠다. 고독한 도시인들은 지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유흥가와 사창가로 향했다. 쾌락에 절인 도시인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란포는 독자들이 흥분할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그는 ‘환락의 도시’ 도쿄에서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사실대로 썼다


란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커지기만 하는 근대 도쿄 중심부에 살았다. 그가 관찰한 것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괴로운 현실의 무게감에 짓눌린 채 살아온 도시 부적응자들은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쾌락만 쫓아다닌다. 중독성이 강한 쾌락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의 정신은 흐리멍덩하다. 그들은 망상에 가까운 헛된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망상에 빠지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행동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한다이 상태가 지속되면 삶이 피폐해진다. 란포의 소설에 환상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이야기에 우리 눈앞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불편한 현실이란 인간성이 매몰된 자리에 비뚤어진 욕망으로 채운 건물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란포의 소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도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도시 속 카나리아.






<정오표>



* 65

 






보이이지만 보이지만






* 109

 





 영국의 마가렛 샌거 부인이 다이쇼 11(1922) 일본으로 건너와 1개월 정도 머무르며 산아제한강연을 전국 각지에서 개최하여 관심을 모았다.



마가렛 샌거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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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15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 아저씨 예리하긴한데 그 생각에도 뭔가 함정이 있지 않나 싶기도하네. 어차피 소설이 현실을 그린다해도 몇년 아니 몇달 후에 읽으면 어제의 산물 아닌가? 난 역사를 못 읽겠으면 소설이라도 읽어야 하잖나 싶기도 해. 글구 현실만을 그리는 게 소설의 전부는 아니거든. 그냥 그 양반은 소설과는 인연이 없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ㅋ
란포 뭔가 중요한 사람 같은데 일케 짚어주니까 좋다. 잘 썼네!^^

cyrus 2024-07-17 16:45   좋아요 1 | URL
란포가 살았던 1920년 일본의 사회 분위기와 현재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가 서로 비슷한 점이 있어요. 그때 당시에도 젊은 백수들이 많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고 해요. 흥미로운 사실은 1920년대 일본에서도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있었어요.

얄라알라 2024-07-20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이이지만....
이런 실수 저도 자주 하는지라 순간 뜨끔...

cyrus 2024-07-21 20:43   좋아요 1 | URL
저도 어쩌다가 ‘보이이지만’으로 쓸 때가 있어요. ^^;;
 





나는 10년 넘게 대구와 서울을 넘나들면서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독서 모임을 통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그윽하면 국어사전이 알려주는 취향의 뜻을 바라본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 그 순간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취향(趣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연극인들이 활동하는 대명 공연 거리가 있는 대구 남구 대명동<일글책>이라는 책방이 있다. 토요일 아침에, 이곳에서 고전 읽기 독서 모임이 진행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도서출판 숲, 2013)




올해 두 살이 된 독서 모임이다. 나는 이 모임이 처음 시작된 작년에 참석했다. 지금은 독서 모임 정회원이 아니다. <일글책> 독서 모임 회원들이 읽고 있는 책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고전 읽기 모임 회원 중에 향기라는 분이 있다. 향기 님은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다. 향기 님의 자택 지하실은 본인이 구매한 추리소설들이 가득 꽂혀 있는 서재다. 고전 읽기 회원들은 향기 님의 서재를 향기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향기 님은 추리소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본인은 대구에 추리소설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싶어도 자신의 취향과 같은 사람들을 모이기 어렵다고 했다.
















* [일시 품절] 에드거 앨런 포, 황소연 옮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윌북, 2022)




 

추리소설 읽는 취미를 혼자 즐겼던 향기 님이 이번 달에 드디어 자신의 취향을 듬뿍 담은 독서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독서 모임 이름은 <토요 미스터리 극장>이다. 모임 장소는 <일글책>이다.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윌북)이다. 어제가 첫 번째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이 모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책에 실린 포의 단편소설을 두 편씩 읽는다. <일글책>에 모여서 넷플릭스 드라마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을 시청한다드라마 어셔가의 몰락은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들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향기 님은 드라마 속 배경과 드라마에 패러디된 포의 작품들이 어떤 것인지 알기 쉽게 정리한 노트를 직접 만들었다. 향기 님은 이 노트를 만들기 위해서 드라마 <어셔가의 몰락>을 두 번 이상 봤다고 했다어제 모임은 드라마 1, 2회를 봤다. 1화 제목은 어셔가의 몰락이고, 2화 제목은 붉은 죽음의 가면극이다. 드라마 회차 제목은 포의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 에도가와 란포, 김소연 옮김 에도가와 란포(손안의책, 2017)




향기 님의 독서 모임 덕분에 나는 이번 달 중순에 진행하게 될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선정 도서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소설 선집으로 정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에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을 소개한 작가다. 포를 좋아해서 그의 이름을 딴 필명 에도가와 란포로 지어서 문필 활동을 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을 만나면 힘이 난다. 그분들을 만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생긴다. 이런 분들은 내겐 소중한 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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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독서 모임을 꾸린다면 과연 몇 명을 모을 수 있을까? 나를 제외한 두 명이 모인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독서 모임 이름은 책세상 출판사의 책 제목에서 가져왔다. 최근에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모임 이름을 줄이고 싶어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summer(여름)’를 합친 포썸으로 정하면 4명만 모여서(foursome) 골프를 치는 모임으로 착각할 수 있다. ‘포썸 말하기가 망설일 정도로 위험천만한 단어. 왜냐하면 ‘4인 난교를 뜻하는 성적인 은어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포 읽기 모임꾸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임을 만드는 사람이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문제가 독서 모임 선정 도서. 수많은 번역본 중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모르그 가의 살인: 추리. 공포 단편선(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 추리. 공포 단편선(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환상. 비행 단편선(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장편소설(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글쓰기의 철학: 작법 에세이(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글쓰기의 철학: 시 전집(시공사, 2018)




단편소설, 장편소설, , 에세이 등 포의 모든 작품을 수록한 전집을 함께 읽으면 좋겠지만, 모임 진행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그리고 포의 모든 글에 관심 있는 독자 한 명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소설보다 난해한 시, 단편소설들보다 인지도가 낮은 미완성 장편소설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포의 글 쓰는 방식을 알 수 있는 에세이를 읽어보겠다는 특이한 독자가 나타난다면 기인으로 볼 게 아니라 귀인으로 대해야 한다. 음울하고 음산한 묘사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포의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Gothic novel, 공포 소설) 읽기가 거북할 수 있다. 공포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잔뜩 기대한 독자들은 포의 고딕 소설이 시시하게 느낄 것이다.


포 전집 함께 읽기모임 꾸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포의 대표작들만 읽는 독서 모임을 꾸려야 한다포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관심을 높이려면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포의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 위주로 수록된 포 단편 선집이 좋다


잘 만든 포 단편 선집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첫 번째,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이 골고루 수록되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번역자의 주석이 많을수록 좋다. 포의 소설은 현학적이다. 그의 글에 국내 독자들이 모르는 저자 이름, 책 제목, 인용문이 나온다. 세 번째, 포의 생애와 포 문학의 위상을 알려주는 해설문이 있어야 한다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포 단편 선집은 총 세 권이다.



















* 에드거 앨런 포, 김석희 옮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열린책들, 2021)

 

* 에드거 앨런 포, 전승희 옮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민음사, 2013)

 

* 에드거 앨런 포, 마이클 코널리 엮음, 조영학 옮김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RHK, 2012)




열린책들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는 포의 대표작이 수록되어 있다.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 어셔가의 몰락(어셔가의 붕괴)은 포 단편 선집에 반드시 있어야 할 작품들이다. 그러나 민음사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 유일하게 실린 추리소설은 도둑맞은 편지.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는 단편 선집이지만, 포의 시 두 편(<까마귀>, <종소리>)과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 그리고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에 소속된 추리 소설가들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가 만든 상이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에게 주는 에드가 상이다이 단편 선집의 해설문을 쓴 열다섯 명의 소설가는 에드가 상 수상자다. 이중에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는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킹이 추천한 포의 소설은 고발하는 심장(일러바치는 심장)이다. 소설가들이 쓴 글은 해설문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래서 글이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작가들은 자신이 포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와 포 이야기의 매력을 알려준다모든 작가가 포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사라 패러츠키(Sara Paretsky)라는 작가는 포의 암호소설 황금 벌레에 흑인을 비하하는 묘사를 지적한다.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아쉬운 점이 있다. 포의 초기 단편 소설 병 속에 든 편지(병 안의 수기) 끝부분에 포의 주석이 달려 있는데, 이 책에 원주가 빠져 있다(민음사’ 판본에도 원주가 없다)실제로 포는 고양이 집사였다. 88쪽에 포의 반려묘 이름이 나온다. 카타리나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기는 캐터리나(Catterina)422쪽에 오자(‘<종소리>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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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7-12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포섬 possum이라는 귀여운 동물이 있는데… 철자는 다르지만 그걸로 우겨보면 어떨까요? :)

cyrus 2024-07-14 11:36   좋아요 1 | URL
좋은 정보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포섬’으로 입력하니까 건수하님이 말한 동물이 나오네요. ^^

transient-guest 2024-07-13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 그려지는 밤의 정경과 도취를 좋아합니다. 뭔가 살짝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뒤팽과 화자의 관계설정도 그렇구요.ㅎㅎ 저는 근처에 있으면 모임에 참석하고 싶네요.

cyrus 2024-07-14 11:36   좋아요 3 | URL
저도요. 어렸을 때 <모르그가의 살인>을 읽으면서 도입부가 너무 좋아서 몇 번 반복해서 읽었을 정도예요. ^^

stella.K 2024-07-13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으면 일단 온라인에세 해 봐. 그믐이라는 곳이 그렇게 하더라. 대신 진행자가 질문지도 만들고 그러나 봐. 첨부터 오프에서 하면 부담스러울수도 있으니까. 또 누가 아니 나도 참여하게될지. ㅋ
근데 책이 저렇게 새 단장을 하고 있으니까 웬지 갖고 싶다는 생각이드네.

cyrus 2024-07-14 11:38   좋아요 1 | URL
사람 만나는 일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모임으로 진행해 보고 싶어요. ^^

청아 2024-07-13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울하고 음산한 묘사 좋아합니다. 서울서도 진행하시면 저는 갑니다ㅎㅎ

cyrus 2024-07-14 11:39   좋아요 2 | URL
‘모임 하면 참석할 수 있다’라고 말하신 분들, 제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나는 과거에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철학책은 읽기 어렵다는 핑계로 철학 개론서와 철학사 관련 책만 골라 읽었다. 철학 개론서와 철학사에 축약된 철학 지식이 담겨 있다. 그것만 충분히 이해하면 철학을 좀 안다고 착각했다철학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철학사가 아닌 철학을 사랑해 보기로 결심했다











지난달 초에 시작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철학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선정 도서는 레비나스의 강연록 시간과 타자



















* 에마누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20204)


* 마르틴 하이데거, 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레비나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철학 스승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 담긴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하이데거는 라는 존재는 이미 구성된 거대한 세계에 내던져진’ 상태라고 주장한다하이데거의 는 현존재(Dasein)’즉 거대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세계가 없으면 는 존재할 수 없다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세계 속 타자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공존재(共存在, Mitsein)’로 정의한다여기서 레비나스는 개인보다 전체를 더 중시하는 공존재가 전체주의로 변질되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그뿐만 아니라 주체 및 이성 중심 철학까지도 비판한다레비나스에 따르면주체와 이성에 초점을 맞춘 철학은 타자와의 관계성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레비나스는 자신의 철학이 파르메니데스와 결별하자는 시도(시간과 타자, 37)’라고 한다왜 레비나스는 갑자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언급했을까? 레비나스는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하나요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철학자다. 영원불변하는 일원론 철학사를 통해 알려진 파르메니데스 철학의 핵심이다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파르메니데스가 만물의 변화를 거부하는 철학자’라고 외운

















플라톤, 정준영 옮김 《테아이테토스》 (아카넷, 2022)

플라톤, 김인곤 · 이기백 함께 옮김 《크라튈로스》 (아카넷, 2021)




파르메니데스 철학과 반대되는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만물의 변화를 인정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철학사를 외운’ 사람은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라고 주장한 격언을 강조한다. “너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크라튈로스》 402a).” 플라톤이 인용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은 만물 변화설을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을 명확하게 일원론과 다원론으로 구분 지어서 설명한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한 플라톤의 견해는 정확하지 않다. 상식으로 굳어진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 대 헤라클레이토스의 다원론’, ‘파르메니데스의 만물 불변설 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 변화설은 두 철학자의 진짜 생각을 보여주지 못한다. 지금까지 일부만 남아 있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 관련된 고대 문헌들 속에 플라톤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있다.



















* 김재홍 · 김주일 · 강철웅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아카넷, 2005)

 

* 움베르토 에코 · 리카르도 페드리가, 윤병언 옮김,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고대. 중세 편(arte, 2018)

 

* [절판] 피터 애덤슨, 신우승 · 김은정 함께 옮김 초기 그리스 철학(전기가오리, 2017)




헤라클레이토스가 쓴 글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을 인용한 다른 학자들의 글만 남아 있다. 히폴뤼토스(Hippolytus of Rome)라는 고대 로마의 기독교 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logos)’를 언급한 문장을 인용했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236)



헤라클레이토스는 처음으로 로고스의 중요성을 언급한 철학자. 그가 생각하는 로고스는 모든 만물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다. 고대 사람들은 완벽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문장을 근거로 내세워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 변화설을 믿었다는 플라톤의 견해를 반박한다(참고 문헌: 피터 애덤슨, 초기 그리스 철학, 움베르토 에코,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김주연 철학사 수업 1: 고대 그리스 철학(사색의숲, 2021)




파르메니데스는 최초로 존재론을 정립한 철학자존재론에 초점을 맞춘 철학자들의 계보를 만든다면 당연히 제일 먼저 파르메니데스가 나와야 한다. 레비나스는 전통적인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하이데거와 파르메니데스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한 존재의 정의는 아주 단순하다. 반드시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 있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므로 탐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그는 더 나아가서 있는 것절대로 변하지 않은 완벽한 구()’의 형태라고 믿는다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세계 속 존재들은 변한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변화하는 현상들 모두 감각이 꾸며낸 환영 또는 착각이라고 주장한다파르메니데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성이다. 그는 순수한 이성적 논리를 동원하여 존재의 불변함을 증명하려고 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의 변화를 거부하는 엄격한 일원론자로 알려졌으나 흥미롭게도 다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야말로 자신들의 지적 스승이라고 주장한다. 다원론자들은 자연이 변화한다고 믿는 자연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언급한 파르메니데스의 글에 주목한다. 자연철학자들은 세계가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변화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세계. 현실 배후에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이 있는 참된 세계가 있다. 다원론자는 참된 세계속 만물의 근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고 주장한다. 두 개의 만물의 근원이 섞이면현실 세계에서 필멸하는 만물이 생긴다. 그리하여 자연철학자들은 항상 변하는 자연 현상의 원인과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참고 문헌: 김주연, 《철학사 수업 1》).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로 분류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여백이 많은 철학자. 출생 연도와 출생지가 불분명하고, 고대 문헌에 적힌 내용이 정확하지 않아서 연구 대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이렇다 보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과소평가하는 철학도들이 있다하지만 철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철학도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철학 사상을 대충 보지 않는다.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공부한다. 그런 다음에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어제 쓴 글을 다시 강조하자면 지성을 사용할 용기(공부할 용기)와 무지와 오류를 인정할 용기가 모두 있어야만 철학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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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는 지혜를 사랑한(philosophy) 수많은 철학자를 찬양하라고 만들어진 기념비가 아니다. 철학사는 철학자라는 산봉우리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지도. 대부분 철학사 지도는 고대 그리스에 있는 산봉우리에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리스가 아닌 지역에서 활동했다. 철학사에서 언급되는 고대 그리스아테네와 스파르타로 대표되는 그리스 본토의 도시 국가들과 이들에게 지배받은 식민 도시 국가들을 가리킨다.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Thales)는 가장 먼저 생긴 철학 산봉우리다. 탈레스는 현재 튀르키예 영토가 된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이오니아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다. 


철학사 지도의 종류가 많다. 종류가 다양한 만큼 지도에 표기된 철학자 산의 개수도 차이가 난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철학자 산들을 비중 있게 다루는 철학자 지도가 나오고 있지만, 이미 만들어져서 유통된 대부분 철학사 지도는 최신 정보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철학사 지도들은 현대 철학자로 분류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산들까지 소개한다. 철학자 산을 오르려면 철학자 산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철학 사상을 반드시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철학자 지도마다 철학 사상에 관한 주요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아주 잘 만든 철학자 지도를 딱 하나만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철학사 지도에 적힌 내용은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수정될 수 있으며 새로운 정보가 추가될 수도 있다. 맨 처음 언급했듯이 철학사는 불완전한 지식이 담긴 지도이지 완벽한 기념비가 아니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철학이 아닌 철학사를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식을 검토하면서 숙고한다. 플라톤(Plato)의 대화 편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묘사된 소크라테스(Socrates)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 2020)



 최대로 좋은 일은 여기 사람들에게 그러듯 그곳 사람들을 검토하고 탐문하면서 지내는 일입니다. 그들 가운데 누가 지혜로운지, 그리고 누가 지혜롭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은 아닌지 하는 것들을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41d, 112)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들을 많이 아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사상을 지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으로 여기지 않는다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한계나 결점으로 보일 만한 내용이 있으면 검토한다.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학자의 견해를 검토하는 철학 공부는 모든 논변을 동원해서 저항하는 행위.

















플라톤, 전헌상 옮김 《파이돈》 (아카넷, 2020)



 자네들은, 내 말을 따를 거라면, 소크라테스는 조금 생각하고 진리를 훨씬 많이 생각해서, 내가 뭔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자네들에게 믿어지면 동의하되, 그렇지 않다면 모든 논변을 동원해서 저항하게나


(《파이돈》 91c, 98)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을 숙고하고 검토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의 일차적 목표는 철학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원전을 쉽게 가공한 철학사를 편애한다. 철학 원전에 본격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이해하기 힘든 철학 용어는 외운다. 철학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철학 사상의 정수가 담긴 용어만 알고 있으면 철학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의 어깨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앵무새. 앵무새가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이 철학 앵무새는 철학사 내용을 똑같이 흉내 낸다. 철학 앵무새는 철학자들에 저항하는 힘이 없다. 앵무새는 똑똑하지만, 철학 앵무새는 똑똑한 척한다.


철학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철학 원전을 직접 읽고, 철학사를 검토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사실 이런 독서 방식의 과정은 번거롭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오독의 위험성도 있다. 그래도 철학사 지도가 알려주는 쉬운 길보다는 철학 원전이 알려주지 않는 어려운 길에 도전하고 싶다.


항상 책을 읽으면 철학 전문 서점 <소요서가>가 만든 책갈피를 사용한다. 그 책갈피 속에 적힌 칸트(Immanuel Kant)의 말이 내게 책을 적극적으로, 좀 더 거칠게 읽으라고 부추긴다.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나는 이 책갈피에 또 하나의 용기를 눈빛으로 적는다. “나의 무지와 오류를 인정할 용기를 가져라!” 이런 용기까지 충만하면 철학을 열렬하게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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