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오스카 - 어느 평범한 고양이의 아주 특별한 능력
데이비드 도사 지음, 이지혜 옮김 / 이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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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을 노래하다 
 

군인들이 주말을 살아가는데 유일한 낙이라면 생활관에서 동기나 선임병, 후임병들이  

함께 TV보는 것뿐이다. 가끔 연병장에 나가서 전투 축구를 하기는 하지만,  

너무 덥다거나 추우면 생활관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TV만 보는 것이다.  

주말에 군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드라마 재방송, 음악 프로그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많이 본다. 특히 음악 프로그램이라면 군인들은 사족을 못 쓴다.  

부대 특성상 여자를 보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다. 그래서 오직 여자를 볼 수 있는 것이  

TV뿐이다. 입대 전에는 아이돌 가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군인이 되고나면 TV 속의  

아름다운 미모의 아이돌 여가수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병장 시절  

때였다. 황금 같은 마지막 주말인 일요일위 4시가 되면 생활관에 분대원들은 TV에  

집중한다. 음악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였다. 무대 위에서 가수들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춤과 노래를 불렀다. 방송 오프닝부터 흥겨운 무대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음악 프로그램 MC가 무려 5년 만에 컴백한 가수가 등장한다고  

소개하였다. 나는 과연 누구 나올지 마음속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컴백 가수가 틴틴파이브였다. 나와 분대원들은 한순간 맥이 빠졌다.  

내 동기는 잠깐 다른 채널로 돌리자면서 말하기도 하였다. 결국 틴틴파이브의 컴백  

무대는 보지 못했다. 틴틴파이브에 대해서 좋거나 싫은 감정은 없었지만 원래 한 번  

보는 채널은 다른 데로 돌리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다른 채널로 돌리기는 싫었다.  

하지만 생활관 내 분위기 상 독단적으로 계속 보자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 등장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모두 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이제 젊음의 잔치를 마무리하고 있는 다섯 명의 멤버들을.....

시간이 흘러 5월 초에 전역을 하였고, 그 달 중순쯤에 ‘휴먼다큐, 사랑’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잘 안 보지는 않았지만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휴먼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치병 환자들이거나 우리보다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게 된 프로그램에는 틴틴파이브의 멤버인  

이동우 씨가 나온 것이었다. 아니, 4개월 전에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나온 것일까?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을 보게 되니  

이동우 씨의 사연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희귀병으로 인해서 두 눈의 시력이 상실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욱 더 안타까웠던 것은 이동우 씨의 증세는 신혼 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력은 잃어가고, 그 사이에 태어난 5살 난 유일한  

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우 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 속에 희망을 찾게 해준 것은 가족과 틴틴파이브 동료들이었다. 부인은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다. 부인에게는 장애인 남편이 아닌 그냥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그리고 틴틴파이브 동료들은 10여 년 간의 우정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병이 치유될 수 있게 직접 나서서 도와주고, 치료 차 미국까지 그와 동행을  

하였다. 그리고 이동우 씨와 같은 환자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자 틴틴파이브는  

5년 만에 컴백을 하였다.  

 

더 감동적인 장면은 이들의 컴백 무대에 오르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무대를 선 이동우 씨는 떨린 마음에 자신의 선글라스가 유독  튀지 않느냐고  

동료들에게 농담조로 던졌다. 그의 농담 속에는 오랜만에 서는 무대에 대한 긴장감과 

자신이 멋진 무대의 티가 될 것 같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홍록기 씨가  

나머지 멤버들도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에 오르자고  제안하였다.  

다섯 멤버들 모두 선글라스를 끼면 한껏 젊은 모습으로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면서 무대 오르기 전에 컨셉을 급수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5년 만의 우정 어린 무대는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4개월 전 내가  

봤던  그들의 무대 뒤에는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는 끈끈한 우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호스피스 고양이 오스카 
 

<고양이 오스카>를 읽으면서 불현듯이 이동우 씨의 가족과 틴틴파이브 멤버들이  

떠올렸다. 오스카라는 고양이도 혼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삶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노인 환자들의 곁에 지키는 특이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고독과 절망의  

삶에 빠져 있는 치매 노인 환자들에게는 오스카 덕분에 조금이나마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고양이가 사람 곁에 있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오스카는 특별하였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노인 주위에 낯선 사람이나 주치의가  

접근하면 자신의 침범 구역을 넘어오는 적들에게 공격 의사를 보이는 것처럼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자신이 지키던 환자가 죽어서 영안실에 옮길 때까지 절대로  

병실을 떠나지 않는다.

이동우 씨의 가족과 틴틴파이브 동료들이 이동우 씨의 곁에 항상 있는 것은
그들을 이어주고 있던 사랑과 우정의 교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오스카는 환자들이 숨을 멎을 때까지 그들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될까? 어쩌면 오스카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도  

하다. 그리고 오스카가 단지 똑똑한 지능을 가진 고양이라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오스카와 환자들 사이의 특별한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지막 생의 한 순간을 오스카와 함께 했던 환자들은 생전에 그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했다고 말하곤 하였다. 비록 오스카는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절망에 빠진 환자들의
고통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환자들에게 고통을 잊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일종의 ‘호스피스’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만약에 내가 불치병에 걸린다면

이 책을 덮고 난 뒤, 스스로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내가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혹은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면  

내 곁에 끝까지 머물러 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일까? 심지어 한 순간의 불행으로  

장애인이 된다면 나와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리고 만약 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이 불행한 상황에 처해진다면 나는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내가 아프면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부모님이 치매에 걸린다면 끝까지 병 수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만에 말씀. 말이야 쉬울 뿐이다. 우리는 그런 비극적 상황 속에서 끝까지 병든 가족을
지켜주는 드라마 속의 착한 주인공이 아니다. 드라마에도 그런 착한 사람만 나오는 것이  

아니듯이 가끔 병든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무심한 사람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 뉴스에서는 불치병에 걸렸거나 불편한 몸으로 홀로 지낸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외로움과 가난 속에 살다가 쓸쓸히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 곁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당사자가
불치병이나 장애인 판정이 내려진 후에 가족과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간다.

그들의 행동은 불행한 상황 앞에서 쉽게 변하는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그들의 행동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들이 떠난 이유도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불치병이나 장애인이 된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제대로 된 가정생활은 불가능해진다.
<고양이 오스카>의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장모님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고백했다.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운명은 예측 불가능하다.  
남의 불행한 이야기가 곧 우리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이 책이 환자 부양과 관련된 사회적인 실태를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특별한 고양이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예상했던 독자들은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고양이 오스카의 특별한 사건들만  

이야기하여 독자들에게 고양이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려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치매 부양가족들의 삶과 호스피스 제도의  

현 실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도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책 분량은 가볍지만 읽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서 본
병원 안에서의 현실들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저자처럼 언젠가는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치매에 걸리게 되면 부양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인해서 수양 가족들도 무력감과 우울증이 발생하므로 결국에는 치매에  

걸린 가족을 외면하게 된다. 책의 에필로그에는 치매 가족을 위한 대처 방안들이  

소개되고 있다. 힘들지만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치매 가족 곁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단 치매에 걸리게 되면 생활 속에서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므로, 가족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치매 가족이  

조금이라도 기억력이 호전되더라도 칭찬을 하되, 치매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음을  

인지하고 꾸준히 부양을 해야 한다.

책 중간에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호스피스라고 하면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곁을 지키는 봉사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는 아직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는 만큼  

치매 환자들도 늘 것이다. 암과 같은 불치병 환자 전문 호스피스를 양성하는 것도  

좋다지만, 치매 환자 전문 호스피스의 양성도 시급하다.  단순히 치매 환자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 부양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조언 및 상담가 역할을 하게 된다면 부양가족들의 부담감이 줄어들 수 잇을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네 몫으로 주어진 사물들에 적응하고, 운명이 정해준  

사람들을 사랑하되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말했다. 만약에 나 자신이나 가족 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가 생길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치매 노인 환자들을 말한다. 삶이 힘들더라도 그것은 단지 일부분 일뿐이며  

항상 삶을 즐기고 주위 가족들을 사랑하라고. 아우렐리우스나 책 속의 치매 노인  

환자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마음속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면서도 막상 세월이 흐르게 되다보면 짧다.  

특히나 죽음의 신이 갑자기 우리를 찾아올 수가 있다. 그러면 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허무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곁에 있는 가족이나 우정을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달해보자.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유언이 고작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금까지 산 것이 아깝지 않은가. 사랑한다는 말은 못해도 사랑의 감정을 담은 조그만  

선물이나 편지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삶이  

즐거워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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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완역판
장 자크 루소 지음, 민희식 옮김 / 육문사 / 2006년 12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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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역도 완역판임을 내세우고 있다. 이 책의 리뷰도 대체적으로 평가가
좋다
에밀 또는 교육론 1
장 자크 루소 지음, 이용철.문경자 옮김 / 한길사 / 2007년 12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750원(3% 적립)
2010년 07월 20일에 저장
품절
특이하게도 이 2권짜리도 한길사에서 펴냈다. 그리고 번역자도 다른 사람이다.
추측이지만 2권짜리야말로 한길그레이트북스판보다 내용이 나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 이유가 우연히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서평을 모은 잡지에서
이 책의 서평을 보게 되었는데 약간의 오역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에밀 번역본치고는 훌륭하다고 평가하였다
에밀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한길사 / 2003년 10월
35,000원 → 33,250원(5%할인) / 마일리지 1,05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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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에밀> 번역본이 꽤 출간되었다. 하지만 각 번역본마다
반응이 엇갈린다. 축약본을 제외한 완역본의 번역자들은 공통적으로
불문학 전공자들이다. 그래서 누가 번역이 제대로 했는지 시시비비
하기가 애매하다. 한길사에서 나온 에밀은 번역에 대한 악평 리뷰는 없다.
하지만 직접 읽어봐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신엘로이즈 1
장 자크 루소 지음, 서익원 옮김 / 한길사 / 2008년 12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2010년 07월 20일에 저장
품절
전 2권, 중세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를 계몽주의 버전으로 재탄생한
장 자크 루소의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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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
E.F. 슈마허 지음, 이상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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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다익해(多多益害), 우리나라 경제특구의 현주소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음을 뜻하는 다다익선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지만 좋은 것이라고 해서 너무나 많게 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무작정 과식하게 되면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심지어 비만으로 초래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특구(경제자유구역) 설립의 시초는 김대중 정부 때이다.
동북아 허브 육성을 위한 추진으로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설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가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목표 하에  

부산·진해, 인천, 광양만권, 황해, 새만금·군산, 대구·경북 등 전국에 6개 경제특구가  

지정되었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는 황해, 대구․경북 지역은 재 지정되었고, 새로  

추가된 경제특구 지역은 새만금․군산이다. 그리고 현재 경기, 충북, 전남, 강원은  

추가 경제특구 지정 신청을 하였다. 그래서 현재까지 지정된 경제특구 지역의 지구 수는  

총 13개이다. 경제특구의 설립 목적은 외국 기업들을 불러들여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특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경제 성장에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아진 탓에 상황은 어려워지게 되었다. 외국 기업을 경제특구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기업이 운영할 수 있는 최적의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경제특구의 도로와 상가 등 기반시설을 설치하는데 들어간 세금만 해도  

2조원이다. 어마어마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경제특구 지역의 외국 기업은 생각보다 적다. 

오히려 도로, 아파트, 상가만 들어서게 되어 정작 정부가 내세운 경제특구의
목적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경제특구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늑장  

대응과 수도권 규제 정책을 이유로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경제특구 지정을 해제할 것을 원하고 있다.  

  

 

 만약 슈마허가 살아있었더라면

역대 정부 시절에 지정된 경제특구는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게끔 만드는  

기반 시설을 제대로 유치하지 못했다. 그리고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을 씌운 그들의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어 결국 경제특구는 빛 좋은 개살구만 되어버렸다.

만약 어네스트 슈마허가 살아있었더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는 자신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중간기술’이라는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중간기술이란 자원재생과 지역 에너지의 활용을 도모하는 동시에  

지역의 고용관계까지 배려하는 기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원을 소비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시킨다. 생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제특구와 같이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게 된다.

반면 중간기술은 고액의 투자를 들이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물론 중간기술도 생산과 소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산과 소비를 지역적  

차원으로 정하고 있다. 도시 중심이 아닌 농촌과 소도시가 만드는 ‘농업 관련 산업  

구조’를 형성하여 그 지역 내에서만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그 지역만의  

원재료, 그리고 단순한 생산기술과 생산비용으로 운영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실업률과 인구의 도시 유입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간기술을 적용한 산업 구조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의 특색을 갖춘  

경제특구가 그 예다. 나주 배로 유명한 나주시는 ‘배 산업 특구’로 지정되어 배 유통시설과 
가공공장, 테마공원 조성 등 특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배 농업이 증진하게  

될 것이며 나주시의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주시 이외에도 구례군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자연적 이점을 이용하여 야생화를 육성하는 ‘야생화생태특구’를  

지정하였다. 나주시와 구례군이 경제특구 유지를 위해 투입된 비용은 각각 259억 원,  

500억 원 정도이다.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많아야 1조 정도의 세금을 쏟아 붓는 정부의  

투자와 비교하면 지역 경제 특구가 효율적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경제학

현재의 경제학은 자원과 상품이 최우선이며 그 상품을 만들거나 또는 얻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자원과 상품에 눈이 멀게 되어 탐욕과 이기심이  

발동하게 됨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경쟁의 승자는 부를 획득함과 동시에 권력을 가지게 되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경쟁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은 자원 고갈, 환경오염 문제를 낳게 된다.  

결국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좁은 범위 안에서 피로스의 승리의 기쁨에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슈마허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불교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적 대안을 제시한다.
앞에 ‘불교’라는 단어가 수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슈마허의 경제학도 불교 사상이
녹아들어가 있다. 자본주의가 자원과 상품의 소비가 미덕인 반면에 불교 경제학은
인간의 삶과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은 인간의 능력을 발휘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교 경제학의 소비 형태는  

‘최소 소비 최대 이익’이다. 소박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게 되면 상품에 대한  

욕구를 해소될 수 있다고 한다. 비록 그의 대안이 자본주의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각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만성질환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가 있다.  자신이 산 상품들이 내가 살아가는데 이익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순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충동구매를 하고 있는지 자신의 소비 형태를 반성해보고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불교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최소 소비의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그가 이 책을 출간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슈마허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은 변하고 있다. 현재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다른 나라와의 경제적 교류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경제적 교류가 없는 폐쇄적인 국가는 경제 성장이 늦춰지게 되며  

빈곤하게 된다. 그래서 국가 간의 경제적 교류가 잦아지게 되면서 경제적인 통합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그가 비판했던 규모의 경제는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비만이 걸리면 성인병에 걸리게 되는 것처럼 뚱뚱해져 버린 규모의 경제에도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 간의 경제적 경쟁이 나중에 전쟁으로 일이 커지게 되어  

피를 보게 되고 만다. 그리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 간의 빈부 격차는 전혀 좁혀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석유는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는 마당에 인간의 부주의 때문에  

하필이면 많은 양의 석유가 바다에 흘러들어 환경오염 문제가 생기게 된다. 
 

우리 앞에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일으킨 문제들을 수수방관(袖手傍觀)해서는 안 된다.  뚱뚱해진 몸의  

지방을 빼기 위해서는 다이어트만이 살 길이다.  거대해진 규모의 경제가 작아지기  

위해서는 힘이 들더라도 해결하려는 우리들의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책 제목과 같이 우리 스스로 욕심과   

소비를 작은 것으로 만들게 되면 언젠가는 세상에 있는 모든 ‘작은 것’이 아름다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관련 인용기사 출처 및 링크

[ [지방정부가 국가재정 거덜낸다] [3] 산업단지·특구 난립] 조선일보 7월 19일자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19/2010071900117.html

[거부당한 경제특구] 중앙일보 7월 10일자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7/20/3919133.html?cloc=olink|article|default

[특구지정으로 지역경제 ‘청신호’] 세계일보 5월 26일자
http://local.segye.com/articles/view.asp?aid=20100524001890&cid=610106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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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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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性) 춘향, 팜 파탈로 변신하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중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면서도 개봉 내내 논란의  

화살을 맞아야 했던 영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6월에 개봉했던 <방자전>이다.  

영화 제목만 봐도 이 영화가 우리나라 고전소설 <춘향전>을 모티프를 한 영화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원작은 다 알다시피 기생 집안의 성춘향과 벼슬 집안의  

이몽룡과의 사랑을 그린 애정소설이다. 하지만 영화 <방자전>에서는
<춘향전>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몽룡의 몸종인 방자가 춘향에게  

한 눈에 반해 버려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자전>를 관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 속 춘향은 두 남자 주인공 방자와 이몽룡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을 휘어잡는  

팜 파탈로 나온다.  <방자전> 포스터를 보게 되면 ‘춘향, 두 남자에게 덫을 놓다’라는  

카피와 함께 춘향 역을 맡은 조여정의 포즈가 인상적이다. 한국적인 미를 발산하는  

아리따운 한복을 입고  단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아한 춘향의 얼굴이 아니다. 카피처럼 방자와 이몽룡뿐만 아니라  

모든 남성들에게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유혹의 덫을 놓겠다는 눈빛이다.  

그리고 남녀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과감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방자와 춘향의 모습이 있는   

포스터도 있다 . 영화는 전통적인 정절녀 춘향을 두 남자의 애간장을 타들어가게 만드는  

요부로 표현하면서 원전을 비틀어놓았다.

그래서 춘향문화선양회라는 단체가 원작 속의 춘향을 모독한 이유를 들어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상영금지 요청을 하였다. 그리고 영화 제작사를 향한 규탄 궐기 대회도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서 영화 제작사 측은 단체에게 사과 의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단체가 일으킨 상영금지 해프닝은 오히려 영화 관람객 기록 수만  

늘리게 되는 홍보효과가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이다. 
 

  

 미스 춘향은 있고 성춘향은 없다?

리뷰 작성을 계기로 인하여 알게 된 춘향문화선양회에 대해서 좀 도 알아보기 위해서

홈페이지를 열람하게 되었다. 이 단체는 춘향을 기리기 위한 제사와 전북 남원에서  

개최하는 미스 춘향 선발대회를 주최하고 있었다.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는  

영화 <방자전>과 관련된 규탄 성명과 궐기 대회를 알리는 글이 있다.   
그리고 ‘춘향 선양 제안’이라는 코너도 있는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보다 다양한  

글들이 올려져 있었다. <방자전> 상영금지와 관련된 의견들이 많았는데 영화에 대해서  

찬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영화는 엉터리 내용이며 춘향을 모독했다는 등 상영금지  

찬성이 있는 반면에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면서 오히려 상영금지 요청은 유교사상에  

젖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찬반 게시문은 으레 자유게시판에 있기  

마련인데 자유게시판은 생각보다 너무 조용하였다. 게시판이라기보다는 춘향 관련  

행사를 공고하는 글만 있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었던 것은 춘향연구논문자료라는 코너였다.
이 자료실에는 진짜로 소설 <춘향전>에 관한 문학적, 역사적 자료가 있을 것이라고  

큰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클릭하여 들어 가보니 제목은 그럴싸하게 춘향과 관련된  

연구논문 자료라고 해놓고는 내용은 글은 고작 두 개 밖에 없었다. 두 개의 글은  

어이없게도 역대 춘향, 이몽룡 선발대회 수상자 명단이었다.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미스 춘향만 있었지 정작 소설 속의 성춘향은 없었던 것이다.  

이 단체가 정말로 춘향을 기리고 있는지 의혹만 느껴졌다. 그리고 큰 실망감을 느꼈다.

<방자전> 규탄 성명서에는 <춘향전>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견하여
10여개의 나라에 번역이 되었으며 120여개의 판본을 갖고 있는 명작이라고 손꼽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춘향을 위한 홈페이지에는 춘향전의 판본의 수와 비교가 안 되는  

원작과 관련된 자료가 없으니, <춘향전>의 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성명서 속의 말이 무색하게만 느껴졌다. 
 

 

 왜곡된 ‘정절’의 의미

춘향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절녀라고 생각하는 것은 춘양문화선양회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용 전래 동화로 <춘향전>을 접했기 때문에
춘향을 정절을 지킬 줄 아는 전통적인 한국의 여성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춘향은 정절녀가 맞긴 맞다. 하지만 우리는 춘향이를 수식하고 있는
‘정절’의 의미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그 ‘정절’이라는 단어를
조선 시대부터 지배하고 있던 유교 사상에서 유래된 남존여비의 시선으로  

읽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정절’의 의미를 여자의 곧은 절개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한 평생 사랑하는 남자와의 정(情)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정절은 꼭 굳이 한 사람에만 지켜야 하는 것일까?
사전에는 정절은 꼭 사랑하는 딱 한 사람에만 지켜야한다는 말도 없지 않은가.
조선 시대에는 삼종지덕(三從之德)이라는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시집을 가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조선 시대의 여성은 연애의 선택권이 없었다. 좋든 싫든 한 남자와 혼인이  

성사되면 한 평생 살아야만 했다. 지금의 여성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연하남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한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하고 다른 배우자와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여성들에게 이혼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만약 부녀자가 다른 남자와 정분을 맺는 것이 발각된다면 정절을 지키지 못한  

죄로 가혹한 벌을 받게 되고 평생 주위 사람들에게 화냥년 취급받으면서 살아야 했다.
반면 한 평생 남편을 섬긴 여자들은 죽은 뒤에 나라로부터 ‘열녀’라는 칭호를 하사하였고
후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여자가 살았던 마을에 열녀문을 세웠다. 
이는 조선 시대의 여자들에게 정절을 강조하기 위한 국가적인 훈계책이기도 하였다. 
 

 

 춘향은 착한 여자?

정절을 지킨 여자들은 성격이 바르며 남편에게 순종적이며 품행이 단정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춘향은 매사에 자상하며 여성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춘향전>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아서 생각하게 되는  

착각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춘향은 전래동화 속의 인물이다. <춘향전>은  

다양한 판본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판본은 <열녀춘향수절가>이다. 
이 판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전래동화 속의 춘향과는 차이가 난다.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이몽룡이 서울로 떠난다는  

소리를 들은 춘향의 표정과 대사를 주목해보자.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별안간 얼굴색을 바꾸며 안절부절이라. 붉으락푸르락  

  눈을 가늘게 뜨고 눈썹이 꼿꼿하여지면서 코가 벌렁벌렁하며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며, 온몸을 수수잎 틀 듯하고 매가 꿩을 꿰 차는 듯하고 앉더니, 
    "허허 이게 웬 말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며 치맛자락도 와드득 좌르륵 찢어 버리고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며 도련님 앞에다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도 쓸데없다!” 
 

                                                                      - <춘향전> 송성욱 역, p 75 -  

 

이몽룡이 서울로 가게 되어 이별을 고하자, 춘향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분노의  

표출을 서슴지 않는 정열을 지니고 있다. 분을 억누르지 못해 치맛자락을 찢어 버리는  

춘향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의 모습과 비교하면 무척 생소하다.

그리고 춘향은 이몽룡에 대해서는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변학도에 대해서는  

저항적이고 도덕적인 열녀의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그녀의 두 얼굴은 단순히 이몽룡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이중적인 행동을 했던 것일까?

   전라도 남원에는 월매라는 기생이 있으니 삼남에서 이름난 기생이었다.  

  일찍이 기생을 그만두고 성가라고 하는 양반과 더불어 살았는데 나이  

  사십이 되도록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었다. 
                                                    

                                                      - <춘향전> 송성욱 역, p 11~12 - 
  

<열녀춘향수절가>의 시작에 춘향의 어머니인 월매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춘향은 단순히 기생 집안의 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녀의 아버지는  

양반이다. 그래서 양반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양면적인 신분 상태이다.  

춘향은 신분적 양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원 부사의 아들인 이몽룡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끈질긴 저항과 인내심으로 일부종사(一夫從事)의 도덕성을  

지향함으로써, 사회의 인습을 극복하고 결말에 이몽룡과 재회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킨다. 결국 춘향의 정절은 조선 시대의 신분 사회 메커니즘이 낳은 것이다.  

춘향의 사랑은 기생 신분을 벗어나 사대부가의 일원이 되겠다는 신분 상승의
성취 동기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니 춘향이 이몽룡이 서울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 속 춘향은 현대의 여성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 때 취업난으로 인하여 유행했던 신조어 중에서 ‘취집’이라는 말이 있다.
취직을 하지 못한 대학 졸업 여성들이 취직 대신에 시집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냉정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대안으로 선택하고 돈 많고 괜찮은  

신랑감을 찾는 요즘 여성들의 모습은 신분을 상승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춘향과 비교하면 별 다른 차이가 없다.  
 

 

 독자성이 결여된 우리의 대중문화

춘향이를 둘러싼 <방자전> 영화 제작사와 춘향문화선양회 간의 대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만의 시위는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을 통해서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암맹(暗盲)과 우리나라 고전에 대한  

관심 부족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문화의 어두운 현실이기도 하다.  

춘향문화선양회의 사례를 보여주듯이 <방자전>이 고전 소설 <춘향전>의 모티프를  

두고 있다고 해서 영화의 내용을 원작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작품은 일단 원작자의 손에서 벗어나면 원작이 아닌  

그 작품 내에 주어진 정보를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창작의 모티프나 동기를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만 하며 꼭 원작 내용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독창성이 없는 복제된 작품일 뿐이다 

 

반면 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예술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문화적 코드를  

이용해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 컨텐츠를 창출한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출간 50여 년을 지나서 피터 잭슨의 손에 의해서 현대적이면서도 원전의 맛을 살린  

영화로 재탄생했다.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에 등장하는 왓슨 박사는 자신의  

추리력 부재로 인해 주인공 셜록 홈즈를 부각시키는 인물이었지만
작년에 개봉한 리메이크 동명 영화 속 왓슨 박사는 주인공 셜록 홈즈 앞에서 꿀리지 않는  

호기로운 인물로 등장하였다. 결국 외국의 사례들처럼 독창적인 블록버스터 급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탄생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적 암맹에서  

벗어나야 하며 우리나라 고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대중들이 <춘향전>의 원전을 조금이라도 읽거나 이해를 하고 있었더라면
두 남자를 사로잡으려하는 영화 속 팜 파탈로 나오는 춘향에 대해서
그리 놀라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언급한 외국 유명 영화들은 고전을 읽은
독서 문화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읽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고전 읽기에 대한 역효과일뿐이다. 우리나라 고전의 대중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전통 고전에 현대적인 감각의 옷을 입혀야 한다. 그러면 독자들이  

고전에 대해서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춘향문화선양회와 같은 고전을 알리기 위한 단체 설립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우리나라 고전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설립 단체의 유지와 홍보 활동의 이익에 급급하다가는 정작 단체 설립 목적은 

잃게 된다. 그러면 고전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는 알리기는커녕 더욱 더 대중들의  

왜곡된 인식을 낳게될 뿐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 고전은  

외국에서 온 고전과 다양한 문화에 의해서 사장(死藏)될지도 모른다. 
 

서양의 고전들도 읽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자기 나라의 고전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전을 읽으면  작품 속의 과거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상들도 새롭게 보이게 되며  옛날의 고전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관련 인용기사 출처 및 링크 

 

['하녀'가 못한 일 '방자전'이 해냈다] 머니투데이 7월 19일 입력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7190057

[화난 춘향문화선양회, “영화 ‘방자전’이 춘향 모독했다”] 일간스포츠 6월 4일자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405287

[춘향문화선양회] http://www.nwchunhy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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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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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경매 회사의 실체

미술 경매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어느 미술품 경매 회사가 김환기, 천경자 등  

한국의 유명한 현대 화가의 초기 작품들과 고액가의 보석, 시계 등을 경매하게 된다는  

기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김환기, 천경자라면 미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인기 화가들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보다 컬렉터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경매 작품들의 백미(白眉)가 있었으니, 그것은 프랑스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이다.  

  


 

 

 

 

 

 

 

 

유명 미술 경매 회사에서 출품한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

 

경매 작품들 중에서 제일 높은 추정가를 기록한 작품이 천경자의 <백일>이라는 작품이며  

3억~5억 5000만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높은  추정가의 작품은 바로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1억 5000만~2억5000만원이다.  나머지 다른 작품들은 한국 화가들의  

작품들인데, 추정가는 르누아르의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평균적으로 500만원~2000만원 사이의 추정가 범위를 정하고 있다.

천경자의 작품이 이번 경매 출품들 중에서 최고의 낙찰 가격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작품도 무시할 수가 없다. 한국의 미술 경매장에서 외국의 그림이
출품된다는 점은 보기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도 르누아르는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이다. 루브르나 오르세와 같은 세계 유명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 하나 정도는
소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컬렉터들은 르누아르의 그림에 당연히 눈독 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르누아르는 벌거벗은 여자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림이 많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작품을 경매 관련 기사를 통해서 처음 보게  

되었다. 다른 미술 책에서 보지 못한 작품이었다. 물론 르누아르는 죽을 때까지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을 그렸으며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이 어딘가에서 어둠과  

함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 그림도 긴 세월동안 어둠과 먼지들 사이에
지내다가 드디어 이번 경매를 통해서 빛을 본 것일 게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낯익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고 나니 또 한 번의 태클 본능과 결합된 호기심이 솟아올랐다.
과연 이 유명한 그림이 어떻게 한국 경매 시장에서 등장하였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르누아르의 그림이 천경자의 그림보다 추정가가 낮은지,
그리고 이 그림이 정말 진품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세 가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유통 경로가 보안성이 짙은 거래라서  

그런지 내가 알고 싶어 하던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작품 추정가가  

생각보다 낮게 책정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외국 작품들은 자신들의 무대인  

외국 경매 시장보다 우리나라 경매 시장에서는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미술작품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따라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국내 컬렉터들의 작가 인지도, 작품 선호도에 따라 해외에서 통용되는 가격보다  

훨씬 낮은 선에서 경매 추정가가 책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르누아르가  

유명하다고 해도 작품 인지도가 낮으면 우리나라 컬렉터의 구입 의지가
낮을 것임을 고려하여 낮은 가격으로 책정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색을 하다 보니 기사에 나온 이 유명한 미술 경매 회사에 대해서
새로운 점을 알게 되었다. 확인 결과, 이 미술 경매 회사는 이전에도 다른 르누아르의  

작품을 경매 시장에서 출품한 적이 있었다. 르누아르 말고도 경매 시장에 출품되었던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들을 열거하자면 이중섭, 조르주 브라크, 앤디 워홀 등이 있다.
그리고 최고로 높은 경매 낙찰률이 70%이었다. 이것은 침체되었던 한국의
미술 시장의 부활 조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많은 경매 회사 관련 뉴스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4개월 전의 기사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회중시계가 경매 물품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 시계가 진짜로 순종이  

사용한 회중시계가 맞는지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순종의 시계가 경매 사이트에 공개한 것을 본 문화유산 관련 전문가는
순종의 시계는 순종의 능에 들어가는 부장품 목록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땅 속에 있어야 할 시계가 어떻게 경매장에서 등장하였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면서 진품 논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무엇보다도 전문가의 의견이  

신빙성이 높은 것은 순종의 능이 지금까지 도굴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전문가는 경매 시장에 나온 시계가  단순히 순종이 소장한 시계가 아니라  

자신이 구입한 많은 시계들 중의 하나라고 추정하였다. 결국, 경매장에서 출품  

예정인 시계는 순종이 직접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전문가는  

영리적인 목적을 위해서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단정 짓고 홍보를 하는 경매 회사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진위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 경매에  

나오게 되었는지 확실히 밝힐 것을 요구하였다.     
 

 

 

 작품의 본질을 보는 능력

사이토 다카시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라는 책에서 세계사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다섯 가지 힘의 영향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하였다.
그가 말한 다섯 가지 힘 중의 하나가 바로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라도  

명시되어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시대와 공간을 다르지만 인간들이 일으켰던  

역사적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욕망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욕망들이 서로 상충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재화와 권력을 누리는 부귀영화의 욕망은 사람들 간의 대립과  

경쟁 메커니즘을 형성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런 메커니즘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의 본질을 들어다보면 역사를 움직여왔던
보이지 않는 힘이 눈에 보이게 된다. 그래서 미술도 욕망의 힘으로 인해서 발달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앞에서 언급한 르누아르 작품의 경매와 경매 물품의 진위  

논란은 근본적으로는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의 힘에 기인하고 있다.

대중적인 미술 평론가인 이주헌은 <지식의 미술관>의 서문에서 직관을 활용해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능력을 배양하는 방법을  

구슬을 꿰는 실로 비유하였다. 지식과 경험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구슬이라면 직관은  

실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실로 구슬을 꿰는 것처럼 하게 된다면 감상 능력과  

안목 수준이 높아진다. 그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예술의 본질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식의 미술관>에 소개하고 있는 몇 몇 키워드를 동원하여  

두 가지 욕망 코드와 관련시켜서 오늘날의 예술 현상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1 남성의 성(性)적 욕망 : 
     나는 보고 싶지만, 남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줘서는 안 돼! 
 

여성의 벌거벗은 몸을 그린 그림들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남성들의 관음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성적 판타지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재미있게도 벌거벗은 여성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나서 성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상 증세가 심리학계에서 보고되고 있는데 이것을  

루벤스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예를 들자면 에로틱 연극으로 인기를 끌었던 '교수와 여제자' 있다.  

남성 관객들이 보면 화끈거릴 정도의 외설적인 성적 표현의 대사가 나오며    

두 남녀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전라의 연기와 파격적인 성행위 묘사 연기를 펼친다.  

가까이에서 보기 드문(?) 장면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남성들은  

공연 내내 꽤나 어질어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간혹 감정의 혼란을 주체하지  

못한 일부 남성 관객이 갑자기 무대 앞으로 뛰어들어 연기 중인 여배우를 껴안으려는  

돌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연극이 잠시 중단되었고, 남성 관객은 극단 측  

인원들에 의해 강제로 퇴장 당하였다. 연극도 예술의 한 일부분임을 생각하면 루벤스  

신드롬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벤스 신드롬은 벌거벗은 여성의 몸을 보면 성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남성들만의 심리가 만드는 증후군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남성들의 특정 심리를
이용한 정보 매체가 많다. 컴퓨터에서 보는 야동이나 포르노뿐만 아니라
이제 집 안의 TV에도 채널 돌리다보면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성적 코드를
무차별적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지금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정보와 매스컴 등이
그런 남성들의 심리를 24시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먼 옛날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 누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이때는 여성 누드보다는 남성 누드가 보편적이었다. 그리스 인들은
남성이야말로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여성은 아예 ‘인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품들은  

다 벌거벗은 남자를 모델로 한 작품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벌거벗은  

여성의 몸을 주제로 조각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만들어봤자 여성의 불완전성만  

부각시키기 때문이니깐. 물론 몇 몇 여성 누드를 주제로 한 조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조각의 모델들은 대부분 창녀, 무희, 신화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여인들이었다. 즉, 남성의 문명에서 소외된 여성들이다.

헬레니즘 시대가 오면서 드디어 여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여성 누드의 조각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인간’ 여성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작품을 설정하였다. 여자의 신체를 이상적인 형태로 표현한 조각품으로는  

‘밀로의 비너스’가 유명하다.   

 


 

 

 

 

 

 

 

 

 <밀로의 비너스>

 

우리는 그 조각을 보면서 당연히 상반신을 노출한 비너스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도 완전히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얇은 옷을 입은 것처럼 표현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비너스도 상반신 올 누드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고대 그리스의 예술은 남성 중심적이며 성차별적인 미(美)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예술적 의식은 19세기 근대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다. 

 

  

 근대 예술을 지배하고 있는 성적 욕망
  

근대 예술의 여성 누드는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장르로 확립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의 권력적 시선에서 바라 본 타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근대의 여성  

누드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들은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당시 예술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던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와  

같은 공적 미술 교육 기관에는 누드 실기를 주로 남성 모델로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술 학교 내에서는 여성 누드를 그릴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반(反) 아카데미 화가들은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여성 모델을 고용하여 여성 누드를  

그렸으며 간혹 아카데미 소속 학생들이 화가의 아틀리에에 찾아가서 여성 누드를  

그리곤 하였다. 어떻게 보면 아틀리에는 화가들만의 공간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여성  

모델들도 그리스 시대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모델들은 매춘업, 술집 같은 하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근대 문명에서 소외된 여성들이다.   

 

여성 누드는 단순히 누드를 바라보는 남성 관람객들에게만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아니다. 주로 남성인 화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스타브 클림트는 황금빛과 같은 다채롭고 화려한 색깔을 이용하여 여성 누드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지금은 예술적 평가는 높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클림트의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아틀리에에 여성 모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데  그 중에서 무려 13명의 모델들과  

관련된  염문을 뿌렸으며 심지어 클림트의 누드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그와 잠자리를  

해야  한다는 소문도 돌 정도였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여성 누드의 무서운 위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성 누드는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방하면서도 남성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이중적인 예술 장르이다. 여성 누드화가 이중적인 것처럼 남성들의 생각도 여성 누드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여성의 알몸을 보고 싶어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것은 혐오하고 오히려 그런 여성들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 남성지배적인 사고는 지금도 남아 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로 뜬  

파라과이 노출녀 라리사 리켈메의 예를 들 수가 있다.
전 세계 남성들 대부분은 지금의 리켈메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한 문제의 사진을
봤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 사진을 봤다. 전 세계 남성 네티즌들은 그 한 장의 사진으로
그녀를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리켈메가 자신의 고국이 월드컵이 우승하게 되면
올 누드로 거리를 돌아다니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전 세계 남성들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파라과이는 우승을 못하게 되었고, 월드컵 폐막이 

다가올수록 과거에 찍었던 그녀의 누드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녀에 향한 일부 남성  

네티즌들의 시선은 싸늘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녀가 최근에 인터뷰에서 월드컵을  

이용해서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 기사 이후로  

그녀의 빼어난 몸매와 쿨한 매력에 흠뻑 빠졌던 남성들은 한순간에 그녀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단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몸을 팔았던 여자라고 말이다. 물론 그녀의  

누드 사진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그녀를 옹호한 남성 네티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의 상황과 전혀 다르다. 불과 3주 전에 그녀의 몸매에 대해서 끝이 없는
칭찬이 이어졌으며 그녀가 말한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곤 하였다.
속내는 리켈메의 누드를 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그녀가 단지 마케팅 차원으로 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의 마케팅에 속아 넘어갔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아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움도 없이 개념 없이 옷을 벗는 풍기문란한 여자로  

손가락질하고 있다. 
 

 

 

 #2 소유와 지배의 욕망 : 나,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야 
 

15~16세기는 유럽은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동방과 신대륙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를 세계사에서는 ‘신항로 개척’이라고 말한다.  신항로 개척으로  

인하여 유럽과 다른 대륙 간의 교역이 더욱 활발해지게 된다.  그래서 동방과 신대륙의  

다양한 새로운 작물들과 물품들이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상업혁명에 큰 공헌을 한다. 

유럽의 신항로 개척은 노예무역과 팽창을 통한 식민지 형성이라는 사고가 지배하게 된다. 

특히 신항로 개척으로 급부상하게 된 신흥 상류층들에게는 자신의 부와 권력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진귀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올랐다. 그들은 자신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모은 물건과 동식물들을 따로 자신만의 컬렉션으로 만들어 자신의 능력과 

부자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과시욕은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또 하나의 예술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자신의 수집품들을 모은  

컬렉션을 그린 그림을 쿤스트카머라고 한다. 반대로 그림과 조각 등 예술 작품만 모은  

컬렉션을 그린 그림을 피타코테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과시욕은 자신이 사냥한  

동물들을 그림까지 표현할 정도이다. 사냥감 그림도 한 때 유행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세 가지 예술적 유행이 상류층의 욕구만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17세기에 이르러 정물화의 발달도 쿤스트카머와 피타코테카의 유행에 한 몫 기여했다.
상류층들은 자신들의 컬렉션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권력에 관한 과시뿐만 아니라 지적  

호기심과 탐구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컬렉션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전혀 다른 세상. 즉, 동방과 신대륙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그 곳의 진귀한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19세기는 동방에 대한 서양인의 관심이 한창 하늘을 찌를 때였다. 당시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동방은 오스만 제국이 지배했던 지중해 부근뿐만 아니라 인도, 아시아까지  

범위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동경에 대한 그들의 상상력의 동경은 식민지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와 맞물리게 되면서 동방 지역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동방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은 오리엔탈리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시대를 나타나는 문화적  

유행의 흐름에 따라 화가들은 오리엔탈리즘 회화를 구축하게 되면서 그들은 식민지에  

대한 우월적인 시선과 제국주의의 가치를 노골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과거에 쿤스트카머가 진귀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 것처럼
오리엔탈리즘 회화의 그림들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방 문화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식민지나 다른 동양의  

약소국에 침입하여 그곳의 문화재를 약탈하기까지 이른다. 서양인들은 예술품을  

애호(愛好)한다는 명분으로 식민지와 약소국의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전쟁의 승리자가 패자로부터 전리품을 약탈해오는 그들만의 관례에서 유래된  

일종의 소유 욕구 해소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은근히 자신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는 우월감도 내세우기도 하였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가해국인 유럽과 피해국인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이에 일어나는 대륙 간 문화재 반환 시비는 아직까지도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무조건 그림만 팔면 그만  

 

시간이 흐르면 시대와 공간은 변하고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소유와  

지배라는 욕구의 바다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두 바다는 서로 이어져있다.  

하나의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배하는 자만이  

가능하다.  지금도 상류층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있다.  

그리고 멈출 줄 모르는 소유와 지배욕은 미술 시장에서도 손을 뻗고 있다.
과거에는 화가가 그림을 팔기 위해서는 자기와 거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화상을 통해서  

그림을 팔고 수입을 얻었다. 화상들은 화가의 그림을 팔기 위해서 대형 백화점에 물건
진열하듯이 그림들도 쇼 윈도식 마케팅을 이용하여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도록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단순히 그림들을 진열하고 고객이 구입하기를  

기다리는 방식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현대에 오면서 미술 시장은 두 가지 마케팅  

방식으로 명확하게 갈라지게 된다.

화가들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VIP 고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구입하도록 만드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팔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화가라는 이름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방법 밖에 없다. 그들은 가만히 화가의 아틀리에에 처박혀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틀리에를 벗어나 좀 더 대중들에게 노출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만의  

마케팅을 개발하여 미술 시장뿐만 아니라 미디어까지 접근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화가는 앤디 워홀이 있으며 이런 부류의 예술가들을 아티스트 마케터라고  

부른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아틀리에는 ‘팩토리’라고 부르면서 당시 인기 스타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대중적인 스타들을 자신의 작업장에
초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게 되었다.

지금은 최고의 아티스트 마케터는 데미안 허스트이다. 그의 작품들은 일반인들이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재료와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데미안 허스트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죽은 상어 시체에 모터를 달아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유리관에서 움직이도록 

 설치하였다. 작품 출품 당시 갤러리들의 충격을 주었으며 최초의 낙찰가가 

 1억 원이었다가 2005년에는 140억 원에 거래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 같지 않은 예술 작품을 VIP 고객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마케팅이다. 한 때 미술계를 떠들썩했던 스캔들이 있었는데
해골에 무수히 많은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세계 전시 투어를 하게 되는데 전시의 목적은 단순히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팔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5000만 파운드의 가격이라는  

최고가 기록을 세우면서 팔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미술 경매 시장이 활성화된 것을  

알 수 있듯이 현대의 미술 시장은 과도하게 시장화 되었으며 상업적인 측면이 강하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략은 위작을 만들어 거래하는 것이다. 유명한 화가의 초창기  

작품이라고 한다거나 지금까지 공개되지 못한 새로운 작품 발굴이라는 식으로  

소란스럽게 홍보를 하는데 대부분 위작 작품을 알리기 위한 일반적인 방식이다.  

단순한 방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유욕에 눈 먼 고객들은 화상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개봉한 영화 <인사동 스캔들>처럼 김래원이 분한  

복원 전문가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거대 미술 경매 시장과 관계를 맺어
위작들을 만들어 내고 경매 시장에 내놓고 있다.  결국에는 위작 거래도 고객들의  

소유욕을 부추기게 되면서 미술 시장을 상업화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지루하고 긴 리뷰를 읽게 되면 책 속에 등장한 키워드가 눈에 보일 것이다.  

나름 리뷰를 조리 있게 쓰려다보니 내용도 길어지게 되었으며 간혹 읽다가 내용이  

비약적일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와 관련된 책 속의 도판들을  

리뷰에 넣으려고 했지만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누를 끼칠 거 같아서  

넣지 않았다. 읽는 내내 길고 지루한 형편없는 글이 되고 말았지만 독자들이  

직접 책 속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리뷰 내용마저 책의 내용을 

스포일러성을 느끼게 했더라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내용의 논리성은 썩 좋지 않았지만  

이번 리뷰 작성 덕분에 책에 있는 미술 키워드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이 책과 리뷰 작성을 계기로 제대로 미술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팔만대장경에는 짧지만 읽으면 긴 여운이 남는 문장 한 구절이 있다.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역사도 그렇고 미술사를 간단히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 같다.  

리뷰도 잘 써야겠다는 과도한 욕심 때문에 내가 봐도 욕이 절로 나오는 글이 되고 말았다.
별로 집착하지도 않을 정도의 조그마한 ‘욕심’이 결국에는 우리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커다란 ‘탐욕’으로 발전하게 된다. 벌거벗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상징했던 여성 누드는
지금은 남성들의 관음증을 유발하게 만드는 음란한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방에 대한 서양인들의 지적 욕구가 먼 훗날 동경했던 동방을 식민지로 삼아 약탈하고
무자비하게 살육할 것이라고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살아있는 동안 500여 점의 작품들 중에서 단 한 점만 팔았던 기인(奇人) 화가 반 고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불행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작품들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액수로 팔리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그린 적도 없는 해바라기 그림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면서  

거래 되고 있다. 안 그래도 고흐가 한 가닥 성격 하는 다혈질인데 하늘에서 인간들의  

끝이 없는 욕심과 욕망이 가득찬 세상을 보고 있자니 분해서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일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K옥션, 21일 명품그림, 보석, 시계 122점 경매] 한국경제 7월 15일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71567021 

 

[佛 유명 화가 브라크 작품…K옥션, 11억~14억 경매] 한국경제 5월 26일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52677441 

 

["외국작가 작품 경매 해외보다 국내가 싸네"] 서울경제 2008년 6월 17일자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0806/e2008061717315094210.htm 


[K옥션, 경매 눈앞에 두고 진위논란 '시끌'] 문화저널21 3월 9일자  

http://www2.mhj21.com/sub_read.html?uid=26358&section=section2 

 

[`교수와 여제자` 여배우 알몸연기에 남성 관객 돌발 난입] 

매일경제 2009년 12월 8일자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63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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