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 37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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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사람을 위한 소네트     

내가 태어난 이래로 아홉 번이나 태양이 자전에 의해 거의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을 때 지금 내가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여인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베아트리체’라고 부르는 바로 그녀가 말이다. (중략)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중략)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 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박우수 역, 민음사, p 19~20 - 
 

이제 막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던 9살짜리 소년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어여쁜 소녀를 본 순간 느꼈던 감정의 엑스터시(Ecstasy)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9년 후, 어엿한 청년이 된 소년은 길을 가다가 사랑의 신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축복을 내리는 여인’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베아트리체라는 소녀를. 청년에게는 사랑의 신과의 재회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사랑의 신이 먼저 따뜻한 미소가 머금은 인사를 건네자 청년은 9년 전에 느꼈던 황홀했던 감정을 또렷이 떠올렸다. 그 짧은 만남 이후로 청년의 뜨거운 심장 속에는 베아트리체라는 숭고한 여성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마음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리마돈나(Prima donna)로.  

수줍은 성격의 청년은 베아트리체에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직접 표현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에 꿀벌들이 모여들듯이 그녀 주위에는 수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기에 너무나 벅찼던 것일까?  청년은 마음 속 감정들을 마구 토해내듯이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로 표현하였다.  

축복의 재회 이후 7년 뒤, 베아트리체는 예고 한 마디 없이 신들이 살고 있는 천상계로 떠나고 말았다. 9살 때의 첫 만남부터 16년 동안 사랑의 신 앞에서 고백 한 마디도 못 해본 체 소네트를 쓰면서 사랑앓이를 해야 했던 청년은 망연자실하였다. 메마른 청년의 영혼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사랑의 신이 떠나다니. 베아트리체가 죽은 이후에도 청년은 자신의 심장 밖으로 그녀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틴 어 고전들을 읽어도,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서도 청년은 베아트리체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심장 속에 살고 있는 환상의 여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소네트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청년은 지금까지 써온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들을 모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완성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훗날 『신곡』이라는 르네상스 문화를 대표하는 장편 서사시를 완성시킨 단테 알리기에리의 처녀작으로 남게 되었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처녀작인『남방 우편기』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어느 비행사의 삶과 애상(哀傷)의 감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남방 우편기』의 주인공인 비행사 자크 베르니스는 9살의 단테처럼 어린 나이에 평생 연정을 품게 될 주느비에브라는 여인을 보자마자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 당시 자크의 나이는 13살이었고, 주느비에브는 이보다 두 살 위인 15살이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첫 만남을 13살의 자크도 9살의 단테 못지 않게 순간의 감정을 생명의 약동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도 역사 단테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신적 존재로 부여하고 있다.    

당신은 요정이었던 것이다. 기억이 난다. (중략) 여전히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조종 소리 
 를 덮으면서 부엉이들이 사랑을 찾아 서로서로를 불렀다. 떠돌이 개들은 동그랗게 모여 달을  
 향해 짖어댔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갈대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났다. 계속해서 달이 떠오르 
 고 있었다. 그러면 그대는 우리의 손을 잡고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했다. 우리를 안심시키는  
 좋은 소리는 바로 대지의 소리니까 말이다.》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160~161 - 

베아트리체와 주느비에브와 얼마나 아름다웠길래 두 남자들은 그녀들을 사랑의 신과 요정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아트리체가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라면 주느비에브는 요정이 아니라 모든 자연물의 생명력을 관장하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연상된다. 자크는 단테보다 한 술 더 떠서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사랑의 기운으로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식물들을 열거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테의 표현과 비교하면 자크의 표현에는 사랑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단테의 멋들어진 표현은 상투적으로 느끼게 된다.

   
  

 

 

 슬픈 베아트리체, 주느비에브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고백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16년간의 짝사랑은 슬프게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으며 오래 가지도 못했다.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서 죽었다는 죄책감은 마음이 연약한 주느비에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주느비에브 자신도 물론 자크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는 자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활짝 피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크가 자신을 냉담하게 외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망상에도 시달리게 된다.

 

주느비에브의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사그라지고 있었던 사랑의 불씨를 다시 한 번 지피기 위해서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다니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느비에브의 마음은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었고, 육체마저도 쇠약하게 된다. 결국, 슬픈 베아트리체는 자크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께요.....  

 

자크는 자신의 애마인 우편기를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주느비에브를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공중 위로 날려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비행기 아래에 보이는 광활한 자연의 대지 앞에서 잊어야 할 감정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만다. 대지 위의 자연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지의 요정인 주느비에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에도 우편물을 목적지에 전달하기 위해서 홀로 비행해야만 하는 자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들 사이에서의 비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행기 주위에 있는 하늘과 대지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자연물들을 죽은 주느비에브의 분신의 일부처럼 여기기도 한다. 특히 그에게는 달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어두운 밤하늘을 훤히 비쳐주는 주느비에브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나 보군.’  

   손을 뻗자 세찬 빗방울이 느껴졌다. 
   ‘이십 분 후면 다시 해안으로 돌아갈 거야. 거기는 평지니까 덜 위험하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밝아지는 거지!  구름 걷힌 하늘에 별들이 물로 씻긴 듯 말갛게  

   반짝였다. 달은.....  아, 달은 모든 전등 중에 가장 밝게 빛나는 전등이다!  

   아가디르 착륙장이 전기 광고판처럼 세 번 반짝였다.
    “저런 불빛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내겐 달이 있는 걸.....!”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235 -

주느비에브가 죽고 나서도 위험한 야간 비행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주느비에브에 대한 그리운 기억과 오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잠시나마 자연의 광경을 통해서 스스로 달래려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자연물로 상징되는 주느비에브를 잊지 않기 위해서 홀로 위험한 비행을 자처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자를 먼저 떠나보내 생기게 된 공허감과 그리움을 잊기 위해서 틈만 나면 소네트를 썼던 청년 단테처럼 말이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

내게 불어오는 바람아 / 너는 내 얘기를 어서 그녀에게 전해주렴
    내 몸을 적시는 빗방울아 / 너는 그녀 향길 어서 내 몸에서 씻어주렴
    내게 내리쬐는 태양아 / 너는 여길 떠나 어서 그녀에게 비춰주렴
    뭐든지 볼 수 있는 하늘아 / 그녈 볼 수 있게 어서 너의 눈을 빌려주렴.

    - 김진표(Feat. BMK) 「아직 못 다한 이야기」중 일부 -   

 

 

생텍쥐페리의『남방 우편기』중 자크의 비행 장면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하늘, 태양, 바람, 빗방울.....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구름 위의 세상은 비행사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별천지다. 하지만 이 미지의 세계가 주고 있는 원시적이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악천후 속에서도 자크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을 하면서 하늘과 대지의 아름다움만 느낀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도움을 통해 주느비에브를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주위에 있는 하늘의 자연들은 위험 요소가 아닌 자신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느비에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는 새벽 찬 이슬 맞아가면서 비행한 끝에 결국에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하늘의 보물'이며 '베아트리체'인 주느비에브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주느비에브를 만난 곳은 인적이 드문 모래만 가득한 사라하 사막 한가운데에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하늘 위에 빛나고 있는 별을 바라본 채.....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단테는『새로운 인생』의 첫 페이지부터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애틋한 사랑은 700여 년이 지난 옛 이야기로 남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가 남겼던 소네트 속에는 이제 막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있는 천국에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불멸의 사랑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크 베르니스의 죽음으로써 『남방 우편기』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위험천만한 일에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헌신하며 그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행복한 휴식을 찾는다

 

  -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서문] 앙드레 지드, p 9 -
 

자크는 주느비에브를 찾기 위해서 위험한 비행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우편 배달 임무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사랑과 일에 열중한 한 남자를 위해 신이 주신 행복한 휴식인 것이다. 그리고 단테가 죽어서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처럼 죽어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는 별로 간 자크에게도 이제 아름다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다카르에서 툴루즈에 알림. 우편물이 다카르에 잘 도착함.  

 그리고 프랑스-아메리카 우편기의 조종사는 무사히 천국으로 도착했다고 함.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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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10-10-1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생떽쥐베리...
정성 어린 서평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0-10-13 22:55   좋아요 0 | URL
정리가 안 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 텍쥐페리의 이 작품뿐만 아니라 같이 수록된
<야간비행>도 이야기가 좋답니다. 이 작품 역시
조종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든요.

2010-10-13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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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429] 그리스인 조르바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몇 점입니까?

어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인터넷 사이트를 눈팅하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측정한 결과에 대한 기사였다. 결과가 참으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할 때가 말하는 것과 먹는 것이란다. 하긴 여자들에게 수다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먹는 즐거움은 남녀노소 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하게 드는 요소인가 보다. 그런데 직업과 나이별대로 행복 지수를 측정하기도 했는데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40대 여성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반면에 40대 남성들은 행복하기는커녕 삶에 대한 흥미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40대 남성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유로는 경제적인 문제와 업무를 꼽았다. 40대 여성의 행복지수가 5점대인 반면에 남성의 행복 지수는 3점대에 불과하다.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의 평균 행복지수는 대체로 50점을 넘는다. 그리고 이 인터넷 기사에는 기사문을 읽고 있는 네티즌들을 위해서 행복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도 있다.  

 

(사족: 참고로 나의 행복지수는 4.44점이다. 건 뭐 숫자 자체부터 꺼림칙하다. 비록 평균 행복지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측정된 행복지수를 가지고 내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좀 애매한 점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 우리나라 행복지수 측정 결과 관련 기사 및 행복지수 측정 테스트  

(그냥 재미로 한 번 하셔도 좋을 듯)
http://news.joins.com/article/292/4391292.html?ctg=1200&cloc=home|showcase|main

  

 

 

 조르바식 행복론

 

만약에 조르바가 행복 지수를 측정하게 된다면 과연 얼마 정도 나오려는지 궁금하다. 조르바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이런 허접한질문들과 숫자 놀이를 가지고 행복을 측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색을 낼 것이다. 만약에 측정을 하게 된다면 평균 행복지수를 거뜬히 넘을 것이다. 기사문을 계속 읽다보면 ‘행복 십계명’이라는 글이 있다. 재미있게도 십계명 속의 일부 내용들이 조르바가 지향 했던 삶의 방식과 비슷하다.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38~39 -

자본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적 가치에 정열을 쏟기보다는 물질적 가치를 얻기 위한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조르바가 말한 ‘자유’의 정의대로 물질주의가 만든 고상한 정열을 버리게 된다면 자본주의적인 삶에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있으며, 더불어 행복감도 느끼게 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중략)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333 -

조르바는 복잡하게 세상을 사는 것을 거부했다. 한 번 생각해서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본능을 따르는 자유로운 ‘짐승’이 되려 하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실천하였고, 자신의 집게손가락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고민 없이 잘라내고 마는 행동파이다. 남이 뭐라고 하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남의 일에도 그는 개입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삶의 방식이 쾌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불경스럽기도 하며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지나친 낙천주의에 빠진 인간으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이성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걷어낸 진정한 삶의 승리자였다.   

 

 

  

 모든 대한민국 40대 아버지, 아저씨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조르바는 60대의 노인이지만 세상 앞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혈기왕성한 젊음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젊었을 때의 호기는 사라지게 되고 일상적인 세태에 순응하게 된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그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조르바는 자신에게 다가올 정신적 변화를 이미 알고 있었고 인생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스스로 대처하고 있었다. 조르바는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가 가족과의 단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 보쇼. 보아하니 당신은 악기 하나 못 만지는 모양인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있는 건 근심 걱정뿐..... 마누라가 그렇고, 새끼들이  

  그렇잖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이러다 무엇이 될까? 이런 젠장,  

  이래선 안 돼요.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예요.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22 -

조르바가 원하지 않는 삶이 지금 우리나라 40대 남성들의 모습을 보는 거 같다. 이 소설이 나온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버거웠던가 보다. 특히 대한민국 40대 남성을 대변하는 아버지들은 오늘도 가족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의 짐을 짊어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열심히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급여는 부족하기만 하고, 집에 있는 마누라는 돈 많이 못 벌어온다고 바가지를 긁어대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 사달라고 조르기만 한다. 그렇다보니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불편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조르바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자유분방한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비결이 옳다고는 볼 수가 없다. 조르바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삶의 방식일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불만, 근심, 걱정과 같은 부정적인 사고에 지배당하면 정작 우리 눈 앞에 가까이 있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과 방식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남성들의 성격상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나약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 줄까봐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이 스스로 찾아올까? 행복이 자신에게 찾아오게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고민을 가족들과 함께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하고, 가족들은 아버지의 고민을 공감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야 말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최선의 환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혼과 자유를 예찬하는 이 책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특히 인생의 참 맛을 느끼고 있을 대한민국 40대 아저씨들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단, 앞에서 언급했던 자유를 찾기 위한 가정생활에서의 도피나 조르바마초 기질은 소설 속 내용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넘어가시길. 괜히 실천에 옮겼다가는 가정 파탄(?)이 생길 우려가 있다.

조르바의 삶의 방식은 자유과 행복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그의 삶을 찬양만할 뿐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의 진리를 제시할 뿐이지 무조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인생의 자습서가 아니다. 학창 시절에 숙제로 낸 수학 문제들을 풀기 싫어서 참고서에 베끼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앞에 놓여있는 행복이라는 답을 찾기 위한 삶의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해나가지 않고 타인의 삶이나 책에 의지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남은 일생을 번뇌에 시달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자신보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에서 행복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행복은 자신과 같은 높이에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눈높이에 맞추게 되면 숨어 있었던 행복이라는 존재가 보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그리스인 조르바』가 대한민국 40대 모든 분들에게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그만 도움이 되는 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모든 40대 아버지들, 아저씨들이 행복해하는 희망찬 뉴스가 날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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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11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에 얽매어 살아야 하는 남자들에게 책을 통해서나마 거침없는 자유인(사실상 난봉꾼)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보라고 카잔차키스가 선물을 마련했구나 하고 생각해야죠.실제로 조르바 같이 산다면...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을 겁니다.

cyrus 2010-10-12 16:28   좋아요 0 | URL
저도 조르바를 읽으면서 이 사람의 행동과 쿨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지만..
간혹 배워서는 안 되는 것(?)도 있더라구요ㅎㅎ^^;;
그래도 이 책을 젊은 시절에 읽었다는 사실에 뿌듯하답니다.
물론 나이가 지나서도 읽어도 되는 고전이지만
대한민국 많은 중년 남성분들이 젊은 시절에 많이 조르바를
많이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리뷰에도 40대 남성 기사 내용과
연관시켰습니다.

2010-10-12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2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0-10-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 마디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영혼을 가진 남자죠. 저도 조르바의 무모함에 기가 질리긴 했지만 그가 삶과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막힘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는 점은 카찬차키스처럼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선입견,편견 없이 사물을 대하고 노래하고 행동하는.잊었던 한 남자를 키로스 님 글에서 보고 갑니다.
저는 행복지수 59.3 나오네요...^^ 감사~~

cyrus 2010-10-12 16:3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이런 그리스에 이런 걸출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나왔다는 점에 저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카잔차키스가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데,
생전에 받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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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1519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동안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들을 남겼다. 그가 종이에 기록된 내용들은 한 사람이 알기에 엄청난 양의 지식이다.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 동물학, 식물학에서부터 토목공학과 기계 등 그의 관심 영역이 광범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다 빈치 자신의 왼손잡이임을 이용하여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뒤집혀진 문자, 일명 '거울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노트들은 현재 6000여 장, 총 10권이 현존하고 있으며 각각 노트에 붙여진 이름명이 다르다. 다 빈치가 활동하던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종이들을 묶어 책으로 만든 필사본을 코덱스(Codex)라고 불렀는데 다 빈치가 남긴 코덱스들은 전 세계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보관되고 있다.  

 

1995년, MS 회장 빌 게이츠‘코덱스 레스터 (Codex Leicester)' 원본을 3500만 달러(한화 약 350억 원)에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하기도 하였다. 빌 게이츠 본인 스스로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로 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라고 말할 정도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천재가 남긴 노트의 보존 가치가 높다. 
 

빌 게이츠가 사들인 코덱스 레스터에는 그 유명한 헬리콥터, 잠수함, 낙하산 등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그 당시 시대로서는 앞서가는 훌륭한 아이디어들이다. 하지만 다 빈치는 무수히 쏟아낸 아이디어들을 종이에만 기록할 뿐, 직접 설계를 하지 않았다. 왜 설계 하지 않은 것일까? 그 당시로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기계라서 그런 것일까? 물론 시대가 15세기이다보니 다 빈치 본인이 직접 만들기에는 약간은 실현이 불가능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다 빈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다 빈치는 노트에 그렸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직접 만들어 그의 제자가 시범으로 비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날지 못해 땅으로 추락하여 비행을 시도한 제자는 큰 부상을 입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만약에 다 빈치의 비행기가 성공했더라면 라이트 형제보다 무려 500여 년 정도 앞선 최초의 비행자로 기록될 수 있었을 텐데.....    

 

사실 다 빈치는 자신이 만든 발명품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히지 않기를 바랬다. 당시 다 빈치에게 무한 총애를 주고 있던 밀라노 공작 스포르차 공은 다 빈치의 발명 노트를 보고 크게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 이 발명품으로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데 이용할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다 빈치의 발명품을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명 노트 하나 가지고 다 빈치와 스포르차 공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다 빈치는 스포르차 공의 계획이 영 탐탁치 않았다.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터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죄 없는 시민들이 잔인하게 살육당하는 것이 뻔하였으며 그는 이런 무서운 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다 빈치의 노트의 발명품들은 지금까지도 코덱스 레스터 안에서 남게 되었다. 다 빈치가 실제로 발명품을 만들었다면 역사상 보기 드문 천재로 평가를 받는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 구조도 달라졌을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s 코덱스 퍼블릭(Codex Public)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후 500여 년 뒤. 일본의 어느 여성 에세이스트가 다 빈치의 코덱스와 비슷한 형식의 노트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요네하라 마리의『발명마니아』이다.  

 

제출 마감이 임박한 상황 속에서 칼럼을 쓰고 있을 때,   

 

집에서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자신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면서 밥 달라고 보챌 때도, 

 

몸 속에 점점 퍼져나가는 암세포가 자신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주고 있을 때에도

 

마리 여사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다 빈치처럼 거창한 발명품도 아니며 마리 여사의 수많은 아이디어 일부에는 도저히 현실 불가능하면서도 황당한 것들도 있다. 그의 그림들을 보게 되면 예전 어렸을 때 에디슨처럼 발명왕이 꿈꾸면서 생각나는 대로 그린 그림이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다빈치처럼 자신이 기록한 발명품들을 실제로 만들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코덱스는 다 빈치의 코덱스보다 퍼블릭(Public)하다.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자신만의 생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본 고민과 문제들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만든 것이다. 읽다 보면 '아! 나도 살면서 이런 불편을 겪었는데.....' 라고 공감을 일으킨다.   

 

교통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울트라 초 변신 만능(?) 자동차,  더운 날, 길거리에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에어컨, 코골이를 막는 방법, 남성들 소변기에서 오줌 눌 때 안 튀는 방법, 누워서 책 읽는 방법 등등.....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한 점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다 빈치의 코덱스가 암호 같은 거울 문자로 이루어져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없지만, 마리 여사의 코덱스 퍼블릭에는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자신의 발명 아이디어에 대해서 일말의 자랑과 과시를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직접 세부적인 도안을 곁들인 발명품 그림들을 손수 그렸는데 항상 그림 서명에는 본명이 아닌 '아라이 야요' 라고 표기하고 있다.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마리 여사의 그림 실력을 볼 수 있으면서도 또 다른 인물을 탄생시킴으로써 숨어 있던 제2의 능력에 대해 겸손한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녀 특유의 문체로 아이디어의 탄생 과정을 위트 있게 설명하고 있어고, 그림에서도 그녀의 유머가 묻어나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았다. 

 

  

 

 자연주의자 마리 여사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인간에게 유익한 발명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핏줄이나 다름없는 자식이며서도 분신인 반려동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도 소개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방법, 집 안에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모든 반려동물들을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제안하기도 하며 그의 그림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 사랑을 넘어서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인간 중심주의에 빠진 독자들을 일깨워주는 글들도 있으며 대부분 그의 발명품들은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큰곰자리를 향해 죽은 노라(犬)의 이름을 붙여 '노라자리'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볼 때는 마음 한 구석에 찡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과 동물 간의 보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에 마리 여사가 염려했던 천국과 지옥에서의 인구 과밀 현상만 안 일어난다면 지금쯤 천국에서 노라와 함께 놀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발명여왕 최후의 발명, 『발명마니아』 

 
이 책의 제일 마지막 글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밝히는 최후의 발명을 언급하는 일화가 있다.  

(꼭 읽어보시길.....)

어쩌면 마리 여사의 최후의 발명을 꼽으라면 바로 이 책, 『발명마니아』라고 말하고 싶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녀가 죽고 난 뒤인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된 걸로 알고 있다. 그녀는 2006년에 난소암으로 사랑하는 노라가 있는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이름을 모르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제목만 보고 발명에 대한 과학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읽어보면 엉뚱하기만한 발명품에 대한 글만 늘어놓고 있으니 황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최후의 발명품인『발명마니아』는 독자들에게 휴머니즘적 유머를 제공하고 있다.  

  

마리 여사의 글을 사랑하는 마니아 독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따분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   

불치병에 맞서서 투병 중인 독자들,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그림과 글을 원하는 독자들 그리고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 우울한 사람에서부터 웃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자신이 웃고 있는 얼굴을 확인할 수 있으니깐.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0222 

 

마리 여사의 글을 처음 접했던 책이 <대단한 책>이라는 서평 모음집이었다. 마리 여사를 처음 만난 책치고는 그 책에는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마리 여사를 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어두운 면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간혹 암 투병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넣은 마리 여사의 밝고 활기찬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보기 좋았다.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들, 동물들에게 유쾌상쾌한 웃음을 전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잠시나마 투병의 고통을 잊게 해준 웃음 안정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은 인류가 살아가는데 이익이 된 발명품을 만들어 낸 토머스 에디슨에게 '발명왕'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붙여주면서 그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지구의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애와 유쾌한 유머가 버무린 아이디어들을 남긴 요네하라 마리 여사에게 이제부터 단순히 발명만 즐길 줄 아는 발명마니아가 아닌 지구상 유일의 '발명 여왕' 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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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서운 그림 3 - 위험한 진실의 명화들 무서운 그림 3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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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만큼 못한 아우    


재미있게 읽은 나가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이 3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라딘에서 접하였다. 생각도 못 했다. 저자의 2권 후기에는 후작을 기대하라는 일말의 힌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가의 힌트를 못 알아차릴 수 있다)  뭐 어떠랴? 재미있게 읽은 책의 후작이 나오면 그냥 읽으면 되니깐. 이런 예상을 하지 못한 후작이 나오게 되면 속으로는 너무 기쁘다. 책에 대한 기대감을 간직한 채 며칠 전, 도서관 신간도서 서가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뜻밖의 만남이라서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새벽 일하는데 시간 때울 책이 없어서 곤란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서 내심 기뻤다. 제목도 '무서운 그림'이니 만큼 조용한 새벽에 혼자 읽으면 뭔가 재미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  

슬슬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새벽 2시 쯤부터『무서운 그림 3』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3권에 소개될 무서운 그림의 목록을 쭉 훑어봤는데, 10% 정도 실망감이 들었다. 몇 몇 그림은 유명한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1, 2권을 읽으면서 헨리 퓨젤리의 <몽마>가 왜 안 나오나 싶었는데 3권에 나오니 약간은 기대감의 맥이 빠진 것은 사실이다. 초반의 실망감은 마지막 그림인 퓨젤리의 <몽마>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그림들이 그렇게 무시무시하다거나 인상 깊지 않았다. 지루한 새벽의 시간 때우기는 좋았으나 읽기 전에 가졌던 기대감만큼 미치지 못했다.   

흥행영화 한 편과 관련된 후작들이 나오게 되면 항상 전작보다 낫지 못하다는 평을 받게 되는데 책에도 그런 악평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보다.

      

 

 보면 볼수록 애매모호한 그림   

아..... 이번 3권이 생각보다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치다 보니 그렇게 인상 깊은 내용도 없고, 책 내용상 흥미있는 그림 이야기를 살짝 언급하면 안 될거 같고..... 읽고 난 뒤에는 항상 작문의 딜레마가 오는 것이 나카노 교코의 저작이다. 그래서 그림 이야기들 중에서 그렇게 인상 깊지도 않으면서도,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구태의연한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족일지도 모르지만 브뢰겔의 <이카로스의 추락>이라는 그림을 사이트에 검색하면 이 그림과 관련된 글이 게재되어 있는 블로그가 몇 개 있다. 이 그림을 찾을 때 알게 된 것인데 리뷰 표절 의혹에 대해 문제 삼을 수 있을까봐 미리 언급하려고 한다. 내용은 블로그의 내용들과 비슷한 것은 사살이지만 그렇다고 블로그 내용 전제를 복사하여 갖다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피터르 브뢰겔의 그림이라고 추정하고 있음 <이카로스의 추락>  

그림 속 범선 밑에 잘 보면 물 위에 발이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에 빠져 다리만 보이는 인물이 하늘을 날다 바다에 빠져 죽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이카로스이다.  그림 이름이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장면을 뜻하는 것 같은데 실제 그림에는 이카로스가 추락하고 있지 않다. 그림 속 주인공은 이미 바닷물에 빠져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다. 나가노 교코는 이 그림을 그냥 <이카로스의 추락>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 <추락한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이라고 부르는 미술 도서도 있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후자의 제목이 그림과 더 어울리는 거 같다. 그림 속 육지에 있는 두 사람은 각자 밭을 가고, 양 치기하느라 이카로스가 강에 빠져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나마 이카로스가 추락한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흰 옷의 남자는 낚시를 하고 있는 중인데, 그 역시도 자기 코 앞에 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고 있는데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는거 같다. 그래서 그림 속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적막한 분위기도 난다. 그림 속 세 사람은 묵묵히 자기 일에 빠져 있다. 이카로스가 물에 빠지는 소리라도 들었으면 반응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됩니까?  


브뢰겔이 활동하던 16세기 네덜란드는 잦은 권력 쟁탈의 무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 밑에 누가 반란을 일으켜 그 반란자가 새로운 왕이 되고, 왕의 반대 세력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그 반대 세력 중 한 사람이 새로운 왕이 되고..... 나라를 1년 통치하는 왕이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왕좌에 앉아 있기 위해 왕족들은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싸웠다. 그러다 보니 왕족 싸움이라는 고래 싸움 때문에 네덜란드 귀족과 민중의 새우들은 항상 등이 터지게 마련이었다. 왕이 하도 바뀌다 보니 이들도 도대체 누구 앞에서 복종해야하는지 속으로는 속을 앓고 있었다. 현 지배자에게 복종을 맹세했다가 얼마 안 가 지배자가 바뀌면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지쳤는지 민중들은 이제 남 일 마냥 세상에 관심을 끊게 되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신이 ‘누구누구의 지배세력을 옹호 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꺼리기도 하였다. 괜히 그 말 했다가는 또 지배가가 바뀌게 되면 모가지 날아갈 수 있으니깐.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이나 무슨 말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스스로 자기 주변에 담을 쌓고 세상사에 대해 회피하였다.
 

  

김선주 씨의 에세이집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 ‘별 일 없이 산다’라는 글이 있다. 그녀는 장기하의 얼굴들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면서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 무관심하고 나름 별 일 없다는 듯이 잘 사고 있는 모습을 보이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성을 비꼬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이유를 세상에 대한 희망이 아닌 절망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위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네덜란드 민중들도 전쟁 없이 너도 나도 잘 사는 네덜란드를 꿈 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이 너무 미약하였다. 결국,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절망적인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생활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세상의 소리들도 들리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보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살 만하다. 절망 같은 세상 속에도 희망 한 줌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 소수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허투루 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정말 ‘별 일 없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보다 더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온 세상과 주위 사람들이 엿 같다고 해서 자신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외면하면 과연 이 세상에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김선주 씨 글의 바늘 같은 마지막 구절이 우리 스스로 세상과 담 쌓아 가두는 삶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찔리게 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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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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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 시절의 로망, 해적  


 


내가 아주 어렸을 때 K 방송국에서 하던 그 만화 피터팬,  

알고 보니깐 그 유명한 미국의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사진이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저 후크와,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꽁지머리로 묶고 다닌 피터팬과  

조그만 팅커벨.....  나에게는 디즈니의 피터 팬보다 이 피터 팬이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보고나니 점점 잊혀지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린다....ㅠㅠ  


  
영화 <후크> 포스터, 이 영화도 꽤 재미있게 봤었다.     

어렸을 때 처음 봐서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이 어린이용 영화가 

초호화 감독과 캐스팅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 팬 역: 로빈 윌리엄스, 팅커벨 역: 줄리아 로버츠, 후크: 더스틴 호프만. 

 .....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ㅎㄷㄷ)

 

 
오다 에이치로 작 <원피스>
  

속세에 때 묻지 않았던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에 해적을 동경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이제 막 애기 티를 벗고 난 뒤였을까.....?     

기억은 잘 나지는 않지만 K 방송국에서 만화 '피터 팬'을 본 적이 있다.  

그 때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항상 마지막에는 우리 착한 주인공 피터 팬그 특유의 웃음과 포즈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피터 팬의 앙숙 후크 선장에 대한 기억이 더 남는다. 잔혹하고 악한 후크의 냉혈한 심장에는 예전의 순했던 성격과 악한 성격을 가지게 된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다란 배와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후크 선장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어린 남자 아이들의 마음에도 은연히 남성다운 남성이라는 본성이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 사춘기에 들어서도 해적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 쯤에는 일본에서 만든 만화 <원피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 동료들과 거친 바다를 모험한다는 해적 판타지 액션 모험 로망 만화(?)였다. 1권부터 초창기 시리즈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군대 갔다오고 다시 읽으려니깐 이미 시리즈는 50권이나 넘어섰으니 다시 읽을 수도 없고.....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고..... 

어쨌든 나에게 해적이란 캐릭터는 남을 잔인하게 죽이고, 보물을 약탈하는 악한이면서도
광대한 바닷가를 떠돌며 모험을 즐기줄 아는 마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해적의 탄생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해적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에서 찾아 낸 새로운 얼굴의 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단지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장소와 맞서서 모험과 유흥을 즐기는 마초가 아니었다.

15~16세기 유럽 대륙에 휩쓸기 시작한 신항로 개척의 영향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유럽의 하층민들은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 아래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바다’에 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상류층들은 하층민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상업인들은 항해사 모집 포스터에 "바다 위의 재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바다가 손짓하고 있다."라는 식의 허위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런 광고 문구를 보고 돈이 궁한 하층민들 중에 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다라는 미지의 장소를 알지 못했고, 평생 바다라는 곳에 가보지도 못한 하층민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배의 항해사에 모집하였다. 가난한 무직자에서부터 노숙자까지..... 가난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항해사가 될려고 하였다. 그들은 바다 위의 힘든 생활보다는 빛나는 금화들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항해 경험이 초짜였던 하층민들의 삶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개고생..... 그리고 죽음이었다. 

 

선박 주인들은 여러 명의 하층민 항해사들을 노예 다루듯이 부려 먹었다. 육지에서도 윗 사람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는데 바다에서도 그 막노동 생활을 하고 있으니 후회가 절로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박 안에서의 일은 힘든 노동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은 광대한 바다 앞에서 겁에 질려있었다거나 운이 없게도 태풍과 만나면 파도에 휩쓸려 죽기도 하였다.  당시 선박 위생 환경이 열악했던 터라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육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해야 한 항해사들에게는 하루종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것이다.  

 

거지 같은 삶에 지친 일부 항해사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자신이 타고 있던 선박에서 반란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반란에 성공하여 거대 선박 한 척을 차지하게 되면 이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남의 선박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마는데.....  

  

그들이 바로 '해적'인 것이다. 약탈을 통해서 재화를 차지한 그들은 드디어 막혔던 삶의 해방 통로를 찾은 것이었다. 이 때부터 해적들이 바다 위를 활개치면서 다니게 되었다. 

 

 

 

 바다 위에 싹을 틔운 공동체 사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해적도 변하였다. 단순히 약탈을 자행하는 바다의 도둑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개척자가 되었던 것이다.

해적은 일반 선박과 달리 노동 강도가 적으며 방식도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항해사의 삶과 비교하면 해적은 귀족이었다. 그래서 일반 항해사들 중에서도 해적단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 당시로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나미처럼 돈만 밝히고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해적 일원이 꼭 한 명이 있기 마련이다. 해적단에 이런 일원이 한 사람이 있게 된다면 그 해적단 내에서 분쟁과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해적들은 해적단 내에서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법을 만들게 된다.  

 

  

  1.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어느 때든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공동선을 위해 절약하기로 결정한 경우를  

    빼고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2. (전략) 동료의 보석이나 돈을 한 푼이라도 사취하면 무인도에 내버린다.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사는 게 고생스러울 것이 확실한’  

    해변에 하선시킨다. 

  3. 주사위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6.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여성을 유혹하여 배에 데려온 것이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진다.

  8. 배 안에서는 서로 때려서는 안 되며,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칼이나  

     권총으로 결정한다.  

  9. 각자 1천 파운드의 저축금을 채울 때까지 현재 삶의 방식을 계속해야 하고,
    (중략) 근무 중에 불구가 된 사람은 공공 기금에서 800은화를 받고, 부상자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배분받는다.

 -「바르솔로뮤 로버츠의 해적 규약」중 일부, 『문명과 바다』에서 재인용 - 
 


해적 규약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해적의 생활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해적들이 이 규약을 확실히 지켰을런지 알 수는 없지만, 해적 생활 내부에도 공동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약탈한 재물에 대해 동등한 소유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과 동료의 재물을 탐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내린다는 규정은 이채롭기만 하다.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법으로 일원을 다스리는 법치주의를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해보험 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해적들은 단순히 배를 타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깡패가 아닌 나름 민주주의적 원리를 갖추고 있는 바다 위의 사회 집단인 것이다. 

    

  

 

 

 해적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다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밀짚모자 해적단원들에게도 이 법을 적용한다면..... 

루피와 그의 일행들이 배 위에서 다투기도 하는데 규약 제6조에 의거하면 육지에서 싸워야한다.

상디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식량을 축내는 루피는 규약 제1조 식료품 평등권 소유에  

위배됨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만화, 영화에서 비춰지는 해적의 모습은 실제 해적의 모습과 다르지만 해적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례적이지만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1558~1613) 치하 때 드레이크(1545?~1596)라는 선장이 당시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는데, 그 공로로 '경'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는다. 그러나 과거에 그는 스페인 선박을 위주로 해적 활동을 하였다.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 활동한 애국심이 있는 해적인 셈이다. 국가간 대립이 잦았던 옛날 유럽에는 드레이크 이외에도 적국 선박을 노려 약탈을 자행하는 해적들이 활동하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에도 해적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잡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이들은 원래 약탈 목적으로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자국의 내전 상황에도 개입하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자국의 극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막기 위해서 해적과 손을 잡았다. 소말리아 해적의 군사력이 자국의 군사력보다 막강하기 때문이다. 세계 해적 소탕 작전을 주창한 UN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세계와 소말리아 정세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게 없지만 요즘 악의 집단으로 변모하는 해적들의 모습과 뉴스를 접하게 되면 어렸을 때의 동경하던 해적은 그냥 어린 시절에만 가능했던 순수한 동경이라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만 하다.   

 

"나는 해적왕이 될꺼야!" 라고 외치면서 일반 사람들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4차원적인 성격이면서도 남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루피와 같은 유쾌한 해적.....  

 

이제는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해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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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들의 도덕률이 있었군요.
동아시아의 해적에 대해 저술하려면 아무래도 일본해적들...왜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왜구에는 중국인,동남아인까지 참가해서 다국적이었다고 하더군요.우리나라 제주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cyrus 2010-10-09 17:43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해양사가 언급됩니다.
왜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외국인 하멜의 이야기까지요.
하지만 저자가 서울대 서양사학 전공이다보니
우리나라 해양사의 비중을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적 이야기도 서양의 이야기만 되어 있기도 하구요.
갑자기 동양의 해적에 관해서 설명한 역사책이 출간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4   좋아요 0 | URL
진순신 <중국사> 명나라 편에 동아시아 해적 이야기가 있더군요.드레이크 처럼 조정에 큰 영향을 끼친 해적도 있더라구요.

cyrus 2010-10-1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해적 중에도 영국의 드레이크 견줄만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좋은 정보의 댓글을 남겨주신 노이에자이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