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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평점 :
[1001-448]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년 1월 1일 새벽,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이전에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송이 시작되었다. 백남준이 주도 하에 존 케이지 등 전위 예술가와 대중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프랑스의 파리와 미국의 뉴욕, 그리고 한국을 연결하여 실시간으로
위성 생중계한 퍼포먼스를 제작하였다. 퍼포먼스 제목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 퍼포먼스로 인해서 백남준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되는
20세기 예술사의 큰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백남준은 퍼포먼스를 통해서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의 빅 브라더 사회가 오지 않았음을 위성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시켰다. 역사적인 생중계 이후 언론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비평가들은
백남준의 위성 방송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1984>의 ‘빅 브라더’는 개인 생활 및 사상의 통제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는 지배 기구를
상징하고 있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그리고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권력의 일당독재화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정당화하며 자유라는
인간으로서의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빅 브라더의 눈은
일상 속에 살고 있는 개인의 삶마저 들이댄다. 심지어 인간으로서의 본능적이면서도
은밀한 성 생활까지 감시하면서 욕구 충족을 위한 성 생활을 억제한다. 작품 속
빅 브라더의 사회는 처음부터 결말까지 전체주의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전체주의 사회에 굴복해버리고 마는 윈스턴 최후의 독백과 함께 흐르는
눈물은 빅 브라더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미디어의 존재를 무서워하고 부정하면서도
결국에는 미디어의 매력에 사로잡혀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중략)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리며 택한 유형(流刑)이여!
그의 코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 조지 오웰『1984』 정희성 역, p 417 -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미디어도 다변적으로 발달하였다. 범죄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설치한 CCTV에서부터 이제 방송에서는 일반인부터 유명 연예인까지 개인의 일상
생활이 TV와 인터넷으로 전파되고 있다. 특히 트위터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발달됨으로써 실시간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며 예전보다 신속한 정보 소통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과 모르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트위터에 올린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개인 정보 유출은 사생활 초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트위터의 개방성을 악용한 범죄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 영국에서는 빈집털이범
경력이 있는 사람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다른 사람의 트위터에 공개된 일거수일투족의
기록을 이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빈집털이범들은 트위터에 자신의 여행 일정을 올린
사람들을 범죄 대상으로 삼았다.
세계를 지배하는 빅 브라더, 미디어 제국주의
미디어를 지배한 빅 브라더는 인간의 공공장소에서까지도 영항을 미친다.
예전 극장에 영화가 시작되기 전 지배정권에 관한 보기 좋은 소식들을 알려주었던
‘대한 늬우스’처럼 빅 브라더 사회의 극장에도 전체주의 정권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홍보성이 짙은 영상물이 스크린에 전파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일으키고 있는 전쟁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어젯밤에 영화관에 갔다. 모두 전쟁 영화였다. 피난민을 가득 실은 배가 지중해 근처에서
폭격을 당하는 장면이 가장 볼 만 했다. 크고 뚱뚱한 사내가 그를 추격하는 헬리콥터를
피해 헤엄쳐 도망가다가 사살되는 장면에 이르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 조지 오웰『1984』 정희성 역, p 18 -
이 대목에서 무시무시한 점은 잔혹한 전쟁 영화 장면에서도 관객들이 전혀 연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점이다. 수잔 손택은 전쟁의 참혹성에 관해서 쓴 자신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대중들은 전쟁을 경험하고 있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개입
능력의 상실에 대해서 지적을 하였다. 빅 브라더 체제의 사람들은 범람하고 있는
미디어의 거짓된 영상으로 인해서 타인의 고통에 개입하려는 능력이 상실되었다.
정치 지배 세력이 미디어를 독점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현상은 다원주의인 지금도
볼 수가 있다. 이탈리아의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기 나라의 민영 TV 방송국을
3개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 미디어 그룹의 소유주이다. 동시에 이탈리아 세리에 A 축구
명문 팀인 AC 밀란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미디어 매체와
AC 밀란을 총괄하는 통합적인 그룹을 만들었다. 속내에는 자신의 기업이 유리하도록
하기 위한 사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는 많은 부정적인 정치 스캔들 속에서도 3선이나
총리직을 올랐다. 그리고 그는 2001년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W.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동조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세계적 정세의 배후에도 베를루스코니보다 더한 미디어의
지배자가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지구촌의 정보통신부 장관’이라는 칭찬과
‘비도덕적인 악덕 자본가’라는 악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미디어 제국의 왕 루퍼트
머독이다. 그가 소유한 미디어와 이와 관련된 사업만 해도 총 52개국 780여 종에 달하며
한때 미국 LA 다저스의 소유주이기도 했었다. 머독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정권의 이라크 타도에 한 몫을 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이라크를 세계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데 기여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머독이 장악하고 있던 미디어의
힘이 컸다. 미디어의 무서운 전파력은 커다란 홍보 효과를 낳았다. 대부분 전 세계
사람들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부시의 허황된 말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2003년 3월 20일 오전 5시 30분, 미국은 이라크의 바그다드 중심부를 공습하였다.
전 세계로 방영된 공습 장면에 세계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1984>에서 전쟁 영화
장면을 보는 관객들처럼 ‘세계 공공의 적’ 후세인의 나라가 파괴되는 모습에 환호하는
사람들, 반대로 세계를 재편하려는 미국과 거대 미디어 제국의 합작에 희생당하는
이라크의 모습에 세계 평화 존속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로 나뉘어졌다. 지배계층에 의해
미디어가 통제되고 이를 권력 유지에도 이용하는 ‘미디어 헤게모니’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다. 부시 정권은 이라크를 세계 평화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이라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였다. 미국 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 여론 속에서도
그는 이라크 전쟁을 찬성했던 신보수주의자들을 힘입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했던가. 조지 W. 부시의 아버지였던 동명의 부시 대통령도
1994년 재임 당시, 이라크를 침공하여 걸프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CNN을 통해서
전 세계로 방영되게 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도 전 세계인들은 자연스럽게
미국에 동조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1984> 속의 미디어 헤게모니는 하나의 거대한
정치권력이 하나의 나라를 통제하고 있지만 지금은 미디어가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세계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게 되는 ‘미디어 제국주의’가 형성됨으로써 지금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믿는 미디어에 발등 찍혀버린 백남준
백남준의 퍼포먼스 제목에는 조지 오웰의 영혼을 만나 당신의 예언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조소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리고 과학 기술로 발달된
미디어가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찬가를
불렀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과거에 백남준이 불렀던 희망찬가는 이제 그만
불러야할 때이다. 백남준은 하나의 거대한 정치권력이 만든 빅 브라더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미디어가 정치권력과 결합하여 거대한 키메라로 진화된 새로운 빅 브라더의
존재를 예언하지 못했다. 그리고 미디어가 우리에게 풍요로운 것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시도하고자 했던 미디어를 이용한 세계
통합은 거꾸로 미디어가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미디어가 올바르게 성장해주기를 바랐건만 10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의 악동으로
자라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백남준은 믿고 있었던 '미디어'에게 자신의 발등이
찍혀버리고 만 셈이다.
미디어가 만든 빅 브라더가 사라지기에는 너무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렸다. 윈스턴처럼
빅 브라더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을 펼쳐야만 하는가? 그것은 바위에 계란 치는 격이다.
윈스턴과 같이 빅 브라더에 대항했다가 나중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만든
빅 브라더의 존재를 남 일처럼 같이 여겨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실 미디어는 현대 문명
발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이다. 미디어가 없었더라면 ‘지구촌’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셜 맥루한이 말한 것처럼 미디어는 TV와 컴퓨터를
이용해 우리의 감각을 마사지하고 있다. 지금도 24시간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는
수많은 정보들이 여러 가지 미디어를 통해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를 무조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에게 유용한, 그리고 올바르고 진실한 정보를
가려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미디어 정보에 대한 적극적인 안목이 있어야 앞으로 계속
위세를 부리게 될 미디어의 빅 브라더에 희생당하지 않을 것이다.
인용 관련 기사 자료 출처
["트위터에 휴가계획 올리면 큰일나요"] 한국일보 7월 21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1007/h2010072116385822450.htm
[이탈리아 권력·언론 장악 베를루스코니] 경향신문 2009년 12월 22일자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12221758265&code=9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