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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질병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97
헨리 지거리스트 지음, 황상익 옮김 / 한길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이번에는 더 센 놈이 온다. 슈퍼박테리아
작년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신종 플루가 남기고 간 공포가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지고 있어가고 있는 즈음에 이번에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열도가 공포로 떨고 있다. 특히, 발병의 근원지가 병원이라는 점과 이를 은폐하고 있었던 병원 관계자의 대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2월에 문제의 병원 환자 8명이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어 그 중 4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염자와 사망자 수도 늘어나서 현재는 집계된 감염자 수가 46명이며 사망자는 27명이다. 여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슈퍼박테리아의 정식 병명은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이다. 증상은 패혈증, 폐렴 증세가 나타나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보이고 있다. 면역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될 우려는 낮지만 면역력이 낮은 중병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현재로서는 슈퍼박테리아에 대항할만한 항생제가 없다. 슈퍼박테리아의 등장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대책만이 그나마 슈퍼박테리아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최우선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일 뿐이다.
인류 질병 잔혹사
역사를 되돌아보면 강력한 질병들이 등장하여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헨리 지거리스트의『문명과 질병』에는 역사 속에서 맹위를 떨쳤던 악명 높은 질병들을 소개하고 있다.
14세기 중세부터 17세기 절대왕정 시기까지 페스트가 전 유럽에 창궐하였으며, 그 당시 취약했던 위생 환경과 미숙한 의학 기술 덕분에 페스트 이외에도 콜레라, 결핵 등과 같은 전염병도 유행하여 많은 유럽 시민들의 사망자수를 늘리는 데 일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피바람이 전 세계에 불고 난 뒤인 1918년에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였다. 2년 동안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중세 시기 때 유행했던 페스트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수이다. 이 책이 1943년에 발표한 것이라서 질병의 역사는 여기까지 소개되어 있지만, 세계적 질병의 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업화의 발전과 동시에 보다 높은 의학기술이 보유하게 된 선진국은 과거에 치료할 수 없었던 병들과 종말을 고했지만 개발도상국이나 빈곤 국가에서는 아직도 말라리아, 콜레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의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세균들은 항생제의 내성에 강하도록 스스로 계통번식을 하였다. 이후로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가 등장하였으며 2003년에는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2009년에는 신종 플루의 등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판데믹포비아
역사 속에서 인간들을 고통스럽게 한 불치병들은 의학기술로 인해 지구상에서 떠났지만, 인간들이 느끼는 질병에 대한 공포는 아직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전 병들보다 더 강력한 질병이 지구를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총 6단계로 지정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최고 위험 등급을 판데믹(Pandemic)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전염병의 대유행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데믹 경보를 내린 사례는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최근 신종 플루를 포함해서 단, 4번뿐이다.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여 세계적인 유행병이 발생할 수 있는 초기 상태를 4단계로 두고 있으며 5단계는 병의 유행이 임박했다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병의 유행이 심각하면 6단계 판데믹으로 등급이 상승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론에서 언급되는 전염병 경보 단계 가지고 지나치게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공포의 감정이 너무 지나치면 판데믹포비아(Pandemicphobia)까지 이르게 되어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게 된다. 자신의 몸에서 조금이라도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발견된다면 곧 죽을 병 걸린 것 마냥 착각하기 쉽다. 신종 플루가 한창 유행했을 때 마스크와 손 소독제의 매출이 증가했으며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손 소독기를 설치하여야만 했다. 이전에 설치되었던 손 소독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은 혹시나 자신도 병에 걸릴 우려 때문에 손 소독기를 사용에 의존하게 된다. 이번에 발생한 슈퍼박테리아의 경우에도 면역력이 강한 사람에게는 무해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 사이에 병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감이 확산된다고 대한의사협회가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판데믹포비아는 과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지금과 같은 의학기술이 본격적으로 갖춰진 시기는 20세기부터이다. 유럽 중세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세기까지는 의학 기술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전염병과 각종 질병의 유행 앞에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기독교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타개책이었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은 자신이 살면서 큰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신이 큰 벌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페스트 환자들은 신 앞에서 면죄와 동시에 자신의 병을 낫기 위해서 자해를 가하였다. 지금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방법이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질병의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하였다.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은 황당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정신병 환자들을 신을 반하는 악마나 마녀로 규정하였다. 무고한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대중의 행동을 뜻하는 ‘마녀사냥’ 도 신이 내린 벌이었던 질병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두려움 속에서 탄생되었다.
그리고 성서에는 병을 낫게 하는 예수의 존재가 언급되다보니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숭배되는 성인(聖人)이 그려져 있는 이콘화(Icon)라든가 소유하고 있었던 소지품을 가지고 있으면 병을 낫는다고 믿었다. 심지어 성인이 죽은 뒤에라도 손가락, 귀, 코와 같은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일도 발생하기도 했다. 기독교 성인에 대한 사람들의 치유 의식은 왕의 안수(按手) 의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막강한 종교의 힘 덕분에 나라를 지배하는 왕도 신적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왕이 직접 병든 시민들을 치료하게 해주는 안수 의식이 생겨났다. 중세 때부터 시작되었던 안수 의식은 18세기에 이르러 샤를 10세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안수 의식은 치료술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성격이 강한 치료를 위한 의식일 뿐이었다. 단순히 왕이 직접 병자의 몸에 살짝 손으로 접촉하고 마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안수 능력을 믿었다. 영국의 찰스 1세가 처형당하였을 때, 처형식에 있었던 영국 시민들이 처형대로 몰려와 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수건에 묻히려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처형당한 찰스 1세는 한낱 권력에서 밀려나 죽은 사람이 되었지만 이전에 왕이라는 신성한 존재였기에 시민들은 찰스 1세의 피가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질병의 힘을 극복하지 못한 문명의 진보
『문명과 질병』을 번역한 황상익 서울대 교수는 서론에서 문명의 진보가 어느 정도 질병을 극복해왔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문명의 진보가 질병을 극복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무시무시한 질병의 파급 효과를 어떻게 대처했으며 적용했다고 생각된다. ‘극복’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악조건이나 적을 이겨 내 굴복시킨다는 사전적 의미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했던 질병 유행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문명의 진보가 질병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발달된 의학기술로 통해 악명 높았던 질병을 지구상에 퇴치했다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의학기술로도 소용없는 강력한 질병들이 등장하였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슈퍼박테리아 때문에 떨고 있는만큼 우리나라도 슈퍼박테리아의 손아귀를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헨리 지거리스트는 질병 역사의 순환성을 이해하고 앞으로 발생할 강력한 질병 퇴치를 위해서 국제적인 문제로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그는 보건정책의 권위자로서 보건의료 서비스 구축론자이다. 전 세계적으로 판데믹이 유행하게 되면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에 시동을 건다. 그러나 일부 음모론자들 사이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은 거대 제약회사의 독점에 휘둘려서 그들의 배만 부르게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이 질병에 맞서야하는 인류 생존에 걸린 일이니 만큼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억측이다. 오히려 질병에 대한 안일한 대처가 후에 더 많은 질병의 희생자가 늘어지고, 보건 대책에 대한 경제적 비용을 더 부담할 우려가 있다. 헨리 지거리스트의 주장처럼 세계 문제를 주관하는 국제 사회단체와 다국적 제약회사가 서로 손을 맞잡아 질병 퇴치에 앞장서야 한다. 질병 역사의 순환성 속의 질병 vs 문명의 대결 결과는 장군 멍군이다. 항상 질병이 발생하면 그 질병을 이길 수 있는 의학기술이 등장하곤 하였다. 비록 점점 발달되어가는 문명의 진보가 질병의 힘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인류는 스스로 질병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강한 생존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검증된 의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앞으로의 세계적인 환난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희망을 가져본다.
* 인용 관련 기사 출처 및 링크
[일본 ‘슈퍼박테리아’ 파문 확산] YTN, 2010년 9월 8일 입력
http://www.ytn.co.kr/_ln/0104_201009080653364349
[의협, 슈퍼박테리아 "불필요한 공포감 확산"] 머니투데이, 2010년 9월 10일 입력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91011125658272&outlink=1
[슈퍼 박테리아, "더이상 치료제가 없다!"] 뉴스한국, 2010년 9월 11일 입력
http://www.newshankuk.com/tv/nhtv_view.asp?articleno=s2010091100301819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