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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동지젼 ㅣ 지만지 고전선집 554
작자 미상 지음, 최진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디케의 말 못하는 고충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우리나라에 매년 270명이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270명이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떡하다 보니 자신이 범죄자로 몰릴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TV속 드라마나 문학 작품들에는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려 옥에 갇힌 인물이 등장하곤 한다. 대부분동료의 거짓된 밀고나 비윤리적인 인물의 뇌물 혹은 증인의 엉터리 증언 때문에 한순간에 범죄자로 지목받게 된다. 그리고 단지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보니, 범죄에 대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재판관들에게는 이런 복잡한 상황들 속에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눈을 가리고 있겠는가? 눈을 가림으로써 하나의 사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모두 완벽할 수가 없다. 정말 불행하게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수십년을 감옥에 살아야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뇌물을 받아서 올바르지 못한 판결을 내린다거나 부당한 집단들과 손을 잡아서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비윤리적인 재판관들이 있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 반국가단체 인사로 몰아 넣어 사형 판결을 내린 '인혁당 사건' 이 그 예이다. 8명의 인혁당원들은 사형 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이 사형당한지, 무려 32년 만에 사법부는 인혁당 사건의 재판 결과는 잘못된 판결이었으며 8명을 무죄로 선고하였다.
2년 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디케의 눈>에서 저자이자 변호사인 금태섭 씨는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가 실제 현장에서 법이 진실을 찾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무리 뛰어난 신이라 할지라도 디케는 현실 앞에서 진실다운 판결을 내리는데 말 못하는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동물판 '실화 극장, 죄와 벌'
하지만, 악의 세력에 맞서서 힘 없는 선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금태섭 씨가 말하고자 한 것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판관은 진실다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런 디케의 진리는 동서고금 모든 재판관들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부당한 재판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야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동지전>은 흥미롭게도 이솝 우화처럼 동물들이 등장하는 고전소설이면서도 내용은 오늘날의 재판처럼 억울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올바른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서동지전>은 조선 후기 때 쓰여져서 작품 속 인물들도 시대상의 인물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는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서로 구도적인 캐릭터가 있듯이 <서동지전>에는 성격이 착하나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는 쥐 '서대주' 와 그를 모함하는 다람쥐가 등장한다. 다람쥐는 예전에 서대주로부터 양식을 빌려 큰 은혜를 입었으나, 또 한 번 그에게 양식을 구걸하다가 퇴짜를 맞게 되자, 이에 원한을 품고 재판관인 호랑이 '백호산군' 에게 거짓으로 소송을 건다. 그러나 슬기로운 재판관인 백호산군은 서대주와 다람쥐의 말을 들어보고 다람쥐가 허위로 고발하였음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이 세운 계략에 의해서 궁지에 몰린 다람쥐는 그 허위 신고라는 죄목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착한 서대주는 백호산군에게 다람쥐에게 선처해 줄 것을 간청한다. 이에 탄복한 백호산군은 서대주의 간청대로 다람쥐를 용서해주었고, 이에 다람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서대주에게 사과를 한다. 그러자 서대주는 쿨하게 다람쥐에게 황금을 주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작품에서 서대주는 과거에 큰 공을 세워 벼락부자가 된 인물이며, 다람쥐는 살림이 부유했으나 성격이 무능하여 가난에 허덕이는 인물이다. 작품 배경을 비추어 보면 서대주는 조선 후기 때 새롭게 부상한 신흥 상공인 계층이며 다람쥐는 허위 의식에 젖어 있는 몰락한 양반층을 상징하고 있다. 유교적 조선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는 줄 알았던 양반층들에게는 갑자기 등장한 신흥 상공인 계층들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자신들의 유지 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눈치 챈 양반층들은 유교 사상의 이념과 자신들의 권위를 앞세워 이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넘보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공정히 사건을 처리해야 할 관리들이 그 부정적인 수단에 눈이 먼 나머지 제멋대로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악의 연결 고리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선량한 상공인 계층 또는 힘 없고 가난한 서민들은 부당한 양반들이 지배하는 세력 앞에서 억울하게 죄값을 대신 치뤄야 했다.
뇌물이 오고가는 사회
그러나, 여기서 소개된 줄거리만 가지고 서대주를 올바른 인물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작품을 읽는 독자에 따라서 한 인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서대주는 자신이 처한 억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뇌물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서대주라는 인물은 갑자기 찿아온 예상 밖의 상황에 대해 민첩하게 대응할 줄 아는 명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억울한 누명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보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뇌물을 이용하는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서동지전>을 읽게 되면 서대주의 이런 행동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서대주가 다람쥐가 모함한 거짓된 죄목을 받았다하더라도 공명정대한 사회에서는 뇌물은 부정적인 방법이다. 어차피 백호산군의 명판결로 서대주가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서대주가 뇌물을 주는 행동만큼은 옳은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서대주의 이런 모습은 비단 조선 후기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뇌물은 판결의 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부정한 거래도 오래 가지 못한 채 발각되기는 하지만, 이런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뇌물의 위력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뇌물이 오고 가는 현상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뇌물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동지전>에서도 뇌물의 위력을 맛 본 인물이 등장하는데, 평소에 서대주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오소리는 백호산군의 명령에 따라 서대주를 체포하러 가는데, 자신의 동료인 너구리에게 서대주로 하여금 뇌물을 요구할 것을 결탁을 꾀하기도 한다. 서대주의 죄를 따지기 전에 뇌물부터 챙기려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서대주와 오소리를 통해서 뇌물이 사회를 지배하여 점점 부패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조선 후기나 100년 뒤의 지금의 모습이나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은 여전하기만 하다.
백호산군다운 호질(虎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대주, 다람쥐, 오소리는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치더라도, 그나마 긍정적인 인물은 다람쥐의 아내인 계집 다람쥐와 백호산군 뿐이다.
자신의 남편이 서대주를 위시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집 다람쥐는 남편을 충고하다가 도리어 모욕을 당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그 모욕감에 분하여 집을 뛰쳐나가는 모습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계집 다람쥐의 행동 역시 지금의 현실을 비추어 보면 눈 앞의 부당한 행동을 막으려는 바람직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계략을 막지 못한 채 훌쩍 남편 곁을 떠나고 만다. 이를 통해 부당한 행동에 맞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그 힘이 미미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정한 사회 현실 속에서도 백호산군 같은 훌륭한 재판관들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 고전 속 일화를 예를 들어 공정한 판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백호산군의 말은 부정부패와 비리에 물들인 법조계 인사들에게 일침을 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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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 만물이 가볍고 무거움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을 사용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바르고 그릇됨을 아는 데는 양쪽의 말을 듣는 것만 같음이 없나니, 한편의 말만 듣고 좋고 나쁨을 경솔하게 판결치 못하리라. "
- <셔동지전> 최진형 역, 지만지고전천줄, p 8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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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산군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판결할 때에는 일방적으로 한쪽의 이야기만 듣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공정한 판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당연히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일부는 이 진리를 실제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디케가 '공정한 판결' 을 상징하는 서양의 인물이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서동지전>의 백호산군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공정한 디케의 눈을 가진 미래의 재판관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법을 공부하고 있는 법학도들은 백호산군의 호질(虎叱)은 한 번쯤은 새겨 들어야할 것이다.
P.S
이 소설을 원문 그래도 직역하다보니, 너무나 많은 한문과 중국 고사들이 등장한다. 비록 얇은 분량에다가 독자들을 위해서 수많은 각주들을 달았지만 이 작품을 가볍게 읽기에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