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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Prologue
이 책, 너무나 읽고 싶었다. 동네 도서관에 소장되지 않아서 다른 도서관에 찾아가서 대출하였다. 문학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주제도 흥미로웠고 대중들을 위해 서양사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 주경철 교수도 내가 선호하는 지식인들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얇은 분량이라는 점에서 약간 아쉬웠지만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문학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는 친숙한 작품에다가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저자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 <대항해 시대>를 읽다가 포기했던 적을 감안하면(책 분량이 600페이지를 넘는다)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것으로 감지덕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차례를 훑어보고 나서 무척 난감하였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의 차례를 먼저 확인하고 읽어봤어야 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문학작품들 대부분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간략한 줄거리 정도는 기본으로 습득하고 있지만, 원전의 내용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저자의 분석을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원전으로 읽어본 작품이라면 최근에 읽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예전, 어렸을 때 읽어본 작품에는 고작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이솝 우화집>이었다. 과거 평소에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의 문제적 독서 습관의 폐해를 상기시켜 주었다.
결국에는 모든 책의 내용들을 읽고 말았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의 줄거리를 미리 알게 되어버렸다. 읽는 내내 왠지 대놓고 스포일러에게 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책을 쓰기만 한 저자를 스포일러라고마냥 비판할 수도 없고, , , 이번 독서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듯 쿨하게 읽고 넘어가야만 했다.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순
사실, 이 책의 내용들 중에서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내용에 더 눈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과 어느 정도 일치한 것도 있었으며 열린책들에서 나온 <보물섬>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자 후기 내용과 비슷한 것도 있었다. 특히, 스티븐슨의 <보물섬>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며칠 전에 읽었던 작품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작품과 관련된 내용에는 서양사적 키워드인 '해적' , '제국주의' 가 언급되어 예전에 읽었던 역시 주경철 교수가 쓴 <문명과 바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진작에 같이 읽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내용을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서로 연관성 있는 책들을 동시에 읽는 것은 보다 입체적인 독서를 할 수 있고,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티븐슨이 <보물섬>을 집필하면서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작품 전개가 서로 모순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물섬>에는 재화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물섬>에서 선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주인공 짐 호킨스와 리브지 선생, 그리고 히스파니올라 호에 승선하는 인물들도 악한 캐릭터로 대비되는 롱 존 실버와 그 밖의 해적들처럼 플린트 선장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보물을 획득한 호킨스 일행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였던 해적들에게는 한 푼 어치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보물섬>의 주인공 짐 호킨스의 행동은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동떨어지게 된 셈이다. 짐 호킨스가 보물을 찾아나선 것도 본질적으로는 재화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대부분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보물을 찾기 위해서 히스파니올라 호에 위장잠입하여 반란을 일으킨 롱 존 실버는 나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짐 호킨스는 악의 간계에서 벗어난 의로운 소년이라고 인식한다.
의로운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저자는 <보물섬>을 쓴 스티븐슨의 이 애매모호한 모순이 생기는 이유와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짐 호킨스-롱 존 실버' 로 대립되는 구도로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를 '국가' 라는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면 의로운 인물이 되고, 국가의 공적인 활동에 반하여 폭력을 행사하면 해적, 불한당이 되는 것이다.
작품 속, 짐 호킨스 일행에 대한 묘사는 본 독자들에게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보물을 찾으려는 선한 인물로 비춰지기 쉽도록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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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장, 이 집은 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소. 놈들이 겨냥하는 것은 저 국기임에 틀림없소. 저걸 거두는 게 낫지 않겠소? " " 내 국기를 내리라뇨! " 선장이 소리쳤다. " 안 됩니다. 그렇게는 못 합니다. "
- 스티븐슨 <보물섬> 중에서, 주경철의 책 p 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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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 일으킨 실버 일행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까지 히스파니올라 호의 스몰렛 선장은 조국의 국기를 내리는 행위는 적들에게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티븐슨이 주경철 교수의 분석대로 자신의 소설을 국가라는 기준으로 상반되는 구도를 착안했는지 확인할 바가 없지만, 역사적 사료에서는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은 '절대 해가 지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일 정도로 유럽 대륙에서 막강한 국력을 떨치게 되었다. 영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훌륭한 통치력도 있었지만,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영국의 대표적인 해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 당시 영국과 양강 대립국인 스페인의 무역선들을 노렸다. 그래서 스페인으로서는 드레이크라는 해적 선장, 그보다 더 영국이라는 나라를 껄끄럽게 보였을 것이다. 결국, 두 나라는 유럽 대륙에서의 강대국을 결정지을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데,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영국은 스페인을 대파하면서 이전에 유럽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을 밀어제치고 당당히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국가를 위한 대활약을 펼친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경' 의 칭호를 받게 되는 영광까지 얻게 된다. 지금도 드레이크는 해적 선장에서 영국의 바다 영웅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 인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무력
살육과 비인간적인 폭력을 일으켰을지더라도 국가에 올바른 일을 하냐 안 하냐에 따라서 그 인물의 행적이 평가되는 것이 역사의 특징이다. 비단 드레이크 선장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인류 최초 세계일주 항해를 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마젤란과 같은 항해가들이 활동했던 신항로 시대에는 강대국들이 자행한 살육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3월 6일은 마젤란이 괌에 상륙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마젤란의 업적을 기념하기도 하며 괌에는 마젤란 상륙 기념비가 새워져 있다. 하지만 그 기념적인 사건 뒤에는 괌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어두운 기록이 있다. 그리고 맨 처음 괌에 상륙할 당시, 마젤란은 이 섬을 라드론(Ladron)이라고 명칭을 붙여줬다. Ladron은 스페인어로 '도둑' 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괌 원주민들이 마젤란이 타고 있던 배에 침입하여 물건을 훔쳐갔기 때문이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마젤란 일행들이 낯선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마젤란 일행의 배에 물건들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마젤란은 괌에서만 자란 원주민들이 도리어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러니 그 곳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자행을 한 것이다.
신항로 개척 시대의 항해가들, 그리고 해적들. 두 바다 위의 모험가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엇갈려져 있지만, 이들 활동의 근본에는 자본주의라는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이나 남의 배에 침입하여 약탈을 행하는 해적들이나, 다 돈을 벌기 위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해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당한지 217일 만에 석방된 삼호 드림호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와 무력의 관계는 필수불가결이다. 이번에 피랍된 시기가 역대 최장 기간이었으며 석방되는 조건으로 해적들이 요구한 가격도 역대 최고가로 기록되었다. 해적들이 어마어마한 액수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배후에 해적들과 손을 잡은 외국 브로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본을 얻기 위해서 세상은 가면 갈수록 영악해지고 있는만큼 이번 사건은 단순 해적에게 피랍당한 사례로 봐서는 안 된다. 점점 더 영악해진 자본주의 세상을 이해를 해야만 이번 일과 같은 국가 이미지에 해가 되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