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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 ㅣ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평점 :
TV 모니터 안에서 본 용산
군대에서는 저녁 점호하기 전에 30분동안 뉴스를 시청해야하는 장병들이 지켜야할 생활 규정이 있다. 점호를 하기 시작하는 9시 30분까지동안 모든 소대는 당직 간부들의 통제하에 뉴스를 시청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로 그 시간에는 뉴스 이외에는 다른 TV 프로그램을 볼 수 없다. 사회세상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군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뉴스를 보게 된다. 하지만 말만 간부 통제이지 실제로는 당직 간부가 모든 소대가 뉴스를 보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가 힘들다. 하루 당직근무를 서는 간부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아예 당직실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하는 간부도 있고, 가끔 소대원들 몰래 돌아다니면서 장병들이 뉴스를 보고 있는지 안 보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뉴스 이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몰래 보다가 재수 없게 간부에게 적발되기도 한다.
내가 일병 3호봉이었던 2009년 1월 저녁, 여느 날과 다름없이 소대원들이 생활관 한 곳에 모여 뉴스를 시청하였다. 그 때 소대 왕고였던 K 병장이라는 선임이 있었는데 소대 왕고답게 그의 손에 리모콘이 쥐어지게 되면 짬이 안 되는 소대원들은 아무 군말 없이 K 병장이 보는 TV 채널을 봐야만 했다. 리모콘의 절대권력을 가진 병장들은 뉴스보다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K 병장은 일반 병장들과는 다르게 뉴스를 잘 보는 편이었다.
그 때도 딱 정확히. 시곗바늘이 9로 향하는 순간, K 병장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리모콘으로 뉴스가 하고 있는 채널로 돌렸다.
K 병장이 돌려놓은 채널의 뉴스 속 장면에는 옥상 위에는 커다란 불길과 시커먼 연기에 휩싸여있었고, 그 불길을 제거하기 위해서 거대 포크레인에 연결된 컨테이너 박스 안의 경찰 특공대들은 호스로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다.
' 뭐지?. 사람이 살고 있는 옥상 위에 커다란 화재가 일어난건가? '
나는 부주의로 인한 단순 화재 사고인줄 알았다. 하지만 뉴스 자막을 본 순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용산 4지구 철거민 망루 농성 화재 진압 중 철거민 5명, 경찰 특공대 1명 사망
알고보니, 옥상 망루 위에서 용산 재개발에 반대하는 철거민들의 시위와 그 시위를 진압을 하기 위한 경찰 특공대가 서로 대치를 하다가 큰 화재 사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 사고로 인해서 망루에 있었던 시위에 참여한 철거민 5명이 사망하였고 시위를 진압하던 경철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그러자, 뉴스를 보고 있던 K 병장은 욕설과 함게 한마디 내뱉었다.
" XX, 아무리 자신들이 못산다고 그렇지 경찰 특공대가 투입할 정도로 저렇게 시위를
과격하게 하는지 몰라. "
마침 옆에 있던 상병 선임도 K 병장의 말에 한 마디 거들었다.
" 그러게 말입니다. 괜히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특공대 한 명이 죽었다니.
그 죽은 경찰 특공대 XX가 불쌍합니다. "
K 병장은 이런 암울한 뉴스을 못 봐주겠다면서 다른 뉴스 채널로 돌려버렸다. 그러고는 곧 전역하면 저런 시끄럽기만한 세상에서 생활해야한다는 생각에 암울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K 병장 말대로 2009년 1월 20일 이후, 내가 머무르고 있는 부대 밖 대한민국은 무척 시끄러웠다. 특히, 용산에서는 자신들의 살아갈 권리를 지키기 위한 철거민들의 필사적인 울부짖음과 분노로 들끊었다.
6인의 만화가의 시선으로 본 용산
군인이라는 신분은 사회에 대한 입장 혹은 정부에 대한 자신의 의견들을 공공장소에서 밝힐 수 없다. 군법에 어긋난 규정에 입각하여 심하면 가볍게 징계, 심하면 구속 처리까지 갈 수 있다. 점호를 하기 전에 뉴스를 본다고는 하지만, 점호 전의 군인들의 군기를 확립하기 위한 일종의 통제수단에 불과하다. 뉴스에서 FTA 반대 시위 장면이나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장면을 보더라도 군인은 이에 대해서 언급해서는 안 된다. 군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지켜나가야 할 대한민국의 국력을 대표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인 시절에는 용산 참사에 대해서 심도있는 뉴스나 자료를 접하기가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와 관련된 민감한 사회문제나 시안은 군 부대에서는 언급을 잘 안하기도 한다. 그래서 군인이었을 때 뉴스 소식을 보게 되면 당연히 뉴스에서 전하고 있는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검찰이 용산 시위와 관련된 철거민들을 구속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면, 철거민들은 졸지에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일반인과 다른 제한되고 특수적인 환경 때문에 군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의도치 않게 현상을 단면으로만 보게 되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인식의 폭 역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인식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점은 일방적이면서도 편파적인 언론과 TV의 정보 전달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인식 문제이다. 대중들은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는 정보 매체들을 다루줄 아는 것은 물론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현상의 깊은 의미를 파고들어 볼 줄 아는 고도의 통찰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이 6인의 만화가들은 우리나라 국민들과 정부가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아니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그 사건의 이면까지도 외면하려던 용산 참사와 철거민들의 이야기들을 만화로 재구성하였다.
만화가들의 각기 다른 개성이 담겨진 서로 다른 6개의 시선들이지만 이들이 보는 시선은 모두 하나같이 한 방향이다. 경찰은 용산 참사에 희생된 5명의 철거민을 사회에 반하는 폭도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용산 시위와 관련된 철거민들을 특수공무집행 방해라는 이유로 구속 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올해 11월 11일에는 2009년 용산 시위 당시 참여했으며 그 시위로 인해 사망한 故 이상림 씨의 아들인 이충연 용산 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징역 5년 선고를 받게 되었다.
6명의 만화가는 용산 참사에 희생된 철거민들을 폭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왜 그들이 폭도가 되었는지 그들의 삶을 한 컷 한 컷에 채워 넣음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용산 참사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처럼 똑같은 이웃이며 아버지였던 그들
자신들이 세웠던 옥상 망루 안에서 세상을 떠난 이상림, 양회성, 이성수, 한대성, 윤용헌 씨는 우리와 다를게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용산 참사를 일으킨 폭도이기전에는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며 가정 살림을 책임져야하는 아버지들이었다. 그리고 비록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항상 친구들이나 가족들 앞에서는 웃음이 가득하며 동료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주위에 볼 수 있는 이웃들이었다.
고생 끝에 얻은 작은 집과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직장이 있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거대한 바위에 부딪히는 계란이 되어야 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적으로 마을을 철거하려는 대기업과 그 밑에서 대기업의 든든한 보호 아래 철거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용역들을 하루하루 상대해야만 했다. 같은 동병상련의 처지인 동네 철거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생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였지만 이들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결국, 자신들보다 막강한 힘과 권리를 가진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바위 앞에 용산 철거민들의 투쟁은 여지없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심지어 시위 중에 사망한 5명의 철거민에 대한 보상과 위로금을 정부로부터 지급받지도 못하였다. 지금도 용산 참사 범국민 대책위원회와 정부는 보상과 위로금 문제로 협상중이다. 정부는 그들에게는 불행한 사고에 대해서 유감과 사과를 표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려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충연 씨의 판결 소식을 접한 어머니 전재숙 씨는 “있는 사람들은 살고, 없는 사람들은 죽는 나라가 된 것 같다” 고 지금까지 마음 속에 쌓아왔던 분노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현재도 용산 철거민들은 일용직에 나서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국제 엠네스티 아이린 칸 사무총장은 용산 참사 사건에 대해서 불법행위다 아니다 규정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느냐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용산 철거민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자세를 비난하며 이들을 위한 배상이 마련될 것을 촉구하였다.
참사기 일어난지 이제 2년째 접어들어가고 있다. 내년 1월 20일은 용산 참사 희생자 추모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용산 참사의 진상 규명과 희생된 이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지금도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 목적에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화마 속에서 쓰러진 5명의 철거민들이 생전에 꿈꿔왔던 것. 지금보다 더 나은 희망적인 삶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살아갈수 있는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차가워지고 있는 날씨 속에서도 오늘도 투쟁을 벌이고 있다.
* 기사 출처
경향신문 2010년 11월 11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12153395&code=940702
뷰스앤뉴스(아이린 칸 국제엠네스티 사무총장 관련 기사)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6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