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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불우한 시대에 태어난 사상의 은사    

리영희 교수가 세상을 떠난지도 이제 막 한 달하고도 20여 일이 지났다. 조금 있으면 두 달을 채우게 된다.  12월 5일. 유난히도 시끌벅적한 2010년의 마지막 끝자락에 리 교수의 죽음은 어두운 장막으로 가려진 시대의 등불이 꺼졌음을 알리는 슬픈 날이었다.  부고 소식이 모든 매스컴으로 전파되자마자 끝이 없는 추도의 물결이 이어졌던게 엊그제같은데 지난 주 토요일에 봉은사에서는 리영희 교수 추모 49재가 열렸다.     

하지만,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이 위대한 인물을 진심으로 추모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매정했다. 아니,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고 시기가 좋지 않았다.  리 교수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일어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행위는 전쟁이라는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공포에 국민들은 또 한 번 몸을 떨어야했고,  정부는 천안함 도발 사건보다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가함으로써 대북 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리 교수의 업적에 대한 그 어떤 뚜렷한 대중적인 평가를 할 기회가 없었다. 그의 사상이 제공해준 영향분을 먹고 자란 후대의 지식인들은 대선배 아니 은사의 업적을 재조명했을 뿐이다.  

젋은 사람들에게 ' 리 영 희 ' 이 석자의 이름은 생소했으며 바쁘고 먹고 사는게 중요한 대중들의 머릿속에는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의 불꽃을 피워준 시대의 은인은 쉽게 잊혀져가고 있었다.

리 교수는 생전에 독재, 군부정치세력들이 왜곡한 시대에 정면으로 맞선 공로로 실천적인 지식인이라는 명예로우면서도 뒤늦은 훈장을 달게 되었지만, 그 훈장을 달기까지에는 여러 번 고초를 겪어야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3권 정부 시절동안 세상의 진실을 알리고자한 지식인과 사회운동가들은 억울한 누명을 씌운채 감옥을 드나들었는데, 연속으로 감옥살이를 한 이는 유일하게도 리영희뿐이다.   

리영희는 ' 친북 좌파 ' , ' 빨갱이 ' 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들은채 그렇게 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복역한 이후에 권력의 음모로 인해 빼앗겨버린 자신의 명예를 복권했지만, 자신의 등 뒤에 권력이 붙여 놓은 ' 친북 좌파 ' 라는 명함은 리영희 본인 스스로도 죽기 전까지 떼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때 늦은 사상의 은사와의 만남   

' 불운 '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야말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그의 운명은 혼이 떠나가버린 육체가 되어서도 이어지는가 보다. 공교롭게도 리영희가 세상을 떠난 후 5일 뒤에 초판 1쇄가 발행된 것이다.  이 책의 출판사인 책보세의 발행인 김이수 씨는 리 교수가 그토록 고대하던 책을 접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편집후기 말미에 뒤늦은 안타까움이 묻어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고 소식 덕분에 뒤늦게나마 평전으로나마 그의 활동 이력과 사상을 알아본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 불운 ' 이기도 하다.   

지금도 대중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 최고의 불온 도서 ' 로 회자되고, 우리 시대에 잊혀서는 안 될 최고의 명저로 손꼽히는 <전환시대의 논리>와 그 밖에 <우상과 이성><새는 ' 좌우 ' 의 날개로 난다>를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내가 감히 사상의 은사의 업적을 함부로 논하고 있다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이 아닌가 모르겠다.   

평전과 더불어 리 교수의 마지막 책이 되고만 대담짐 <대화>를 읽었지만 평소에 들을 수 없었던 그의 생의 이력과 일화들이 눈에 띌 뿐이다.  <리영희 평전>에는 이전에 리 교수의 업적을 조명한 책들뿐만 아니라 생전에 리 교수가 쓴 책과 칼럼 그리고 대담집의 내용들을 인용하여 ' 리영희 사상의 정수 ' 들을 담아냈지만, 평전만으로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비판의 목소리의 울림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책에 마지막 부분에 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 저자 김삼웅과의 인터뷰 내용이 그나마 저자의 생생한 육성을 느낄 수 있다.

노래 실력 좋은 가수는 라이브로 부르는 무대 현장에서 직접 가봐야 그 가수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배우고 알려고 하는 지성의 사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그가 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우선이다. 저자가 쓴 책이야말로 저자의 목소리인 것이다.  

  

  

  리영희, 굴곡의 대한민국 현대사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

제대로 그가 쓴 책들을 접해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영희 평전>이 리영희 사상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영희 선생이 자신에 대한 평전을 직접 읽어보셨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리영희 평전>을 쓴 김삼웅은 리영희와 관련된 수많은 책들과 자료를 무작위로 인용하지 않았다. 시대적인 상황에 맞게 적재적소로 인용, 배치되었음을 물론이고 나 같은 리영희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정수들을 가려 뽑았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리영희라는 ' 굴곡 ' 의  현대사를 살다간 노학자의 업적을 띄워주려는 평전의 일반적인 서술 방식에만 치중하기보다는 리영희가 살았던 ' 굴곡 ' 의 현대사까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리 교수가 바라본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모습은 지금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점이다. ' 부정 ' , ' 왜곡 ' , ' 최악 ' 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대해 서슴없이 지적하고 비판했던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남한은 북한이라는 형제와 싸우기 위해서, 미국이라는 억센 사내를 집안에 불러들여, 안방 아랫목에 모셔놓고 수십 년간 알몸으로 시중들어 왔다. 북한이라는 형제가 남한보다 강하고 우월했던 1970년대 후반까지라면, 그 사내가 이마를 살짝 찌푸리기만 해도 만면에 아양을 떨면서 치마를 걷어 올리는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 사내는 지난날의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여 성적 사디즘을 즐겼다. 지금은 그에 그치지 않고 집주인의 목숨 보호자를 자처하게 되었다. 

- 김삼웅 <리영희 펑전> p 146 -  

* 리영희 <새는 ' 좌우 ' 로 날개로 난다> [한미 관계의 본질을 알면] p 143 에서 재인용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 붓이 너무 곧다 ' 라는 최준기의 표현대로 호전적이면서도 직설적인 리 교수의 문장은 보는 이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리 교수는 30년 전부터 이미 왜곡되어버린 한미 관계를 정확히 꼬집어 내고 있었다.   리 교수는 김삼웅과의 인터뷰에서 MB 정부는 ' 미국의 노예정권 ' 이며 지금의 실상은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빼앗긴 1905년의 대한제국 시대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반공 사상으로 가득찬 극우 세력의 망명을 떨치지 못한 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94년 5월 4일 영변 원자로에서 연료봉 추출을 시작했고, 6월 13일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탈퇴하는 등 위기를 고조시켰다. 김영삼은 거듭된 강경발언으로 긴장을 증폭시키고 북한에서 ' 서울 불바다 ' 발언이 쏟아졌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검토하는 등 전쟁의 분위기가 한반도를 휩쓸었다. 존 샬리카슈빌리 미 합참의장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 90일 이내 북한 제압 가능하다 " 는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가 보고되고, 한국군 45만 명과 민간인 100만 명 사상, 경제적 피해 1조 달러 등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자 이 계획은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 김삼웅 <리영희 평전> p 476 - 

* <경향신문> 2010년 5월 28일

   

전쟁의 위기가 한반도에 고조되고 있었던 16년 전에 리영희는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 라는 시론에서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과거의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고착화된 분단 및 극우 이데올로기와 미국의 군사적 예속상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얕궂게도 16년 전의 한반도 정세는 정권이 여러번 바뀌고 난 지금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천안함 호 침몰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로 취한 MB 정부의 강경한 대북노선은 전쟁 위기론이 고조된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함께 서해에서 대대적인 모의 합동훈련을 실시함으로써 군사력을 과시하였다. 말로는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모의 훈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부닥치게 될 북한과의 전면전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리영희의 비유대로 미국은 한국에게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 목숨 보호자 ' 인 셈이고 지금도 ' 목숨 보호자 '  라는 든든한 ' 빽 ' 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미 관계 때문에 ' 한국 & 미국 & 일본 vs 북한 & 중국 & 러시아 ' 로 갈라진, 냉전체제의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결국, 오늘날의 한국의 행보는 우리도 모르는 동안에 역사를 거꾸로 가는 퇴보의 시대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문은 역대 정권과의 관계와 존재양식에서 ' 무법 ' 적인 강한 정권에겐 한없이 약하고 총칼을 차지 않은 문치성 정부에는 폭력적으로 포악했다. 같은 하나의 정권에게도 양면적으로 대응했다. 그 권력집단이 눈을 부라리면 언론(인)은 두 손을 비벼가며 정권을 찬송했다. 그토록 찬송을 바쳤던 권력이 기울기 시작하면 (금세 안면을 싹 바꾸고 누구보다 열렬히) 비방과 매도를 일삼았다.   

- 김삼웅 <리영희 평전> p 160 -  

* 리영희 <새는 ' 좌우 ' 로 날개로 난다> [끝내 변할 줄 모르는 언론인들의 기회주의]  

p 316~317에서 재인용

 

정치가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해야지 어느 특정 집단또는 단체의 이익만을 대변해서는 안된다. 특정 이념을 가진 사람만을 위한 사회나 특정 기업 집단을 위한 사회나 모두 편향된 가치관이다.오늘날 ' 조중동 ' 으로 대표되는 언론 매체는 과거의 유신, 군부 정권 시절에 어떤 정치적인 편향이나 기업에 편향된 가치관을 심기위해 의도적으로 글을 올린다거나 일부러 삭제하기도 하였다. (재미있게도,  정권을 두둔한 ' 조중동 ' 의 편파적인 보도 내용과 이와 관련된 리영희 선생이 겪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오늘날의 ' 조중동 ' 은 정권이 달라질 때마다 정권의 대세에 따른 편파적인 이중잣대식 보도는 지금도 여전하다.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지난 토요일에 진행된 리영희 교수 추모 49재에서 명진 스님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 리영희 선생의 극락왕생을 바라지 않는다, 선생이 형형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우리가 잘못을 하면 ' 이러면 안 되지 ' 하고 꾸짖어주시길 바란다 " 고 말했다. 리영희 교수와 같은 존재가 대한민국 땅에 꼭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강조함으로써 " 그 때까지 눈감지 마십시오 "  라는 말로 추모사를 마무리하였다.   

명진 스님의 말에는 잘못 돌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사회의 잘못된 실상을 지적할 줄 아는 참된 지식인 한 명을 떠나 보내야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실히 배어나고 있다.  

그런 신문기사를 보고 난 뒤에 느낀 기분 탓일까?   

굴곡이 심했던 자신의 활동을 회상하는 담담하면서도 겸손한 감회를 술회하는 리영희는 이미 자신의 학문 생활을 마무리짓는거나 다름 없는 ' 절필 선언 ' 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소는 외람되고 조금은 자화자찬적인 평가지만 1980년대에서는 나의 글과 책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60~70년대에 나의 글들이 지녔던 일정한 의미와 역할은 거의 지향되고 초극되었다. 얼마나 반가운 발전인가!  이를테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의 역할을 했다는 셈일까?  그렇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 <리영희 평전> p 407 -  

* 리영희 [30년 집필의 회상], <한길문학> 1990년 5월 창간호

자신 스스로 선고한 ' 절필 선언 ' 은 어떻게보면 운동 기능은 상실되었지만 호흡 기능은 유지되는 식물인간이라고 자처하는 거나 똑같은 것이다.  리영희에게 운동 기능이란 불의와 맞서 싸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민주화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동안 금서로 지정되었던 사회사상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졌다. 이렇다보니, 70~8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과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 경전 ' 이나 다름 없었던 리영희의 저서들은 시대가 변할수록 영향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와 절필 선언 속에서도 노학자는 ' 우상 ' 에 갇힌 대중들의 ' 이성 ' 을 일깨워주는데 온 힘을 다했다.  자신의 사상적 지주였던 루쉰 의 말을 인용한대로 '  자신의 혀로 몸에 난 상처자국을 핥아내는 하이에나처럼  '  노구를 이끌고 불의와 몽매가 판치는 세상의 전투에 다시 뛰어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말을 빌리자면, 리영희 교수가 고통 없는 극락으로 갔다는 것이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처럼 받아들어서는 안 된다.  그가 이승의 고통을 모른다고 해서 우리에게 해로울게 없다.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간 이에 대해서 아쉬움 속에 슬픔과 미련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모진 고난을 숱하게 겪으면서 살다간 리영희 선생이 이승보다 더 나은 곳으로,  그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했던 앙코르와트 사원으로 가기 위한 것인 만큼 우리는 이를 위안으로 삼고 위로하는 것이 떠나간 고인을 위한 것이다.   이제 고인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축원해줘야 한다.

사상의 은사를 추모하고 위로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그가 떠나면서 남긴 수많은 유산들, 그가 쓴 수많은 글들은 다음 후손들에게도 읽혀져야하며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서 ' 우상 ' 에 갇히지 않고 ' 이성 ' 을 통해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을 갖추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1974년, 대한민국 사상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한 <전환시대의 논리>는 출판되자마자 금서 도서로 지정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주화 운동권 학생들은 정부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가면서 몰래 읽어나갔다.  그리고, 후배들이 대학에 들어오게 되면 선배들이 가장 먼저 권하는 책이 바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이런 독서의 되물림은 그 당시 냉전 이데올로기의 편견의 장막에 장님이 되다싶이한 대중과 지식인들의 눈을 확 뜨게 해주었으며 민주화 운동의 불길을 지펴준 기름 역할을 해주었다.

정치에 냉소적인 무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연예인들을 추종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리영희는 듣도 보지 못한 이름일 것이다.

1970~80년대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갓 대학에 입학한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필독서라고 한다면 대담집 <대화>와 이 <리영희 평전>은 오늘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우리 젊은 세대들, 특히 리영희라는 지식인의 사상을 모르고 있다거나 그의 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필독서라고 말하고 싶다.   리영희의 사상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저작들을 먼저 읽는 것이 당연한 상례이지만, 그의 사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알 수 있으며 그의 육성이 남아있는 대담집과 평전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리영희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사상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곱씹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승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정신을 추모하고 유지할 수 있는, 고인을 진심으로 기리는 우리들의 자세이다.   


 
' 리영희 선생님, 이제 이승의 미련을 버리시고 부디 극락왕생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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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1-25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솔직히 어떤 말도 늘어놓을 수가 없더군요.
근데 님의 이런 멋진 리뷰라니 말이죠.

전 명진스님의 추모사 때문에 삐질삐질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흘렸는데, 님의 리뷰 마지막 구절을 보니...그래도 다행이네요.
<신과 함께>를 읽은 전력도 있고, 넘 슬퍼 어쩌지 못하겠더라구요~ㅠ.ㅠ

cyrus 2011-01-25 19:12   좋아요 0 | URL
혹시 49제 추모사에 참석하셨나요? 신문기사를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기 위해서 찾아왔더군요.
저는 평전을 읽고난 뒤에 정말 이 훌륭한 분의 사상이
오랫동안 쭉 전해내렸으면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starover 2011-01-2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말 우리 시대의 거장들이 우리 곁을 떠나셔서 안타깝습니다. 최근의 박완서 선생님이나 리영희 선생님, 그리고 앙드레 김 같은 분들....... 또 덧붙여서 물만두 님(홍 윤) 같은 훌륭한 리뷰어들의 죽음 같은 것 말이죠.

cyrus 2011-01-25 19: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우리도 모르게 좋은 분들이 하나씩 우리 곁을 떠나는거 같아요.

굿바이 2011-01-2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작하건데, 선생님은 이승의 미련따위는 걷어치우셨을 것 같습니다.
책을 선물받았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선뜻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우상과 이성>은 벼락이었고, 천지개벽이었습니다. 그나마 사람모습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은 다 선생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빚진 마음은 그래서 늘 괴롭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1-01-25 19:15   좋아요 0 | URL
그래도 굿바이님 같은 분이 계셔서 아직 리영희 선생의 사상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느껴지네요. 앞으로도 쭉 리영희 선생 추모제나
학술대회가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해봅니다.

아이리시스 2011-01-2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선생님의 부고소식 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제목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맺히던 눈물은 뭐였을까요?

늘 무언가를 마음 먹기보다, 행동하기보다,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 가장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앞서 가신 분들의 과제를 이어받아 우리가 고민해나갈 수 있을까요?

cyrus 2011-01-25 19:1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세상 봐서는 우리가 가지고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마음 먹고 고민해나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다이조부 2011-01-2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하는 분이 별로 없는데 존경하는 어른이 돌아가셔서 나도 한동안 먹먹해지더라~

근데 이렇게 성의있는 리뷰를 쓰다니 ^^ ㅎㅎ

난 전에도 말했지만, 이 책을 쓴 분의 글이 이상하게 잘 안 읽혀서 아마 이 책은 패스할듯~

우선 리영희 프리즘 부터 읽을라고~

cyrus 2011-01-25 21:32   좋아요 0 | URL
글은 못써도 일단 한 번 쓰면 성의있게 쓰잖아요,,^^;;
저도 형이 소개한 <리영희 프리즘> 읽어보려고 해요. ^^

다이조부 2011-01-25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생각하는 지점이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거 같네 ㅋ

리뷰를 성의있게 쓰는것 에 난 별로 관심이 없거든~ ㅎㅎ

모든 일을 열심히 하자는 주의 도 아니고 말이지 ㅋㅋ


2011-01-26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6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암향부동 2011-02-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이 책을 읽고 리뷰 썼습니다. 나름 고인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정성을 다해 쓴다고 썼지만 cyrus님의 리뷰를 보니 제 리뷰가 많이 부족해 보이네요….

그리고 저도 cyrus님처럼 [대화]를 제외하고 고 리영희 선생님의 저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평전만 읽고 서평 혹은 리뷰를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식으로 쓸까 고민 많이 하다가 책 평가쪽에 치우친 리뷰가 나오고 말았네요. 고인의 저작을 전부 읽고 다시 한 번 평전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cyrus 2011-02-15 10:55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이 부족한걸요. 평전에 보면 선생의 저작 내용이 인용되어서
이번 기회에 한길사에서 나온 저작집 읽어보려고 해요. 그리고 최근에
선생이 썼던 산문을 모인 <희망>이라는 책이 나왔더군요. 일단
도서관 희망신청은 했는데, 편집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네요.

꽃도둑 2011-02-1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에 사이러스님이 책 읽고 리뷰 써내는 게 거의 빛의 속도 같이 느껴져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그저 놀랍고 신기해요. 진기명기전에 나가도 상 탈 것 같아요,ㅎㅎ 게다가 리뷰가 부실하지도 않고 튼튼하니 말입니다.
아무튼 대단한 재능과 성실성,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1-02-18 14:06   좋아요 0 | URL
작년에는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런거였구요,, 다음 달부터는 하루에 포스팅
하는 것도 이제는 힘들거 같아요. 요즘에는 복학 기간이 슬슬 오고 있어서
그런지 블로그 관리도 소홀히하는 것도 있구요, ^^;; 그리고 간혹 쓴 글
보면 부실한 것도 많답니다. 며칠 전에 올렸던 <7인의 미치광이> 같은
경우에는 인물을 잘못 소개해버린 적도 있었구요,, 어쨌든 능력과 재능은
크게 미치치 못하더라도 성실성만큼은 저 스스로 인정합니다 ^^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 질병의 역습과 인체의 반란
이은희 지음 / 해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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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의 목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보면, 그리스가 트로이를 격퇴시킬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 트로이의 목마 ' 가 등장한다.   

그리스는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해서 오랜 시간동안 치열한 전쟁을 벌였지만 거의 패배할 정도로 이르게 된다. 승리의 반전을 위해서 오디세우스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안에 병사들을 매복시켜 트로이를 침략하기로 한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작전대로 목마를 트로이 성벽 앞에 놔둔채 거짓으로 퇴각한 척 한 발 물러났다. 성벽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거대한 목마를 본 트로이의 프라이모스 왕은 이 거대한 목마가 승리의 상징인마냥 도취되어 성 안으로 들여놓으려고 하였다.   

트로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승리했음을 판단하였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트로이 병사들은 비무장한채 화려한 향연의 즐거움에 빠져버렸다. 목마 안에 잠복하고 있었던 그리스 병사들에게는 이 때야말로 반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철옹성의 트로이 성벽 안으로 침투하기를 호시탐탐하던 그리스 군은 목마에 잠복하고 있었던 병사들 덕분에 쳐들어올 수 있었으며 결국,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남게 된 ' 트로이의 목마 ' 는 오늘날에는 유용한 프로그램인 것처럼 위장하여 컴퓨터 사용자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설치를 유도하게 만드는 악성 코드의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트로이의 목마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몰래 잠입한 것처럼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악성 코드를 숨겨 놓은 것이다. 

   

 

  인간의 몸 속으로 침투한 미생물  

인류의 문명사를 되돌아보면 수많은 질병들이 등장하여 인류를 괴롭힌 사례가 많다. 중세 유럽를 휩쓸었던 페스트에서부터 스페인 독감,  오늘날에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신종플루까지.  그야마로 인간은 무수히 많은 질병들의 역습을 받아왔고, 견뎌내기 위한 다양한 대처방안들을 마련해왔다.  인간과 질병을 야기시키는 미생물과의 관계는 영원히 종결되지 않는 전쟁이기도 하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기 전부터 미생물은 벌써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인간이라는 동물이 등장한 순간부터 미생물과의 치열한 전쟁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미생물은 유독 ' 인간 ' 만을 노려서 질병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동물의 몸 속에서 서식하던 미생물들은 좀 더 안정적인 번식을 위해서 삶의 터전을 인간의 몸 속으로 전향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러니한 것은 그리스 병사들이 목마를 통해서 적군의 내부로 침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미생물들이 우리 몸 속에 침투하여 정착, 번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인간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집단생활은 도시라는 공동체적인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하나의 도시가 건설되면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도시에는 점점 인구의 수가 증가되어 도시의 생활 양식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   오래전부터 문명이 발달하여 도시의 수가 늘어났다하더라도, 오늘날의 도시의 모습으로 구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는 질병의 등장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위생적인 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만, 옛날의 도시의 풍경은 그야말로 악취와 쓰레기가 넘쳐난 비 위생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비 위생적인 환경은 쥐, 바퀴벌레, 벼룩, 이, 진드기 등이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특히, 벼룩을 몸에 키우고 있는 쥐들로 인해서 유럽은 수 년 동안 페스트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다.  페스트의 역풍이 휩쓴 유럽에는 수많은 인구들이 사망하게 되는데 대규모의 인구 손실은 노동력의 손실로 이어졌으며, 이는 유럽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를 뒤흔들었다.  페스트 균을 가지고 있는 쥐 한 마리 때문에 수많은 유럽인들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질병의 세균을 번식할 수 있게 만든 원인은 애초부터 인류의 생활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도시의 발달만으로 미생물들이 번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류가 가축을 키우는 방식을 터득하는 순간, 그 전까지 동물의 몸 속에만 기생하던 미생물은 손쉽게 인간이라는 새로운 숙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미생물이 인간의 몸 속에 쉽게 침투하고 번식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생활 방식 그리고 노동력 보충과 식생활을 충당하기 위해서 도입된 가축 사육 방식 때문인 것이다. 문명을 발달할 수 있게 만든 진보의 과정 속에서 미생물들은 인간의 몸 속으로 쉽게 침투하였다. 

 

 

  미생물이 살아있어야 인간도 산다.  다만 , , ,

진보의 단계를 통해서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오랫동안 인류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질병의 명확한 존재와 발생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중세 시대 때 ' 신이 내린 가혹한 벌 ' 이라는 규정하던 페스트는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페스트 균의 정체와 전염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문명을 세우고 지구의 주인인마냥 기세등등한 인류는 미생물의 존재와 그 위력을 오랫동안 간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진보의 발명으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적을 침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트로이 군은 자신들의 눈 앞에 놓인 거대한 목마의 웅장함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착각하였으며 무방비한 상태에서 승리의 향연을 즐겼다.  승리의 상징이라고 말하던 목마 안에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그리스 적군들이 숨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나마 트로이 목마의 위험성을 직감한 이는 카산드라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트로이 전쟁은 목마를 이용한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인해 승리했다기보다는 작은 방심이 패망의 지름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인류를 괴롭히는 악명 놓은 미생물과 질병의 존재를 규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오늘날에는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질병의 위험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그리고, 미생물은 무조건 질병을 야기시키는 인류의 해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미생물은 종족 번식을 위해서 인간의 몸을 숙주로 선택했지만, 인류도 미생물 덕분에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단번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세균이 등장했다고 하자.  과연, 그 세균은 오랫동안 종족이 보존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답은 세균들도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하게 된다.    미생물에게 숙주는 단순히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먹잇감이 아니다.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이다. 너무 지나치게 숙주에 기생하여 영양분을 빼앗게 되면 그 숙주는 죽게 되며 숙주의 몸 속에서 살고 있던 미생물에게는 보금자리를 잃은거나 마찬가지다.  보금자리 없는 미생물에게는 찾아오는 것은 죽음이다.  그래서, 미생물은 일부러 독성을 낮추어 숙주와 공존하는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장내에는 수많은 세균들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쉽게 배탈이 나지 않는다. 배탈이 나지 않은 이유는 장내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정상 세균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세균들이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내에는 면역세포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항상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런 독특한 공생 관계 덕분에 장의 면역력을 증가시켜 배탈이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듯, 미생물의 존재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우리에게 해로운 질병을 선사해주지만, 미생물이 존재하고 있어야 우리 인간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다만,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인만큼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의학적 방안을 찾기 위한 인간의 탐구는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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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2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리하라의 책을 두권이나 샀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다눈,, 끙.

저는여, 임신해서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를 읽었어요... 그리고
아주 심오한 경험을 했다눈. 크크. 사이러스님의 리뷰가 비슷한 느낌이네요.
미소생물학,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공생과 경쟁. 결국 숙주를 죽이면 안 되는거잖아요.
숙주를 죽이면, 자신도 멸망하니 현명한 바이러스는 적절한 정도로 숙주를
공격하겠죠. 옮겨가는 방법도 고려해야 하구... 참... 심오한 세계예요.

어느 책인지 까먹었는데,
아프리카의 미개척지에 있는 유인원을 건드리지 않는게 좋을거래요.
가장 좋은 예는 에볼라 바이러스. 그녀석은 유인원을 죽이지는 않지만,
인간에게 옮겨지면 치명적이라는군요.
인간과 접한적이 거의 없는 녀석이라서, 인간을 죽여먹는대요. ㅎㅎ.

cyrus 2011-01-24 14:27   좋아요 0 | URL
마고님이 구입하신 책 두 권이 뭔지 궁금하네요.^^
과학 관련 도서는 구입을 잘 안하는 분야의 책이기도한데,
두 권이나 구입하셨다니,, 하리하라의 책이 재미있고 유익해서
구입 가치로는 충분히 있는거 같네요.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라는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카스피 2011-01-24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SF소설중에 블러드 뮤직이란 책이 있어요.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어느 과학자가 바이러스한테 지능을 부여하고 그 바이러스들이 발달하여 결국 인간의 몸속에서 문명을 건설한다는가 하는 내용인데 결론은 인간의 몸이 바이러스한테는 광활한 우주라는 뭐 그러 내용이더군요.

cyrus 2011-01-24 23:45   좋아요 0 | URL
그런 내용의 책이 있군요. 이제 SF소설에도 관심을 가져봐야할 거 같아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이리시스 2011-01-2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관심분야가 아닌 것도 이렇게 리뷰로 읽으면 좋군요.

저는 좀 똑똑해지고 싶을 때 시루스님 따라읽기 하면 딱 좋을 거예요.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쓸 수는 없겠지만.^^

cyrus 2011-01-25 19:1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잘 쓰는 편이 아닌데요.^^;;
저는 아이리시스님이나 마고님, 양철나무꾼님 등과 같이
멋진 페이퍼를 쓰는게 부러워요 ^^
그리고 이렇게 엄청 읽고나도 나중에 뒤돌아보면 까먹어요,ㅎㅎ ^^;;
그래서 책 한 권 읽은 뒤에 뭐라고 기록을 남기는거 같아요.
정말 독서 후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블로그를 하면서 느꼈어요.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아브람 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지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한 권이 국내의 서점가를 강타하였다. ' 정의 ' 라는 단어를 필두로 하는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담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이 줄줄이 출간되었다. 그 영향을 힘입어 현존하는 시대의 진보적인 지성 노엄 촘스키와 68세대 철학자로 상징되는 미셸 푸코가 만나 인간의 본성, 정의, 정치 등에 대해서 열띤 대담을 정리한 책이 나오게 되었다.  

노엄 촘스키, 미셸 푸코.  서로가 지향하고 걷고 있는 학문의 길은 다르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두 지성인의 만남은 지적 독자들에게는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928년 출생인데 우리나라 나이로는 83세이다) 현재도 활발히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 때 최고의 지성인으로 몇 년 전에 그의 저작들이 무수히 쏟아져나와 서점가를 주릅 잡았던 촘스키였는데 , , , 

상전벽해(桑田碧海) 라는 말이 떠올리는 순간이다.  

이 책, , ,  생각보다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거 같다.  국내에 자리잡은 마이클 샌델 신드롬이 강력한 것도 있었지만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 미셸 푸코 ' 의  전체적인 사상 체계를 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선뜻 이 책을 고르기가 어렵게 만드는 선입견으로 비췄을 것이다.  사실, 나도 미셸 푸코의 그 유명한 저작들 <광기의 역사><감시와 처벌> 과 같은 책들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고, 푸코의 사상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잡혀있지도 않은 백지 상태라서 처음에 읽기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두 지성인의 대담은 베트남 내전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심했던 1971년에 이루어진, 오래된 대담이기도 하다. (만약에 촘스키 신드롬이 불었던 시기에 이 책이 일찍 소개되었다면 반응이 어떠했을까?) 무려 30년이 지난 것이다.  30년이 지난 두 지성인의 대화가 책으로 나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뜬금없기도 하다.  

스타버스트(Starbust)라는 천문학적 용어가 있다. 2개의 은하가 충돌하면 가스가 압축 생성되어 새로운 별들이 탄생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진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폰스 엘더르스의 말처럼 인문학의 산맥을 반대 방향으로 오른 지성인의 만남이라고 표현하였다.  서로 다른 루트로 인문학 산맥을 등정하고 있는 촘스키와 푸코가 산맥 정상에서 만나 이루는 지적 충돌의 논쟁은 대담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들을 제공하는 흥미로운 지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첫 대담 주제인 ' 인간의 본성 ' 에서부터 촘스키와 푸코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운다. 

촘스키는 어린아이의 언어 습득 능력을 들어 '인간의 본성' 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반면 푸코는 그건 역사적, 사회적 제약을 받는 인식론적 지표일 뿐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 본성 ' 에 대한 대화의 출발점이 시작하자마자 다른 만큼 정치, 권력, 진리에 대한 그들의 견해도 서로 다르다.    

그리고 ' 정의 ' 에 대해서는 촘스키는 인간성의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야말로 ' 정의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대중이 이룩하려는 사회 혁명은 바로 정의를 달성하려는 것이고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실현하려는 것이며, 혁명이 단지 어떤 집단에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푸코는 정의라는 개념은 특정 정치경제 권력의 지배 수단으로서 혹은 그러한 권력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여러 다른 유형의 사회에서 발명, 유통된 개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 대중들을 위한 지성인의 대담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촘스키와 푸코의 사상 체계의 틀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다간 낭패 볼 수 있다.  다행히도, 나 같은 무지한 독자들을 위해서 이들이 말하고 강조하고 있는 주요 특정 내용을 책 중간중간에 말머리로 표시되어 있다.  말머리 편집 덕분에 이들이 나눈 대화들을 간략히 정리할 수 있었다. (비록 인용한거나 다름 없지만)    

 

사족으로 부족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번 신간평가단 도서중에서 읽기 어려웠던 책인거 같다.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이 글 한 편 쓰기 위해서 이 책의 1장은 틈만 나면 여러번 읽었다. 김득신은 <사기열전>의 '백이편' 을 수만번 읽고나서야 그마나 내용을 이해했다던데 , , ,    

김득신 정도의 득도까지는 안 되었지만, 이 책을 통해 촘스키와 푸코라는 지성의 양대 산맥에서 헤맨 것은 보다 나은 성숙을 위한 정신의 성장통이라고 위안을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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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2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촘스키나 푸코는 어렵긴 어렵죠?
그래도 이 책은 좀 쉬울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ㅠ

cyrus 2011-01-23 20:14   좋아요 0 | URL
촘스키나 푸코의 사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저에게는
읽는데 좀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제 리뷰만으로
벌써부터 기 죽지 마세요^^;;

마녀고양이 2011-01-2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책 어렵지 않아요 하고 물어보려니까...
페이퍼 맨 뒤에 써놓으셨네요. 크크.

저는 노엄 촘스키와 미셸 푸코의 글을 보면,
천재란 이런 것이야 하고 생각하게 되염. 너어어어무 어려워서,,, 흐흐.

cyrus 2011-01-24 14:28   좋아요 0 | URL
정말,,, 이 책 억지로 완독하고 난 뒤에도 할 말 없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ㅠ_ㅠ

비의딸 2011-01-2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는 정말 힘든 책이었어요. 서평을 올리기도 벅차서 저한테만 힘든 책인것 같아 많이 고민했어요. 득도... 무엇을 위해 득도까지 해야 하는 회의까지 들지 뭡니까.. ^^;

cyrus 2011-01-24 14:2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두요. 그나마 정치에 대한 논쟁은 그나마 이해하고
공감이 갔었는데 처음에 본성에 대한 논쟁은 확 와닿지 않더라구요^^;;

꽃도둑 2011-01-2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가 어려운 건 비단 사이러스님 만이 아닌가보네요...저조하게 달린 리뷰만 봐도 그렇고... 비의 딸님은 득도까지 생각하는 걸로 봐서는....ㅎㅎㅎ
아마도 지금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ㅋㅋ
이제 얼마남지 않았는데 다들 완주하는 일만 남았네요.
다들 힘내자구요~~

cyrus 2011-01-24 14:30   좋아요 0 | URL
지난 달 <왜 도덕인가?>의 안 좋은 추억(?)이 떠올려서 급히 읽고
후다닥 썼어요..^^;;

아이리시스 2011-01-2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읽으셨잖아요, 그죠? 흡;
저야말로 촘스키는 손도 못대고 푸코는 사놓고 3년째 묵히는 중이고,ㅋㅋ

cyrus 2011-01-25 19:20   좋아요 0 | URL
저 그래서 마음 먹고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구입하고
정독하려고 했는데,, 방대한 분량에다 이에 맞먹는 가격 때문에
좌절했어요 ^^;;
 
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 , , 중략 , , ,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 상 <오감도> 시제 1호 중에서 -  

 

 

  

  살얼음 위에 서 있는 대한민국   

세상에는 불안과 공포는 항상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상황에 따라 막연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만약에 당신이 얇게 얼린 살얼음 위를 걷는다고 상상해봐라.  

살얼음 위에 발을 밟는 순간, 얼음덩어리가 깨지면서 당신은 물 속에 빠지게 된다.  

당신이 예전에 살얼음 위에 걷다가 물에 빠졌다거나 혹은 살얼음 위에 한 번도 걷지 않았더라도 살얼음 위에 걷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사자성어 중에서 ' 여리박빙 ' (如履薄氷) 이라는 말이 있다. 살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살얼음을 밟게 되면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만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가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다.  

서민들은 자고 나면 터지는 비윤리적인 범죄 사건에 불안해하고 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시달린다. 경제성장률은 호전되고 있으며 상승될거라고 매스컴에서는 장밋빛 희망을 선전하고 있지만, 가계 살림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실업과 취업난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국가 안보에 대한 불안 심리도 확산되고 있으며 전국을 덮쳐버린 구제역은 또 한 번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 발전, 성장 ' 을 이룩하겠다는 MB의 신년 포부는 좋다. 하지만, ' 발전 ' 에 눈이 먼 나머지 내부 사회에서 절망의 목소리들이 생겨나고 있는지 인지를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절망의 짐들을 떠안게 된 대한민국은 사회가 언제 무너져내릴지도 모르는, 살얼음 위를 그렇게 걷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G20 정상회담 이후에 좋아진 대한민국 이미지에다가 최근 소말리아 해적 소탕 이후로 또 한 번 ' 대한민국 ' 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로부터 강력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기세등등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정작 ' 대한민국 '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게 현실이다.

 

 

  불안장애에 이르는 병  

우리나라는 높은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 행복감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세계 국가별로 행복지수를 산출하는 통계에서는 우리나라는 상위권에 유지하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부족한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들은 행복지수에 상위권에 랭크되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행복은 경제성장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독 국가별 통계에서 자랑스럽게 1위를 하는 것은 바로 ' 자살률 ' 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자살 충동을 부르게 하는 개인적인 심리 문제 혹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 불안' 이라는 감정을 형성하게 된다.

불안이란 자기에게 닥칠 위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존재하고 있어 자기에게 해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감정을 뜻한다. 즉, 우리 앞에 보이지 않거나 맞닥뜨리지 않은 위험 요소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 지나치게 과하게 되면 ' 불안장애 ' 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  불안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불안해 하거나 정도 이상으로 지나치게 불안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닥치지도 않을 위험을 걱정하고 최악의 사태만을 상상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대중들의 현재 심리는 ' 불안 ' 이라고 말하기보다는 ' 불안장애 ' 정도에 이르는 아주 위험한 수준이다.  

일년에 한 번씩 치르는 수능시험날이 되면 꼭 수험생 한 명은 자살하게 된다. 기대한만큼 원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절망에 빠지다가 건물 옥상으로 향하고 만다.  앞으로의 생활고를 견디기 힘든 나머지 자신이 낳은 핏덩어리인 자식을 매정하게 버린다거나 혹은 죽음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구제역의 여파가 사라지지 않게 되자, 대중들 사이에서는 일명 ' 구제역 괴담 ' 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져나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인해 지나치게 불안해거나 극단적으로 과대망상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심각한 증상은 자기 파멸을 향하는 지름길이다.  

  

 

  ' 사회 ' 가 만들어낸 만성적 불안

김태형의 <불안증폭사회>에는 우리나라 대중들의 불안 증세를 ' 만성적 ' 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 특유의 불안 증세는 최근에서 비롯된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중들의 심리에 큰 변화가 있었다. 사회로부터 냉혹하게 내팽겨쳐버렸다는 정신적 상처를 얻게 되었고, 그 상처로 인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흉터가 생기게 되었다.  그 흉터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국가 발전과 성장을 위해 정부가 부르짖었던 ' 신자유주의 ' 사회구조 체제는 불안에 떨고 있는 대중들의 마음에 또 다른 괴물로 등장하였다.   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고, 조금이라도 뒤쳐지게 되면 사회에서 낙오된다.  오직, 경쟁 끝에 살아남은 승자만이 최고다.  전장터 같은 사회 속에서 대중들은 ' 신자유주의 ' 괴물을 무서워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 신자유주의 ' 괴물이 양산한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 등은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 괴롭히고 있다.  

   

 

  김태형 씨, 당신은 ' 심리학 전문가 ' 이지, ' 정치 전문가 ' 조국이 아니에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커다란 원인은 바로 ' 사회 ' 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률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개인의 불행한 문제탓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병리적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을 정신적인 병에 걸리게 만드는 원인을 단지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는 사회적 인식의 틀을 타파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시도이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대한민국의 만성적 불안을 고칠 수 있는 방안을 협소한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정신 질환을 고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 구조에 자리잡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영역들을 축소하고, 사회안전망의 확보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세력들이 조직 내부의 건전한 공동체화를 토대로 건설하느냐에 따라 대중적 지지 확보 여부가 달라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안 증폭 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열쇠가 진보의 손에만 쥐어져 있단 말인가?  

책의 저자는 분명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자이면서도 심리학 박사가 되기 전에는 1980년대 사회운동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사회운동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진보적인 관점 덕분에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악했다는 점이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 되었지만, 해결 방안면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이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는 진보만이 해결해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있어 진보와 보수, 두 정치권이 보여준 대응과 자세는 부족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입장의 이분법을 떠나서 대립보다는 화합적인 자세를 가지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거 없이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해서 의혹과 대립으로 난무하는 정치권 세력이 만들어낸 사회적 불신을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불안증폭의 병의 근원을 뿌리뽑는 일이다.   무조건 불안의 원인을 ' 사회 ' 라는 개념으로 추상적으로 접근하여 정의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개선하려는 의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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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1-22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똑 불감증을 앓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책 이렇군요, 이 사람 심리학자라고 해서 불안을 어떻게 버무려 낼지 궁금했었는데 말이죠~^^

cyrus 2011-01-22 21:44   좋아요 0 | URL
불안에 대해서 심리학적 접근도 있지만 그렇게 많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저자의 사회비판적인 관점이 많았어요.
그리고 불안의 원인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기도 합니다.

아이리시스 2011-01-2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상의 시는 하나도 틀린 게 없네요.
이 책 궁금했는데, <오감도> 보니까 관심 뚝!
무섭고 절망적이고 그렇지만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이 그런거니까요, 아하하.
심각한 책과 리뷰 앞에 저는 너무 발랄~

cyrus 2011-01-23 20:18   좋아요 0 | URL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불안의 원인은 사회라는 것인데,,
사회문제를 다룬 책들처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들이 언급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미 소개된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어서 소리만 요란했던 책인거 같아요. 결국 중요한 사실은 이상의 시처럼 인간에게 불안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인거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1-2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보수 입장의 글,
또는 진정한 보수에 대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이러스님, 제게 추천하실 책 없으세요?

cyrus 2011-01-24 14:34   좋아요 0 | URL
아까 방금 마고님 댓글에 책 추천하셨길래 감사의 인사를 드렸는데,,
저도 그렇게 좋은 책을 구별하는 안목이 부족해서 추천해주고 싶은
도서가 없어서,, 괜히 미안해지네요..

보수의 입장에 대한 관련된 책이라면,,
앨버트 O. 허시먼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보수에 대해서 진지하게 분석하고 논한 책이라서 우석훈, 장하준도
추천한 책이에요.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는데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더라구요.
 
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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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30] 몰타의 매

 

 

" 톰, 내가 볼 때 샘 스페이드는 자기 집안 문제는 자기가 조용히 해결할 사람일세 . " 

 - 대실 해밋 <몰타의 매> p 30 -  

 

 

  매서운 한파 때 읽어서는 안 될 책   

요즘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전날의 한파보다 추위가 한 풀 꺾었다고 했지만 해가 물러나는 밤은 한파 못지 않게 춥다.   최근의 한파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꽁꽁 얼게 만들었다. 물, 수도, 식물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이번 주말에는 날씨가 잠시나마 풀린다던데 전국적으로 눈이 또 온단다.  그리고, 또 한 번 한파가 찾아 온다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쓴 단편소설 속에 있는 표현처럼 차디찬 ' 얼음 왕의 키스 ' 를 받게 되었다.   얼음 왕의 심술은 따뜻해야할 집도 피할 수는 없었다. 세탁기가 잠깐 맛이 간 것 이외에는 생활하는데 지장을 줄만한 동파 피해는 입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바깥보다 춥지 않지만 충분히 마음을 시리게 만드는 한기의 여운이 감돈다.   

그런 차디찬 분위기의 텅 빈 방 한가운데서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를 읽어 보게 되면 오히려 더 추워지고 싸늘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과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 송곳니와 같은 샘 스페이드의 짧고 절제된 대사들은 ' 금발의 악마 ' 라기 보다는 금발의 ' 아이스 맨 (Ice man) ' 을 연상케 한다.  거기에다가 스페이드가 활동하고 있는 소설 속 배경 역시 더 싸늘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920년대의 미국 사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한파 때문에 싸늘했던 것도 있었지만  ' 금주령 시대의 산물 ' 이라는 별칭답게 대중이 원하던 시대의 영웅은 경제 공황을 타파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통령이 아니라, 밀주업자로 악명 높았던 ' 스카페이스 ' 알 카포네였다.  대중들이 열광했던 영웅은 아이러니하게도 암흑가의 제왕이었다.   

이런 시대 속에 과연 인간들 사이에서는 따뜻한 정(情)이란게 존재하고 있었을까? 정이라는 것이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싸늘했던 시기가 바로 알 카포네 그리고 샘 스페이드가 살았던 1920년대 미국이었다.  

  

 

  불신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샘의 여자들      

이 소설에는 ' 범인이 누구인가? ' 이라는 초점이 중요하지 않다. ' 금발의 아이스 맨' 샘 스페이드가 맞닥뜨리게 되는 크고 작은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독자는 샘 스페이드의 진면목과 그 밖의 주변 인물들의 성격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하드보일드 장르답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온감어린 ' 정 ' 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짧으며 특히, 상대방에 대한  ' 믿음 ' 역시 보이지 않는다.   

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의뢰인 브리지도 오쇼네시는 자신 스스로도 인정하는 가식과 허위로 가득 찬 ' 나쁜 여자 ' 다.  하지만, 그녀가 ' 나쁜 여자 ' 가 되고 싶어서 나쁜 여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에서 비롯된 불신으로 가득 찬 나머지 자기 자신마저도 믿지 않게 되는, 어떻게 보면 ' 정' 이 없는 1920년대 사회가 낳은 불쌍한 여자이기도 하다. 

" 나는 나쁜 여자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빠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스페이드 씨, 나를 좀 봐요. 내가 완전히 나쁘기만 하지는 않다는 걸 알죠?  

 (중략)  그러면 나를 좀 믿어 주세요. 아, 나는 너무 외롭고 두려워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 , ,   

나는 당신을 믿어요.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나중에 때가 되면 말할께요. 무서워요. 스페이드 씨. 당신을 믿는 게 두려워요. " 

 - 대실 해밋, <몰타의 매> p 49 -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샘 스페이드뿐이었다.  하지만, 오쇼네시는 자기 자신을 불안과 불신의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극단적인 상황을 고집한다.  자신과 함께 새 조각상을 훔치는데 공모한 동료마저 믿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소설의 결말부에 이르러 그녀의 비관적인 불신이 만들어낸 비수는 그녀의 심장을 제대로 꽂히게 된다.  오쇼네시가 자신의 동료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낸 샘은 매정하게 그녀를 차버린다. 결국, 그녀는 살인죄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오쇼네시는 믿는 샘 스페이드에게 제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오쇼네시 다음으로 비운의 인물은 죽은 샘의 동료의 아내인 아이바이다. (공교롭게도, 소설 속 두 여인의 공통점은 샘 스페이드를 향한 연분을 품고 있다)  그녀는 엄밀히 말하면 불륜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동료인 탐정 샘 스페이드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침없이 샘의 차가운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어도 아이바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람이 샘이라고 의심을 한다. 아이바의 등장은 소설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그녀의 의심은 샘의 사건해결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샘 스페이드 씨, 이게 최선입니까? 

' 몰타의 매 ' 라는 값비싼 조각상을 둘러싼 샘 스페이드와 브리지도 오쇼네시 그리고 카이로, 이 세사람 간의 얽힌 관계 속에서 맞물리게 되는 길고 긴 만남의 과정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샘 스페이드의 동료를 죽인 사람이 누구이며, 몰타의 매 조각상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결말 따위가 중요치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에서 부각되는 것은 소설의 주인공이자 탐정인 샘 스페이드뿐이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 오쇼네시, 카이로 그리고 샘의 동료까지, 모든 인물들은 비극적인 결말은 ' 불신' 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서 희생되거나 상처를 입었다.  샘 스페이드는 그런 혼잡한 상황 속에서도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이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무미조건한 샘 스페이드의 성격답게 결말 역시 무미건조하게 끝나버린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드보일드 소설이라서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아서 아쉬운 것이 아니다. 소설의 결말이 읽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기대감을 저버려서 작가에 대한 원망함이 살짝 담긴 아쉬움도 아니다.    

내가 느꼈던 그 아쉬움이란, 바로 샘 스페이드 역시 불신 시대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1920년대가 만들어낸 ' 어둡고 차가운 영웅' 이라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서 오쇼네시를 두고 냉정하게 뒤돌아서버린 그의 태도였다.   

" 내가 당신을 믿어야 하나요?  

  (중략)  

나를 만난 이후 거짓 없는 시간을 30분 이상 보낸 적이 없는 당신을?  아닙니다. 믿을 수 있다고 믿지 않을 겁니다. 왜 믿어야 합니까? "  

 - p 277 - 

고질적인 불신으로 인해서 오쇼네시는 ' 인과응보 ' 의 결과를 맞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무엇보다도 살인을 범했다는 점에서 오쇼네시는 분명히 죄에 대한 처벌을 마땅히 받아야한다.  

하지만, 동료를 죽인 살인죄에 대한 처벌이라는 명목 아래 그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오쇼네시의 여심을 자극하고 이용을 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녀의 뒷통수를 치고 만다. 샘 스페이드는 애초부터 오쇼네시를 끝까지 믿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법의 심판자인마냥 범죄자를 응징하는 샘의 태도 역시 못마땅하고 차마 눈 뜨고 보기에는 거북스러웠다.  아무리 그가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탐정이라고 해도 그의 삶에는 ' 정의 ' 와는 거리가 멀다. 죽은 동료 몰래 동료의 아내와 은밀히 연분의 정을 나누웠으며 사건 해결 과정 중에서 오쇼네시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건 해결하는데 별 도움도 안 되는 비용인데도 말이다.   

샘 스페이드, 그도 불신과 허위로 치장하고 다닌 인물이었다.

대실 해밋는 이 소설 한 편 덕분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샘 스페이드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은 이 ' 까도남 ' 탐정의 이야기에 열광을 하였다.  암흑가의 제왕 알 카포네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1920년대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독자들의 샘 스페이드 신드롬은 당연한 사회적 흐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와 실제로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정말 만약에 그를 만나게 된다면 한 번 묻고 싶다.    

 

 , , , , ,

 

 

  

 

" 샘 스페이드 씨, 죽은 동료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애초부터 불쌍한 여인 오쇼네시마저 믿지 않았던 당신을 내가 믿어야 하나요?   그리고, 당신과 같이 어두운 사회 때문에 불신과 가식으로 치장해야만 했던 오쇼네시를 그렇게 냉담하게 내쳐버려야 했습니까?    

이게 최선입니까?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 잔인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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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1-2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워지고 싸늘해지는 문학이라니, 나도 킵해놔야지!^^

[그러면 나를 좀 믿어 주세요. 아, 나는 너무 외롭고 두려워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여기 꽂혔거든요. 좋아요, 이거.

cyrus 2011-01-21 23:20   좋아요 0 | URL
이 소설 읽으면서 오쇼네시가 제일 불쌍했어요. 비록 자신의 마음 속에서
비롯된 기우 때문에 죄의 대가를 받았지만,, 유일하게 기대려고 했던
샘 스페이드에게 제대로 버림 받은 결말이 인상 깊으면서 씁쓸했었습니다.

stella.K 2011-01-2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확실히 추운 날 저런 책 읽으면 진짜 더 추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같은 걸
제가 못 읽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ㅎㅎ
더구나 하드보일드는 더더욱.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을 봤는데 그림은 좋은데 영 땡기지를 않아 결국 보다 자고
다시 안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드보일드잖아요.
전에 바람구두님이 극찬을 했었는데 도무지 제가 이쪽 취향이 아니라.ㅠㅠ
근데 시루스님 리뷰가 점점 분석적이 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하드보일이라면 하드보일이랄까?ㅎ
아무튼 좋습니다.^^

cyrus 2011-01-22 14:04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언급하신 두 소설, 읽어보려고 했었는데, 괜히 읽다가 더 추워질거 같네요^^ 저도 카우보이 비밥 재미있게 봤어요, 그 땐 만화 속 주인공 스파이크가 멋있었는데,,^^;;

노이에자이트 2011-01-2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 파탈만 있냐...옴므 파탈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죠.저는 아주 오래전 영화로도 봤습니다.험프리 보가트가 옴므 파탈의 진수를 보여주지요.

cyrus 2011-01-22 17:38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영화 보고 싶어요. 소설보다 영화가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sslmo 2011-01-22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밋 해실의 ‘몰타의 매’ 비껴갈 수 없죠.
'까도남'정도론 부족하죠, ‘차도남’도 약해요.
추워요, 냉랭하고...근데, 좀 멋진건도 사실이예요. 철퍼덕~

cyrus 2011-01-22 21: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위의 노자님 말씀대로 샘 스페이드는 옴므파탈의 대명사인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