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나선 -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를 발견한 이야기 궁리하는 과학 1
제임스 D.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 궁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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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세포는 하나의 우주와 같다. 세포 안에서 참으로 다양한 생명활동이 일어나고 있고 생명활동의 중심에는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는 세포의 생명활동을 지배한다. 즉 유전자는 생명의 정보인 셈이다. 유전자에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를 아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생명의 신비를 아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에는 생물의 세포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고 생식을 통해 자손에게 유전된다. 유전자의 물질적 실체는 바로 DNA인데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DNA 안에 유전정보가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에는 DNA의 유전정보를 통해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미리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는 데 단 며칠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제는 유전자가 질병의 발병 가능성이나 기질 등의 근본이라는 사실이 상식이 됐지만, 그 구조가 밝혀진 것은 불과 50년 전 일이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유전자 게놈 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당시엔 DNA가 어떻게 유전정보를 갖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 비밀을 풀기 시작한 과학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왓슨이 쓴 그 유명한『이중나선』이다.

 

 

 

 DNA의 구조를 둘러싼 과학자들 간의 질투와 경쟁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EBS에서 방영중인 최재천 교수의 '공감의 시대' 강연이었다. 강연 제1부에서 최재천 교수가 대학생 시절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과학 도서라고 추천했다. DNA의 구조를 밝혀내는 탐구의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만 가지고 DNA의 구조에 대한 과학적 내용을 기대해선 안 된다. 사실 이 책은 그 발견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생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혀내가나는 과정의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이과계가 아닌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과학 고전으로 알려진 이유에는 DNA의 구조를 발견하게 되는 탐구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어려운 생물학 지식을 대중들을 위해 쉽게 소개하고 있는 왓슨의 과학적 글쓰기 능력도 한 몫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이 책의 화자인 왓슨, 자신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요소이다. 왓슨의 동료 과학자들이 연구했던 다양한 주제뿐만 아니라 연구실 밖 일상까지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궁리에서 번역한 『이중나선』앞표지에는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 구조를 발견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다.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소임이다. 하지만 『이중나선』에 등장하는 왓슨과 크릭 그리고 DNA를 연구한 과학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고리타분한 연구 주제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학계에서 커다란 관심을 받을만한, 흥미를 느끼는 분야만 좇아 다녔고, 다른 연구자들이 조금이라도 진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곧 경쟁심과 질투심에 들떠 어쩔 줄 몰라 했다. 위대한 발견을 함께 한 동료로서 크릭의 모습과 성격을 묘사한 왓슨의 증언이 너무나도 솔직하다.

 

 

 

 

자신들이 만든 DNA 모형 앞에 선 제임스 왓슨(左)와 프랜시스 크릭(右)

 

 

(『이중나선』pp 224)

 

 

내가 보기에 프랜시스 크릭은 그리 겸손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겸손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중략)   당시 그는 35세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과학자였다. 그와 친한 몇몇 동료들만이 크릭의 빠른 머리 회전과 통찰력을 알았고 가끔 조언도 구했지만, 대다수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말 많은 수다쟁이로만 대할 뿐이었다.

 

 - 제임스 왓슨 『이중나선』중에서, 최돈찬 역, 궁리, pp 25~26 -   

   

 

친한 동료 아니랄까봐 책의 첫 장부터 크릭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왓슨은 자신의 동료 크릭이 그동안 연구했던 과정과 결과가 다른 동료 학자들 앞에서 떠벌리고 다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다. 크릭의 오지랖 때문에 연구 성과가 다른 동료들에게 빼앗길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사실 왓슨의 걱정은 단순히 성과 집착에 대한 지나친 기우가 아니다. 실제로 크릭은 자신의 오지랖으로 인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겅험이 있었다. 자신이 독립적으로 연구한 과학적 아이디어가 대학 지도교수였던 로렌스 브래그로부터 도용당하고 만 것이다.

 

 

브래그 경은 크릭의 이론을 미리 알았다는 사실을 단호히 부인하고, 다른 과학자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말은 자신에 대한 더 없는 모욕이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크릭 자신이 그토록 떠들고 다닌 아이디어를 브래그 경이 몰랐을 리 없다고 대들자, 브래그 경 또한 이를 맞받아쳤다. 대화가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10분도 채 안 돼 크릭은 교수실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pp 74)

 

 

 

아이디어가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허락도 없이 도용한 점에 대한 이의를 둘러싼 두 학자 간의 다툼은 이 책에서는 그저 사소한 일화로만 지나갈 수 있지만 과학자들은 자연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 만 좇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성을 알릴 수 있는 성과와 그에 대한 보장 역시 간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왓슨이 '네이처'라는 과학 잡지를 통해 DNA의 이중나선을 밝힌 나이는 불과 25세다. 책에서 스스로 그리고 있는 당시의 왓슨은 불투명한 앞날로 인해 방황하는 대학생과 다름 없다. 화학은 전혀 모르는 데다, 학교에서 지급되는 장학금과 연구 성과,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국 그가 평생 바치기로 선택한 연구 주제가 바로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DNA의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가 DNA 연구에서 한발 앞서 있었던 모리스 윌킨스(DNA 구조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왓슨과 크릭과 함께 1962년에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한다)와 당시 유일한 여성 DNA 연구자였던 로잘린드 프랭클린, 화학의 대가로 꼽히는 라이너스 폴링과의 경쟁에서 승자가 된 이유는 바로 그 질투심과 경쟁심 때문이었다.

 

 

 

 

 『이중나선』그리고 왓슨의 과학적 글쓰기에 대한 평가 

 

왓슨의 『이중나선』은 과학도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독자들마다 이 책에 대한 평과 인상이 차이가 있을 것이다. 최 교수도 이 책을 소개하면서 언급했지만 오늘날에도 동료들에 대한 왓슨의 적나라한 모습이 담긴 이 책이 과학 고전으로 읽혀져야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남아 있다.

 

왓슨의 과학적 글쓰기는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DNA의 구조에 대해서 쉽게 설명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점에서는 높히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이 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있는 위대한 과학 논픽션이라고 하더라도 『이중나선』의 저자 왓슨의 주관적인 관찰과 감상으로 이루어진 글이라는 것을 염두하여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모리스 윌킨스의 동료였던 로잘린드 프랭클링은 DNA 이중나선 발견에 결정적인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중나선』에서는 그의 활약을 미진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대해 왓슨은 성격 괴팍하고 데이터 분석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 때문에 '숨은 주연'이나 다름없는 로잘린드 프랭클링은 왓슨과 크릭이 성취한 과학적 성과의 발견을 더욱 돋보이게끔 만드는 '엑스트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녀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여성 최초의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불행하게도 놓치고 말았다. 혹자는 왓슨의 행동이 동료 과학자의 성과를 가로 챈 행위이며 『이중나선』을 통해 동료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폭로함으로써 유명세를 얻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왓슨은 나중에서야 후기를 통해서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숨은 공로를 인정했지만 지금도 대중들은 DNA의 이중나선을 발견하는 사람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은 모리스 윌킨스 그리고 2004년에 세상을 떠난 동료 크릭마저도 왓슨의 인지도에 묻혀지고 있다. 『이중나선』이 책 한 권 덕분에 왓슨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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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2-12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과학도들에게 필독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상당히 불편했던 점등을 생각하면
이중나선을 과학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크릭을 겸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왓슨도
사실은 절대로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인문학적 측면에서는 별로인 책이 확실하거든요^^

왓슨이 로잘린드 플랭클린의 공로를 매우 축소시켜 소개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공로를
행간에서는 절대로 숨길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위 글에서 지적해주신대로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살아 있었다면
왓슨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가질지는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2-02-13 22:07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과학자들 간의 대화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지만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왓슨의 차별이 좀 불편했어요.
랑공님 말씀대로 이 책이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hnine 2012-02-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슨이 최근에 낸 책으로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서 제목은 Avoiding boring people 인데, 왓슨이 얼마나 치밀하고 야망이 많은 사람인지 아주 자세하게 나와있어요. 천재성을 지닌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과학에 있어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우리는 과학 이외의 다른 것도 은연중에 기대를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그 사람의 과학적 업적, 왓슨의 예에서 보면 DNA의 구조에 대한 것 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DNA 구조를 밝혀내기 까지 그 뒷배경이 어떠했을까 하는 점에 더 관심이 많이 쏠리는 것, 저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워하는 쪽입니다.
로잘린 프랭클린, 윌킨스 와 왓슨, 크릭, 이런 사람들 사이의 일화는 뭐,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어요.
리뷰를 참 성실하게 잘 쓰십니다.
잘 읽었어요.

cyrus 2012-02-13 22:08   좋아요 0 | URL
왓슨이라는 사람이 은근히 과학 대중서를 많이 썼더라고요.
그런데 <이중나선>이 고전이라고 손가락 치켜세우기에는 불편해고
조금은 부족한게 있었어요. 저자의 주관적인 느낌도 강했고요.
로잘린드 프랭클린 평전이랑 크릭 평전도 출간되었던데 그 책도 겸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절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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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한 작가의 흔치 않은 소설

 

나는『절망』에서 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어떠한 사회적 논평도 제시하지 않고, 어떠한 교훈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지도 않고, 인류에게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 V. 나보코프,『절망』1965년 영문판 서문 중에서 (최종술 역, 문학동네, pp 239)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단 한 권의 소설로 문학사에 기록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로 알려진 ,『롤리타』의 성공을 통해 문학사에 기록된다. 그러나 소설뿐만 아니라 시, 희곡, 비평 등을 남길 정도로 엄청난 다작 능력을 지닌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번역된 나보코프의 소설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널리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출세작인『롤리타』가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누리게 되는 바람에 그의 다른 작품들의 문학적 가치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최근에 출간된 나보코프의『절망』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소설들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집필된 것이다. 그동안 소개되지 못했으며 흔하게 잘 알려진 작가의 또 다른 작품 그리고 이제 막 작가적 재능을 펼치기 시작하려던 그의 초창기 문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보코프의『절망』은 읽혀질 가치가 있다.

 

하지만 흔한 작가의 소설치고는 『절망』의 문장과 줄거리 전개 방식은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흔하지 않다. 나보코프 특유의 서사 구조적 치밀함과 언어적 유희가 텍스트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데다 주인공 화자와 그를 닮은 또 다른 분신이 등장하여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줄거리라서 이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작품 속 서사의 흐름이 더욱 복잡하게 느껴질 것이다. 소설 속 주주인공인 게르만 카를로비치가 자신과 닯은 분신 펠릭스를 살해하는 과정을 고백 형식으로 서술하는 방식은 서로 닮은 게르만과 펠릭스의 실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서사 구조 때문에 읽을 때 집중력을 요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보코프'를 패러디를 한 블라디미르 시린  

 

나보코프는『절망』영문판 서문에서 이 소설은 어떠한 교훈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유희적 텍스트 읽기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서사 구조 때문에 독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명망 있는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조차도 나보코프의 문학적 유희에 된통 당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나보코프는 이 소설을 그저 재미있게 읽혀지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잘못된 해석으로 망신을 산 사르트르의 경우만 가지고 이 소설을 더욱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유희적 텍스트는 독자들마다 각기 다른 의미의 해석을 만들 수 있다. 독자들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텍스르를 이해함으로써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절망』의 '분신' 주제는 게르만과 펠릭스라는 서로 닮으면서도 다른 양면적인 인물를 통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게르만과 펠릭스의 실체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는 것처럼 게르만이 직접 서술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게르만은 자신이 일으킨 행동과 생각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지만 그의 행동들, 즉 분신 펠릭스를 살해하는 행위를 실행하고 마는 과정과 그에 대한 결과들은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현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펠릭스를 살해함으로써 불행했던 이전의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 또다른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어떻게 그들은 자신을 만났는가?』 1864년

 

 

 

서양에서의 분신의 출현, 즉 도플갱어는 실제적 존재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고 있다. 게르만의 입장에서는 분신 펠릭스는 행복한 삶을 원하는 자신의 소원을 방해되는 존재이다. 게르만은 도플갱어의 저주를 극복하는 것, 즉 펠릭스를 살해하는 것만이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인식하게 된다. 부질 없는 자기합리화적 몽상의 늪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펠릭스는 예술가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창조적이면서도 허구적인 자아와 현실적 자아 간의 갈등에서 야기되는 괴리감을 상징하고 있다. 펠릭스를 살해하고 난 뒤에도 게르만은 자신의 존재을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여김으로써 본인 스스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분신 살해에 의한 도플갱어의 무서운 저주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분신을 주제로 하는 한 편의 우화 소설로 볼 수도 있겠지만『절망』의 주인공 게르만에는 절망적 인물을 창조시킨 장본인, 작가 나보코프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나보코프는 초창기 창작 활동 당시, 잘 알려져 있는 본명 대신에 '블라디미르 시린'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시린'이라는 필명 속에는 나보코프의 인생과 연관된 두 가지의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전자는 귀족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이름과 혼동을 피하기 위한 것과 후자는 정착하지 못한 채 방랑 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고대 러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시린을 의미한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낸 18년 간의 러시아에서의 유년 시절은 나보코프에게는 행복한 삶의 기억이었다. 유복한 귀족 집안에서 자랐기에 부족할 것이 없었던 화려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의 귀족들은 몰락하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마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나보코프의 인생에 있어서 일대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생활고가 찾아오는 동시에 나보코프는 행복한 유년 시절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조국 러시아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보코프는 유럽과 미국을 전전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고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갈 의향도 없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고국의 땅을 다시 밟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런 시대의 변화에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그러한 정신적 상처로 인해 고국 러시아를 외면한 채 나보코프는 스스로 '문학적 경계인'으로서 삶을 선택했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는 시린이라는 상상 속 동물의 이름으로 필명을 정함으로써 나보코프는 또다른 분신을 만들어 '문학'을 통해서 과거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경계인으로 겪어야 할 양면적인 정체성의 갈등을 극복하고자 했다.

 

'블라디미르 시린'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시작된 작가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러시아 문학 비평가들로부터 '러시아적이지 않다'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그러한 비난을 맞서기 위해서는 나보코프가 택한 방식은 아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으로서의 고독을 문학 창작의 필요조건으로 내세운다.

 

행복한 삶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마저 '예술'로 승화시키며 자기합리화하는 게르만의 행위과 그가 겪는 절망은 결국에는 고독한 문학적 경계인이 되어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나보코프 아니, 블라디미르 시린이 만들어 낸 절망적 분신이었다. 자신의 불행했던 삶의 경험을『절망』을 통해 '시린' 그리고 '나보코프'를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자신이 직접 분신이 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소설가 그리고 실존적인 존재 '나보코프'가 되고 싶었다. 그러한 창작 의도가 만들어 낸 성공의 결과물이 바로 『절망』이었다. 결국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이전에 그를 비난했던 러시아의 문학 비평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절망』,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고자 한 문학적 경계인의 수기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젊은 시절, 자신에게 실연의 아픔을 남겨 준 샤를로테로 인해 정신적인 절망에 사로잡혀 혼자서 거리를 방황하던 도중에 자신과 닮은 분신을 목격했다. 그야말로 도플갱어를 체험한 것이다. 세월이 지나 유명한 소설가로 성공한 괴테는 젋은 시절에 살았던 고향의 거리를 다시 찾게 되는데 그 곳에서 그동안 잊혀지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도플갱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젋은 시절, 자신과 빼닮은 분신이 입었던 복장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괴테의 경험담은 실제로 일어난 사례인지 출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도플갱어를 소개할 때 자주 소개하는 유명한 일화로 알려져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양에서의 도플갱어는 죽음의 징조로 여겨지고 있지만 반대로 유대인들은 이러한 신비한 체험을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길운의 징조로 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분신을 '또 다른 나라고 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괴테의 일화를 비추어 볼 때 절망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나보코프는『절망』의 성공 덕분에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그는 소설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가수는 노래제목 따라 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수가 부른 노래제목이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도 제목처럼 부정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나보코프는 '절망'이라는 소설 제목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게르만처럼 절망적인 삶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부터 성공의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절망』에는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게르만의 자아 분열 양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숨긴 '블라디미르 시린'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라는 두 자아의 정체성이 숨겨져 있다. 전자는 소설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현실적이면서도 예술가적 정체성이며 후자는 러시아에서의 행복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내면적 정체성이다. 

 

나보코프는 이 소설을 통해서 문학적인 성공을 얻을 수 있었지만 러시아에서 남겨 둔 잃어버린 행복의 추억들 그리고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게르만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듯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소설가 나보코프'가 되지 못했으며 그러한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고자 했다. 그리고 『절망』은 아무런 의미도, 교훈도 없는 흥미진진한 소설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난해한 소설을 작가 스스로 어떠한 교훈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작가의 평가가 진중하지 않다. 현실과 상상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게르만의 이중적인 속임수와 분신 모티브는 자신의 의도대로 독자와 사르트르를 혼란케 만드는 데 성공했겠지만 '시닌'과 '나보코프'로 구분되는 정체성의 실존적 고뇌 그리고 러시아의 추억에 대한 향수를 숨길 수가 없었다. 소설의 문맥 곳곳에는 러시아 문학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고, 소설 속의 소설은 게르만이 쓴 미친 일기가 아니라 '문학적 경계인' 나보코프가 쓴 수기(手記)다. 

 

 

 그래요, 난 전부 의심하게 되었소. 핵심을 의심하게 된 거요. 그리고 길지 않은 여생을 온전히 단 하나, 이 의심과는 헛된 싸움에만 쏟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소. 나는 사형수의 미소를 지었소. 그리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특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보다 나은 제목은 찾을 수 없소.

 

 - V. 나보코프 『절망』중에서, pp 226 -

 

 

 

나보코프는 양면적인 정체성의 자기 모순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결국에는 헛된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했던 것일까?  완전히 분리된 자아 정체성에 대한 합일의 시도를 하지 못한 채『절망』 이라는 제목처럼 '절망'이라는 단어로 성급하게 결론을 짓고 만다. 그리워했을 러시아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미국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로 남게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은 나보코프가 세상을 떠난지 9년 뒤에 그가 남기고 간 문학적 결과물들만이 러시아에 갈 수 있었다. 물론 '블라디미르 시린'이라는 이름으로 쓴『절망』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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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2-1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글을 읽고 책꽂이에 있는 <절망>을 다시 흘겨보고 있습니다^^
선물받은 책인데 그대로 있네요.
여튼 롤리타,에 가려 다른 작품들을 더 읽어 볼 생각을 못했던 것 아닌가 싶네요.
주말에 이책을 슬쩍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2-02-11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롤리타>를 읽어보려고 해요. 유명한 소설을 드디어
읽어보게 되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굿바이님 ^^

stella.K 2012-02-1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끌렸는데 난해하다니 역시 망설여지는군.ㅠ

cyrus 2012-02-11 19:41   좋아요 0 | URL
현실과 상상을 복잡하게 설정하고 있는 내용이라 읽는 내내 어려웠어요.
누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꼬마요정 2012-02-1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어려워서 혼났더랬죠... 하지만 표현력이 너무 대단해서 열심히 읽었구요,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다 읽었더라구요... 50페이지만 지나면 흡입력 대단한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게르만이 펠릭스를 살해하는 과정이 망상이었던거에요? 왜 저는 몰랐을까요 ㅠㅠ
 

 

 

 

 

 

 

 

올해가 찰스 다윈이 사망한 지 130주년이 된다. 때맞춰 EBS에서는 최재천 교수가 진화론에 관한 특별기획 강의가 방송되고 있다. 요즘 재미있게 보는 교양 관련 프로그램이다. 이 강연 덕분에 요즘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작년에 '자음과 모음'이라는 출판사에서 주최한 리뷰대회를 통해 책 상품을 받게 되었는데 '교양과학 오디세이'(전 12권)라는 과학 관련 시리즈물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뇌 과학, 양자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태학 등 과학의 모든 분야를 소개하고 있는 입문서 시리즈이다. 물론 진화론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진화론 입문'이라는 부제를 단 두 번째 시리즈인 <앵무조개와 사피엔스>이다. 기본 입문서답게 분량도 얇은데다 부록으로 진화론과 관련하여 더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과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용어를 정리했다. (이 시리즈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라면 부록에 소개된 더 읽어야 할 책들이 대부분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원서라는 점이다)

 

이 책과 더불어 읽고 있는 것이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김영사)이다. 예전에 과학 도서를 즐겨 읽으시던 알라딘 서재 이웃께서 추천하게 되어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한 이웃은 진화론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하셨다.

 

이 책으로 진화론에 입문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버거울 수도 있지만 진화론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들을 토론식으로 소개되고 있어서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문 중간에 학자들이 쓴 책들도 소해하고 있어서 참고, 보충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2002년 5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식당에 내로라하는 진화론의 대가들이 양편으로 갈라 앉았다.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J. 굴드를 대표로 시작해서 도킨스 편에는 스티븐 핑커, 에드워드 윌슨, 에른스트 마이어 등이, 굴드 편에는 리처드 르원틴 그리고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까지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다윈의 후예를 자처한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보충했다. 그 외에는 진화심리학, 유전학, 발생학 등 각자의 텃밭도 다양하고, 견해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도킨스와 굴드는 '진화 무림의 양대 고수'로 서로 숙적이다. 이들이 일주일 동안 진화론의 쟁점들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데 역사적인 토론의 시작을 여는 첫 번째 주제가 너무 세다. 강간을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상이한 관점을 지닌 진화론자들이 열띤 토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진화론은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을 옹호하는 적응주의자와 이와 반대로 그것을 부정하는 반적응주의자로 갈려져 있다. 책 속에 소개된 토론을 펼치게 될 진화론자들 역시 '적응주의자 대 반적응주의자'로 대립하고 있다. 토론에 참여한 인사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적응주의자: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에드워드 윌슨, 에른스트 마이어 등

 

 

반적응주의자: 스티븐 J. 굴드, 리처드 르원틴, 데이빗 슬론 윌슨, 데이비드 라우프,

                    노엄 촘스키 등

 

 

 

이런 역사적인 토론을 이 책의 저자가 서기로 참관하게 되어 그 것을 토대로 기록했다는데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도 생생하게 서술되어져 있다.진화론 입문서치곤 픽션을 가미한 재미있는 내용의 책이다.

 

이 책 안에 소개된 진화론에 관한 또 다른 책들을 한 권씩 한 권씩 읽어봐야겠다. 덕분에 3년 전에 구입해 놓고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구판이지만... 이 참에 개정판도 구입해야 되나...?

 

 


1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다윈의 식탁-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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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래 1
찰스 다윈 지음, 김관선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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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래 2
찰스 다윈 지음, 김관선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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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7월 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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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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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김화영 역, 민음사, pp 132~132 -

 

 

 

 

 독서는 많이 하면 할수록 위험하다?

 

2010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기준에 의한 대한민국 만 10세 이상 남녀의 연평균 독서량은 약 10.8권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민 절반 이상이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터넷 창만 띄우기만 하면 손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고,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엔 책보다 흥미로운 TV나 태블릿 PC 등 각종 편리한 기기가 널려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독서의 일상화가 자리잡지 않았다. 급속한 정보기기의 발달로 인해서 종이책의 위력이 밀려나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그러한 급속도로 빨라지는 환경 변화에 좇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다. 망중한의 시간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보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책 안 읽는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실태 결과에 대해서 혹자는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서 못 읽는다고 한다. 졸속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즐겨 읽는 애독가들도 읽을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반면에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니까. 책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나 책을 여러 권 읽는 사람이나 인생은 짧고 시간은 많지가 않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지만 우리보다 책을 읽는 게 일상인 유럽에서는 수백년 전만 해도 책을 많이 읽는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특히 근대로 넘어오던 시절의 유럽에서는 독서를 만병의 근원인양 비판했으며 '다독'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여자가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였다. 책을 읽으면 갖가지 병에 걸릴 수도 있으며 심지어 여자로서의 기능을 잃을 수 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더군다나 이러한 주장들이 그 시대에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던 계몽주의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 읽는 여자를 어떻게 봤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책을 읽은 여자'를 위험 인물로 간주했다.

 

그러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들은 책을 읽었다. 자신들의 책 읽는 행위에 남편들의 핀잔과 불만을 피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침실에서 책을 보았고, 하녀들은 해야 할 일도 미룬 채 책을 읽는 주인 어깨 너머 몰래 훔쳐 보기도 했다. 열심히 가사 일을 해야하고 사회적 신분이 미천한 하녀마저도 책 읽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원조, 책 읽는 여자들

 

당시 유럽은 오랫동안 전해내려온 기독교적 사상을 중요시하는 철저한 엘리트 사회였다. 여기서 말하는 엘리트는 읽고, 문자를 쓸 줄 아는 지식인들, 즉 소수의 남성들이었다. 사회를 지배하던 소수의 남성들은 남성을 위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었던 소수의 종교인들이 자신들만의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기독교적 교리를 강조했듯이 엘리트들도 여자들을 남성의 권력에 따라야 하는 이류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한 것이다.

 

여자에게 독서란 쓸데없는 세계를 꿈꾸게 하고, 가사와 육아라는 신성한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사회는 책 읽는 여자들을 의도적으로 비방했다. 책을 읽지 말 것과 책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가져올 위험한 결과를 여성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하나의 도덕적 교훈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여자들은 어떻게든지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들은 독서 행위를 포기한다는 것이 사회 속에서 '나'라는 주체성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자들이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되고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갖게 된다.

 

결국 엘리트들의 우려처럼 여자들은 결국 위험해진다. 책을 읽는 그녀들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참여할 줄 아는 주체자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들은 직접 글을 '쓰기'까지 했다. 문화와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화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하는 방법까지 터득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남성 엘리트들은 못마땅게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책 읽는 여자들이야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인 셈이다.

 

그러나 독서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고 해서 독서의 역사가 그렇게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독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류층 인사들이나 지식인들에게는 '지적 유흥'이었다. 독서 행위에 대한 인식은 당시 사회적인 관념에 의해서 그대로 반영되었고 자주 변화되었을 뿐이었다. 단지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독서를 쓸데없는 시간낭비, 체력 소모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기가 더 많았던 여자들에게 책을 읽는 일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지 않다

 

독서의 역사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적 연대는 뚜렷하지 않다. 책 속에 실린 '책 읽는 여자'들이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책과 독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시대별로 알 수 있다. 그림을 통하여 당시의 책과 관련된 사회의 흐름, 독서의 역사, 책 읽는 여자들의 역사를 보는 방식이 흥미진진하다. '책 읽는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은 저자가 바라보는 개인적인 시선에 의해 소개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상상력으로 그림 속 여자들을 은밀히 만나고 책에 흠뻑 빠져 든 그녀들을 맘껏 훔쳐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애독가들에게는 '위험하다'라는 발칙한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 혹해 책 읽는 여자들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그것은 수백년 전에 여자들의 독서를 금기시했던 남성 엘리트들의 구시대적인 입장을 재현할 뿐이다. 책 읽는 여자를 보게 된다면 그녀의 얼굴만 보지 말 것. 그녀는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며 책을 읽는 동안 어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책 읽는 그녀에게서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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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2-08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의 주체는 권력의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을 경계했다고 하더군요.
글을 일종의 권력의 도구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ㅠ.ㅠ

제게도 책 읽는 여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요~~ㅠ.ㅠ

cyrus 2012-02-09 23: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쁘면 더욱 좋고요 ^^;;

꼬마요정 2012-02-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자의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겠죠? 그러니 활자의 발명은 우리가 먼저 했어도 구텐베르크가 인정받는 거겠구요... 안 그래도 요즘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이랑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기웃거리고 있어서 더 반가운 글이었습니다.^^ 추천 하나는 제꺼!!^^

cyrus 2012-02-09 23:01   좋아요 0 | URL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을 읽고 계시는군요? 제가 읽은 건 펭귄에서 나온
두권짜리인데 플로베르의 사실적인 문장 때문에 읽는 데 무척 벅찼던
기억이 나네요. ^^;;

양철나무꾼 2012-02-0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젠가 '책 읽는 남자는 섹쉬하다~'<---요런 페이퍼를 써서 이 동네 누군가에게 쿠사리를 먹었었는데...^^

이 책 옛날 책 개정판인가 보군요.
님의 페이퍼, 제목도 근사한걸요~^^

cyrus 2012-02-09 23:03   좋아요 0 | URL
기억나요, 사실 나무꾼님의 글이 생각나서 며칠 전에 페이퍼로
쓴 거 있었는데 막상 내용은 전혀 엉뚱한 쪽으로 쓰게 되었고
저 역시 쿠사리 먹었다는..ㅋㅋㅋ

감은빛 2012-02-0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여자는 어떤의미에서는 위험할지는 몰라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책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아내와 저는 독서취향이 좀 달라서(물론 비슷한 측면도 일부 있지만)
대개는 각각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얘기를 주로 하지요.

cyrus 2012-02-09 23: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취향도 같으면 금상첨화죠, 그런데 감은빛 사모님은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요? 거의 책 읽는 여성분들은 문학을 좋아하시던데
감은빛 사모님도 그러하실 거 같아요 ^^
 

 

 

 

 귀여운 잠도둑

 

 

1년 중 수면 시간이 적어지는 기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방학 기간일 것이다. 평소에도 수면이 많지 않은 일과를 보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방학 기간만큼은 거의 늦잠을 자고, 늦게 일어난다. 아침식사를 한 끼라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 돋을 것이라는 식습관 신조를 지키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아침식사 한 끼를 꼭 거르게 마련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제대로 한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하다. 거의 하루에 식사를 두 끼를 하는 셈이다.

 

어젯밤은 수면 부족의 최절정이었다. 책을 읽느라고 잠을 늦게 잘 때도 었었지만 어젯밤 같은 경우에는 축구 경기를 보느라고 새벽 5시까지 밤을 세우고 말았다.

 

맨체스터 Utd와 첼시와의 축구 경기가 새벽 1시에 시작했고(흥미진진한 라인업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셜록 시즌 2 세 번째 에피소드를 중간까지만 보다가 말았다) 두 팀간의 치열한 골 공방전이 펼쳐진 뒤에는 바로 한국 올림픽 대표팀과 사우디 간의 조별예선 경기를 시청했다. 후반전에 상대팀의 골로 한국 팀의 패색이 짙어져만 가고 있는 상황에 김보경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만약에 1:0으로 한국 팀이 패배했더라면 잠을 설쳐가면서도 중계를 본 의미가 없어졌을 것이다.

 

축구 중계가 끝나고 난 뒤에 바로 잠을 청하면 되는데 수면이 적은 생활 때문인지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2, 30분 남짓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아서 킬링타임으로 중간에 읽다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즘 방학 기간에 수면이 많이 부족해서 걱정하고 있는 판에 이번에 새로 장만한 LED 램프 때문에 제대로 된 수면시간을 누려보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에 반값 할인으로 판매되고 있던 것을 확인하고 바로 구입했다. LED 램프를 구입하기 전에는 10년 전에 구입한 큰 스탠드로 책을 읽곤 했다.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스탠드에 흘러나오는 불에 의지한 채 엎드려 책을 읽는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전기장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다는 것. 소파에서 느긋하게 책 읽는 것만큼 정말 편한다. 문제는 너무 오래 배를 깔고 엎드리면 소화불량 또는 허리에 무리에 갈 수도 있지만.

 

 

허리에 부담을 주는 올바른 독서 자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추운 겨울에는 전기장판에 의존해서 책 읽는게 좋다. 왜냐하면 내 방은 보일러의 열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방에 들어가면 한기로 가득하다.

 

집이 가난해서 보일러를 못 켜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내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내가 사용하는 방,여동생의 방이었지만 지금은 창고가 되다시피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방,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 그리고 커다란 거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 방을 제외하고는 보일러를 작동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 방이 다른 방에 비해 추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춥다고 해서 보일러 안 틀어주는 부모님에 대한 불만은 없다. 알록달록 수면양말 신고 이제는 황금빛이 바래버린 깔깔이(군용 방상내피)를 입는다면 그렇게 춥지 않다. 단, 불편한 것이 있다면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그리고 전기장판 위에서 엎드려 책을 읽을 때이다. 아무리 따뜻하게 무장을 하더라도 한기는 빈틈으로 치고 들어온다.

 

요네하라 마리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엎드려 책을 읽을 때가 좋아했는데 그녀 역시 아무리 이불로 꽁꽁 감싼다고 해도 책을 쥐고 있는 두 손과 얼굴 부분이 시러울 때가 불편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기를 완전히 막기 위한 자신의 발명 아이디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 역시 양손이 시러울 때가 싫다. 양손과 양발이 찬 체질이라서 공부할 때나 책 읽을 때가 양발에 수면양말이 없으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다. 문제는 양손을 한기로부터 어떻게 보호나느냐가 문제인데 장갑을 끼면 책 종이를 펴거나 펜을 쥘 때 불편하다. 손이 추워도 그냥 책을 읽는 수 밖에...

 

 

 

 

 또 한 명의 잠도둑, 플로베르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의 한 권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인데 독서 진도가 시원찮다. 내용 전개면에서는 흥미로운데 읽으면 읽을수록 속도가 더디다. 2년 전에 <감정 교육>을 읽은 적이 있었는 데 그 때도 그 두 권을 완독하느라 고생했다.

 

플로베르라 하면 객관적인 묘사를 고집하는 사실주의 소설가이다. 어떠한 장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그러한 필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밀한 관찰력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의 문장은 소설 속 인물들과 풍경을 하나하나 관찰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플로베르의 아버지가 외과의사 출신인데 의사의 아들답게 소설 속 인물인인 샤를 보바리가 당연히 의사로 설정될 수 있었고 간혹 문장 마다 과학, 의학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하고 약제사가 말했다.  "이 고장에서는 의료 행위가 별로 힘이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로 상태가 괜찮아서 이륜마차를 타고 다닐 수 있고, 대체로 농민들이 넉넉하게 살기 때문에 지불도 잘합니다. 의학상으로 말씀드리자면 장염, 기관지염, 간장염 등 보통 질병 외에 가끔 수확기에 유행하는 감기가 있습니다만 요견대 심각한 것은 별로 없고,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다수의 경부 임파선 정도입니다. 아마 이건 우리 고장 농가들의 한심스러운 위생 조건에 기인하는 것이겠지요.  (중략) 

 

하지만 기후는 사실 나쁘지 않습니다. 마을에는 아흔 살이 넘은 노인들도 몇 사람 있습니다. 온도계(내가 관측해 본 바로는)는 겨울에 사 도까지 내려가고, 한여름에는 섭씨 이십오 도나 최고 삼십 도 정도니까, 최고가 열씨(列氏) 이십사 도, 또는 (영국식 단위로 말씀드리면) 화씨 오십사 도, 그 이상은 안 올라갑니다. 사실상 한편으로는 아르괴이유 삼림이 북풍을 막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 장의 삼림이 서풍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더운 기온은 강에서 증발하는 수증기와 들판에 있는 많은 가축 때문인데, 아시다시피 이 동물은 다량의 암모니아를 발산합니다. 즉 질소, 수소, 산소(아니, 질소와 수소뿐이지요) 말입니다.  (생략)

 

 -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김화영 역, 민음사, pp 120~121 -

 

 

플로베르는 이 소설을 쓰는데만 해도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장편소설 한 권을 쓰는 데 인고의 창작이 있었으리라. 번역가 김화영 교수의 말대로 글을 쓰는 플로베르는 고뇌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짊어진 문학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에 대해서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며 반면에 싫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플로베르의 소설 한 권을 읽으면 한 문장 한 문장 끝까지 읽어내는 게 고역일테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문장을 좋아하는 편이다. 각기 다른 성격대로 좋아하는 글의 취향도 다르다고 하던데 완벽함을 추구하고 어떠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꼼꼼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써는 이제는 플로베르의 문장에 견딜 만하다. 오히려 그의 세밀한 문장을 눈으로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한 페이지씩 넘겨가고 있는 독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읽는 속도는 비록 느리지만 가끔 그의 문장은 세련되기까지 하다.

 

 

 

 

그의 소설은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한 벌의 옷과 같다. 소설 문장 부호가 하나라도 빠져 있는 것도 허용치 않았으며 수많은 퇴고를 거듭한 끝에 나온 인고의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러한 결과물 앞에서 읽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고 말한다는 것은 문학의 대가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자기 전에 <마담 보바리>를 펼쳐봐야겠다. 현재 보바리 부인은 일상 속 권태에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혼자 몸부림치고 있다. 결말은 뻔히 알지만 과연 그녀가 어떻게 스스로 파멸되어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번 주 안에 완독할 수 있을런지...  보바리 이외에도 읽을 책을 많다. 당분간은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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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2-06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 플로베르 모파상 같이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가 가득한 글이 그 나름대로 묘미가 있더군요.그리고 이들은 특정 직업에 대해 묘사할 때 정말 철저히 사전조사한 뒤에 글을 썼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정확하고 자세히 묘사하더라고요.이게 진짜 직업의식이겠죠.

cyrus 2012-02-07 19: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플로베르의 문장을 읽어나갈수록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소름이 돋기도 해요 ^^;; 어떻게 저런 문장을 완성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2-02-0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의 끊임없는 고전 탐독을 보면서
나두 그래야하는데 하는 부러움에 잠시 멈춥니다. <마담 보바리>는
읽다가 결국 때려치운거 같아요... 그런 기억이... 흐흐.

LED 램프는 이곳저곳에서 보게 되네요. 저도 갑자기 혹하기 시작한다눈~~ ^^

cyrus 2012-02-07 19:18   좋아요 0 | URL
사실적인 문장 때문인 것도 있지만 <마담 보바리>는
결말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완독하기가 쉽지 않은 소설인거 같아요.

램프가 반값할인이었을 때는 2만원 정도에 팔더군요, 그래서 냉큼 구입했어요.
혹시 또 반값할인 행사하면 꼭 구입하셔요 ^^

stella.K 2012-02-0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ED램프 좋은가?
나도 끌리긴 했는데 사용후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망설여지더군.
얼마 전 우리집 전구를 그걸로 교체해 봤는데 옛날 60촉 백열전등 쓰는 기분이
나더라구. 근데 이게 전기를 엄청 덜 먹는 거라는데 진화가 좀 필요한 것 같아.
내가 하루의 마감을 TV를 보다가 자는 것도 책 보다 자려면 일어나서 불 끄는 게
싫어서였는데 이것에 대한 유혹이 참 만만치 않더군.

우리가 왜 고전을 읽기 싫어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글을 쓰는 옛날 작가에 질려서인 것 같더라구.
요즘 작가들은 점프를 잘 해서 빨리 읽을 수 있잖아.
현대를 배경으로 해서 이해도 쉽고. 별 씹을만한 내용도 없구.
나도 어제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는데
열흘 동안 매일 50페이지는 읽어줘야 마치겠더라구.
근데 이 50페이지 읽는데 왤케 진도가 안 나가던지.
2시간쯤 걸리더라구. 어려운 것도 없으면서. 완전 끝장이다 싶어.ㅠ

근데 저 이태리 장인 그림 좋다. 저 그림 나 주라!ㅋㅋ

cyrus 2012-02-07 19:23   좋아요 0 | URL
자기 전에 램프 불빛에 책을 읽으면요, 간단하게 버튼만 누르면
되요 ^^ 그래서 불을 켠 채 자는 일이 없어요 ㅎㅎ

저는 <폭풍의 언덕>도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시간이 남아돌 때
안 읽어둔 게 후회가 되요, 사실 저도 보바리를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으려고 하는 편인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1시간 반 정도 걸려요.
절대로 1시간 안에 못 읽게 되더라고요. ^^;;

그리고 저 그림은 한창 시크릿가든 드라마가 뜨고 있을 때
현빈이 입었던 이태리 장인 수제 트레이닝복을 패러디한 그림이에요.
ㅋㅋㅋ

stella.K 2012-02-08 13:24   좋아요 0 | URL
아, 그래서 이 기회에 네가 예전에 내게 선물한
<제인에어>를 조만간 이어서 읽어보려고 해.
나 참 게으르지? 아, 부끄.ㅠ
솔직히 말하면 <폭풍의 언덕> 협찬 받은 건데 그 조건으로
받은 거거든. 안 그러면 '제인에어'를 언제 읽을지 몰라.>.<;;
3월 안으로 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될지 모르겠어.
암튼 어느 날 <제인에어>의 리뷰가 올라오거든 추천 좀 해라.
하긴, 너 학기 중에 여기 잘 안 들어오고, 소설에 대한 리뷰가
약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쑥스럽긴 하다.ㅋㅋ

근데 100페이지를 1시간 반만에 읽는다니
폭풍 독선데?! 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