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광들
옥타브 위잔 지음, 알베르 로비다 그림, 강주헌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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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백 권의 책들이 나오는 이 세상에 당신이 그 정도의 책만 가지고 있다면 ‘애서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애서가에게 책은 소중한 대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애지중지 대하듯이 읽고 간직해야 한다. ‘책을 사랑하는 것’은 책 내용이나 책 읽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애서가와 애서광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둘 다 책에 과도하게 빠져 있다는 건 같지만, 이 두 단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보통 애서가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책이나 작가를 보고 선택한다. 애서광은 그러한 목적이 없으며 구하기 힘든 희귀한 책들을 찾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저자 친필 사인이 있는 책이나 한정판, 초판본 등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말한다. 또한 애서가는 자신이 좋다고 보는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하지만, 애서광은 책을 개인 수집품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려 들지 않는다.

 

《애서광들》은 책을 너무 사랑해서 황당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집이다. 총 열한 편의 단편소설이 채워져 있다. 이 소설집을 쓴 프랑스 출신의 작가 옥타브 위잔(Octave Uzanne)도 애서가이다. 그는 사드 후작(Marquis de Sade)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등 작가들의 미발표 작품을 발굴해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책을 사랑하고 모으는 것 자체도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의미 있는 문화 활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애서가가 묘사하는 애서광들은 ‘책의 노예’가 되거나 ‘책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애서광들》에 나오는 여러 인물 중에 애서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뮤즈 연감, 1789년』의 화자이다. 뮤즈 연감은 프랑스 18세기 중반부터 매년 발행된 시 전문 잡지다. 헌책방에 자주 드나드는 화자는 1789년 판 뮤즈 연감을 사들인다. 그는 이 책을 읽다가 그 안에 끼워져 있는 조그마한 종이봉투를 발견한다. 그 봉투 안에 1789년 판 뮤즈 연감의 전 주인 이름으로 추정되는 머리글자가 적혀 있다. 화자는 이 책의 주인이었던 18세기 인물이 누군지 조사하게 되고, 그와 결혼한 여인의 정체까지 밝혀낸다. 두 사람은 불행하게도 1789년 프랑스혁명에 휘말려 생이별을 한 연인이었다.

 

『시지스몽의 유산』은 《애서광들》 완역본이 나오기 전에 이미 두 차례나 번역된 적이 있는 단편[주1]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애서가인 에드몽 드 공쿠르(Edmond de Goncourt)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모은 수많은 책을 경매장에 보내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는 다른 애서가들이 자신의 책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시지스몽은 무덤 안에 가지고 가지 못할 책들이 경쟁자인 애서가들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고, 자신의 사촌 엘레오노르에게 넘겨준다. 엘레오노르는 거대한 저택에 보관된 책들을 관리하는 주인이 된 것이다. 시지스몽이 살아있었을 때 그의 장서를 호시탐탐 노리던 경쟁자 중에 라울 기유마르로 포함되어 있다. 기유마르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파리의 유명한 애서광이다. 그는 시지스몽의 유산인 책들을 어떻게든 손에 넣기 위해 엘레오노르에 찾아가 애걸복걸한다. 기유마르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엘레오노르 앞에서 사정하는 모습은 ‘책에 빠진 바보’다운 면모이다. 엘레오노르는 책에 전혀 관심이 없고, 애서가들을 업신여기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책을 싫어하는 악녀’‘늙고 못생긴 마녀’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시지스몽은 엘레오노르와 같은 여자를 ‘음란한 욕망을 가진 하와(Ḥawwāh: 아담의 아내)의 판본’이라고 무시한다.

 

 

 

[기유마르의 대리인] “이게 시지스몽 씨의 유언장 사본입니다. 나의 사촌 엘레오노르 스테파니 퓔셰리 시지스몽 양에게 이것 등등을 유증한다.”

 

[기유마르] “결혼하면 그 책들이 내 재산이 되니까, 엘레오노르 시지스몽 양과 결혼하는 겁니다!”

 

[기유마르의 대리인] “엘레오노르 시지스몽 양의 나이가 지금 58세입니다.”

 

[기유마르] “당신은 내가 성욕이나 풀려고 결혼을 계획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겁니까? 비난받아 마땅한 색욕! 육체를 탐하는 욕정! 음란한 욕망! …‥쳇! 여자라는 게 무엇입니까? 하와의 한 판본에 불과합니다.”

 

[기유마르의 대리인] “퐁투아즈행 기차가 몇 시에 있습니까? 당장 달려가서 내가 청혼한다고 알려주십시오.”

 

[기유마르의 대리인] “안 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또 내가 엘레오노르를 봤습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빼빼 마른 노파였습니다. 대패로 제대로 다듬지 않은 낡은 나무판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기유마르] “당장 출발하세요! 서둘러주세요!”

 

[기유마르의 대리인] “세월의 풍파에 쭈글쭈글해진 사과처럼 주름투성이였다고요! 괴물이 따로 없었습니다!”

 

[기유마르] “아 참, 그만하십시오!”

 

[기유마르의 대리인] “머리칼도 없어 가발을 썼고, 이빨도 다 빠져 틀니를 했습니다. 코도 매부리코였고, 뺨에 박힌 세 개의 사마귀에는 뻣뻣한 털들이 돋아 있더라고요…‥.”

 

 

(『시지스몽의 유산』, 55~57쪽)

 

 

 

18~19세기 남성들이 보기에 ‘책 읽는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들로 보였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남성들의 손가락질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펼쳤으며 빠른 속도로 책 속에서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똑똑한 여자를 두려워한 남자들 그리고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는 여자들이 애서가가 될 수 있는 사회적 · 경제적 여건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시지스몽의 유산』의 문제점은 ‘책 읽는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데 있다.

 

『프랑스계 일본인 무사의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 유행하던 자포니슴(japonisme)[주2]이 반영된 소설이다. 라리브는 일본 서적을 수집하는 애서광이다. 일본에 푹 빠진 그는 프랑스 문화 및 예술이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프랑스인의 후손으로 알려진 오가타 리쓰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시지스몽의 유산』 다음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든 이야기다. 서양의 입장에서 동양을 제멋대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리브는 한 남자의 팔을 잡고 우리 쪽으로 잡아당겼다. 거스무레한 얼굴빛, 짧게 기른 검은 콧수염, 귀의 위쪽으로 당겨진 날카로운 눈…‥.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완전한 일본인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피부색이 노랗고, 체구가 작은 사람들, 유럽식 옷을 입은 원숭이를 닮은 사람들, 유럽 대도시의 일본인 시장에서 흔히 보던 사람들과 약간 달랐다.

 

 

(『프랑스계 일본인 무사의 이야기』, 113쪽)

 

 

『프랑스계 일본인 무사의 이야기』는 ‘긍정적(positive) 오리엔탈리즘’‘부정적(negative) 오리엔탈리즘'의 사례를 동시에 제공한다.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를 낀 유럽인들은 동양 문화를 서양 문화의 대안으로 인식하면서 과도하게 찬양한다. 앞서 언급한 자포니슴은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의 한 축으로, 일본을 미지의 세계 혹은 신비의 대상으로 본다. 반면 부정적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를 끼게 되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 달라진다.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동양인은 야만적(“원숭이를 닮은 사람들”)이고, 열등한 외모(“귀의 위쪽으로 당겨진 날카로운 눈”)를 가진 존재이다.

 

『나폴레옹 1세의 수첩』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전시 중에 들고 다니던 수첩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책의 종말』종이책이 사라진 미래의 모습을 그린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 언급되는 ‘스토리그라프(storygraphe)’는 저자의 목소리로 채워진 책이다. 미래의 독자는 이것을 언제든지 휴대하면서 들을 수 있다. 오늘날의 오디오북과 거의 비슷하다. 소설에 묘사된 종이책이 사라지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19세기 유럽 애서가들의 모습, 그리고 종이책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책이 등장할 거로 예언하는 화자의 주장은 현실이 되었다. 『책의 종말』은 쥘 베른(Jules Verne)이 썼다고 하면 속아 넘어가서 믿을 정도로 책이 진화되는 현실과 가능성을 정확하게 반영한 공상 소설이다.

 

‘책은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놓는다’라는 말이 있다. 책 읽기가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애서광들에게 적용한다면 그 의미는 180도 달라진다. 책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애서가는 애서광으로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에 중독되고 ‘책의 노예’가 된 채 살아가게 된다. 애서가라고 생각하는 나는 《애서광들》을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도 언젠가는 ‘책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1] 《애서광 이야기》(범우사, 2004), 《애서 잔혹 이야기》(이모션북스, 2017)에 수록되어 있다.

 

[주2] 자포니슴은 프랑스어 발음이며 영어로 발음하면 ‘자포니즘(Japonis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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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8 16:59   좋아요 1 | URL
일하면서 돈을 벌면 그나마 책 살 형편은 될 줄 알았는데, 역시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ㅎㅎㅎㅎ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하니 책을 많이 사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게 됩니다. 저비용으로 고효율 책을 사는 소비 방식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

레삭매냐 2019-01-24 17: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우리는 이미 책 읽는 노예
가 아닐까요 ㅋㅋㅋ

책 읽는 여성의 이야기에서는 선구적
페미니즘의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애서광보다는 애서가이고 싶으나,
현실계에서는 전자로 기우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사고 또 한편으로는 팔아
치우는 역설적 인간의 모습이 바로
저네요.

cyrus 2019-01-28 17:0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책의 노예를 증명해주는 문서는 영수증인가요? ㅎㅎㅎㅎ
저도 가끔 필요한 책을 사고 싶으면, 가지고 있는 책을 팔 때가 있어요. ^^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 편집자는 후회한다 외 38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3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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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로버츠(Russell Roberts)가 쓴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애덤 스미스(Adam Smith)《도덕 감정론》을 알기 쉽게 풀어서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을 통해서 말한 행복, 이타심, 정의 등의 개념을 설명하고, 이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진부한 말이지만, 로버츠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좋은 작가가 쓴 책들을 읽으라고 권한다. 당연하게도 그는 애덤 스미스의 책을 추천한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럼 자세를 낮춰 아이와 대화해보자. 이메일을 확인하지 말고 배우자와 기분 좋게 데이트를 즐기자. 애덤 스미스 혹은 작가 제인 오스틴이나 P. G. 우드하우스의 책을 더 많이 읽자.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277쪽)

 

 

P. G. 우드하우스는 누구인가?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는 우드하우스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다. 숲에 있는 집, 아니면 재목을 보관하는 창고(Woodhouse)? 독특한 성(姓)이다. 여행지 숙박 시설 이름을 연상케 한다. P. G. 우드하우스는 아마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전체 이름은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Pelham Grenville Wodehouse)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난 작가다. 그가 주로 쓴 글은 통속적인 코미디 소설이다. 그가 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지브스와 우스터(Jeeves and Wooster)’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TV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은 우드하우스의 대표작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우드하우스는 ‘드론스 클럽(Drones Club)’ 시리즈, ‘유크리지(Ukridge)’ 시리즈 등을 연이어 발표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다작 작가로도 유명한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백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과 수십 편의 희곡 작품을 썼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 선집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를 포함한 총 3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나온 ‘현대문학 세계 단편 단편선’ 시리즈 중에 쪽수가 가장 많은 책이다. 놀라지 마시라. 1천 쪽이 넘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분량이 가장 많은 단편 선집은 총 964쪽의 《그레이엄 그린》이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를 직접 보면 정말 놀랄 거다. 말 그대로 ‘벽돌 책’이다. 이 책을 한 손에 들면 무게감이 조금 느껴진다.

 

『지브스와 우스터』는 덜렁이 귀족 버티 우스터(Bertie Wooster)와 그의 집사 지브스를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소설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이 작품에 묘사된 우스터의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호구(虎口)이다.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해서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스터는 일을 어설프게 처리해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집사 지브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위기 때마다 전적으로 그에게 의존하고, 그는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게다가 내 친구들이 어느 모로 보나 궁지에 빠졌을 때도 언제나 지브스가 나서 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지브스와 하드보일드 공작』, 69쪽)

 

 

『지브스와 우스터』의 묘미는 귀족 주인과 집사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상하 관계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점이다. 지브스는 주인을 돕는 조언자 역할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이다. 우스터는 서브 주인공(deuteragonist)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복잡하게 꼬여버린 사건에 휘말린 우스터와 그 주변 인물들은 지브스가 알려준 대로 행동한다.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지브스는 조언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조종자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우스터지만, 그는 지브스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이러한 역전된 관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우스꽝스러운 귀족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면서 귀족 사회를 풍자하는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우드하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귀족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순진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종종 위선적인 태도와 속물근성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어설퍼 보인다. 그래서 우드하우스의 작품에서 묘사된 인물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인물, 즉 ‘소설에 나올 법한 가공인물’이다. 개그와 코미디가 유발하는 웃음이 일회성이다. 코미디는 한번 물리고 나면 다시 통하지 않는다. 코미디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때 큰 사랑을 받았던 재미난 이야기나 우스꽝스러운 작중 인물이라 할지라도 유통기한이 지나고 나면 독자들의 반응은 냉랭해질 수밖에 없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에 실린 작품들은 1910~30년대에 나온 이야기이다. 지금은 이미 우드하우스가 보여준 웃음의 수명이 다 한 지 오래다. 게다가 우리나라 독자들은 너무나도 오래된 ‘영국식 유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드하우스의 소설을 처음 접해보거나 영국식 유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분간이 잘 가지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우드하우스의 『지브스와 우스터』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인 나로서는 역자와 출판사(현대문학)가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해줘서 고맙긴 하지만("고마워요, 현대문학 출판사"[주]), 역자가 작품의 코믹한 분위기를 살리지 못해서 아쉽다. 내가 보기엔 문학 작품의 구절을 인용해서 재미있게 표현했거나 언어유희로 추정되는 몇 개의 문장이 보이던데, 그걸 주석을 달아 설명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벽돌 책’을 읽는 건 독자 당신의 몫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39편의 소설 중에 재미있다고 느낄 법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지루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절반쯤 읽다가 재미없어서 덮었다. 혹시 당신이 이 소설에 호기심을 느껴서 읽게 된다면 이 소설의 유머 코드가 당신의 취향에 맞길 바란다.

 

 

 

[주]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단편집이 1934년에 발표한 <고마워, 지브스(Thank You, Jeev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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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9-01-1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1000페이지... 그러나 이 글을 읽으니 읽고 싶다는 전투본능이 갑자기 생기네요 ㅋㅋㅋ

cyrus 2019-01-19 06:54   좋아요 0 | URL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라서 지루할 수도 있다고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돌이다 근데 벽돌을 사지 않고 빌려서 읽는 시루스님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cyrus 2019-01-19 06:58   좋아요 0 | URL
가격이 좀 비싼 ‘벽돌 책’을 사는 독자가 더 대단해요. 저는 새로 나온 ‘벽돌 책’을 사본 일이 거의 없어요. 알라딘 서점이나 헌책방에 파는 ‘벽돌 책’은 정가보다 조금 싸기 때문에 저는 주로 그런 책들을 사는 편입니다. ^^

목나무 2019-01-1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엄 그린도 읽다 중도포기 상태인데 ㅡ.ㅡ
벽돌책이라하니 헉하면서도 땡기는 이 마음은 뭘까나요. ㅋㅋ

cyrus 2019-01-19 07:04   좋아요 0 | URL
책이 상당히 두꺼워서 읽기가 조금 불편했어요. ^^;;

stella.K 2019-01-1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까 동서문화사 책들 생각난다.
저런 책이 두 권인 경우가 많잖아.
그래도 이건 단편모음이지 동서문화사 책들은 장편이야.
<장 크리스토프 1> 읽다가 일단 덮어둔 상태다.
그래도 장편이나 저런 두꺼운 책에 대한 로망이 있어.
난 가끔 펄벅의 <대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그것도 장왕록 박사가 번역한 거. 웃기지?
결국 덮어버릴 거면서.ㅋ

cyrus 2019-01-19 07:06   좋아요 0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두꺼운 책을 한 번 보고 싶은 호기심과 도전의식... ㅎㅎㅎㅎ

syo 2019-01-1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겔> 생각이 나는군요... 1000쪽....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던데요.

cyrus 2019-01-19 07: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쓰는 것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줘야 해요. 책의 중간까지 쓰다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마무리 못 짓고 중단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특히 작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책을 완성되지 못한 경우는 정말 불행한 일이죠... ^^;;

보슬비 2019-01-18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에는 벽돌책만 보면 소장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소장보다는 읽기 편한쪽으로 성향이 바뀌어서 다행인것 같아요. 이제 넘 두꺼우면 손목 아파요.....하지만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단편집들은 소장하고 싶긴해요.^^

cyrus 2019-01-19 07:11   좋아요 1 | URL
이번에 나온 <우드하우스>는 무게감이 느껴져서 들고 다니면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어요. ^^;;

2019-01-19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9 07:12   좋아요 0 | URL
책 읽다가 잠이 오면 바로 베개로 써도 됩니다.. ㅎㅎㅎㅎ

Falstaff 2019-03-1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통기간이 지난 유머, 그것도 영국식 유머라는 말씀, 백퍼 공감입니다.
저 역시 이 이유 때문에 구입을 안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이제 생각에 말뚝 박았습니다. ^^;

cyrus 2019-03-15 16:36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고 말할 수 없는 소설이라서 당분간은 이 책을 다시 읽을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 - 21세기 포스트 휴먼을 위한
이규명 지음 / 동인(이성모)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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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문학 비평은 여성의 시각으로 남성 중심의 문학사를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비평은 서구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분석 방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페미니즘 비평은 문학작품 속에 여성을 왜곡하는 이미지를 바로잡는 여성 이미지 비평, 남성 작가들이 주도한 문학사에서 소외된 여성 작가와 작품을 복원하는 일을 포함해 다양한 영역이 있다. 초기 페미니즘 비평은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이 겪는 ‘차별’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남성에게는 죄의식을, 여성에게는 분노를 강요하는 초기 페미니즘 비평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이를 극복하는 포스트 페미니즘 비평이 등장한다. 포스트 페미니즘 비평은 새로운 피를 수혈 받으면서 변화해왔다. 그것은 탈식민주의, 생태주의 같은 시대사조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 이론을 구성하고 있다. 페미니즘 비평의 유형이 다양해지는 까닭은 여성 문제의 이슈가 시대에 따라 변하고, 하나의 이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21세기 포스트 휴먼을 위한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은 20명의 영미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초기 페미니즘 사상에서부터 포스트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 사상 및 비평의 모든 것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이다. 책의 제목만 보면 영미 시작품과 영미 페미니즘 이론을 다룬 책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저자는 영미 여성 시인이 쓴 작품과 우리나라 여성 시인의 작품을 같이 읽으면서 비교하여 분석한다. 이 책에 나오는 ‘포스트 휴먼’은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양성평등(남성과 여성으로 나뉘는 젠더 이분법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을 지향하는 인간이다. 저자는 페미니즘 비평이 남성중심주의를 반성하게 만드는 도구로 보고 있으면서도 여성 고유의 경험에만 주목하는 여성 중심 비평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내비친다. 그는 또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여성 비평가가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페미니즘 비평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선 여성이 남성을 탄압하는 역전 현상으로 본다. 페미니즘 비평을 바라보는 저자의 반응은 상당히 온건하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페미니즘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페미니즘 사상과 문학 이론들을 아는 대로 쭉 나열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서문에 저자가 페미니즘에 무지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문장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편향의 여성상위의 이념 아니라 남성중심의 환경 개선을 위한 혹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면역력 증강을 위한 아울러 남성중심주의를 반성케 하는 일시적인 증상으로 나타내는 것이 좋겠다.

 

 

과연 저자는 페미니즘을 잘 몰라서 생각 없이 ‘증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일까. 페미니즘을 ‘일시적 증상’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은 과거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페미니스트들을 ‘제정신이 아닌 사람’, ‘히스테리 부리는 여자’라고 조롱하던 반페미니스트들의 태도와 유사하다.

 

그리고 저자는 동양사상이 ‘남녀 조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학문이라고 말하면서, 동양적인 관점에서 페미니즘은 ‘일종의 열등의식이자 피해 의식’이라고 정의 내린다. 음양오행설에 비추어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는 건 좋으나 페미니즘을 동양사상과 비교하면서 깎아내리는 입장은 눈에 거슬린다.

 

이 책은 서구에서 수입된 어려운 이론에 치우친 채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있어서 독자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다. 저자는 현란한 언어로 무장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경도돼 텍스트를 분석하는 방편으로 프로이트(Freud), 라캉(Lacan), 들뢰즈(Deleuze), 데리다(Derrida)등의 이론을 끌어들인다. 심지어 저자는 라캉을 ‘페미니스트의 대부(代父)’라고 소개한다[주]. 라캉이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건 사실이나 그가 페미니스트들을 보호해주는 후견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의 대부’라는 표현에는 학문 세계 안에 서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체적인 위치를 한 단계 낮춰 보는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책의 편집 방식이 엉망이다. 영문 텍스트의 문장 일부를 번역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가져와 주석으로 달아놓은 저자의 태도는 불친절하다. 그래서 이 책은 영문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 아닌 이상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89쪽에 미국의 소설가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를 여성 작가로 잘못 소개한 내용이 있으며, 176쪽에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명작과 동일한 이름의 잡지사 「허영의 시장(Vanity Fair)」”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 또한 잘못된 내용이다. 《허영의 시장》은 영국의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William Thackeray)가 쓴 작품이다. 저자가 하디의 소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문학과지성사)과 새커리의 작품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에 공통으로 들어간 ‘시장’은 서로 다른 의미다.

 

페미니즘 비평은 남성 작가가 쓴 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부정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그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이야기에 가려진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남성 작가와 비평가들은 이제 높은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턱없이 부풀려진 자만심도 걸러져야 한다. 현란한 수사로 여성을 타자로 묘사하지 말라. 비평하는 감시자가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들로 채워져 있어도 그 문학은 썩어빠진 것이다. 페미니즘 비평이 없는 문단에 어찌 창작의 긴장감이 흐르겠는가? 페미니즘 비평이 없으면 문학이 썩어 죽는다.

 

 

 

 

[주] 『울스톤크레프트 & 핀치』,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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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공통점은? 첫 번째, 미국 출신이다. 엘리엇은 미국 중부에 있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고, 샐린저는 뉴옥에서 태어났다. 엘리엇의 아버지는 벽돌 회사 사장이었는데 191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1월 1일에 샐린저가 태어났다. 젊은 시절 엘리엇은 미국과 유럽(영국, 프랑스)을 왕래하면서 활동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영국에 지내게 된다. 그는 타지에서 첫 번째 아내 비비안 헤이우드(Vivien Heigh-Wood)를 만나 결혼하고, 은행에 일하면서 시를 쓰게 된다. 엘리엇 집안은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교파인 유니테리언(Unitarian)이었다. 영국 생활에 익숙해진 엘리엇은 1927년에 영국 성공회로 개종하고, 영국 시민권을 얻는다.

 

 

 

 

 

 

 

 

 

 

 

 

 

 

 

 

 

 

 

* [절판] 케니스 슬라웬스키 《샐린저 평전》 (민음사, 2014)

* 심상욱 《J. D. 샐린저 생애와 작품》 (동인, 2011)

* 김성곤 《J. 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살림, 2005)

 

 

 

 

 

 

 

 

 

 

 

 

 

 

 

 

 

 

 

 

 

 

 

 

 

 

 

 

 

 

 

 

 

 

 

 

 

 

 

 

 

 

 

* T. S. 엘리엇 《황무지》 (민음사, 2017)

* [절판] T. S. 엘리엇, 김천봉 엮음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이담북스, 2014)

* [e-Book] T. S. 엘리엇, 김천봉 엮음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 T.S. 엘리엇 시선 1》 (글과글사이, 2017)

* [e-Book] T. S. 엘리엇, 김천봉 엮음 《황무지: T.S. 엘리엇 시선 2》 (글과글사이, 2017)

* 최희섭 《엘리엇의 전기 시와 동양사상》 (한빛문화, 2017)

* [품절] 한국T.S.엘리엇학회 《T. S. 엘리엇 시》 (동인, 2006)

 

 

 

 

두 번째, 동양사상에 심취했다. 엘리엇은 1914년 하버드대학원에서 인도철학과 산스크리트어(梵語)를 공부했다. 그의 대표작 『황무지』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자연과 인간성이 파괴된 근대 문명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시다. 엘리엇은 『황무지』 1부에 얼어붙은 땅을 뚫고 새싹이 돋아나는 4월을 역설적으로 고통의 달로 묘사했다. 이게 그 유명한 구절,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로 시작되는 1부의 도입부다. 이 구절은 탄생 속에 죽음이 있고, 그 죽음 속에 새 생명이 잉태한다는 불교의 윤회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샐린저는 선불교에 심취했다. 그는 1940년대 말에 미국선불교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선불교는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미국 청년층을 매료시키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 시기 미국 청년층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여 자유를 추구했는데, 이들을 가리켜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라고 불린다. 당시 미국은 전후 세계에서 전례 없는 정치적 주도권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의 영혼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은 답답했고 미래는 암울했다. 인간이 만든 원자폭탄 앞에서 이성이, 또는 미래의 희망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눈앞에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 [절판] 로버트 그리피스 《마녀사냥: 매카시/매카시즘》 (백산서당, 1997)

 

 

 

여기에 공산주의자 색출에 혈안이 된 매카시즘(McCarthyism)이 몰아치면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미국인의 영혼은 힘없이 무너졌다. 낡은 기성 질서 기반에 균열이 커지면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려는 비트 세대는 전통적인 미국 문화를 강력히 거부하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의 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비트 세대 사이에서 선불교는 미국 전역에 광범위한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명상을 통해 일종의 궁극적인 황홀경을 느끼려고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선불교는 종종 왜곡되어 전해졌으며 실제 수행은 매우 드물었다. 미국인들은 현실의 고뇌와 문제를 잊게 만드는 동양의 신비에 이끌렸을 뿐 힘든 수행을 실천하려는 의지는 거의 없었다.

 

 

 

 

 

 

 

 

 

 

 

 

 

 

 

 

 

 

* J. D. 샐린저 《아홉 가지 이야기》 (문학동네, 2004)

* J. D. 샐린저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문학동네, 2004)

* J. D. 샐린저 《프래니와 주이》 (문학동네, 2015)

 

 

 

샐린저는 선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1945년부터 1965년까지 총 36편의 중 · 단편소설을 썼다. 1945년 이전에 쓴 습작기의 작품들은 동양사상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데, 샐린저는 그 작품들이 존재해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은 샐린저의 작품으로는 1948년 「바나나피쉬를 위한 완전한 하루」를 시작으로 1965년 「하프워스 16일, 1924년」으로 마무리되는 ‘글라스 가(Glass family) 이야기’ 총 7편과 그의 유일한 장편 《호밀밭의 파수꾼》 등이 있다. ‘글라스 가 이야기’로 분류되는 작품명과 이를 수록한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일곱 편의 ‘글라스 가 이야기’를 발표연도 순으로 살펴보면 주요 인물인 시모어 글라스(Seymore Glass)의 모습은 중년기에서 어린 시절로 역행하면서 묘사되어 있다. 일곱 편의 ‘글라스 가 이야기’는 시모어 글라스가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년의 시모어 글라스가 등장하는 「바나나피쉬를 위한 완전한 하루」에 엘리엇의 『황무지』 1부 도입부에 있는 구절을 인용한 문장이 나온다.

 

 

 

“어떻게 그 이름이 튀어나올 수 있었는가?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면서.”

 

(최승자 옮김, 「바나나피쉬를 위한 완전한 하루」, 31쪽)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 길러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둔한 뿌리 일깨운다.

 

 

(김천봉 옮김, 『황무지』 1부 「사자들의 매장」, 143쪽)

 

 

 

어떻게 엘리엇의 시구가 샐린저의 소설에 튀어나올 수 있었을까? 엘리엇과 샐린저, 이 두 사람의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전후 세계 이후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와 그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피폐한 모습)와 그들에게 영향을 준 동양사상을 생각해보면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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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1-15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무지>는 길어서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는 못하는데, 첫 부분은 많이 들어서 그런지 조금 더 금방 알아보게 됩니다. 유명한 작품이지만 단행본으로 나온 책이 없어서 조금 이상했는데, 작년인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어서 새로 읽었던 것 같아요.

cyrus 2019-01-15 20:19   좋아요 1 | URL
<황무지> 번역본이 두 권 있었는데, 지금은 민음사 한 권만 남았어요. 절판된 번역본은 전자책으로 다시 나왔어요. ‘황무지’라는 시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시의 유명한 첫 문장만 알려졌지요. ^^
 
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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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는 사실 알고 보면 잔혹하고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 형제(Jakob Grimm, Wilhelm Grimm)헨젤과 그레텔은 굶주림에 지친 부모가 자녀를 숲속에 갖다 버린, 당시 유럽에서 비일비재했던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18세기 말 독일에서 태어난 야곱과 빌헬름 그림은 입으로 전해지던 민담과 설화를 채집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책 제목에 있는 이야기는 독일어로 메르헨(Mrchen)이라고 한다. 이것이 전 세계 어린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그림 동화의 출발이다. 이 초판본에서 전체 줄거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근친상간이나 살해, 성적인 묘사 등이 있어서 어른들조차도 읽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그림 형제는 18577판을 낼 때까지 잔혹한 내용을 여러 차례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호주 출신의 미술가, 삽화가 숀 탠(Shaun Tan)은 오랜 세월 살아남은 그림 형제의 메르헨에 색과 형태를 붙였다. 숀 탠은 종이 반죽과 점토로 중심 뼈대를 잡은 뒤 아크릴 물감, 밀랍, 구두약 등 다양한 채색 도구를 활용해 동화 속 인물과 장면을 조각으로 구현했다. 75개의 조각품으로 빚어낸 그림 형제의 메르헨을 모은 뼈들이 노래한다는 열여섯 살부터 공포소설과 환상소설에 삽화를 그린 경험을 살린 책이다. 동화 속 한 장면을 인용한 텍스트와 숀 탠의 조각 작품을 책 좌우에 배치되어 있어서 독자는 이야기와 조각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빨간 모자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빨간 모자를 쓴 어린 소녀가 생각난다. 숀 탠은 늑대와 첫 대면을 한 빨간 모자를 표현했는데, 빨간 모자보다 더 크게 만들어진 늑대는 흉악한 모습은 아니지만, 원작에 묘사한 것보다 더 위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숀 탠이 묘사한 백설 공주의 왕비는 의붓딸에 향한 질투와 증오를 얼굴로 뿜어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빨간색은 위험 신호이다. 왕비의 뾰족한 턱과 이빨, 그리고 가시처럼 돋친 왕관(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지붕이 특징인 중세 고딕 양식의 건물이 연상된다) 백설 공주에 대한 공격성을 상징한다.

 

 

사실 손 탠의 조각 작품들은 잔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몇몇 작품은 음산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이야기를 조각 작품으로 빚어낸 시도는 좋았으나 뼈들이 노래한다에 소개된 이야기 대부분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내용이라서 상당한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아무리 훌륭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어도 그 작품 속에 함축된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제작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책 뒤에 75편의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 있지만, 원작보다 더 짧아진 내용만 가지고는 이야기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이야기의 줄거리를 책 뒤편에 배치하는 편집 방식은 이야기와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 차라리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만 골라서 조각 작품을 만들고, 완전한 형태의 텍스트를 곁들어 편집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백설 공주를 비롯한 몇몇 숀 탠의 조각 작품은 원작의 전형 속에 갇혀 있다. 뼈들이 노래한다는 이미 익숙한 동화의 세계들을 입체로 구현한 수준에 그쳐 있다. 전혀 낯설지 않다. 4점 이상의 평점을 받을만한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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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4 15:09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나온 조각품을 실제로 보면 색다른 느낌이 들 거예요. 그런데 종이책으로 조각품을 보니까 삽화를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

2019-01-1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4 16:2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검색해보니까 <오싹오싹 당근>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군요. 그런데 2013년에 나온 책인데 품절되었네요... ^^;; 지금도 애들이 봐도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두운 그림책, 동화책이 나오고 있어요.

2019-01-14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