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7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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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취향(趣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또는 그런 경향

(표준국어대사전)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난 폴 오스터(Paul Auster)는 작가라는 직업을 이렇게 정의했다작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이 말은 오스터의 자전적 글 빵 굽는 타자기》(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00년) 나온다. 글의 원제는 ‘Hand to mouth’하루 벌어 근근이 먹고 산다는 뜻이다빵 굽는 타자기》는 가난과 싸우면서 글을 썼던 작가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전업 작가로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글만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생계비를 벌 수 있는 본업을 유지하면서 부업으로 글을 써야 한다. 오스터는 대부분 작가가 이중생활을 한다고 했다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는 작가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부업과 본업을 넘나드는 삶을 살아왔다.


빵 굽는 타자기의 부제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젊은 시절 오스터는 주제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 연극 대본, 서평 등을 썼다그는 폴 벤저민(Paul Benjamin)이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썼다. 이 글은 오스터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원래 이 소설은 Hand to mouth에 수록된 작품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한 권의 책으로 따로 나왔다제목은 스퀴즈 플레이(김석희 옮김열린책들, 2000).


닥치는 대로 글 쓰는 생계형 작가들을 주제로 큐레이션을 한다면 나는 이 작가를 반드시 포함할 것이다. ‘이 작가’ 또한 소설비평문을 썼다그가 남긴 수많은 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시와 탐정소설이다이 작가는 세계 최초로 탐정소설을 쓴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포의 본업은 평론가다. 그는 미국 문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평론을 썼다. 포는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궁핍한 삶이 그의 재능을 막아섰다포병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포는 형의 이름을 몰래 빌려서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잡지에 투고한 글의 원고료는 쥐꼬리만 한 수준이었다포는 자신의 글을 마음껏 실을 수 있는 신문과 잡지를 발간하기 위해서 직접 언론사를 차렸다하지만 경영난에 빠지게 되면서 신문과 잡지가 폐간되었다.


포는 잡지에 게재한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집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 이야기>(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을 발표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포는 자신의 첫 소설집을 펴낸 출판사를 잘못 만났다출판사가 포에게 인세(royalty)를 주지 않은 것이다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고딕소설(Gothic novel)이다고딕소설은 공포 소설의 시조에 해당하는 장르다


포는 소설가보다는 시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그래서 그의 단편소설에 시가 삽입되어 있다. <어셔 가의 붕괴>에 나오는 유령의 궁전(The Haunted Palace)은 포가 직접 쓴 시다. 포는 자신이 쓴 고딕소설과 탐정소설을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거리로 여겼다포의 고딕소설은 유령 이야기를 좋아하는 대중의 취향에 맞았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그의 소설이 유행한 지 한참 지난 독일풍(Germanism)’을 지나치게 모방한다고 비판했다포는 소설집 서문에 비평가들의 냉담한 평가를 반박하기 위해 공포를 이렇게 정의했다.



공포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폴 콜린스에드거 앨런 포삶이라는 열병, 81)

 


대중을 위한 글은 문학적으로 우수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평가받기 쉽다. 그래서 공포 소설과 추리소설은 어린이나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독자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작품또는 교육에 유익한 작품은 고전이 될 수 있다는 좁은 편견은 편 가르기 독서를 조장한다. ‘편 가르기 독서에 익숙한 독자들은 오랜 세월 인정받은 고전을 아주 좋아한다고전에 분류되지 못한 작품이나 책특히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여진 추리소설과 공포 소설, SF, 판타지 소설 등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전이 아닌 책을 읽는 일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편 가르기 독서의 문제점은 독자 본인이 낯설어하는 장르나 주제의 책에 친해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완전히 다른 독자의 독서 취향을 무시한다.


엄격하게 작품을 비평하기로 악명 높은 포는 대중 소설을 관대하게 평가했다오히려 그는 대중 소설을 싸구려 오락거리로 바라보는 비평가들의 고상한 도덕주의와 실속 있는 독서를 지향하는 교양주의를 비판한다.



터무니없음이 고조되면 엽기를 만들고,

두려움의 빛깔이 짙어지면 공포가 됩니다.

재치를 과장하면 우스꽝스러워지고,

독특함이 기괴함과 신비스러움을 낳습니다.

당신은 아마 이 모든 것들을 나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나는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것들이 나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먼저

사람들이 읽는 책이 되어야 합니다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원하는 것입니다.


(폴 콜린스에드거 앨런 포삶이라는 열병, 53)



포는 비평가들이 호평하는 문학과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학은 항상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포의 문학론에 독자는 주인공이다주인공이 된 독자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책을 고른다만약 포가 지금 살아서 추리소설과 공포 소설을 가볍게 여기는 독자나 비평가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취향입니다. 취향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존중해주시죠.”






<cyrus의 주석>



* 45





그레세의 베르베르와 샤르트르 수도원』 [주]

 

 

[] 장 바티스트 그레세(Jean Baptiste Gresset)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다. 주요 대표작은 <어셔 가의 붕괴>에서 제목으로 언급된 작품 두 편이다.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오페라로 만들어진 <베르베르>(Vert-Vert ou les voyages du perroquet de la visitation de Nevers)<샤르트뢰즈>(La Chartreuse). 샤르트뢰즈는 프랑스령 알프스 산악 지대에 있는 수도원이다. 샤르트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과 다른 건물이다샤르트뢰즈와 샤르트르는 철자가 다른 명칭이다. 샤르트르 수도원은 오역이다.





* 316







티에스트 티에스테스(Thye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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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0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런 성향이 없진 않지. 딴뜻은 없고 단순히 고전 안 읽은 게 넘 많아서.
근데 너 땜에 포가 좋아지려고 한다. 포의 단편선을 읽는다면 이 책으로 해야겠군! ㅋ
요즘 나도 대중소설 읽고 있는데 잘 썼더군. 옛날엔 왜 그렇게 폄하했는지 모르겠어.
대중소설에 민감한 부류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이지.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그러는데 독자는 팔짱끼고 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 같이 관심 가져주고 잘하면 박수쳐 주고 그래야지.

cyrus 2024-07-02 22:23   좋아요 0 | URL
제가 추천하고 싶은 포 단편선은 열린책들, 민음사, 그리고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에요. ^^

공쟝쟝 2024-07-0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포에 동의해요! 독자가 주인공이죠. 그리고 읽는 사람은 압니다. 느낀다고 생각해요.

cyrus 2024-07-02 22:36   좋아요 0 | URL
요즘 출판사들은 신간을 내면 서평단을 모집하더군요. 독자들을 끌어들여서 신간을 홍보하려는 출판사의 전략이 판매 부수를 높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책을 사서 책을 평가하는 독자들은 많이 주목받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사서 읽은 책의 리뷰를 보면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한 독자들의 리뷰 수가 많아요. 출판사가 책 홍보를 위해 독자들을 선택하고 있으니 이런 상황이 저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어요.

서니데이 2024-07-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석희님 번역이 좋은 책이 많은 편인데, 이 책에는 이런 부분이 있었군요.
잘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찾으신 걸 보면 눈이 좋으십니다.
단편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름밤에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4-07-02 22:37   좋아요 1 | URL
예전에 여러 번 읽은 이야기라서 결말은 다 알지만, 오랜만에 읽으니까 좋네요. ^^

젤소민아 2024-08-20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cyrus 2024-08-20 23: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소연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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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이 나오는 탐정소설을 발표 연도순으로 열거하면 <모르그 가의 살인>(1841), <마리 로제의 불가사의한 사건>(1845), <도둑맞은 편지>(1845). 탐정이 나오지 않는 추리소설<황금 벌레>(1843)<네가 범인이다!>(Thou Art the Man, 1844)가 있. <네가 범인이다!>추리소설로 분류하기 애매모호한 작품이라서 대부분 연구자와 번역자는 이를 제외한 네 편을 포의 추리소설로 소개한다. 일본의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 乱歩)는 1949년에 발표한 탐정 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라는 글에 <네가 범인이다!>가 추리소설이라고 주장한다. [주1]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3부작 중 하나다.공포를 주제로 한 시리즈에 맞춘 단편 선집이라서 탐정소설과 추리소설이 모두 빠져 있다. 환상적이며 불가사의한 현상을 소재로 한 고딕 소설(Gothic novel)만 수록된 선집이다. 출판사가 호러’와 관련된 세계 문학 시리즈를 기획하기 위해 포 문학의 노른자’인 추리소설을 제외한 선집을 만든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해설한 글이 없다는 것이 책의 문제점이다포가 어느 시대에 살았으며 그가 글로 표현하고 싶은 문학이 어떤지 알지 못한 채 그의 소설을 읽으면 포 문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포를 모르는 독자가 고딕 소설을 읽으면 시시하게 느낄 것이다. 이러면 포의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독자와 작가들이 포의 소설을 호평하는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다독자들이 포의 소설을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글로 보지 않게 하려면 포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알려줘야 한다. 그것이 해설 글의 역할이며 해설 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다.


포의 소설에 국내 독자들이 잘 모를 수 있는 인명이나 책 제목이 나온다. 포는 작가가 되기 전에 다양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포의 소설에 고대 작가들이 쓴 책 제목이나 문장이 제법 많이 나온다. 포가 언급한 고대 작가 중에 유명한 사람도 있고, 지금은 완전히 잊힌 사람들도 있다. 작품 줄거리와 관련 없는 불필요한 묘사라서 슬쩍 지나가듯이 읽으면 된다. 그래도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표현을 자세히 알고 싶어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도 있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번역자는 주석을 달아야 한다.










번역자의 주석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25사티로스(Satyr)’가 나온다. ‘사티로스가 언급된 포의 소설은 <어셔가의 몰락>이다. 번역자는 사티로스를 디오니소스의 자손으로 뿔이 달린 반인반수라고 설명했다사티로스는 풍요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따르는 정령이다. 사티로스의 혈통을 묘사한 고대 기록들이 제각각 달라서 명확하지 않지만, 대부분 신화학자는 헤시오도스(Hesiodos)의 기록을 주로 참고한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사티로스의 아버지는 고대 토속 신 헤카테로스(Hecaterus)이며, 어머니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아르고스(Argos)의 왕 포로네우스(Phoroneus)의 딸이다. 사티로스의 아버지를 디오니소스라고 묘사한 고대 문헌이 있는지 확인해 봤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오탈자도 눈에 띈다.



* 31





쾌할한 쾌활한


 


* 278





실중팔구 십중팔구

 



* 280





아바리안나이트 아라비안나이트

 



* 383




 

포로투갈 포르투갈



포에 관한 흥미로운 여담. 포는 비평가로 활동했는데, 같은 출신지 작가들을 좋게 띄워주는 주례사 비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와 편집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자도 무조건 언급했다. 포는 오자를 지적하는 일을 새로운 비평문학의 지평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2]





[1] 에도가와 란포, 이진우 옮김, 탐정 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 포와 란포, 도서출판b, 2021년, 7~8쪽.


[주2] 폴 콜린스, 정찬형 옮김, 에드거 앨런 포, 삶이라는 열병》, 역사비평사, 2020,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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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점이 짠거야? 근데 진짜 오자 많으면 책 읽을 맛 안 나지. 포가 그런 말을 하니 나도 오자에 대해선 관대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든다. ㅋ

cyrus 2024-07-01 19:58   좋아요 0 | URL
번역만 잘된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평점을 좋게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번역자는 독자에게 작품이 어떤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그만큼 번역자는 번역한 작품과 작가를 잘 알아야 하죠. 번역자는 단순히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번역된 작품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해요. 그래서 이 책에 평점을 낮게 줬어요. ^^
 










2024년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를 위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카프카 서거 100주년, 체호프 서거 120주년이다. 카프카가 쓴 글뿐만 아니라 카프카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한 책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카프카는 죽기 전에 자신이 쓴 모든 글이 불 속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사라지길 바랐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에게 원고를 모조리 태워버리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브로트는 약속을 어겼다. 





















*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옮김 변신: 단편 전집(솔출판사, 2017)


*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옮김 변신(열린책들, 2009)


*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변신. 시골 의사(민음사, 1998)




체코 프라하 출신의 카프카는 생전에 독일어로 글을 썼다. 이제 카프카의 글은 프라하를 넘어서서 전 세계 언어의 옷을 입은 채 변신하여 수많은 독자를 만나고 있다.


















* 안톤 체호프, 오종우 옮김 아내. 세 자매(열린책들, 2024)


* 안톤 체호프, 박현섭 옮김 상자 속의 사나이(문학동네, 2024)



 

카프카에 비하면 체호프에 대한 출판계와 독자들의 관심이 상당히 저조하다. 올해 절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출간된 체호프의 책은 세 권이다. 체호프가 쓴 장편 범죄 소설 사냥이 끝나고(최호정 옮김, 키멜리움), 단편소설과 희곡 두 편을 엮은 아내 · 세 자매, 단편 선집 상자 속의 사나이


상자 속의 사나이표제작을 포함한 총 열세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귀염둥이>는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귀염둥이>귀여운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상자 속의 사나이>, <>, <로트실트의 바이올린>, <구스베리>(산딸기), <사랑에 관하여>사랑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체호프 단편 선집을 통해서 이미 소개된 작품이다.

 

올해 하반기에 체호프의 글이나 관련 책들이 나올 수 있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체호프의 소설들이 조용하게 주목받고 있는 반면에 희곡들은 꾸준히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 안톤 체호프, 오종우 옮김 벚꽃 동산(열린책들, 2009)

 

* 안톤 체호프, 안지영 옮김 사랑에 관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안톤 체호프, 강명수 옮김 갈매기(지만지드라마, 2009)

 




2014년에 문을 연 안똔 체홉 극장(ACDC)’은 매년 체호프의 장막극과 단막극, 그리고 무대극으로 각색한 소설을 공연한다.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이 연출한 <벚꽃 동산> 전도연, 손석구, 최서희 등이 출연한다. 올해에 내가 극장에서 본 체호프 작품은 <진창><갈매기>.


<진창>은 매혹적인 여자 한 사람에게 휘둘리는 두 남자의 욕망과 허세가 많이 낀 남성성을 예리하게 묘사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든 극단 이름은 원작 제목과 비슷한 창작집단 진창이다. 소극장과 여러 극단이 모여 있는 대구 대명동 대명공연거리에 활동하고 있다.

















* 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시공사, 2010)

 

* 안톤 체호프, 이주영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 1: 단막극(연극과인간, 2002)



 

<진창>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창작집단 진창’의 체호프 작품은 <청혼 소동>이다. 이번 달에 열리는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출품작이다. 원래 제목은 청혼이며 7장으로 이루어진 단막극이다.







오늘 저녁 5시에 하는 <청혼 소동> 마지막 공연을 예매했다. 이 시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연극을 보는 주말만 되면 왜 비가 내리는지. 주말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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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5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요즘 두 양반의 책이 그래 많이 나오는 거군. 오래 전 카프카의 일기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군. ㅠ
연극은 재미있겠다. 그래도 안 더운게 어디니?
손석구 전도연 연기 보고 싶은데 요원하다. ㅠ
근데 너 오늘 연극 본다고 은근 대놓고 자랑하는 것 같다. 그래. 재밌게 봐라. 이 젊은 청춘아! ㅎㅎ

cyrus 2024-06-16 09:52   좋아요 2 | URL
<청혼>이 코미디라서 웃으면서 봤어요. 코믹 연극도 재미있어요. 오늘도 연극 한 편 보러 갑니다.. ㅎㅎㅎ 다행히 연극 보는 시간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어요. ^^

페넬로페 2024-06-15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 오는 날의 연극 관람이 더 운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연극 관람 후 그 느낌으로 비오는 날 막걸리 한 잔도 좋을 것 같고요.
카프카는 워낙 유명하고 그의 작품도 많이 알려져 있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직 안 읽은 작품도 많아요 ㅎㅎ

cyrus 2024-06-16 09:53   좋아요 2 | URL
연극 다 보고 난 후에 집 근처 돼지국밥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어요. 막걸리도 마셨어요. ^^
 



지난 일요일에 도서관 세 군데를 돌아다녔다. 도서관에 가서 빌린 책은 이미 번역된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단편소설 <감정의 혼란><체스 이야기>.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첫 번째 선정 도서]

* 슈테판 츠바이크, 정상원 옮김 감정의 혼란》 (하영북스, 2024)


* 슈테판 츠바이크, 김선형 옮김 감정의 혼란》 (세창미디어, 2022)

 

* 슈테판 츠바이크, 서정일 옮김 감정의 혼란: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녹색광선, 2019)

 

* 슈테판 츠바이크, 박찬기 옮김 사랑을 묻다사랑의 본질에 관한 4가지 질문》 (깊은샘, 2020)


[구판 절판] 슈테판 츠바이크, 박찬기 옮김 《감정의 혼란》 (깊은샘, 1996)




<감정의 혼란> 번역본은 총 네 권이다. 최근에 새로 번역된 <감정의 혼란>이 수록된 번역본(하영북스)이 나왔다<감정의 혼란>의 분량이 길지 않아서 도서관 대출 도서인 세 권의 번역본(세창미디어, 녹색광선, 깊은샘)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네 편의 <감정의 혼란> 번역문을 대조하면서 읽어 보니의미가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 정상원 옮김(하영북스), 70

 

 딱 한 번 그녀가 얼결에 말을 내뱉을 뻔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받아쓴 내용을 선생님께 건네면서 나는 말로를 묘사한 부분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를 열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감탄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나는 찬사를 덧붙였다.

 “그 누구도 말로를 이처럼 거장다운 솜씨로 그려내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홱 몸을 돌리며 입술을 깨물더니 정서한 종이를 팽개치며 한심하다는 어조로 뇌까리셨다. “그따위 바보 소리는 하지 말게! 자네는 거장다운 솜씨에 대해 아는 게 대체 뭔가?”



* 김선형 옮김(세창미디어), 123~124


 단 한 번 나는 그녀가 말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내가 받아 적은 것을 아침에 넘겨주면서, 그 표현이(말로우의 비유였다)[역자 주] 나는 대단히 감동시켰다며 나의 스승에게 감격하여 이야기하였다. 감정이 복받쳐 열렬하게 그 누구도 그렇게 탁월한 성격묘사를 기록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때 그는 갑자기 몸을 돌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원고를 던지고 경멸하듯 중얼거렸다.

 “그런 바보 같은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은 대가(大家)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 줄 알고 있나요?”



[역자 주] 어둠의 심장(Heart of Darkness, 1899)은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의 작품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콘래드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찰스 말로우(Charles Marlow)가 등장하는데, 작가는 어둠의 심장에서 당시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츠바이크가 말로우의 비유라고 표현할 만큼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은 성격 묘사가 탁월한 것으로 평가된다. 작품 속에 주인공이 탁월한 성격 묘사를 언급한 것으로 보면 말로우의 비유는 바로 어둠의 심장이라 유추해 볼 수 있다.



* 서정일 옮김(녹색광선), 112~113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뻔한 기회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받아 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선생님의 서재로 갔을 때, 그 표현(그것은 말로의 비유였습니다)을 보고 나도 모르게 너무 감격해서, 내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쁨에 들떠 경탄하면서 어느 작가도 말로처럼 거장다운 성격 묘사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차갑게 몸을 돌리면서 입술을 꽉 깨물고 내가 필기한 종이를 던져버리며 업신여기는 말투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게! 자네가 거장다운 내용인지 아닌지 뭘 안다고 그러는가?”



* 박찬기 옮김(깊은샘-개정판), 99

 

 언젠가 딱 한 번 진정으로 그녀의 얘기를 들을 뻔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필기한 것을 가지고 선생님께 갔을 때, 말로의 초상에 대한 표현에 내가 얼마나 감동했는지를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외면을 하여, 입술을 깨물고 종잇조각을 내버리면서, 경멸의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게! 자네가 뭘 안다고 훌륭하니 훌륭하지 않니 하고 비평을 하나?”



하영북스판본은 말로를 묘사한 부분’, ‘깊은샘판본은 말로의 초상에 대한 표현이라고 적혀 있다. 인용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감정의 혼란>의 주인공 롤란트(Roland)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에게 많은 영향을 준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를 묘사한 것(하영북스) 또는 초상화(깊은샘)에 감동한 상태다. 롤란트는 자신의 들뜬 감정을 교수에게 솔직하게 말하는데, 교수는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 교수는 말로를 거장으로 칭송하는 롤란트를 꾸짖는다.





















* 조셉 콘래드, 이석구 옮김 《어둠의 심연》 (을유문화사, 2008)


* 조셉 콘래드, 이상옥 옮김 《암흑의 핵심》 (민음사, 1998)




세창미디어판본과 녹색광선판본에서 롤란트가 감동한 것은 말로가 비유한 표현이다. 롤란트는 말로의 희곡에 나온 표현에 감동했고, 인상 깊은 구절을 교수에게 말했다. 반면 세창미디어판본의 역자는 본문 밑에 달아놓은 주석석에 말로’가 영국의 소설가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에 나오는 찰스 말로우라고 주장한다.


번역문들이 너무 달라서 <감정의 혼란> 독일어 원문을 찾아서 확인해 봤다.



 Nur ein einziges Mal war ich nahe, ihr das Wort zu entreißen. Ich hatte morgens, als ich das Diktat überbrachte, nicht umhin können, meinem Lehrer begeistert zu erzählen, wie sehr mich gerade diese Darstellung (es war Marlowes Bildnis) erschüttert habe. Und heiß noch von meinem Überschwang, fügte ich bewundernd hinzu, niemand schreibe ihm ein derart meisterliches Porträt nach; da biß er, schroff sich abkehrend, die Lippe, warf das Blatt hin und murrte verächtlich: “Reden Sie nicht solchen Unsinn! Was verstehen Sie denn schon von Meisterschaft.”



독일어를 몰라서 인터넷 독일어 사전에 단어를 입력해서 뜻을 확인했다‘Darstellung’의 뜻은 표현또는 묘사. ‘Bildnis’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초상화비유따라서 ‘Marlowes Bildnis’말로의 비유로 번역할 수 있으며 ‘말로의 초상화’로 번역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번역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둘 중 하나가 옳은 번역이라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 ‘Marlowes Bildnis’괄호 안에 넣고, 더 이상 판단하는 것을 중지(epoche, 에포케)’하겠다.


<감정의 혼란> 액자식 소설이다. 소설 주인공이자 화자인 롤란트는 예순 살에 접어든 영문학 교수. 그는 40년 전인 20대로 되돌아가 자신이 숭배했던 교수를 회상한다. <감정의 혼란>1927에 발표되었다. 이 해를 시점으로 40년 전이면 1887, 19세기 후반이다. <감정의 혼란> 발표 연도와 소설 속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시간적 배경이 무조건 같다고 볼 수 없다오류일 가능성이 높지만일단은 이렇게 추정해 본다. 조셉 콘래드가 정식으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해는 1895이다. <어둠의 심장>1899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1880년대에 20대였던 롤란트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에 나온 찰스 말로의 비유를 보고 감동했다는 내용은 부자연스럽다.


원문에 나온 Marlowes’영국 극작가의 성()이다. <어둠의 심장>에 나온 말로는 알파벳 ‘e’가 빠진 ‘Marlow’을 쓴다. 따라서 나는 롤란트가 말한 말로는 영국의 극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내게 뭘 안다고 번역이 이상하다면서 따지느냐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도 된다. 내가 틀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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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05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택의 폭이 넓어 좋구만. 왜 출판계가 츠바이크에 꽂혔는지 모르겠다만 난 고른다면 저 보라 책을 고르겠어. 딴뜻은 없고 예쁘잖아. ㅋ

cyrus 2024-06-06 11:39   좋아요 2 | URL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잘 표현되어 있어요. 이런 흥미진진한 내용의 단편이라면 금방 읽을 수 있어요. <감정의 혼란> 번역본 중에 실물이 좋은 건 누님이 고른 보라색 표지 번역본이에요. ^^

서니데이 2024-06-06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책은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에 번역 출간되었겠지만, 최근에 새로 출간되는 책도 많은 것 같아요. 소개해주신 책들도 날짜가 최근 몇 년 사이 출간된 책이네요.
cyrus님 현충일 휴일 잘 보내셨나요. 날씨가 많이 더워집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shinski 2024-06-18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남이 오래 전 읽고 감명 받았다던 책을 몇 권 추천해 주었는데 그 책들은 모리악의 <나환자에게 보내는 키스>,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 및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및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었습니다. 그 중 츠바이크의 단편은 간헐적으로 읽어 그 내용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이번에 한번 정리도 할 겸 그의 단편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체스>와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나 <불타는 비밀>처럼 예전에 읽었던 작품은 놔 두고 찾다보니 <어느 여인의 불안>, <어느 여인의 24시간>, <보이지 않는 소장품>, <감정의 혼란>, <황혼의 이야기>, <달빛의 뒷골목>등이 눈에 띄어 요 며칠 사이 계속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확인한건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여인의 불안>과 <달빛의 뒷골목>은 한번 읽었던 작품이었으며 반면에 읽은줄만 알았던 <감정의 혼란> 및 <황혼의 이야기>는 처음 읽는 작품으로 밝혀져 많이 놀랐습니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선생의 비밀이 소설의 주제인 <감정의 혼란>은 읽은지 며칠 되었지만 계속 기억속에 남아있네요. 그나저나 위의 작품 이외에도 그의 작품 중 읽을 단편이 꽤 남아있으니 6~7월은 계속 독서로 무더위를 날려보려고 합니다.

추신 : <감정의 혼란>에 나오는 말로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였던 크리스토퍼 말로우가 맞습니다. 당시 즉 셰익스피어 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활약한 극작가들로 벤 존슨,필립 시드니 등이 있는데 말로우도 이들 중 1인으로 <파우스트>나 <말타의 유대인>등을 쓴 극작가 입니다. 요행히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세창출판사에서 <어둠의 심연>이나 <로드짐>에 등장하는 말로를 <감정의 혼란>속의 말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문맥을 무시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과 셰익스피어 얘기 가운데 갑자기 20세기 초의 소설가 콘래드의 말로를 등장시키는 것은 좀 지나친 넌센스로 볼수 있습니다. 다만, 소설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번역가 또는 편집자가 주를 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데는 박수를 보냅니다.

레인보우 2024-08-25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글 잘 읽었습니다. ‘말로‘에 관한 논의는 하영북스 역자의 해설(350-351쪽)에 답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사는 교수는 말로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그려내었기에˝ 롤란트가 자신의 글을 칭찬하자 ˝마치 자신의 실체가 누설되는 듯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뜬금없이 화를 냈다고 추측됩니다.
크리스토퍼 말로는 동성애자였고 타인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캔들메이커이며 막장 삶을 사는 걸로 악명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해설에는 플라톤의 ‘심포지온‘과의 상호텍스트성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흥미롭습니다.

저는 하영북스 책이 롤란트의 회상을 ˝...입니다˝(녹색광선이나 박찬기 번역)가 아닌 ˝... 이다˝로 옮긴 게 마음에 듭니다. 롤란트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일반에 공개할 생각이 없고 이 소설의 부제가 ‘개인 기록‘인 만큼 마치 청자 내지 독자를 직접 상대하듯 ‘...입니다‘라는 어미를 쓰는 게 어색해 보입니다.
 
감정의 혼란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하영북스)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하영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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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세계문학 읽기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첫 번째 선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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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잘 만든 음반 커버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된다. 1960~70년대에 활동한 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ypnosis)는 가수들의 바이닐(Vinyl, 레코드판) 음반 커버 캔버스로 삼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를 제작했다. 멋진 음반 커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국의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정규 9Wish you were here 음반 커버는 마치 신비로우면서도 불길한 느낌이 감도는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두 남자가 악수하고 있다. 그런데 한 사람만 불타고 있다. 악수하는 순간 남자의 몸에 불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악수하고 있는 것일까.


힙노시스가 제작한 Wish you were here커버 디자인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소설과 잘 어울린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은 매우 뜨겁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뜨겁다. 작중 인물들의 마음에 열정이라는 화염이 일어난다정열에 지배당한 인물들은 불타는 사람이다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화염은 인물들의 정신뿐만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태워버린다이번에 새로 나온 츠바이크의 소설 선집 감정의 혼란에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감정의 혼란>, <아모크>(Amok), <책벌레 멘델>, <체스 이야기>.


츠바이크의 단편소설 <감정의 혼란>은 에로틱한 열정의 화염에 휩싸인 사람들이 나온다. <감정의 혼란>의 교수와 제자는 서로 만나면 불이 붙는 사람들이다롤란트(Roland)’라는 이름의 제자는 젊은이들 앞에서 연설하는 문학 교수의 열정에 매료된다. 교수는 풋풋하면서도 언제든지 활활 타오르는 힘을 가진 젊은 열정을 가진 롤란트를 좋아한다. 만나면 서로가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수와 제자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만날 때마다 불타는 두 사람의 뜨거운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교수는 롤란트를 만날 때마다 생기는 마음속 화염을 끄기 위해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곤 한다. 롤란트는 자신을 잘 대해주다가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 교수의 태도에 분노한다. 화를 끊일수록 교수를 만나고 싶은 열정의 화염이 점점 커진다. 교수가 만나지 못한 날에도 롤란트의 몸과 마음은 불타고 있다.


<아모크>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다. ‘아모크살인 충동을 일으키는 정신착란 증세를 가리키는 용어다. 정식으로 공인받은 의학 용어는 아니다. 열대 지역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이 매우 높았던 20세기 초에 유행한 용어다. 당시 서구는 제국주의라는 횃불을 들고 다니면서 동양과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다. 제국주의 횃불은 동양과 아프리카의 고유한 역사와 언어, 문화를 모조리 태워버렸다<아모크>의 주인공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식민지에 파견된 의사. 의사는 식민지에서 8년을 살아왔으나 열대 기후와 동남아시아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백인 여성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의사의 말라버린 감정에 에로틱한 열정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여자는 오만하고 쌀쌀맞게 의사를 대한다. 하지만 의사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급기야 그녀를 만나기 위해 스토커처럼 따라다닌다. 의사는 자신의 상태를 아모크와 비슷하다면서 자가 진단한다. 유럽인들은 열대 기후가 아모크를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본인의 스토커 행각을 열대 기후가 일으킨 증상으로 포장하려고 억지 주장을 펼친다. 의사는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 에로틱한 열정의 화염에 지배당한 사람이다.


<책벌레 멘델>은 모든 책 제목과 가격, 표지를 전부 기억하는 사람이 나온다. 멘델은 책만 보면 불타는 사람이다. ‘카페 글루크는 멘델의 뜨거운 열정을 보호하는 유일한 일터이자 보금자리다. 하지만 엄청난 화력을 가진 전쟁의 화염은 평화와 인간을 잔인하게 태워버린다. 책을 읽을 때마다 불타는 멘델은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무관심하다. 그는 전쟁의 뜨거운 위력을 모른다. 불행하게도 멘델은 수용소에 2년 동안 갇혀 지낸다. 살아서 카페에 돌아오지만, 멘델의 정신에 열정의 화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체스 이야기>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명의 체스 천재에 관한 이야기다. 젠토비치(Czentovic) 인간적인 감정이 없으며 슈퍼컴퓨터처럼 완벽할 정도로 체스를 두지만, 상상력에 의존하면서 진행하는 블라인드 체스에 약하다. 반면 B 박사는 블라인드 체스의 달인이다그러나 체스판 앞에만 서면 체스를 두지 못한다교수는 블라인드 체스를 두면 불타는 사람이다B 박사는 수용소에 갇혀 있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체스 교본을 읽는다. 그는 체스 교본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읽는다. 체스 교본은 체스를 두고 싶은 열정의 화염을 만든 땔감이었다. B 교수는 책 속에 있는 체스 선수와 대국하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체스 실력을 늘린다. 대국 상대가 없어지자, B 교수는 본인을 대국 상대로 정한다. B 교수는 블라인드 체스를 하면 흑을 쥔 자아와 백을 쥔 자아로 분열한다. 체스를 좋아하는 열정의 화염은 누구든지 이기고 싶어 하는 욕망과 만나면서 더욱더 커진다


열정은 나태한 마음을 태워버리고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 그러나 호기로운 열정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화상이 생기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태워버리고 만다. 불타는 마음에 질투(<감정의 혼란>)와 집착(<아모크>)을 끼얹으면 열정의 화염은 도저히 끌 수 없는 상태가 된다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츠바이크의 소설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라고 극찬했다. 츠바이크의 뜨거운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기이한 열정의 화염에 휩싸인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를 감당해야 한다. 불타는 사람을 만나면 선뜻 손을 내밀 수 있는가? 악수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손을 빼야 한다. 끄기 쉽지 않은 열정의 화염이 순식간에 옮겨붙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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