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가 먼저 죽음을 주제로 한 대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이를 들어줄 사람들이 없다. 죽음이 너무 무섭기 때문일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죽음은 먼 옛날부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간만이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생각해낸 게 두 가지 묘책이었다. 하나는 지옥이나 천국과 같은 내세의 관념을 만들어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른바 불멸성이다. 이로써 삶의 유한성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될 수 있으면 죽음을 멀리 떼어놓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애써 부정하여 자신과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려 든다. 마치 햇빛 아래서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 노베르트 엘리아스 《죽어가는 자의 고독》 (문학동네, 2012)

* 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슬픈 불멸주의자》 (흐름출판, 2016)

 

 

 

나와 그림자가 하나이듯이 삶과 죽음도 별개로 분리해서 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외면하거나 알려 하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끝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여긴다. 과거엔 가족이 시한부 환자를 부양했고, 삶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까지 시한부 환자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죽어가는 순간이 가까울수록 가족과 사회에서 더 멀리 배제된다. 특히 의료체계는 죽음과 죽음을 환기하는 것들을 철저하게 격리한다. 죽어가는 자는 중환자로 격리되며, 시신은 영안실의 싸늘한 침대 위에 눕혀진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노화는 실버타운에 격리된다.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현대 문명이 죽음을 손쉽게 숨길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한다. 과거의 죽음은 두려우면서도 친숙한 개념이었다. 과거에 아이들은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아이들은 세 살 무렵부터 처음으로 죽음이 무엇인지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주1].

 

 

 

 

 

 

 

 

 

 

 

 

 

 

 

 

 

 

 

*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민음사, 2016)

* 에밀리 디킨슨 《디킨슨 시선》 (지만지, 2011)

 

 

 

 

 

 

 

 

 

 

 

 

 

 

 

* 한국현대영미시학회 엮음 《현대 영미 여성시의 이해》 (동인, 2013)

* 박재열 《미국 여성시 연구》 (L.I.E, 2009)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어렸을 때부터 죽음의 민낯을 아주 가까이서 봤다. 그녀가 아홉 살이었을 때 이사 간 집 주변에 묘지가 있었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을 자주 지켜봤다. 죽음은 그녀의 일상에서 멀지 않은 것이었다. 디킨슨은 친구, 자신과 정서적으로 교류를 나누던 지인들, 그리고 가족들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다. 그래서 디킨슨은 죽음과 불멸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썼다. 그녀는 일상의 삶과 죽음이 동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았다. 디킨슨에게 죽음은 자신과 무관한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일이다.

 

디킨슨은 자신의 죽음을 여러 가지 상황과 이미지를 통해 상상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

 

 

나는 내 두뇌에 장례를 느꼈네.

조문객들이 이리저리

밟고— 또 계속해서 밟았고—

마침내 감각이 완전히 터지는 것 같았다네—

 

그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추도식이, 북처럼—

울리고— 또 계속해서 울렸고—

마침내 내 마음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네—

 

그런 다음 나는, 그들이 관[주2]을 들어 올렸고,

똑같은 납 장화가 걸으며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다시, 내 영혼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고,

그리고 공간이— 조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네.

 

모든 하늘이 하나의 종이 되었고,

존재는 단지 하나의 귀가 되었고,

나와, 침묵은 어느 이방의 종족이 되어

여기서, 외로이, 난파되었다네—

 

그런 다음 이성의 널빤지가, 부서졌고—

나는 아래로, 또 아래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곤두박질치며, 별 세계와 부딪쳤고,

그제야— 마침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끝이 났다네—

 

 

(No. 280, 윤명옥 옮김, 《디킨슨 시선》, 29~30쪽)

 

 

I felt a Funeral, in my Brain,

And Mourners to and fro

Kept treading — treading — till it seemed

That Sense was breaking through —

 

And when they all were seated,

A Service, like a Drum —

Kept beating — beating — till I thought

My Mind was going numb —

 

And then I heard them lift a Box

And creak across my Soul

With those same Boots of Lead, again,

Then Space — began to toll,

 

As all the Heavens were a Bell,

And Being, but an Ear,

And I, and Silence, some strange Race

Wrecked, solitary, here —

 

And then a Plank in Reason, broke,

And I dropped down, and down —

And hit a World, at every plunge,

And Finished knowing — then —

 

 

 

화자(디킨슨)는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장례식을 상상한다. 조문객들이 지나가가면서 생기는 발소리는 화자의 감각을 터뜨리게 만든다. 죽은 자를 추도하기 위해 울리는 북소리는 화자의 마음을 마비시킨다. 하늘에 울려 퍼지는 조종(弔鐘) 소리는 화자의 환청이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리는 주변인의 죽음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을 혼자서 감당하는 시인을 예민하게 만든다. 시인의 정신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와 같은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강은교 시인은 시 280번의 4행을 “다리에 아무 감각도 없어진 듯할 때까지”라고 번역했다.

 

 

 

장례행렬이 지나가네, 머릿속으로

애도자들은 이리저리

걸어가네 — 걸어가네 — 마치

다리에 아무 감각도 없어진 듯할 때까지.

 

 

(No. 280, 강은교 옮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27쪽)

 

 

강은교 시인은 원문의 “Sense was breaking”을 ‘감각이 없다’는 의미로 의역을 했다. ‘breaking’은 ‘파괴’를 뜻한다. 윤명옥 교수는 “감각이 완전히 터진다”라고 옮겨 썼는데, 이 번역문을 읽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중압감을 견뎌내지 못한 시인의 감정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디킨슨의 시 465번은 임종 직전의 상황을 그린 내용이다. 그녀는 이 시에 독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존재’를 등장시켜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깨뜨린다.

 

 

나는 임종 때에— 한 마리 파리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네.

방 안의 정적은— 폭풍과 폭풍 사이에 있는—

공중의 정적과 같았다네—

 

빙 둘러앉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도 마르고—

숨소리도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네.

왜냐하면 왕께서 그 방에— 임종 증언을 위해

현현하는 순간의— 그 마지막 입성을 지켜보려고—

 

나는 내 유품에 대해 유언을 했고— 내 소지품을

어떻게 나눠 가지려는 것에 서명을 했다네—

그런 다음, 한 마리 파리가 날아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네—

 

푸른— 정체불명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빛과— 나 사이에 훼방을 놓았네—

그러더니 창이 가려졌고— 그런 다음

나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네.

 

 

(No. 465, 윤명옥 옮김, 《디킨슨 시선》, 63~64쪽)

 

 

 

죽음을 앞둔 상황,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화자는 죽음에 초연한 모습이다. 윤명옥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이 시의 내용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기독교적인 전통에 반한다. 이 시에서 말하는 ‘왕(king)[주3]’은 죽어가는 화자의 눈앞에 나타나 그/그녀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신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신성한 분위기를 망친다.

 

 

 

 

 

 

 

 

 

 

 

 

 

 

 

 

* 프레드 게팅스 《악마 백과사전》 (보누스, 2014)

* [품절] 마노 다카야 《천사》 (들녘, 2000)

* 마노 다카야 《타락천사》 (들녘, 2000)

 

 

 

‘왕’과 ‘파리’는 대조적인 관계이다. 그러므로 ‘신’과 ‘악마’의 대립 구조를 연상시킨다. 디킨슨의 시에 나타난 파리는 ‘베엘제붑(Beelzebub) 또는 ‘벨제붑’으로 알려진 악마를 상징한다. 베엘제붑의 본래 이름은 바알제불(Ba’al Zebul)이다. 히브리어로 ‘하늘의 주인’을 뜻한다. 베엘제붑을 신으로 숭배하는 셈족(Semites)의 신앙을 적대시한 유대인들은 이 호칭이 그들이 존경하는 솔로몬 왕(Solomon)을 떠올린다는 이유로 히브리어로 ‘파리의 왕’을 뜻하는 바알제붑(Ba’al Zebûb)으로 바꾸어 불렀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악마를 가리킬 때 ‘베엘제붑’을 쓰기 시작했다. 베엘제붑은 지옥에서 상당히 높은 계급에 속한 악마이다. 사탄(Satan), 레비아탄(Leviathan)과 더불어 타락 천사 3대장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베엘제붑이 누군지 몰라도, 록밴드 (Queen)의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질리도록 들어 본 사람이라면 이 특이한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절정에 이르는 오페라 파트 마지막에 “Beelzebub has the devil put aside for me”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오늘날의 죽음은 삶의 뒤편으로 밀려난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를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이방의 종족”이다. 그렇지만 디킨슨처럼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죽음의 얼굴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는 물질적인 풍요에 아주 많이 관심을 보이면서도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거나 외면해버린다. 막연한 공포감과 거부감에 짓눌려 죽음을 외면하는 게 과연 행복하게 사는 삶일까. 디킨슨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삶에 대한 애착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죽음과 타협하는 방법을 알려고 했다. 죽음에 관한  디킨슨의 시는 독자에게 ‘삶과 함께 있는 죽음’을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제목에 대한 주]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크로스, 2018.

 

[주1] 셸던 솔로몬 외, 이은경 옮김, 《슬픈 불멸주의자》, 48쪽.

 

[주2] 박재열 교수는 원문의 ‘Box’를 ‘상자’라고 직역을 했는데(《미국 여성시 연구》, 43쪽), 시의 전체 내용을 생각하면, ‘Box’는 시신을 안치하는 ‘관(coffin)’을 상징하는 단어로 봐야 한다.

 

[주3] 강은교 시인은 ‘죽음의 왕’이라고 번역했다(《고독은 잴 수 없는 것》, 73쪽). ‘king’은 죽은 영혼을 구원하는 ‘신(God)’을 상징하고, 신의 권위를 깨뜨리는 존재가 ‘파리’이다. 따라서 ‘king’을 ‘죽음의 왕’으로 보기 어렵다. 파리야말로 죽음의 냄새를 풍기면서 나타나 신과 대립하는 ‘죽음의 왕’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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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 -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과 산문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지음, 이재경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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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은 ‘재즈 시대(Jazz age)라고 불리던 황금기였다. 재즈 시대는 낭만과 모순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금주법이 시행되었고, 알 카포네(Al Capone)가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한편에선 스윙재즈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성(性) 해방의 자유를 만끽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특히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신여성(modern girl)‘플래퍼(flapper)라고 부른다. 그녀들은 싹둑 자른 단발머리에, 무릎까지 오는 플래퍼 드레스를 찰랑거리며 무도회장을 드나들었다. 그녀들은 술과 담배, 춤과 파티, 화려하면서도 파격적인 옷차림을 즐겼고,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으며 도발적이었다.

 

스콧 F.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와 그가 탄생시킨 개츠비(Gatsby)는 재즈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환락과 환멸이 교차하는 재즈 시대에 선 젊은 세대들을 그려낸 소설이다. 떠나간 연인을 되찾기 위해 주류 밀매로 거부가 된 뒤 날마다 성대한 파티를 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개츠비의 모습은 그 시대의 화려한 낭만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그 이면에 감춰진 절망을 상징한다. 피츠제럴드의 삶 역시 개츠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과 성공에 대한 열망과 집착이 평생 그를 따라왔다. 《위대한 개츠비》의 성공이 가져다준 부와 명예는 피츠제럴드를 압박해온 평생의 짐이기도 했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뛰어넘은 대작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으며 작가로서의 자의식과 부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는 낭비벽이 심했고 술과 파티를 즐겼다.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면서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 계속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나 화려함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던 재즈 시대는 사상 최악의 경제 대공황이 오면서 막이 내렸고, 그는 마지막 소설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피츠제럴드 못지않게 그의 아내인 젤다 세이어(Zelda Sayre)도 수많은 스캔들을 몰고 다닌 화제의 인물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녀를 낭비벽이 심하고, 남편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악녀’로 기억한다. 피츠제럴드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증언에 따르면 젤다는 남편의 글쓰기를 질투해서 글을 쓰지 못하도록 항상 술을 먹였다. 부부가 파리에 살았을 때, 젤다는 프랑스인 비행 조종사와 짧은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피츠제럴드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젤다는 정신병원과 요양소를 오가며 지냈다.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떠나고 8년 뒤에 젤다는 입원한 병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사망한다. 과연 그녀는 피츠제럴드가 만나지 말았어야 할 악녀였을까?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아내’로만 기억해야 할 인물인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피츠제럴드를 들들 볶는 젤다의 모습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작가로서의 젤다’를 들려주는 《젤다》를 읽어보자. 이 책의 부제는 ‘젤다의 편에서 젤다를 읽다’이다. 그동안 대중에게 알려진 젤다의 부정적인 모습, 즉 ‘남편의 재능을 파괴한 정신이상자’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젤다는 글재주만 좋을 뿐만 아니라 발레 실력이 뛰어난 플래퍼였다. 또 그림도 잘 그렸다. 그녀가 쓴 단편소설들은 ‘스콧 피츠제럴드’ 또는 그와 같이 쓴 것으로 발표되었다. 피츠제럴드는 젤다의 창작 욕구와 예술적 열정과 무시했다. 젤다는 남편의 반대와 딸의 양육 문제로 인해 정식으로 무용수로 데뷔할 기회를 놓쳤다. 만약 그녀가 무용수가 되었더라면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친 젤다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고,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그녀의 외로움과 우울증은 커져만 갔다.

 

피츠제럴드는 젤다의 일기와 편지에 담긴 문구를 베껴 적으면서 소설을 썼다. 그 문제의 작품들은 피츠제럴드에게 첫 번째 성공을 안겨 준 데뷔작 《낙원의 이편》과 두 번째 장편소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두 편 모두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다.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비평한 글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Friend husband’s latest)에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요상한 책’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그 ‘요상한 책’을 쓴 남편의 ‘표절’을 지적한다.

 

 

 어떤 페이지에선 결혼 직후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제 옛날 일기의 일부가 보여요. 꽤 편집되어 있지만 편지글들에서도 어쩐지 낯익은 내용이 있고요. 아무래도 피츠제럴드 씨는―스펠링 제대로 쓴 것 맞죠?―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

 

(이재경 옮김,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 중에서, 118쪽)

 

 

《젤다》에 총 5편의 단편소설과 총 9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오리지널 폴리스 걸(The original follies girl), 『남부 아가씨(Southern girl), 『재능 있는 여자(The girl with talent)‘Girl 시리즈’라는 표제를 달고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젤다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랑에 눈이 멀고 재능과 열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여성들이다. 『재능 있는 여자』는 젤다의 자전적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루’는 미국 전역을 넘은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춤 실력을 갖춘 댄서이지만, ‘사랑’과 ‘가정’이라는 현실 앞에 자신의 열정을 포기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미친 그들(A couple of nuts)은 재즈 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담은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주는 소설이다. 목표 없이 방황하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환락의 파티에 절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젊은 연인의 모습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재즈 시대의 풍경 사진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제 젤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젊음의 생기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춤을 추던 ‘플래퍼’ 젤다의 이야기, 그리고 열정적인 충동을 문학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 ‘예술가’ 젤다의 이야기를.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재즈 시대의 ‘전설’로 남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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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3-2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게임 이름 같은데요, 젤다 피츠제럴드였네요. 주말에 날씨가 많이 차갑다고 합니다. cyrus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9-03-26 07:22   좋아요 1 | URL
지난 주 토요일과 일요일의 날씨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어요. 토요일엔 비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요즘 같은 날씨에 감기에 걸리기 쉬우니 감기 조심하세요. ^^

2019-03-23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3-26 07:25   좋아요 0 | URL
제 나름대로 언어유희를 의도한 제목을 정해봤습니다... ㅎㅎㅎ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소설 《The Catcher in the Rye》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는 콜필드 가문 3남 1녀 중 둘째이다. 소설에서 친형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고, ‘D. B.’라는 이름의 머리글자로만 나온다. D. B.는 할리우드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다. 남동생 앨리(Allie)는 1946년 7월 18일에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홀든의 친구 스트라드레이터(Stradlater)는 자신의 작문 숙제를 퇴학이 확정된 홀든에게 맡기는데, 죽은 앨리를 잊지 못한 홀든은 작문 숙제에 동생과 관련된 추억에 대한 글을 쓴다. 막내 피비(Phoebe)는 홀든이 앨리 못지않게 좋아하는 여동생으로,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소설의 중반부에 홀든은 과거에 형과 앨리가 주고받은 대화 한 장면을 회상한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앨리가 형에게 형은 작가니까 전쟁에 참가하면 작품 쓸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지 않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형은 앨리에게 야구 미트를 가져오게 하고는, 루퍼트 부루크와 에밀리 디킨슨 중에서 누가 훌륭한 전쟁 시인인가를 물었다. 앨리는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대답했다.

 

(이덕형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210쪽)

 

 

I remember Allie once asked him wasn’t it sort of good that he was in the war because he was a writer and it gave him a lot to write about and all. He made Allie go get his baseball mitt and then he asked him who was the best war poet, Rupert Brooke or Emily Dickinson. Allie said Emily Dickinson.

 

 

 

루퍼트 브룩(Rupert Brooke, 1887~1915)은 영국의 시인이다. 1911년에 첫 시집을 발표했으나 그의 창작 활동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1915년에 그리스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스만제국(터키)의 지배에 저항하는 그리스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열병이 악화되어 그리스에서 세상을 떠난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의 최후와 조금 비슷하다.

 

루퍼트 브룩이 누군지 모르더라도 독자들 역시 앨리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평생 독신으로 은둔의 삶을 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총 1,775편의 시를 썼다. 그렇지만 그녀가 생전에 발표한 시는 10편에 불과했다. 그녀는 늘 흰옷만 입고 다녔기 때문에 ‘뉴잉글랜드 수녀’ 혹은 ‘백의의 처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디킨슨은 죽기 직전 여동생 라비니아 디킨슨(Lavinia Norcross Dickinson)에게 자신이 남긴 기록물 전부 불태우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라비니아는 언니가 쓴 시를 모아 시집을 펴내는 데 노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D. B.가 디킨슨을 ‘전쟁 시인’으로 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디킨슨은 남북전쟁이 일어난 시기에 살았다. 디킨슨이 남긴 1,775편의 시를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디킨슨은 남북전쟁을 직접 언급한 시를 쓴 적이 없다. 다만, 어떤 대상이나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전쟁으로 비유해서 쓴 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를 썼다고 해서 그녀를 ‘전쟁 시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D. B.의 엉터리 말은 얕은 문학 지식을 가진 D. B.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 D. B.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는 <황금 금붕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는 무명작가였다. 당연히 D. B.도 콜필드가 비꼬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디킨슨의 시는 대체로 짧은 편이다. 그러나 쉽게 읽혀지는 시는 아니다. 디킨슨의 시에 많이 나오는 주제는 사랑, 자연, 죽음과 불멸,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 자기 성찰 등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 대다수는 진중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띤다. 그녀의 시는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디킨슨은 절제된 구성으로 시의 형태를 단순화시키거나 시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시의 음률을 살리려고 ‘줄표(—, dash)를 많이 썼다. 게다가 특정 시구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법을 무시하는 작법을 구사했다. 그 때문에 디킨슨의 시는 들어가기는 쉬워도(읽기 쉬워도), 나가기 어려운(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미로’이다.

 

 

 

 

 

 

 

 

 

 

 

 

 

 

 

* 에밀리 디킨슨 《고독을 잴 수 없는 것》 (민음사, 2016)

* [구판 절판] 에밀리 디킨슨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민음사, 1976)

 

 

 

디킨슨이 남긴 1,775편의 시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디킨슨은 시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시집 출간에 참여한 편집자와 문학 연구가들은 엄청난 양의 시를 구분하기 위해 각각의 시에 숫자 번호를 붙였다. 그녀의 시를 가리킬 땐 숫자 번호와 시의 첫 번째 문장을 함께 언급한다. 시의 첫 번째 문장은 임시로 붙여진 가제(假題)가 된다.

 

만약 우리나라에 해설을 곁들인 디킨슨 시 ‘전집’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적어도 두 권으로 나올 수 있겠다. 가장 많이 알려진 디킨슨 시 ‘선집’은 1976년에 강은교 시인이 번역한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이다. 알라딘에는 이 시집의 출판연도가 ‘1997년’으로 되어 있는데, 초판 발행연도는 아니다. 1997년에 나온 건 개정 2판이다. 2016년에 나온 《고독을 잴 수 없는 것》은 개정 3판이다. 두 권의 책에 수록된 시와 강은교 시인이 쓴 해설 내용은 모두 같지만, 개정 3판을 잘 살펴보면 구판에서 드러난 어색한 번역문과 오역을 고치고 새로 다듬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판과 개정 3판에 ‘하늘나라에 갔었네’라는 가제가 붙여진 시(No. 374: I went to Heaven)가 수록되어 있다. 구판 번역문과 개정 3판의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Stiller — than the fields

At the full Dew —

Beautiful — as Pictures —

No Man drew.

People — like the Moth

Of Mechlin — frames —

Duties — of Gossamer —

And Eider — names —

Almost — contented —

I — could be —

’Mong such unique

Society —

 

 

 

이슬 가득한 — 들

보다도 고요한 —

그 누구도 그릴 수 없는

메클린의 — 좀벌레 같은 —

사람들 — 평화롭고 —

의무는

거미줄과 솜털처럼 가벼워 —

난 한껏

만족할 수 있었네 —

 

(‘하늘나라에 갔었네’ 중에서, 강은교 옮김, 《한 줄기 빛이 되어》, 민음사, 48쪽)

 

 

 

이슬 가득한 — 들

보다도 고요한 —

그 누구도 그릴 수 없는

메클린의 — 레이스나방 같은 —

사람들 — 평화롭고 —

의무는

거미줄과 솜털처럼 가벼워 —

난 한껏

만족할 수 있었네 —

 

(‘하늘나라에 갔었네’ 중에서, 강은교 옮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민음사, 47쪽)

 

 

 

 

‘moth’는 나방을 뜻한다. 그런데 구판에는 ‘moth’를 ‘좀벌레(silverfish)’로 잘못 번역한 구절이 있다. 번역문 옆에 원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구판의 오역을 발견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 에밀리 디킨슨, 윤명옥 옮김, 《디킨슨 시선》 (지만지, 2011)

* [절판] 에밀리 디킨슨, 김천봉 옮김, 《19세기 미국 명시 6: 에밀리 디킨슨》 (이담북스, 2012)

 

 

 

민음사의 디킨슨 시 선집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의 《디킨슨 시선》이담북스의 《에밀리 디킨슨》을 읽으면 된다. 다만 이담북스 번역본은 절판되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번역본은 지만지의 《디킨슨 시선》이다. 오역으로 추정되는 시구가 몇 개 있긴 하지만,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이 번역본이 기존의 디킨슨 시 선집과 차별화된 특징이 있는데, 시마다 붙여진 숫자 번호까지 적혀 있다. 지만지의 《디킨슨 시선》은 숫자 번호가 붙여진 유일한 디킨슨 시 선집 번역본이다.

 

 

 

 

 

 

 

 

 

 

 

 

 

 

 

 

* 데이먼 영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 (L.I.E., 2009)

* 박재열 《미국 여성시 연구》 (L.I.E., 2009)

 

 

 

잘 알려지지 않은 디킨슨의 생애를 상세하게 다룬 책으로는 데이먼 영(Damon Young)《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박재열《미국 여성시 연구》가 있다.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는 정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자연을 관찰하면서 시를 쓴 디킨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녀에게 정원은 ‘안식처’이자 ‘천국’과 같은 곳이다. 《미국 여성시 연구》는 디킨슨을 포함한 6명의 여성 시인의 생애와 시 세계를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다른 시 선집 해설에서 볼 수 없는 디킨슨의 가족 관계—친오빠의 아내인 올케 수전(Susan)과의 관계이 언급되어 있고, 그녀가 친하게 지내던 남성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특히 올케에 향한 레즈비언(lesbian)을 암시하는 듯한 디킨슨의 편지글은 그동안 ‘무성애적(asexuality) 처녀’로만 알려진 세간의 평가를 뒤집는 자료이다. 저자는 디킨슨이 쓴 편지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끝내 숨기려고 했던 그녀의 내면을 살피고, 그것이 어떻게 시로 구현되었는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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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9-03-2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지만지의 디킨슨 시선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cyrus 2019-03-22 17:48   좋아요 1 | URL
지만지 번역본에 원문은 없지만, 민음사 번역본에 수록된 시의 수보다 많습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시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syo 2019-03-2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받아야 된다니까 정말......

cyrus 2019-03-22 17:51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네요... ㅎㅎㅎㅎ

oren 2019-03-22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디킨슨의 시집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을 읽었는데, 정말 하나같이 독특한 시들만 있어서 놀랐고,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그녀만의 세계‘를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

그녀가 유부남이었던 목사를 사랑했고, 자신의 사랑 고백이 거절당한 이후로 평생 집에만 틀어박혀 오로지 시를 짓는데만 열정을 쏟았다니,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절망에 차 있었을까 싶어서 그녀의 시를 읽으면서도 짠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겠더군요.

cyrus 2019-03-22 17:56   좋아요 1 | URL
디킨슨의 생애를 알고 난 뒤에 시를 읽으니까 그녀가 왜 ‘죽음’과 ‘불멸’이라는 주제에 집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녀의 시에서 죽음에 대한 그녀의 트라우마가 느껴졌습니다.

2019-05-31 0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01 10:21   좋아요 0 | URL
처음에 디킨슨의 시를 읽었을 땐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생각날 때마다 시를 읽으니까 그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디킨슨의 진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디킨슨이 좋아했던 장소가 정원입니다. 그래서 정원을 소재로 한 시가 많아요. 세밀한 관찰력이 없으면 쓸 수 없는 시들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327)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 주연의 영화 <콜레트(Colette)>가 개봉된다. <콜레트>는 프랑스의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콜레트 역을 맡았다.

    

 

 

 

 

 

 

 

 

 

 

 

 

 

 

* [품절]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천진난만한 탕녀(문학동네, 2000)

    

    

몇 주 전에 영화 개봉 소식을 확인한 이후부터 오랜만에 콜레트의 소설 천진난만한 탕녀(L’ingenue libertine)(약칭 탕녀’)를 펼쳤다. 3년 전(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군…‥)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 탕녀1909년에 발표된 콜레트의 초기 작품이다. 1904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Minne)과 이듬해에 나온 후속작 민의 방황(Les égarements de Minne)을 합친 작품이다. 민은 탕녀로 묘사되는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탕녀는 콜레트의 첫 번째 남편 앙리 고티에 빌라르(Henry Gauthier-Villars)와 이혼하고 난 뒤에 나온 작품이다. 콜레트는 작가 겸 음악 평론가로 활동한 빌라르의 필명 윌리(Willy)를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다. ‘윌리라는 필명으로 나온 작품이 바로 클로딘 시리즈(Claudine stories)이다. 1900년부터 1903년까지 총 네 편의 소설이 발표되었으며 클로딘이라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클로딘 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콜레트의 글쓰기를 의심하는 여론이 있었다. 고다르가 소설의 절반을 썼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다르가 콜레트의 글쓰기에 지나치게 간섭했던 것은 사실이다. 콜레트는 자신의 창작욕마저 지배하려는 남편의 태도에 못마땅했다. 게다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앞세워 다른 여성들을 만나고 다니는 남편의 바람기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콜레트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다. 고다르와의 이혼 후 콜레트는 두 번이나 결혼했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두 번째 남편의 의붓아들과도 연애했다. 배우로 활동했을 땐 귀족의 딸과 4년간 동거를 했다. 어느 책에서는 콜레트를 레즈비언이라고 언급했던데, 그녀의 성 정체성은 바이섹슈얼(bisexual)에 더 가깝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방랑하는 여인(지만지, 2013)

    

 

 

첫 번째 이혼 후에 콜레트는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게 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뮤직홀 댄서와 팬터마임 배우로 활동한다. 1910년에 발표된 방랑하는 여인(La Vagabonde)은 이혼 후 그녀의 삶이 일부 반영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르네 네레(Renée Néré)는 뮤직홀을 전전하는 가난한 댄서이자 팬터마임 배우이다. 그녀는 바람기 있는 화가인 남편과 이혼한 후 개와 함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소설 제목인 방랑하는 여인이 의미하는 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면서 확인하려는 과정이다. 르네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길을 잘못 든 여류작가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글을 쓰기 위해 남편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선택하지만, ‘고독이라는 그림자가 수시로 그녀를 괴롭힌다.

 

 

 내 나이의 여자에게 고독은 자유를 만끽하게 하는 한 잔의 포도주였다가 어떤 때는 머리를 벽에다 짓찧게 하는 쓰디쓴 독주가 되기도 한다.

 

(콜레트, 이지순 옮김, 방랑하는 여인, 전자책 18~19)

 

 

콜레트의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소재는 거울’, ‘동물그리고 정원이다. 콜레트의 소설에서 거울은 여성 인물들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관능적인 여성성을 확인해주는 남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콜레트의 여성 인물들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꾸밈없는 본능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암고양이(창비, 2013)

 

 

콜레트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양이. 실제로 콜레트는 고양이로 분장하여 공연한 적이 있다.[1] 그녀가 쓴 소설에 개와 고양이를 언급한 내용이 무조건 나온다. 그리고 인물의 행동을 고양이 특유의 행동에 빗대어 묘사하기도 한다. 1933년 작 암고양이(La Chatte)는 암컷 고양이에 푹 빠진 남자와 그와 고양이의 관계에 질투하는 그의 아내의 일상과 심리 상태를 그린 소설이다.

    

 

 

 

 

 

 

 

 

 

 

 

 

 

 

* 데이먼 영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이론과 실천, 2016)

    

 

     

콜레트의 어머니 시도니(Sidonie)는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애칭은 시도(Sido)였고, 콜레트는 1929년에 유년 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반영한 자전적인 소설 시도를 발표했다. 이 소설에 꽃을 애지중지하게 관리하는 시도의 모습이 나온다. 콜레트의 표현에 따르면 시도는 꽃에 대한 욕심이 무척 강했다. 어린 콜레트가 정원에 있는 화분의 흙을 손으로 파냈을 때, 시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여덟 살짜리 살인자라고 말하면서 혼을 냈다고 한다.[2] 꽃에 대한 콜레트의 애착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콜레트에게 정원은 펄펄 뛰어오르는 감정을 잠재울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자 예민한 그녀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놀이터이다.

    

 

 

 

 

 

 

 

 

 

 

 

 

 

 

* 리디 살베르 일곱 명의 여자(뮤진트리, 2015)

* [절판] 조은섭 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밝은세상, 2003)

    

 

 

영화를 보기 전에 콜레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보고 가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그녀의 파격적인 행보들(남편의 의붓아들과의 연애, 동성애, 반나체로 춤을 추거나 공연하는 콜레트의 모습)이 과연 영화에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관객들의 정서상 쾌락을 추구하는 콜레트의 자유연애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소재이다. 콜레트의 파란만장한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 프랑스 작가 리디 살베르(Lydie Salvayre)일곱 명의 여자조은섭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 등이 있다. 조은섭의 책은 절판된 상태라 유일하게 남아있는 콜레트에 관한 책은 일곱 명의 여자뿐이다. 콜레트를 조금이나마 언급한 책이 더 있는지 알아보고, 발견하는 대로 새로운 글을 쓸 예정이다.

 

 

 

    

 

 

[1] 사진 설명: 카바레에서 사랑에 빠진 고양이를 연기하는 콜레트(1912년). 로베르 드 라로슈, 질 르 파프 공저의 고양이85쪽에 왼쪽 사진이 실려 있다.

 

 

 

 

 

 

 

 

 

 

 

 

 

 

 

 

 

* [절판] 로베르 드 라로슈, 질 르 파프 고양이(창해, 2000)

 

 

 

 

[2] 데이먼 영, 서정아 옮김,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 131~132, 이론과 실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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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 동서문화사 월드북 9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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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28. 25세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Mark David Chapman)은 아파트에 들어가던 존 레넌(John Lennon)을 향해 다섯 발의 총을 쐈다. 레넌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몇 시간 후에 숨을 거두었다. 채프먼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도주하지 않았다. 그는 인도에 앉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채프먼은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게 만들기 위해 레넌을 암살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한동안 호밀밭의 파수꾼암살범이 좋아하는 위험한 책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독자에게 악영향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호밀밭의 파수꾼번역본 중에 독자가 피해야 할 책이 있다. 그 책은 바로 동서문화사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이 번역본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백년의 고독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번역본의 정가는 12,000. 싼 가격으로 두 편의 고전을 읽을 수 있다. 책값이 싸서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이 번역본에 속으면 안 된다.

 

동서문화사는 기존에 있는 다른 출판사 번역본들의 문장을 도용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회사이다. 아예 문장을 통째로 베끼거나 여러 종의 번역본 문장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인쇄한다. 그리고 번역본의 역자 이름은 이미 고인이 된 역자, 또는 이력이 불분명한 인물(전문 번역가로 보기 어려운 사람)이다. 백 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의 역자는 이가형 씨다. 이가형 씨는 2001년에 세상을 떠난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이다.

 

백 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서지 정보에 따르면 11쇄가 나온 연도는 19791010이다. 그러나 1979년에 동서문화사가 출간했다는 호밀밭의 파수꾼국립중앙도서관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책이다. 동서문화사가 책에 기재한 초판 발행 연도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1979년에 나온 호밀밭의 파수꾼번역본이 딱 한 권이 있는데, 그 책을 만든 출판사는 동서문화사가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동서문화사의 호밀밭의 파수꾼문예출판사 번역본을 표절한 책이다. 더 이상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 동서문화사의 악행은 어디 한두 번인가. ‘문화’, ‘출판사라는 이름이 아깝다.

 

 

 

 

 

 

1

 

* 샐린저가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To my mother)가 빠져 있다.

 

 

    

 

2

 

 

   

 * 문예출판사, 28

 

 

 

 

 

 * 동서문화사, 393

    

 

 

 

 

     

 

3

 

 

* 원문

 

  I didnt answer him right away. Suspense is good for some bastards like Stradlater.

      

문예출판사, 47

 

 나는 당장 대답하진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같은 개새끼들에겐 어정쩡한 미결의 상태가 약이 되기 때문이다.

      

동서문화사, 406

 

 나는 당장 대답하진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이 뻔뻔한 녀석들에겐 어정쩡한 상태가 약이 되기 때문이다.

 

 

 

 

 

 

4

 

 

* 원문

 

 All of a suddenfor no good reason, really, except that I was sort of in the mood for horsing aroundI felt like jumping off the washbowl and getting old Stradlater in a half nelson. That’s a wrestling hold, in case you don’t know, where you get the other guy around the neck and choke him to death, if you feel like it. So I did it. I landed on him like a goddam panther.

  “Cut it out, Holden, for Chrissake!” Stradlater said. He didn’t feel like horsing around. He was shaving and all. “Wuddaya wanna make me docut my goddam head off?”

  I didn’t let go, though. I had a pretty good half nelson on him. “Liberate yourself from my viselike grip.” I said.

      

문예출판사, 50

 

 갑자기 그저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 자식을 하프 넬슨 수법으로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하프 넬슨이 뭐냐 하면, 상대방의 목을 뒤에서 졸라 원하면 죽일 수도 있는 레슬링의 기술이었다. 나는 표범처럼 그를 덮쳤다.

  “제발 그만둬!” 하고 스트라드레이터가 소치렸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면도를 하는 도중이었으니까. “어쩌려고 이래? 내 모가지라도 베려는 거야?”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꽤 그럴듯한 하프 넬슨 기술을 걸고 있었다. “풀어보시지. 바이스같이 억센 내 팔을…‥하고 내가 말했다.

      

동서문화사, 408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 자식의 목을 하프 넬슨 수법으로 졸라 버리고 싶었다. 하프 넬슨이 뭐냐 하면, 상대의 목을 뒤에서 졸라, 원하면 그를 죽일 수도 있는 레슬링 기술이다. 나는 표범처럼 그를 덮쳤다.

  “제발 그만둬!” 스트라드레이터가 소리쳤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면도를 하는 도중이었으니까.

  “어쩌려고 이래? 내 모가지라도 베려는 거야?”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꽤 그럴듯한 하프 넬슨 기술을 걸고 있었다. “풀어 보시지. 바이스같이 억센 내 팔을…‥내가 말했다.

 

 

 

 

 

5

 

 

* 원문

 

 My brother Allie had this left-handed fielder’s mitt. He was left-handed. The thing that was descriptive about it, though, was that he had poems written all over the fingers and the pocket and everywhere. In green ink. He wrote them on it so that he’d have something to read when he was in the field and nobody was up at bat.

     

문예출판사, 62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야수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그앤 왼손잡이였다. 그 장갑에 대해서 무엇이 묘사할 만한가 하면, 앨리는 야구 장갑의 손가락이고 주머니이고 어디든 간에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녹색 잉크로 쓴 시였다. 그렇게 써놓으면 자기가 수비에 들어가서 타석에 아직 선수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읽을거리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동서문화사, 415~416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야수용(野手用) 글러브를 가지고 있었다. 그앤 왼손잡이였다. 그 글러브의 어떤 점이 묘사할 만한가 하면, 앨리는 글러브의 손가락이고 손바닥이고 어디고 간에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녹색 잉크로 쓴 시였다. 그렇게 써놓으면 자기가 수비에 들어가서 타석에 선수가 들어오길 기다릴 때 읽을거리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동서문화사 번역본의 손바닥오역이다. 원문에 손바닥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도용 의혹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주머니(문예출판사)대신에 손바닥을 썼을 수도 있다. 동서문화사는 단어 하나만 바꾼다고 해서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6

 

 

 * 문예출판사, 83

    

 

 

 

 

 * 동서문화사, 430

 

 

 

 

 

 

 

 

7

         

 

* 문예출판사, 256~257

 

 “‘만나면붙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 하고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금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피비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또 아빠는 오빠를 죽일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죽여도 좋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 동서문화사, 545 

    

      

말야는 어법상 틀린 표현이므로, ‘말이야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 동서문화사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에 있는 오역과 잘못 쓴 표현까지 그대로 베꼈다.

 

 

 

 

 

 

 

8

 

 

* 원문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the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문예출판사, 277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동서문화사, 560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같은 이유를 위해 비겁한 삶을 택하려 한다는 것이다.

 

 

동서문화사 560쪽에 있는 문장은 이유은 민음사 판본에, ‘비겁한은 문예출판사 판본에 가져와 짜깁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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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3-05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예출판사본이 있니?
알라딘에선 없는데? 내가 못 찾나...
번역자 이름이 다르지?
그렇다면 표절이 맞기는 한데 우째 이런 일이...

cyrus 2019-03-06 17:35   좋아요 0 | URL
문예출판사 판본의 역자는 이덕형 씨에요. 문예출판사는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요. 이미 알고 있었다면 동서문화사 번역본이 판매되지 않았을 거예요.

레삭매냐 2019-03-05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대 사지 않으려고 기피하는 출판사
가 몇 군데 있는데...

차라리 읽지 않고 말지 - 라고 말이죠.

그나저나 우리 싸이러스 브로의 열정
은 정말 대단합니다 쵝오 !!!

cyrus 2019-03-06 17:36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근성(芹誠)가이라고 불려주세요... ㅎㅎㅎㅎㅎㅎ

syo 2019-03-0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정말 국가와 사회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인간(기계??)이시옵니다......

cyrus 2019-03-06 17:39   좋아요 0 | URL
제가 기계라면 닉네임을 ‘사이보그’라고 바꿔야겠어요... ㅎㅎㅎㅎ

오후즈음 2019-03-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한참을 읽고갑니다. 멋진 사이러스님.

cyrus 2019-03-06 17:39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chaeg 2019-03-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

cyrus 2019-03-06 17:4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이하라 2019-03-0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이신 시간과 정성이 매리뷰 마다 가득히 느껴지네요.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

cyrus 2019-03-06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있는 정성을 다하여 글을 쓰는 것입니다. ^^

카스피 2019-03-0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70년대에 나온 동서추리문고(영어>일어>한국어 번역으로 악명)는 한때 추리소설 수집가들의 성서와도 같았던 떄가 있었습니다.하지만 2천년도에 재간되면서 70년대 번역을 그대로 가져와 많은 비난을 받았죠.그래서 싸이러스님 글대로 동서출판사가 제대로 하지 않을거란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것은 동서출판사가 몽땅 표절을 했을까 하는 점인데 만약 그렇다면 해당 출판사가 동서를 고소하지 않은것이 무척 궁금하네요.

cyrus 2019-03-06 18:09   좋아요 0 | URL
동서문화사에 나온 모든 번역본이 100% 표절로 의심되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확인된, 표절이 분명한 동서문화사 번역본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포함하면 총 3권입니다.

제가 포스팅한 글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고리키 <어머니 / 밑바닥 / 첼카쉬>
http://blog.aladin.co.kr/haesung/8284417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회상>
http://blog.aladin.co.kr/haesung/9402985

<셜록 홈즈의 회상>은 정태원 씨의 번역본을 표절했습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번역한 <대망> 시리즈는 저작권을 어긴 책입니다. 정식으로 일본 출판사와 저작권을 맺은 솔출판사의 번역본이 있는데도 동서문화사는 과거에 자신들이 펴냈던 해적판 번역본을 발행했던 거죠. 그래서 동서문화사와 솔출판사 간의 법적 공방이 10년 정도 이어졌고, 최근에 판결이 났습니다. <대망>은 저작권을 무시한 책으로 확정이 되었고, 동서문화사 대표 고정일 씨는 1심에서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597100

문예출판사 측은 동서문화사가 표절한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예출판사 측에 동서문화사의 만행을 알리려고 합니다.

카스피 2019-03-09 13:41   좋아요 0 | URL
뭐 다른 책은 제가 잘 모르겠고 일단 셜록 홈즈의 경우는 약간 의문이 드네요.동서의 셜록홈즈는 70년대 후반에서 동서추리문고로 나온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은 일본에서 번역된 셜록홈즈를 번역한 이른바 중역본이죠.2천녀대 초반에 나온 동서DMB가 추리애독자에게 욕을 먹은것은 70년대 동서추리문고를 고대로 재간했기 떄문이죠.이건 아마도 베른조약 때문일겁니다.그러니 역시 2천년대 초반에 나온 시간과 공간사이 정태원씨 번역본을 표절했다는 것은 좀 아닐까 싶네요.

반유행열반인 2019-03-0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지고 있는 책이네요. 두 소설 다 어쩌다보니 민음사, 동서문화사 것 두 개씩 가지고 있네요. ㅎㅎ 동서문화사 다른 책들도 번역자가 불분명하고 번역 상태도 아리송한 책이 제법 있어요. 소돔120일도 일본어 잘 할 법한 종군기자 할아버지(...살아는 계실까)가 번역자인 것 보면 아마 프랑스어 책-일본어판-중역 이렇게 책이 나온 듯 하더라구요.

cyrus 2019-03-11 12:03   좋아요 1 | URL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사드의 <악덕의 번영> 역자 역시 김문운입니다. 어떤 블로거는 김문운은 실제 인물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왜냐하면 김문운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동서문화사의 책들을 보면 역자 약력 내용이 조금씩 다르게 나왔거든요. 아무튼 동서문화사, 믿을 만한 출판사가 아니에요. ^^;;

페크pek0501 2019-03-1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번역은 동서문화사가 최고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저는 님의 답글로 그렇게 읽은 것 같은데요...

cyrus 2019-03-18 12:03   좋아요 0 | URL
‘최고’라고 언급한 적은 없었어요. 다만 ‘좋았다’고 평가한 책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책을 번역한 사람의 이력이 의심이 들어요. 가독성은 좋은데, 번역자와 출판사를 믿지 못하는 아이러니... ^^;;

2019-11-01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11-01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박사가 그냥 시루스박사가 아닙니다 ㅎㅎ

cyrus 2019-11-01 17:46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카알벨루치님. 지난달에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제가 알라딘 서재에 자주 드나들지 못했어요. 늘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